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100대명산 - 모악산 (母岳山 794m 전주완주)
일시 : 갑오년(14년) 매듭달 열사흘 흙날
인원 : 돌쇠, 연리지, 도덕산
어딜 : 상학 ~ 대원사 ~ 수왕사 ~ 모악산 ~ 신선대 ~ 천일암 ~ 대원사 ~ 상학마을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198 에 있습니다
가을걷이와 함께 찾아오는 겨울, 그리고 연말연시
고향은 옛 생각이면서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보면 이맘때쯤이면 한번쯤 생각해 볼 만도 한데
서서히 고향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가고 있는 현대에 살다 보니 나도 또한 무감각해저 가고 있슴을 느끼게 된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가지 않는 이상한 현상 속에서도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렇게 강제로라도 한번 기회있을 때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눈만 뜨면 멀리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모악산으로 떠나본다
모악산 등로 - 노란색이 계획과 바뀐 등로
모악(母岳)산 (해발 793.5m)
전북 대부분의 시·군에서 그 웅장한 자태가 바라다보이는 대표적인 ‘평지 돌출산’이다.
모악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반도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어 ‘어머니의 산’으로 불린다.
고어인 ‘엄뫼’를 의역해서 모악(母岳)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영험한 기가 뭉쳐 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증산교를 비롯한 숱한 신흥종교가 태동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복지사회를 제시하는 불교의 미륵사상이 개화했다.
모악산 입구인 상학마을 주차장에 도착 - 역시 전주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다
아직은 눈이 조금 내리면서 모악산 정상은 보여 주지 않고 있어 눈꽃산행을 기대하게 한다
상학마을 상가를 따라 올라가면서 본 가로수길 눈꽃 풍경 - 봄이면 벗꽃잔치를 벌이겠지?
모악산 입구에 있는 모악산 이정석앞에서 돌쇠님과 연리지님 - 모악산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모악산 유래 안내판
김양순 할머니 선덕비도 보인다 - 천일암을 세우고 빈민 구휼에 앞장선 분이란다
모악산 우측 능선인 상학능선 갈림길 - 상학능선은 전주시내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능선이다
바로 선녀폭포
수박제 다리 바로 몾미쳐 전주김씨 시조묘 갈림길 - 내려 오면서 들르게 된다
천일암 천룡사 갈림길 - 우린 수왕사로, 하산하면서 만나게 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대원사가 보이기 시작하고
대웅전 안의 중앙에 석가여래삼존불이 모서져 있다.
내리던 눈도 그치고 불던 바람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따스한 산행길
여기도 역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인 수왕사
무량굴 암석각자가 세겨저 있다는 수왕사 뒷편 암벽을 진묵대사의 진영을 모신 진묵조사전만이 계속 묵묵히 지키고 있다
진묵대사가 만들어 마셨다는 송화백일주, 지금은 전통민속주로 사랑받고 있는데 진묵조사전 앞에서 볼 수 있다
수왕사의 약수물은 석간수인데 지금은 절 안쪽에 약수터가 설치되어 있다
다시 되돌아 나오면 예전에 시민의 사랑을 받던 약수터가 폐쇄되어 있어 맘이 아프다
조금 전에 보았던 선녀폭포에서 놀러왔던 선녀들이 잠시 올라와 마셨다는 유래가 담길만큼 유명한 약수터이다. 그래서 이름도 水王사이다
한여름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 水王인데도 불구하고 옛날에는 자주 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유는 정상의 통신시설을 지키기 위해 군대가 주둔했는데
그 군대에서 마실물을 끌어다 쓰기 위해 따로 만든 물통으로 다 흘러 들어 갔기 떄문이었다. 물론 일반 시민들은 모른다
그래서 물을 물병에 담기 위해 몇시간이고 기다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안부 네거리를 만나면 중인리로 내려가는 계곡길과 등산로 초입에서 보았던 상학능선길과 만나게 된다
무제봉 - 조선시대 때부터 기우제를 올리던 곳으로 가뭄 때마다 전주 감사가 산돼지를 제물로 올리고 밤을 지새워 제를 올렸다 한다
무제봉에서 바라본 정상은 아직도 구름의 장난으로 보였다 숨었다를 반복하면서 산객들의 마음까지 변덕스럽게 하고 있다
정상 직전 전망대에서 본 정상
정상을 배경으로 돌쇠님과 연리지님
앞에 보이는 장군봉과 그 너머로 남봉에서 이어지는 모악산 좌측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무제봉 왼쪽의 장군봉은 많은 사람이 신성시해왔다. 명당으로 소문나 몰래 묘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줄기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들어 입산금지령까지 내려졌었다.
어찌 됐든 가뭄이 들면 기우제도 지내지만 그 쪽에 쓴 묘도 성할 날이 없었다고 하니...
그래도 워낙 명당자리이다 보니 밤에 몰래 묘를 자주 썼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제 중계탑을 돌아 가면 금산사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고향은 생각만 해도 따스하고 정겨운 곳이다.
그래서 고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거친 세파와 싸우면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마음만은 언제나 고향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중인리 계곡의 겨울 풍경 - 협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지만 마음까지 얼어 붙게 하는 마력도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뒤돌아 본 눈꽃 터널 - 그래도 역시 정상은 정상이다. 김제 만경평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만들어 낸 눈꽃이기에 더 아름답게 다가 온다
정지용님의 시를 노래로 담아 부른 향수의 일부분이다
상처입은 우리들의 영혼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고 씻어 주고 싸매준다는 고향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고향, 그 교향마져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처럼 애달픈 아픔이 있을까?
그 아품마져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고향이기에 그 고향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금산사 갈림길 - 화율봉 방향으로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고향은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기에
퇴색해 가는 고향의 낯익은 풍경을 찾아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는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품고 있는 산은 어떨까?
어릴적 아침에 일어나면서 처음 대하게 되는 것이 모악산 머리 위로 떠오르는 일출이었다
금천저수지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구성산으로 이어지는 좌 우 날개를 펴고 하늘을 향해 아득히 멀리만 보이던 모악산
금산사와 중인리에서 올라오는 계단길의 눈꽃 풍경도 잔뜩 한기를 품고 있어 겨울 산행의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
사실 그때는 모악산이기 보다 산너머에 대한 막연한 그림움으로 다가왔던 산의 의미외에는 없었다
싫든 좋든 어떤 감정이 있든 없든 그렇게 관심이 있든 없든 볼 수 밖에 없었던 모악산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모악산의 속살을 찾아 13년간 다닐 때도 모악산의 참의미를 몰랐었다
고향을 등지고 객지 생활 10면만에 다시 돌아 본 모악산에 오르고 서야 어릴적 무의식속의 모악산
태어나 지금까지 마음속에 자리잡은 모악산이 나를 지금까지 품어 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정상으로 가다 보면 이제 금산사가 눈에 들어 온다 - 좌측으로 장근재로 이어지는 원평기맥이 이어지고 있다
모악산은 김정일위원장의 시조묘가 있어 더욱 명당으로 알려지게 됐지만 역사를 되돌려 보면
이미 소개한 후천개벽을 꿈꾸었던 강일순의 증산교를 비롯하여 무속신앙의 본거지가 되어
한때는 80여개의 암자가 있었을 정도로 난리를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그렇게 기를 품은 산으로 알려지면서 사회개혁을 꿈꾼 사람들이 세상의 혼란을 피해 들어 왔던 곳
이를 받아준 산이 바로 어머니 품속 같은 모악산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새로 개방된 정상으로 오르는 길
통일신라 때 억압받던 백제 유민의 고통을 달래준 진표율사,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분노(憤怒)의 눈물이 배여 있는 역사의 현장인 금산사,
조선 중기 혁신적인 사상을 품다 고발당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정여립,
동학혁명의 기치를 내건 전봉준 등 수많은 이들의 혁명정신이 이 모악산에서 태동했다.
정상석이 있고 또 오르면 헬기장 겸 전망대가 설치 되어 있다
모악산은 호남사경(湖南四景) 중에서도 모악춘경(母岳春景)은 제일로 뽑았다
두 번째가 변산반도의 여름풍경이요 세 번째가 내장산의 단풍, 그리고 백양사의 설경을 꼽았다
내가 전주에 있을 때만해도 흉물처럼 전주의 기를 뺏아가던 정상의 방송사 중계탑을 보면서 언제나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옥상을 이렇게 공개해 산 정상을 도민들에게 돌려줬다니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 하다
남봉 제3헬기장으로 오르는 길이 만만히 않다
모악산은 전주시 중인동, 김제시 금산면, 완주군 구이면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상학마을 주차장에서 보았듯이 순창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4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접근성이 좋아져
많은 시민들이 찾는 쉼터이자 휴양지로서의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
거기에 전북도립미술관등이 자리하고 있어 건강은 물론 문화생활도 즐기게 하고 있는 노력들이 돋보인다
남봉직전에 본 금산사와 중인리의 갈림길인 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구름이 넘다 들고 있다
정상에서 보면 변사반도를 비롯 끝없이 이어지는 호남평야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침 전주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 오늘도 눈이 내린다고 하여 잔뜩 기대했던 모악산의 설경
거기에 경각산을 중심으로 펼쳐질 호남정맥 줄기에 눈이 아플 정도로 하얗게 그려놓을 설경이 눈에 아른거리고
원평기맥이 모악산으로 달려오는 모습의 산너울이 설경에 파묻혀 있을 그림을 상상해 보았지만 역시 산은 지 맘대로이다
거기에 전주시내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펼쳐지는 것도 또한 색다른 맛을 선물할 것이라 잔뜩 기대했건만...
한치앞을 볼 수 없는 인생만큼이나 자연도 우리에게 많은 욕심을 경계하라는 듯 그렇게 보여줄 만큼만 보여 주고 있었다
남봉 제3헬기장에서 식후경
식후 구이저수지와 호남정맥팀이 걷고 있을 경각산에서 운암저수지로 이어지는 아직은 구름을 잔뜩 이고 있는 호남정맥 능선 조망
신선바위도 지나고
천일암으로 좌틀
지금은 단학선원으로 바뀐 천일암
동곡암으로 불리다가 천일암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단학선원이 들어서 있다
동곡암으로 불리울 때 겨울에 이곳을 자주 찾아 왔었는데 이유는 단 하나 추운 겨울 동동주를 맛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암자이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았지만 대신 알아서 시주를 해야 했다
구이저수지를 보면서 안주로 내놓은 동치미를 곁들어 겨울 풍경을 벗삼아 즐기는 동동주 한잔의 추억이 그립기만 하다
세월의 흐름속에 산속에 있는 암자도 이렇게 알게 모르게 계속 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따뜻했던 날씨에 가람에 매달린 고드름이 정감이 있다. 요즘 도시에서는 참으로 보기 힘든 풍경이다.
천일암에서 하산 길을 버리고 계속 직진하여 대감바위 갈림길에서 천화폭포 방향으로 우틀 - 좌틀하면 대감바위 장군봉으로 이어진다
조금 내려오면 네거리에서 좌틀 - 우틀은 천화폭포
천룡사 - 모악산 완주 방향으로 7부능선에 3곳이 사찰이 있고 샘이 있는데 다 들려 보게 된다
천룡사에 있는 천룡샘
천룡샘은 초보산꾼에게는 생명수와도 같은 곳이다.
13년간 일주일에 세번은 들러서 약수를 1.2리터 병에 다섯병을 담아 모악산 정상을 넘어서 중인리로 수없이 넘고 넘었었다
수왕사의 샘터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관계로 주로 천룡샘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한번도 마른 적이 없었다
이 곳 주지의 가족사의 아픔과 함께 한 세월속에 천룡샘은 지금도 맘속 한 구석을 자리하고 있는데 그 분은 뵐 수가 없어 아쉬웠다
구이저수지가 보이는 명당자리? - 추억을 그리며 약수 한사발
우리집 애들이 어릴 때 부터 이 약수를 먹고 자라서 인지 지금도 잔병치레 한번 하지 않고 자라준 걸 보면
아빠의 정성과 약수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산에 대한 그리움과 약수가 길러낸 초보산꾼과 모악산의 질긴 인연 13년이 이렇게 한모금의 약수 한사발이 녹여 내려가고 있었다
언제 또 다시 천룡샘의 약수를 마실 수 있을지...
천룡사로 오르 내리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길이다
천일암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 내려오는 길 - 계곡의 흐르는 물이 겨울속의 따뜻함을 표현하고 있다
낙엽송을 배경으로 돌쇠님과
수왕사로 이어지는 주 능선을 만나 하산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전주김씨 시조묘 갈림길
계곡을 건너 조금 오르면 능선을 만나면서 전주김씨 시조묘를 만날 수 있다
세마리의 동물들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맞춘 지세에 해당하는 '삼수부동격(三獸不動格) 지세를 갖춘 지형이라고 한다
삼살개와 매, 학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있게 조화르 이루어야 하는데 최근 매의 위치에 도로가 나면서 사실상 혈맥이 끊겼다고 한다
사실 조상유골이 언제까지 계속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과연 세습이 어느대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뼈가 남아 있어야 명당으로서의 힘을 받는데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어떨지...
구이저수지와 경각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풍수지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완주구이저수지와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명당자리에 묘를 쓰면 모든 자손들이 다 잘 될까?
꼭 그렇지만은 아닌게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망자의 뼈와 같은 단파를 가진 후손만 잘 된다고 한다.
명당자리에 들었다고 괜히 헛 힘 쓰지말고 화장문화가 정착되면 잘 못되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괜히 명당자리 쎴다가 한 자손만 잘 되면 다른 자식들은 기운을 뺏겨 더 잘 못 될 수도 있음이니...
우백호 방향
김정일 위원장은 전주김씨 27대손으로 알려졌으며
전주김씨의 시조는 고려시대말 고종으로부터 문장공 칭호를 받은 김태서(台瑞)로 당시 보문각 대제학 이부상서까지 올랐으며
전주라는 본은 당시 고종이 직접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바라본 전주김씨 시조묘봉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나오기 전에 전주에 살면서 말로만 전해 오던 김일성 시조묘를 찾아
이건가 저건가하고 찾아 다니던 생각이 난다.
국내에만 5만이 넘는 종친이 살고 있지만 내놓고 나설 수 없는 냉전그늘아래에서 사회분위가 알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당시에 알려졌으면 벌써 묘는 없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주를 떠나와 갑자기 모악산에 갈려고 검색하여 보니 세상 참 많이 변했음을 느끼게 된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쌈이 틀린게 아님을 세삼 느끼게 된다
올라갈때 눈으로 덮여 있던 선녀폭포 안내판이 많이 녹아 있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전주김씨 종중 공덕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의 전주김씨 시조묘에 가고 싶다는 발언이전해지면서
모악산 기슭에 있는 전주 김씨 시조묘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가
김 위원장이 직무실에 전주 모악산에 있는 전주김씨 시조묘 사진을 걸어 놓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지만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주김씨 종친회는 시조묘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여 전주 모악산 입구인 이곳에 시조비 비석을 만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산행을 마치고 나마스테 대장님과 경각산을 배경으로
마지막을 아쉬움을 담아 모악산 정상을 당겨본다
사당으로 이동하여 뒷풀이 장소
함께여서 즐거웠습니다
내가 호남정맥팀과 함께 줄기를 이어 갈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태마산행으로 함께 한 전주와 완주 그리고 김제를 품은 모악산
초보산꾼의 산의 역사의 대부분을 모악산에서 보냈고 곳곳에 남아 있는 나의 흔적들
모악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을 담기에는 책한권으로도 모자라지만 아쉬운대로 모악산의 일부라도 담을 수 있어 행복하다
거기에 논위에 솟아 있는 모악산의 겨울 산행은 모악춘경(母岳春景) 못지 않은 멋진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보일 듯 말 듯 계속 이어저 온 모악 풍경은 더함도 덜함도 없는 있는 그대로 살기를 얘기했고
욕심은 풍경을 가리고 욕심을 버리면 풍경은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모악산을 걸으면서 함께 하지 못한 산우님들에게 고향자랑 한번 하려고
10년간 보지 못한 그 큰 모악산을 하루에 다 볼려 했던 내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욕심에 대한 모악산의 큰 가르침이었다
이미 미리 올린 모악산의 자료와 산행기에 올린 자료들이 모악산의 일부분이지만
넓게 보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산들이 다 소중한 것이고 보면 큰 의미를 두는 것 보다는
이렇게 우리가 자연에 들어서 자연에게서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필요성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7분 능선에 위치한 사찰과 그리고 샘이 있는 수왕사, 천일암, 천룡암
계획된 등로를 바꾸면서 까지 들렸던 이유는 단 한가지
13년이라는 세월속에 담겨진 초보산꾼과 모악산의 관계를 담으려는 욕심이었습니다
묵묵히 따라 주시고 끝까지 진행에 도움을 주신 돌쇠님과 연리지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마음속에 항상 남겨저 있던 모악산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호남정맥팀 보물상자 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비록 정맥길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사당에서 시작을 함께 하고
끝나고 다시 사당에서 뒷풀이까지 성대하게 맞이해 주신 호남정맥팀 산우님 분들
만나서 반가웠고 또 다른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고향의 의미까지 품었던 산행에 의미를 더하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산우님들에게
한번쯤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변하고 있는 만큼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고향도 변하고 있었습니다
고향
지금은 내가 찾지 않으면 고향도 나를 찾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있나 봅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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