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기맥3구간 : 돈밧재에서 밤재까지 

 

 

 

언제 : 갑오년(14년) 미틈달  하루 흙날 밤  ~  이틀 해날 (무박2일) 


누구랑 : 땅끝기맥 산우님들         

 

어딜 :  돈밧재 ~ 풀치재 ~ 달구봉 ~ 천황봉 ~ 구정재 ~ 향로봉 ~ 미왕재 ~ 밤재

                         산행거리  22km (칠갑산 대장님 공지내용)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149에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가을의 절묘한 조화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강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갖가지 고운 색깔로 채색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고

가로수들도 서서히 다가오는 만추의 흉내를 내 듯 아직은 덜 성숙한 여인의 자태를 품으려 애쓰고 있고

여기서 끝나면 모두가 마음까지 붉은 색깔로 물들까봐 걱정해주는 이가 있다

산마루에도 도시 빌딩숲 사이에도 걸쳐있는 하늘이다

가을이 되면 여름에 비해 더 높고 깊이 있는 푸름을 더해가는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하늘

붉게 타들어가고 있는 우리네 가슴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라고 애쓰는 가을 하늘

이것도 음양의 조화라면 조화일까?

바위에 악센트를 주면서 솟아 불꽃을 만들어낸 바위사이에 숨죽이며 우릴 기다리고 있을 월출산의 붉은 단풍

음양의 마술같은 조각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월출산으로 여행을 떠나본다

 

 

땅끝기맥 3구간 산행등로    지도 생략..

 

      주자료 : 디지털영암문화대전

 

 

 

것과 달리 아직은 비가 오지 않고 있는 돈밧재에 도착 산행 준비에 들어가고

돈밧재 전전치 돈받재   -835번 2차선 지방도로

영암읍 학송리에서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 영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예전에 한적하던 고개를 지나갈 때 산적들이 돈을 받았다고 해서 돈받재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앞으로 온천이 개발되어 돈밭[錢田]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출발

 

잡목과 산죽구간이 반복되지만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진행에 도움을 준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불티(풀치)

불티  火 峙   영암읍 학송리와 강진군 성전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

불티재를 풀치재라고 부르기 때문에 초치 草 峙라고 쓰지만 대동여지도에는 화치 火 峙라고 실려 있다

풀칫재 서쪽의 노루재(누릿재)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서 草峙(풀지)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13번 국도와 819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불재터널이 있다. 조선 시대 사료에는 화현(火峴) 혹은 화치(火峙)로 기재되어 있다.

 

 

출입금지 안내판을 넘으면서 다시 시작되고

 

누릿재 이정석을 지나

누릿재(노루재) -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리 개신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노루재는 노릿재, 누룻재, 황치(黃峙)라고도 한다

노루재(누릿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黃蛇出林) 형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영암읍 개신리에는 누릿재 폭포 있다

옛날에 죽은 송장이 폭포 물을 맞고 살아났고, 꼽추가 정상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송신탑을 지나 정약용 남도 유배길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점점 강도가 더해지고

 

누릿재 안내판도 있다

 

묘비석이 있는 곳 직전 양면석불이 있다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정신없어 확인치 못하고 여기에서 식후경

금강거사 해주최씨헌영묘비
여기서보면 비석뒤로는 좀전에 내려온 669봉과 주능선암봉이 거북비석뒤로는 양자봉이 조망되는 전망대라는데

비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ㅉㅉ

그 놈의 비때문에 양면석불도 못보고 월출산의 조각품들도 보지 못하고...

 

 

이제 조금 비의 강도가 약해지지만 월출산의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아름다움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즐기지...월출산 속살에 숨겨진 단풍이 비가 오는중에도 역시...

 

달구봉이 어딘지?  구름속에 가려진 달구봉 능선을 지나고

 

드디어 태마팀이 흔들며 건너왔을 구름다리 갈림길

 

경포대 갈림길

금릉 경포대 鏡布臺溪谷  갈림길

월출산이 거느린 여러 계곡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있는 금릉 경포대 계곡이다.

동해안 강릉의 경포대와 이름이 같지만 가운데 한자가 浦가 아닌 布를 써서 鏡布臺다.

강진의 옛 이름을 따서 금릉경포대계곡이라고도 한다.

경포대(鏡布臺)는 월출산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모습이 무명베를 길게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통천문

통천문

통천문이라는 명칭은 월출산 최고봉을 지나 하늘로 통한다[通天]는 데서 유래하였다.

바위굴에 들어서면 월출산 북서쪽 능선과 영암 고을, 영산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황봉

월출산 천황봉

1988년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주요 암석이 화강암이고, 풍화 과정을 통하여 그 형태가 다양하고 기이하여 ‘수석의 전시장’ 같다고도 한다.

월출산의 암석은 주로 화강암의 일종인 맥반석인데, 맥반석은 원적외선을 방출하기에 약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월출산을 한 마리 용에 비유하곤 하는데, 천황봉이 머리이고 구정봉·향로봉·노적봉이 몸통이며 주지봉·문필봉이 꼬리이다.

머리 쪽에는 사자봉·장군봉이 자리하고, 월출산의 비경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광암터도 장군봉 쪽에 있다.

장군봉 위에는 육형제 바위와 거북 바위[고인돌 바위]가 있다

천황봉에서 바라다 보디는 겹겹의 산줄기 위로 해가 뜨는 모습, 번쩍이는 강줄기 너머로 남해와 서해에 흩어진 섬들, 서해의 일몰,

그리고 산 서쪽 아래 구림마을에서 보는 달돋이는 월출산이 자랑하는 장면들이다.

 

 

 

후미로진행하다 너무 늦어진 탓에 이태백님과 함께 선두를 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하고 ...  내림길의 바위들

 

‘호남의 소금강(小金剛)’으로 주저하지 않고 남원 지리산, 장흥 천관산, 부안 변산, 정읍 내장산과 함께

호남(湖南)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우뚝솟은 198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 월출산

월출산의 암석은 주로 화강암의 일종인 맥반석인데, 맥반석은 원적외선을 방출하기에 약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비한 약효를 지닌 맥반석이니, 기가 제대로 통하는 氣通찬 산이다. 과연 풍수지리의 발생지 답다.

 

 

돼지바위

 

월출산을 품고 있는 영암땅은 백제의 왕인박사와 고려의 도선국사를 배출한 걸출한 국사(國師)의 땅이기도 하고

이 산 북서쪽 자락에는 신라 말 도선스님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구림리가 있고 또 그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도갑사가 있다.

백제 사람으로서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한 왕인도 영암 출신으로 역시 이곳의 상대포에서 일본으로 떠났다고 전해진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왜 하필 말단인 아담한 월출산에서 한국과 일본의 건국 운을 튼 국가의 대스승이 탄생했을까 

 

 

남근바위 오르는 길

 

그것은 만물상생의 이치인 음양의 조화에 있지 않을까? 모든 전문가 들이 공감하는 내용인 것 같다

여성을 상징하고 음의 극점인 달을 상징하는 이름을 가진 월출산

이름과 달리 월출산은 양기를 상징하는 단단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하늘이 내리신 오묘한 조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월출산의 비밀을 찾아야 한다

 

 

남근바위의 이태백님 - 함께 뛰어주어 고맙습니다

남근바위

높이 6m 정도의 남근 바위가 있어

조금 떨어진 베틀굴을 마주보며 팽팽하게 서있는 모습이 너무도 남자의 급소를 닮은 모습이고,

돌의 중심부에는 깊은 골이 파져있고, 이층건물 높이의 남근석은 실제의 모양을 크게 확대한 모습 그대로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보는 이마다 경탄과 함께 자연의 조화에 갈채를 보내지 않는 이가 없다.

남근석 위로 돌을 던져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입소문이 퍼져 서로 던진 작은 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바람재 삼거리가 나오면서 바람이 먼저 반긴다

 

단단한 양기의 암석을 불꽃처럼 피어오르게 하면서도 곳곳에 넘치지 않도록 부드럽게 여성적으로 빚어냄으로써

상극의 음양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절묘한 조화를 연출하고 있는 산이 바로 월출산이다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이고,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오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으니...

그 기운을 받아 저 남쪽 바다로 갈라져 들어가는 강진과 해남땅으로 가는 길목에서 무한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려

남도의 또 다른 명소인 강진과 해남까지  품었던 것이리라

 

 

마루금에 조금 벗어난 배틀굴

베틀굴

입구 높이 7m, 폭 3m, 깊이 5m 정도의 여근 바위로 실제로는 굴이며 ‘베틀굴’이라 한다

이 굴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란한 여인들이 베를 짠 곳이다.

굴속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여성의 음부 형상 바위가 적나라한 나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음수굴, 음혈(陰穴)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이미 전 구간 국사봉에서 바위들이 앞 다투어 울퉁불퉁한 톱날을 뾰쪽하게 하늘로 향하고 

풍경에 악센트를 주면서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피워내던 월출산의 당당한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사람들의 가슴에 선명한 점으로 남는 월출산의 자태를 보았으면 됐지 봉우리 하나하나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보는 것만으도 맥반석의 기운을 맘꺽 호흡하며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한 것을... 

 

 

구정봉

구정봉

봉우리 꼭대기의 평평한 곳에 '요(凹)'모양처럼 움푹 들어가 물이 담겨 있는,

마치 동이 같은 곳이 아홉 군데가 있기 때문에 '구정봉'이라 하였다고 『세종실록지리지』(전라도)에 전한다.

구정봉의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서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과 선녀와 마을 총각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온다.

조선 세조 때 수미선사가 온 나라에 가뭄이 들어서 구정봉의 물을 가져다

도갑사 법당에서 기우제를 지낸 후에 가뭄을 극복했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구정봉에 있는 동이들

월출산은 항상 물이 부족하다.

그래서 정상에 그것도 바위에 구멍을 뚫어 물을 머금고 있으니, 절구통 모양의 아홉 개 천연우물이란 의미로 구정봉(九井峯)이라 부른다. 이 바위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외양뿐 아니라 수화(水火)의 기운도 조화를 갖추었으니 명실 공히 음양을 모두 갖춘 산이 아니겠는가.

월출산은 적나라하게 이를 눈앞에서 증명한다. 

뉴시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568215

 

 

구정봉의 우물에 물이 담겨 있다 ; 水火의 조화, 이것도 음양의 조화?

 

구정봉에서 미왕재로 내려오면서 만나는 바위들

 

그럼 월출산의 속살을 이루고 있는 산세속은 어떨까? 우린 또 다른 월출산의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영암쪽에서 정상인 천황봉과 구정봉을 연결하는 동서축의 하늘길에 오묘한 바위들의 불꽃 잔치를 보는 것도 신기한데

태마팀이 걸었던 영암쪽에서 오르다 보면 웅장하고 화려한 바위들의 손짓 발짓에 정신이 황홀경에 빠져 걷게 되는데

정상을 넘어 강진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환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암쪽에서 오르면서 보았던 기가 센 양의 기질만 다 인줄 알고 올랐는데 부드러운 곡선미에 푹신한 흙산

순탄한 모습으로 다가온 강진땅의 산세는 음의 기품있는 산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을 함부로 우리의 시각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는 산들은 우리의 눈으로 불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는 시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핼기장을 지나 억새 군락지인 미왕재

미왕재[尾旺嶺] 540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서 군서면 월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미왕재[尾旺嶺]는 과거 숲이었으나 산불이 나면서 나무가 불에 타고 억새가 들어와 군락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가을의 욕심쟁이도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에 속절없이 가는 세월을 맞이하고 있어 더욱 쓸쓸함을 더해 준다

 

9월에야 줄기 끝부분에 작은 이삭처럼 꼼꼼이 달리는 꽃을 피워

몸집을 서서히 줄여가면서까지 꽃을 더욱 활짝 피우기 위한 정성이 만들어낸

우리가 그렇게 가을철에 즐기는 억새의 자화상인 것이다  

억새는 서로 부대끼고 의지하며 살아가기에 넓은 초원의 주인이 될 수 있었고

거칠 것 없는 언덕을 타고 넘는 바람과 추위를 견뎌가는 청순함으로 기다렸기에

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축제의 전설이 되는 것이다

전설도 이제 이렇게 가는 세월을 달관하고 있을 수 밖에...  가을비가 괜히 을씨년 스러운 것이 아님을...

     초보산꾼의 억새 이야기 중에서    http://blog.naver.com/kmhcshh/220139915633

 

 

우틀하면 도갑사 방향  마루금은 직진하여 출입금지 안내판 뒷 쪽으로

 

음과 양,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영암의 월출산이야 말로 우리에게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나주땅을 가로질러 온 영산강은 영암땅의 서쪽 경계를 이루며 흘러 서해에서 몸을 풀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해 월출산의 기를 살려 영암의 넓은 들을 만들어 주어 먹고 살게 해 준 것이다 

드넓은 나주벌과 지평선에 겹쳐진 나긋한 산줄기에서 ‘남도’를 보았다면 영암땅 월출산에서 남도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것이다

월출산에서 흘러 나오는 온천수 또한 효염이 남다를 수 밖에 없는 것도 다 음양이 어우러낸 뜨거운 사랑의 물이기 때문이다

 

 

강진방향으로 조망이 열린다

 

우리가 전 구간 국사봉에서 걸어오면서 본 월출산의 위용과 오늘 그 위용속을 걸으면서 보았던 속살 

또 다음 구간인 별뫼산을 걸으면서 언뜻언뜻 뒤돌아 보게될 월출산을 표현한다는 것은 나의 능력밖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월출산의 모습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선조들의  시한구절이 때론 맘에 더 와 닿으므로 힘을 빌어 본다

김시습은 “남도에 그림 같은 산이 있다더니, 달은 하늘 아닌 돌 사이에서 솟더라.”라고 읊었다고 한다.

 

 

휴식년재 모니터링판이 있는 도갑산

도갑산 道岬山 401m

산기슭에는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지었고 고려 후기 크게 번성했다고 전하는 도갑사(道岬寺)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에는 해탈문(국보 제50호)과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등이 있다

 

 

진 저수지가  보이면서 월각산이 우뚝 서있지만 돌고 돌고 돌아 가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보았던  바위 봉우리들 사이로 떠오르는 달을 상상해 보라...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날카로운 능선 위에 뜬 둥근 달, 그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한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은 두고두고 잊을 수 있을까 ?

강진군 지명에서도 월각산 월남리 월하리 송월리 월평리 월성마을 대월마을 상월마을등 많은 지명을 접할 수 있다

"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라는 김시습의 노랫소리에 하루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

 

 

길이 없는 안부인 도갑재를 지나 386봉에서 좌틀

 

또한 이중환은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기상이라고 해서 ‘화승조천(火昇朝天)의 땅 기운’이라 했다고 한다

사람이 다가갈수록 더 높이 높이 날아 올라가는 모습으로 영암땅 어디에서 보든 풍경의 주인이 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고려 때의 시인 김극기는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그늘 지어내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알맞도다.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의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며 기이함을 자랑하누나”라며 월출산을 노래했다고 하니...

 

 

주지봉과 성진저수지를 양쪽으로 보면서 진행하다 주지봉 갈림길 - 좌틀

 

전망암에서 주지봉 조망

주지봉 朱芝峰       문필봉(文筆峰),관봉,필봉,성제봉,형제봉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동구림리와 학산면 용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봉우리 모양이 붓 끝처럼 뾰쪽하여 주지봉(朱芝峰)이라 했으며, 왕인박사와 도선 국사가 관련된 ‘문필봉(文筆峰)'이라는 별명이 있다.

풍수에서는 화산(火山)인 첨봉을 학자와 연결하면 붓[筆]으로 보고, 무인으로 풀면 칼[劍]로 본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관봉, 필봉, 성제봉, 형제봉으로도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월각산 방향 - 참으로 많이도 돌아 왔다

 

가야할 능선과 이태백님 단애님 - 드디어 선두 후미와 합류  5명이 함께 진행

 

월각산 오르기 전 묵동재

목동재  墨洞里  영암군 학산면

학산면 묵동리에서 성전면 월하리로 가는 길로 옛부터 먹을 만드는 곳이라 하여 묵동 혹은 먹뱅이라고 하였다.

혹은 마을 북쪽에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어 옥녀가 글을 쓰려는데 붓과 벼루는 있는데

먹이 없어서 마을 이름을 먹뱅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1940년경에 먹뱅이라는 명칭의 어감이 좋지 않아 명동(明洞)이라 개칭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마을이 모두 전소되자,

마을 이름을 바꿔서 재앙이 닥쳤다고 생각한 주민들은 묵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보여진 높이 만큼 힘들게 올라 월각산 갈림길 - 마루금은 우틀 : 드디어 선두팀과 조우

 

월출산을 배경삼아 오롯이 솟아 있는  월각산에 올라 본다

월각산 月角山 456m

전남 강진군 성전면에서 목포 방면으로 가다보면 도로 오른쪽으로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바위능선이 하나 나타난다.

바로 월각산 줄기다. 암반의 곡선미가 아름다운 바위산이다.

또한 조망도 매우 좋아 월출산, 문필봉, 주지봉, 별매산,  월출산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이다.

 

 

월출산이 삼각편대을 형성하며 한눈에 들어 온다

 

영암의 얼굴은 월출산이다. 월출산은 영암(靈岩)이요, 영암이 월출산이다. 온 몸으로 느껴야 하는 월출산이다.

월출산을 비추는 보름달과 그 빛을 받은 바위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적(靈的) 에너지를 섭취하기 때문이다.

삼국 시대 이전에 마한의 땅이던 영암은 백제 때 월나(月奈)군이라 불렸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영암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고려 성종 14년(995)에 낭주(郎州)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현종 9년(1018)부터 다시 영암으로 불렸다.

 

 

주지봉도 당겨보고

 

전설에 따르면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 세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 바위들의 기운으로 산 아래 고을에 큰 인물이 난다고 하여 중국 사람들이 몰래 와서 바위들을 밀어 떨어뜨렸는데,

그중 한 바위가 도로 기어올라갔다. 그 신령스러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산 아래 고을을 영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예 월출산 전체가 한 덩어리의 신령스러운 바위로 보이기도 한다.

음양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 영기(靈氣)가 충만한 바위산인 월출산이 영암산(靈岩山)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아까 확인치 못한 묘봉이 좌측 끝에 걸려 있다

 

별특징없는 마루금이 이어지면서 대월마을 갈림길

 

이제 끝나는가? 월평재와 담 구간 별뫼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출입금지를 지나

 

담구간에는 새벽에 출발하는 관계로 미리 보아 야지....  별뫼산을 조망하면서

 

주유소를 지나 바라 본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를 연결하는 고개인 밤재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오늘의 뒷풀이 장소 - 2구간에 이어 다시 찾은 맛있다고 해서...

 

짱둥이탕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이렇게 땅끝을 향한 3차의 구간도 끝을 알린다

 

 

이제 다음 구간은 만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생명의 끈을 잡으려고 애쓰지만 가는 세월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만추에 쓸쓸이 떨어지는 낙엽과 이미 떨어진 낙엽과의 조화속에

그렇게도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잎새의 의미까지 더해 줄 것이고

어떤 모습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 다음이 기다려 진다

 

또한 걸으면서 문득 되돌아 볼 월출산을 떠남이 주는 쓸쓸함의 무게를 느끼면서 걷는 애상 또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새롭게 맞이할 설레임보다 떠남이 더욱 아쉽기만 한 월출산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오고 있는 이유이다

 

떠남...

때론 놓아야 할 때가 있나니...   더 아프기 전에...

 

이 초보산꾼은 과연 월출산의 무게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아님 기억되게라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저 묻고 또 물으면서 걸었던 월출산의 산행이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곳 영암의 또다른 인물인  白岩 이환의 (李桓儀)가 작사하고 기부의 여왕 하춘하가 부른 영암아리랑이

나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미왕재에서 만난 철지난 억새를 보면서 좋았던 시절 상상속의 하늘거림과 함께...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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