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17-2(거인25회차) - 조령산 구간 : 이화령 ~ 조령 ~ 고사리(접속) 

 

 

언제 :  정유년(17년) 견우직녀달 7월 열닷새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이화령 ~ 조령산 ~ 신선암봉 ~ 깃대봉 ~ 문경새재(조령3관문) ~ 고사리(접속)

                     (대간 11.3 km  접속 1.8km  합 13.1km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742 에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밀려온다는 서막을 알리는 소서小暑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폭염에 장마까지 밀고 들어오더니

이젠 장마가 살짝 길을 비켜주니 폭염이 아예 그 자리까지 독차지 하고선 연일 잠 못 드는 열대야를 만들어 주니

일 년 중 가장 무더위가 심하다는 삼복중의 하나인 초복初伏을 맞아 사람들을 삼계탕 집 앞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햇볕을 이기고자 애쓰는 인간세계와 달리 가장 강한 햇볕을 즐기고 있는 신록이 펼치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백두대간 이화령에서 고사리까지 (참조용)  -  거인산악회 제공

 

 

괴산과 문경의 경계로 1925년 일제에 의해 단절된 맥을 잊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는 이화령을 출발하여

우회에 우회를 하면서 우거진 숲속 새 소리 들릴 것 같은 조령산에 도착하면 젊은 여성 산악인의 추모비가 반긴다

기암과 괴봉으로 만든 구도에 노송이 풍경화를 완성하고 신선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선암봉에 서면 

치마바위를 입은 깃대봉이 기다리며 아직 볼 것이 많이 남았다고 암릉의 묘미가 있는 만큼 힘든 여정이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영남대로의 상징이자 조선시대 옛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문경새재(조령)에서 마치게 된다

 

 

 

저번 구간에 이어 계속 들머리로 삼은 이화령에 도착하고..

이유(우)릿재 (梨花嶺)  이화령 529m 이우릿재란 이화령의 옛 이름이로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고개이다.

이화령의 개통에 대한 사료는 없으나 아우리재는 조선시대까지는 조령에 가려 그리 중요한 길은 아니어서 통행이 적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지난 1925년(일제시대)에 신작로 형태로 개통하면서 이화령으로 개명하며 통행량이 급속히 늘었다고..

이화현(伊火峴)으로 불리던 옛날에는 조령이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을 하던 고갯길 연변의 배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당시 총독부에서 붙인 이름으로 한때는 조령과 구분하는 말로 ‘큰새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주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105

 

 

백두대간 이화령 구간 복원에 붙여.. 라는 소제목의 서사시 같은 시는 몇 번이고 읽어 보고 싶은 공감이 가는 글이다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해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신작로 이화령... 이제 등산객이 아니면 누가 여길 올라올까?

오늘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올라와 밟고 있는 이 이화령은 고갯길이 아니라 단지 고개 정상에 올라왔을 뿐이다.

넓혀진 옛길 꼬부랑길을 따라 차로 올라왔던 이 고갯길마저 이제는 저 아래 뚫린 터널에 의해 잊어지고 있다.

먹고 살기위해 차로 넘던 이 고개마저 이제는 낭만을 얘기하고픈 청춘들과 등산객들만 가득할 뿐... 

길의 역사는 이렇게 시대에 따라  바뀌어 오고 있는 것이다

 

 

비록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을 지언정 호랑이의 기상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이다... 대간팀이 화이팅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백두대간하면서 항상 느끼는 단상...

고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길을 따라 올라와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그래서 앞선 구간에서 저 아래 3번국도 터널 아래 이화령 옛길의 출발점인 요광원을 소개했던 이유이다

요광원에서 하룻밤 탁배기로 피로를 풀고 새벽같이 올라와 여기에 서면... 고개는 이 때 쓰이는 단어이다 

 

 

문경聞慶市 이름에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을 해본다. 귀를 열어야 하는 시대... 이제 불통의 시대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왔으니...

 

관원의 눈이 있어 자유롭지 못했던 역에 비해 비교적 간섭이 적었던 원 시설이 문경에만 11개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문경새재 길목에만 요관원을 비롯해 4개의 원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니...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있는 곳에 상점이 있듯...   문경새재의 유명세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렇듯 원이 조선 초.중기에 상업과 민간교통 발달에 중추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일부 산우님은 괴산쪽 이화령에서 들머리를 삼고...

 

나를 비롯한 일부는 생태통로를 지나 문경쪽 이화정을 통과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지도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현지에서 제공하는 안내도도 한 번 더 참조하고...

 

이번에도 마루금은 나오지 않고 우회길이 계속 된다. 습도도 많은데... 괴산방향팀은 헬기장을 지났다고 하고... 너덜지대

 

바람이 인색한 우회길... 그래도 신록이 펼치는 아름다음은 구름인지 안개인지도 가져갈 수 없음을 느끼면서 걷다보면...

 

두번째 헬기장에서 내려오는 길인 듯... 백화산 구간에서 살펴본 요광원 갈림길 이정목도 지나고...

 

이제야 대간 마루금에 접속한다. 이정표를 보니 우회길이 100M 더 길다. 긴 만큼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걸었지만...

 

바로 세번째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이 두개인 마루금에 비해 우회길이 빠르다. 조금 뒤 선두팀과 조우 함께 다시 산행 시작

 

마루금을 따르다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고 다시 우회길이 시작되고...

 

조령샘에서 조령제1관문과  문경 하초리에 있는 기산箕山으로 하산할 수 있는 능선에 올라 좌틀하면

 

바로 조령샘이 나온다. 홍장천 총대장님의 증언에 의하면 한 번도 마른적이 없다는 말씀...

 

낙옆송 지대를 지나면

 

잠시 후 사진으로 만나게 될 촛대바위가 있는 괴산 절골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에서 다시 마루금은 시작되고... 

 

핼기장이 있는 조령샘을 품은 1005봉 

 

조령에 있어 예전에는 공정산(公正山)으로 불리웠다는 조령산. 여기서 조금 빠르지만 비가 오기전에 식후경

 

안나푸르나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여성 산악인 지현옥을 기리는 추모 팻말이 서 있다

 

 

 

여성이 전문적인 산악인으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1990년대에 그가 이룬 업적들이다 

당시는 남성 위주의 산악문화이다 보니 여성 산악인을 후원하려는 업체를 찾지 못해 원정비용을 손수 마련하고

지금과 달리 엄연한 차별이 존재했던 당시 산악문화에서 이루 말 할 수 없는 얼마나 많은 좌절을 맛봐야 했을지..

여러가지 악조건속에 그가 1990년대에 이룬 성과가 후배 여성 산악인들의 활동에 토대를 마련했다고 한다

 

 

조령산에서 담아 본 백화산 방향. 이화령에서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백화산에서 곰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된다

 

조금 더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곰틀봉과 시루봉 사이 가운데 멀리 희양산

 

 

식후경 후 진행하다 전망이 열리면서 조령산까지 꽁꽁 숨겨 두었던 비경을 한꺼번에 쏟아 낸다. 가야할 마루금과 주위 산군

신선암봉을 시작으로 암릉구간을 지나 깃대봉까지 만만치 않은 암릉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마패봉 옆 신선봉 아래 고사리로 하산

 

치마바위를 품고 있는 깃대봉을 당겨보면

 

 

대간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부봉라인과 가운데 멀리 월악산까지...

왜 이번 구간에 신선이 많이 살고 있는지 이제야 제대로 보여 준다는 생각...구름까지 신선처럼 노닐고 있으니...

 

하늘을 향해 솟구치다 잠시 호흡을 가다 듬고 속살을 가슴에 품고 있는 듯 기암을 품은 괴봉들이 펼치는 어깨동무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듯 넘침을 경계하라며 나무로 사이사이를 체워주니 어느 하나 모난 모습을 볼 수 없고

자연은 여기에 화답하듯 구름을 보내 초절정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나무와 바위를 이어주고 있다

 

 

좌측으로는 새재계곡을 따라 새재까지 올라 가는 영남대로 옛길도 담아 보고

 

이렇게 하늘과 바위 그리고 나무가 적당히 자기 자리에서 펼치는 완벽한 조화...

바위가 성하면 나무가 죽고 나무가 성하면 바위가 죽을 터인데 서로 넘침을 경계했기 떄문일 것이다

바위만 있는 것 같다가도 나무들이 앞다투어 보이고 나무만 있는 것 같다가도 바위들이 어느새 불쑥 솟아 나오고

오늘 장마철에 비 대신 우리에게 보내준 진경산수화폭에 잠시 나를 투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할뿐...

 

 

애간장을 녹인다는 말로 표현헤도 될 듯... 오늘만큼은...비가 온다고 애간장으로 녹이드니... 이렇게 환상적인 모습으로...또...

 

구름이 없으면 없는데로 또... 이렇게...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그저 감탄할 뿐...

 

문경 새재공원 마당바위와 괴산 절터골에 있는 상암사로 내려 갈 수 있는 안부를 지나고

 

괴산의 주산 주흘산 아래 왕건새트장이 보인다

 

다시 마당바위와 절골로 내려 갈 수 있는 네거리 안부를 지나고

 

안부에서 조금 오르다 되돌아 보니 후미팀이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가까워진 신선암봉과 부봉

 

절골이 있는 괴산 연풍면 원풍리 방향

 

신선암봉 옆 모습과 가야할 암릉구간인 923봉과 사이로 멀리 월악산 영봉. 우측은 부봉라인

 

그런데 923봉의 뒷 모습은?  가운데가 깃대봉. 그리고 마패봉 뒤로 멀리 월악산 영봉

 

월악산 영봉이 왜 영봉인지 확실히 보여준다는 생각... 영기靈氣를 품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

 

조령산 직전 헬기장에서 분기된 절골 방향 촛대바위를 당겨본다

 

 

 

고리바위도 있고... 아님 주전자 바위?

 

경주 단석산의 단석을 담고자 하는 바위도...신선암봉에서 공기돌바위가 있는 한섬지기로 하산 할 수 있는 능선까지 조망

 

신선암봉에서 되돌아 본 조령산과 바로 우측 조령샘을 품은 헬기장 봉

 

신선암봉 정상

 

품위있게 사진에 담으려는 조현순님의 노력...이러시다 전문 사진작가?  山 전문으로...

 

923봉으로 가는 길... 네거리 안부도 지나고... 한섬지기(괴산)와 꾸구리바위(문경) 갈림길

 

위험한 암릉도 주지만 기암 괴암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암릉구간의 최고봉 923봉도 가까워지고

 

되돌아 본 신선암봉과 조령산을 배경으로...항상 산우님들의 사진 추억 남기심에 감사합니다.

 

암릉 구간의 최고봉 답게 막바지 오름길이 만만치 않다. 내림길과 오름길 위험구간이 계속 이어지고... 

 

 

 

 

923봉에서 되돌아 본 암릉구간 및 신선암봉과 좌측으로 조령산

 

923봉 정상

 

생명

 

795봉

 

끝났다고 생각하면 착각...문바위가 나오는데... 이 문을 통과하신 길돔무님과 여우비님이 한참만에 오신 것을 보면...

 

바로 옆에 있는 이 바위를 오르면 탄탄데로인데. 내가 가지 않은 길을 우리는 언제나 동경하고 산다. 내가 가는 길을 사랑해야 함에도

 

조령 제2관문으로해서 문경새재공원으로 하산 할 수 있는 757봉 진전 갈림길을 지나면서 바위가 펼친 열기는 사라지고...

 

깃대봉의 치마가 자세히 보면 위는 통인 것 같은데 아래 부분은 주름이 잡혀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럼 원피스?

 

삼각점이 있는 812봉을 지나면

 

직진하면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깃대봉 오름길,  안부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깃대봉 정상

 

깃대봉 좌측으로 조금 가면 전망이 열리는데... 담에 가야할 우측 마패봉과 고사리를 품고 있는 좌측 신선봉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렇게 신선이 도와주니 하루가 즐거울 수 밖에...

 

가야 할 오늘의 마지막 대간길 종착역 문경새재도 조망되고

 

숙종 35년(1709)에 축조되었다는 조령산성 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계속 조금씩 이어진다

 

잠시 후 만나게 될 제3관문과 함게 이 산성이 완성되므로써 3중의 관문을 완성한 것이라고...

 

 

산성축성때 발견된 조령약수.. 마른 일이 없다하니 과거시험보러 가던 선비들에게는 그야말로 약수였을 것인데...

예로부터 이 샘의 물을 많이 마시면 장수를 한다는 속설이 있어 백수영천百壽靈泉이라고 불리웠다고...뒤로 성황당

 

조령산성에 지은 영남제3관

조령 (鳥嶺.문경새재)  제3관문  높이 643m.

이화령으로부터 북쪽 약 7㎞ 지점인 조령산(1,017m)·신선봉(967m)·마폐봉의 안부에 위치한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하다 하여 새재·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영남지방에서 소백산을 넘어 서울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로 조선시대의 주요교통로였다.
삼국시대에는 죽령과 계립령을 이용했으나, 조선초 태종 때 새로 조령을 개척했다고 한다.

1925년에 이화령에 국도가 건설되면서 서울과 영남을 잇는 관문으로서의 역할은 상실했으나 1970년대 중반에 관문들을 복원하여

주변을 관광지로 개발했고, 1981년 6월 4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자료 : 조령 –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2186a  정리

 

 

조령관을 통과하여 조령 표지석이 있는 고사리로 하산하게 된다

조령은 다른 이름으로 새재라고도 불리는데,

1.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어 쉬어 가는 험하고 높은 고개

2. 새(억새)가 우거진 고개(草岾)-고려사 기록(초점)  :  새재 골짜기 마을 이름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초곡방(草谷坊)으로 정했고,

   현재까지도 상초리(上草理) 하초리(下草理)로 불리는 것을 보면 이 지역에 새(억새)가 많았던 모양이다.

3. 하늘재와 이우리재(이화령) 사이(새)의 고개

4. ‘새로 생긴(新) 고개’라는 뜻이다.  :  일찍이 신라 때부터 영로가 개통된 계립령과 죽령이 옛 고개,

   묵은 고개임에 비해 늦게 생긴 고개, 새로 생긴 고개라는 것.

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105

 

 

영남제3관 윗부분

 

문을 통과하니... 이번에 고사리로 하산했으므로 담 구간은 제1관문 방향으로 하산하면 제1코스를 완성하는데...

 

어떻게 깃대봉이 깃대를 닮았나요?

 

이제 과거길 고사리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경상도에 그 수많은 양반네 자식들이 과거시험보러 한양가는 길목이어서 유명해지고 번화해졌다.

이들은 오로지 이곳만 넘어다녔다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죽령을 넘으면 시험에 죽을 쑨다해서 오로지 새재만 넘었다.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내려와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신선봉 갈림길이 나오고

 

고사리 주차장이 나오면서 종료한다

 

주차장옆에 있는 여기서 뒤풀이

 

 

 

수고하셨습니다.

 

 

발품을 팔지 않으면 어디도 갈 수 없었던 옛날...

서울에서 부산을 가려면 누구에게나 제일 빠른 길을 택해서 갈 것이다

최단거리의 옛길이 바로 영남대로嶺南大路 였다

그 영남대로의 중심에 바로 문경새재가 있다

그래서 영남嶺南의 嶺이 바로 문경새재가 있는 백두대간이다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나라의 가장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을 했으며

가장 큰 고갯길의 대명사로 군림하였던 영남대로를 중심으로

우리가 대간길 추풍령에서 만났던 고개를 영남우로라 하였고

소백산 구간에서 만나게 될 죽령옛길을 영남좌로라 불렀다고 한다

괘방령과 추풍령에서도 소개했지만 길은 필요에 의해 또 만들어 진다

다음 구간에서 만나게 될 하늘재를 신라와 고려시대에 먼저 열었지만

조선시대에 필요에 의해 계획적으로 새로 연 길이 바로 문경새재이다보니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로구나’라는

진도아리랑의 첫 대목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 보니

일본 쪽발이 근성이 이를 몰랐을리 없을터..

조선의 기를 꺽고자 만든 신작로가 바로 이화령 이였던 것이다.

 

 

삶의 고비마다 만나는 고개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있다.

그 고개를 정점으로 사람과 마을이 헤어지고 만난다.

가장 길다운 길이 바로 고개라고 할 수 있다.

 

자료 :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 실천문학  http://blog.daum.net/silcheon/7700964   김하돈 시인의 글 중에서...

 

그렇게 고개에서 이루어진 사연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그래서 우린 고개를 넘을 때마다 살아 숨쉬는 생명의 힘을 느낄 때가 있다

오늘 다행히 새재에서 영남대로길을 따라 고사리로 하산하는 옛길을 걸어 봤다

그럼 반대 방향 문경땅 상초리에 남아 있는 영남대로길은?

 

담 구간인 마패봉 구간은 남진이라고 하시는데

혹시...

하산 접속구간을 고사리가 아닌 상초리로 하실 생각은 없는지????????

동화원, 조곡관(조령2관문), 조령원터, 주흘관(조령1관문) 등등이....

 

기다리고 있는데....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