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25(거인35회차) - 함백산 구간 : 두문동재(싸리재) ~ 화방재 (남진)

 

 

언제 :  무술년(18년) 하늘연달 1월 스무하루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두문동재 ~ 은대봉 ~ 제2쉼터 ~ 함백산 ~ 만항재 ~ 화방재

                     (대간 약12.0km  접속 포함)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4173 에 있습니다

 

 

무술년 새해맞이를 즐길 사이도 없이 차가운 한파 속에 묻혀가고 달력 속에 존재하는 시간만 새해임을 알릴뿐...

이름값도 못하는 대한을 비웃 듯 해마다 동장군의 위세를 자랑하던 소한도 알게 모르게 그렇게 넘겼는데

못다 푼 거세진 소한의 후폭풍이 일찍 귀가 시키는 착한? 계절도 잠깐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삼한사온 속으로..

춤추는 날씨 탓에 인간들만 콜록콜록.. 오랜만에 만나는 거인산악회 17기 대간팀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진다

 

 

 

백두대간 두문동재에서 화방재까지(남진)  (참조용)  -  거인산악회 제공.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해안를 따라 튼튼한 척추를 세운다음 허리를 다시 받쳐주기 위해 큰 용트림을 하는 곳

매봉산에서 척추의 역할은 큰아들 낙동정맥에 맡기고 서해로 방향을 틀어 태백산을 지나 속리산까지 이어놓는다

백두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영산 태백산에 들기 전에 잠시 백두산의 영기를 머물게 하기 위해 세운 神山 함백산

정선.태백의 경계를 따라 내려오다 만항재에서 잠시 영월과 삼각점을 만든 뒤 태백의 속살로 들어가는 구간이다

 

 

 

잠시 떠났던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7기팀과 재회..정선 고한 두문동을 지나 두문동 고개 오름길... 차량은 여기까지...

 

도로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태백 과 정선 경계인 두문동재에 도착... 너머에 태백시에서는 화전동 싸리재 마을이 있어 싸리재라고 부르기도  

 

 

오늘 특별히 참여해 주신 파란문님의 특별한 해설이 가미된 뜻 깊은 대간길... 두문동재가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고려가 망하자 만수산(萬壽山)에 은거한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사람인 성사재成思齊의 호가 “두문자”였다죠...


오늘의 목적지 은대봉 반대편 금대봉은 예약을 해야 하는 듯... 대덕산만 통제인줄 알고 있었는데...

 

은대봉, 함백산을 향하여 남진은 시작되고...

 

첫 갈림길... 대간 산행이 아니라면 우회해도 좋을 듯...

 

 

다음에 가야할 되돌아 본 금대봉... 서기 636년 신라 선덕여왕 5년 지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에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은탑으로부터 금대봉, 은대봉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금대봉 우측으로 싸리밭(杻田)·안충터(安忠基)등 마을이 있는 태백 화전동禾田洞을 담아 본다.

낙동강(506.17km)의 최상류 지역으로, 禾田은  벼밭(논)이니 그만큼 산중이지만 논이 많아 살기 좋았다는 얘기...

 

금대봉과 은대봉, 천의봉(매봉산)에는 과거에 황장목(黃腸木)이 많이 자라 경복궁 중수 때 벌목되었다고 한다. 가까워진 은대봉

 

조선 최대 국책 사업 중 하나였던 경복궁 중수 당시 너무도 많은 목재가 필요했고

그것도 탈이 많은 국책 사업이다 보니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과 물자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벌목된 나무들을 한양까지 운반하려면 지금과 달리 육로가 발달하지 못해 

물길을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그래서 만만치 않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새롭게 발견된 낙동강 발원샘인 너덜샘이 있는 은대봉(상함백) 도착.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황지(黃池)를 발원지라 하고 너덜샘을 발원샘이라 한다고 한다.

 

목재들은 주로 동강을 출발해 한강 마포나루까지 강 물길을 따라 한양으로 운반했지만

그 당시 여기 금대봉을 중심으로 은대봉, 천의봉에 있던 황장목(黃腸木)까지 사용했다는 자료를 보면

경복궁 중수가 얼마나 큰 사업이었는지 알 수 있다. 덕분에 소나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해파랑길에서 언급했듯 국가에서 관리하면서 소나무가 많이 보존된 측면도 있다

 

 

되돌아 본 은대봉...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이렇게 시작되는

'정선 아라리'로 불렸던 정선아리랑이 전국적으로 퍼지며 지금까지 불러지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경복궁 중수 당시 한강을 통한 수송에는 주로 뗏목을 이용해서 운반했는데 그만큼 위험한 일이였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유일한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던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뗏목을 이용 큰돈을 벌었다고 해서 '떼돈'의 어원을 만들어 냈다

이때 부르던 정선 아리랑은 산촌마을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기에

생명을 걸었던 떼꾼들의 고단한 삶속에 쉽게 파고들었을 것이고

팔도에서 온 부역꾼들이기에 가족과 고향생각에 무료함을 달래기에

이만한 노래가 있었을까?   전국구 노래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 가운데 중함백과 멀리 희미하게 함백산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함백산은 태백과 정선군의 경계에 있다

 

그런데 아세요??  지금이나 옛날이나 돈 좀 생겼다 하면 들르게 되는 곳

바로 주막집이었고 마포나루까지 여정에 잠깐 잠깐 들른 주막집에서 회포를 풀다 보면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갈 때는 빈손이었다는 사실...  떼돈은 지금도 때돈?

정선아리랑 자료 : http://blog.naver.com/dksd1885/140203115806

 

좀 더 자세한 정선 얘기는 두타.청옥 넘어 백복령 구간에서 다시 만납니다

 

 

지도상 실제 폐광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운탄길의 삼탄아트마인으로 하산 할 수 있는 적조암 갈림길이 있는 쉼터에서 식후경.

우리나라 무연탄 생산 중심지였던 함백산 자락에 위치했던 삼척탄좌가 현대에 맞게 새롭게 태어난 곳이 삼탄아트마인이다

 

샘물쉼터 이정표가 있는 전망대가 보이지만 오늘 전망은 포기한지 오래...

 

1505봉인 중함백, 제3쉼터라 하는 듯...

 

성스러운 산 함백산은 신비속에 숨겨져 있고...

 

주목군락이 시작되고...

 

수령이 200~500년으로 추정되는 살아서도 천년 죽어서도 천년..

이런 속설을 지닌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주목

하지만 모든 생명이 그렇듯 생로병사는 피해갈 수 없다

속은 서서히 비어가고 몸은 비틀어지고 갖가지 모습들이 세월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게 삶의 생채기에 절반 이상 썩어빠진 몸을 지탱하면서도 자태만은 더 아름답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자태 잃지 않고 보여주는 천년의 지혜를 가진 주목에 더 눈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이 지혜가 있기에 함백산의 눈보라를 견뎌내고

봄이 오면 다시 새 가지를 뻗어내는 생명의 위대함을 보여줄 것이다

 

 

 

함백산 직전 쉼터봉을 지나서도 주목의 생명력은 우리의 갈길을 계속 멈추게 한다

 

함백산은 이제 눈앞에 펼쳐지고..

 

묘고산 妙高山 이라고 불렀다는 방송 송신탑이 있는 함백산 정상. 불교의 우주관이 살아 있는 산임을 느끼게 해 준다

 

전망이 이래도 되는 거야?  함백산은  <산경표>에 대박산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가야할 마루금을 담아 보지만... 만항재만 보이고...

 

 

대한선수촌 태백분촌?

 

함백산에서 내림길.. 태백선수촌 이정표가 있는 도로를 만나 건너고...

 

되돌아 본 함백산

 

도로와 만항재 사이에 있는 거인산악회에서 제공한 지도에 나와 있는 창옥봉 들머리

 

창옥봉의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겠지만 함백산 기원단이 있는 이곳이 제일 높은 듯 하다

 

 

 

태백산에 비해 함백산은 민초들의 삶의 현장이였던 탄광촌의 무사안일을 빌었던 소박한 꿈이 있는 현장인 듯...

 

파란문님이 살짝 얘기하신 금북정맥... 바다에서 삶을 살아야 했던 서해안을 품고 있어 발전한 내포문화

인간의 힘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백제의 미소와 태안삼존불등의 부처의 힘을 빌어 안녕과 평안을 빌었다

여기 산에서 주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탄광의 특성상 민족의 성지 태백산에서는 할 수 없었지만

여기 함벡산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생명을 담보로 한 작업에 맘의 위안을 얻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이제 만항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산상의 화원이 있는 도로를 만나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아리랑의 고장  정선과 헤어짐 그리고 영월과 태백 꼭지점  태백 속살로 들어가는 만항재 도착...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341m의 높은 고개이다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지고...잠시 우측으로 해서 도로를 따라가면 파란문님께서 소개하고 적조암 갈림길에서 소개한 운탄길이다.

한 때 국내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석탄을 쉼없이 날랐던 길 운탄길... 세상은 변하고 있고 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만항재에서 우측으로 잠시 들어오면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운탄길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백두두위지맥의 분기점이다

 

백두두위지맥  (斗圍枝脈)

백두대간 함백산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백운산(1426m), 두위봉(1470m), 질운산(1172m), 예미산(989m), 망경대산(1088m),

응봉산(1013m), 계족산(890m)을 지나 영월 덕포리 동강에서 맥을 다하는 약 48km의 산줄기를 두위지맥(斗圍枝脈)이라 한다.

 

 

만항재에서 다시 대간길 수리봉 방향으로 들어서면..

 

시설물이 나오면 좌측으로 해서 시설물 뒤로 계속 이어가게 된다

 

1238봉에서 본 수리봉(1214봉) - 뒤에 있는 봉... 일부 지도는 여기 1238봉을 창옥봉이라 하는 듯도 하다

 

수리봉 직전봉에서 되돌아 본 1238봉

 

수리봉 직전 안내판... 헬기장이 어디에 있었지?

 

수리봉

 

오늘의 마지막 봉인 수리봉에서 내려오다 무덤에서 본 화방재 우측으로 장산이 수려하다. 미세먼지때문에 아쉽지만...

 

고갯마루 부근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 하여 붙여진  화방재花房嶺가 보이기 시작하고...

 

조선 6대 임금이신 단종께서 영월 땅에 유배당해 있다가 사약을 받고 승하하신 후의 지명이 아직도 남아 있는 화방재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대왕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땅(御坪)이다"라고해서 어평御坪재...

승하하시고 꿈속이나마 잠시 단종이 쉬셨던 자리를 정거리(程巨里)라 하여 지금까지 지명이 남아 있다

 

 

태초에 하늘나라 하느님의 아들이신 환웅천왕(桓雄天皇)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 를 열어 우리 민족의 터전을 잡았다

이렇게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 고조선도 인간세상이라...

흥망성쇠는 피할 수 없었기에 백두산을 뒤로 하고 남진하면서

백두산(태백산)과 비슷한 형태의 산을 찾아 든 곳이 바로 지금의 태백산이다

그래서 지금도 태백산 천제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자료 : 태백산 - 태백시 홈피)

 

태백산에 들기전에 하늘이 내리신 백두산의 영기를 가장 먼저 받는 산이 함백산이고

많은 밝은 산 가운데 가장 큰 밝은 산을 뜻하는 太白山에서 백두산의 기상을 품어

작은 백두산을 의미하는 소백산에 넘겨주기 전에

큰 것 작은 것 서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양백구간을 주어

한배달 민족의 기상을 그데로 이어갈 수 있도록

산이름 하나에도 허투로 하지 않으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는 생각...

그래서 소백산에는 산이름을 붙이지 않고 봉이름만 있는 이유이다

이미 소백산의 기상은 경험했고

다음 태백산 구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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