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서울근교 : 도봉산 - 문사동계곡 

 

        

       

일시 : 을미년(15년) 시샘달 2월  스물이틀 해날

          

인원 :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

 

어딜 : 도봉산역 ~ 천축사 ~ 마당바위 ~ 신선대 정상 ~ 주봉 ~ 거북골(바위) ~ 도봉산역.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378 에 있습니다

 

 

세월 참으로 잘도 흘러간다. 유수와 같다는 말 느끼고 또 느껴본다

엊그제 새해 첫날 새 희망을 노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써 2월하고도 설날을 지나고 있으니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그래도 못다한 희망이라도 붙잡고자 했던 봄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오지만

라곤대장님의 첫 공지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까지 몽땅 같이 흘러 갔으니

모처럼 다시 단독 공지를 올린 라곤대장님과 함께 산행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라곤대장님과 함께한 도봉산 등로

 

 

 

도봉산역에서 내려 만남의 광정에서 만나 - 역시 헨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이해하시고...

 

보문능선 갈림길

 

다락원(樓院)  

조선시대 한양에서 함경도 경흥에 이르는 경흥대로(관북대로) 상에 중요한 원(院; 국립여관)이 자리하던 곳이었다.  

다락원은 조선 중기가 되면서 원(院)의 기능은 민간이 담당하여 점(店)포의 형태로 바뀌면서 장터의 기능까지 더해지니

동해바다의 어물, 강원 함경의 직물등이 한양으로 들어 가려면  물량공급 루트가 든든해야 해야 했는데 다락원이 그역활을 했던 것이다.

매점매석이 가능했던 큰손들이 있어 언제나 흥청거리던 흔적들은 다 사라졌지만 이렇게 도봉산 입구에 먹거리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도봉동문 道峰洞門 과 북한산국립공원 이정석이 보인다

 

도봉동문 각자

 

 

도봉동문道峰洞門

북한산국립공원이정석 옆. 광륜사 앞 계곡 옆으로는 큰 바위에 ‘道峯洞門’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그 위로는 서원말을 알리는 표지석도 세워 놓았다. 위쪽에 도봉서원이 있었기에 형성된 서원마을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다

옛 글씨들이 그렇듯이 우측 상-하단, 좌측 상-하단의 순서로 도봉동문 道峰洞門 네 글씨가 위치하며, '도봉산의 입구'를 의미한다

글씨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도봉구에서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하고, 어떤이는  아예 신원미상 묵객의 글씨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바로 위에 도봉 서원말터 이정석

 

도봉산은 뛰어난 자연경관 뿐 아니라 곳곳에 유,불교 유적이 존재하여 특히 도봉서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 사무소의 앞마당이 된 공원이 있는데, 그곳이 예전에 마을이었으며 그 이름이 '서원말 - 서원마을'이었다고 한다.

전국 곳곳 옛 마을의 이름 중에는 '괴안', '양촌' 등이 있던 것 처럼 사하촌이나 서원촌 등

사찰과 서원, 향교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도 곳곳에 있었을 텐데, 바로 이곳도 그런 서원촌 중에 하나였던 모양이다.

 

 

산악박물관과 광륜사

산악박물관

2011년 10월 1일에 개방된 이 박물관에는 국내 등산인들이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사용했던 장비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모형으로 만들어진 암벽과 빙벽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반용 헬멧과 각종 빙설장비, 피켈 등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 집안의 원찰로서 조대비의 별서(別墅)로 활용되었다 한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

 

자운봉길을 따르다 녹야선원 갈림길

 

 

계곡 건너에 명수대 각자가 세겨진 두번째 바위에 선명하게 보이는데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명수대(明水臺)계곡

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를 지나게 되고 녹야선원 갈림길을 지나면 계곡 건너편 바위에 ‘明水臺’라고 쓴 글씨가 눈에 들어오면서

길 우측으로는 약수터가 나타난다

 

 

명수대 계곡

 

바로 약수터

 

김수용시비 - 뒤로 도봉서원터인데 지금 한창 모두 헐고 다시 공사중인 듯 - 하산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시인은 48세 때 마포 구수동에서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집안의 선영이 있으며

어머님과 양계를 했던 오봉초등학교 뒤 도봉산 자락에 묻혔다. 그래서 시인은 도봉산의 시인이 되었다.

 

 

 

서원교가 나오면서 다리를 건너면 문사동계곡 - 하산예정

 

문사동계곡 방향 - 하산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다

 

라곤대장님으로 부터 오늘의 코스에 대한 상세한 안내를 듣고 - 진지를 넘어선 집중 또 집중

 

잠시 서원교를 넘으면 우측으로 각자 바위 -  도봉서원을 중심으로 수많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고 하니 그 분들 중의 한분이었겠지?

 

다시 되돌아 와 천축사로 가는 길에 부처의 세계로 드는 길인 듯 연등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천축사로 오르는 일주문

 

입구에 신도들의 이름이 적힌 얼굴과 손동작 등 모든게 조금씩 다른 불상이 먼저 반긴다

 

천축사에 오르면 선인봉을 등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절의 위치가 압권인데 오늘은 전혀 전망을 허락치 않는다

673년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하니  130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품고서 도봉산 자운봉(해발 739.5m) 턱밑 7부 능선에 터를 잡고 있다 

1398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기서 100일 기도를 하고 나서 왕위에 올랐다고 하여 절을 개축하고서 천축사라 부르게 됐다고 하다. 
천축사라는 이름은 고려 때 인도 승려 지공이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천축사의 전신인 옥천암이었으니 이 샘에서 찾지 않았을까? - 뒤로 올라서면 옥천 석굴암

 

 

절 동편 선인봉 아래 품에는 현대식 건물 무문관(無門館)이 있다고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무문관은 1960년대에 석가모니 부처께서 6년 설산고행하였듯이 6년간 용맹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고자 설립한 곳이었다고 한다.

제 발로 들어가되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무문(無門)의 수행공간이었다.
많은 분들이 발심(發心)하였으나 6년 정진을 끝낸 분은 관응, 제선, 구암, 원공 4 분 스님이 전부였다 할 정동로 그만큼 스님들도 어려운 수행공간 인데

문득 김영삼 전 대통령이 썼던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휘호가 떠오른다. ㅋㅋㅋ  그어려운  無門을... 그래서 어떻게 실천은 하셨는지...

갑자기 건강이 악회되신 듯,  빠른 쾌유를 빕니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역사의 판단은 나중에...

 

 

 

마당바위에서 없는 조망이지만 나름대로 감사하고

 

정이총무님을 올려 놓으니 살아있네...  신윤복의 '미인도' 부럽지 않네...

 

또 한분의 미인이 서있으니 소나무가 더욱 빛나네...  도도대장님 떄문에 오늘 소나무는 행복했겠지?

道峰 739.5m  자운봉 [ 紫雲峰 ]

북한산국립공원 내 동북쪽에 있는 도봉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는 바위산이다.

서울 도봉구와 양주군, 서울시와 의정부시의 접경지대에 있는 산으로 북한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고 우이령을 북한산과 경계로 하고 있다 

자운봉은 등반하기에 위험하여 산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바로 옆에 있는 신선대까지만 등반이 가능하다.

 

 

신선대에서 열심히 내려오고 있는 산우님들

 

 『택리지』에서 "함경도 안변부 철령의 한 줄기가 남으로 5∼6백리를 달려서 양주의 여러 작은 산이 되고,

북동쪽에서 비스듬히 돌아들면서 갑자기 솟아나 도봉산의 만장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신선대와 자운봉, 만장봉으로 이어지는 산봉이 절경이고 다섯 봉우리가 나란히 솟은 오봉과 암벽 등반으로 유명한 선인봉 등 곳곳에 바위 명소가 있다.

문사동·원도봉·보문사계곡이 도봉산 3대 계곡에 꼽히고, 60여 개에 달하는 사찰이 이 산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많은 산행기록을 남기시고 계시는 산신님

 

 

도봉산의 명칭은 큰 바윗길이 산 전체를 이루고 있어 도봉이라 지었다는 것과

전축사, 회룡사 등의 사찰에 무학대사의 중창 기록이 전해지는 것과 관련하여 태조이성계가 바위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조선왕조 창업의 길을 닦았다고 하여 道峰이라는 이름을 붙었다 하는 내용의 두 가지 설이 있다.

자운봉은 높은 봉우리에 붉은 빛의 아름다운 구름이 걸린다는 의미로, 자운(慈雲)은 불가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뜻한다.

 

 

뜀바위?도 지나고

 

세종 때의 문장가이며,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특별시장)을 두 번이나 지낸 서거정은 만장봉 아래에서 도봉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높은 다락에서 술잔 들고 한 번 웃어 보는데

수많은 푸른 봉우리 뾰족뾰족 무더기를 이루었고

십 년 세월 하는 일 없이 귀거래시만 지었는데

백발이 다정하여 자꾸만 재촉하누나

 

 

아이고 추워라... 나뭇가지도 울고 있네??   ㅋ  우리도 눈물콧물 흘리면서... 또 가는 겨울이 아쉽다...

 

추억 - 칼바위?를 배경으로 - 추억을 먹고 사는 우리는 역시 이렇게 추억의 그림자를 남겨야 한번이라도 더 기억하지,,,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되면서 거북이가 품고 있는 한국의 (名水)'로 알려진 샘이 있는 거북바위

 

아직은 봄은 멀었는가? 라곤대장님 수고했습니다 - 봄의 길목 때론 아쉬움의 표현도 가슴 한켠을 잡고 있겠지?

 

역시 한양의 명산답게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하고 자기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다짐들이 바위에 남겨져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휴양을 즐기던 곳으로 알려진 계곡이니 풍류를 줄기는 방법중의 하나 였을 것인데...

 

문사동 마애 각자도 지나고 - 우리에게 스승이란 무엇일까?  혹 학교의 선생님만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는지...

 

스승을 찾는 계곡,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가는 곳에 언제나 스승은 있다. 스승에게 물어야(問師) 할 일이 어디 한 둘이겠냐마는...

 

올라오며 보았던 서원교를 지나자 마자 아까 보지 못했던 고산양지 각자 바위가 계곡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산양지 (高山仰止)

계곡 건너로 보이는 바위에 세겨진 글씨는 1700년 7월에 곡운 김수종의 글씨라고 한다

고산양지란 시경 소아(小雅)에 나오는  ‘高山仰止(고산앙지) 景行行止(경행행지)’로 큰 산은 올려다 볼 수 있고, 큰 길은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곡운 김수종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하여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로 각자했다고 한다.

스승에게 물어야(問師) 할 일이 너무 많아 문사동 계곡을 찾았을 것이고 높은산으로 사모할 스승이 있다는게 행복이라면 행복일까?

 

 

우리가 올라 올 때 갈림길이었던 서원교를 지나면 현재 도봉서원을 복원하는 발굴, 건설 현장이 나타난다

도봉서원(터)

이곳은 본래 나말여초(羅末麗初)부터 700년을 이어온 대표적 선종사찰 도봉원(道峰院)이 있었던 곳이다.

불교국가였던 고려는 역원(驛院)을 운영하면서 지방의 큰 사찰에는 원(院)을 겸하게 하였다. 도봉산이란 산 이름도 도봉원에서 생겨난 이름일 것이다.

도봉서원은 1573년(선조 6년) 지방유학자들이 뜻을 모아  조광조의 학문적 사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곳으로

1696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함께 모셔져있다고 하는 현존 서울의 유일한 서원이다.

 

 

건설현장에 붙어 있는 안내판 - 아쉬운 점은 출입금지 되어 있고, 별도의 도봉서원터에 대한 내용이 없다

매년 음력 3월10일(춘향제)과 9월10일(추향제) 전국 유림과 지역 유지가 모여 전통향사를 지낸다.

겸재 정선이 그린 도봉서원도는 남아 당시의 도봉서원 모습을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요즈음 도봉서원 재현은 이 그림에 의존하고 각종 답사 기록에 남아 있는 건물의 이름을 살리려는 것이다.

서원 앞 계곡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각자(刻字)가 바위에 많이 남아 있다.

 

 

김수영 시비가 있는 공사현장 출입금지 안으로 들어가면 느티나무 보호수만이 지금도 외롭게 도봉서원터를 지키고 있다

 

 

도봉서원 복원사업 - 도봉구 홈피 (알림/행정)

 

ㅇ 위 치 : 서울 도봉구 도봉산길 90 (도봉동 512)외 7필지
ㅇ 성 격 : 문화재 복원사업(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 ‘09.10.22 지정)
ㅇ 규 모 : 4,129㎡     ㅇ 사업기간 : 2011년 ∼ 2018년     

ㅇ 복원시설 : 정로사(사우), 의인재(동재), 습시재(서재), 계개방(강당),제월루, 내삼문, 외삼문, 담장 등

 

 

 

 

성균 박사 노은 남궁복 선생 기념비도 함께 하고 있다 - 거액을 희사하여 서원 복설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란다

 

마지막으로 아쉬움에 도봉산의 위용을 담아 보고

 

뒤풀이 장소

 

이렇게 라곤대장님과 함께 한 도봉산 산행의 피로를 풀어 본다

 

 

이렇게 라곤 대장님과 함께 한 도봉산의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잘도 넘나들던 구름도 때론 자운봉 꼭대기에 걸려 안타깝게 메달려 있는 붉은 구름

자운봉 선인봉 만장봉안에 갇혀 때론 한가롭기 까지도 보이는 운무속 불꽃암벽들이 펼치는 풍경

거기에 바라볼수록 현기증 나는 자운봉 봉우리가 하늘에 다가가 있는 듯한 신비로움을 더할 때

道峰의 높은 다락에 올라 술잔 들고 한번 웃서 보았다던 서거정의 싯귀를 떠올리곤 

마음으로 느껴지는 진한 감동에 마음까지 멍멍해지는 짜릿함이 살아 있는 도봉산의 얼굴을 보았다

올라가면 올라 갈 수록 그렇다고 내려갈 길마저 바위에 기대어 아스라이 걸어야만 되는 도봉산 산행

이성계의 건국의 마음을 가져야 길을 열어 줄 것 같은 신선대에 오름길과 내림길

오후 잠시 비친 햇살에 장엄한 백금의 불꽃을 피워내 오봉까지 밝혀주던 모습을 볼 수 있었음에

행복한 하루였음을 간직하고 싶다

 

2009년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유학자 송시열, 송준길 등의 글씨가 새겨진

총 14개의 글씨 또는 시구가 새겨진 11개의 바위를 포함한 각석군(刻石群)중 일부밖에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언제나 아쉬움은 다시 한번 더 소중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고 싶다

내가 해답을 얻을 때까지 스승에게 묻고(問師) 또 물어야(問師)하는 이치를 문사동계곡에서 배웠기에

그 것 하나만이라도 얼마나 큰 배움인지...

배움의 길로 안내해 주신 라곤 대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끔 나름대로 길을 찾기 위해 자주 사라진 이 초보산꾼을

추운데도 무작정 기다리시며 인내를 시험하신 함께 하신 산우님들 고맙습니다

혹 보지 못했던 것을 찾은 기분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처음으로 라곤대장님과 함께 했던 도봉산 산행

함께 한 산우님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고 애쓰시는 모습에서

대장의 덕목중의 하나인 열정과 배려심이 저절로 묻어나와 정말 편하고 알찬 산행이었습니다

앞으로 라곤 대장님하고 함께 하는 산행이라면 믿고 편하게 안전한 산행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끝마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비록 단독 첫 공지에 많은 산우님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대장님 스스로 만족하는 산행엔 언제나 함께한 산우님들도 행복하다는 믿음으로

계속 3450온누리 산방에서 많은 일을 하시는 일꾼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전합니다

 

라곤대장님 첫 단독 공지 축하드리며

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해 주신 산우님들도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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