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0온누리 산악회 5월 정기산행 - 고리산(환산 579.3m) ( 충남 옥천 )

   

             

 

일시 : 을미년(15년) 늘푸른달 열엿새 흙날          

 

인원 :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 (47명)

 

어딜 : 황골 ~ 고리산봉수대 ~ 고리산 정상 ~ 서낭당(추소) ~ 부소정 (약6.7km)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생명력이 충만하고 싱그러운 자연이 춤추는 달이면서 미래의 새싹들을 위한 달이기도 하고

거기에 황금연휴도 월초와 월말에 끼어 있어 참으로 맘도 몸도 바쁜 5월인데 벌써 중순을 넘고 있지만

바쁜중에도 몸과 마음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금강 대청호를 바라보면서 걷는 옥천의 고리산으로 떠나는 정기산행

거기에 5월은 3450온누리 산악회가 8주년을 맞는 달이기도 하니 축하산행에 많은 산우님들이 한마음으로 떠나게 되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살아있는 노랫말을 실감할 수 있는 향수의 고장 옥천으로 길을 떠나 본다

 

             더 많은 사진자료 : http://blog.daum.net/kmhcshh/2446

 

 

 

1. 산 행 지 : 고리산 (환 산) (579.3m) -  b코스로 하산

 

우암 송시열선생님이 경치에 감탄헤서 이 물길을 경애천(驚崖川)이라 부르고 소금강이라 예찬했을 정도로

옥천의 제일의 선경을 자랑했던 고리산에 보는 양절구절 서화천과 금강 그리고 대청호

또한 수반위를 700m나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기암절벽 부소담악의 비경이 펼칠 환상적인 풍경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

그런 이유로 2008년 국토해양부가 정한 전국의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굽이쳐 흐르는 서화천 하류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고리산(환산·581m)으로 떠나 보자

 

 

 

 

평소보다 한시간 늦게 출발하여 짱아 운영자님의 묵밥봉사로 든든한 아침을 해결하고

 

넘 맛있어 먹는 모습에서 행복이 묻어 납니다. 짱아 운영자님 감사합니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47명이나 되는 대식구를 위하여...   다시 만나면 꼭 수고했다고 인사좀 나누세요

 

그렇게 고리산을 가기 위한 들머리에 도착하고  -  황골 : 충북 옥천군 이백리 683-1 

 

한산안내판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출발을 한다

 

초입부터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골목의 분위기를 자연은 알아서 스스로 표현을 해주고 있었다 - 작품 나마스테 대장님

 

340봉 갈림봉을 지나 제1보루가 있는 산불감시초소와 환산 이정석이 있는 이백성

고리산성(古利山城)

옥천과 대전 사이의 교통로를 차단하는 위치에 있는 고리산은 역사적으로도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금강의 상류지방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고리산 정상 능선을 따라 1∼1. 5㎞ 간격으로 5개의 보루(堡壘)를 쌓았다

가파른 산기슭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연할석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성벽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데 우리는 4개의 보루를 볼 수 있다

백제가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해서 필요했던 12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오던 나제동맹이 깨어지고 백제 성왕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좌측으로 관산산성이 앞을 감싸고 있는 옥천시내와 우측으로 멀리 제일 큰형님 서대산을 배경으로 짱아운영자님 - 항상 감사합니다

 

나제동맹으로 고구려 평양성까지 진격했지만 신라의 배신으로 허리가 잘린 백제군은 주력군사를 모두잃고 결국 사비로 천도해야만 했다

신라 진흥왕이 일방적으로 모든 영토를 차지한 데 분개하며 기회를 엿보다 성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가야, 왜와 동맹하여

태자 창으로 하여금 신라의 서부 최전선이었던 관산성(옥천)을 치게 하여 3만의 연맹군은 기세좋게 관산성을 함락시켰으나

승리도 잠시 성왕이 전장에 있는 아들을 위로 하려 온다는 첩보를 접수한 신라군은 구진베루에 매복하여 있다가

관산성전투 管山城戰鬪 에서 백제의 성왕의 목을 거두니 신라군에 의해 최후를 맞은 곳이 부소담악에서 약 2㎞쯤 떨어진 군서면 월전리이다

 

 

 

교통의 중심지답게 현재도 경부선 철도, 경부고속도로(직선도로), 대전-대구간 4번 국도 길이 나 있어 옥천시내를 가로 지르고 있다

 

옥천읍에 세개의 성(삼양리산성, 옥천읍 앞 우측이 관산성, 좌측이 서산성 )이 고대 신라의 최전방 서부전선이었고

태자 창이 3만 남부여군을 이끌었던 동부전선의 전방사령부가 있던 고리산은 서부전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던 것이다

3만의 군대가 협공으로 몰살을 당한 비극적인 사연을 가진 고리산성을 걸으면서

자꾸 발에 밟히는 성을 쌓기 위한 돌 하나하나가 처절했던 얫날 얘기를 진지하게 해 주고 있는 것 같다

 

 

 

황골말(이백리)갈림길

 

이정목에 옥녀봉이라 쓰여 있는 삼거리에서 우틀하면

 

바로 제2보루로 갈 수 있는 삼거리 - 후미에서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들르지 못하고

 

산성의 흔적과 제3보루가 있는 옥녀봉에서 선두팀은 식후경이 끝나고 있었다

 

산성의 성돌들을 가져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예비군 훈련의 참호도 있어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 가치는 있어 보인다

 

고리산 봉수대 안내판도 있다

 

감로봉 직전 추소리 안양골 갈림길

 

제4보루가 있는 최고의 조망터 감로봉 - 대전과 옥천 사이를 남북으로 꾸불꾸불 가르는 소옥천(서화천)를 볼 수 있다

 

부소담악을 품고있는 서화천 물줄기가 둔주봉에서 흘러내려온 물과 합수를 하게 되는 금강의 일부도 보인다

 

금산 추부면에서 발원하여 이곳 고리산 아래를 지나 가운데 부분 금강 본류와 만나 대전 시민의 식수원인 대청호로 흘러 들어간다.

고대에는 서부최전선에서 금강을 도하한 신라군과 동부최전선인 남부여군의 경계를 이루며 주 전장터였을 것이다

서화천(소옥천) 동서로 남부여와 신라의 산성들이 많이 남아 있고 보루성까지 합하면 30여개나 남아 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감노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바로 비야리 갈림길 이정목이 있는 삼각봉이 나온다

 

헬기장이 있고 환산성 제5보루가 있는 정상에서 단체사진 - 나마스테 대장님 작품

 

부소담악이 품어내는 진경산수화에 푹 빠지신 여산우님들 - 나마스테 고문님 작품

고리산(환산環山 古利山 579.3m)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항곡리, 추소리, 환평리 소재 고리산(古利山 579.3m)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간 산줄기를 따라 .

충북 옥천군 군북면, 서화천 하류 서쪽에 솟은 고리산은 나제동맹이 깨진 뒤, 백제·신라군이 격전을 치르던 곳이었다.

백제 성왕 때 서화천 물길을 사이에 두고 봉우리마다 보루와 산성을 쌓고 전투를 벌이다 백제군이 크게 패한 곳이라 전해온다.

고리산성·식장산성 일대엔 신라 공주의 태를 묻었다는 태봉, 말과 군사의 주검을 묻었다는 말무덤재  등 옛 지명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전망이 없는 중에도 북쪽으로 대청호의 일부가 보인다

 

'환산' 지명의 유래는 일제시대 환평리(環坪里)의 고리환(環)자를 따서 환산(環山)으로 공식지도에 표기되어 사용되어 왔으나

원래 풍수지리에 홍수가 되면 배를 붙들어 맬 고리가 있는 산이라 하여 '고리산'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지리산의 고리봉이나 대청호의 또다른 명산 이슬봉도 같은 맥락의 지명들이니 지명따라 대청호가 만들어지는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인가?

전설처럼 떠도는 고리산의 또다른 지명은 옛날 대홍수로 모두 물에 잠겼을때 고무신 크기만큼만 남아있었다 하여 고무신산이라고도 한다.

다시 한번 옛 선조들의 이름하나에도 허투로 하지 않는 예지에 그저 감탄하고 또 감탄할 뿐...

 

 

 

헬기장을 가로질러 계속 앞에 솟아 있는 565봉으로

 

임도로 내려가는 안부를 지나

 

석축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565봉 - 이제 본격적으로 서화천의 부소담악을 즐길 수 있다

 

 

당겨보면 삼면이 바다인 반도의 모습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까지 쾌청하게... 요즘 그 흔한 박무도 없다.

 

좌측으로 금강이 조망된다

 

우측으로는 신라 공주의 태를 묻었다는 태봉과 문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물아래길 갈림길에서 처음으로 서낭당 이정표가 보인다

 

 

더욱 가까워진 부소담악 포토존 - 모두 행복미소가 담겨저 있어 흐뭇합니다

 

이렇게 포토존에서 추억을 남긴다 - 요즘 산방 문을 열면 화면의 마술이 설유화님의 손끝에서 나오고 있다. 고맙습니다 - 나마스테 사진

 

 

우리가 산의 정상에 올라 바라본 산줄기의 지칠 줄 모르는 힘찬 내림과 오름이 주는 선의 미학은

신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며 화폭에 담겨진 모습 또한 그래서 힘이 넘치나 보다

밋밋할 것 같은 무료한 일상의 해답을 굴곡에서 찾는 것을 우리가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동양화폭의 흑백의 아름다움 붓끝에서 나오는 먹그림의 힘의 미학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도 똑 같은 이치이다

 

 

 

완산 사진작가님 - 언제나 좋은 사진으로 봉사하고 계시어 든든합니다.

 

 

거기에 원근법을 사용하여 깊이를 더하라고 첩첩이 둘러쳐진 또 다른 산줄기들이 펼치는 산무는

살아온 인생의 굴곡만큼이나 산줄기를 타고 넘었을 끝없이 밀러왔다 밀러가는 파도의 속성으로 남는다

마르지도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 바다의 파도가 가능한 것은 이 산줄기속에 있는 실개천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물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 바로 실개천이며 실개천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부지런히 담아 내는 것이 바로 이 강줄기이다

 

 

이번 8주년 기념품 준비하시느라 고생해신 바시 운영총무님 사진으로 보니 정말 잘 생겼네용. 감솨

 

하늘 아래 그려내는 산줄기의 곡선만큼이나 강물이 그려내는 곡선은 최고의 자연미를 준다

인공이 전혀 가미 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휘돌아 나가가는 강줄기에서 우리는 맘의 위안을 얻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리산에서 본 부소담악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서화천의 곡선은

한삼자락 휘날리 듯 사뿐사뿐 춤을 추며 산과 강이 펼치는 음양의 조화로  태극문양을 그려내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초보산꾼 둔주봉 산행기 중에서 정리

 

 

 

단체사진도 남기고  - 나마스테 고문님 작품

 

황룡사가 있는 서낭당고개

 

장승의 환영을 받으며 부소담악으로 들어간다

서낭당(황룡사) 세심원 

부소담악 산책로 들머리가 느티나무 성황목이 있는 서낭재(서낭댕이)이다.

대청댐이 생기기 전, 이 고개를 사이에 두고 왼쪽 물가엔 34가구가 살던 추동마을이, 오른쪽 물가로는 32가구가 살던 부소머니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대청호가 만들어지며 두 마을은 수몰되고 주민들은 위쪽으로 마을을 옮겼는데 마을 이름도 추동과 부소머니에서 한 자씩 따와 추소리라 했다

이 마을 들머리 우람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 언덕인 서낭재에서 마을 반대편으로 난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800m 쯤 가면 부소담악 능선에 올라타게 된다

 

 

부소담악 입구

 

장승놀이

 

폐광산이 있는 해발고도 120m의 최고봉을 시작으로 끝에서 수면으로 급하게 잦아들어 세를 다하는 부소산 정상 부분

 

넘멀어 정기산행 오고 싶어도... 이번에는 8시라고 바로 달려 오신 티티님 그리고 한결같은 산에는님. 은별자리님 고생했습니다 - 나마스테님 작품

 

장승공원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부소담악의 진수를 볼 수 있다

 

바로 추소정

 

추소정에서 바라본 은밀이 감춰진 절경

 

여기는 부소정

 

새로운 인공이 가미된 멋과 수반이 펼치는 멋진 풍경이 이어진다

 

 

2008년 국토해양부가 전국의 하천 호수등 한국을 대표할만한 아름다운 하천을 골라 선정한 100곳 중에서도

당당히 베스트6에 선정됐을 정도로 서화천에 수려한 경관을 만들어 낸 부소담악(芙沼潭岳)

외가인 옥천에서 출생하고 무덤이 괴산에 있어서 괴산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선생이

부소무늬 마을 앞 호반에 병풍처럼 펼쳐진 암봉들을 소금강이라고 예찬했을 정도로 예부터 옥천 제일의 선경을 자랑한다.

우암 송시열선생은 3450온누리 산악회 8월 정기산행지인 괴산 도명산 화양구곡에서 자세하게 만나게 된다

 

 

 

비경을 보기 위해서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연꽃 부(芙), 못 소(沼) 자를 쓰는 부소담악(芙沼潭岳)은 대청댐이 생기면서 사라지게 된 부소무늬마을 앞 물위에 뜬 바위산을 지칭하는 말이다

부소는 ‘부수머리’의 옛말을 한자화한 것인데 이 마을 앞에 서화천이 흐르며 작은 강을 이뤘고 물이 고여 못(沼·늪) 같이 됐다고 해서 부소머리라 했다

또한 백제 때 부여의 부소산에서 가져온 이름”이라며 “부소머리, 부소모렝이(모퉁이) 등에서 변화된 지명으로 보인다는 사학자의 설명도 있다

하지만 옥천군청 홈페이지 등에는   ‘赴召潭岳’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해석하면  ‘임금의 부름을 좇아 나아간다’는 뜻이다

 

 

 

낙락장송이 암반을 디딤돌 삼아 서 있는 커다란 바위의 풍경을 만나면 선조들이 왜 이곳을 소금강이라 했는지 의문이 저절로 풀린다

 

 

안에 들어서 보면 정겹고, 한발 떨어져 바라보면 장쾌하여 먼발치에서도 당당한 자태로 이방인을 맞아주기에

이렇게 작은 마을인데도 예부터 추소8경이 전하여 오고 있다고 하니 오늘에서야 절감하고 또 실감하고...

그러나 대청호가 생기면서 추소8경의 끝자락을 차지했던 부소담악이 새롭게 태어나 으뜸으로 자리하게 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예전에 나무가 많아 병풍같은 암벽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물에 잠기고 흙이 떨어져 나가면서 암벽이 드러나면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한반도를 담고자 반도형태를 그리며 크고 작은 절벽들을 모으고 모아 약 700m나 길게 병풍을 만들며 서화천 한복판으로 들어가니

의병장으로 유명한 조헌과 우암 송시열 등이 부소담악을 ‘숨은 병풍’(隱屛)이라 불렀던 이유다.

그런데 대청호가 생기기 전에 흙과 나무의 뿌리와 그늘에 갇혀 유구한 세월을 빛을 보지 못하고 지냈으니

이제야 이렇게 큰빛을 보게 되니 역시 자연이나 사람이나 음지에서 큰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하늘이 도와주거늘...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알고 이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연꽃봉우리가 태어날 줄 알고 '부소무늬' 마을이름을 남겼을까?

대청호가 생기지 않았으면 서화천은 말 그대로 비가오면 흐르다가 가물면 건천이 되고 말 팔자로 태어났는데도

대청호가 생기면서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서서히 고이면서 감압곡류가 만들어낸 말그대로 개천에서 용이 태어난 것이다

실제로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물이 차기전에 바로 아래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거기에 물이 차올라야 고리를 맬수 있는데 이미 알고 있었던 듯 고리산이라는 산이름도 지어 주시고...

 

 

 

 

 

오늘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니 물속에 밭이라...  용궁을 꿈꾸었을 텐데...  상상이상을 우리에게 얘기해 주고 있다

위태롭게 물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굳건하게 버티면서 서 있는 바위 아래로 깊다 못해 푸르고 푸른 물이 잔잔하게 아른거리면서

이를 보고 있는 우리를 더 애잔하게 가슴에 자그만 파문을 남기는데 부소담악이 가진 역사를 알고 나니

병풍바위에 막혀 잠시 쉬어가고 있는 봄바람이 이마를 어루만지며 들려주는 옛얘기가 옥빛물속에 녹아 들고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부소담악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전태일 열사와 함께 첨 뵈었는데 정기산행까지... 사강님 감사합니다

 

배를타고 한바퀴 돌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선두팀에서 빨리 오지 않는다고 날리다...ㅋㅋ

 

사낭당고개에서 1km정도 떨어진 수정가든에서 뒤풀이

 

3450온누리 산악회 창립8주년 기념 케익과 함께 오늘 막내로 소개된 힐링님이 나눔을 실천하고

 

이렇게 박수로 자축하고

 

축하노래까지 부르면서 꿈같은 하루를 정리한다

 

 

한차례 벚꽃열병이 전국을 강타한게 엊그제 같고 잘가라는 인사도 안한 것 같은데

이제는 철쭉마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빈자리를 아카시아 꽃이 전국의 산에 점묘화를 그리고 있다

벚꽃과 눈을 마주하지 않으면 올 일년을 괜히 손해 볼 것같았던 봄이 가고 있음이 아쉬운 듯

큰 만큼 허한 맘을 아는지 갈 곳 없는 꽃가루만 바람따라 흩날리며 길을 잃은 내맘을 대변하고 있는 사이 

그래도 산과 들에 연초록으로 동시에 물들어 가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을 삼아 보려 떠났던 고리산          

들뜬 맘 차분하라고 하늘이 내리신 봄과 여름사이에 맞는 선물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연촉록으로 갈아입은 고리산을 감싸며 흐르고 있는 비단같은 금강줄기가 우리를 반기고

그 금강줄기에 힘을 보태기 위해 꽃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부소담악을 만들어 낸 서화천(西華川)이

미의 상징이자 여성의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에스(S) 라인 자태를 자랑하며

오늘도 금강으로 금강으로 쉼없이 흘러 보내며 휘날리는 한삼자락의 자연스런 춤사위로

요즘 보기드문 잡티하나없는 맑은 날씨를 배경삼아 3450온누리산악회 8주년 축하 퍼레이드를 펼쳐주고 있었다

꿈꾸는 몽유도원도는 각기 다를지라고 함께 하며 보았던 부소담악이 펼쳐낸 수반위 그림은

언젠가 우리가 어릴적은 물론이고 지금도 꿈속에 한번쯤 그려 보았던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비경을 선사한 부소담악이 주는 절경에 흠뻑젖어 돌아 왔다면

그로인해 멀쩡하던 마을 두개가 사라지고

평생을 내땅이다 라고 땅의 진실만 밑고 살던 농민의 삶의 터전도 함께 사라졌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 우리가 또 이 옥천땅에 발을 디디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두번에 걸쳐 보았던 옥천, 그중에서도 금강을 품고 살아낸 실개천의 고장은

왜 정지용이라는 아름다운 청년을 이 땅에 태어나게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대청호라는 거대한 괴물이 생기면서 빨아드린 옥토의 크기만큼 또 다른 수경의 멋진 풍경도 함께 공존하고

온 세상이 물에 잠겨도 오를 수 있는 산으로 남기를 바랬던 등주봉(둔주봉)

이슬만큼 살아 남을 것 같다는 이슬봉

거기에 오늘 우리가 본 연꽃(부소)만큼 살아남은 부소담악

그리고 고리를 매어 세상을 구하고자 했던 고리산의 얘기까지

허투로 넘기기 쉬운 지명에서도 이렇게 알고 보면 어쪄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옛 사람들의 지명에 대한 예지가 다시 한번 나를 기절하게 하는 마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옥천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이 초보산꾼이 생각해본 단상이다

오늘 함께 하신 산우님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시고 돌아 왔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댓글로 남겨주시는 센스 

기대합니다. 

 

오늘 8주년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던 백두대간 정이 총무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그래도 출발하는 아침에 프랑카드와 케이크까지 봉사해주시면서 직접 가지고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자리를 빌러 감사드립니다. 축하행사에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짱아 운영자님께서 정기산행 총무일도 보시면서 아침 묵밥까지...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거기에 산악회 생일에 함꼐 해 주신 산우님들에게 비용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대신 지불하신 조박사 카페지기님

8주년 기념품을 제대로 골라서 전달하게 해 주신 바시 운영총무님

그리고 끝까지 힘을 보태주신 정기산행을 함꼐 해주신 산우님들 고생했습니다

민족의 젖줄 지리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삼봉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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