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03 - 오봉 구간 : 불재에서 운암삼거리까지

 

 

언제 : 경자庚子(20년) 누리달 06월 스무이레 금요무박(토요일)

 

누구랑 : 다음수도권산악회 호남정맥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불재 ~ 봉수대 ~ 치마산(607봉) ~ 영암 부락재 ~ 소금바위재 ~ 오봉산 ~ 운암삼거리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5290 에 있습니다

 

 

 

 

구름만 지나도 비가 온다.. 구름장 마다 비가 내린다.. 는 속담이 많은 것을 얘기해 주는 일년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가 지나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시작된 장마 소식에..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명언을 되새김하며 맘을 담아 하늘에 응원을 띄워보지만..

또한 올 몇 해처럼 말만 넘치는 마른장마 또한 경계하고픈 인지상정이지만 모든 것은 하늘의 뜻.. 첨단시대에도 풀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자연이 주는 섭리를 이용해 슬기롭게 살아내며 즐기면서도 풍년을 기원했던 한국 3대 명절 중의 하나인 단오를 맞이하여 길을 떠나본다

 

 

 

 

백두대간 그리고 금남호남정맥(화살표)과 호남정맥(산경표)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전도

호남정맥이란..

전국에 걸친 산천의 계통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산경표에 따르면 하나의 백두대간을 축으로 하여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령을

13개의 정맥으로 나누어놓았는데 정맥 중 가장 짧은 약 65㎞의 산줄기인 충청도와 전라도의 젖줄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인

금남호남정맥을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줄기 하나가 분기하여 주화산(조약봉)까지 이어놓고 다시 나뉘는데

북.서로 금강을 따라 금남정맥이 장항과 군산 앞바다로 흘러들고 남으로는 섬진강을 따라 호남정맥이 남해 광양만 앞 남해로 흘러들며

생을 다하게 되는데 역시 호남정맥도 산경표에는 백운산까지만 되어 있어 광양만까지는 신산경표를 따라 마치게 된다

 

 

 

 

호남정맥 3구간 : 불재에서 운암삼거리까지..

 

 

고원지대의 상징 무진장을 지나 호남벌 입구에 들어선 호정길은 모악산의 호위를 받으며 계속 이어가는 구간으로 고덕산 갈림봉에서 시작된

완주 구이면과 임실 신덕면의 경계인 불재를 출발하여 현지 산악인들에 의해 붙여진 구이면 둘레산길인 '고경오모(고덕산, 경각산, 오봉산, 모악산)' 중

구이면 오봉산 구간으로 오봉산에서 신덕면과 이별하고 호반의 도시로 거듭난 임실군 운암면의 시작으로 구이면과 경계를 계속 이어가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당당히 올린 옥정호의 주위를 이어가는 호반도로와 어울린 옥정호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보면 운암삼거리에서 마치게 된다.

 

 

 

 

 

불재에 도착하여 준비를 하고..

 

 

04:54분   출발..  참숯을 생산하는 곳이 있어 붙여진 여기 불재에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참숯가마 나라 간판이 있고..

옛날에는 전주 등 도시로 공급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지리산 참나무를 7일간 불가마에 태어 얻은 제품이란 설명이 있고..

 

 

나는 전 구간 날머리 확인차..  날머리에서 출발.. 

참숮이 가진 정화력은 장을 담글 때 보통 사용했지만 지금은 냉장고 등 실생활에서도 응용해서 많이들 사용하는데..

 

들머리..  

 

 

04:56분  숯가마와 헤어지고 좌측 임도로 우회..   참숯은 아들을 낳으면 금줄에 한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연기가 나지 않는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신라시대부터 가정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05:02분   그럼 마루금인 활공장 갈림길과 만나고..

 

05:04분   갈림길 우측에 있는 마루금인 활공장에 잠시 올라보면..  활공장 바로 좌측 어깨 넘어에 고덕산 조망되고..

 

 

구이 저수지 뒤로 모악산을 배경으로..  앞선 구간 구름속에 숨어서 그렇게 보여주지 않던 모악산의 정상..

모악산 뒤로 호남평야가 펼쳐지는 반전이 숨어 있다.. 그래서 모악산을 호남평야의 등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좀 더 우측으로..  전주 가는 길과 금성산

 

좌 금성산과  후백제 견훤의 흔적이 남아있는 우측 고덕산..  거기에 견훤의 마지막 못다 이룬 꿈을 품어 주었던 모악산..

 

05:08분   다시 되돌아 오고..

 

05:10분   바로 갈림길..  마루금은 우측이지만 좌측으로 또 조망이 열린다

 

잠시 갈림길 좌측 조망점으로 와보면..  가운데 경각산과 좌측 전망암이 있었던 616봉 조망되고..

 

불재에서 우측으로 넘어가면 신덕면 방향으로 이어지고.. 우측은 치마산에서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분맥..

 

 

가야할 치마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개념도에는 없는 436.1봉을 지나 치마산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듯..

개념도에 나와 있는 치마산은 좌측이지만 높이로 보나 면 경계로 보나 가운데 607봉을 치마산으로 봐야 할 듯..

 

05:16분  좌변곡봉을 우회하면 이제 27번 국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다

 

05:32분   개념도에는 없는 436.1봉

 

바로 잠시 우측으로 조망이 열려...  구이저수지에서 운암삼거리로 이어지는 27번 국도를 담아본다..

 

 

개념도가 많은 것을 담지 못해 빌려온 지도 한장 치마산 개념도..  나중에 항가리 망산마을 마애석불좌상 답사 예정..

치마산 지나 동성마을로 이어지는 작은 불재도 개념도에 비해 자세히 나와있다

 

05:43분   치마산 개념도에 있는 440봉인데 우회길이라 되돌아 올라옴..

 

05:48분   조금 내려오다 보면 우측으로 치마산 개념도상 시루봉 갈림길..  

 

되돌아 보면..  시루봉 방향으로도 길은 좋다

 

05:57분   석축?을 지나면..

 

06:00분    산우님들이 쉬고 있는 치마산 개념도상 삼거리 지점.. 지도를 보면 우측으로 가면 마애불을 만날 수 있을 듯..

 

 

06:11분  치마산 개념도상 원형석축이 있는 치마산 갈림봉 우회..  개념도상 치마산으로 해서 노적봉으로 하산할 수 있다.

    전 구간 갈미봉 월성 저수지에서 시작된 단맥과 함께 옥녀동천의 분수령 역할을 한다.  오봉산 정상에서 확인..

 

 

답사한 결과 사방을 석축이 감싸고 있어 원형석축 확인..  개념도에 봉수대가 440봉이고 헬기장의 위치가 봉수대 자리..

그런데 전북지방 봉수대는 지방 대학에서 답사한 내용이 자주 발표되는데 여기 봉수대는 내용을 찾지못해 아쉽다..

 

06:17분   치마산 정상.. 개념도의 치마산 위치가 연유를 알 수 없지만 높이로 보나 소개된 안내를 봐도 여기를 치마산이라 해야 할 듯..

 

산세의 형상이 말이 달려나가는 모습에서 달릴 치(馳) 와 말 마(馬) 자를 붙인 이름으로 여인이 두르는 치마와는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서울 인왕산 치마바위와 비슷한 옥류동천과 사이를 두고 신덕면의 주봉인 상사봉과 치마산에 얽힌 여러 전설이 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아버지의 병환으로 빌린돈을 갚지 못한 처자가 팔려가게 되면서 평소 맘에 두었던 총각에 변함없는 맘을 전하기 위해 여기 치마산에 치마를 걸어 두고 죽음을 택하니..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꿈꾸던 과거를 준비하던 양반집 도령도 상사봉에 올라 하염없이 치마산을 바라보다 바위로 변했다는..

이 곳을 오르는 연인은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찾고 있다는.. 잠시 후 상사암을 멀리서 만난다

 

 

 

치마산(607봉)  이정표..  자료에 임실 신덕면과 완주 구이면의 경계로 나와 있어 여기가 치마산 맞는 듯..

 

06:21분   바로 헬기장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개념도의 헬기장 위치가 오류로 생각된다.   치마산 개념도 참조..

 

06:32분   헬기장을 지나 급경사길을 내려오면..  첫번째 안부인 동성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안부를 지나고..

 

06:38분   한동안 암릉에 가까운 너덜길도 이어지고..

 

06:55분   두번째 안부인 작은 불재..  준.희님의 작은불재 표시는 찾지 못하고..

 

07:30분   또 다시 봉을 넘고 넘다 보니..  전망암 직전봉인 지도에는 없는 437봉

 

07:42분   지도상 전망암...  직진은 절개지로 좌측으로 우회해야 한다

 

전망암에서... 가야할 마루금인 520봉

 

 

우측으로..  사진상 가운데 담 구간 가야할 묵방산과 도로 우측으로 모악지맥이 마루금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모악지맥은 전라북도 內의 유이한 강인 동진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 되어 호남벌판에 옥수를 공급한다.  담 구간은 동진강이다..

 

좀 더 우측으로 계속되는 모악지맥 라인..  터널 위치로 보아 우측 높은 봉이 독금산 같고..

 

계속되는 모악지맥으로 가운데 국사봉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다..  아직 모악산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좌측.. 가깝게는 갈미봉에서 분가한 단맥이 흐르고 있고 멀리는 금남호남정맥 팔봉산에서 보낸 지맥 산군들..

 

조금 내려오다... 방길제 조망..  

 

08:00분 ~ 08:25분   영암부락재에서 식후경

 

소금바위가 있어 붙여졌다는 영암부락재

 

‘소금바위마을’이라는 예쁜 이름을 두고 굳이 뜻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한자말을 무심히 쓰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더구나 ‘부락’ 이라는 말은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에 의해 들어왔으며 그들은 지배자로서 우리들을 종(從)으로 보고 ‘노예들이 사는 마을’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지도뿐 아니라 우리마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현재 녹색연합에서 진행 중인 ‘백두대간 우리땅이름 찾기’가 백두대간 뿐 아니라 하루 빨리 13개 정맥으로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자료 : 녹색연합 www.greenkorea.org/activity/ecosystem-conservation/baekdudaegan-preservation/679/

 

 

 

이제 오봉산 개념도를 따라간다..  505봉이 2봉이다..

 

 

 

08:36분   식후경 후.. 다시 임도따라 우회를 시작하고..

 

08:41분   마루금에 도착..  되돌아 본 전망암봉

 

계속 이어가야할 마루금..  

 

다시 되돌아 보니... 조금 더 올랐다고 전망암봉 우측으로 치마산에서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단맥..

 

이제 보이지 않던 전망암봉 좌측으로는 모악산이 조망되고..

 

 

독금산과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모악지맥 라인..  여기 산악인들에 의해 이름 붙여진 구이면 둘레산길인

고경오모(고덕산-경각산-오봉산-모악산) 중 호남정맥인 경각산과 오봉산을 지나 모악지맥을 따라가게 된다..

 

09:01분   520봉 전위봉

 

09:10분   520봉 정상..  일부에서 박죽이산이라 한다는데... 전에 없던 이름이라 글쎄..

 

다시 급경사 길..

 

09:39분   소금바위재

 

묘지가 있는 소금바위鹽岩재에서 되돌아 본 520봉

 

09:53분   삼각점이 있는 364.7봉

 

드디어 오봉산 2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 좌측이 2봉이고 우측 봉이 조금 높은 1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또 다시 조망되는 모악산 조망,,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맘으로 계속 가는 길을 안내해 주시고..

 

10:19분   무덤이 있는 오봉산 2봉.. 이제 호남정맥은 3봉으로 이어가며 1봉을 제외한 오봉산 네개의 봉우리를 걷게 된다

 

10:34분   지도에 갈림길인 개념도에는 없는 마당재..  소모마을 방향이 마당재골이라 하는 듯..

 

 

10:41분   가야할 3봉에 숨은 비경인 병풍바위는 여기 전망대에서만 볼 수 있음이니.. 

   3봉에 병풍바위가 있다는 자료만 보고 실제 모습은 볼 수 없었는데 오늘 확인하게 되었다

 

전망대에서 본 병풍바위.. 저 위를 걷게 된다.  아래에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

 

3봉 어깨넘어 담 구간 묵방산도 보이고..

 

병풍바위 전망대에서 본 마당재골을 지나 소모마을 방향

 

10:47분   이번에는 3봉 직전 병풍바위 위 전망대에서 본 소모마을

 

10:50분   이정표..  

 

10:52분   오봉산 중 3봉..  전에 없던 봉 이름이 함께하고 있다.

 

옥류동천 뒤로 상사봉을 담기 위해 등로 좌측 신덕면 방향을 당겨보면..

 

어렵게 상사암 조망..  想思峰은 상사암想思岩이란 전설을 가진 바위가 있어 개념도의 상은봉想恩峰은 한자를 잘못 표기로 보인다

 

11:01분   다시 소모마을 갈림길..  

 

11:04분   붕어섬의 최고 조망터로 알려진 국사봉 갈림길인 오봉산 중 4봉

 

11:09분   네거리 안부..  오봉산 개념도에 나와 있는 절골재

 

 

오봉산 정상인 제5봉 직전 전망.. 붕어섬..  그 뒤로 팔공산에서 보낸 지맥들을 멀리서나마 다시 만나다..

외앗날 (붕어섬)

외앗날은 푸른 호수에 거대한 금붕어 한 마리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외앗날은 팔순의 농민이 사는 유인도로, 용운리에서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살고 계시는지?

 

 

팔봉산에서 분기된 성수지맥 산군들..  두만산에서 분기된 산이 백련산과 나래산이다.

 

 

나래산 방향

 

 

4봉과 국사봉.. 사이로 멀리 육안으로는 마이산이 조망되는데...

 

당겨본 국사봉

국사봉 國師峰   임실군의 신덕면과 운암면 경계(고도:352m).

산 남쪽은 옥정호에 접해 있으며 북쪽에서 발원한 하천이 옥여동천에 합류한 뒤 옥정호로 흘러들어 간다. 현대지형도에서는 국사봉(國士峰)으로 한자를 달리해 표기하고 있다. 인접한 곳에 백련산, 상두산 등의 불교와 관련된 지명의 산이 있다. 특히 가까운 용운리에는 '부처와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불암동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사봉 [國師峰, Guksabong]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

 

 

 

국사봉 주차장 아래로 요산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무량사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호반도로를 걸어보면 어떨까?

 

지금은 붕어섬으로 알려진 외앗날은 어엿한 산줄기의 끝자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풍부한 섬짐강의 물을 배경으로 농사도 짓고 밭농사도 지었을 것이지만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상부에 위치한 관계로 댐높이가 있으니 더 이상 물이 차오르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유인섬으로 남아 있는 것이며 또 이 아름다운 섬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제 전국적이 관광명소가 된 붕어섬, 아픔만큼 성숙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갈미봉에서 분가한 도지단맥(상사봉)의 분수령인 옥녀동천 합수점과 요산공원 망향탑을 당겨보면..

 

현재의 섬진강댐은 1965년에 완공된 것으로 전북지역 내륙 산간지대의 인공호수 섬진강댐과

한때 좁은 땅덩어리에 산지가 70% 이상이라며 땅 땅 하면서 간척지구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부안군 界火島

동진강의 첫 물길이 시작되는 옥정호와 또 동진강의 마지막 종착지인 개화도를 하천이 연결해 주기도 하지만

땅 땅 하면서 간척지구를 만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섬진강땜의 건설로 발생되는 이주민 대책의 일환이었다

고향을 버려야 했던 운암면 일대 수몰민들의 아픔이 있는 개화도가 왜 하필 동진강의 마지막 인지?

정든 고향에서 쫒거난 것도 서러운데 내 고향을 집어 삼킨 섬진강댐 물로 농사를 지어야 하다니...

     

                                               초보산꾼 국사봉 산행기 중에서...

 

 

 

11:26분   오봉산 정상인 5봉..  단체 사진은 삼각지 대장님 작품

 

 

나래산과 그 뒤로 멀리 임실 호국원 앞산 백련산과 우측 용추봉(추월산 넘어)에서 분기된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던 회문산

 

당겨보면.. 

 

 

묵방산까지 이어지는 마루금..  최고봉은 벌목봉인 417봉이지만 앞 350봉에서 옥정호 방향으로 이어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오봉산 개념도에서..   화살표가 도로횡단지점.. 417봉이 벌목봉..

 

 

당겨보면.. 도로를 넘고 물안개길과 헤어지고 다시 도로를 넘고...

 

11:35분   전망대에서 조금 내려오면 바로 갈림길... 운암방면이 마루금

 

생각보다 길었던 하산길... 급경사길을 내려오고

 

11:55분   마루금도 길은 걸은만 하지만..  결국 만나게 되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우측에 보이기 시작하고..

 

11:57분   시멘트 도로와 만나 도로를 횡단한다..

 

도로에서 물안개길로 들어서고.

 

12:03분   물안개길과 헤어지고..  운암대교 방향 표지판에 누군가 호남정맥이라 표시했다

 

12:09분   다시 도로를 횡단하고..

 

모악산도 조망하고..

 

12:27분   더 이상 높은 봉이 없을 것 같은데 여기에 삼각점이 없다.   다음지도에는 350봉으로 나온다

 

우측으로 삼용저수지도 조망되고..

 

12:50분   한참을 내려와 평지에 가까운 곳에 삼각점봉이 있고..  고도를 보니 한참을 낮춘 고도이다..

 

13:00분   작지만 봉우리 몇개를 넘고 다시 건교부라 되어 있는 삼각점봉.. 

 

이제 날머리가 가까워짐을 알 수 있는 나래산도 보이고.

 

13:18분   좌측으로 가면 바로 묘지가 나온다

 

바로 묵방산이 보이는 무덤이 나오면 무덤 아래로 내려간다

 

묘지에서 본 나래산과 새로 건설된 도로가 보이고..

 

나래산은 전라북도 임실군의 운암면 운종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44m로 한자로는 翼山..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맞아 위장하기 위해 군량미를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이엉을 엮어서 둘러놓았다고 한다.

이엉이 전라도 사투리로 '날개'라고 하고 날개가 나래로 변하여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고 한다.

 

 

 

좀 더 우측으로 보면..  운암 삼거리에서 순창으로 가던 구 도로와 그 뒤로 멀리 회문산이 조망된다

 

묘지에서 이렇게 하산한다... 아메랑 위원님 수고했습니다..

 

13:24분   이제 운암삼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아래로 해서 좌측 건물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운암대교가 있는 곳에서 차가 기다리고 있다

 

 

13:28분   도로로 내려와 담 구간 들머리인 운암삼거리 방향.. 좌측이 묵방산 우측이 모악지맥 분기봉

 

모악지맥 분기봉과 모악지맥 라인..  바로 앞 마암대교 밑으로 운암대교 방향 도로가 지나고 있다.

 

 

운암 삼거리까지 가야하지만 운암대교 앞에서 마치고 뒤풀이 장소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총무님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사진은 삼각지 대장님..

 

만만치 않았던 정맥길..

함께 하신 산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호남평야의 등대 모악산.. 역할을 무등산에 넘기며..

 

전주와 완주 그리고 김제를 품은 산 정상 부근에 아기를 안은 모습의 바위가 있어 붙여진 모악母岳산..

초보산꾼에게도 처음으로 허락한 인연으로 젊음의 시절을 함께 했던 모악산이 품고 있는 흔적들은 책 몇 권으로도 차고 넘친다.

금산사를 중심으로 모악산이 품은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보면..

통일신라 때 억압받던 백제 유민의 고통을 달래준 진표율사가 어린 시절 모악산의 힘에 이끌려 들어와 미륵 사상의 개화를 알렸고

경각산에서 보았던 고덕산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후백제 견훤이 품었던 꿈을 접고 흘렸던 눈물을 닦아주던 역사 현장이였던 금산사..

조선 중기 모악산 줄기 제비산에서 너무 혁신적이여 품은 꿈을 펼치기에 이상과 너무 달랐던 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정여립

동학농민전쟁의 패배로 무참하게 좌절된 농민들의 황폐한 정신에 강일순의 후천개벽의 사상을 심어 준 증산교당의 본산이 남아 있고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때 무려 80여 개의 암자가 있을 정도로 사회개혁을 꿈꾸던 사람들이 모여든 무속신앙의 본거지까지..

그런데 한결같이 모악산 중에서도 우리가 보면서 걸었던 모악산 정상을 넘어 김제 방향 기슭에 자리를 잡고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쪽이(김제방향) 山南의 向陽處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김제 평야 소산의 농산물 잉여에 그 물질적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몇 번을 읽어봐도 또 읽어보고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용복 교수님의 해석이 모든 것을 얘기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산줄기를 봐도 모악산을 모산으로 하여 서해로 이어진 모악지맥이 만경강과 동진강의 분수령이 되어 호남 젖줄이 되고

모악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반도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으니 모든 것을 안아준 어머니 산 맞다..

 

호남벌판 전라북도의 큰 산인 모악母岳이 어머니 품속으로 안아주니 전주가 양반 기질로 온순한 성격으로 지역적 특색이 없는 방면에

호남정맥에서 만나게 될 등급을 메기고 싶어도 메길 수 없다는 뜻을 가진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무등無等산이 가진 사회적 평등은

모악산처럼 모두를 감싸 안으려 하는 것은 같지만 이름에서 주는 사회성은 광주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일어선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알고 보면 모악산과 무등산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유일 것인데 이름 하나에도 허투루 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예지를 생각하며

호남정맥길을 걷다 보면 조금은 해답을 얻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럽게 숙제를 안고 이어가 본다.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