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24(거인36회차) - 태백산 구간 : 화방재 ~ 차돌배기(석문동) (남진)

 

 

언제 :  무술년(18년) 시샘달 2월 사흘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화방재 ~ 새길재(사길령) ~ 태백산(장군봉) ~ 깃대배기봉 ~ 차돌배기 ~ (접속) 석문동

                     (대간 약12.3km  접속 3.5km 총 15.8km)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4188 에 있습니다

 

 

대한을 지나자마자 대단한 위세로 다가온 동장군의 큰기침에 전국에 초유의 한파경보를 담은 긴급재난문자까지

해마다 으레 우린 겨울이니까 춥다는 정도로 살다보니 경보문자는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경각심

거기에 뚝 떨어진 체감온도에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더하는데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는 뉴스를 듣다보니 약간 걱정

입춘이 내일(2/4)인데... 3한4온은 오데로 간겨? 그래도 겨울하면 떠오르는 민족의 영산 태백산이 기다리고 있으니

 

 

 

백두대간 화방재에서 차돌배기까지 - 석문동 접속 (남진)  (참조용)  -  거인산악회 제공.

 

 

함백산 구간 만항재에서 대간길은 태백의 속살로 들어와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지나 부쇠봉에서 봉화군과 만나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따르다 깃대바위봉에서 만항재에서 잠시 만났던 영월과 다시 손잡고  三市峰으로

화합을 이룬 뒤 태백과 이별하고 단종하면 떠오르는 영월과 봉화의 경계를 선달산까지 이어가게 되는 구간이다

태백산과 소백산을 이어주는 양백지간의 시작점이자 마지막 지점인 차돌배기에서 석문동으로 탈출하게 된다

 

 

 

 

식당과 민박집이 있는 봄이면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붙여진 '화방재花房에 도착

 

태백산 구간 준비를 하고...단종의 혼의 전설이 남아 있는 어평마을 방향... 이번 태백산 구간 들머리이다

 

 

영월에서 단종께서 사약을 받고 승하 하신 후 이 곳 태백산 주위의 사람들이 동시에 똑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혼백이 되신 단종이 태백산의 산신이 되어 가는 길에 기거할 땅이라고 했던 곳을 어평御坪(장산과 수리봉 사이)

그리고 단종이 잠시 쉬었던 자리를 정거리程巨里(태백산 백단사 부근)라 하여 마을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단종의 혼백이 이곳으로 오시다 지나던 길에 들렀던 산이라 해서 붙여진 어래산御來山도 있다

게다가 어래산의 봉우리가 영월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고 하니... 백성뿐만 아니라 강산도 안타까워 했나보다

그래서 백두대간 선달산에서 어래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단종의 혼이 걸었던 길이라고 해도 될 듯 하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역시...단종의 혼의 전설이 남아 있는  정거리마을 방향

 

일제 강점기 방화선(防火線)을 설치하면서 현재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함께하는 함백산 구간 날머리였던 수리봉도 보인다

 

새길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사길령 유래비 앞에서 단체사진 준비를 하고...

사길치 (四吉嶺과 山靈閣)  {새길재}

신라 때에는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가자면 태백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마루로 나있는 길로 다녔다고 하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래서 고려때 새로이 길을 뚫었다 해서 지금의 새길재이고 소도 당골 어귀에 조령에서 보았듯 묵을 수 있는 원(院)까지 설치 했다 

또 다른 이름인 '조도령(鳥道嶺. 새길), 신로치, 士吉, 瑞吉도 모두 새로운 길인 새길을 소리나는대로 표기한 것이다

일제가 다시 개명하면서 四吉峙라 표시한 것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데 四字는 不祥忌數로 우리 조상들은 지명에 금기시 해왔다

지금도 4자는 사용하기에 조금은 불편하다는 생각...실제로 많은 아파트가 F층으로 되어 있다

일제가 의도했던 안했던 우리의 정신적 문화가치까지 훼손된 지명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대간길에 남은 일제 잔재 언제 청산?

 

 

새길재에서 좌측으로 돌탑이 있는 기도터로 내려가면 칠보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잠시 내려가 본다

 

 

단군성전에는 단군 초상화를 대웅전에는 삼존불을 모시고 계시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늦게 들어온 불교가 태백산에 이미 들어와 있던 토착신앙을 받아드린 것 같다...태백산 문수봉에 많은 사연들이 남아 있는데..

 

 

태백산은 한울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바로 아래에 이렇게 단군성전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새길재라는 아름다운 우리나라 말을 버리고

일제에 왜곡된 사길령이라는 이름으로 유래비석까지 자랑스럽게 조성해놓고...

우리 단군할아버지가 코앞에 이 웃지못할 모습을 보시면서 제대로 눈은 감고 계실지...

 

 

처음 이 곳에 들렸을 때는 문이 잠겨 있었는데 마침 보살님이 계서 촬영을 허락 받았다. 감사합니다. 대웅전의 삼존불

 

단군성전

 

다시 되돌아 와 올라가다 되돌아 본 새길재... 벌써 산우님들은 태백산을 향해 날라가고...

 

성황당이 보이고 바로 산령각이 함께 한다

 

 

 

유일사 주차장 갈림길을 지나면 유일사 우회길을 만나는데... 유일사를 들르고 싶다면 여기서 우회해야 봉을 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봉 하나를 넘으면 우측으로 유일사 가람이 보이는 유일사 쉼터

 

 

자료 : 초보산꾼 - 산사의 겨울 풍경은 고즈넉하기만 한데... 유일사의 여승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비구니절인 유일사는 대웅전 대신 무량수전이 백두대간을 머리에 이고 있다..무량―수(無量壽),  한량없는 수명이라는 뜻일게고...

柳一寺

태백산도립공원내 태백산 아래에 있는 사찰로서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 백일기도중에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고, 현 태백산 계곡에 창건하였고,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다. 무량수전이 대웅전 대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곳 대웅전.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곳 대적광전.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곳 무량수전(또는 극락(보)전)

 

 

 

태백산 팔경중에서 태백산 주목 사계, 태백산 주목과 나무들의 눈꽃과 설경도 그 중에 하나다... 주목과의 데이트가 시작되고...

 

망경대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면 전망이 열리면서 되돌아 보면 함백산 방향으로 전망이 트이지만...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의 저자 우종영의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나무가 이 태백산의 주목이다고 한다

저자는 주목에서 모진 세월을 이겨낸 기나긴 인고의 산물로서의 천년의 사랑을 보았다고 한다.

늦가을 찬 서리를 맞은 다래가 더 깊은 맛을 내듯 사랑도 그만큼의 시련이 후에야 더 빛을 발한다는...

그래서 태백시에서도 태백산 주목이 품어내는 사계와 주목과 주위 나무들이 펼치는 눈꽃 설경을 8경으로 했다

 

 

태백산 장군봉 아래에서 주목이 펼치는 환상적인 그림은 절정에 달하지만... 조금은 아쉽죠? 잔뜩 기대하고 왔을텐데...

 

 

태백산에서 자라는 주목은 3,000주가량 된다고 하는데  수령은 대부분 500년 이상이라고 하니 고목 자체가 역사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 말하는 질긴 생명력에도 생로병사는 피해갈 수 없음에 긴 세월의 풍파만큼 기묘한 자태는

비록  생채기 난 구멍마다 시멘트로 채워져 보호받고 있지만 태백의 최고의 명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힘이다

여기 태백의 주목들은 다음 세대에도 또 그 다음세대에도 끝없는 사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천년의 사랑...

 

 

태백산의 최고봉 장군봉에 있는 천제단 중 장군단은 앞에 보이는 천왕단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천왕단으로 진행

 

 

 

높이로 보면 태백산의 실제적인 정상은 여기 장군봉이지만 천왕단이 실제 주인이기에... 때론 높이가 절대 기준이 아님을...

 

 

우측으로 산상분지 지역인 천평계곡이 보이지만... 여기는 전투기 사격장이 생기면서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천평계곡 넘어로 백두대간과 그 뒤로 소백산 라인이 보여야 하는데...좌측으로 신선봉만이...

 

이제 천왕단을 향해 내려오는길... 좌측으로 백두대간 부소봉에서 갈라지는 문수봉과 두리봉이 보인다. 태백과 봉화군의 경계이다

 

3개의 천제단 중에서 한배검을 모시고 있는 천왕단

 

 

 

 

 

여기 천제단에서 제를 지내는 것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태백산 천제단에서 장기간 기도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도량인 망경사

그리고  신라시대부터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용정샘이 바로 아래 망경사 암자에 있다. 자료 : 초보산꾼

 

 

 

여기 태백산 정상석에서 단군성전등 계곡을 따라 당집이 많아 붙여진 당골로 내려갈 수 있다. 바로 단종비각을 만날 수 있다

 

나이 12세에 불과했던 단종을 왕에 오르게 했던 몸이 허약했던 문종의 죽음은 되돌릴 수없는 역사의 서막 이였다

단종의 즉위 1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이 일으킨 정란의 소용돌이 속에 속절없는 세월은 결코 단종의 편이 아니였다

집현전 학사들의 단종복위운동과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획은 단종을 유배와 사약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여기 화방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영월 청령포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1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자료 : 초보산꾼    단종비각( 端宗碑閣 )  애틋한 사연을 품은 비각이 대간길에서 가까우니 꼭 한번 들려 볼 것을 제안한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청룡사 우화루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고 청계천 영도교에서 정순왕후와 생이별을 하고

남한강 뱃길을 따라 유배 길에 올라 양주, 광주, 양평, 여주, 원주를 거쳐 영월에 닷새 만에 도착했다고 한다

당시 금성대군은 영주땅 순흥에 유배되어 있었는데 단종의 복위를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가 백두대간 고치령이다

고치령에 있는 산령각에는 단종을 태백의 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의 신으로 모시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방재에서 얘기했던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런데 청계천 영도교에서 생이별을 한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허울뿐인 국모라는 탈을 벗고 세상 속으로 들어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하죠? 그것도 18청춘에서 팔순까지...

 

초보산꾼 '정순왕후의 흔적을 찾아서'... 답사기 한 번 읽어 보시죠...  http://blog.daum.net/kmhcshh/2202

동망봉(東望峯) - 단종의 못다 이룬 꿈을 그리워하다          http://blog.daum.net/kmhcshh/2189

 

 

이제 태백산 정상석이 있는 천왕단을 지나면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兩白之間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구간이다

 

태백산을 지나 이제 소백산으로 가는 길... 이렇게 태백산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산 정상에는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천제단을 중심으로 단종대왕을 모신 단종비각 및 산신각 있고

한국명수 100선 중 으뜸인 용정 우물이 흘린 옥수를 받아 당골계곡에는 매년 개천절에 제사를 올리는 단군성전

화방재에서 시작된 유일사를 비롯 망경사, 백단사, 만덕사, 청원사등 수많은 불교유적이 현존하고 있고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황지연못, 오십천 발원지 백병산 등이 둘러싸고 있어 민족의 영산이 맞다..

 

 

앞에 보이는 부소봉에서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가게 된다

 

좀 더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가야할 마루금이 보인다. 양백지간 중 신선봉은 담 구간에 가야 한다

 

천제단 중 마지막 하단은 문수봉 가는 길에 있다

 

 

 

 

약간 우측으로 부소봉 정상이 보이는 삼거리에 있는 우회길 이정표... 정상은 문수봉 방향으로 해서 부소봉에 올라야 한다

 

여기서 식후경 후 조금씩 전망이 트이면서 태백산과 바로 아래 조금 전 소개한 망경사와 우측으로 함백산을 담아 본다.

용정과 함께 담아 본 망경사 - 자료 : 초보산꾼

 

함백산 우측으로 조금 더 옮기면 낙동정맥 분기봉인 천의봉(매봉)의 풍차가 열심히 돌고 있는데 사진으로는 아쉽다.

 

이제 여기서 문수봉과 헤어지게 된다. 부쇠봉 방향으로 우틀

 

부쇠봉에서 문수봉으로 갈 수 있는 헬기장

 

헬기장에 올라서니... 문수봉과 두리봉이 살짝 보이고... 우측으로 낙동정맥의 산줄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삼각점이 있는 부쇠봉, 부소봉 등으로 혼재되어 불리고 있는데 정상석은 부쇠봉으로 되어 있다

부쇠봉(扶蘇峰)        태백과 봉화군 경계 시작  만항재에서 시작된 태백의 속살을 벗어나게 된다

단군을 모시고 계시는 천제단이 있어 여기를 단군의 아들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 듯...초보산꾼 생각... 

부소봉(扶蘇峰, 1546m)은 단군의 둘째아들 부소왕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정상석은 부쇠봉으로 되어 있다

고조선의 초대 단군은 부루(扶婁), 부우, 부소(扶蘇), 부여(扶餘) 등 네 아들을 두었는데 부루는 중국으로 파견되어 단군 2세가 되고

부소는 불을 처음 발견했으며 부여는 부여국을 세웠다고 기록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산에 불지필 때 쓰는 부싯돌로 쓰는 석영이 많은데서 유래되었다는 또 다른 유래를 보면 불을 처음 발견한 부소가 맞는 듯...

 

 

계속 눈요기를 줄 깃대배기봉에서 분기된 청옥산(봉화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라인이 낙동정맥

 

조금 더 우측으로,,, 깃대배기봉과 좌측으로 두리봉

 

안내판 지도가 눈에 가려 볼 수가 없으니...문수봉 방향... 우측 끝에 달바위봉 그리고 가운데가 연화봉인 듯...

 

 

현불사 갈림길을 지나고... 백천계곡으로 유일한 탈출로 인 듯... 그렇지만 탈출을 자제하는게 좋다는 말이 있다

수온이 낮아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알려진 열목어가 사는 세계 최남단 지역으로 열목어의 남방한계선으로 알려져 있다

 

아까 부쇠봉 직전 우회길인 듯...눈이 꽤 많이 쌓여있다. 이정목이 모가지만 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앞에 보이는 두개의 봉은 다행이 모두 우회한다. 살짝 보이는 깃대배기봉을 보면서 진행...

 

만만치 않은 대간길... 진행은 더디어만 가고... 雪丘

 

그래도 봄은 오는가... 내일 4일이 입춘인데... 봄이 빨리 오기를 눈의 눈물 고드름은 얘기하고 있다

 

장승배기처럼 깃대가 있던 자리라는 뜻인 듯..

 

가는 겨울의 아쉬움... 금방 또 추억속의 기억들로 살아납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시죠...

 

첫번째 깃대배기봉... 여기가 더 높은 것 같은데 높이는 낮다고 표시 되어 있다

 

 

두번째 깃대배기봉으로 여기서 대간 마루금은 우측으로... 좌측으로 가면 두리봉에서 아까 보았던 청옥산으로 갈 수 있다.

이제 대간길은 봉화군 석포면에서 소천면로 넘어가고 백천계곡에서 구마계곡으로 바뀌게 된다

 

깃대배기봉   삼시봉 

두리봉, 靑玉山갈림길  만항재에서 잠시 만났던 영월과 다시 만나는 지점으로 봉화군과 경계  . 태백과 이별, 대간 구룡산까지...

원래는 안개가 연기처럼 보여서 백연봉(白煙峰)인데 일제시대 측량하느라 깃대를 꽂아서 깃대배기봉이라고 했단다.

 

 

네이버지도

 

두리봉 방향에 있는 안내판

 

깃대배기봉에서 우틀하면 조금 내려오면 이제 두리봉과 각화지맥 사이로 구마계곡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사이사이로 보이는 청옥산의 모습이 청옥을 닮았는데... 사진으로는 영???  의자가 있는 쉼터 안부

 

구마계곡

구마계곡(고선계곡)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구마계곡으로 더 잘 알려진 고선계곡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9필의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이 명당을 찾은 이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구마계곡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마계곡(고선계곡)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우측으로 신선봉은 보이는데,,,가도가도 끝이 없는 대간길이다.

 

옆에 있던 청옥산이 언제 뒤로 갔지?  고선 계곡도 만만치 않게 깊고 길다

 

1174봉을 우회하고 우측으로 우회길이 보이면서 전망이 열리지만 계속되는 대간길...

 

이정표도 지나고

 

이제 좌측으로 각화지맥 라인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마지막으로 구마계곡과 청옥산을 담아 본다

 

이제 탈출로 직전 각화지맥 분기봉인 1214봉

각화지맥 분기봉   봉화군 소천면과 춘양면 경계  

백두대간  태백산 남서쪽 7.3km지점인  신선봉(1295m)과 깃대배기봉(1032m)사이의  1214m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각화산(1202m),왕두산(1046m),화장산(862m), 월암산(608m)을  거쳐 경북 봉화군 명호면 명호나루 도천교에서 낙동강에 발을 담그는 

도상거리 36.2km 산줄기로 운곡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오늘 조금만 더 전망이 좋았다면 낙동정맥이 잘 보였을 것 같은데...

 

 

각화지맥 분기봉에 올라보니 시그널이 보이지 않아 앞 좌측에 보이는 1242봉까지 갈까 했는데 잡목이 심해 갈 수가 없다

 

이제 대간길은 낙동정맥 산행하면서 자세히 다뤘던 억지춘양... 춘양면 속으로...차돌배기 도착. 석문동으로 탈출 시작

 

능선 중간에 이정표를 지나 이제 계곡을 따라가야 하는 석문동 유래가 된 석문을 지난다

 

 

 

그런데 석문 맞아? 이정도 바위로 석문하기에는 좀 그렇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니야? 석문 위 바위

 

계곡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면 바로 임도가 나오면서 임도를 2.0km 정도 따라오다 하루를 정리한다

 

 

 

이제 담 구간부터 걷게 될 소백산과 태백산을 이어주는 양백지간은

명산 중 으뜸인 두 산의 정기를 받는 욕심쟁이 구간이다 보니 

“ 태백천장(하늘)과 소백지장(땅)을 품고 있는 땅으로 큰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대명사이니

'인재는 소백과 태백 사이에서 구하라(求人種於兩白)'“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에 오른 단종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했던 복원운동도

꽃다운 나이에 승하하신 후 넋이라도 모시고자 하는 민초들의 염원을 담은 흔적들...

여기 영월을 품은 백두대간 양백지간에 전해져 오고 있다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하는 연화봉과 부처의 완성 진신을 뜻하는 비로봉이 있는 소백산

소백산을 넘자 민족의 큰 산 태백으로 가는 여정 태백산과 소백산이 서로 몸을 섞는 양백지간...

양백지간의 시작점 옛 고개를 뜻하는 고치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조카와 삼촌사이에 넘을 수 없었던

금성대군과 단종의 밀사들이 오갔던 비운의 통로를 통해 뒤틀린 세상을 원망하며

또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던 열망으로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희망과 좌절까지 깃들어 있는 고개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고치령에 산령각을 지어 단종을 태백의 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의 신으로 모신다

고치령에서 태백으로 걷다보면 천년왕국을 이어온 신라에 반기를 들었던 궁예가 땀을 흘렀던 늦은목이 선달산

궁예가 훈련을 하며 흘렸을 땀을 받아 형성된 계곡이 공교롭게도 삿갓을 둘러쓰고 물 한 모금 축이던 김삿갓 계곡

시대는 다르지만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두 시대의 영웅들의 살아있는 역사에 더해

왕이 왔다간 산이란 뜻인지, 왕이 올 것이란 뜻인지... 전하는 이야기들이 엇갈리는 어래산御來山까지 품고 있다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지난 산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초보산꾼은 못다 이룬 궁예의 미래의 미륵정토의 꿈을 실현시켜줄 御來를 꿈꾼 것으로 해석했다

선달산을 넘으면 이제 태백산의 산신을 모시는 박달령 산령각을 만나 태백산을 넘게 된다...

 

대간꾼이 아니면 찾는 이 없는 양백지간...

두 번에 걸쳐 걷게 될 양백지간이 소백산과 태백산을 마치고 나니 더 그립게 다가오는 이유 일 것이다...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