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23(거인38회차) - 구룡산 구간 : 도래기재 ~ 차돌베기 (석문동 탈출) 

 

 

언제 :  무술년(18년) 물오름달 3월 열이흐레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도래기재 ~ 구룡산 ~ 곰넘이재 ~ 신선봉 ~ 차돌베기 ~ 석문동(탈출)

                     (대간 12 + 접속 3.5 =  15.5km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 http://blog.daum.net/kmhcshh/4239  있습니다

 

 

남녘땅에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은 벌써 눈과 귀를 통해 접하고 있지만 아직 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은 정중동

뫼와 들에 물이 오른다는 물오름달 3월 중순에 떠나는 산행길이지만 봄날이 한창이라는 춘분을 코앞에 두고도

겨울의 마지막 자존심 녹지 않은 눈이 가는 길을 막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강원도의 힘을 가진 백두대간 길도

늘 언제나 그렇듯 가는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오는 계절 앞에 가는 계절은 말이 없는 법...강원도는 어디까지일까

 

 

 

백두대간 도래기재에서 차돌베기까지 : 석문동 탈출  (참조용)  -  거인산악회 제공.

 

 

경북 영주, 봉화 그리고 강원도 영월이 삼시봉인 선달산에서 영주시와 헤어져 영월과 봉화의 도경계를 따르다가

박달령에서 경북 봉화의 속살로 들어온 대간길은 봉화 물야면과 춘양면의 경계를 따르다가 이마져도 옥돌봉에서

구룡산까지 억지춘양의 속살로 들어가  한반도의 대혈맥인 백두대간이 겨우 리의 경계 역할 밖에 못하는 구간..

구룡산에서부터는 선달산에서 잠시 헤어졌던 영월과 손잡고 다시 경복과 강원도의 도경계를 이어가게 된다

 

 

 

 

영월 감삿갓면을 거쳐 도착한 도래기재.. 이 번구간에 생태터널을 지나 춘양면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금정수도를 만날 수 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소의 입을 닮았다고 붙여진 우구치리 금정마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제일의 금광이 열리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얼마나 많았으면 극장이 설치될 정도였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금광에서 캐낸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뚫은 터널인 금정수도를 통해 광물을 운반하는 삭도를 ‘도래기'라 하는데

도래기재의 유래를 여기서 찾고 있어 지금은 옛 영화를 뒤로하고 폐쇄된 금정수도를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런데 도래기재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아직 산불감시 기간이라 바로 출발,,, 구룡산으로

 

그래서 지금도 우구치리에는 금정 마을을 비롯한 금과 관련된 지명이 옛 영화를 뒤로하고 여럿 남아 있다

‘새터’는 인근에 광산이 많이 생겨나면서 이곳에 종사하는 광부들이 새로운 촌락을 이루고 살았고

‘사호’는 금광을 뚫는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사호와 칠로에서 많은 금이 나왔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39362&cid=40942&categoryId=33922

 

 

 

한반도의 중심축인 백두대간은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의 분수령이기 때문에 물의 흐름이 그만큼 중요했다

그래서 일제에 의한 산맥 개념과 달리 산경표는 산이 아니고 물을 중심으로 1대간 9정맥 체계를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출발하려 하는 도래기재는 전구간인 옥돌봉부터는 아예 면경계도 아닌 춘양속살로 들어와

우구치리와 서벽리의 경계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안타깝게도 존재감 없는 대간이 되고 말았다

 

 

도래기재 입구에 잣나무,소나무 숲 안내판에 따라 입구부터 숲이 반긴다

 

엄연한 남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도래기재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강원도 영월땅을 춘양이 침범했을까 

조선시대 한 임금께서 한강이 위치한 한양에 팔도물을 모으고 싶은 욕심에 강원도 땅이였던 우구치를 인위적으로

봉화땅에 속하게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만큼 나랏님도 물이 중요했던 것이다

속리산 구간에서도 살펴봤지만 대간을 벗어난 도경계는 현지 살아가는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물분쟁을 주고 있다

 

 

생태통로가 막아버린 백대대간 도래기재 마루금에 접속하고... 좌측이 경북 봉화 춘양면 서벽리이고 우측이 춘양면 우구치리

보통 생태통로를 만들면 사람도 동물도 함께 동행하도록 만드는데 여기는 아예 동물전용 생태통로이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예언서 정감록 비결에 '大小白之間 舊班復古 後人稍知覺者'라고 해서 양백지간에서 양반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고 예연했다

이 도래기재를 말함이다.   자료 : 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7967838

 

 

무덤을 지나고

 

오늘 계속 우측에서 함께 눈팅으로 동행할 시루봉과 각화산이 차례로 보인다

 

좌측으로는 가야할 구룡산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동양최대의 백두대간 국립수목원이 있다는 서벽리西碧里 ... 아직까지 금강소나무가 백두대간에서는 몇 그루만 보인다

 

영동선 철도 개설 당시 자유당 국회의원이 뒤늦게 뛰어들어 철도를 불쑥 튀어나오게 만들어 버린 억지춘양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알고 있는 유래 말고도 걷고 있는 대간길에서도 또 다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금강송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데 금강석처럼 소나무 재질이 단단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금강산의 금강송 씨앗이 여기까지 날라와 여기 춘양에 자리를 잡으면서 자란 금강송을 춘양목이라 부른다

 

 

임도에 있던 금강소나무 안내판

 

초보산꾼 산행기에서 몇 번 말했지만 소나무는 왕실에서도 특별 관리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다 보니

조금 크고 잘생겼으면 무조건 춘양목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많았다는 얘기

특히 여기 대간을 경계로 서벽리는 경북의 시베리아로 알려진 곳으로 적송으로 불리는 춘양목 집산지 이다

현재도 산림청에서 문화재 복원용 목재 생산을 위해 체계적인 소나무 관리를 위해 백두대간 수목원을 조성했다

 

 

지도상 920봉을 우회하면...

 

바로 금강소나무 안내판이 있는 첫번째 임도를 통과한다

 

임도에서 올라오면 우측으로 전망이 열리면서 가야할 가운데 구룡산과 그 우측으로 신선봉까지 다 보인다

 

지도에는 없는 헬기장을 지나면

 

우구치리 금정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두번째 임도가 나온다. 여기서 중미팀 식후경

 

식후경 후 오름길...오늘 처음부터 뒤에서 함께 했던 옥돌봉(옥석산)과 선달산 그리고 처음으로 그 뒤로 갈곳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음 회차에 무박으로 예정된 선달산 구간에서 걷게 될 마루금이다. 갈곳산에는 궁예의 전설이 녹아 있는 부석사와 남대리가 있다

선달산 구간은 근무가 예정되어 있어 함께 할 수 없어서....  

 

          초보산꾼 산행기 참조  http://blog.daum.net/kmhcshh/2418

 

 

 

1256봉을 우측으로 우회한다

 

강원도의 힘을 만나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 마치 용이 꼬리를 흔들며 구룡산을 지나 하늘로 오르기 위한 몸부림 같다

 

 

봉화와 영월의 경계로 다시 복귀하는  구룡산

 

 

 

정상석 넘어로 가운데 함백산과 우측으로 태백산

 

원래는 안개가 연기처럼 보여서 백연봉(白煙峰)인데, 일제강점기에 측량하느라 깃대를 꽂아서 깃대배기봉으로 바뀌었다

 

남쪽으로는 시루봉과 문수산, 그리고 문수산 아래 동양최대라는 백두대간 국립 수목원이 보인다

 

태백산 아래로  1981년 한국땅 부지에 미국이 건설한 필승사격장이 보인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

 

구룡산 북서 방향으로 삼동산으로 갈 수 있다. 멀리 만항재에서 갈라진 백운산이 보인다

 

 

 

구룡산에서 바로 방화선이 시작된다. 편하게 신선봉까지 갈 수 있다

 

가야할 신선봉도 보이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돌아가게 된다

 

향이동 갈림길이 있는 고직령 - 향이동 방향으로 100m 들어가면 바로 산신각이 나온다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 애당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지명은 '고개가 높고 곧은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고직령(高直嶺)에 언문으로

 '고직이'라고 병기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고칙령(高則嶺)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직령 [高直嶺, Gojingnyeong]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2011. 12., 국토지리정보원)

 

 

 

향이동 방향으로 잠시 들어가 보면 바로 산신각이 나온다. 산신은 불교가 전래되기 전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토착신이다

사찰에서는 山靈閣이라 불렀는데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세운 삼성각,산신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토지와 마을을 지켜 준다는 신인 城隍之神을 모시고 계신 것으로 보아 마을주민들이 지내고 있는 듯...

 

산신각 뒤로 구룡산

 

일부에서 시루봉 갈림봉으로 알고 있는 지도상 1231봉 직전 우회한다. 시루봉 분기점은 아까 보았던 고직령에 있다

 

1231봉 오름길...이제 시루봉이 전면에 보이고 그 뒤로 문수산

 

1231봉

 

시루봉 좌측에 있는 향이동 마을이 보인다

 

이제 지형은 바뀌어 참세골이 보이고

 

참새골로 내려갈 수 있는 곰넘이재. 지도에는 샘표시가 있는데 지금은 폐쇄된 듯...

참새골(봉화 춘양면)  한자로 진조동眞鳥洞

진조동眞鳥洞(참새골)으로도 불리는데 참샘에서 연유를 찾기도 하고 산이 참새가 날아가는 형국으로 보여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이 골짜기에서 쇠를 만들었는데 그 쇠가 참으로 품질이 좋아서 참쇠골이 참새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기가 옛날 召羅古基 즉 소라라는 부족국가가 있었으니 실제로 쇠를 만들지 않았을까?  여기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곰넘이재에서 흐르는 계곡이 참새골, 차돌베기에서 흐르는 석문동 계곡과 애당2리 동이정 마을에서 운곡천으로 합류하게 된다

 

 

 

휴식 후 다시 오름길... 마루금이 90도 좌측으로 꺽이는 신선봉 전위봉을 우회한다. 참새골과 석문동 계곡 분수령 분기봉

 

의자 2개가 있는 전망대에서 담아 본 각화산과 선문동계곡...가운데가 석문동 입구인 석현리. 잠시 후 십승지에서 만나게 된다 

 

지금 전쟁이 나면 우린 어디에 숨을 곳이 있을까? 아마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먹고 살만하고 나라가 안정되면 딴 생각은 할 수 있어도 딴 세상을 동경하거나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하 수상하고 나라가 뒤숭숭하면 일반 백성은 갈 곳을 잃고 딴 세상을 꿈꾸게 된다.. 살기 위해서...

오직 발품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옛날... 그래서 첩첩산중은 숨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어 주었다

 

 

신선봉 직전 계속 가야할 차돌베기 방향... 좌측 앞에 보이는 각화지맥 분기봉까지 이어가야 한다

 

임란에 호란 등 전란에 환란이 많았던 조선 후기는 그야말로 백성들은 한순간도 편하게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야금야금 전해진 정감록의 십승지는 갈 곳 없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 왕조적이고 현실 부정적인 내용으로 조선시대에 금서임에도 전국에 퍼진 이유이기도 하다

난세에 자급자족할 수 있는 그런 길지(吉地)에 피난처 역할을 했던 곳이 십승지 이였던 것이다

 

 

신선봉 오르자 먼저 무덤이 나오고 정상석은 뒤에 있다. 천하명당 조선 십승지 신선봉

 

십승지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야 하고 의식주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물도 땅도 필요했을 것이다

정감록에서는 주로 백두대간에 기대거나 접한 곳으로 태백산 이남에서 대부분의 길지를 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대간 길을 걷고 있으니 대간 길에서 만나는 십승지가 궁금하다

대간 길에서 만나게 되는 십승지는 지리산 운봉, 무주 무풍, 속리산 우복동 그리고 오늘 봉화 춘양면이다

 

 

신선봉에서 차돌베기 가는 길... 약간 지루한 맛도 있고... 우측으로 보이는 십승지 석문동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감록 비결파에서 십승지 가운데 봉화군 춘양면 일대를 표기한 원문을 보면...

 

‘화산북거 소라고기 내성현동 태백양면(花山北去 召羅古基 奈城縣東 太白陽面)’이라 했다.

 ' 화산(지금의 안동) 북쪽으로 가면 소라국의 옛터로 내성현 동편 태백의 양지로 향한 곳'.. 지금의 춘양면 일대를 말함이다

자료 : 봉화인터넷뉴스   http://www.bonghwa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69&idx=21721

 

 

차돌베기에 도착  석문동으로 하산 시작

 

 

 

차돌베기에서 계속 직진하면 바로 앞에 각화지맥 분기봉이 보인다

 

차돌베기에서 본 신선봉과 가운데 멀리 구룡산이 십승지를 만들어 준 것이다

 

십승지 석문동으로 내림길... 오늘은 시루봉 넘어 옥돌봉과 선달산까지 조망된다

 

당겨본 옥돌봉(옥석산)과 선달산

 

보통 안개가 봉우리를 감싸고 있을 때가 많아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게 하는 산을 신선봉이라 부르는데... 마지막으로 담아 본다

 

한 때 춘양목으로 알려진 금강송이 많았다고 하는데... 오늘 대간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몇 그루가 계속 보인다

 

무덤도 지나고

 

석문 이정표를 지나 조금 오면 석문이라 쓴 석문이 보인다. 되돌아 본 석문

 

십승지 석문동마을 석문은 석문동천 각자가 있는 석현리 입구가 맞다고 생각한다. 門을 앞에 두지 뒤에 두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여기 이 문은 아득한 옛날 천제를 위해 민족의 영산 태백산으로 오르는 길의 관문으로 석문이라 생각해 본다. 초보산꾼 생각... 

 

 

경북 봉화군 춘양면  - 네이버 지도 : 십승지의 도움을 주기위해...

 

봉화 땅 춘양은 지도를 자세히 보면 옥돌봉과 깃데기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는 천혜의 병풍이요

東으로 문수산 과 西로는 각화산을 이용하여 울타리를 길게 치니 옆구리도 난을 피하기 안성맞춤

거기에 구룡산에서 이어지는 시루봉을 기둥으로 세우고 하늘을 지붕으로 삼으니 살 집은 완성됐고...

계곡과 계곡을 모아 만든 운곡천 옥수를 생명수로 삼으니 꿈의 십승지 임에 틀림없다

 

 

명색이 이름이 차돌베기인데... 차돌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겨우 하나 발견했네...

 

춘양 십승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石門同天이 있는 돌고개(석현리)를 통과해야 했다

관문 역할을 했던 석현리 하천가 큰 바위에 石門同天이라 누군가 새겨놓은 곳을 통과해야만 만날 수 있는 곳

지금의 애당2리에 남아 있는 석문동 지명의 유래를 여기서 찾고 있다

우리가 차돌베기에서 탈출하여 만나게 되는 마지막 도로지점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지명만 남은 석문동터이다

 

 

계곡길의 마지막 지점을 지나고

 

춘양면 일대는 정감록에서 말 한대로 '召羅古基'.. 부족국가였던 소라국이 실제로 있었던 지역이다

국가를 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먹고 살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생할 수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첩첩산중이요... 어렵게 석문동천을 빠져 나가도 또 다시 첩첩산중...

이제 이런 십승지도 터널이 뚫리고 자동차 문화는 또 다른 형태... 전원생활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백두대간 속리산 늘재에서 청화산에 오르면서 되돌아 본 십승지 중 하나인 우복동...

초보산꾼 속리산 우복동 산행기  http://blog.daum.net/kmhcshh/3374  초보산꾼

 

백두대간 고남산에서 본 좌측으로 보이는 아담한 산이 황산(대첩)산이다. 그리고 우측으로 지리산 운봉읍이 살짝 걸쳐 있다

 

덕유산 무풍면은 안개로 조망이 좋지 않아 담지 못했다

 

 

다시 산행기로 돌아와....

 

 

민가가 있는 애당2리 석문동 마을에서 마치게 된다

 

요즘 정말 보기 힘든 오랜만에 굴뚝에서 밥짓는 연기를 보니... 가마솥에서 나는 소리...밥익는 소리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이렇게 구룡산 구간 백두대간도 마침표를 찍는다...

 

 

그저 산이 좋아 전국의 산천을 벗 삼아 떠돌아다니다 보니

자주 만나게 되는 소위 난을 피해 몸이라도 잠시 숨길 수 있는 길지吉地들...

작가를 알 수 없는 정감록을 비롯한 수많은 선각자들의 예연들을

풍수에 문외환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첨단을 걷고 있는 지금도 산에 들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었을 뿐...

산은 모든 것을 품안에 안아주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산이 가진 원초적인 모습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고

또 앞으로도 마지막 생명의 영원한 안식처도 여기가 될 것이다

 

오늘 걸었던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 하나였던 봉화 춘양

그 중에서도 중심인 석문동을 감싸고 있는 대간 길을 걸으면서

하나라도 더 이해하려 걸었던 구간이라 생각된다

양백지간을 지나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으로 오르는 관문인 석문(동)을

옥빛을 예천까지 비춰준다는 전설이 있는 옥돌봉과 아홉마리 용의 전설이 있는 구룡산

신선이 자리하고 있는 신선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라는 뒤 배경에다

중생교화와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났다는 전설어린 문수보살인 문수산을 西에 모시고

東으로는 한 때 800명이 넘는 스님이 수도할 정도로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였다는 각화사와 

소위 삼재를 피할 수 있는 명당자리가 있어

조선왕조 기록을 보관했던 태백산 사고가 있는 춘양의 진산 각화산

거기에 예부터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유명했던 서벽리 계곡에  

지금은 동양최대의 백두대간 국립수목원이 자리하고 있어 현재도 진행형이다

 

산꾼이 아니면 거의 찾는 산객이 없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이어주는 양백지간

그러나 소백산과 태백산의 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양백지간이기에

 

'大小白之間 舊班復古 後人稍知覺者'라고 해서 양백지간에서 양반들이 많이 배출될 것...

 

이런 정감록의 예언이 주는 대간의 힘을 느낀 구간이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대간길을 걷고 있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는 생각이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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