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금남)기맥 06 : 봉화산 구간 - 석불사거리 ~ 수레재까지..

 

 

 

언제 :   기해년(19년) 푸른달 05월 열아흐레 해날


누구랑 : 거인산악회 금강기맥 산우님들

 

어딜 :  석불사거리 ~ 상마사거리 ~ 용산리 ~ 봉화산 ~ 칠목재 ~ 수레재 (약 22km )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4754 에 있습니다.

 

 

 

푸른 달 5월로 들어서고 바로 찾아왔던 여름에 들어선다는 입하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을 넘어 하순 초입..

온도차가 심해 여름이 왔음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가끔씩 찾아오는 찬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고

사람 마음만큼이나 변덕인 날씨 속에서도 풍부해진 햇볕에 만물이 성장을 거듭하여 가득 채웠다는 절기 소만小滿

자연이 차곡차곡 희망을 채웠던 이 시기.. 보릿고개라는 시절도 함께 했음을 우린 너무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들어가기

금강(금남)기맥 산줄기 계통도

 지도 생략

 

금강(금남)기맥 전도

금강(금남)기맥이란..

백두대간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의 기점 주화산에서 다시 분기된 금남정맥을 이어오다 금만봉(금강+만경강, 755봉)에서

가지 하나를 군산으로 이어가는데 남으로는 모악지맥과 함께 전라북도 안에서만 흐르는 만경강과 끝까지 함께하며

북으로는 논산천을 시작으로 중간에 북진을 하다 대둔산 계룡산의 옥수를 담아온 금강의 분수령이 되어 군산 장계산까지

120km를 이어가는 산줄기로 완주, 논산, 익산, 함열을 지나 군산까지 옛 백제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금강기맥 6구간 -  석불사거리 ~ 수레재

 

 

미륵산에서부터 시작된 삼기면과의 인연.. 익산 삼기면 속살인 석불사거리를 출발하여 상마사거리에서 드디어 함열에 들어서고

기차길을 지나 황등면인 용산리를 지나 탑고지에서 함열의 또 다른 이름인 함라면의 시작을 알리며 함열의 진산 함라산 갈림길에서

익산 웅포면과 만나 함라면의 경계를 이어가다 칠목재 지나 어래산성(180.4봉)에서 드디어 금강기맥의 마지막인 군산을 만난다

이번 구간은 산길이 아닌 수로를 걷는 특별한 기행에 삼부자집을 만나고 방령고개 직전에 익산과 헤어지고 군산의 속살로 들어간다

 

 

      

 

 

09:25분  도착 출발 준비를 하고..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에 따라 아직은 정중동..

 

앞선 구간에서 힘들게 내려왔는데 눈인사 정도는 나눠야지?  반갑다 미륵산아..

 

석불사거리에서 금마 반대 방향으로 진행을 시작하고..

 

요렇게 진행..  네이버지도  

 

09:33분   구정마을 방향으로 좌틀

 

대각선 방향으로  포스트 삼아야 할 굴뚝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당겨보면.  뒤로 금강기맥을 병풍삼아..저기까지 가야 하는데..

 

09:41분  구정마을 가는 길과 헤어져 우틀 계속 도로를 따라 간다

 

우틀하면 바로 좌측으로 바람공원이 보인다.. 

 

바람 부는 언덕에서 느끼는 바람소리 라는 부제를 달고.. 평지이다 보니 이 정도도 언덕 맞다.. 우린 가기 바빠 느낄 수 없었지만..

 

익산 제3 일반산업단지인데 단지는 아직 텅텅비어 있다.  언제 꽉 체워지려나?  지나 계속 직진

 

09:55분   사거리에서 역시 대각선에 있는 새말 공원도 대각선으로 통과한다.

 

새롭게 만들어 가는 새로운 우리 공원..  공원까지 만들어 놨으니 이제 국가 경제가 잘 돌아가 꽉 채울 일만 남은 듯..

 

 

09:56분   지도상 정자와 제일교회를 우측에 끼고 진행한다

 

10:01분   산단도마마을 표지석이 있는 사거리에서 가까워진 굴뚝으로 진행하면 된다. 지도상 도마마을..

 

10:04분  굴뚝 옆을 지나고

 

그렇게 보여주지 않던 모악산이 드디어 보인다

 

10:07분   고속철 아래를 지나면서 상마 사거리에서 만날 도로를 만나고..

 

10:12분   상마사거리로 진행.. 이제 함열 땅으로 들어선다

 

 

상마사거리에서 지도에 나와 있는 수로를 따라간다.  우린지도에 나와있는 매봉을 보기 위해 우측 도로를 따라간다

 

매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남양방씨 매봉선산이라는 표지석이 매봉임을 알려주고..

 

 

10:20분   남양방씨 선산이 자리하고 있는 매봉 정상

 

 

세 분은 봉우리 하나를 더 진행한다고 하시고.. 나는 더 이상 자료가 없어 탈출.. 이 길이 금강기맥길이라는 확신도 없고..

 

매봉과 수로를 이어주는 길을 따르면..

 

되돌아 본 매봉

 

10:27분   수로에 접속하고..

 

10:35분  잠시 수로를 벗어나는 지점

 

 

당겨본 모악산..  우측에 있는 산이 구성산이다.

 

10:38분   멋진 소나무 숲을 지나 다시 수로를 따른다

 

10:44분  그럼 도로가 나오고 정면에 주유소가 보이는데.. 수로는 주유소 옆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길이 없어 좌측으로 해서 우회

 

 

도로 좌측으로 해서 오면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오성 가설 산업 골목으로 들어간다

 

계속 길따라 간다

 

10:51분  마침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수로가 우측에 있으므로 용산리 건널목을 건너 우측으로 가야 한다. 이제 황등땅으로..

 

 

 

10:55분  이제 수로도 사람도 지하도를 통과해야 한다. 날씨가 후덥지근하여 수로를 따라 헤엄쳐 가도 되는데..

 

지하도를 빠져나와 이제 수로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 마을길로 접어들고..  함라산이 뚜럿이 보이기 시작하고..

 

당겨본 함라산..  스님이 장삼을 두손으로 벌리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삼부자집이 태어난 풍수의 해석이다.

 

11:04분   산길에만 마의 구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도로를 계속 따라야 한다. 함라산 아래까지..

 

 

그럼 바로 황등면 용산리 표지석과 황교마을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드디어 선두팀과 상봉하고..

한 때 우리나라 석재의 70프로를 생산했다는 기록(1992년)에서 보여주듯 황등에서 생산되는 화강암을 황등석이라 할만큼 유명했다

 

11:15분   구자마을도 지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북이를 넘 좋아했나?  거북이가 들어간 지형이름이 많다.

 

함열 들녘과 함라산에서 수레재까지 담아 보고..

 

망해봉을 비롯 마지막 구간까지.. 금강기맥 산줄기가 병풍을 치고 있다. 뒤에 금강을 숨기고서..

 

11:27분   전에는 탑이 있었다는데...  탑고지 마을도 지나고

 

11:30분  바로 벌이 많았나?  봉곡마을 들녘.. 산줄기를 타면서 이렇게 많은 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나?

 

11:32분   갈마 정류장이 있는 삼거리.. 이제 함라면 속살로 들어간다

 

 

잊혀졌던 수로?  우측이 함라산 좌측이 봉화산.. 그리고 봉화산 옆 가장 좌측이 와우산.. 어떻게 소가 누워있나요?

 

 

11:45분 행동 교차로에 도착하였는데 가로수에 이정표가 가려져 있다. 삼부잣집으로..

 

 

교차로를 건너면 좌측으로 익산에서 제일 먼저 개교했다는 함열 초등하교.. 2008년에 개교 했다고.. 함열현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

 

11:48분   도로를 지나 파출소 골목으로 들어간다

 

향교는 멀어서..  고택을 답사할 예정..  농협 골목으로 해서 들어가야 제대로 마루금을 이어가는 듯..

 

뒤에 함라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삼부자집과 함라한옥 체험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통 담장길을 중심으로 삼부자 집이 반원을 그리고 있다. 주차장에서 시계 방향으로 이배원, 김병순, 조혜영 가옥

 

향교만 빼고 답사하였다. 여기에는 없는 함라노소도..

 

삼부자집 중에서 개방이 안되고 있는 김병순 고택을 지나고..

 

 

11:58분   답사를 마치고..  함열현 관아터 주차장에 도착하고.. 직진은 둘레길.. 익산 곰개(웅포)나루길이라 하는 듯..

   함라산 아래 함열현이 자리하고 있어서 함라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마루금은 좌측으로 해서 앞에 보이는 끝 지점에서 산속으로 올라야 한다

 

12:00분  도로끝 표지판에서 마루금에 접속하고.. 이제 숲속으로..

 

12:04분   마지막 민가를 지나고

 

 

12:05분   우측으로 함라산을 보면서 앞에 보이는 헬기장 이정표따라 들어간다..  둘레길은 계곡으로 여기서 보면 확실하다

   길을 따르다 바로 좌측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지도에 나와 있는 수직굴은 마루금에서 찾지 못했는데 혹시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12:09분  묘지군도 지나고..

 

12:20분   여기서 길은 봉화산 방향으로 틀어진다. 길따라 갔다가 아무래도 이상해 다시 되돌아 왔다. 무조건 치고 올라간다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난한 잡목 길..  노간주 나무도 찔리는 것 처음 알았네..

 

12:26분   신경수님의 띠지가 반겨주는 분기봉 정상에 오르고..  늦어지는 식후경에 도보가 이렇게 힘들줄이야..

 

바로 함라산과 봉화산을 연결하는 능선에 접속한다. 마루금은 좌측으로.. 잠시 우측 함라산으로 당겨온다

 

 

12:28분   아치형 다리가 있는 웅포재(함라재) 네거리.. 웅포와 함라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12:30분   바로 다시 삼부자집으로 하산할 수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12:36분   야생차 북방한계선이라는 함라산 정상..  그래서 함라산 주위로 야생차가 많이 자생한다는데..

 

 

함라산 정상에서 조망... 드디어 금강이 먼길을 돌아 눈앞에 나타나고.. 서해 5대 낙조 중 하나인 금강 웅포 낙조를 상상해 본다

 

 

반대 방향 함라면 들녘

 

 

당겨본 삼부자집과 함라 초등학교

 

 

익산에서도 유래가 깊은 숭림사를 넘나드는 율재 방향...  일치산으로 해서 미륵산에서 내려온 산북천과 함께 금강에 몸을 섞는다.

 

12:45분    다시 되돌아 나와..   웅포재를 지나고

 

12:47분   아까 올라온 마루금에 접속하고..  이제 마루금은 함라와 웅포의 경계를 이어가게 된다

 

 

12:57분    배고픔을 참고... 도착산 봉화산..  밥먹다 보니.. 밥먹으며 보았던 소방봉 봉수대 터를 담는다는 것이 그냥 패스됐다..

  오늘 걸으면서 봤지만 평야지대에 있는 산이다 보니 봉수대가 없는 것이 이상했다는 생각으로 대신 한다. 함라현이 있기에..

 

13:20분   늦은 식후경 후...  마루금은 칠목재 방향으로.. 야생차 단지는 웅포 방향

 

 

봉화산에서 본 웅포熊浦대교 방향..  곰이 금강 물을 마시는 모습과 닮았다는 곰개나루..  한자로 웅포이다

 

가야할 마루금을 담아보고 출발.. 가운데가 칠목재 넘어 어래산.. 희미하지 않으면 망해봉까지 선명할 것인데..

 

 

13:33분   마루금이 우측으로 바뀌는 함열을 감싸고 있는 와우봉..  농경사회에서 열 일하는 소가 들어가는 지명은 명당 자리이다.

 

13:36분  이제 지도에 나오는 경고판이 계속 나온다

 

13:42분    안부를 지나니 바로 입정笠店재 이정표..  입남마을 하산길..  갓을 만들 던 곳이 있었다고..

 

13:48분  지도상 철탑이 있는 봉을 지나고

 

그럼 임도같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14:03분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와야 정학한 마루금이다.

 

칠목재 건너 앞에 보이는 집으로 해서 철탑 우측으로 올라야 제대로 된 마루금이다

 

 

옻나무가 많았다고 하는 칠목재에서 좌측으로 해서 올라도 되고.. 漆자가 어려워 七牧로 바뀌었다고 한다

 

 

칠목재에서 우측으로 해서 웅포면과 함라면 경계 표지석이 있는 곳이 마루금.. 나는 이곳으로 해서오른다

 

좌측 한우촌에서 올라오는 길과 결국 합류한다

 

14:19분   공터에서 계속 직진하면 바로 삼각점 봉으로 오른다고... 막독 대장님 증언.. 나는 우측으로..

 

14:20분   더 진행하다 좌측 철탑으로 가는 분도 있고..

 

 

14:22분   계속 가다보면 표시도 지나고

 

 

 

14:27분   어래산성御來山城 안내판이 보인다. 산성을 쌓는 석재를 확인할 수 없어 토성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14:30분   어래산 정상.. 마루금은 좌측으로 꺽이면서 이제 웅포와 헤어져 군산 나포면과 함라면의 경계가 이어진다.

   이제 군산 구역으로 들어서고..   웅포熊浦와 나포羅浦.. 모두 금강변에 자리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에 있는 이 표시를 따라 200m쯤 가면 새로운 도청산성都廳山城이 있다는데.. 길이 없어 포기..

 

 

14:36분    묘지를 지나 삼각점봉이 좌측에 숨어 있다.

 

산이 낮아서 그런지 능선따라 계속 임도 조성 중.. 계속 이어진다

 

14:52분    지도상 묘군이 있는 140봉,,  전망이 열린다.. 

 

익산 방향

 

 

묘군을 지나 바로 140봉에서 지도에 나와 있는데로 급좌틀해야 한다. 그런데 급 좌틀 방향으로도 임도 공사중..

   140봉에서 이제 함라면과 헤어지고 군산 서수면과 나포면의 경계로 군산 속살로 들어간다.. 금강기맥도 이제 얼마 남자 않았구나.

 

 

15:07분    조성중인 임도를 따라내려오니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자동차 있는 곳으로 해서 내려간다

 

 

15:12분   소나무 숲 봉을 넘으니 묘지가 나오면서 가야할 마루금을 속시원히 보여 준다. 앞 철탑 방향으로..

 

 

 

수레재까지 철탑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 철탑만 보고가면 되니 참 쉽죠?

 

 

15:15분   방금 본 철탑이 우측에 있는 군산시 서수면 관원리와 나포면 장상리 경계인 방령芳嶺고개.. 지도에는 지명이 없다

 

 

묘지군을 지나 좌측 앞에 보이는 19번철탑으로 빙 돌아 진행한다.

 

 

15:27분    19번 철탑을 지나고

 

 

15:36분   안부를 지나 18번 철탑이 나오면 우측으로 가야한다. 이제 철탑 하나만 넘으면 끝..

 

15:39분  다시 묘지가 나오면 이번에도 우측으로

 

 

15:42분   이번 구간 마지막 철탑 17번을 좌측에 두고 임도를 계속 따른다

 

 

15:45분   이제 임도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해서 탈출해야 한다

 

마루금은 좌측이지만 묘지 우측으로 해서 내려온다

 

그럼 좌측으로 마루금이 보인다. 서수면과 나포면의 경계이다

 

 

수레재 이정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옹고집에서 뒤풀이..  잠시 학창시절로..

 

 

 

 

 

다행이 비가 오지않아 그나마 다행이였던 하루..

산꾼들이 갑자기 길을 걷다보니 적응이 안됐나?

역시 도로를 걷는 것과 산을 걷는 것은 다름을 인정해야만 했던 하루..

또 언제 올지 모르는 또 다른 길을 위해 걷기 연습도 해 두어야 할 듯...

 

생각보다 익산에 남겨진 큰 울림..

백제의 꿈을 역사는 왜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는지..

거대한 미륵사지에서 보았다면

오늘은 근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부의 축적이 남긴 흔적이

피로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남겨진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조선시대에 주산 이였던 함라산 아래에 함열현咸悅縣이라는 관아가 있어

함라咸羅라는 별칭으로 불리웠다고 하는 함열..

그런데 이 조그마한 함열 땅에 부의 상징이던 만석꾼이 셋이나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마실길도 아니고 한양을 가려면 삼부자 땅을 밟지 않고서는 가지 못한다는 말이 회자됐던 사실이

부의 정도를 넘어선 뭔가 특별한 얘기 거리를 남겨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데..

여러 자료를 보면 우선 호남평야의 너른 곡창지대를 꼽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또 빠지지 않는 풍수지리로 봐도

함라 마을을 품고 있는 함라산이 장삼 차림의 스님이 두 팔을 벌리고 있고

농경사회의 상징 소가 누워있는 와우산이 마을을 감싸고

여기에 또 앞으로는 만경강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이다고 한다.

여러 지방의 풍수에 얽힌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나도 처음 듣는 얘기..

스님의 밥그릇인 주발을 들고 있는 곳에 삼부자집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 들어오는 명당 중에서도 명당임을 알 수 있는데..

거기에 옛날 물류의 중심 역할을 했던 금강이라는 큰 뱃길까지 있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것 같기는 한데..

이런 우리가 알고 있는 천혜의 자연이 주는 지형적 조건만으로는 뭔가 해석이 부족하다는 느낌..

아무리 땅이 넓어도 한집 나오기도 힘든데 세집이나??

조선시대에서 근대로 넘어 오면서 급격한 양반계급의 분화와 해체 과정에서 새로운 부농 계층의 등장

농업을 배경으로 장사를 겸한 새로운 계층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자주 접하던 한옥과 다른 배경을 가진 삼부자와의 만남이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하겠다

삼부자가 돈이 되는 이익만 쫓았던 것이 아니라 벌었던 이익을 베풀 줄도 알았다는 사실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중기부터 시작됐다는 판소리 중에서 호남가라는 단가에 나오는

'인심은 함열이요 풍속은 화순이라' 는 구절에 배경이 된 것이다

전주의 한옥마을, 또 만나게 될 군산의 일제의 잔재인 적산가옥과는 또 다른 삼부자집과의 만남..

삼부자집의 근간이 됐던 금강을 드디어 눈앞에서 만났던 구간이기에 더욱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