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발길 닿는 곳 - 금학산 (金鶴山 철원) - 한북정맥 완주기념 태마산행

 

 

 

일시 : 병신년(16년) 물오름달 스물엿새 흙날         

 

인원 : 혼자서

 

어딜 : 동송 버스터미널 ~ 마애석불 ~ 금학산 ~ 대소라치 ~ 지장봉 갈림봉 ~ 고대산 ~ 신탄리역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031 에 있습니다

 

 

춘분이 지나면서 계절은 속일 수 없음인지 춥다고는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감촉은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벌써 남녘에선 화사한 봄꽃소식을 전해 주어 서울도 만개하는 꽃소식을 들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기대하게 하고

3월에 맘껏 물이 오를데로 물이 오른 나무들이 잎을 피운다는 4월을 맞이하기 위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초보산꾼의 궁예의 흔적을 찾아서도 마지막으로 태봉국의 진산이 될 뻔 했던 철원의 진산 금학산으로 떠나본다

 

 

 

금학산 고대산 등로

 

 

해발 395m에 불과한 백마고지가 중요했던 것은 철원땅 3분의 1을 차지하는 지평선이 보일만큼 넓은 평야지대에 있다

지금은 평야지대 동서로 비무장지대가 길게 누워있고 들이 끝나고서야 드디어 강원도 첩첩산중이 시작되는 곳 철원

이미 명성산 궁예능선 궁예봉에서 만난 신철원이라 불리는 군청이 있는 갈말읍을 만나 봤고

이제 역사 속 철원의 두축 동송읍과 철원읍을 끼고 있어 정상에서 전역을 볼 수 있는 철원의 진산 금학산金鶴山

왜 도선이 궁예에게 금학산에 도읍을 정하면 국운이 300년을 넘는다고 했는지 확인하려 길을 떠나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06:59분 3000번 버스로 6400원 지불하고 오늘은 포천에서 환승을 한다 - 포천 종합터미널

 

매표소에서 4900원 지불하고 3003번 버스로 08:30분행 동송터미널로...  포천 터미널 시간표

 

관인면을 통과하면서 차창밖으로 담아 본 용정산과 우측으로 가야 할 금학산

용정산 (龍井山)  동송읍 상로2리
금학산에서 줄기 하나를 남으로 뻗어 내려 높은 봉우리에 용정이라는 우물이 있어 붙여진 용정산이 자리한다

이 우물에서 용마가 나왔다는 전설이 전하고 용마암이 남아 있는 곳으로 일제시대에는 구리와 아연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특히 용마와 관련되어 남이 장군이 용마를 잘 조련헤서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남북이 분단된 후 철원의 중심지가 된 곳인 동송시외버스공용터미널에서 하차하여 나오면 우측으로

 

터미널에서 우틀하면 바로 앞에 철원 여자 중.고등학교 이정표가 전신주 위에 붙어 있다

 

터미널이 있는 동송읍 이평리에 남아 있는 궁예전설들  

자료 : 포천신문 - 지명에 관련된 자료들  http://www.ipcs21.com/default/index.php

 

만가터(지역) - 금학산 밑에 있는 마을로 궁예황제가 이 곳에 도읍을 정하였다면 일만 가구가 넘는 큰 도성이 될 곳으로 전해지는 지역(現, 동송읍 이평리)

금학산 - 궁예황제가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금학산을 진산으로 삼고 궁성은 천황지에 정하고 도읍을 만가대 쪽으로 하면 300년은 통치 할 것이며,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25년 밖에 못 갈 것이다라는 풍수지리설이 있었으나 궁예황제가 고집을 부려 진산을 고암산으로 정하자 금학산이 노하여 산에서 나는 곰취 등은 써서 먹을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음.(現, 동송읍 이평리, 해발 947m)

 

 

철원여중고 이정표따라 우틀하여 2차선 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간다

 

10분정도 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철원여자 중.고등학교 정문이 나오고 사잇길로 계속 직진

 

5분정도 더 오르면 약수터와 금학정 활궁장이 나오면 우측도로따라 올라간다. 좌측은 금학정 가는 길

 

자연도 3년상을 했나 보다. 금학산의 전설을 읽어보니... 궁예의 흔적들...

 

지도대로 비상도로인 임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마애불을 만날 수 있는 능선에 오를 수 있다

 

운동시설이 있는 금학체육공원이 나오고

 

좌측으로 금학산신 제단이 보인다

 

체육공원을 빠져 나오면 위에 비상도로인 임도에 있는 이정표 따라 마애불 방향인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임도를 계속 따르면 솔밭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마애불로 오를 수 있는 삼거리에서 우틀 숲속으로

 

 

첫 이정표가 나오면 좌측 마애불 방향으로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계속 오르면 능선을 만나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바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오늘 산행의 목적인 마애불의 뒷모습이 보인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3호인 금학산 마애불 - 동남향 방향으로 자연석에 선각(線刻)으로 새긴 고려의 마애불이다

금학산(金鶴山 947m) 마애불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3호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 산76번지

궁예가 새운 태봉국의 진산의 후보지로 거론되었던 금학산에 남아 있는 마애불의 흔적들인데...

역사가 남긴 기록에는 전혀 나와 있지 않으니... 왜 일까?

신라말기의 양식과 흡사하다는데서 어떻게든 궁예와 관련지어 생각되어지고

이정도의 마애불상을 이렇게 높은 곳에 세울수 있는 사람은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궁예밖에 없다는 추측이다

- 포천신문 -

 

 

 

왜냐하면 왕건이 세웠다면 벌써 성역화가 되어 있었겠지? 각종 기록에 미화를 더해서...  

 

4.5m 높이의 마애불이 이 곳에 정좌해 계시면서 앞의 전망암을 통해 포천땅을 바라보고 계신다

 

전망암에서 바라본 포천 동송읍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주인을 잃어버린 마애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리를 봉안했을 부도의 부재들인 연화문 등이 흩어져 있어 마애불만 모신게 아니고 암자가 있었을 것이다

 

몇 개의 석축으로 추정되는 돌도 있는데 역사의 자료에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폐자의 역사도 역사인데...

 

마애불 옆 숲에도 무너져 내린 석탑의 잔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고 한다

 

다시 올라오며 본 마애불의 옆모습 - 머리 부분은 다른 돌로 만들어 몸통에 꽂아 결합시켰다 한다.

 

이제 정상까지 힘들게 올라 갈 일만 남았다. 계속 오름길 뿐...

 

묘지도 지나고 능선갈림길도 지나고 쉼터

 

금학산 정상에 있는 군부대에서 물건을 나를 때 쓰는 레일를 만난다 - 좌측은 용정산에서 부대를 우회에서 올라오는 길

 

정상을 비롯 헬기장등 어디에서 봐도 조망이 좋은 금학산은 좌측 부대앞에 정상석이 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있어 많은 녹객들이 이 곳에 들려 잠시 쉬었다 가시며 많은 글을 남겼다

금학산(金鶴山 947m) 

다른 거의 모든 자료에서는 金鶴山으로 쓰고 있는데 금강산에 유람을 떠났던 윤휴라는 분이  琴鶴山이라 쓸만큼 아름다운 산

동송읍에 위치한 산으로 학이 날아와 앉아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철원평야에 뿌리를 두고있어 더욱 돋보이는데

오히려 학이 날아와 알을 품어야 하는데 알을 품을 수 없을 만큼 더욱 높고 험하다

도선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금학산을 진산으로 하여 도읍을 정하면 국운이 300년을 넘는다 했었는데 역사는 궁예의 편이 아니었다

 

 

오지리 방향 금연저수지도 보이고 - 동송읍 오지리에 태봉국의 골(官)이 있던 곳인 '골말' 마을이 남아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 헬기장 방향으로 - 여기서 컵라면으로 잠시 휴식후 현지 주민과 지형에 대해 알아보고...

 

헬기장에서 본 가운데 동송읍 양지리와 이길리로 이어지고 있고 좌측으로는 백마고지 방향, 좌.우로 철원평야

양지리와 이길리에 남아 있는 궁예의 흔적들...

 

굴랑꿀(軍糧洞, 지역) - 궁예황제가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세력을 확장할 때 이 산에 군량이 많은 것처럼 산을 덮어 전술용으로 이용한 산(現, 동송읍 양지리)
성머리(지역) - 궁예황제가 군마의 사육과 훈련장으로 축조한 성이 있던 곳(現, 동송읍 양지리)

왕재고개 - 궁예황제가 반란군 왕건에게 쫓겨 평강 방면으로 넘어가기 위해 넘었던 고개(現, 동송읍 이길리)

 

 

현지 주민이 헬기장에서 고대산 방향인 좌측으로 보이는 봉우리 세개가 있는 곳이 백마고지란다 - 당겨보면

 

동송읍에서 바로 올라오는 매바위 코스에도 왕건에게 쫓기던 궁예가 재기의 소원을 빌던 곳인 칠성대가 있다

 

헬기장에서 정면에 보이는 고대산을 목표로 다시 산행은 시작되고

 

좌측으로 조금 눈을 돌리면 보개산의 또 다른 축 환희봉(지장산) 능선

 

내림길, 얼어 있던 흙이 녹으면서 거기에 자갈들이 미끄럽다. 그런중에도 이렇게 고지마다 조금이라도 생각하면서...

 

대소로(라)치 고개

대소로(라)치(大松亭峴)  좌측이 담터계곡 우측이 사문안 계곡

이제 철원 동송읍을 벗어나 경기도 포천 관인면과 강원도 철원 철원읍의 경계를 따라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 시작

대광리 윗대광골에서 내산리 대송정 마을로 넘어다니던 고개로 대송정 마을에 있던 큰 소나무로 인하여 大松峙라는 합성 지명이다

한국전쟁 전까지도 집성촌을 이루었던 배천 조씨(白川趙氏)들이 산제사를 모시던 큰 소나무였다고 한다

 

 

헬기장이 있는 보개지맥상의 보개산 - 경기도 포천 관인면과 연천군 신서면 그리고 철원 철원읍의 삼각지점

보개산  寶蓋山 (헬기장 ) 보개지맥  지장산, 종자산 갈림길 

'보배로 가득 뒤덮인 산'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영험을 가득 간직한 산을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옛 보개산(寶蓋山)의 최고봉은 지금의 금학산(金鶴山,947m)이고 보개산 주위의 모든 산군을 통틀어 보개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동송읍, 연천군 연천읍과 신서면에 걸쳐 있는 산줄기들로 연천군이 70%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보개산에는 밤하늘 별처럼 사찰의 불빛으로 빛날 정도로 많아 숙종 때 김창협, 미수 허묵등이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흔적이 하나도 없다

 

 

보개산의 산군중 외보개(外寶盖)의 최고봉인 금학산을 담아 보고 - 그 뒤로 처음으로 명성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내보개(內寶盖)의 최고봉은 내산리에 있는 환희봉(歡喜峰, 877.2m)으로 일명 지장봉 또는 지장산이라 부르고 있다

계속 더 내려가면 궁예의 전설이 남아 있는 일명 씨앗산으로 부르는 종자산도 조망된다 - 언제 한번 보개지맥 걸어봐야 하는데...

보개산 환희봉 (歡喜峰) - 일명 지장산 (地藏峰877.2m) 연천과 포천의 경계

일부 지도나 산악인 사이에 불려지고 있는 지장산은 일제 때에 생겨난 엉뚱한 산이름으로 여지껏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지도에는 모두 보개산 환희봉으로 나와 있고 현재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화인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민지가 석대에서 지장진신의 체현을 감동적으로 목격하고는 환희심이 절로 일어나 불사를 일으켰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민지의 '보개산 적대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지장보살(地藏)이 현신한 기도처'라는 의미로 지장산이라고 불려지게 된 것이다

 

 

조금 전 대소라치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헬기장 보개산에서 담아본 북쪽 사문안 계곡

사문안(四門安) 계곡    동송읍 사문안(四門安)

첫 번째 이야기는 서기 620년에 건립된 안양사(安養寺)의 문안 이라고 해서 사문내(寺門內)라고 불리면서 지명이 유래 됐다는 전설과

두 번째로는 담터, 율리리, 화지리, 이평리 등 네 곳으로 통한다고 四門安으로 불렸다고 한다.

 

 

남쪽방향 지장봉과 금학산 사이에 있는  산짐승을 사냥후 먹고 버린 뼈로 집주위에 담을 쌓았다는데서 연유한 담터계곡

 

포천 관인면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경기도 연천 신서면과 철원 철원읍의 경계를 따라 고대산으로 이어간다

 

지형은 바뀌어 이제 고대산 남쪽 줄기인 우측의 돌맹이가 많이 있어 붙여진 석봉과 지장봉 사이 동막골계곡도 담아보고

 

외돌기? 선바위?    바위지대 안부를 지나면서 식후경

 

두 개의 헬기장을 지나 경기도 연천군 내산리와 대광리, 철원군 철원읍 율리리와 경계에 있는 고대산 정상

 

고대산(高臺山)  신탄리[新炭里] 새숯막

고대산(高臺山)의 유래는 "큰고래" 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薪炭)지명에서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땔나무를 사용해야만 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게하는 고랑을 고래하고 하는데

그만큼 고대산에 땔나무인 임산자원이 풍부했다는 얘기이고 또 그 목재를 사용하여 숯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마을이 신탄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철도가 생기면서 숯가공이 더욱 번창해서 주막거리가 새로 생겨 '새술막[新酒幕]'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고대산은 "높은 별자리와 같다" 는 뜻과 의미가 담긴 곳이라는 뜻의 고태(高台)라 표기하기도 한다

 

 

이제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고대산 3코스로 넘기고 1,2코스인 좌측으로... 연천군 속살로 들어 온다

 

고대봉 전망대에서 철원의 명소들을 만날 수 있다 - 역시 고대산도 사방을 볼 수 있다

 

하산하게 될 1,2코스 능선

 

나라나 개인이나 아픔만큼 성숙해져야 하는데... 요즘 하는 것들을 보면... 날 샛다

 

고대산의 3개의 봉우리중 삼각봉과 철쭉지대를 지나 대광봉과 고대정

 

고대정에서 우틀하여 2코스로 내려오던 중 칼바위에서 본 신탄리역

 

어느 분은 말등바위를 실감나게 잡았던데... 사진 솜씨가 없어서... 담 기회에

 

 

조금 내려오면 3등산로와 만나고 비둘기 서식지대를 지나면 날머리 - 1코스의 시작점

 

매표소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주차장을 지나 다리를 건넌다

 

이렇게 생태산촌마을로 들어가면서 금고종주산행을 마친다

 

계속 길은 이어지고

 

철도를 건너야 한다

 

철도를 건너 앞쪾으로 돌아 오면 오늘의 종착역 신탄리역

 

한 때 경원선의 최종 종착역으로 철마는 달리고 싶다...였는데...

이제는 그 역할을 백마고지역에게 넘기고

거기에 18년에 월정역까지 완공되면 그 때 다시 한번 와 보고 싶은 곳...

 

서울과 원산을 연결한다고 하여 붙여진 京元線 철도

분단이 원산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고 또 서울까지는 지하철에 뻇기고,,,

그래도 아무리 미워도 언젠가는 함께해야 할 동포가 살고 있고

그리운 금강산이 있는 북녘땅까지 계속 이어가야 하니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이렇게 계속 이어가고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1,000원을 지불하고 17시08분차로 신탄리역을 빠져 나온다.

소요산역에서 갈아타고...집으로

 

 

 

 

궁예의 흔적을 찾아서... 를 마치며

 

삼국사기와 같이 인간에 의해 기록된 역사가 진실이라고 지금까지 믿어 왔다

국민학교부터 받아온 반공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아 온 나에게는 더욱 그랬다

나라님이 흥분하면 나도 덩달아 흥분해야 했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손으로 눈을 가려 산을 볼 수 없게 할 수는 있어도

산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치열한 전투나 생존싸움에서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역사 또한 승자의 몫이기에 패자는 아예 무시되고 흙속에 감춰진다

한때 태봉국이라 이름을 바꿀 정도로 옛 고구려의 기상을 되살리며

한반도의 중심축을 꿈꾸었던 궁예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한북정맥을 걸으면서 보았던 철원과 포천 땅에 남겨진

수많은 궁예에 관련된 전설 같은 얘기들과

정사에서 알려주지 않았던 역사 속 이면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진실들

숲속 친구들만이 알고 있을 진짜 숨겨진 역사적 진실

흙속의 진주처럼 하나 둘씩 밝혀지는 역사의 진실들이 살아 있기에 

그 진실의 하나라도 느끼고자 걷고 또 걷는다

역사의 평가는 열심히 공부하신 사학자분들의 몫이라고 생각 한다

다만 해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발로 뛰는 것 밖에 없었고

직접 걷지 않고 어떻게 숨 가쁘게 돌아갔을 역사의 현장을 느낄 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며 걸어 왔던 궁예가 남긴 흔적들...

궁예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길이다 보니 또 다른 궁예의 미화는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되지만

민초들의 하고자 했던 진실들을 모두 승자들이 감춰버렸기에

전설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던 궁예의 흔적들이기에

지금도 혹 또 다른 역사적 진실들을 감추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

걷다 보면 느낄 수 있음이다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고자 하는 과정일 뿐...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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