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3차 22구간 :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   

 

 

언제 :  을미년(15년) 잎새달 4월  열흘 쇠날 밤  ~  열하루 흙날 (무박2일) 

 

누구랑 : 대간5기 산우님들         

 

어딜 :  고치령 ~ 마구령 ~ 갈곳산 ~ 선달산 ~ 박달령 ~ 옥돌봉 ~ 도래기재

                     (대간26.3km)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후미기준)

 

 

겨우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워 세상 만물이 움을 트고 수많은 생명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 4월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엘리어트라는 영국시인이 쓴 황무지(荒蕪地)라는 싯구절에서

죽은 땅 황무지에서 아름다운 라일락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다

황무지에 싹을 틔우는 새생명의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잔인할 수 밖에 없는 심정 

우리에게도 4월은 제주4.3항쟁, 4.19등의 역사적 사실들에 죽을 死의 의미까지 더해 나름대로 잔인한 달이지만

물오를 대로 올라 나무마다 풍성한 잎을 돋우는 달 4월에 만나는 대간 길 양백구간은 어떤 모습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백두대간 22구간 선달산 구간 등로

 

이번구간은 태백산과 소백산을 이어주는 양백지간 구간으로 대간 산꾼이 아니면 찾지 않는 별 특징 없는 구간이지만

김삿갓과 목조건물 기술의 정수라는 배흘림 기둥이 있어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최고 건물로 이름난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

저번 구간 고치령에서 단종의 슬픈 이야기도 만나 봤고  또 이제 우린 궁예의 꿈과 좌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속리산 구간에서 견훤의 못다이룬 꿈을 만났다면 이제 우린 지금부터 궁예의 못다 이룬 꿈을 만나려 떠납니다

 

 

 

 

오늘은 좀 저번 구간보단 늦게 도착한 고치령

 

고치령 이정석

고치령을 사이에 두고 소백산 편에는 단산대장군과 포도대장군이 소백지장(小白地將)을 호위하고 서 있고,

건너편 태백산 줄기가 시작되는 곳에는 태백천장(太白天將)이 양백대장과 항락(恒樂)과 함께 산령각을 지키고 있다.

소백산과 태백산을 가르는 기준인 고치령에서 소백은 땅이 되고 태백은 하늘이 된다.

산령각 안에서는 호랑이를 탄 산신과 말을 탄 단종, 그리고 말고삐를 쥔 금성대군이 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전구간 초보산꾼 산행기 참조 : http://blog.daum.net/kmhcshh/2398

 

 

산령각(산신각)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에 오른 단종의 서글픈 마음과  그의 복위를 꿈꾸던 금성대군의 마음이 지금까지 살아있고 

뒤틀린 세상을 원망하며, 또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던 이들의 열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곳 고치령에서의 출발점

길은 그대로 인데 세상사 세웅지마와 같다는 생각으로 걷다 보면 현재의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단종을 태백의 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의 신으로 모신 이곳 산령각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산 중의 명산으로 꼽히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서로 손을 잡고 몸을 섞는 곳이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입산금지 뒤로 대간길은 시작되고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는 헬기장을 지나고

 

오름길 나무터널 사이로 달의 마중을 받으며

 

지도상 자개지맥 갈림봉인 950봉 직전 우회한다 - 혼자 갈려다가 넘 무서워서...

 

자개지맥 지도는 옥돌봉에서 문수지맥 갈림봉에서 다시 만납니다

 

미내치 갈림봉 안내판이 나온다

 

 

 

내가 보기에는 조금 더 진행하면 미내치 갈림길이 바로 나온다

미내치(美乃峙)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  830봉 직전

경사가 원만하여 옛 주민들이 고개의 정상을 향하여 걷다가 보면 벌써 고개가 끝났다는데서 유래한다.

 

 

830봉에서 잠시 휴식 - 마구령 4.0km 남은 지점. 해발 829m 안내판

 

작은 핼기장을 지나(04:30) 지도상 1097봉 헬기장

 

마구령 넘어 갈곳산보다 높은 지도상 1057봉이 어느덧 밝아 온 아침을 벌써 즐기고 있었다

 

옛기록에 馬兒峴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마구령(馬駒嶺)   

 

 

 

마구령에서의 단체사진 - 잡스님 작품

 

첫봉을 오르니 1057봉이 한층 가까워지고

 

 

다시 헬기장이 있는 갈곳산 보다 더 높은데도 자식인 능선이 없어 봉으로 머물고 있는 지도상 1057봉

 

부석사를 품고 있는 갈곳산에서 갈라지는 봉황산 줄기를 담아본다

 

옥동천의 시작을 알리는 북쪽의 남대리와 부석사가 있는 남쪽의 북지리 일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봉황산 갈곳산 선달산의 산세의 아름다움은 궁예의 야망과 부석사의 신비를 풀어 준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했다

이 사찰은 그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부석사 방향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에는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등장한다.

그녀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이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때 선묘가 바위로 변해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앉았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가운데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무량수전 (편액은 공민왕의 글씨이다.)    자료 :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94926

 

 

봉황산 갈림봉인 갈곶산에서 완전히 좌틀해야 한다

봉황산(부석사품은산) 갈림길

갈곶산에서 대간 마루금 진행과는 반대방향으로 봉황산이 있으며 이 봉황산 아래 부석사가 자리잡고 있다.

부석사에서 자개지맥이 오른쪽 병풍(우백호, 한양으로 치면 인왕산 줄기)이라면

옥돌봉에서 시작되는 문수지맥이 왼쪽 병풍(좌청룡, 한양으로 치면 대학로의 낙산 줄기)이다 (950봉 지도 참조)

 

 

이정석은 없고 이정목에 매직으로 써 놓았다 - 이제 영주시 남대리의 속살을 벗어나 봉화군 물야면과 경계를 이룬다

 

 

실제 산경표에도 갈곶산이라는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근대에 와서 누군가가 붙인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

어찌됐든 그러고 보니 황장산 이후  山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봉우리는 처음 만나는 것 같다.

하나같이 소백산의 줄기를 이루는 촛대봉, 묘적봉, 도솔봉 심지어 비로봉까지 모두 봉이다.

산줄기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어있으므로 태백산의 위엄이 그만큼 크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이번 구간의 큰 산  선달산도 담아 본다

 

그만큼 나는 다음 구간에 만나게 될 태백천장(太白天將)인 태백산에 대한 선조들의 예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큰별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춰 예를 갖추 듯 소백지장(小白地將)이니 소백의 태백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이 초보산꾼이 자주 말하지만 아무리 내가 잘났어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했어도 자식이 없으면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산도 아무리 높고 하늘을 찌를 듯 해도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는 것이다.

太(한. 하늘) 과 小(땅)의 차이이다.

 

 

오늘은 날씨는 맑은데 가스가 끼어 조망이 없는 중에도 이제 선달산부터 우리와 함께 할 오전약수 방향을 담아 본다

 

충효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렇게 산이름 하나에도 선조들의 예지가 살아 있음에 그저 놀라울 뿐이고

다음 구간에 만나게 될 태백의 위엄에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이 내려준 백두산을 곧 바로 이어받은 태백산이 만물에 배푼 비로와 연화의 참뜻을 찾아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 초보산꾼의 한계로 백두로 가는 여정을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아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백산의 마지막 경계인 만항재(晩項)의 우리나라 말인 늦은목이재

늦은 목이

왼쪽은 옥동천이 발원되는 남대리 계곡이며, 오른쪽은 오전약수(조선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한 약수)로 유명한 오전리로 가는 방향이다.

 

 

늦은목이에서 좌측 남대리로 내려가는 소백산 자락길 안내판

 

부석사의 반대편에 있는 남대리는 궁예의 훈련지로 알려져 있어 궁예의 야망이 시작된 곳이다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무수한 왕 가운데 궁예는 가장 민중에 가까이 있었던 왕이다.

영월 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천강이 열리고, 더 올라가면 법흥사가 있다. 거기서 궁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부상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방물길

 

신라 경덕왕의 아들로 태어난 궁예는 신라말 혼탁한 정세에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유모의 기지로 살아나 이곳 영월에서 자란다.

성장해 지역의 토호 양길의 수하에 몸을 의탁해 세력을 키운 궁예는

제 이름의 군사를 이끌고 후삼국의 한 축으로서 북을 울리게 되는데 그 첫 공격지가 부석사였다고 한다.

영월에서 부석사로 가려면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인 대간길인 양백지간을 지나야 한다.

 

 

남대리를 품고 있는 갈곳산 반대편 어래산 곰봉에서 김삿갓계곡으로 이어지는 외씨버선길

 

천년왕국을 이어온 신라에 반기를 들었던 궁예는 세력을 얻은 뒤 부석사의 한 전각에 걸린 신라 왕의 초상에 칼을 들이댔다.

그 초상의 주인은 궁예의 아버지인 헌안왕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초상에 칼을 들이댔다는 것은 패륜을 상징하고,

신라 왕의 초상에 칼을 들이댔다는 말은 최초로 민중에 기댄 권력을 세워 미륵정토를 구현하려던 개혁군주로서 궁예를 상징한다

마구령에서 갈곳산 선달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에서 궁예를 만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오늘따라 매우 늦은 아침도 해결하고 출발준비

 

대간 선달산에서 김삿갓계곡이 있는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면 만나게 되는 어래산(御來山)

왕이 왔다간 산이란 뜻인지, 왕이 올 것이란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지난 산이라 어래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어쩌면 미륵정토를 앞세운 궁예가 남대리에서 부석사로 넘었던 곳이란 뜻이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선달산 직전 어래산 (御來山) 선달산 안내판이 나온다

 

단종의 혼령이 걸었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태백산과 소백산의 경계인 늦은목이를 지나 선달산 직전

그 경계에서 영월 땅으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봉우리가 어래산(御來山)이다.

왕이 왔다간 산이란 뜻인지, 왕이 올 것이란 뜻인지 전하는 이야기들은 엇갈린다.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지난 산이라 어래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못다이룬 궁예의 미래의 미륵정토의 꿈을 실현시켜줄 御來를 꿈꾼 것은 아니였을까?

 

 

김삿갓문학관 갈림길 - 여기부터 이제 영주시와 이별하고 봉화와 영월 김삿갓면과 경계를 이루며 이어진다

 

 

경북과 충북,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며 남대천을 건너 바라보고 있는 어래산

충청도의 의풍과 강원도의 영월, 경상도의 영주가 만나면서 정감록에서 이르는 십승지 가운데 한 곳으로

격암 남사고가 양백지간에 숨어 있다고 이른 승지로 꼽히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였다니

궁예의 전설이 전설로만 끝나지 않고 지금도 이렇게 세월이 흐를 수록 아쉬움이 더해만 가는 것은 아닐련지

 

 

드디어 오늘의 최고봉 선달산

 

신선이 놀았다고하여 “仙達山”, 먼저 올라야 한다고 하여 “先達山”,남쪽 기슭에  신선굴(神仙窟)이 있어 선달산이라 했다고 한다.

이 산은  소백산과 태백산의 중간 지점에 있으며 날씨가 좋은 날은 태백산과 소백산이 조망되며

양쪽을 향해 예불을 드리듯 겸손한 山이라 하여  선달산의 옛 지명은 예불봉(禮佛岺)이었다.

지리산에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온 백두대간은 소백산에서 비로봉을 지나 고치령에서 자세를 낮추면서 도래지기까지 이어 가는데 

중간에 선달산을 솟구치며 아치형 오작교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제대로 역사를 알고 걷고 있는 것 같아 반가운 '십승지' 의풍 둘레산길 걷기

※ 참고로 "先達"은

 1)국어사전에서

문무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조선중기 이후에는 주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만을 가리켰다.

 2)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후진(後進)의 반대인 선진(先進)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예부시(禮部試)에 합격한 선배를 가리켰다.

 

 

단체사진 - 잡스님 작품

조선시대에 와서 문과출신자는 말직(末職)이라도 대개 벼슬을 하고 벼슬을 받기 전에 죽으면 증직(贈職)했으나,

무과출신자는 평생 벼슬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선달은 무과출신자에게만 쓰는 말로 잘못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과를 합격한 다음 친척이나 친지들에게서 오는 축하 서신에 '선달댁 입납'(先達宅入納)이라고 씌어진 것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과 하예(下隷)들이 벼슬을 받기 전의 문과출신자에게 '선달님' 또는 '선단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문과출신자에게도 썼음을 알 수 있다

 

 

1246봉을 지나 바라본 오전약수가 있는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왕바위골

 

이제 별 특징 없는 대간길이 이어지다 보니 우뚝솟은 봉우리 하나가 그래도 좀 맘에 든다

 

시루를 엎어 놓은 듯한 봉우리에 올라보니 거목 하나가 내땅임을 확실히 자리표시를 하고 있다

 

박달령

박달령   태백산의 산신을 모시는 박달령 산령각

고개마루에는 옛날부터 산령각이 있었는데  태백산을 등지고 있어 매년 초파일이면 산 아래 마을 오전리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또한 전설에 따르면 단종은 죽음을 맞이 하러 청령포 가기위해  지나가던  고개 마루라고 한다

이제 다시 대간길은 영월 이별하고 봉화속살로 들어가게 된다

 

 

산령각 내부에 박달령 위폐를 모시고 있다

박달의 뜻      http://www.koreasanha.net/bbs/view.php?id=sanha5&no=4420참조

 

배달(倍達)→백산(白山)의 다른 표기이다.

백산(白山)→백달(白達:밝달 .박달)→배달(倍達:ㄱ탈락)

배달은 백달의 음운변형이고,  박달은 백달의 모음변형이며,   백달은 백산의 다른 표기이다.

박달나무는배달민족의 나무라는 뜻이며 우리는 백산(=배달)민족.곧 백두산 민족이다 (아래 재해석 참조)

 

 

산령각 앞의 박달령 안내문의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고개'에 대한 다른해석 http://www.koreasanha.net/bbs/view.php?id=sanha5&no=4420

 

소백산에서 태백산까지 역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소백산은 불교에 관한 지명이 대부분이나

고치령부터는배달민족(삼일신고.격암유록.정감록 등) 고유의 지명이 사용되고 있고 단군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단종의 비극과 김삿갓의 해학 그리고 부석사의 정서가 어울어진 양백지간에 속하는고치령에서 도래기까지 마루금은  오전약수 한모금에 목축임하고  

산신에 대한 애니미즘과 토테미즘, 불교의 정서가 가득 배어있는 사찰에 대한 고찰과 

배달민족(백의민족)의 뿌리인 단군의 성지(천제단등)가 있는 태백산을 소백산과 이어주는 샤머니즘의 길목이기에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자 하였다

 

 

몇그루의 멋진 소나무의 기품을 담아보고

 

옥돌봉 직전 우측 주실령으로 내려가는 문수지맥 분기봉 - 950봉 지도 참조

 

문수산 아래 서벽리 마을과 옥돌봉의 또다른 이름인 백병산의 어원이 된 바위가 옥돌봉 바로 아래에 있다

 

당겨보면

 

최근 지도에 옥석산으로 표기되고 있는 옥돌봉

옥돌봉

옥석산 이라 불리기도 하는 “옥돌봉“은 桓因이 “옥이 안 난 곳이 없고 선경이 아닌 곳이 없다”고 하여 “옥돌봉“이라 하고

대동여지도는 백병산으로 적고 있다. 정상 아래의 하얀 바위 탓에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 바위는 햇빛을 받으면 예천에서도 보인다 하고  “예천까지 빛이 난다“ 하여 예천바위로 불리기도 한다 

산 아래 마을은 그 빛이 비친다 해서 '서벽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헬기장 방향에도 또다른 안내판이 있다

 

 

옥돌봉에서 도래기재로 내려서는 길은 봄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다. 철쭉 군락 속에서는 유래를 찾기 힘든 550년 된 철쭉나무가 자란다.

백두대간 등산로에서 살짝 비껴난 비탈을 지키는 철쭉은 나무 둘레가 1m가 넘는다. 수령과 크기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경우라 한다.

 

 

 

 

 

철쭉터널

 

오늘의 날머리 도래기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강원 영월 상동에서 춘양장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는 도래기재 유래 - 여기는 새로 생긴 통로

 

새로 뚫린 터널을 통과하여 100m쯤 내려가면 금정수도라는 지금은 통행금지 된 터널이 있다는데... 후미로 내려오니 차타기 바쁘고

도래기재를 넘어서 영월 방향으로 우구치리가 있다. 금정으로 불리는 그곳은 금광이 열리면서 인구가 수천 명에 이르고 극장이 설치될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당시 캐낸 금이나 은 등의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도래기재 아래에는 1925년 터널이 뚫렸다.

통행이 금지된 지 오래지만 터널은 ‘금정수도’라는 이름표를 단 채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우구치리에서 금정수도까지 광물을 운반하는 삭도를 ‘도래기’라고 부른 데서 고개 이름이 연유했다는 것이 금정광산의 내력을 아는 이들의 말이다.

송아지만 한 금이 묻혀 있다는 금광은 폐광된 지 오래고 금정수도 역시 통행이 금지된 지 오래다

 

 

'금정수도'를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도착한 뒤풀이 장소

 

바로 앞에 1956년에 개통했다는 영월역이 보인다

 

이렇게 대간 선달산  구간을 마무리 한다

 

고치령에서 어둠속에 비춰진 양백대장(兩白大將) 장승들의 의미 모를 미소를 바라보며 시작했던 양백구간 대간길

하늘(태백천장)과 땅(소백지장)을 품고 있는 땅으로 큰난리를 피할수 있는 십승지의 대명사이니

'인재는 소백과 태백 사이에서 구하라(求人種於兩白)'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얼마나 인재가 많이 나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드물정도로 이름난 봉우리를 간직하지 못한 고치령에서 도래기재까지 대간길

하지만 알고보면 이렇게 이백을 연결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구간으로 민족의 애환과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구간이다

비록 험한 고치령으로 향하는 산길이 이제는 차로 올라갈 정도로 세상이 변해 어둠속에 차로 올랐지만

지금도 쉽게 끝나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은 세월이 흘러 다른 시대에 살고 있어도 맘은 똑 같다는 생각

같은 길을 걸어도 알고 가느냐 모르고 가느냐에 따라 느낌도 이렇게 전혀 다른세상이 되고 만다

뒤틀린 세상을 원망하며, 또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던 이들의 열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치령을 출발하여

대간길 북쪽을 바라보며 못다이룬 궁예의 한을 느끼며 걷는 중에도 궁예가 훈련을 하며 흘렸을 땀을 받아

형성된 계곡이 공교롭게도 김삿갓계곡이니 삿갓을 둘러쓰고 물한모금 축이면서 시대는 다르지만 한을 예기 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소백에서 태백을 잇는 양백지간 산길 60여 리. 유토피아를 갈망하던 옛사람들의 희망의 땅인 승지를 품은 산자락에서

미륵정토를 이루고자 칼을 든 궁예의 이야기와 김삿갓의 전설들은 잊혀져가고 있고

초보산꾼이 올린 가난한 자를 위한 아기장수의 슬픔이 담긴 ‘든돌’은 현재도 진행형으로 대간길에 바람이 전해주었지만

대간길에서 만난 궁예와 단종 그리고 김삿갓의 얘기들이 모두 가슴속에 간직하며 뭍어야만 하는 일들이기에

마침 날씨도 좋은데도 어둠속에 그저 한줌의 역사로 남기려는 듯 끝까지 보여 주지 않았다

 

별특징없는 선달산 구간

날씨까지 조망을 허락치 않았던 대간길 함께 해 주신 산우님들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뒤풀이만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초보산꾼의 백두대간 산행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다행이 잡스님이 새롭게 산행기를 시작하셨으니 맘은 한결 가볍게 끝낼수가 있겠네요

이제 저는 이왕에 시작한 정기산행에 집중하고

제가 가고자 하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야만 하는 길을 갈려먼

100대 명산도 함께 해야하기에

정기산행과 100대명산에 집중하기 위해 대간산행기를 마치는 것임을

그간 대간산행기를 사랑해주신 산우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정기산행과 100대 명산 산행기에서 새롭게 인사드리겠습니다

그간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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