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발길 닿는 곳 : 만뢰(萬賴山 612M. 진천) 산행기

 

 

 

일시 : 정유년(丁酉年 17년) 누리달 06월 열이흐레 흙날  

 

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보탑사 주차장 ~ 만뢰산 ~ 갈미봉 ~ 태령산 ~ 김유신장군 탄생지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730 에 있습니다 

 

 

이제 여름으로 완전히 들어간다는 하지夏至로 가는 길목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차고 넘친다는 유월 중순

새싹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햇볕을 맘껏 호흡하며 자라나라고 자연이 주는 긴 시간이 반갑기만 한데

하지만 계속되는 가뭄은 이미 자란 생명에게도 지난 주 망종芒種에 심은 곡식도 다시 타들어가고 있는 안타까움

하늘이 주는 선물은 어쩔 수 없는 법... 생거진천의 땅 진천의 숨은 명산 만뢰산으로 산행을 떠나 본다

 

 

 

만뢰산 등로 (참고용)  -  보탑사에서 김유신 탄생지까지...

 

 

 

충북의 중심에 있는 진천은 생거진천生居鎭川의 고장답게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손인 김유신의 고장이다

그래서 김유신의 출생지인 진천에는 김유신 관련 유적지가 16곳에 달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데

산행지 만뢰산에는 김유신 출생지 상계리 계양마을 입구에 장군 터와 유허비 그리고 우물터 연보정이 있고

만뢰산 정상에 있는 진천의 옛 이름인 만노(만뢰)산성은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축조한 것이며

또한 태령산에는 김유신의 태를 묻은 태실과 보호하기 위한 태령산성이 있어 김유신를 그려볼 수 있는 곳이다

 

 

 

 

느티나무 보호수가 안내하고 있는 보탑사 주차장에 도착...

 

보탑사 앞에는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유월이라지만 초여름 날씨... 느티나무 보호수의 그늘 아래에서 인연대장님을 시작으로 자기소개도 하고

 

보탑사 입구에서 보탑사를 배경으로

 

요즘 새로 생기는 절들은 형편에 따라 일주문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기도 일주문 없이 바로 사천왕상이 대신하고..

 

황룡사 9층목탑을 재현했다는 보탑사 3층 목탑...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게 지어진 목탑으로 현존하는 국내 목탑 중 유일하다고 한다

 

 

 

옆에서 본 삼층목탑... 1층 사방불을 모신 대웅보전, 보탑 2층은 법보전(法寶殿), 3층은 미륵 3존불 모신 미륵전

 

좌측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보물 404호인 연곡리 석비가 눈에 띈다

 

비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아 백비(白碑)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보탑사를 품은 계곡을 비천골(지도참조)이라 하는데...고려초기로 추정된다고 하니... 이 비석이 있어 비천골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백비를 떠 받치고 있는 거북이 무늬의 받침돌. 그런데 머리는 말머리? 알고보니 거북 머리의 앞이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연곡리 석비와 보탑사 사잇길로 만뢰산 산행은 시작되고...첫 이정표

 

연곡리 저수지로 떨어지는 지능선에 접속 좌틀...  

 

이제 천안시와 진천시의 경계인 만뢰지맥 능선에 접속하고...보탑사 1.02km 방향으로 올라 왔다

 

만뢰산에 오름길... 만뢰지맥길... 보련마을(연곡리) 갈림길도 지나고.. 극락세계를 연화세계라 하기에 염원을 담은 이름 이라고...

 

계속 우측으로 만뢰산이 보일 듯 말 듯... 만뢰산은 조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신비스런 이름처럼...

 

병천순대를 아시나요? 좌측으로 길이 있는 천안시 병천면 봉황3리 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드디어 우리같은 맥잇기를 하는 산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맥 갈림봉... 그런데 모두 우회해 버린다

 

금북정맥 했던 산우님들은 무척 반가울 듯하다. 금북정맥에 있는 엽둔재(엽돈재)로 갈 수 있는 이정표. 만뢰단맥 갈림봉이다

 

자료 : 초보산꾼 -  금북정맥 엽둔재에서 부소산 가는 길에 분기봉 - 12년에 금북정맥을 했구니...

 

만뢰지맥과 만뢰단맥(약26km) 갈림봉 : 문안산이 있어 일부는 문안분맥이라고..

 

 

이제 천안시 병천순대와 문뢰지맥과 작별하고 만뢰단맥(문안분맥)길 따라 진천의 속살 만뢰산으로...헬기장이 먼저 반긴다

만뢰산성이 있다고 하는데.. 헬기장 가장자리로 조금 흔적만 남았을뿐...자료를 보면 주위에 파편들만 있다고 한다

만뢰산성(아흘산성伊訖山城)

병자호란 당시 만노산성(萬弩山城)에서 유창국(柳昌國)이 조감(趙瑊)과 함께 적과 맞서 수천 명의 피란민을 구했다고 전한다.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축조한 만노산성 의 만노는 진천의 옛 이름이다.

만노산성에서 김서현 장군이 백제군을 방어했고, 김유신 장군은 만뢰산전투에서 백제군과 싸워 승리했다.

산성 형태는 정상부를 둘러싼 태뫼식이며 계곡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성했다

자료 :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310017001

 

 

진천에서 가장 높은 만뢰산 정상

만뢰산萬賴山 612M   

만뢰산 주 능선이 충북과 충남(천안시)의 도경계이지만 만뢰산은 경계에서 약간 벗어난 진천땅 보련마을이 있어 보련산으로 불린다

만노산(萬弩山),금노산(今奴山,今弩山), 금물노산(今勿奴山) 등 다른 이름으로 고구려시대에 지명을 본떠서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본래 고구려 땅이었던 진천 지역이 신라 땅이 된 뒤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만노태수로 부임하였는데

북으로 고구려, 서쪽으로 백제군과 대치하면서도 군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군민들이 평화롭게 지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자료 : 디지털진천문화대전  http://jincheon.grandculture.net/Contents?local=jincheon&dataType=01&contents_id=GC02700057

 

 

헬기장에서 담아 본 연곡지와 좌측으로 가야할 태령산, 문안산으로 이어지는 만뢰단맥 능선이 조망된다

『세종실록지리지』의 태령산(胎靈山) 관련 기사에서 '만노군태수(萬弩郡太守)'라는 내용이 있어 이 지명은 당시 이곳에 있었던 만노군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병자호란 당시 류창국공과 조감공이 호병과 싸워서 승리하여 수천명의 피난민을 구하였다고 하는데 그 후에 만인이 힘을 입었다 하여 일만 만(萬)자 힘입을 뢰(賴)자를 써서 만뇌산이 만뢰산으로 변하였다는 얘기도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뢰산 [萬賴山, Malloesan]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2010. 2., 국토지리정보원)

 

 

시간도 시간이고... 쉬지 않고 올라온 길... 휴식 후 정자에서 담아 본 북쪽 금북정맥 라인을 담아 보고

 

보련골 갈림길

 

정상에 이어 하수문(水門, 숨은) 마을 갈림길 이정표 - 백곡면 대문리

 

갈미봉

 

백곡면 구수리 갈림길 이정표도 있다

 

갈미봉에서 내림길... 주의 지점 - 우측으로..

 

철탑이 지나고 있는 임도 - 바로 우측이 쥐눈이 마을

 

자연 생태공원으로 내려 갈 수 있는 안부

 

이제 얼추 멀어진 만뢰산

 

백곡면을 따라 종주 하는 듯... 백곡 저수지로 내려 갈 수 있는 백곡환종주 갈림길

 

백곡환종주 갈림길에 이정표를 보니 태령산이 아직도...

 

태령산 직전 김유신 탄생지 갈림길 - 태령산에 들렸다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

 

태령산에서 태령산 산행팀 모두 단체사진 - 나마스테 고문님 사진 감사합니다.

 

이곳 주위의 석축형태가 태아(胎兒)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태를 묻은 태실...태실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도 있다고 한다

 

태령산 胎靈山은   김유신의 태를 여기에 묻어 생긴 이름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산성(山城)이라기보다는 태실을 둘러싼 돌담의 형태인데 아래에서 석축을 담기가 불편하다

 

태령산에서 막걸리와 함께 배낭털이 후 다시 되돌아 온 탄생지 갈림길

 

태실 이정표를 지나 연보정 갈림길... 잠시 연보정을 보기 위해 좌측으로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이 만노군의 태수로 있을 때, 처소에서 사용하던 우물로 전하고 있다. 앞에 연못도 있다

 

축조 형태로 보아 신라시대의 것을 추정된다고 한다. 지금 전국은 가뭄중.. 연보정은 결코 마르지 않는 샘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국궁장 화랑장도 담아 보고

 

화랑장 앞에서 직진해야 김유신 탄생지를 볼 수 있다

 

바로 탄생지가 나온다. 진천읍 상계리 계양(桂陽)마을로 큰 담을 쳤다하여 ‘담안밭(장군터·장수터)’이라 불리우고 있다.

 

 

보탑사 방향으로 복원된 김유신 생가가 있다. 생가 뒤가 김유신이 말을 훈련시켰다는 치마대 馳馬臺?

자료: http://cafe.daum.net/garakseonsan/3GF3/38?q=%C5%F5%B1%B8%B9%D9%C0%A7%20%C4%A1%B8%B6%B4%EB

 

반대편에는 최남선의 글씨로 알려진 김유신의 유허비가 있다

 

 

뒤풀이 장소로 가기 위해 도로 좌측으로 해서 내려오다 뒤돌아 본 태령산

 

 

화랑장 주차장을 지나 다시 도로와 만나는 지점 도로 넘어 김유신이 무술 연습을 했다고 전해오는 지도상 투구바위?로 추정되는데...

자료가 드물어 정학한 위치는 다음 기회로...

 

다리를 건너면 오늘의 뒤풀이 장소이고... 더 도로따라 가면 화랑무예 태권도 성지가 조성되어 있다

 

 

곤드레 밥집에서 뒤풀이로 만뢰산 산행을 마치게 된다

 

 

 

김유신 장군은 오늘 산행했던 만뢰산 날머리인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595년에 태어났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김유신이기에

이 곳 계양마을에 남겨져 있던 그의 흔적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김유신의 설화 못지않게 태어난 과정이 더 흥미롭다

김유신의 엄마 아빠에 대한 얘기이다

 

김유신의 조상은 신라에 의해 망한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라고 한다

따라서 아버지인 김서현(金舒玄) 장군은 가락국 후예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이였다.

그러니 대 서라벌 공주인 딸이 망한 나라의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고 하니 

아마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일개 다른 집안도 아니고 왕족의 피를 받은 딸이...

몰론 김서현도 왕족이였지만 이미 망하고 없어진 나라..

그래서 당시에 한편의 소설 같았던 주류와 비주류 두 분의 사랑얘기가 회자 되었던 모양이다

 

아버지 보다 어머니인 만명萬明부인의 열린 생각이

어쩜 김유신이라는 영웅을 탄생하게 한 힘은 아니었을까?

 

나는 오늘 김유신의 흔적을 찾아 산행 겸 답사했던 만뢰산에서

김유신의 영웅적 흔적보다는

김유신 어머니이신 만명부인이 보인 시대를 앞서갔던 생각...

기존의 틀보다는 앞을 바라보며 선택했던 용기가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작금에 어울리는 화두는 아닐지

잠시 생각했던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불통의 시대가 가고

이런 열린 생각을 가진 소통의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기대하며...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