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100대 명산 - 명성산(鳴聲山:923m 철원) - 한북완주기념 태마산행

 

 

 

일시 : 병신년(16년) 물오름달 엿새 흙날         

 

인원 : 둘이서

 

어딜 :  강포3교 ~ 궁예능선 ~ 궁예봉 ~ 명성산 ~ 약사령능선 ~ 느치계곡 ~ 삼부연폭포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014 에 있습니다

 

 

 

경칩驚蟄은 24절기중의 하나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속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날로 계칩(啓蟄)이라고도 한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맞물려 예민한 땅속 개구리들이 천둥소리로 들려 튀어 나온다는 말도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므로 농기구를 정비하는 등 농사를 준비하고 경칩이후에는 불은 놓지 않아 어린 생명을 보호했다고 한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민간에서 도룡뇽이나 개구리 알을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여 먹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시대에 따라 사회환경에 따라 변하는게 세상사인데 궁예의 한맺힌 울음소리로 가득한 명성산으로 길을 떠나본다

 

 

 

참고지도 : 적색등로따라 - 들머리 강포3교  날머리 노치고개

 

 

철원, 동송, 갈말, 김화읍과 서면, 근북면 그리고 북한 땅 평강군 남면에 걸쳐 있는 강원도에 있는 철원군

일제에 의해 계획도시로 한때 교통의 요충지였으나 지금의 철원은 전쟁 후 갈말읍 일대에 새롭게 조성되어 신철원이라 부르고 있다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첩첩 산중이지만 철원은 2억평이 넘는 가장 넓은 평지를 가진 축복받은 지역이다

아주 짧은 기간 태봉국의 도읍지였던 철원이지만 한국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고 지금도 아픔을 이어가고 있고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철원 땅, 그 중에서도 명성산에는 궁예의 어떤 숨은 사연들이 숨어 있는지 철원의 속살로 들어가 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07:00분 3000번 버스를 9800원을 지불하고 강포리에서 하차 - 1시간 45분 소요

 

버스가 왔던 방향으로 도로따라 진행하면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의 경계지역이 나온다 - 자일리 수복기념탑이 있다

 

이제 대물낚시터 방향으로 좌틀하여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계속 직진 마을을 벗어나 계속되는 포장길

 

궁예봉을 보면서 자일교를 지나 첫 삼거리에서 마을과 반대 방향인 우측으로

 

다음 삼거리가 나오면 이제는 마을 방향으로 좌틀 - 멀리 안부가 보인다

 

마을 입구에 부대 시설물이 나오고 부대 방향으로 우틀 계속 이어간다

 

부대 훈련지로 부대출입금지 구역이지만 계속 직진

 

방호벽을 지나면 바로 궁예봉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모습으로 앞에 다가선다

 

강포3교를 지나 계속 부대길을 따라 계속 직진 - 우측으로 가면  포천과 철원의 경계를 따라 산정호수까지 이어진다

강포리(江浦里)

철원군 갈말읍 강포리 - 1914년 지포리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방축리,서자곡,안말을 병합하여 강포리라 하였음, 포천과의 경계

 

 

이제 철원의 속살로 들어와 부대길을 따라 올가가면 부대이정석을 지나 안내도가 나오면 계곡으로 직진

 

궁예산성이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설도 있는데... 이것도 혹시 산성터?

 

바로 너덜길과 같은 계곡길을 지나다 보면 폭포도 만나고

 

폭포 위로 올라오면 약물계곡과 갈림길에서 궁예능선으로 우틀 - 약물계곡과 궁예능선이 만들어낸 작품이 폭포?

 

그리 경사가 없는데 왜 로프를 걸어 놓았지? 걸어보니 명성산의 흙의 종류는 모르겠지만 무진장 미끄럽다

 

첫 암벽 로프도 나타나고

 

암벽을 오르자 전망이 트이면서 궁예의 흔적을 찾아서 마지막에 가야할 철원의 진산 금학산이 구름속에 신비감을 주고 있다

 

명성산의 흙은 정말 미끄럽다. 비올 때는 주의해야 할 듯...

 

다른 산 같으면 평범한 길 같은데... 거기에 어제까지 추웠으니 살짝 남아 있는 결빙기까지...

 

첫봉에 올라 보니 드디어 궁예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장 우측 궁예봉과 820봉 사이로 궁예침전 바위가 희미하게 조망된다

 

앞에 강포저수지가 보이고

 

철지난 가을과 봄과의 만남

 

예상대로 궁예봉의 모습은 압권이다

 

궁예봉의 이름처럼이나 오르는 길 만만치 않다

 

궁예봉

 

이제 산정호수가 보이기 시작하고

 

내림길 만만치 않은데... 고맙게 아직까지는 비가 오지 않고 있지만 비를 몰고 오는지 바람의 세기는 장난이 아니다

 

앞봉을 넘으면 침전바위 그 뒤로 명성산이 고개를 내밀고 우측으로 삼각봉까지...

 

알터(웅덩이)가 파여져 있다는 침전바위 윗부분도 담아보고

 

앞에 나타난 침전바위를 우회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 식후경까지 끝내고

 

 

궁예는 이 궁예침전 바위에 올라 왕건군이 군대를 이끌고 이 곳 명성산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일찌기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선이 학이 날아와 앉아 있는 형상인 금학산을 진산으로 하면 국운이 300년을 넘길 수 있다고 했는데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궁예의 한계였는지 결국 25년밖에 안간다고 했던 고암산에 정했으니...

아직 밝혀진 것은 없지만 금학산에 있는 마애불의 도움으로 그는 구사일생을 여기까지 살아 왔을 것이다

그가 쫒기 듯 걸어 왔던 길을 왕건의 군사들이 궁예를 쫒아 다시 여기까지 물결처럼 몰려오고 있었으니

이 침전바위에 올라 무슨 상념에 잡혀 있었을지...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비를 몰고 오는 바람소리만 넘나들 뿐...

 

 

 

침전바위를 우회하면 바로 돌탑과 궁예가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궁예산성(남문지)의 흔적들이 나온다

궁예산성

이 산성은 신라 말 궁예가 철원에 태봉국을 세워 도성을 쌓고 통치하다가 왕건에 밀려 부하들과 함께 명성산에 들어와 쌓은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원래 있던 산성을 궁예 세력이 개축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남은 흔적들이 궁예의 마지막 희망을 담고 있다

왕건의 군사에게 여기까지 쫒기면서도 성을 쌓을 정도면 상당한 시간 저항했음을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인공적으로 판 흔적이 있는 침전바위(궁예바위)로 안전시설이 없어 위험하지만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궁예가 이곳에 앉아 성을 쌓는 군사들을 독려했다는 전설이 있는데도...  비도 오고 바람이 너무 불어 결국 포기하고...

알터 바위   전망 좋은 바위꼭대기에는 인공적으로 파놓은 구멍

철원 갈말에서 명성산성을 보면 지형이 여근곡을 닮아 있고 그 중간지점에 알터바위가 솟아 있다고 한다

남성인 바위에 여성인 알터를 만들어 양인 바위에 음인 물을 채워 水火(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는 생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종족보존에 필요한 다산의 의미로 원시신앙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난생설화(卵生說話)에 나오는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나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알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속리산 문장대에서 담은 알터바위 -   자료: 초보산꾼 - 백두대간

 

 

탄생과 풍요를 가져다 줄것으로 믿었던 알터에 얽힌 우리 선조들의 믿음을 생각해 보면...

금정산의 금샘 - 자료 : 초보산꾼 낙동정맥

 

 

궁예도 쇠락해 가는 국운을 천신에게 빌기 위해 이 곳에 알터를 만든 것은 아닌지...

경우는 다르지만 월출산의 구정봉의 아홉게의 구멍은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 자료 : 초보산꾼 - 땅끝기맥

 

뒤돌아 본 궁예봉

 

궁예의 흔적을 찾아 세번째로 가야할 역시 궁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산정호수와 주위의 망무봉과 망봉산도 담아 보고

 

 

이제 명성산과 삼각봉이 줄지어 나타나고... 함께 빗방울의 크기도 굵어지고,,,

궁예와 왕건의 군사들이 펼치는 함성소리를 모두 담은 듯 바람의 세기 또한 거세지고...

 

13:15  신안고개 갈림길 안부 - 입구에서 헤어졌던 약물계곡길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13:34  헬기장을 지나면 바로 명성산 정상 - 바로 용화저수지로 내려 갈 수도 있다

명성산(鳴聲山:923m)  철원군 갈말읍

경기북부의 대표적인 산안 명성산은 억새가 무성해 가을 산행지로 인기가 높다.

통일신라의 마의 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 산을 지나 금강산으로 갈 때 보고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산 이름이다. .

남북으로 뻗은 주 능선을 기준으로 서쪽은 경사가 급하지만 바위가 발달해 웅장한 경관을 볼 수 있다.

궁예왕이 왕건의 군사에게 쫓겨 최후를 맞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어 왕건과 궁예에 얽힌 얘기들이 많이 있다 

궁예왕이 숨어 있었다는 왕굴은 산정호수 주차장에서 건너다보이는 책바위굴로 추정되는데 담 기회 찾아 간다

 

 

13:44  명성지맥 갈림봉에 도착 - 이제 포천과 철원의 경계를 따라 명성지맥길을 잠시 걸어 본다

 

약사령으로 좌틀

약사령(藥寺嶺)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를 잇는 고개

통일 신라 말 또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사(藥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약사령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우측으로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으로 故 장준하(張俊河)선생이 의문사했다는 장소인

약사봉이 보이는데 담을 수 없어 안타깝다 

 

 

14:08   눌치(訥雉)는 궁예왕이 도주하면서 흐느껴 울었다는 곳으로 느치라고도 불리는 계곡으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고

 

14:23   헛!   첫번째 난관. 얼어붙은 얼음위로 무심하게 물은 흐르고... 결국 타잔놀이 하듯 칡넝쿨이 효자네...

 

걷기에는 조금 불편한 거기에 끈기와 용기가 필요한 우중산행

그러나 자연의 신비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얘기다

 

한정된 시야에서 오직 귀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추웠다가 갑자기 더워지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무릉도원같은 작품속에 잠시 빠져든다

 

 

내가 입고 있는 우비와 풀잎 그리고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만들어 내는

삼중주 협주곡은 우중산행이 아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단지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앞만보고 걷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최고이겠지만 때로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내 우비로 떨어지는 경쾌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옆으로 눈을 돌리면

빗방울의 무게에 못 이겨 연시 인사를 해대는 풀잎들

풀잎의 공손함에 살짝 미소를 주면 어느새 고개 들어 다시 인사할 준비를 하고

 

 

 

14:57  근데 느치계곡은 계곡을 건너는게 이게 끝이 아니네... 3~4번 건넜는데도 이제는 합수점까지...

 

 

주위의 모든 풀잎들이 일제히 반기며 만들어 내는

풀잎이 흘리는 눈물과 함께 어찌보면 귀엽기까지 한 풀잎들의 재롱과 우리가 언제 걸을 수 있었겠는가

 

雨中山行, 산행의 또 다른 표현이며 우리가 어렵지만 즐겨야 하는 이유이다. 단지 걷기가 좀 불편할 뿐...

 

 

 

어렵게 건너니 이정표 - 그러고 보니 명성산에서 바로 내려오는 길인 듯.. 그럼 이제 계곡 건너는 것은 끝?

 

조금 지나 바로 또 계곡을 건너야 한다. 물도 더욱 많아지고,, 거세진 물결에 계곡폭도 넓어지고...

 

되돌아 본 마지막 계곡과의 만남지점. 봄의 길목 색다른 경험을 준 석천계곡... 고맙다

 

이제 계곡과 헤어져 느치고개로 오름길에 느치계곡의 또 다른 이름 석천계곡의 유래

 

 

15:17  느치고개의 이정표 - 등산로 입구 방향인 용화저수지로 직진해야 삼부연폭포로 갈 수 있다

아리랑고개라고도 하는 증령(甑嶺)코스는 철원군 입구에서 시작하여 용화천을 따라 이어지는 코스라고 한다.

 

A코스가 증령코스

 

15:37   마을이 나오면 좌틀하여 내려오면 도로와 만나는 등산로 입구에서 저수지로 좌틀

 

15:40   용화저수지 마지막 부분과 용화동 마을 갈림길

용화동 (龍華洞)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는 도를 닦던 4마리의 이무기가 있었는데 3마리가 폭포의 기암을 각각 하나씩 뚫고 용으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또 그때 생긴 세 곳의 구멍에 물이 고인 것이 삼부연이며, 마을 이름도 이무기가 용으로 변했다는 의미로 용화동(龍華洞)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5:51   용화저수지

용화저수지 한탄강

북녘땅 평강군 현내면에서 발원하여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남으로 흘러와 철원군 갈말면의 북쪽에서 남대천을 합고

갈말면에서 동송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쪽으로 흘러, 철원·포천·연천을 거쳐 임진강과 합류 서해로 흘러든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전쟁 때 스러져갔기에 한탄강이라 불렀다고 하지만 큰여울을 뜻하는 한여울이다

큰여울인만큼 곳곳에 심한 협곡을 이루어 물살도 거세고 여울도 많은 그 한탄강 상류에 철원이 위치하고 있다

북에서 내려오던 물줄기가 끊기면서 한 때 물 부족으로 점차 황폐해지게 되었는데 60년대 여기 용화저수지를 시작으로

70년대까지 많은 저수지를 만들면서 철원평야가 옥토로 바뀌면서 오대산에서 따온 '철원 오대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5:56    용하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용화천과 함께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이런 멋진 바위도 만나고

 

용화천 계곡도 크기에 비해 절경을 선사한다

 

16:00    지도의 용화약수터도 지나고

 

16:18    우측으로 오룡굴 입구가 나타나며 새로운 굴을 뚫고 있었다

 

오룡굴

오룡굴

1970년대 초 인근 군부대가 신철원에서 삼부연폭포 근처 산을 넘어 용화동 포사격장까지 운행하던 차량의 통행과

용화동 주민들을 위해서 만든 길이 80m, 폭 4m의 터널이라고 한다

 

 

터널이 끝나면서 나타나는 부연사에 오르면 삼부연폭포의 노귀탕, 솥탕, 가마탕으로 불리는 3단으로 된 웅덩이의 모습이 잘 보인다고 한다

 

부연사 맞은 편 계곡에 거짓말 처럼 궁예의 전설이 살아 있는 삼부연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삼부연(三釜淵)폭포

겸재 정선이 1747년 금강산으로 가다가 진경산수화 ‘삼부연’을 그렸을 만큼 뛰어난 풍경을 자랑하여 '철원8경' 가운데 첫 손 꼽는 경승지이다

궁예와 관련되는 전설을 담고 있는 철원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삼부연 폭포는 한탄강 지류인 용화천에 자리하고 있다

노귀탕, 솥탕, 가마탕으로 불리는 3단으로 된 웅덩이의 모습이 가마솥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신비한 전설과 함께 실제는 수만년에 걸쳐 세번 폭포 물길이 이동한 흔적이라고도 한다

전설과 내용은 안내문 참조

 

 

3마리는 용이되어 승천했는데 시기를 놓쳐 용이되지 못한 이무기가 자꾸 심술을 부려 비를 못 오게 한다고 하니...

 

가뭄이 심할때는 이무기를 위해 이 삼부연 폭포 밑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내고 대풍을 기원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이제 용화천을 통해 한탄강 그리고 임진강으로 해서 서해로 빠져 나가게 된다

 

적당한 습기에 더해 비가오는 중에 만들어낸 삼부연폭포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에 아쉬움으로 다시 한번 더 돌아 보게 만든다

 

철원8경의 으뜸이라는 삼부연폭포를 뒤로 하고 계속 도로를 따르다..

 

아래부분 : 비가 오기때문에 볼 수 있는 이런 작은폭포도 긴 여운으로 다가 온다. 궁예의 전설과 함께...

 

 

철원군 시내가 보이기 시작하며 아까 본 증령코스의 시작점이 나타난다

 

계속 철원읍내로 도로를 따르다 삼부연폭포 방향을 담아 보고

 

 

신철원군이 가까워지고...  계속 직진하면 군청이 나오고 군청을 지나면 신철원 종합 정류장에서 3000번 버스로 서울로...

철원군청을 지나 계속 가면 궁예의 전설이 남아 있는 군탄리이다

군탄리(갈말읍)

백성들에게 배척당한 궁예가 군사들에게 ‘나를 따르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한탄강을 넘자 군사들이 탄식하며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1000년 후에는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가 ‘이 땅에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군탄리에서 전역을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라진 도시 옛 철원에서도 계절의 변화는 순리적이다.

자료 :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6540537&code=14170000

 

 

 

벼락을 동반하고 곳에 따라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

그러나 비가 내리는 중에도 틈새는 있다

새벽에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다는 예보를 믿고 길을 나섰는데 

차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왜 비가 온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을 정도로 구름도 별로 없다

그 간의 경험으로는 비가 온다고 해도 현지에 가보면 비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기 예보만 믿고 산행을 포기하면 집에서 후회하기 떄문에 일단 집을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왕에 만나게 되는 우중산행도 즐길 수 있는 맘 가짐을 담아 본 이유이다

궁예의 흔적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는 명성산

하지만 집에서 접속하는데도 차 이동 시간만 왕복 6시간이니

하루에 모두 돌기에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두번에 걸쳐 진행하기로 했는데

반만 걸었을 뿐인데도 너무 많은 명소들이 있어 행복했던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억새의 명성에 밀려 자주 찾지 않는 강포리에서 시작되는 궁예능선길

좀 위험하지만 궁예봉까지만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작된 궁예가 남긴 흔적들과의 만남

흙길은 빙판길이 채 녹기전에 갑자기 찾아온 더위와 비로 미끄럼이 상상을 초월하고

암벽 오름길도 로프라도 의지할 수 있어 이제는 이 곳도 오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그리고 궁예의 시대를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다행히 초보산꾼에게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궁예봉까지 비가 오지 않았고

우중산행을 했던 명성산 정상과 노치계곡길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빙수와의 사투

얼음 위를 흐르는 계곡물을 건너면서 발에 전해져 오는 차가움이 주는 전율

그런 중에서도 다행인 것은 비를 맞아도 손이 시럽지 않아 그나마 위안을 준 것 같다

여름이면 힘들었을 도로를 따라 용화계곡과 함께 걸어 봤던 길에서 만난 절경들

그 중에서도 철원1경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삼부연폭포의 모습은 지금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산 길만이 아니라 도로을 따라가는 길에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슴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벌써 담에 걷게 될 산정호수 수변길과 망무봉 그리고 망봉산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궁예의 흔적들로 인해 다소 소흘했던 왕건을 만날 수 있다

고려라는 대국을 건설한 왕건도 또 다른 우리의 영웅이다

단지 궁예와의 흔적들로 인해 잠시 뒤로 미뤄두었을 뿐

그래서 산정호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자인사 사찰로의 여행이 더 기다려 진다

완건과 궁예가 사후의 세계에서라도 화합할 수 있도록 지어진 절이기 때문이다

 

초보산꾼과 함께 하는 궁예의 흔적을 찾아서...

벌써 기다려 진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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