초보산꾼 100대 명산 - 태백산 [太白山] 장군봉 1,566.7m

                                              

 

 

언제 : 계사년 매듭달 이레 흙날

 

누구랑 : 3450온누리 산악회 100대 명산 산우님들

 

어딜 :  화방재 - 새길령 - 유일사 갈림길 - 태백산(장군봉) - 천재단 - 문수봉 - 당골매표소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은 http://blog.daum.net/kmhcshh/1375 에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울이 자리를 차지하더니 벌써

겨울이 빨리 제자리를 찾으려는 듯 삼한사온의 흉내를 벌써 내고 있다.

겨울인가 싶게 옷깃을 여미게 하다가도 돌아서면 또 잠시 가을에 대한 배려심을 잃지 않고 있다.

그 반갑지 않은 배려심을 우리는 환절기라 말하고 덕분에 주위에 콜록콜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환절기를 이기는 방법은 산에 올라 마음껏 기지개를 펴보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 민족의 명산 태백산으로 겨울 산행을 떠나본다.

 

 

태백산   지도 생략

 

 

화방재

화방재(花房嶺높이 939m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화방재[花房嶺]'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방화선(防火線)을 설치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며, '정거리재'라고도 한다

 

 

어평재민박 광장에서 김희석님의 접시돌리기로 산행을 위하 준비를 하고

소도동 헐리에서 영월쪽으로 1km쯤 떨어진 곳의 지명이 어평(御坪)이라 하며 그 위쪽 마을을 정거리(程巨里)라고 한다.
조선 6대 임금이신 단종께서 영월 땅에 유배당해 있다가 사약을 받고 승하하신 후, 태백, 봉화, 영월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백마를 타신 단종께서 태백산을 향하시다가 잠시 멈추어 쉬실 때 백성들이 아뢰길 “대왕마마 어인 행차 이시 옵니까?”
이 때 단종께서 슬픈 표정을 지으시며“이제부터 짐이 영원한 안식처인 태백산에 산신이 되여 가는 길이니라. 이 곳에서부터 짐이 기거할 땅이니라.”고 했다.
그 다음날 백성들은 단종께서 승하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태백산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들이 꾸었던 꿈이 그들 모두가 같음을 알고 단종이 쉬셨던 자리를 정거리(程巨里)라 하고

단종이 이제부터 기거할 땅이라고 했건 곳을 어평(御坪)이라 불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참으로 얼마나 비통했으면 이곳 민중들에게 동시에 또 같은 시간에 꿈에 나타나셨을까? 되세겨 볼 일이다.

 

 

주유소 옆으로 바로 들머리가 있다 - 오랜만에 만차의 기쁨은 긴 들머리 행렬을 만들다

 

새길령

신라 때에는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가자면 태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마루로 나있는 길로 다녔다. 그 길이 불편하여 고려때 새로이 길을 뚫었는데 지금의 새길재이다.

소도 당골 어귀에 원(院)을 설치하고 새길재를 넘어 온 사람들이 쉬어가게 하였다. 옛길[태백산 산등의 길]대신 새로이 길을 뚫었기에 새길이라 하였고 그 고개를 새길재라 하였던 것이다.

한자로 '조도령(鳥道嶺)'이라 한 것도 새 (鳥) 길(道)을 뜻하는 것이고 '신로치'는 말할 것도 없이 새길이며 '사길(士吉)', '사길(四吉)', '서길(瑞吉)'도 모두 새로운 길인 새길을 소리나는대로 표기한 것일 뿐이다.

 

 

바로 바꾸어야 할 이정석

표준말이 서툰 산골 촌 사람들이 이 고개를 [새길래]라 발음했다. 그리고 한국 말이 서툰 일제가 [四吉峙]로로 표기한 것이다

[四吉峙]의  우리 조상들은 지명에 금기시 해왔다. 四는 不祥忌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이 귀중한 정신적 문화 가치를 지닌 지명들이 훼손돼 있거나 황폐하게 파괴돼 버린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도 곳곳에 그 잘 못된 지명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정녕 우리의 한계인가? 

지금 힘의 균형추가 급격하게 중국과 일본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도 어쩌면 이런 과정들을 등한시 하고 있는 결과는 아닌지? 

 

 

 

태백산은 한울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바로 아래에 이렇게 단군성전이 곳곳에 남아 있다 - 대웅전을 함께 모시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새길재라는 아름다운 우리나라 말을 버리고

일제에 왜곡된 사길령이라는 이름으로 유래비석까지 자랑스럽게 조성해놓고...

우리 단군할아버지가 코앞에 이 웃지못할 모습을 보시면서 제대로 눈은 감고 계실지...

사길령 매표소에서 돈을 받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심드렁만 난다.

 

 

태백산 산령각도 지나고

 

 

유일사가 보이는 안부 갈림길

 

유일사로 내려가 본다 - 산사의 겨울 풍경은 고즈넉하기만 한데... 수덕사의 여승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柳一寺

태백산도립공원내 태백산 아래에 있는 사찰로서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 백일기도중에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고,

현 태백산 계곡에 창건하였고,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다.

 

 

무량수전이 대웅전 대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곳은 대웅전.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곳은 대적광전.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곳은 무량수전(또는 극락전, 극락보전)이라고 한다.

무량―수(無量壽),  한량없는 수명이라는 뜻일게고...

 

 

어쨋든 먹어야 산을 올라 가는데... 식후경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모진 비바람에게서 받은 사랑, 한쪽으로 머리를 빗어 길을 만들어 사랑에 보답하고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에 있는 천제단,  장군단

태백산 천재단(太白山 天祭壇)

태백산 천제단은 중앙의 천왕단, 북쪽의 장군단, 남쪽의 하단 등 3개 제단을 통칭한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태백산은 한반도의 척추를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상에 자리잡고 있고, 신라5악의 하나이기도 하였으며 우리나라 12대 명산으로로 꼽힌다.

 

 

정상을 이어가는 능선에도 주목의 눈꽃 향연은 계속된다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주목이라지만 모든 생명들이 그렇듯 생로병사의 번뇌를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목의 생명력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나무 주변을 틀어막고 생채기 난 구멍마다 시멘트를 채웠다.

절반 이상 썩어나간 몸을 지탱하며 겨울 눈꽃산행의 백미로 알려진 태백산의 눈보라를 견뎌내고

해마다 봄이면 다시 새 가지를 뻗어내는 주목의 자태에서 우리는 생명의 위대함을 본다

주목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속설이 있지만 수령은 200∼5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태백의 겨울 산행, 눈꽃이 없으면... 생각만해도 아찔했는데... 역시 겨울은 겨울인가?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산우님 작품

 

멋진 생명력을 자랑하 듯 마지막 까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생명에의 구원을 보는 듯 하다

 

신비로움이 묻어나는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산우님 작품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이 우리들 가야할 길을 막아서고

잠시 머뭇거리다 보면 어느새 옆에도 또 다른 풍경이 눈 둘 곳 잃게 하고

바람에 실어 온 겨울편지가 주목마다 주렁주렁 걸려있어

저마다의 가슴속에 숨어있는 편지들을

누구에게 들킬까 첫눈오면 만나자던...

겨울 바람에 흩날리는 눈빛 풍경에 괜시리...

마음의 우체통까지 꺼내게 만들어 버린다

 

 

 

정상의 바람과 생각보다 따뜻했던 날씨가 만들어낸 조금은 덜 성숙했던 상고대

樹霜, 나무서리등으로 불리워지는 상고대,

가지와 무슨 질긴 인연이 있기에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수증기를 머금고서야 더욱 빛을 발하는 상고대

거기에 푸른하늘과 순백이 조화를 이룬다면 이 세상 무엇과 바꾸리

잿빛 하늘을 이고서야  순결의 꽃을 피워내

순백의 진실을 우리에게 담아내게 하고 있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의 저자 우종영의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나무가 이 태백산의 주목이다

저자는 주목에서 모진 세월을 이겨낸 기나긴 인고의 산물로서의 천년의 사랑을 보았다고 한다.

늦가을 찬 서리를 맞은 다래가 더 깊은 맛을 내듯 사랑도 그만큼의 시련이 후에야 더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전한다.

 

 

한배겸 비석이 있는 천제단인 천왕단

 

겨울 태백산 정상에서의 단체사진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단종비각

 

망경사가 보인다 - 앞에 용정이라는 샘물이 보인다

망경사 望鏡寺와 용정龍井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慈藏律師가 창건한 망경사는 태백산 천제단에서 장기간 기도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자시와 인시에 맞춰 하루 두 번씩 천제단에 오른다.

용정龍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용정의 물은 신라시대부터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썼다고 전해지는데,

샘의 물줄기가 용궁과 통한 터라 부정한 이가 마시면 물이 탁해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휴식터가 있는 삼거리인 반재

 

당골계곡 옆으로 기암괴석이 즐비한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보이는 단군성전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추인 산으로 예로부터 정상에서 하늘에 제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때에는 137년 일성이사금 5년 10월에 왕이 친히 북순하여 태백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300년 기림이사금 3년에 우두주에 이르러 태백산에 망제를 지내니 낙랑, 대방의 두 나라가 항복하여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으로 보아 토착신앙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석장승

 

망경사 용정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들어낸 당골, 석탄박물관이 있는 당골광장

 

석탄박물관

최초 석탄발견지 탑 여기는 석탄박물관이고,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문수봉과 박월산 사이에 있는 태백시 금천동에 있는 탑

금천동 먹돌배기 근처에 있는 최초 석탄발견지 탑은 1926년 상장면(태백시의 옛 행정단위)의 소사로 일하던 장해룡이라는 사람이 이 곳

먹돌배기 근처에서 노두에 나와있는 석탄덩어리를 주워다 면장 책상 위에 놓아둔 것이 일본인 기사의 눈에 띄어 태백이 일약 탄광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가 됐다.

태백에 석탄이 채굴된 것은 4년뒤인 1930년의 일이다. 전국 생산량의 36%를 차지했다. 그러나 진작 최초 발견지는 개발되지 않고 옆 동네의 개발을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오늘 뒷풀이로 하루를 정리한다

  

새해 1월에 맞이하는 눈꽃산행의 백미인 태백산

절정의 1월은 아니어서 좀 서운할 만도 하지만 만차라는 기쁨으로 함께해준 100대 명산팀의 산행

좀 일찍 찾아나선 태백산의 겨울은 그래도 강원도의 진면목을 본 것 같아 다행이었고

주목과 겨울 바람이 함께 만들어 낸 태백의 눈꽃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들머리인 화방재(어평재)와 태백산 아래 단종비각에서 아직도 떠 돌고 있는 단종의 혼을 만나고

하늘의 아들이 만든 나라인 만큼 들머리와 날머리에서 본 단군성전이 태백산의 모든 것을 얘기해 주고 있는 듯 했다.

 

많은 산우님들이 함께한 만큼 통제도  쉽지 않았을 텐데

무탈하게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올 수 있게되어 행복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읍니다.

조교대장님, 그리고 가야산 총무님

언제라도 함께하고 싶지만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이 아깝지만

마음껏 눈길을 밟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합니다.

 

또 모든 100대 명산 산행에 함께 해주신 산우님들 

고생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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