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18-1(거인26회차) - 부봉구간(남진) : 하늘재 ~ 마패봉 ~ 고사리(접속) 

 

 

 

언제 :  정유년(17년) 타오름달 8월 열아흐레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하늘재 ~ 탄항산 ~ 주흘산 삼거리 ~ 마패봉 ~ 신선봉(접속) ~ 고사리

                     (대간 약12.5km  접속 포함)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885 에 있습니다

 

 

가을이 들어 온다는 입추를 지나고 어느새 가을바람이 불어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처서도 다가오고

그런 와중에도 중간에 끼어있던 마지막 말복이 힘을 다해 햇볕을 맘껏 품어주니 인간이야 더위에 고생하지만

자연의 생명들은 신록의 계절을 완성하기 위해 누구보다 더 반기고 마지막까지 더위를 즐겼으리라 생각된다

더위를 피해 휴가철로 잠시 미뤄두었던 대간길... 완성되어가는 신록과 대간길이 펼치는 그림속으로 들어간다

 

 

 

백두대간 하늘재에서 조령까지(남진)  (참조용)  -  거인산악회 제공. 마패봉에서 신선봉으로 하산

 

 

이제 백두대간길도 중간지점인 대미산 구간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는데 이번 구간은 조령을 향해 남진한다

출발지 하늘재는 문경의 관문중 제일 먼저 열었다는 상징성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바보 온달의 전설까지..

이번 구간은 충주와 문경의 경계로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과 부봉이 지척에서 펼쳐주는 호위를 받으며 걷다보면

박문수 암행어사의 전설이 녹아 있는 마패봉이 나오고.... 마패봉부터는 괴산군과 문경시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계명지맥과 신선지맥을 분기시키고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헤어지기 아쉬운 문경새재 옆에서 보면서 마친다.

 

 

 

휴가철로 오랜만에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7기 팀과 만나는 날... 하늘재에 도착하고...

하늘재(계립령鷄立嶺)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 525m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삼국시대(156년) 때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하였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으며,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蒙塵)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이전에는 계립령(鷄立嶺),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 불렀으나 요즘에는 거의 모든 지도에 하늘재라 표기하고 있다. 문경 쪽에서 오르는 길은 고갯마루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포장을 해 놓았으나 미륵리 쪽은 비포장도로이다. 2001년에 문경시에서 세운 계립령유허비가 있다.

자료 : 네이버지식백과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19889&cid=40942&categoryId=33301

 

 

문경 방향으로 계립령 유허비와 앞으로 담 구간에 가야할 포암산이 조망된다

 

이 고개는 포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새재를 떳떳이 통과할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나 보부상들, 그리고 길을 더럽히는 말이나 소를 동반한 사람들이 넘는 눈물고개였다. 소설가 김주영은 『객주(客主)』에서 “문경읍에서 여주목 고개를 올라서서 대의산 자락을 오른쪽으로 끼고 여우목을 지나 중평리 계곡을 거쳐 포암산 중턱인 하늘재를 넘어 수안보에 이르는 험로가 바로 이곳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길위의인문학 우리땅걷기 신정일대표님 글 중에서...http://cafe.daum.net/sankang

 

 

계립령유허비

 

청아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들꽃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 백두대간 고갯마루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한 세월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이다" 라고 얘기하는  

 

이렇게 시작되는 원래 주인 이름 계립령유허비...백두대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쓰이게 된 하늘재...

 

 

하늘공원지킴터가 있는 곳에서 문경새재를 향해 오늘 대간 산행을 시작한다.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릅재, 겨릅산, 대원령(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  계립령 유허비 내용중에서...

 

기록상으로 신라시대에 최초로 열렸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로 마목현, 마골령, 계립령 등으로 불렀다

껍질을 벗긴 삼대가 겨릅이고 이 곳 사투리로는 지릅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한자로 음을 따면 계립(鷄立)

뜻을 따면 마골(麻骨) 마목(痲木)이 되며, 높은 고개라는 뜻의 한티, 하늘재의 한자인 천티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충북쪽은 월악산 국립공원 덕분에 오솔길이 잘 보전되어 있지만 반대 문경방향은 옛길의 모습이 사라졌다

 

**  주 - 대원령은 고려시대 계립령 북쪽에 대원사가 창건되면서 절의 이름에서 따 대원령이라 불렀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고개 부근에 한훤령산성이 있어 한훤령(한원령) 이라고도 불렸다

 

 

생각보다 좁은 하늘재에서 올라오면 빗돌로 만든 하늘재 정상석이 있다

 

" 계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연개소문과 온달장군의 실지失地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가

남하 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어가(御駕)가 남쪽으로 몽진(蒙塵)할 때도 이용했을 가능성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계립령유허비 내용중에서.....

 

이름만 들으면 하늘 아래 고개로 하늘에 닿을 듯 높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령은 물론 이유릿재 보다도 낮다

그럼에도 하늘재는 모든 작업을 인력에 의존했던 시대에 길을 열어야 했을 정도로 지리적 군사적으로 중요성이다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은 서로 북진을 위해서나 남진을 위해서나 넘어야 했던 하늘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고구려 온달 장군의 출사표가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이었던 마의태자가 망국의 아픔을 간직한 채 넘어갔던 고개

그리운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천년사직을 뒤로하고 하늘재를 넘으면서 신라의 하늘을 향해 이별을 고했을 심정

금강산을 향해 가면서도 자꾸 되돌아 봤을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애잔함을 담은 흔적을 하늘재 주변에 남겼다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에 마의태자는 미륵입상을 세워 신라의 부흥을 꿈꿨지만... 결국 금강산으로 떠나야 했고

함께 미륵리에 도착했던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건립하여 오랜 세월 기도하며 남은여생을 보냈다

마의태자와 미륵리  초보산꾼 산행기 월악산편   http://blog.daum.net/kmhcshh/3128

 

 

되돌아 본 하늘재 - 추풍령의 역할을 괘방령이 했듯 여기 하늘재 역시 새재의 역할을 대신 했던 길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민초들의 애환과 땀방울의 기록이 오늘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사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 바로 충주에 이르고, 이곳에서부터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아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및 백제가 함께 중요시 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 계립령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시켰다'  계립령 유허비 중에서...

 

**  못다한 하늘재 얘기는 담 구간에 다시 만납니다

 

 

단체사진 후 잠시 마루금을 우회하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마루금에 접속

 

조금 오르니 모래산? 

 

보통 정상 주위로는 암벽이 있는데 여기는 모래만 보인다. 그래서 모래산? 

 

두개의 삼각점 지점을 지나고..

 

통천문

 

그럼 위에서 내려보면 하늘천 따지... 通地門?

 

모자바위? 투구바위? 미륵바위?  아무거나...

 

종바위가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앞은 단면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렇게 반대편에서 되돌아 보면 종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혹자는 촛대암이라고...

 

당겨보면...

 

평천리 방향... 잠시 후 평천리 마을 사람들이 넘었던 평천재를 만나게 된다

 

계속 보게 될 주흘산은 아직 구름속에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탄항산 정상과 주흘산... 곰틀봉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탄항산은 월항삼봉이라고도 부른다

탄항산炭項山(856m =월항삼봉)    

역사적으로 하늘재가 군사적 지리적으로 중요하다 보니 탄함산과 함께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수비대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지킬 수, 모가지 항 字를 써서 수항산(戍項山) 으로 지키는 목이라는 뜻의 산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지명을 바꾸면서 일제에 의해 숱 '탄' 字를 써서 탄항산(炭項山)으로 바뀐 것이다.

戍와 炭의 차이..쪽바리놈들이 모를리 없을터...대간에 남겨진 일제 잔재들의 지명들이 아직까지 이렇게 많이 쓰이고 있다.

  

이제 평천리가 바로 앞에 보인다

月項삼봉(月項三峯·857m) 탄항산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 월항마을 사이에 있는 산.

아랫마을인 평천리 월항마을에서 나온 이름인 듯... 원래는 삼이 많이 나와 월항蔘峰이라고도 부른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발간된 각종 지도상에 월항 마을 부근의 세개의 봉우리라는 의미로

누군가가 ‘월항三峯’으로 잘못 표기한 이래 이 산이름으로 잘못 왜곡되어 많이 불리어지고 있다.

 

 

탄항산 정상석은 정상 바로 밑 공터에 있다

월항삼봉의 월항(月項)도 여지도서 문경조의 조령산성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음과 훈이 혼용된 달항(達項)으로 불리었음을 살 필 수 있다.

달항은 다시 달목→달매기로 전음되어 속칭되다가 현대에 이르러 다시 뜻옮김하여 월항이라고도 칭하게 된 것이다.
이의 본래 이름 달항은 아마도 ‘큰 목’이라는 의미에서 일컫던 큰 고개의 목이 되는 곳, 곧 평천재(월항재) 부근 959m 안부에서

한 줄기는 백두대간 줄기로서 서쪽으로 뻗어가고, 또 한 줄기는 남쪽으로 뻗어가 주흘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크고 중요한 산줄기의 목을 지칭하던 땅이름으로 추측된다.

자료 : http://eastpeak.tistory.com/6605

 

 

평천재 - 문경 평천리는 평평한 내[川]가 있고 토지가 기름져서 평천(平川)이라고 부른다

 

평천재부터 마루금을 이탈하여 우회하다 다시 접속하고

 

주흘산 갈림봉인 959봉으로 막바지 오름길... 주흘산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이 쉽지 않다.

 

주흘산 갈림봉인 959봉으로 대간길은 우측으로... 좌측으로 주흘산 방향 이정표는 없다.

 

대간상에 있는 부봉1봉과 부봉의 정상인 부봉2봉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약간 좌측으로 멀리 조령산도 조망된다. 아쉬운데로 조망이 되고 있다

 

부봉으로 가는 길...인공 다리가 놓여져 있어 하늘길도 열어주고... 기암괴석을 보면서 하늘 위를 걷는 기분... 아직까지는...

 

미륵바위

 

부봉삼거리... 부봉1봉은 백두대간상에 있는 마루금이다. 단지 부봉을 넘을 수 없어 삼거리로 해서 우회한다

 

부봉 오름길

 

부봉1봉을 오르다 되돌아 본 대간 주흘산 갈림봉과 주흘산 영봉

 

약간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걸어온 탄항산과 그 뒤로 담에 가야할 포암산 그리고 좌측으로 월악산 만수봉

 

2봉이 제일 높지만 부봉 제1봉(917m) 이 대간상에 있어 여기에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부봉은 가마솥을 엎어 놓은 모습의 산이다

 

그래서 부봉6봉 중 제일 높은 실제적인 정상인 부봉 2봉을 들러본다. 헬기장?도 지나고

 

부봉 2봉... 그러나 멀리서 본 모습과 달리 전망이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렵게 2봉부터 6봉까지 담아 본다

 

다시 되돌아오면...보봉 제1봉에서는 여기서 봐야 월악산 영봉이 보인다.... 중미팀 즐거웠습니다

 

월악산 영봉을 당겨보면...주흘산 영봉이나 주흘산 영봉이나....소름이 돋는다

 

다시 부봉 삼거리

 

마패봉을 담아보니... 가야할 대간길... 조령산 구간과 달리 오늘은 차분한 산행이 될 듯...바위가 거의 보이지 않으니...

 

이제 다시 주흘산성의 흔적이 나타나고... 동암문... 이제 산성의 흔적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물길도 보이고...하늘재에서 봤던 설명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흔적이 이렇게 남아 있다

 

잠시 전망이 열리면서 앞에 부봉 끝봉인 6봉과 조령산 신선암봉 암릉구간이 멀리 여기서 보면 삼형제처럼 조망된다

 

부봉제1봉에서 6봉까지

 

거짓말 처럼 차분한 대간길... 무명봉만이 차례대로 나타날뿐... 조령산 구간에서 봤던 부봉라인의 열기 맞아?

 

능선길에 삼각점

 

동화원 갈림길이 있는 주흘산성 북암문... 북암문 안내 이정표가 없다

 

동화원 갈림길 조금 전에 계양지맥이 분기된다고 하는데....대간에 충실하다 보니....

 

계명지맥 (鷄鳴枝脈)

백두대간 마역봉(마패봉) 동쪽 1.2km지점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지릅재.북바위산(779m).망대봉(730m).대미산(680.8m).발치.

남산(636.1m).마지막재.계명산(775m)을 지나 달천이 남한강에 합수하는 충주시 탄금대교 앞에서 부용지맥을 마주보며 끝나는

도상거리 36.4km되는 산줄기로 달천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이제 마패봉 마지막 힘을 내야하는 구간....

 

부봉라인과 좌측 959봉 그리고 부봉 1봉과 2봉 사이로 멀리 주흘산 영봉

 

마패봉 직전 갈림길

 

돌탑도 지나고

 

마패봉 정상에서 마루금은 직진하여 새재로 가야 하나 오늘은 신성봉으로 해서 고사리로 내려간다

치마바위봉, 마패봉(마역봉920m)  충주시, 문경시, 괴산군의 3市봉

충청남도 괴산군, 충주시 및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940m로, 마패봉이라고도 부른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넘을 때 조령 제3관문에서 쉬었을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놓았다고 하여 마패봉이라 부른다

새재와 같은 큰고개에는 말을 갈아타는 마역원이 있었는데 그래서 마역봉이라고도 불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정상 일대의 화강암절벽이 치마를 두른 듯하여 치마바위, 깃대봉 등으로도 불리운다

 

 

부봉라인과 그 뒤로 주흘산 영봉과 그 우로 주흘산 주봉. 사이로 우측으로 보이는 봉이 꼬깔봉(관봉) 인 듯...

 

조령산에서 새재로 올라올 때 본 부봉라인은 이랬었는데...부봉의 앞과 뒤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기대치만 놓았던 오늘....

 

문경새재공원이 있는 계곡과 우로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백화산까지 육안으로 희미하지만 조망이 약간 아쉽다

 

마패봉은 신선지맥 갈림봉이기도 하다. 신선지맥과 계명지맥. 신선봉까지 잠시 신선지맥길을 걷게 된다

 

 

이제 조령으로의 백두대간 마루금은 미답으로 남기고... 여기서 충주와 괴산의 경계를 따라서 신선봉으로 가는 길

 

새바위? 문어 대가리로 보일 것도 같고... 그런데 자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여 누군가 돌을 올려 놓은 듯하다.

 

오늘 미답지로 남은 대간길... 마패봉에서 새재로 내려가는 길. 하얗게 보이는 곳이 새재 시설이 있는 곳인 듯...

 

가야할 신선봉

 

휴양림매표소 갈림길도 지나고

 

아래 우리가 내려갈 조령산 자연휴양림과 그 뒤로 수옥폭포로 유명한 수옥저수지도 조망된다

 

암봉도 지나고

 

직벽암봉도

 

삼각점이 있는 신선봉... 정상석은 산불감시초소 아래에 있다

 

신선봉에서 본 북쪽 방향 계명지맥 라인과 월악산 영봉 - 박쥐산은 지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고 북바위산을 이어진다

 

신선봉 정상석에서...

 

한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 하산을 서두른다. 안부... 연어가 살고 있나? 직진하면 연어바위가 있는 연어봉, 우리는 휴양림으로 좌틀

 

그런데 끝까지 이런 너덜길이다...

 

드디어 휴양림 시설에 들어서고

 

바로 위가 휴양림 입구이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주차장에서 신선봉과 연어봉 라인을 담아 본다

 

오늘은 주차장 옆 여기서 뒤풀이... 수고했습니다.

 

 

 

이제 거인산악회 17기 대간 팀이 걷고 있는 백두대간길도 

민족분단으로 갈 수 없는 북쪽 지방을 제외하면

남쪽을 한정해서 보면 중간지점인 대미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비록 오늘 날머리로 문경새재로 해서 하산 할 수는 없었지만

앞 구간에서 날머리로 잡았던 고개가 영남 유생들의 과거 길로 유명했던 조령

새도 쉬어간다는 조령을 넘으면서 유생들은 많은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장원급제하여 새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으로 이곳을 넘어 금의환향할 것인가

낙방의 쓴 잔을 마시고 넘어오면 주막에 들려 쓴 술잔에 다음을 기약할 것인가

미래가 불안했던 유생이나 정치가로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조선시대 정치가 중 이이와 쌍벽을 이루었던 이황선생이 조령새재에 남긴 넋두리가

어쩜 영남유생들의 넘고자 했던 정치가의 삶을 함축해 주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조령이 바로

이 가장 큰 뜻의 길을 내준 영남대로의 고개인 것이다

 

영남대로도 우리가 접속하기 위해 하산했던 고사리 마을을 더 지나

소조령을 넘으면 영남대로의 중간 지점이다 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중간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면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 조선 경제와 문화의 중심 축이였던 영남대로의 중간지점의 의미까지...

그냥 지나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걷는 대간길이라면

아마 더 뜻 깊은 대간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세력이 각축전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에서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길의 쓰임새는 변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길목 이였던 문경의 고개들...

삼국시대 가장 먼저 길을 열었던 하늘재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과거길 이었던 문경새재

일제 시대 때 신작로를 만들었던 이화령(이유릿재)...

말만 들어도 가슴 뛰는 이름들의 고개들이였다

쓰임도 이렇게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되어 왔고 현재는 터널이 옛 영화를 앗아가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들만은 이렇게 남아 우리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러 주고 있다

이렇게 길마다 쌓여 있는 역사와의 인연의 끈이 질긴데

하물며 거기에 비하면 짧디짧은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어가고 있는 백두대간 길

결코 길지 않은 인연임을 생각해 보면

문경의 고개들을 지나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서로에게 힘을 주는 믿음에 답하며

곧 다가올 대미산 구간에서의 새로운 남은 반쪽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여정에 거인산악회 백두대간 17기 팀에게 박수로 응원 합니다

 

문경의 특별했던 고개들과 이별을 준비하며...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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