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17-1(거인24회차) : 백화산 구간(남진) - 이화령 ~ 사다리재 (분지리 접속) 

 

 

언제 :  정유년(17년) 견우직녀달 7월 하루 흙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대간 17기 산우님들         

 

어딜 :  이화령 ~ 조봉 ~ 황학산 ~ 백화산 ~ 평전치 ~ 사다리재 ~ 분지리(접속)

                     (대간 11.3 km  접속 1.8km  합 13.1 km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742 에 있습니다

 

 

물이 절실했던 하지가 지났지만 오지 않는 비 때문에 전국이 타들어가는 국토만큼 농민의 가슴도 타 들어가고

다행이 전국 곳곳에 단비가 내려 일단 한숨은 돌려보지만 내린 비만큼이나 맘까지 만족하며 살아갔으면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또 때에 맞춰 사는 것이 세상사인데 자연의 시샘은 시샘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라도 이지만

시간의 흘러 들려오는 풍년의 소리는 자연이 주는 시련을 극복해 냈던 농민들의 땀방울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땀방울을 무기로 백두대간 완주를 목표로 하고 걷고 있는 거인산악회 17기 산우님들의 아름다운 이유를 만나본다

 

 

 

백두대간 이화령에서 사다리재까지 (지도 생략)  (남진)

 

먹고살기 위해 분지리와 평전치로 숨어들었던 민초들을 조건 없이 받아 주었던 봉황의 부리에 해당하는 백화산

봉황이 날 수 있도록 날개 역할을 하고 주위의 산들과 옥수를 제공했던 계곡에 얽힌 지명들의 의미를 담아 보고

보잘 것 없던 고갯길이 일제의 의도에 의해 신작로로 태어난 이유릿재(지금은 이화령)를 시작으로 문경의 고개들

조선시대 최고의 물로 꼽혔던 달래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분지천과 문경수석의 원천 성내천을 만나게 된다

 

 

 

백화산 구간을 북진이 아니고 남진을 위해 이화령 생태통로가 있는 괴산방향 주차장에 도착하고...

이유(우)릿재 (梨花嶺)  이화령 529m 이우릿재란 이화령의 옛 이름이로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고개이다.

이화령의 개통에 대한 사료는 없으나 아우리재는 조선시대까지는 조령에 가려 그리 중요한 길은 아니어서 통행이 적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지난 1925년(일제시대)에 신작로 형태로 개통하면서 이화령으로 개명하며 통행량이 급속히 늘었다고..

이화현(伊火峴)으로 불리던 옛날에는 조령이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을 하던 고갯길 연변의 배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당시 총독부에서 붙인 이름으로 한때는 조령과 구분하는 말로 ‘큰새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주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105

 

 

괴산방향 3번 국도의 이화령터널이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 터널은 오지를 힐링의 대명사 관광지로 탈바꿈 시키는 매력이 있다

 

이화령은『지리서』에 이화현(伊火峴)· 이화령(伊火嶺 또는 梨花嶺)으로 표기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梨花嶺’ 표기는

조선총독부에서 1914~1918년에 걸쳐 조사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서 잘못 표기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1929년에 김유동이 저술 간행한 팔도명승고적 문경군조에도 伊火峴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살 필수 있다.

자료 : 김윤우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 월간 '山'誌

 

 

백두대간 이화령 구간 복원에 붙여.. 라는 소제목의 서사시 같은 시가 대간의 의미를 함축한 듯하다.

이 시에 나와 있는 국토의 혈맥인 백두대간의 의미를 담아 17기 산우님들도 하나 되는 맘으로 끝까지 백두대간 완주를 응원 합니다

 

당시 문경새제로 대표되는 영남대로의 기(氣)를 꺾기 위해 일제가 의도적으로 만든 길이 바로 이 이화령이다... 시의 내용을 보면...

 

오늘 여기 국토의 대동맥을 잇는 이화령 고갯길은 / 일제의 삽날로 끊어진지 오래 상처로 남았더니 /

이제 아픈 세월을 씻어내고 /  세계로 나아가는 더 큰 나라  / 

인류의 멘토로 나서는 더 큰 겨례의 우렁찬 출정을 하는 백두대간의 첫 걸음이다

 

 

조령이 있는 조령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괴산 방향 주차장에서 올라야 한다

 

백화산 방향으로 남진을 위해서는 생태통로를 건너 이화정 정자 반대편으로 해서 올라야 한다.

 

생태통로 건너 문경방향에서 본 3번 국도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요과원이 있던 요광원골

요광원골(要光院谷 지도상 요과원)

조선 숙종때 한양의 최대감(大監)이라는 분이 영남지방을 행차하던 중 이곳에 유숙하게 되었는 데 그 집의 주모와 통정(通情)하게 되었다. 그 후 최 대감의 아들이 벼슬길에 올라 영남지방으로 오던 중 이곳에서 유숙하게 되어 우연히 자기 부친이 통정한 주모와 동침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최대감은 고민을 하다가 아들을 불러서 "父子가 한 여자와 동침한 것은 잘못된 일이나 서로 모르고 한 일이니 한 요강에 오줌을 눈 것과 같지 않느냐?" 라고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잊어버리자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어 이곳을 요강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선때 역마제도의 일익을 담당하였던 원(院)은 여행자 및 출장관리의 편의와 숙식을 제공하였던 곳으로 산이 높아 빛을 보아야 한다는 뜻에서 요광원(要光院)이라 하였다.

자료 : 다음 팁  http://tip.daum.net/question/95605106?q=%EA%B0%81%EC%84%9C%EB%A6%AC+%EC%9C%A0%EB%9E%98

 

 

조선시대 가장 큰 육상 교통기관이던 역에 비해 상인이나 선비 등 길손들의 숙식을 위해 설치된 시설인 원이 설치되었던 곳이다고,,,

 

백화산을 가는 길... 능선에 부대시설이 있는 듯 계속 우회한다.  681봉까지 우회하면 바로 대간 마루금과 접속

 

중부내륙고속도로 터널이 지나고 있는 681봉 방향 아쉬움에 되돌아 본다  ... 길은 뚜렸한데... 올라갔다 올걸 그랬나?

 

묵은 헬기장도 지나고

 

봉 하나를 넘으면 마루금 좌측에 못이 하나 보이는데... 물만 있으면 강가나 바닷가의 주상절리를 연상케 한다

 

 

 

연못아래 바로 문경 방향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대간처럼 대로의 느낌의 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번에는 괴산방향으로 임도 갈림길

 

조봉 직전 전위봉... 올듯 말듯하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우중산행은 시작되고...

 

이화령의 옛이름인 ‘(큰)새재’의 뒷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인 조봉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묵은 헬기장을 지나면 지도상 습지가 나온다. 습지의 개념을 확실히 보여 주는 듯하다.

아까 보았던 못이나 견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못재에서는 물을 찾을 수 없었는데...

 

좌측으로 전망이 열리면서 잠시 전망바위에 올라 보지만...

 

걷기에는 조금 불편한 거기에 끈기와 용기가 필요한 우중산행

그러나 자연의 신비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얘기다

한정된 시야에서 오직 귀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도로만 육안으로 희미하게 보일 뿐... 비까지 더하면서 백화산처럼이나 신비로운 대간길이 되고 있다

 

내가 입고 있는 우비와 풀잎 그리고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만들어 내는

삼중주 협주곡은 우중산행이 아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단지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앞만보고 걷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최고이겠지만 때로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황학산으로의 갈림길... 백화산 5.4km  이정표 약간 우회길로...

 

내 우비로 떨어지는 경쾌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옆으로 눈을 돌리면

빗방울의 무게에 못 이겨 연시 인사를 해대고

풀잎의 공손함에 살짝 미소를 주면 어느새 고개 들어 다시 인사할 준비를 하고

주위의 모든 풀잎들이 일제히 반기며 만들어 내는

풀잎이 흘리는 눈물과 함께 어찌보면 귀엽기까지 한 풀잎들의 재롱과 우리가 언제 걸을 수 있었겠는가

 

 

분지안말(흰두뫼) 갈림길... 겨울이면  흰 눈 꽃산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백화산 아래 분지말 마을의 이름도 우리말로 '흰두뫼' 이다

 

황학산과 황계산. 마루금은 띠지가 많이 붙어 있는 우측으로 가야 하나 직진으로 길이 좋아 주의해야 한다

황학산(黃鶴山, 912.8m)과 황계산(黃鷄山, 563m)  황계산 분기,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

 ‘황두루미’가 둥지를 틀은 산이다는 의미보다 황(黃)이라는 색깔은 산세가 바위가 없이 흙으로 이루어 졌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직진하면 갈 수 있는 황계산도 같은 의미로 학과 닭의 차이라고 한다.

황계산(黃鷄山)은 천지개벽 때 홍수가 졌는데 산봉우리에 장닭 한 마리가 앉은 자리만 남고 전부 수몰됐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문경시내가 조망되고 상초리계곡과 주흘산, 부봉, 마폐봉, 조령산, 멀리 월악영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그저 남의 자료일 뿐...

 

 

많지는 않지만 황학산 억새 구간도 지나고..  1960~1970년대 사람들이 살면서 목장을 하던 곳이였다고 한다

 

 

잠시 후 천주교 성지중 하나인 마원성지가 있는 문경읍 마원리로 갈 수 있는 갈림봉에서 식후경.

 

가뭄탓에 오랜만에 맛보는 비에젖은 밥...그래도 잠시 조금 소강상태에서 감사할 뿐...

 

 

식후경 후 백화산 가는 길...  하지로 들어선 여름... 비까지 더하며 신록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 준다

 

봉황의 부리를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는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암릉지대가 시작되고...

 

비까지 더하니 내림길은 만만치 않다

 

백화산 직전 대간 백화산에서 분기되는 옥녀봉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우리가 백두대간 산줄기를 얘기할 때 주로 북진을 하다 보니 흐름을 얘기할 때 뭔가 어색한 경우가 있다

물줄기의 흐름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혹은 옆으로 해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산줄기도 물줄기와 같아서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흐름을 이어가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이화령에서 백화산으로 남진은 백화산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헬기장을 지나 바로 백두대간이 문경쪽으로 한참을 치고 들어갔다 빠지는 말굽새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삼각점이 있는 백화산 정상석

백화산 [白華山 1063.5m]  능곡산, 성주산, 옥녀봉 분기

괴산군 안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겨울철에 논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듯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분지리 사람들은 겨울이면 흰 눈 꽃산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순 우리말이 '흰두뫼'라 마을 이름을 붙였다

 

 

봉황의 부리가 되어 문경을 바라보조자 하나 오늘은 하늘이 계속 허락지 않는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대간이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다 두타 지나 매봉산에서 줄기 하나(낙동정맥)를 남으로 보내고

한반도의 중심을 잡기 위해 속리산까지 서남진을 계속 하다 이화령에서 잠시 숨고르기 하고 솟은 산

벡두대간 배꼽 밑 단전丹田의 중심을 잡고 있는 희양산 직전 큰 날개를 펴고 있는 산이 백화산이다

좌 조령산 우 희양산이 펼쳐주는 튼튼한 날개는 곧 대간길이 속리산까지 이어가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쉽다고 계속 기다릴 수도 없고... 사다리재 가는 길... 찰나의 동안 전망을 허락하는데...1012봉 암봉 인듯...

 

그래서 산세도 멀리서 보면 봉황 그것도 성인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다는 수컷이 나는 형국에 비교하는데

부리구실을 하고 있는 백화산 하늘아래 정상에서 문경 땅을 굽어보는 형세는 모든 것을 압도 한다

백화산을 지도를 펼쳐놓고 보나 실제로 희양산에서 바라봤던 백화산의 모습이 신비스럽게만 보였다

오늘 조령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문경지방의 지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발 아래 전망바위를 평면으로 담아 보니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 온다

 

왼쪽으로는 봉황이 울었다는 봉명산(鳳鳴山 650m 문경읍 고요리)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봉암용곡과 봉암사

그리고 대간길로 들어서면 황학산黃鶴山과 황계산黃鷄山이 학의 모습으로 백화산을 호위하고 있고

조령산과 새재(조령) 거기에 대간에서 벗어나 있지만 문경의 주산 주흘산主屹山도 새가 살고 있는 산이니...

그래서 문경聞慶市 이름도 산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니 기분이 즐겁고 상쾌하다는 의미의 한자를 쓰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를 펼쳐보면...봉암산에서 운달산 가는 길에 조항령이 있다

 

문경방향으로 만덕사 갈림길

 

크고 작은 바위지대둘이 있는 칼등능선 같은 느낌의 대간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壽石 수석 애호가들에게 유명한 문경수석의 전형이 되고 있다는 성내천 방향으로 잠시 조망이 허락한다

 

성내천과 봉암용곡을 품고 있는 이름때문에 지금은 내정산이라 부른다는 뇌정산... 이름처럼이나 아직도 정상은 신성불가침이다...

 

분지리로 내려갈 수 있는 평전치 - 지리산의 세석평전을 생각하고 왔는데...  ㅋㅋ

평전치(平田峙)

마을 사람들은 평밭등이라 부르는데 지금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고개로서의 역할보다는 현재는 넓은 공터의 역할밖에 없다

이름과 달리 남쪽 사면은 경사가 있어 지형적인 영향으로 사철 바람이 강하게 부는 척박한 환경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온 사람들을 받아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백화산 직전 만났던 마원성지를 비롯 문경 상내리의 한신마을은 중평리, 여우목마을, 연풍지역과 더불어 천주교 성지로서 알려져 있다

 

 

평전치에서 일부 탈출했던 산우님들의 증언으로도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뇌정산 갈림봉 전위봉에서 잠시 쉬어가고

 

뇌정산 갈림봉

 

뇌정산 분기봉에 올라보니...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아래 분기봉을 우회할 수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무슨연유로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실제로 이 지역은 예로부터 자주 벼락이 치고 물 난리도 많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 주민들은 이름사용을 금기시 하고 있다고 한다 

대신에 지금은 안에서 스스로 다스린다는 염원을 담은 내정산이라 이름을 바꿔 부른다고 한다

내정산은 현지 주민의 삶의 터전이지 우리 같은 산객은 그저 지나가는 길 손일 뿐이다

빨리 이름을 지도에도 내정산으로 바꿔 하루라도 편히 사실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사다리재가 있는 곳은 이상하게 바위 종류가 그런지 너덜지대가 계속 이어진다

 

사다리재 직전 전위봉

 

오늘의 마지막 대간 지점인 사다리재... 분지안말 마을로 하산을 시작한다

薇田峙(미전치)    사다리재

미전치는 현재 사다리재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고개인데, 사다리재는 그 출처나 연원이 불분명한 이름이다.

본래는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분적골)에서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한밤미 마을로 가던 고사리밭등’이 그 고개의 옳은 이름이다.

고사리밭등은 분적골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부르던 이름으로 미전치라 하였다.

 

 

하산길 계속되는 너덜길

 

그래도 나무 가지 사이로 부봉을 조망해 본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던데...사진을 당겨 봤는데 작품 실패...

 

조령산 방향

 

분지리 안말 마을에 도착..

 

분지천 옆 도로를 따르다 되돌아 본 뇌정산 갈림봉에 가려져 있는 백화산과 그 아래 흰두뫼 마을이 있었다

분지천

백화산에서 발원한 분지천은 은티마을을 흐르는 물과 주진교에서 연풍천을 이루고, 연풍면에서 수옥폭포애서 발원한 수옥천과 만나

쌍천을 이루며 괴산칠성면에서 속리산 문장대에서 발원한 달천(달래강)과 만나 충주탄금대에서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특히 달래강의 물은 조선 최고의 물로 꼽는데 최근에도 생수의 물을 달래강에서 뽑아 쓰고 있다는 자료도 있다

 

 

버스가 들어올 수 있는 곳까지 이동 후 삼겹살로 뒤풀이 후 하루의 피로를 풀어 본다

 

우중산행의 힘인가?  처음으로 양재에서 치맥...자리 마련에 자비까지... 조현순님 감사합니다

 

 

일기예보와 달리 우중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던 대간길...

몽환적인 경치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리가 볼 수 있는 경치도 함께 사라지게 했던 대간길

특히 멀리서 대하는 백화산의 모습이 왜 봉황의 부리인지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었지만

자연은 그렇게 준만큼만 즐기라는 듯 찰나의 순간만 보여줄뿐...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라고 자연은 얘기하는 듯 했다

 

 

희양산에본 가운데 끝부분 백화산이 더 봉황의 부리를 닮은 듯하다. 그런데 이화령에서 보이는 모습은 어떠했을까?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즐겁고 상쾌하다..

는 의미의 한자를 담고 있는 문경聞慶市..

물론 담 구간에서 만나게 될 문경새재에서 유래를 찾고 있기도 하지만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문경의 지명에는 실제로 새가 들어가는 지명들이 많이 보인다

실제로 지저귀는 새소리가 아닐 것이고...

새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은 주위에 새들이 찾아와 놀만한 곳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백두대간을 걸었기에 대간에 있는 봉황의 부리인 백화산을 중심으로 살펴봤지만

사실 문경시의 주산은  새가 살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인

주을(住乙)의 발음이 변화된 주흘산主屹山이다

주흘산을 중심으로 주변에 대간에는 담에 걷게 될 조령산鳥嶺山이 기다리고 있고 

거기에 오늘 걸었던 황학산黃鶴山과 바로 옆에 있는 황계산黃鷄山

그리고 봉황의 부리 백화산의 맞은 편에서 울고 있는 봉명산(鳳鳴山)과

'구름에 가닿는다'는 의미의 운달산(雲達山)에 오르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조항령(鳥項嶺)

거기에 오늘 처음 맞이한 아우릿재(이화령)을 시작으로 문경의 고개들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고개들이 지금은 쓸모가 없어져 이정표만이 옛 얘기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지만

아직도 문경새재는 나름대로 진행형이다

이번 회 차에는 문경의 새소리를 들어 봤다면

담 구간부터는 아우릿재를 시작으로 문경의 고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추풍령과 괘방령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고개의 어제 오늘을 보았듯이

영남대로의 큰 형님 격 이였던 문경새재가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지명 자료 : 다음 팁 포천의 의미에서... 

http://tip.daum.net/openknow/39123156?q=%EB%AC%B8%EA%B2%BD%20%EB%B4%89%EB%AA%85%EC%82%B0%20%EC%9C%A0%EB%9E%98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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