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서울근교 - 대모산 인능산 연계산행

                

 

 

일시 : 을미년(15년) 시샘달 스물하루 흙날      

    

인원 : 3450온누리 산악회 2월 정기산행

 

어딜 : 대모산입구역 ~ 대모산 ~ 헌능 i/c ~ 인능산 ~ 옛골

 

 

어느듯 살며시 다가왔다 살며시 가고 있는 2월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을 맞이 하기 위한 준비도 해야하는 등 참으로 바쁘기만 하다

꽃샘과 잎샘추위라는 동장군의 시샘도 견뎌네야하는 과정에서  민족 최대 명절 설날도 보내야지

이래저래 돈 없는 시민들에겐 걱정과 희망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없는 계절이 그래도 흐르는 것은 언제나 희망은 가까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설날이 있는 것이기에

설과 함께하는 정기산행이 오히려 덕담과 나눔의 실천을 위한 좋은 기회를 우리에게 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떠나본다

 

 

              초보산꾼 더 많은 사진자료 : http://blog.daum.net/kmhcshh/2377

 

 

3450온누리 산악회 2월 정기산행 대모산 인능산 연계산행 등로 - 네이버 지도

 

 

이번 3450온누리 산악회 정기산행은 우리민족의 제일 큰 명절인 설날이 끼어 있어 멀리는 가지 못하고

서울 근교의 잘알려지지 않은 힐링산행으로 안성맞춤인 인능산을 가기 위해 대모산을 경유하는 코스로 정했다

할미산인 대고산으로 불리다가 태종의 헌릉을 모신 후 어명으로 대모산으로 고쳤다고 하는 대모산大母山

과거 군사적목적과 긴급사항을 알리기 위해 올렸던 봉수대엔 이젠 전국 어딜가나 산불감시초소가 대신하고 있고

서울과 성남의 경계를 걷게 되는 인능산엔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는지 이 초보산꾼과 함꼐 길을 떠나 본다

 

그간 잘 사용하던 디카의 고장으로 헨편으로 찍은 사진이라 좀 보시는데 불편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대모산입구역 7번 출구로 나와 보니 12시 부터 내린다던 비가 일찌부터 내리기 시작하여 대합실에서 대기하고 - 보물상자대장님

 

자기소개가 시작되고 - 보물상자대장님 작품

 

대모산입구역 7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일원터널이 보이기 시작하고 대모산 들머리

 

 

세상이 바뀐것도 모자라 너무 바뀌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었던 설날이

횐절기의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린 스처가는 감기와 같은 명절증후군을 더 생각나게 하고

가족간의 화목의 소리로 북적거려야할 시골집 앞마당마저 이젠 겨울이 주는 쓸쓸함을 넘어서고

넘치고 넘처 이웃에게까지 전해졌던 웃음소리가 사라지니 명절대이동의 차소리만 요란하게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

 

 

 

일원터널도 보이고

 

 

명절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생기는 것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문화증후군인 명절증후군

뭐라고 꼭 집어서 설명하기 힘든 다양한 신체 증상들을 동반하며 주부들을 괴롭히며 매년 반복됐던 우리들의 이야기

명절때면 시댁에 가야만 하는 걱정으로 온통 머리속이 하얗게 멍해 있는데 시댁에 갈 수 밖에 없는 현실

핵가족화가 심해지고 국가 경제가 맞벌이 부부를 만들면서 더욱 심해진 특히 주부에게 가해지는 명절증후군의 슬픈 자화상이다

 

 

가랑비가 일찍 시작되어 조금은 불편한 산행길 - 완산님 작품

 

근자에 회자된 명절증후군이 명절마다 단골메뉴로 사회문제화 되다 보니 여기에 이제 남자들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남자들끼리 만나면 하는 얘기를 넘어서 이젠 여자들도 남자들 불쌍하다고 대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만나 즐거워야 할 명절이 그래도 아직은 여자들에게 가사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니 자연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고

남자라는 이유로 이젠 가사 부담은 물론 아내의 신경질적인 마음까지 안아 주어야 하는

이젠 역차별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아니 이미 많은 남성들에게 가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구룡산과 대모산을 이어주는 능선에 다다르고

 

그렇다고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래서 민족대이동 스트래스까지 덤으로 받으면서도

그래도 국가의 튼튼한 버팀목인 가정이 지켜지기 위해선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나름대로의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명절증후군의 원인인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일의 부담을 줄이거나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가 필요하고

일에 정신 없는 아내를 위해 강제로라도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도 시키고 어깨도 주물러 주는 등의 노력들

명절날 여자들은 부엌에서 동동거리는데 남자들은 한가롭게 술 마시고 고스톱만 치는 문화는 특히 한번 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 일의 부담을 나누려는 협조의식만이 명절증후군을 이기는 길이 될 것이다

 

 

드디어 힐링 숲길이 우릴 안내하고

 

바로 불국사가 좌측으로 옆에 보인다

대모산에 남은 유일한 옛절 불국사(佛國寺)에 들리고 싶지만 다음을 약속한다.

봉은본말사지에 의하면 이곳 불국사는 고려 공민왕 2년(134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박씨 성을 가진 농부가 밭에서 약사석불(藥師石佛)을 발굴하여서 이 절에 봉안했다 한다.

지금도 법당에 모셔져 있는데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구룡산도 담아보고

구룡산 九龍山(306m)

국수봉이라고도 불렸던 구룡산(九龍山)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1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하늘에 오르지 못한 1마리는 좋은 재목, 좋은 재산인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보다 낮은 이 산의 주봉(主峰)은 국수봉(國守峰)이라고 하는데,

여지도서에 조선시대 전부터 정상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이 곳에는 바위굴이 있어 봉수군(烽燧軍)이 기거했다고 한다. (서초구)

 

 

헬기장을 지나면

 

대모산 정상에서의 여심을 담아본다 - 완산님 작품

대모산 大母山

높이 293m의 산으로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우다가

태종의 헌릉을 모신 후 어명으로 대모산으로 고쳤다고 한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 하는 설과

서쪽에 있는 구룡산과 함께 두 봉우리 모양이 여자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는 설이 있다 (서초구)

 

 

대모산에서 먼저 도착한 주유천하님의 오뎅국물 봉사로 막걸리 한잔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 고맙슈

명당으로 알려져 있어 왕족의 묘터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여주로 이장했지만 조선 4번째 왕인 세종대왕의 능도 이곳에 있었고,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세종대왕의 5번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묘역이 대모산 북쪽에 있다.

또 우리가 걷게 될 인능산의 유래가 된 인릉(仁陵)이 헌릉의 서쪽에 조성되었고 능참봉의 한옥이 남아있다.

 

 

산불감시초소로 가는 길 - 완산님 작품

 

 

헌인릉 i/c 갈림봉에서 우틀

 

아파트 단지 끝 부분에서 계속 산길을 따르면 도로가 나타나면서 우회한다

 

도로가 나오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인능산 들머리

 

인능산 오름길이 때로는 힘들때도 있는 법 - 완산님 작품

 

인능산 초반 오름길이 내린 빗물까지 더해 만만치 않다 - 완산님 작품

 

드디어 성남과의 경계지점에 도착하고 - 오야동능선의 시작 (성남시계)

오야동 梧野洞  성남시 수정구

옛지명은 와실(瓦室), 왜실, 오야소라고 하였다. 예전에 이 지역에서 기와를 구웠으므로 와실 또는 왜실이라 칭하던 것이 오야실로 변해서 된 것이라는 설이 있고,

이 지역이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야소(梧野所)라 하고, 오동나무 열매가 잘 열렸으므로 오야실(梧野實)이라 칭하던 것이 오야리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헌인마을 이다

헌인獻仁마을

서초구 내곡동에 있던 마을로서, 헌릉 · 인릉 동쪽에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마을은 1970년 초에 음성 나환자들의 자활촌으로 형성되었다.

당시 인근 마을에서 이들의 거주를 반대했으나, 정부의 적극 지원정책으로 마을을 이루어 양계를 시작해서 성공을 거두었는데,

내곡동에서는 유일하게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어 가능하였다. 현재 양계장 대신 중 · 소 공장의 입주로 마을 모습이 변모하고 있다.

 

 

헬기장이 나오면 인능산 정상

인능산 仁陵山 -헌인능이 있기 때문에 인능산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과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광주부읍지(廣州府邑誌)》에는 천림산(天臨山)이라는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능산은 아직까지도 때 묻지 않은 서울에 있는 소중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고도차가 높지도 않아 둘래길 못지 않은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의 산이다

또한 관악지맥이라고 하여 지맥산꾼들에게 필수 통과 산이어서 띠지도 잘 붙어 있어 길잃을 염려도 없다

 

 

인능산 정상 이정표에서 - 완산님 작품

헌인릉(獻仁陵, 사적 194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조선조 왕릉

조선 3대 태종과  왕자의 난을 성공으로 이끌고도 친정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조선왕실의 기반확립을 위한 희생양이 된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침(陵寢)인 헌릉, 제23대 순조와 그 왕비의 능침(陵寢)인 인릉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태종(太宗)은 태조의 제 5남으로 조선개국에 큰 공을 세웠고, 관제를 개혁하고 신문고를 설치하였으며 호패법을 실시하는 등

왕권확립에 큰 업적을 남겼으나, 1,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의 피를 흘리게 하였던 분이다

 

 

부대에 뺴앗긴 등로로 인해 우회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

 

조선 5백년 동안 유교가 지배했던 사회속에서도 여성으로써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분이 네분정도 계시는데

세조비인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생모였던 인수대비 한씨,

그리고 초보산꾼과 함께 걸었던 정순왕후의 길 따라 걷기에서 잠시 언급했던 영조의 계비이며 정조의 새할머니 정순왕후 김씨,

그리고 헌인릉에 계시는 60년 안동김씨 독재의 서막을 연 순조비 순원왕후 김씨이다.

그분은 왕실의 재산인 궁방전을 김씨 가문의 재산으로 둔갑시키는 등 조선 왕실을 무력화하고 안동김씨 가문의 이익 추구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져 있다

헌종이 죽자 철종을 앞세워 수렴청정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두분의 임금을 좌지우지했던 인물이다

능 안에는 17,000여 평에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2005년에 서울시에서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풍수지리상의 길지를 엄선하였다고 전한다.

 

 

 

고등동 이정표가 나오면 우틀 - 직진은 내곡터널, 좌측은 고등동

내곡동

동 이름은 옛 언주면(彦州面)의 일부로서 본촌(本村)의 안쪽에 있으므로 안골·안말이라고 불리던 것이 한자로 내곡동이 되었다.

조선시대 말에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안골이었고, 1914년 안골·능안말·구석말·양지말을 합하여 언주면 내곡리로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헌릉·인릉이 있어 주택이 들어설 수 없었으며, 수목이 울창하여 많은 짐승들이 나타나던 지역이었다.

 

 

목동산이라는 시그널이 붙어 있는 헬기장

 

원터골 갈림길

원터골  서초구 원지동

신원동, 원지동의 원(院) 그리고 전국 곳곳에 있는 원(院)이란 지명은 대부분 옛 역참제도의 보조기관인 관영여관-원(院)에서 나왔다.

원(院)은 조선 후기 국가 재정이 흔들리며 일종의 아웃소싱-민간여관촌으로 바뀌나 그 이름은 남는다.

서울 이태원, 음성 광혜원, 과천-안양 있는 인덕원이 모두 옛 원(院)이 있던 곳이다.

세월은 흘러도 땅의 기본 용도는 크게 바뀌지 않는지 원(院)들이 있던 곳은 오늘 날 먹자골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직진하면 원터골, 우린 옛골로 좌틀

원(院) 말고 ‘병점’이라 이름 붙은 곳도 꽤 있는 데, 오늘 날 한자표기를 점잖게 바꾸었더라도 원래는 ‘병점(餠店)’ 즉 떡전거리다.

수원 아래 병점은 그쯤 가면 출출해서 떡과 막걸리 한잔 생각나던 옛 떡전거리 다.

원지동(院址洞)은 ‘원터골’이니 원래 원(院)이 있던 동네요, 그 뒤 원(院)이 옮긴 곳이 ‘새원마을’-신원동(新院洞)이다.

자료 : http://blog.daum.net/robustus/11165529

 

 

조금 더 내려어면 네거리 - 옛골, 새정이 마을 이정표

 

조금 직진하면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넘밑골과 서초구 신원동으로 가는 길

上笛洞   상남시 수정구

이 지역은 호걸들이 피리를 불며 유람하던 곳이라 하여 적촌(笛村), 저푸리, 적취리라 하였다.

저푸리를 중심으로 노상동(路上洞)[옛골, 禮谷]과 노하동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노상동의 ‘상(上)’자와 적취리(笛吹里)에서 ‘적(笛)’자를여 상적동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일설에는 인근에 살던 덕수이씨네의 잦은 과거급제[등과(登科)]로 피리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붙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1981년 신구전문대학교의 조경원예 실습농장에서 출발해 2003년 식물원으로 개원하기까지 교육시설로 써 왔던 신구대학 실습농장

 

 

음력 정월 초하룻날(음력 1월1일)은 우리민족의 최대 명절로 설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일제의 잔제인 신정과 구정으로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 구정은 '설날'이라는 전통적으로 써오는 말이 있으니 그렇다치고 신정은?  '새해 첫날'이라고 불러야 한다

설날은 6세기 이전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한 것이라고 한다

 

 

 

계속 직진해야 한다

 

 

그런데 한때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설날이 새해첫날에 밀려 대접을 못받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것도 세월의 흐름이라 해야 하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근대화의 모델을 일본 메이지 유신에서 찾다 보니 음력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선의 명절을 모조리 부정하고 일제의 명절인 신정을 강제했던 일제시대때도 우리는 '왜놈 설'이라며

음력설을 마치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고수하며 지켜왔던 설날의 풍습이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우틀

 

 

박정권에 의해 철저히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설날에 대한 국민의 열정은 1970년대에 생겨난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로 대변되면서

어쩔수 없이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고 지정했는데 그 것마져 그당시 반쪽짜리 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생색내기에 급급한 지정과 하루의 휴무를 주는 정도의 생색으로 무마하려 하다 보니 생겨난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얘기이다

그러다 보니 오희려 생산현장에서는 신정과 구정 모두 3일씩 쉬어야만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신정은 법정휴일이니까 맘놓고 쉬고 구정은 또 민족의 명절이니 어쩔수 없이 쉬어주고...

 

 

 

내곡터널에 있는 상적저수지도 보이고

 

 

결국 1989년 정부는 음력설을 설이라 명명하고 3일간의 휴무를 주고 양력설을 하루의 휴무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한말부터 주장되어 왔던 양력사용을 1894년 갑오개혁 때도 사용하지 못하다가

1895년 을미개혁이 단행되고 대한제국이 선포되어 1896년부터 정식으로 양력 1월1일을 양력설로 지정한 것이 공식적인 양력설이다

일제시대때 구정으로 불린 것을 박정권에서 답습하고 전두환 정권에서 민속이 날로 정했다가 노태우 정권에서 설날로 바뀐 것이다

 

 

넓은 네거리로 내려오면서 우틀

 

 

임도를 따르면

 

새정이 마을 직전 마지막 미소를 담아보고 - 보물상자 대장님 작품

 

새정이마을이 보이면서

 

새정이 마을로

 

새정이마을 이정표가 뽑아져 있다

 

노인정이 나오면서 좌틀

새정이(새쟁이)  서초구 신원동

새쟁이(신정(新亭)마을이 있다, 새쟁이란 마을 명칭은 수백 년 된 느트나무가 정자같이 서 있으므로 신정이라고 칭해온 것이다,   

 

 

횡단보도르 건너 도로를 따라 옛골로

 

 

 

버스 정퓨소앞에 있는 옛고토성에서 뒤풀이

 

감사합니다 - 보물상자님 작품

 

함께 하신 산우님들 사랑합니다

 

이렇게 멋지 추억 행복합니다  - 보물상자 대장님

 

 

이렇게 설날의 여운을 안고 시작한 청양의 해 2월의 정기산행도 끝을 알리고

 

 

새해의 첫머리이며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의 '설' 그리고 '설날'

우리는 새롭게 맞이하는 모든 것은 낯설기만 하다.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설날의 설의 의미를 '낯설다'에서 찿기도 한다.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다

또한 설은 '선날'에서 왔다고도 한다. 새해 새날이 시작(開始)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여기세 새해를 맞이하며 삼가고 조심하라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새로운 질서에 아직이니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뜻이 설날의 한자인 신일(愼日)에 담겨 있다

 

이러한 설의 의미를 되세기며 걸었던 3450온누리 산악회의 2월 정기산행

말그대로 이제 새로운 시작이며 새로운 질서에 아직 낯설기만 한 익숙하지 않은 지금

모든 일에 삼가하고 조심하며 그렇게 시작하다 보면

언제나 그렇듯 또 그렇게 올 일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될 것이다

 

명절증후군을 피해 집에서 푹 쉬느냐 산에 함께 하면서 수다를 떠들면서 즐기느냐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후자를 택하여 함께 산행에 해주신 산우님들 감사합니다

거기에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는데도 우중산행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어떤 방식이 더 좋으냐는 나의 판단이 아니지만 그래도 산을 좋아하는 산우님들이기에

명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내가 좋아하는 산에 오를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산우님들이 있다는 것이

수많은 세월을 산과 함께 해 왔던 나의 판단으로

굳이 정기산행을 명절과 이어저 있다고 멈추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판단

정기산행에서 이 조보산꾼이 하고 싶었던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하면 초라하게 끝날 수 있었던 설날과 함꼐하는 정기산행에 함께 하시어

덕담도 나누고 뒤풀이에서 마침 내려준 비와 함께 했던

산우님들의 끝없는 대화속에서 올 한 해

산방의 또 다른 전진을 위한 희망을 보여주신 산우님들 고맙습니다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설날의 의미까지 더해 주어

정말 행봇했던 하루였습니다

 

어디까지나 함께여서 즐거웠던 기억만 남기겠습니다

이번 산행이 명절증후군을 푸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길 듣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계속된 우중산행에도 불평없이 함께 즐겨주신 산우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거기에 뒤풀이에서 외친 '사랑합니다'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멋진 추억 함께해야만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제가 계속 '감사합니다'를 외칠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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