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발길 닿는 곳 : 대간령(새이령) 옛길 - 산행기

 

 

 

 

일시 : 정유년(丁酉年 17년) 하늘연달 10월 열사흘 쇠날 ~ 열나흘 흙날(무박)  

 

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6기 대간팀 졸업 축하 태마팀과 함께

 

어딜 : 박달나무쉼터(용대리) ~ 마장터 ~ 대간령 ~ 병풍바위봉 ~ 마산 ~ 흘리령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730 에 있습니다 

 

 

매년 10월 시작과 동시에 개천절 한글날 등 쉬는 날이 많아 이맘때쯤 북으로부터 시작되는 단풍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사랑의 이별인지 가려는 가을과의 이별인지...

거기에 올 해는 추석까지 겹치면서 단군이 하늘을 연지 아마 가장 긴 연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가을과 함께 찾아온 시월도 벌써 중순으로 달려가고... 3450온누리 6기 대간 팀과 함께 졸업축하 산행을 떠나본다

 

 

대간령(새이령옛길 걷기) 그리고 백두대간 흘리령까지...   지도 생략

 

 

 

미시령과 진부령의 사이에 있는 사잇길이라 해서 붙여진 사이령... 새이령이란 새 이름을 얻은 한자로 대간령

7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 동서를 연결하는 고개 중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보다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길

산짐승이 득실거리는 백두대간 대간령을 넘기 전에 길손들의 애환을 받아 주었던 마장터가 옛 영화를 얘기할 뿐

한계령을 시작으로 진부령 미시령이 차례로 포장되면서 서서히 잊혀져갔던 새이령길을 뒤집어 올라가 본다

 

 

 

오늘 대간을 졸업하는 3450온누리 산악회 6기 대간팀을 미시령 어둠속에 남겨두고 용대리로 이동한다.

낮에 오면 용대리의 매바위와 용바위도 감상하며 천천히 올라오면 좋은데...대간령의 출발점 박달나무 쉼터에서 출발 준비

 

오랜만에 마셔보는 새벽공기... 거기에 설악이 품은 하늘은 언제나 넓고 가슴 한켠을 가득 체우는 마력이 있다. 츨빌

 

이제 본격적으로 창암계곡과 만나 계곡을 건너기를 반복한다

 

계곡 초입에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어 붙여졌다는 창암은 밤이라 확인할 길이 없다.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전까지 부대에서 사용하던 유격장이였다고..

 

자세히 보면 구멍이 뚤려 있을려나?  확인하려 언제 또 오지?

 

지점도 지나고

 

낙엽송인 듯... 줄지어 늘어선 나무숲이 새벽의 공기와 함께 설악의 아침맞이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약수터를 지나면

 

바로 우측에 성황당터도 보인다. 고개마다 만나는 친숙한 성황당터는 마을 안녕도 빌지만 길손에게도 맘의 안녕을 주었을 것이다

 

 

위치가 확실치 않은 소간령... 대간령이 큰 사잇길이였다면 여기가 작은 사잇길로 흘리령으로 갈 수 있다. 갈림길은 선명하다

지도상으로는 계곡을 계속 따라가면 될 것 같은데 홀로 답사하신 하늘소님의 전언에 의하면 개고생 했다고...

 

우측으로 마방과 주막이 있어 붙여진 마장터...현재도 살고 있는 민가가 있다.  그러나 어둠만이 출입금지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 대간령으로 오르는 길은 오름보다는 평지를 걷 듯 이어가다 보니 계곡을 수없이 계속 건너야 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만큼 밭(田)이라도 일구며 살아 갈 수 있는 땅도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풍부한 물과 대간길이 품은 깊은 숲속은 천연의 요새가 되어 화전민들의 삶의 보금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마장터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을 새이령길... 길과 주위를 충분히 살필 수 없슴이 안타깝다.

 

 

강원도의 힘... 오리털 파카까지 입고서 아침 식사를 하고...

 

그렇게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나보다. 이렇게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면...사회나 인간이나.. 어둠속에서 살지 않기를...

 

설악의 최북단인 이 곳 대간령은 오히려 단풍이 지고 있다는 느낌...

 

화전민이 살았을 법한 공터에 지금은 억새만이... 날이 밝으니 이제야 보인다

 

그런데 바로 우측으로 작은 폭포가 숨어서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대간령을 앞에 두고 날이 밝아오니 이제야 대간령 오름길이 확실하게 구분할 수가 있다. 이 정도면 말은 충분히 달릴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말을 타고 달리는 그 길... 맞다. 옛사람들은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중로라 했고

마차가 통과할 수 있으면 대로, 그리고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으면 소로라 구분지었다 한다. 그럼 여기는 中路..

 

그렇게 설악산의 최 북단과 그리운 금강산의 최남단의 경계인 대간령에 오르고...

대간령(大間嶺)

강원도 인제군 북면,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경계이고 별칭은 샛령, 새이령, 소파령(所坡嶺), 석파령(石破嶺)

 

샛령 혹은 새이령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진부령과 미시령의 사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샛령·새이령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間嶺)이 되었고, 큰 샛령(새이령)과 작은 샛령(새이령)으로 구분하여 대간령·소간령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에서는 이 고개가 소파령(所坡嶺) 혹은 석파령(石破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료 : 네이버 지식 한국민족무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4644&cid=46617&categoryId=46617

 

 

요 표시가 설악산 최 북단 경계임을 얘기해 주고 있다. 용대리부터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대간령 설악산 방향은 출입금지 구간이다. 누구를 위한 출입금지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지만

 

대간령 옛길을 제대로 걸으려면 고개를 넘어 문암천 계곡이 있는 도원리로 내려 가야 하는데.. 오늘은 대간 길 마산으로 향한다

 

암봉을 오르기 위한 필수 코스 너덜지대가 이어지고

 

바위 문이 동해의 아침을 연다

 

바위에 올라 설악이 품고 있는 계곡들이 만들어 내는 설악의 아침을 만나다. 서북능선 뒤로 주걱봉이 여기서 보니 정말 주걱...

 

 

대간팀이 올라오고 있을 신선봉 방향으로 해는 이제 중천에 떠 있고

 

가야할 마산에서 동해쪽으로 이어가는 능선.. 죽변봉과 바다처럼 떠 있는 해무와 함께하면 어울릴 것 같은 운봉산이 방점을 찍는다.

 

병풍바위봉의 축소판 작은 병풍바위를 연상시키는 암봉 정상이 보이고

 

암릉구간의 기암들

 

우리가 걸어온 용대리 방향 청암계곡을 당겨보면

 

암봉 정상 - 이제 대간길은 좌로 꺽으면서 병풍바위봉으로 향한다

 

조금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대간길만 이정표가 되어 있다

 

좌측으로 병풍바위봉과 마산이 보이는데 병풍바위봉이 조금 높다

 

일천 고지인 병풍바위에 오르기 위해 평지같은 길도 걸어보고..

 

병풍바위봉 갈림길.. 태마산행이라 해도 대간길은 걸어 봐야죠? 병풍바위봉으로...

 

병풍바위봉 정상이 좌측으로 보인다

 

 

남한의 최북단 향로봉과 그 뒤로 그리운 금강산. 우측 앞이 가야할 마산(봉)

 

아직도 설악의 아침은 진행중이고...

 

대간령 방향으로 신선봉 상봉 황철봉 능선이 그리고 사이로 멀리 대청봉?

 

용대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와야 병풍바위를 제대로 담을 수 있다. 조금 더 우측으로 가면 다 보여 좋은데 무서워서...

 

마산으로 가는 내림길... 아까 헤어졌던 우회길과 만나고...100m가면 약수터라는데...

 

마루금샘

 

 

되돌아 본 병풍바위 당겨보고..

 

흘리마을에서 보면 더 확실하다. 3기 백두대간 당시 찍은 사진

 

마산(봉) 직전 갈림길... 마산을 들렸다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

 

 

금강산 제2봉으로 알려진 마산(봉) - 직진하면 죽변봉으로 해서 운봉산으로

대간팀이 걸었던 신선봉은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관리하지만 금강산 제1봉은 신선봉이라고 한다. 통일되면 다시 지도가 바뀌겠지...

 

흘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으로, 말등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마산의 정상석은 바로 좌측으로 있다.

마산봉 정상석이 꼭 금강산 봉우리 하나를 가져다 놓은 듯...고성 8경중 마지막인 8경이 마산봉 설경이라고...

 

내려가야할 알프스리조트와 흘리마을 그리고 진부령까지 조망된다

 

향로봉과 금강산 방향

 

금강산을 당겨보면... 그래도 멀구나... 남북의 장벽처럼이나..

 

죽변봉 방향으로 넓은 공터에는 백두대간 최초 복원지 안내석이 있다

 

이제 리조트가 보이기 시작하고

 

누구나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맘의 표현인 듯...

 

지금은 폐쇄된 리조트건물을 지나 도로에서 좌측으로

 

 

우뚝 솟아있는 산(屹 산우뚝할 흘) 아래 있다는 마을에서 온 지명(洞=里)으로 용대리와 진부리를 이어주던 길로

진부령이 개통되기 전 까지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는 흘리령에서 태마팀의 새이령 옛길 걷기가 끝을 알린다

 

백두대간 마지막 지점인 진부령에서 대간팀과 합류 종산제를 치루고...

 

3450온누리 산악회 백두대간 6기팀의 완주를 축하 드립니다.

 

주유천하님도 고생했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한주대장님 그리고 정이 총무님 수고했습니다. 고성앞바다 횟집에서 마지막 아쉬운 작별의 잔을 나누다

 

 

 

미시령과 진부령의 사이에 있는 사잇길이라 해서 붙여진 사이령...

새이령이란 새 이름을 얻었는데 한자로 풀어쓰면 대간령(大間嶺)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 동서를 연결하는 고개 중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길

그러나 한계령을 시작으로 진부령 미시령이 차례로 포장되면서 서서히 잊혀져갔던 새이령 길

길손들의 애환을 받아 주었던 마장터가 대간령의 옛 영화를 얘기할 뿐...

산짐승이 득실거리는 백두대간 대간령을 넘을려면 산짐승과 대적할만한 사람들이 모여야 했고

모일 때까지는  넘을 수가 없었기에 기다리면서 목도 축이고 시장 끼도 채우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 마장터였을 것이다

마장터 이름 때문에 말까지 팔았다는 것은 너무 앞선 얘기인 것 같고

옛날에는 말을 타고 다녔으니 말발굽 등 소모품을 팔지 않았을까...

그것보다는 동해의 소금의 귀중한 통로가 아니었을까.

거기에 생선까지...

원님도 이 길을 넘어 다녀 고개에 원터가 있었다는 기록은

요즘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제 세상은 바뀌어 차가 모든 이동 수단이 되면서 길은 포장도로에 빼앗기고

한 때 난을 피해 모여 들었던 화전민을 받아 주었지만 그마져도 쫓겨나고

대간꾼이나 산을 찾는 사람이 아니면 찾지 않는 길 새이령..

유일하게 포장이 안 된 대간령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왔던 이유이다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