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발길 닿는 곳 -  포항 응암산(鷹岩山·158m)

 

 

 

일시 : 을미년(15년) 물오름달 여드레 해날      

   

인원 :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

 

어딜 : 구룡포 초등학교 ~ 말봉재 ~ 말목장성옛길 ~ 봉수대 ~ 말목장성탐방로 ~ 구룡포항

 

 

지금 남녘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봄소식을 전하기 위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봄기운 

톡 하고 건들면 금방이라고 터져 전국에 봄소식을 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 같은데

모든 일이 고통 없는 결과가 없듯이 날씨도 그렇게 서로를 시샘하듯 아침 저녘으로 한기를 내어주고

따뜻함과 차가운 기운을 받으며 몇 번 마른기침과 콧물을 흘리고서야 맞이하게 되는 봄

이렇게 겨울이 끝나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오는 봄의 반가움 한편엔 가는 겨울의 아쉬움도 있다

거기에 마지막 가는 겨울의 묘한 매력을 지닌 마지막 겨울이 여운을 품고 있는 바닷가라면 어떨까?

거기에 답하기 위해 3월 첫 주 구룡표의 동해바다로 길을 떠나 본다

 

 

 

 

응암산 등로    지도 생략

 

 

 

구룡포 초등학교에 내려 (04:58)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좌틀(05:00)

 

조금 진행하면 이정표에서 우틀

 

장기목장성 안내판이 나오고(05:08)

 

바로 전망대에서 구룡포 항구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 보고파님 작품

 

구룡포항 항구의 야경

 

밤에 핀 과수원의 꽃밭에서 올리브님 그리고 채송화님

 

읍산전망대 갈림길(05:58)

 

응암산을 배경으로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는 정월대보름달

 

마을 체육시설 ( 05:46 )을 지나  이제 임도와 계속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05:54)

 

전망대가 있는 까치바위봉도 이제 보이기 시작하고(06:32)

 

장기말목장성 성터가 나타나면서 까치바위봉과 발산봉수대 갈림길(06:34)

 

봉수대 직전 안부 임도 (06:37)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데

 

갑자기 일출이 시작되었다고 하고... 발산 봉수대 정상 (06:41)

 

 

조금은 생각보다 멀리서 떠오르고 있는 일출 (06:42)

 

 

산과 들에 들면 온갖 생명들이 앞 다투어 봄 이슬을 마시고 한결 따뜻해진 햇살을 자양분삼아

조금은 부드러워진 봄바람에 흔들리며 가지끝 이슬방울만한 생명을 키워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동해로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바닷가에서 과연 우리는 오는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까?

밀려오는 것은 파도요 밀려가는 것도 파도요 그저 무심한 파도의 속성으로만 남는 바닷가의 봄맞이

 

 

 

당겨보면

 

 

가끔 불어주는 바람에 잠시 눈을 감고 느껴 보려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구나.

아직은 끝자락을 잡고 있는 겨울바람 때문일 것이다

지구가 태어나 지금까지 계속 이어저 온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바다품속

그래서 오늘도 저 갈매기는 저렇게 큰 원을 그리며 오르락내리락 바다를 맴돌고 있는 것일까

 

 

 

함께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풍운 고문님

 

 

바다에서 갓 올려진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뿜는 열기가 바다의 아침을 께우면

여기저기 아침인사를 나누려고 바다 전체가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아침 새벽을 알리는 첫닭 울음소리에 일어나 밥짓는 굴뚝에 연기를 내듯

바다도 물안개로 아침을 연다.

 

 

 

이제 2/3가 떠 오릅니다(06:43) - 아마 호미곶에서 봤으면 바닷물에 잠긴 해가 타는 모습이 환상적이었을 것인데...

 

 

눈을 들어 좀 멀리 보면 하늘과 바다가 서로 속삭이며 모닝키스로 아침을 여는 수평선

아침부터 세상사 뭐 그리 할말이 많은지 계속 토해내는 파도소리로 남는다

눈시린 햇살에 아름다운 새옷으로 갈아 입고 그렇게 하루를 준비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밤새 어둠속에서 토해내지 못한 아쉬움을 거품으로 남기며 사라진다

 

 

 

이제 온누리에 따뜻함을 전하기 위해 완전히 떠오르고(06:45)

 

 

우리는 바닷가에 서는 순간 잔잔하게 넘실대는 파도를 보면서 삶의 파고를 가늠해 본다 

넓은 가슴으로 모두를 안으려 했는데 내 영혼속 깊이 까지 안아주는 바다에 더욱 작아지지만

파도가 모레에 남기고 간 사연들중의 하나라도 나는 건질 수 있을까?

마음으로 다가오는 푸른 물결에 남겨진 그림움까지 다 띄워 보낼 수 있을까?

 

 

 

 

일출에 소원을 빌어볼라 일출의 의미를 하나라도 더 담아내기 위한 산우님들의 열정이 느껴지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에 ‘바다’가 되었다는 문무학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바다에 오는 이유는 바다가 그리워서 오는게 아니라 모든걸 다 받아 줄 것 같은 바다에 버리러 오는 것이다

바다가 생긴이래 지금까지 만족을 못하고 계속 칭얼대며 세월을 낚는 파도와의 동질감으로

저 바다 위에 떠 있는 한가로운 배처럼 나도 그저 저 바닷물에 떠 있는 상상만으로도...

 

 

 

이제 좀 멀리 잡아 본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지나치면 쓸쓸함으로 바뀌고 쓸쓸함이 지나치면 고독이 파도를 타고 넘는다

특히 고요를 먹고 사는 겨울 바다가 그렇다

뭔지 모를 친근함을 감추고 있는 듯한 고요함

그러면서도 결코 어색하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매력덩이 겨울바다

 

 

 

말을 방목했다는 표시로 말도 있고 '마봉루(馬熢樓)라는 누각도 있다

 

 

이제 난 겨울바다를 잊어야 하나니...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만이

그리움인 것을

 

이글은 서귀포 앞바다에서 군대생활하면서 늘상 바로 앞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꼈던 감상을 생각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이렇게 오손도손 거기에 구룡포에서의 해맞이까지 하고 먹는 아침 이 기분 누가 알까? 넘치는 찬거리에 감사드립니다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낮지만 힘차게 뻗어가는 줄기도 담아보고

 

다시 올랐던 길을 내려와 여기서 좌측임도를 따라야 하는데 우측 말목장성 옛길인 탐방로로 오르기 시작하고(08:00)

 

본격적으로 응암산은 들르지 못하고 성곽을 따라 내려간다

장기 말목장성

장기 말목장성 올레길의 경우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종실록에 목장 감독관을 수령이 겸임한 기록이 있어

이미 세종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역사성을 느낄 수 있는 흔치 않는 곳으로  전국에서 최대 규모로 남아 있다

고래시대부터 호미반도 일대의 행정구역이 장기長鬐현으로, 그 당시에 축조되었기 때문에 옛문헌에는 장기목장성으로 표기되어 있다

 

 

 

장기(長鬐)는 신라시대 때 북으로 현 대보면에서 남으로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까지 길게(長)뻗은 지역이며 촌명인 마산(馬山)과

장기읍성(長鬐邑城) 남쪽의 산이 용마산으로 마(馬)자와 관계 깊은 말목장(鬐)지역이라 하여 장기(長鬐)란 명칭이 만들어 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구룡포읍 창주리 돌문에서부터 호미곶 가운데로 가로질러 영일만쪽인 동해면 흥환리로 이어지는 약 8km의 석성(石成)으로

이렇게 세워진 돌 울타리 동쪽으로 갑오경장 전후에 없어진 군마용 말 목장으로 1천300년이 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증보문헌지고에는 예전 목장성 안에 말을 물 먹이던 웅덩이 50여개소와  마구간 19채가 있었고

구룡포 돌문에 당시 말의 출입과 수를 헤아리던 문지기 2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좌측으로 음암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전망이 나타나면서 내림길(08:14) -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돌문(石門洞)

옛날의 장기말목장성의 출입문인 돌문(石門)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돌문 혹은 석문리라 불려오고 있다.

돌문은 높이 11m, 폭 6m정도의 자연석 바위였는데, 매암산을 중심으로 방목해 놓았던 말을 해 질 무렵 몰이하여

이 문을 통과할 때 숫자를 세어 축사에 넣었다고 한다.

안전사고의 위험과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1988년 제거하였는데, 그 돌 일부는 읍사무소 정원에 있다고 한다.

        (포항홈피)

 

 

 

눌태리에서 올라오는 입구(08:29)

눌태리(訥台里)

눌태란 옛날 이 곳에 살았던 충신 한 분의 언어가 눌언(訥言)이므로 그렇게 지어졌다고도 하고, 그 충신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1979년 서북쪽 골짜기를 가로막은 눌태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못안쪽의 광정, 눌방에 살던 약 40호는 못 아래쪽의 마을이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

 

 

 

우리가 내려온 길이 말목장성 숲길이라고 한다

 

구룡포초등학교 방향으로 다시 응암산 줄기로 고개를 넘어 가야 한다(08:30)

 

우리가 목표로 했지만 오르지 못한 박바위(응암산) 갈림길

응암산(鷹岩山)

일명 ‘박바위’ 라고 하는데 이는 박을 엎어놓은 형상을 띄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응암산158m은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과 호미곶면을 이르는 산으로 일명 ‘박바위’라고도 불린다

 

 

오늘 아침 푸짐한 찬거리에 만찬이었읍니다. 감사합니다. 보고파님...  그래서 또 보고파서 닉네임이...

 

 

염창골 마을에 들어선다(08:44)

창주리(滄珠里),염창골

옛날 이 곳 해변(현재의 구룡포초등학교 자리)에 염전이 있었을 때 소금을 쌓아 두는 창고가 있었다하여 염창골이라 하다가,

그 뒤에 서늘한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창주리라고 불러왔다 한다. 1936 년 개설된 구룡포시장이 있으며

1925년에 설립된 구룡포교회와 1935년에 설립한 성덕심인당 이란 절이 있다. 1942년 읍승격시 구룡포1리와 2리 분리 되었다

 

 

 

한성아파트가 보이는 길을 따라 구룡포항까지

 

들르지 못한 박바위가 조금 보여주는 걸 놓치지 않고 담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 정말 박을 엎어 놓은 모습이다

 

언제나 2인자로 남아 있는 경북최대의 구룡포 항구에 있는 시장 - 오늘 마침 5일장이라고 한다(09:05)

 

 

구룡포하면 먹을거리로 일단 과메기를 떠올리지만, 자세히 보면 고래와 대게, 오징어도 풍부하게 나오는 천혜의 어장이다

구룡포는 경북 동해안 항포구 가운데 최대 규모라지만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 보면 언제나 2인자이다

구룡포 항으로 입항하는 선박에서 오징어를 직접 받아서 배를 가르고 건조시켜 상품을 출하하여 전국 유통물량 95%를 차지하고

동해안 최대 어업전지 기지로 국내에서 오징어 위판량이 가장 많은데도 유명세에서는 울릉도 오징어에 밀리고

수협 위판기준으로 전국 위판량의 54%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전국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하지만

국내산 대게의 70% 가량을 어획하는데도 이 역시 '영덕·울진 대게'에 명품자리를 내주고 있다

또한 해돚이 마을이라지만 우선 순위에서 호미곶이 있는 대보면에 뒤쳐져 있다

 

 

 

항구 주차장을 지나면 나오는 과메기 문화거리

 

과메기 거리에서 여산우님들 추억을 남기고

 

버스 승강장에서도 놓치지 않고

 

주차장 공터에서 마침 수산물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풍운고문님의 봉사로 막걸리 한잔

 

이제 근대 문화역사 거리로 들어가 봅니다(10:27) - 산까치 대장님

 

 

구룡포는 영일만을 형성하고 있는 범꼬리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리 달리다가

응암산의 한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활처럼 휘어져 내린 곳이다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 어업을 점령했떤 침탈 현장이며  일제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근대문화거리 위에 계단을 올라가면 구룡포 공원이 조성돼 있다

 

문화거리 골목에 일본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들이 남아 있다

적산가옥(敵産家屋)

광복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집인 적산가옥(敵産家屋)은 포항 구룡포를 비롯해 군산, 목포, 부산, 인천 등

식민지 수탈의 근거지였던 항구도시에 많이 남아 있다.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적산가옥은 바로 수탈과 지배를 강화하려는 일본의 야욕이 고스란히 드러냈던 흔적들인 샘이다

전북 군산이 일제시대때 국내 쌀을 일본으로 수탈해갔던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일본식 건축이 대체로 관공서 위주의 대형 건축물이다면

구룡포의 일본식 건물은 일본인 수산업자 제안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대부분 개인 주택과 상점의 형태이다

450m에 걸친 근대문화역사거리의 동쪽 끝에는 일본식 2층 가옥을 근대역사관으로 꾸며 놓았다.

 

 

 

추억의 느린 우체통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가 ‘침탈의 역사에 대한 뉘우침과 교훈’으로 남았으면 하는 맘 간절하다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거리가 아니라 관에서 주도한 근대문화역사거리이기에  

  "수난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우리가 근대 문화유산인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에서 만난 역사 여행에서  한번쯤 되세겨 볼만하다

 

 

 

구룡포 공원으로 오르면 용9마리를 형상화한 구룡포의 유래를 담고 있는 상징물에서 설유화님

 

승천하지 못한 한마리의 용이 새빛 구룡포를 꿈꾸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홍매화를 배경으로 채송화님과 보고파님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의 중심부에는 구룡포공원이 있다.

공원에 서면 구룡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인데

그곳에 있던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를 해방후 시멘트를 부어 없에고 그곳에 충혼탑을 세웠다고 한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그런데 최근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송덕비를 다시 복원하자는 여론이 있었다고 한다(2010년 경향일보 보도)

물론 도가와 야스브로는 사비를 내어 구룡포 부흥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일제에 의해 수탈의 목적으로 놓여진 철도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일본식 변명에 기름을 붓는 것은 아닌지...

 

 

 

구룡포항을 배경으로 카페지기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이던 구룡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수산업자 제안으로 방파제를 만들면서 우리나라 동해안 최대의 어항으로 커졌다.

대형어선이 들어오면서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물만난 식인상어같은 모습으로 달려와 

우리 어장의 어자원을 싹쓸이해간 것이다

지금의 근대문화역사거리가 바로 이 방파제를 쌓아 새로 생기게 된 땅이었던 지금의 구룡포항 일대에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생겨난 일본식 가옥인 것이다

 

 

 

해파랑길을 따라 주상절리를 보러 갈려 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내려온 호미기맥팀으로 인해 바로 뒤풀이(12:07)

 

대게와 함께 수고했습니다

 

열심히 먹었을 뿐인데 너무 과했나? 멋진 작품의 탄생... 뉘 자리이신지??

 

 

주상절리를 갈려고 했는데 수송대장의 알바로 호미곶까지(14:25)  -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 니고나오님 작품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해맞이광장은 명실상부 한반도 최대 일출 조망지 중의 하나이다.

포항시는 호미곶면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행정 면의 이름도 지난 2010년 대보면에서 호미곶면으로 개편했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구룡포항까지 가는 해안누리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해 바다와 접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국토부가 지정한 동해안 해파랑길이기도 하다.

 

 

 

구룡포에서 걷지 못한 해파랑길 아쉬움을 달래며 조금 걸어 본다

 

해변의 여인, 티티님.. 어떻게 과메기를 위한 과메기에 의한 과메기 제대로 맛보셨는지?

 

막걸리 한잔으로 호미기맥팀과 아쉬움을 달래 본다 - 호미기맥팀도 수고했습니다. 초청해 줘 감사합니다

 

새천년의 기운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3450온누리 산악회를 꿈꾸며

 

 

 

이렇게 호미기맥팀과 함께 한 구룡포 일대를 돌아 본 태마산행이 끝을 알린다

한반도의 형세를 흔히 만주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에 비유한다

그 중에서도 그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 포항 대보면이었는데 호미곶면으로 행정면을 바꿀정도로 

이제는 호미곶이 한반도 꼬리의 역활을 알리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거기에 한반도의 동쪽 끝인 석병리를 안고 있는 구룡포 일대까지

한반도 꼬리가 튼튼히 제 역활을 할 수 있도록 받쳐준 호미기맥을 걷고 있는 산우님들과 함께 한 구룡포 여행

 

비록 목표했던 응암산에 들르지 못 한 아쉬움은 조금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돌 울타리를 따라 걸으면서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었고

돌 울타리 안으로 말과 함께 풀밭을 달렸을 태우리의 함성과 말의 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따

또한 삼정리의 주상절리와 관풍대, 삼정해수욕장의 뱃사장을 들러 보지 목한 아쉬움을

일출의 명소이면서 상생의 손으로 유명한 호미곶에서의 마지막 막걸리 한잔에

하루의 피로까지 더불어 날려 버리는 호미기맥팀 산우님들과 함께 마치게 됨에 감사하며

전국 지방자치에서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근대문화거리 사업이

현재의 입맛에 맞는 거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품을 수 있는 거리로 태어났으면 하는 맘 간절하다

 

지금도 일본의 침략근성은 진행형이다

우리의 눈으로 잠깐 둘러본 구룡포 근대 문화역사거리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수난의 역사를 안겨준 일본이 지금까지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거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구룡포공원에 남겨진 역사와 현재의 공존이 많은 것을 얘기 해 주고 있었다

 

이 초보산꾼의 고향인 김제의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필요했던 철도와 군산항

군산항과 구룡포항에 남겨진 적산가옥

그리고 일제에 의해 수탈당했던 쌀과 수산물

이 초보산꾼에게는 특별한 하루로 다가 왔는데

함께 하신 산우님들은 어떠했는지요

 

보고싶다고 볼 수 없고 또 누구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하신 산우님들이 덕을 많이 쌓아준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너무도 짧게 보여준 일출이지만

그것도 행복이라고 아침이슬 속에 잠시 입가에 머물렸던 산우님들의 미소를 보면서

함께 한 제가 더 행복했습니다

 

멀리만 느껴졌던 동해의 끝마을, 구룡포에서의 하루

거리만큼 비래하여 행복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칠갑산 대장님과 호미기맥 팀에게 감사를 드리며

함께 하신 산우님들과의 동행 멋 진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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