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05 - 고당 구간 : 구절재에서 추령까지..

 

 

언제 : 경자庚子(20년) 견우직녀 07월 스무닷새 금요무박(토요일)

 

누구랑 : 다음수도권산악회 호남정맥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구절재 ~ 사적골재 ~ 고당산 ~ 망대봉 ~ 복룡재 ~ 추령

 

                   더 많은 사진자료는 blog.daum.net/kmhcshh/5296 에 있습니다

 

 

 

얼마나 더우면 염소 뿔도 녹인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찜통더위 불볕더위로 대변되는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절기 대서大暑가 있어

논과 밭의 농작물들은 오히려 우리가 더운 만큼 더 힘을 내어 쑥쑥 자라는데 마침 찾아온 장마 덕에 잠시 숨을 죽였던 삼복三伏 ..

복伏.. 人과犬.. 그래서 옛사람들은 개를 보양식으로 좋아 했나? 달리 말하면 엎드려伏으로 해석하면 푹 쉬는 것이 보약일 것인데..

대서와 속절인 중복이 아우 형님 앞뒤로 함께하니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너도나도 보양식과 함께 산과 들로.. 우리는 호남정맥 속으로.

 

 

 

백두대간 그리고 금남호남정맥(화살표)과 호남정맥(산경표)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전도

호남정맥이란..

전국에 걸친 산천의 계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산경표에 따르면 하나의 백두대간을 축으로 하여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령을

13개의 정맥으로 나누어놓았는데 정맥 중 가장 짧은 약 65㎞의 산줄기인 충청도와 전라도의 젖줄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인

금남호남정맥을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줄기 하나가 분기하여 주화산(조약봉)까지 이어놓고 다시 나뉘는데

북.서로 금강을 따라 금남정맥이 장항과 군산 앞바다로 흘러들고 남으로는 섬진강을 따라 호남정맥이 남해 광양만 앞 남해로 흘러들며

생을 다하게 되는데 역시 호남정맥도 산경표에는 백운산까지만 되어 있어 광양만까지는 신산경표를 따라 마치게 된다

 

 

 

 

호남정맥 5구간 : 구절재에서 추령까지

 

성옥산 직전 갈림봉에서 정읍 속살로 들어온 호정길은 왕자산 지나 해공산 갈림봉에서 시작된 칠보면과 산내면의 경계인 구절재를 들머리로

석탄사 지나 489.6봉에서 옥정호 방향으로 순창의 시작점인 쌍치의 진산인 국사봉으로 길게 능선 하나가 분기되어 추령천의 분수령이 되고

정읍과 순창의 경계를 따르다 이번에는 동진강의 큰 두축인 태인천과 정읍천의 분수령인 칠보산으로 능선 하나를 분기 시키는 고당산에서

내장산을 품은 정읍시와 만나 복룡재 지나 분기봉에서 서편재의 태동 순창 복흥면과 만나 정읍시와 복흥면 경계인 추령에서 마치게 된다.

 

 

 

 

행단마을에서 산내면 능교리까지 양의 창자처럼 99굽이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구절재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고..

구절재 고갯길은 1676년(숙종 2) 현재의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에서 태어난 모은 박잉걸(朴仍傑)이 처음 닦았다고 하는데 고갯마루에 박잉걸의 공덕을 기리는 치도불망비(治道不忘碑)가 세워져 있다. 구절재 아래에는 섬진강 수력발전소(칠보수력발전소)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읍 구절재 [井邑九節峙] (두산백과)

 

 

 

구절재 안내글에 나오는 치도불망비가 구절재 산내면 방향 바로 아래 소금실 마을 입구에 있다. 

 

아직 어둠이 있어 그런지 治道不忘碑 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03:17분    대장금 안내판 옆으로 산행은 시작되고..  장마철 걱정했는데 마침 걷기 좋게 보슬비가 내리고..

 

03:29분    개념도에 나와 있는 철탑

 

03:59분    개념도상 344봉

 

04:13분   장군봉 갈림봉인 좌측으로 변곡되는 무명봉을 지나면..  전 구간에 보았던 칠보면 풍경이 펼쳐질 것인데..

 

04:40분    안부 좌측으로 거목이 자리하고 있는 반곡리 세류(細柳)에서 산내면 허궁실로 넘어가는 고개인 미리재..

 

04:41분   그런데 개념도와 달리 철탑이 미리내 안부 바로 옆에 있다.

 

04:54분    삼각점이 있는 366.6봉..  어제 내린비와 아침 보슬비까지 더해지며 배낭커버 차림으로 변하고..

 

05:21분    사적골재 전위봉인 개념도상 428봉..  소장봉?

 

05:29분    사적골재 직전 휴식 중..  밝아오는 아침에 조망까지 소망해보지만 아직은..

 

05:38분    사적골재.. 이 곳에 사찰이 있어 사적골재인 줄 알았는데 모래가 많이 쌓인 골짜기라고..

 

사적골 방향으로 가면 구절재까지 도로따라 갈 수 있다.  1차 답사시 추령에서 여기까지 와서 걸었던 길... 

 

05:39분    연화정사 앞.. 마루금은 연화정사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석탄사 방향 도로따라 계속 진행

 

05:45분   마루금에 접속.. 숲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계속 도로를 따르면..

 

05:50분   다시 마루금과 접속하고... 마루금은 잠시 도로를 따른다.

 

05:52분    이제 석탄사로 이어주는 도로와 헤어지고 숲속으로..

 

석탄사는 동학과 인연이 있는 듯하다. 동학의 주역이었던 전봉준과 김개남의 집이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관군에 쫓기던 동학군들이 석탄사에 은신했던 장소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욱이 현재 석탄사로 들어가는 구절재 고개는 공주전투에서 패하고 다시 금구전투에서 마지막으로 패한 전봉준이 쌍치로 넘어갔던 고개이고, 역시 쫓기던 김개남도 산내면의 ‘너되(四升)’라는 곳으로 숨는 등 석탄사는 동학혁명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절인 것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 석탄사(정읍)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06:03분   무덤이 있는 곳도 지나고..  여기도 조맘이 좋다는데..

 

 

06:17분   석탄사 바로 위에 자리잡은 감투봉 갈림봉인 개념도상 무명봉.. 500.6봉 시그널이 붙어 있다.

   무제등이라고도 부르는 석탄사를 등지고 있는 500.6봉은 유래로 보아 사자산이라 부르고 있는 듯 하다.

 

네이버 지식에서 '석탄사는 정읍시 칠보면 반곡리 389번지 사자산에 자리한 재단법인 심우회의 선학원이다'에서 나온 듯..

무제등(舞際嶝)이라고도 부르는데 인근 지역에 가뭄이 심하게 들 때면 태인현감이 20리나 떨어진 이곳에 와서 직접 기우제를 주관했다고..

 

 

 

500.6봉에서 감투봉은 시그널 방향으로..  복흥면에서 시작된 추령천이 옥정호 합수지점에서 마치는 짧은 단맥이다.

 

06:28분    임도가 횡단하는 안부도 지나고..  일부에서는 용전재라고 하는 듯... 우측으로 가면 석탄사가 나올 듯..

 

06:37분    거대한 안테나가 우측에 자리잡고 있고..  어찌됐든 칠보면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고..

 

06:45분   좌측으로도 길이 있는 무명봉을 우측으로 우회하고..

 

06:53분    삼각점이 있는 국사봉 갈림봉인 개념도상 489.5봉...  이제 호남정맥이 순창과 인연을 시작하는 곳이다..  

 

풍수지리에서 보면 명당자리가 가장 많은 곳이 순창이라고 하는데..

쌍치의 진산인 국사봉을 중심으로 펼치는 형상이  풍수에서 으뜸으로 치는 임금과 신하가 조회하는 군신봉조(君臣奉朝)의 형상이다고..

그래서 전라북도의 수많은 국사봉들이 선비 사(士) 자를 쓰고 있는데 이 쌍치면의 국사봉만이 스승 사(師)를 쓰는 이유다고 한다.

국사봉은 대체로 옥녀봉에 대비되는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충효를 강조하다보니 임금을 섬기는 맘을 담은 유래도 의외로 많다..

 

 

 

국사봉 방향 단맥은 종암제애서 출발하는 추령천의 지류인 학선천의 분수령이다..

 

07:01분   칠보성당 공소 순례길 갈림길도 지나고.. 천주교 성지로 알려진 오룡마을을 곧 만난다.  여기는 편차 네거리이다.

 

07:18분   개념도상 553봉..  다음지도에는 노적봉

 

07:34분    우측으로 가라하고..

 

그럼 오룡마을이 있는 학선리 방향으로 조망이 열리고..  앞에 보이는 능선은 좀 전 국사봉 라인 중 쌍치면 방향 능선

 

오룡리는 학마을터를 풍수설로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라 하여 마을이름이 오룡리라 했다고 전한다. 마을 옆 동산이 여의주로 다섯 용이 구슬 하나를 보고 경쟁하고 있는 형상이라 한다. 오룡마을은 국사봉과 고당산에서 내재된 산 기운이 다섯 용으로 변하여 마을을 치닫고 있어 오룡마을이라 불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학선리 [Hakseon-ri, 鶴仙里] (두산백과)

 

 

07:50분   무덤 등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굴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굴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접근하기 어려워 학선리 굴재 아래에 있는 반룡촌(오룡마을)으로 우회해서 우측으로 접근..

 

오룡 마을 옆 동산 앞에 천주교 신자 묘소가 있고 마을 위에는 낡은 오룡 공소가 있으며 지금도 천주교 신자가 많이 산다. 오룡 마을 뒤 굴재 바로 밑이 반룡촌으로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할 때 천주교 신자들이 피난을 와서 살았다.  자료 : 다음 백과사전   디지털 순창문화대전

 

 

 

07:56분    모양이 굴같이 생겼다고 하는데..  굴재 접근..  노적봉과 고당산이 만나는 지점이니 굴같이 보일만도 하다..

 

이쪽으로 내려왔어야 하는데..

 

 

굴재에서 칠보면 수청리 굴재마을 방향..  구절재에서 보았던 박잉걸 치도비등 여러 유적이 남아 있다.

개운치에서 식후경만 아니면 답사하려 했는데...   참고 자료 : blog.daum.net/simdak1993/3103129

 

08:44분   굴재에서 고당산 오름길... 잘 닦여진 길은 이어지고..  5부 능선부터 본격적인 오름길.. 그리고 산죽구간도 만나고..

 

08:47 ~ 08:58분    오늘의 최고봉 답게 힘들게 오른 칠보산 분기봉 고당산..  잡목들의 청춘에 가려진 삼각점을 보지 못하는 실수..

고당산高堂山 (칠보산 갈림봉)   칠보면 이별, 정읍시 시작. // 쌍치면 경계 

1866년 천주교인들이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쌍치의 오룡(학선리) 마을에 정착했다. 그중 가장 높은 산이 고당산으로, 고난 받은 사람이 모여 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당산 [高堂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고당산 우측 시그널이 많이 붙어 있는 곳 아래 삼각점이 있었던 것 같은데..  

 

09:04분   고당산에서 조금 내려오면..  내장산이 아닌 정읍의 진산인 칠보산 지맥 분기점인 헬기장..

    오늘 정읍의 진산 칠보산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조망이 열리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헬기장에서 우측 칠보산 방향인데 잡목에 도저히 칠보산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시그널도 없고..

 

 

호남-칠보분맥..  화살표..  정읍천과 동진강 본류에 합류하는 칠보천 분수령이다.

칠보산七寶山

내장산에 비해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정읍의 진산(鎭山)이다. 북쪽은 가파르고 남쪽은 밋밋한 지형이며, 높이에 비해 골이 깊어 예부터 피난골로 이용되었다. 동학농민운동과 임진왜란 때 농민군과 주민들이 피난했으며, 6·25전쟁 때는 빨치산들이 보급루트로 사용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칠보산 [七寶山] (두산백과)

 

칠보면의 지명은 일곱가지 보물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전북 유일의 서원인 무성서원은 무성서원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전북도 내 유일의 서원이다.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

 

 

 

09:22분    역시 청춘을 자랑하는 산죽 터널을 지나 마루금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장군봉 갈림길 같은데..  주의 지점..

 

처음으로 앞 봉이 보일만큼 서서히 걷혀가는 날씨.. 서서히 희망을 준다. 오늘 내장산 최고의 조망터 추령봉에서의 만남..

 

 

09:31분   앞에 보엿던 봉이 지도에는 없는 520.1봉이구나..

 

산죽을 빠져나오면

 

개운치에 내려와 되돌아 본 마루금..  사진상 우측 산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우회해서 내려왔다.

 

 

09:47분 ~ 10:30분    개운치에서 식후경..  가운데 어깨넘어로 고당산 통신탑이 보인다.

 

호남정맥은 여기 개운치에서 시작하여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강천산 구역까지 계속 걸어가야 한다. 

 

10:30분   다시 개운치에서 산행은 시작되고..

 

10:44분    지도상 헬기장

 

10:58분    이제 망대봉 철망은 시작되고..

 

11:04분    통신탑 정문으로 들어서고..  이제 도로따라 계속 내려간다. 

 

망대봉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통신탑 시설..

 

望臺峰..  그런데 오늘은 아직까지는 이름에 어울리는 조망은 욕심..  좌측으로 조금 전 호남정맥에서 분기된 장군봉 방향

 

계속 도로따라 내림길...  

 

도로에 있었던 헬기장은 지워지고 지금은 없다..  되돌아 본 좌측 망대봉가 우측 헬기장봉

 

11:22분    도로와 동행은 끝나고..  임도가 시작되는 두들재(두늘재)..  반사경 뒤로 다시 산행은 시작되고..

 

11:30분  이제 여시목까지 평범한 오름내림이 거의 없는 지루한 길은 시작되고..  지적 경계점

 

11:46분   500대 고지를 걷고 있는 듯..

 

12:03분   여시목 직전 봉 직전 임도길을 만나고..  임도로 우회하는 것 추천..  선답자들도 모두 실패한 마루금 찾기..

 

내장산 권역으로 들어왔다는 안내판이 있고..  여시목 직전봉 오름길은 시작되고.. 

 

 

12:08분   산소가 있는 여시목 직전봉 정상..  여기서 직진이 아니라 어떻게든 좌측으로 내려와야..

  그런데 선답자 띠지는 계속 직진하여 진행하라 하고... 결국 우리도 띠지를 따라갔다 생고생..  

 

12:23분    임도를 따르면 3분 정도 소요되는 길을..  여시목

 

되돌아 본 여시목..  임도따라 내려와야.. 임도 옆까지 계곡이 이어지고 있다..

 

12:45분   좌틀 변곡봉을 지나고..  이제 바닥에 철사줄(삐삐선)에 주의해야 하고.. 철망도 계속 함께 한다.

 

그럼 지형이 바뀌면서 좌측으로 장군봉 라인과 사이로 도로가 지나고 있다.  한동안 계속 도로와 동행한다.

 

13:15분   별 특징 없는 434.9봉과 426봉을 지나 지도상 복룡재..  바로 옆까지 도로가 올라와 있다.

 

 

복룡재까지 작은봉우리를 몇개를 넘었는데 다시 더욱 고도를 높이면서 본격적인 오름길..  추령봉이 우측에서 어서 오라하고..

 

13:35분   그렇게 힘들게 오른 잣나무가 많아 붙여진 백방산柏芳山 갈림봉... 마루금은 우측 추령봉으로..

 

좌측 백방산 방향..  서마 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추령천의 시작점인 동산 저수지로 이어진다.

 

추령봉으로 가는 길... 추령까지 이제 계속 지근점이 나온다

 

추령봉까지 하늘길이라 길이 좋을 줄 알았는데..  혈기왕성 산죽이 펼치는 청춘에 눈높이로 인사까지..  꿈과 현실은 반대..

 

13:51분   드디어 추령봉 앞에 서다.. 그런데 물에 젖어 있어 오를 수가 없다.. 1차 답사 때는 내려 왔었는데..

 

13:59분   우회하다 보니 다시 추령봉 오름길이 보이지만..

 

14:01분   추령봉 갈림길까지 와서 추령봉을 오른다

 

14:05분   추령봉에 올랐다 다시 내려온다.  개념도상 573봉인 송곳바위봉에 지금은 추령봉이라 하는 듯..

 

추령봉에서 내려오다 전망대에서 가야할 마루금 조망... 담 구간 장군봉과 신선봉 직전 좌측으로 호남정맥이 이어진다.

 

좀 더 좌측으로.. 방금 전 헤어진 백방산과 서마제 뒤 500봉 사이로 한의 소리 서편제가 태동한 서마리 하마 마을이 있다. 

 

남원 운봉에서 곡성으로 이어지는 송홍록, 송만갑으로 대표되는 섬진강 동쪽으로 발달한 동편제에 대비해서

주로 섬진강 서쪽인 호남정맥을 중심으로 익산에서 나주 목포까지 발달한 한의 소리 하면 떠오르는 서편제..

특히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영화 '서편제'에서 연기자의 연기임에도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그만큼 한국 정서에 어울리는 소리에 더해 장면마다 보여주는 우리네 고향에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 속에 녹아든 장면들..

서편제의 탯줄이 바로 여기 복흥면 서마리.. 서편제를 완성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이 태어난 곳이다.

무등산 서석대瑞石臺와 같은 뜻의 상서로운말 瑞馬.. 瑞馬가 소리꾼 박유전이 태어날 것을 미리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 영화에서처럼 어려서 눈을 다쳐 외눈으로 지내면서 오직 맘으로 담아내야 했던 서러움과 고독함이 한의 소리로 남지 않았을까?

서편제가 백방산 아래 상서로운 마을에서 발아했다면 완성은 보성이므로 호남정맥 보성 제암산 구간에서 자세히 만나게 될 것이다.

 

 

 

14:16분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바로 우측으로 내려간다.  직진하지 않토록..

 

14:23분   그럼 바로 전망대가 나오고... 보이지 않던 송곳바위와 내장산의 서래봉까지 조망된다. 

 

 

고맙게도 마지막에 내장산 9봉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9봉중 연자봉은 장군봉 뒤에 숨었다.

내장산 최고봉 신선봉이고 특히 망해봉은 서래봉에서 걷다보면 서해를 바라보고 있는 형상의 봉이리이다.

 

14:31분   봉 하나를 우측으로 우회하면..

 

 

14:32분   바로 다시 조망터..  송곳바위와 지도상 573봉인 추령봉까지 조망되고..

 

서래봉과 사이로 멀리 정읍 두승산(좌)  부안 변산(우)이 조망된다

 

 

언제 또 보랴... 다시 내장산 전체 조망..  젊었을 때 겨울이면 3~4년 주기로 월영봉을 제외하고 팔봉을 걸었였는데..

꼭 서래봉으로 시작했던 이유가 그 때만 해도 겨울철 내장산 산행은 금지였다.  국공들이 지키고 있어서..  

 

14:37분   오늘의 마지막 봉을 지나면...

 

14:39분  또 조망점..  송곳바위 뒤로 망대봉까지 조망된다.

 

멀리 변산반도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고..

 

14:44분   우측에 무덤이 있는 곳에서 주의 진행..

 

그럼 이렇게 오솔길이 열린다

 

14:46분    주의 지점.. 임도와 헤어지고 우측으로..

 

14:51분   추령으로 내려서고..  복흥에서 정읍으로 넘는 재로 갈령(葛嶺)이었는데 언제 추령으로 바뀌었는지 모른다고..

 

장승촌으로 내려와 모든 일정을 마친다.

 

장마 구간이라 비예보가 왔다리갔다리..

언제나 그렇듯 다음 수도권 산악회 정맥팀에게는 오던 비도 잠시 비켜나고..

오늘 구간도 삼복더위에 어울리지 않았던 긴 거리..

그럼에도 날씨까지 도와주니 별 탈 없이 끝났지만 끝없는 욕심은 언제나 아쉬움을 동반한다.

산은 크기와 높이, 절경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누구나 정읍의 진산이라 생각했을 내장산이 아니라 칠보산이 갖는 의의가 그래서 더 크게 다가왔지만

오늘 전혀 조망할 수 없어 너무가 아쉬었다

대표적으로 노래에 취해 찾은 청양의 칠갑산에 모든 산우님들이 갖는 의문점...  왜 100대 명산이지?

그만큼 칠보산이나 칠갑산이나 좀 더 속살로 들어가 연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 산들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보여준 내장산 최고의 조망터 추령봉에서 보았던 풍경이 마지막에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모악산은 산이 아니라 고향의 또 다른 이름..

 

대부분의 사람 들은 고향을 등지고 나와 사회라는 전선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살아내는

신기한 줄타기 인생으로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다 보니

막역하게나마 생각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까지도 잊고 살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문득.. 가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는 것은 어쩜 고향 같지 않은 현재 삶의 투영인지도 모르겠다.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면서도 갈 수 없었던 현실이 주는 벽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과거를 추억 삼아 살아가는 것을 보면 원초적 고향이 주는 힘이 아닐까?

유년시절..

모악산을 중심으로 모악지맥과 구성산으로 이어지는 양 날개가 펼치는 아늑한 곳에 우리 집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언제나 첫인사를 건네준 것은 저 멀리 아득하게 모악산 머리위로 떠오른 일출이였다.

싫든 좋든 어떤 감정이 있든 없든 세속에 찌든 단어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모악산이 보일 뿐..

사실 유년시절에는 그게 모악산인 줄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알았지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사회생활을 하면서 13년간 모악산 산신령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모악산 속살에 빠졌지만

유년시절 가졌던 산 너머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으로 다가온 산의 의미 외엔 별다른 의미를 모르고 다녔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이라는 낯선 하늘 아래 또 많은 세월을 그렇게 흐르는 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모악산..

다시 다음수도권 산악회 호남정맥 산우님 들과 다시 찾은 모악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호남정맥을 걸으면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의식 마음속에 자리 잡은 모악산이 나를 지금까지 품어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모악산은 산이 아니라 현실이 주었던 벽 앞에 잠시 잊고 살아야만 했던 고향의 또 다른 이름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도 언제든 돌아갈 고향이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오봉산 정상에서 만났던 붕어섬 옆 망향탑이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호반 도로와 옥정호가 펼치는 환상적인 풍경에 푹 빠져 즐기면서 걸으면서도

나의 유년시절부터 모악산을 통해 반백년의 세월 속에 숨겨져 있던 고향에 대한 많은 생각을

소환하게 된 계기가 될 수 있는 동행에 함께 하신 호남정맥 산우님 들도

맘속에 고향 같은 산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이제 담 구간부터는 호남정맥과 영산기맥에 막혀 모악산이 더욱 멀어짐을 안타까워 하면서..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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