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 15-2(온누리 29차) : 버리미기재 ~ 갓바위재(의상저수지, 접속) 남진

 

 

언제 :  정유년(17년) 푸른달 5월 스무엿새 쇠날 밤 ~ 스무이흐레 흙날(무박)

 

누구랑 : 3450온누리산악회 대간 6기 산우님들         

 

어딜 :  버리미기재 ~ 대야산 ~ 둔덕산 갈림봉 ~ 조항산 ~ 갓바위재 ~ 의상저수지(접속)

                     (대간 15.8 km,  접속 4.5km 포함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초보산꾼 사진 산행기는 http://blog.daum.net/kmhcshh/3715 에 있습니다

 

 

부부의 날까지 함께한 '만물이 점차 자라서 가득차다'는 소만 小滿절기가 지나자 바로 단비같은 비로 화답하고

부부의 사랑으로 가득한 봄의 생명을 담아 여름과 같은 뜨거운 부부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맘을 담고

봄의 생명을 상징하는 청소년 축구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승리로 여름을 나기 위한 청량제 같은 소식을 전해주고

이제 전국의 모든 산들이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에서 품어져 나오는 자연의 숨소리를 찾아 떠나 본다

 

 

 

백두대간 버리미기재에서 갓바위재까지(의상저수지 접속)  (남진)

 

아홉 번이나 시집을 가는 바람에 자식 벌어먹여 살리기에 힘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버러미기재는 아직도 통제 중

어쩔 수 없이 야음을 틈타 접근 남진하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통제만 할 것인지 묻다 미륵바위에 하소연하다 보면 

문경지방의 큰아버지뻘 大爺(큰아버지 야)산이 산 이름에 어울리게 좌.우로 내.외 선유동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이번 구간의 날머리 접속지 의상저수지는 수계인 대간을 무시한 도경계로 인해 괴산과 문경의 경계이다

 

 

 

버리미기재 탐방소가 있는 버리미기재에서 대야산을 향해 출발한다.

버리미기재  922번 지방도

버리미기재는 풍수지리에서  `벌의 목 고개`라는 뜻으로 밀치,밀재,밀목치,밀목재,밀항 등과 같은 말이다.

벌어먹이기(버리미기) 힘든 삶을 살았던 아홉번이나 시집을 갔다는 팔자센 과부의 전설이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측 문경 완장리 방향은 옷나무골(다음지도)로 해서 용추계곡에서 흘러나온 문경 선유동계곡(내선유동)과 만나 낙동강으로...

서쪽 문경 완장리 방향은 괴산 선유동계곡(외선유동계곡)으로 해서 한강으로 흘러가게 된다.

소위 백두대간상에 있는 버리미기재는 문경시 완장리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어 아무런 경계역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장대에서 청화산 구간을 상주땅이 침범했다면 이번에는 문경땅이 대간길을 넘어가고 있다

 

 

통제구간 산행... 무조건 오르다 보니 처음부터 알바를 하고... 어렵게 도착한 헬기장

 

멋진 바위와 소나무가 함께 하는 곳도 지나고 - 정이 총무님이 멋지게 사진을 남겨 주셨네요

 

 

그런데 내림길이 만만치 않다

 

곰넘이봉의 정이 총무님

 

대야산을 뒷배경으로 있는 사람의 두상을 닮은 두개의 미륵바위... 달이라도 있었으면 교감이라도 나눌 수 있었는데...

 

지도상 헬기장을 지나면

 

불란치재

불란치재

버리미기재가 포장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가은읍 완장리와  청천면 관평리를 이어주던 옛길로 통행량이 제법 많았던 고개였다고 한다

불란치재는 옛 문헌에는 弗寒領, 彿院峙, 뷸한현으로 기재돼 있으며, 대야산의 허리로 괴산 경계에 이른다고 되어있다.

‘춥지 않은 고개’의 한자말인 불한치(不寒峙)를 소리글로 불리다 현재의 ‘블란치’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고

불이 났던 고개라는 뜻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오랜만에 야간산행... 쉬지도 않고 계속 이어진다. 촛대봉의 주유천하 대장님

 

출입금지 알림이 있는 좌측 피아골로 내려 갈 수 있는 안부로 촛대재라고도 불린다

 

촛대재에서 대야산 오름길은 비탐방 지역이지만 나무 계단은 되어 있다

 

서서히 여명은 밝아오고

 

희양산 방향의 해뜨기 전...

 

앞 라인은 장성봉에서 분기한 막장봉으로해서 재수리재로 이어지는 군자단맥 라인, 그 뒤로 좌 군자산 가운데 칠보산 그리고 악휘봉 라인 조망

 

이제 본격적인 대야산 오름길 직벽구간이 시작된다

 

정이 총무님 사진 담아 줘 감솨...

 

대야산 정상 직전 담아 본 일출

 

오늘이라는 또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떠오른 일출과 함께 한다

어제 하루를 정리하라고 내려준 어둠을 걷어가면서...

그것도 조금씩 어둠을 사라지게 여명을 주어

맘만 앞섬을 경계하는 맘으로 하루를 살아야 함을 얘기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맛보는 무박산행

지나고 나니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오늘 일출이 많은 것을 나에게 얘기하려 하는 것을 보면

잊혀진 줄 알았던 일상이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어둠속에 묻혀 있었을 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맑은 동해의 물로 세수를 해서 그런지 더 영롱하게 보인다.

 

내일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잊혀진 줄 알았던 그간 무박산행하면서 쌓아 놓은 수많은 추억의 그림자가

어쩜 그리움으로 잠시 묻혀 있다가 이렇게 영롱한 일출과 함께 다시 태어나니

비록 다시 사라지고 마는 추억의 그림자이겠지만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어둠속에 걸어온 바로 앞에 촛대봉 불란치재 곰넘이봉 그리고 그 뒤로 장성봉, 그리고 희양산과 뇌정산 사이로 해가 떠 올랐다

 

좌측으로 희양산과 뇌정산 그리고 우측으로 둔덕산 라인이 만든 선유동계곡을 배경으로... 좌 피아골 우 용추계곡이 함께 만든다

 

일출을 구경하고 좌측 건폭이 있는 피아골로 해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을 지나

 

대야산 정상의 아침을 맞이 한다 - 한주대장님 작품... 고생했습니다.

대야산(상대봉)

충복괴산군과 경북 문경시가 경계로, 대화산, 대하산, 대산, 상대산등으로 불리며 특히 선유동 계곡이 있어 선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명산으로 받들어 온 대야산은 여러 기록들에 ‘大耶山’으로 적고 있으며 대야산 정상을 비로봉으로 부른다고 기록도 있다

산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大耶는 大爺(큰아버지 야)의 산으로 문경과 괴산에서 높이는 높지 않지만 내.외 선유동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장성봉 갈림길에서 잃어버린 백두대간 도경계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이다. 아래  지도 참조

 

 

대야산 정상에 설치된 안내판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속한 대야산은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문경의 산들 중에서도 그 명성이 높은 명산이다

정상의 신선이 놀았을 법한 바위 크기만큼이나 양옆으로 신선이 놀았다는 내.외 선유동계곡을 거느리고 있고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문경의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과 함께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에 올라서 있다. 

그렇게 보면 산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大耶는 大爺(큰아버지 야)이므로 큰 아버지뻘의 욕심쟁이 산이다

어떤 모습으로 대간길에 앉아 있길래 욕심쟁이 튼아버지로 모시고 있는지 대야산 속살 앞.뒤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좌측이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우측이 백악산 라인 그리고 가운데가 속리산으로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전망된다

 

오늘은 시계가 정말 너무 좋아 가령산 넘어로 도명산까지 조망된다.  화양구곡을 품은 선유동 계곡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가야할 대간길인 좌측부터 둔덕산 갈림봉 조항산 청화산 그리고 속리산

 

좌측 대간길과 우측 중대봉 그리고 가운데 지선능선이 대야산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제 대야산 정상까지 개방이 되어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또 다른 피아골 갈림길

 

좌 둔덕산과 우 오늘의 마지막 봉인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하늘길을 연다

 

주의 지점으로 마루금은 좌로 이어진다. 출입금지 직진은 중대봉과 대간길 사이 지능선

 

기암들을 구경하며 내려오다 문바위에서 식후경

 

언뜻 봐서는 코끼리 같지 않지만 코끼리다 고 생각하고 잘 보면 완전 코끼리 두상이다. 긴 코에 눈옆에 큰 귀까지...

 

용추계곡으로 내려 갈 수 있는 밀재로 퇴계 이황선생이 세상시름을 잊고 지낼만 한 곳이다 하여 망속대도 있다

밀  재

밀림이 우거졌던 곳으로 이 고개을 지나 가려면 밀림을 헤치고 지나가야 한다하여 밀재라 한다.

밀재는 버리미기재와 그 어원이 같은 이름으로 `벌의 목 고개`라는 뜻으로 밀치, 밀재,밀목치, 밀목재, 밀항 등과 같은 말이다.

일반적으로 고갯길의 경우에는 벌, 노루, 소, 도지, 닭 같은 짐승의 목 부분에 빗대어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또 소나 말의 등에 얹은 안장을 일컫는 질마(길마)의 생김이 비슷하다 하여 `질마재`로부르는 경우도 흔하다

 

 

월영대는 피아골과 용추계곡 그리고 둔덕산 마귀할미통시바위봉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만나는 지점이다

 

 

지도에 나와 있는 집채바위를 지나는데...

 

집채의 안주인 이신가?  언제 도봉산의 여성봉을 옮겨 놓았지?

 

849봉은 지나면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열리면서 가야할 조항산과 청화산이 조망된다

 

역시 조망은 우리 대간 산우님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둔덕산으로 갈 수 있는 889봉에서 잠시 둔덕산 방향으로 들어가 본다

 

용추계곡 월영대로 내려 갈 수 있는 갈림길도 지나고... 그러고 보면 월영대에서 모두 만나게 되어 있다

 

어떤게 마귀할미통시바위인지 모르겠으나 기암들이 춤을 춘다. 첫번째 맞이하는 기암중 제일 윗부분으로 햇살로 방점을 찍는다

 

바로 아래 기암들..

 

손자녀석의 할미바위를 향한 귀요미 같기도 하고...

 

뒤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내가 볼 때는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이 바위가 할미바위가 아닐까?  속리산을 굽어 보고 계시니...

 

마지막 바위에서 되돌아 본 마귀할미통시바위군들...

 

이제 조금 멀어진 대야산도 잘 보인다. 가운데가 중봉, 좌측이 집채바위가 있는 849봉

 

마귀할미통시바위에서 본 조항산 모습은?  가운데가 문경,괴산,상주 3시봉인 시루봉 갈림봉 그리고 바로 우측이 청화산.으로 약간 낮다

 

우리 대간 식구들이 보지 못한 마귀할미통시바위를 모습을 담고 다시 갈림봉인 889봉

 

고모샘이 있는 고모치

고모재(치)

옛날에 주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통행로는 고모치였다고 하나 지금은 갓바위재가  등산로로 바뀌어 옛길의 형태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옛날 궁기리에 살던 고모가 삼송리에 사는 조카한테 갔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가다 고모와 조카가 엄청난 폭설로 얼어 죽었다는 전설...

고치, 고치령, 고모령, 곰치, 고무치, 고미재 등이 있으며, 이중에 고치나 고치령은 높고 험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高峙의 개념이고,

기타는 `곰고개`라는 개념으로 때로 熊峙로 변천하기도 하였다고 하니 곰고개 였다고 해석해야 하나?

 

 

왕송마을 갈림길

 

의상저수지로 내려 갈 수 있는 갈림길

 

옛날 천지 개벽때 산봉우리가 황새 목 만큼 남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조항산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도가 잘 못되어 있다. 대야산부터 장성봉까지는 문경땅이 백두대간을 넘어 괴산땅으로 침범한 구역이다.

즉 우리가 출발한 버리미기재는 괴산과의 경계가 아니라 문경땅 완장리 속살로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인 대간길이 리경계역할도 못한다.

참고 : 네이버 지도 - 대야산 부터 다시 문경땅이 대간길을 넘어 충청도 속살로 침범하고 있다.

 

우리가 내려가야 할 의상저수지와 그 뒤로 백악산

 

 

되돌아 본 둔덕산 갈림봉과 그 뒤로 대야산. 우측 멀리 장성봉과 희양산까지 조망된다.

곳곳에 그 유명한  ‘문경석’을 채취하기 위한 고모리광산 생채기도 보이다

 

 

마귀할미통시바위군을 여기서 당겨보면...조금 위험한 코스이지만 학천정으로 해서 둔덕산을 넘어 손녀바위와 할미바위 코스도 괜찮을 듯...

 

조항산에서 앞에 보이는 청화산 으로 가기위한 고개 갓바위재 가는 길... 암릉구간도 지나고

 

청화산 옆으로 시루봉과 연엽산 그리고 견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기리 방향. 청화산 구간에서 자세히 다뤘으므로 여기서는 생략

 

 

참조 : 문경땅에 남겨진 견훤의 흔적들...다음 지도로 정리. 견훤의 고향 아차마을에서 영강을 거슬러 올라오게 된다

농암면 궁기리(궁터마을) 

조항산~청화산~마귀할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분수령 동쪽에 깃든 궁터마을은 견훤이 군사훈련을 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던 곳으로

견훤이 완산주로 떠나기 전까지 말바위에서 활을 쏘며 야망을 키웠다는 깊은 산골 궁터라는 지명도 견훤의 왕궁 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절골에 절터라고도 하고 궁터라고도 하는 축대가 남아 있고, 부근의 폭포와 약수는 인근에서는 알아주는 명소라고 한다.

 

古基마을은 견훤이 이곳에서 많은 군병을 모집하여 훈련한 곳으로 본궁을 설치하였던 `옛터`이며  그 후 속칭 이터골 혹은 옛터골로 불리워지고 있다.

 

 

헬기장 직전 고기리 갈림길

 

헬기장을 지나 바로 의상저수지로 내려 갈 수 있는 갓바위재

갓바위재

갓바위재는 백두대간의 청화산과 조항산 사이에, 고모치는 조항산과 대야산 사이에 걸려 있는 고개이다.

이 두고개는 높게 가로막힌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에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를 오가던 고개들이다.

충북 지역인 삼송리는 원래는 경북 문경군 가은면에 속했던 마을이였다는데...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삼송리에서 농암면 소재지까지 험준한 백두대간을 넘어 오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1962년 민원에 의하여 충북 괴산군 청천면으로 편입되었다는 기록을 보니 할 말이 없다...

 

 

저수지는 바로 앞에 보이는데 내림길이 만만치 않다. 임도길을 자주 만나면서... 의상저수지

 

이제 완연한 여름을 알리려는 듯 꽃세상이다

 

저수지 좌측으로 내려와야 한다

 

백악산 흥부네 식당에서 버섯전골로 백두대간 대야산 구간을 오랜만에 3450온누리산우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정리한다. 정이님 작품

 

수고했습니다.

 

 

 

내 땅인데도 내 맘대로 갈 수 없게 만든 대간에 남아 있는 출입금지 구간들..

야음을 틈타 시작된 어둠속 백두대간 속살은 그래도 역시 한반도의 척추답게 아름다웠다

음과 양의 조화로 곳곳에 남겨진 바위들이 뿜어내는 어둠속 자태는

그 어떤 통제로도 막을 수 없는 대간꾼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생각

그렇게 조금 일찍 시작한 덕분에 대야산 정상에서 본 일출

무박산행만이 가질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낙으로 다가오는 품격일 것이다

그렇게 출입통제구간인 대야산 북쪽 문턱을 넘어 남쪽으로 진입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대야산이 하늘과 함께 펼치는 대자연의 향연은

왜 대야산을 큰아버지의 산이고 문경의 제일 큰 산으로 했는지를 알 수가 있었고

대간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겹겹이 쌓아 놓은 산줄기 사이로 펼쳐놓은

눈을 좌로 돌리면 문경 땅이요  우로 돌리면 괴산 땅이요

또 거기에 기대어사는 사람들의 삶이 있어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던 산천

 

살아 있는 한반도의 척추인 대간이 하늘을 지붕 삼아 남북으로 펼치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물결치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대간이 아직도 눈앞을 가로 막는다

남으로 속리산의 암봉 들이 펼치는 불꽃잔치를 돋보이게 하는 조항산과 청화산

북으로는 커다란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회양산이 햇빛으로 화장을 하니 더욱 빛을 발하고

너무 멀리하지 않아도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바위 하나도 허투로 하지 않고

조각가가 오랜 세월 공을 들여 빚어 놓은 듯 눈을 뗄 수 없는 걸작 앞에서

신선놀음이 뭐 따로 있을까?

조각 같은 바위에 앉아 잠시 쉬면서 신선의 맘으로 잠시 먼산바라기가 되면 되지...

그런 심정으로 하루를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

 

사람은 언제나 세월이 흐른 뒤에 많은 얘기를 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만난 것들의 소중함을 망각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훗날 한 인간의 생애를 결정지을 수도 있고

순간의 만남이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연이였음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시절, 그 사람 하면서 아쉬워 한다

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가 아닌지...

 

초보산꾼과 3450 온누리 산악회 5기 백두대간팀과의 인연도 역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찾아 와

많은 아쉬움과 서운함도 함께 하며 걸었던 대간길

 

아쉽지만 때론 아쉬운데로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련지요...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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