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100대명산 : 두타산 頭陀山 (1352.7m 삼척,동해 )

 

 

 

일시 : 병신년(16년) 하늘연달 10월 이틀 해날   

 

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백대명산팀과 함께

 

어딜 : 댓재 ~ 두타산 ~  무릉계곡 갈림길 ~ 쉰음산 ~ 천은사 주차장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345 에 있습니다

 

 

개천절이 끼어 있는 황금연휴... 그 가운데 모처럼 일요일에 떠나는 백대명산 삼척과 동해의 경계에 있는 두타산

어제 언제나 그렇듯 토요일이면 이곳저곳 산을 찾아 나서는 길...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는데...

무릎보호를 위해 무리하지 말자 스스로 약속했건만 세상사 어디 내 뜻만 가지고 살 수 있나...

그래도 백두대간 하면서 꼭 가고 싶었던 몇 군데 중의 한 곳이 바로 무릉계곡 이였으니 발걸음은 가볍다

아직 가을을 얘기하긴 빠르지만 벌써 피부가 느끼는 가을은 이미 곁에 왔으니...무릉도원의 가을은?

 

 

 

두타산과 쉰음산 연계산행 - 무릉계곡은 시간상 어려워 쉰움산으로 대체

 

'두타(頭陀)'는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불도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과 몸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 삼척시의 영적인 뿌리가 되는 두타산이다

6.25 때 인민군 병참기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미 공군의 융단폭격을 받았던 아픈 기억도 있지만

부처가 계시는 영적인 산인만큼 궁예시대부터 새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몸을 맡기고 때를 기다렸던 곳

삼척과 동해의 경계에 있는 두타산과 옛 선조들의 놀이터 무릉계곡을 품고 있는 쉰움산으로 길을 떠난다

 

 

 

역시 멀기는 멀다. 백두대간길 댓재에 도착하니 11시30분...

댓재 竹峙·810m

대나무나 많다고 하여 산경표에는 죽현 또는 죽치(竹峙)령으로 표기하고  대동여지도 등에 댓재의 서쪽에 죽현전, 죽령현이 표기되어 있다

삼척시에 속해 있지만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큰고개로 큰 산줄기를 넘어가는 고개의 의미인 “대고개”가 변음 되었다 고도 한다

고구려 때는 죽현현, 통일신라경덕왕 때 “죽령현”으로 개칭 되어 고려시대까지 사용하다 조선시대에는 “죽치”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삼척 하정면에서 미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죽원(竹院)이라는 여관이 하장면 원통에 있었다고 한다

 

 

체조할 시간도 없이 바로 준비하고 출발.... 김희석님의 접시돌리기를 한 번 했어야 하는데...

 

쉰음산 정상에 있던 것을 여기로 옮겼다는 댓재에 있는 두타영산지신(頭陀靈山地神)을 모신 산신각

 

대간길 초반에 댓재에 어울리게 산죽이 발길을 가볍게 하고

 

전국에 비가 온다고 하고... 서울에도 비가 온다는데... 여기는 비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삼적시 미로면 천지정사라는 절에서 출발하는 댓재옛길도 만나고... 댓재가 뚫리기 전에 고개이다.

 

댓재 옛길  자료 : http://cafe.daum.net/cinami/A0dX/247?q=%B4%F1%C0%E7%BF%BE%B1%E6

 

햇댓등

햇댓등

산신각 같은 곳에서 산신제를 지낼 때 강신을 돕기 위해 두개의 대나무를 잘라 통째로 세워 꼭대기에 오색천을 걸었는데

이 곳 강원도에서는 횟대를 "햇대"라고 하는데  이 횟대와 "댓재"를 합하여 "햇댓"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등(登)은 높다는 뜻으로 산줄기에서 전망하기 좋게 뛰어 나온 부분을 말하는 것이므로 햇댓등이 된다

 

 

나무에 가려서 그렇지 지형상 전망하기 좋은 봉으로 추측된다. 앞에 댓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보이는 것을 보면

 

가야할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명주목이

명주목이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에 속하는 여러 마을 중 하나인 명주목이(고개)의 원래 이름은 "데바지령"이며,

그 뜻은 삼척지방을 넘나들던 고개로 협소한 계곡의 지류를 따라 오르기가 힘들었다는데서 유래하였다.

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091

 

 

댓재에서 1.4km 왔다

 

삼각점봉 오르기 전에 되돌아 본 햇댓등의 위치 확인 - 어떻게 횟대를 걸어 둘만한 봉우리로 보이는지...

 

기암바위를 지나면

 

바로 삼각점봉

 

삼각점봉에서 동해를 당겨보면 우측이 삼척이고 좌측이 동해인 듯

 

잠시 후 식후경

 

어찌됐든 오늘은 구름만 끼어있고... 명품 소나무들도 함께 하고...사잇 추풍이라 더욱 좋고...

 

고도를 높인 만큼 서서히 단풍도 얼굴을 내밀고

 

통골재

통골재(목통령木通嶺)

번천으로 유입되는 통골재에서 구룡소로 넘어가는 고개로 목통령이라고도 부른다. 두타산 남쪽 허리가 잘록한 노루목이다.

목통령은 원래 순수한 우리말로 동물의 '목'에 해당하는 '목통'이다. 한자어로 표기하는 '木桶嶺'은 적당히 음차한 것이다.

 (신동길 <뫼 따라 하늘까지>)

 

 

산림욕 안내판이 있는 지점 통과 하면서

 

두타산 전위봉인 1241봉을 우회면서 본 가을

 

다시 마루금에 접속 대간길인 청옥산 그리고 고적대봉에서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마주하고

청옥산 (靑玉山·1,403,7m) 

고지도에는 두타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지금의 두타산보다 50m 높다. 

금, 은, 수정, 마노, 호박 등과 함께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7가지 보석 중 하나인 청옥에서 온 지명이라 하기도 하고

임란 때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이 죽지 안했다는 뜻으로 “청옥산”이라 했다고 하기도 하고

동해시 쪽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푸르다”:고 하여 청옥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091

 

 

두타산 이정석이 있는 정상

 

두타산 頭陀山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

백두대간의 주봉으로 북쪽으로 무릉계곡, 동쪽으로 고천계곡, 서쪽으로는 중봉산 12당골을 품고 있다.

'두타(頭陀)'는 불교용어로 '벗다, 씻다, 닦다'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를 음차한 것으로

부처는 출가 수행자가 세속의 욕망을 떨치고 정각을 이루기 위한 수행법으로 두타행(頭陀行)을 강조했다

두타행(頭陀行)은 수행자가 따라야 할 의식주의 방식을 규정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091

 

 

되돌아 본 올라온 길 멀리 함백산 풍차도 보이고

 

청옥과 고적대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 좌측으로 희미하게 선자령 풍차도 보인다. 육안으로

 

무릉계곡을 중심으로 청옥산(1404M)과 쌍둥이처럼 서있는 산인데도 형상이 매우 대조적 이다

두타산은 정상부가 첨봉을 이루고 주변은 급경사면 이어서 날렵한 산세를 자랑하고 청옥산은 완만하고, 묵직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청옥산보다 두타산이 51m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산 전체를 일컬어 두타산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삼화사 현판에도 두타산 삼화사라고 기록되어 있고, 윤두서의<동국여지지도東國餘地地圖>에도 청옥산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다가

신경준의 산경표山徑表에 이르러서야 청옥산이 보이는데 두타산보다 아랫자락에 청옥산이 놓여있는 것이다.

 

 

삼척의 영적인 모산... 삼척시 방향 동해바다.  삼각점봉에서 본 삼척방향 동해바다

 

두타산은 예로부터 삼척 지방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 숭상 되었으며, 동해안 지방에서 볼 때 서쪽의 먼 곳에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이산은 정기를 발하는 산으로 여겨져 민중들의 삶에 근원이 된다고 여겼던 산이다.

그래서였는지 조선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동인의 중심인물 이였고

그 당시 삼척부사로 재직했던 김효원은「두타산 일기」에서 금강산 다음으로 아름다운 산을 두타산으로 꼽았다.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 신정일대표님 글중에서...

 

 

무릉계곡 이정표 따라 하산 시작 - 조교대장님 수고했습니다.

 

하산 하면서 가을 분위기를 담아 동해를 담아 본다

 

기암에서 본 두타산 - 댓재에서 올라오면서 본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온다. 가을을 얘기하면서...

 

 

오늘 들르지 못한 무릉계곡을 담아 본다

무릉계곡

두타산은 부처의 와불을 연상시키는 산으로 고적대에서 Y계곡을 이루며 발원하는 물줄기는 쉰음산을돌아 오십천으로 흐르는데

호암소로부터 시작하여 약 4km 상류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를 말한다.

무릉(武陵)이란 이름은 중국 최고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에서 연유한다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쉰움산 내림길... 7부 능선까지는 가을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두타산성은 임진왜란 때, 의병과 피란민들이 웅거하며 이 지방으로 쳐들어온 5,000명의 왜군을 물리친 곳이다

전쟁은 승리했다고 승리가 아니다... 우리 백성들도 그만큼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승리이니...

우리 백성 5천명까지 합쳐 1만명이 넘는 인원이 피를 토하며 죽어갔으니 무릉계곡은 당연히 피로 물들었을 것이고...

피로 물든 영혼의 원환이 얼마나 넘쳤으면 흐르고 흘러 삼화동의 연못까지 붉게 물들였을까?

 

 

당겨보면 - 저 합수되는 지점 어딘가에 쌍폭도 있고 문간재도 있고 용추폭포도 있고...

 

두타산과 쉰움산 사이의 계곡이 피내골이라하고 산성 맞은편 골짜기를 피마른골이라 불렀다

거기에 민족상잔의 슬픔은 다시 이 곳 골짜기를 피로 물들게 했다

시인 김지하는 이곳 너럭바위에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죽어갔을 수천 명의 아우성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파쏘, 비린내골 파소굽이라는 원한 서린 이름들이 남아 떠도는 이 골짜기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떨리던 여인들의 귀곡성… 머리를 잡아끌던 보이지 않는 손길들을 느끼면서...

 

우리가 무심히 알고있던 무릉계곡의 드넓은 너럭바위에서 시인은 귀곡성을 들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던 망군대도 청옥산과 고적대 사이로 잠시 고개를 내민다

 

무릉계곡 이정표에서 쉰음산은 우측으로...이정표 없다

 

만만치 않은 내림길... 이제 다시 평온한 숲길이 이어진다

 

헬기장을 지나고

 

처음으로 나오는 이정표

 

 

아무리 낮춰도 나타나지 않던 쉰음산..긴 숲속 터널을 뚫고 갑자기 나타난 암릉이 쉰음산의 시작을 알린다

제단으로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새끼대신 흰천을 감고 있는 남근석을 상징하는 듯... 무엇을 소원하고자 했을까?  작은 그림 참조

 

뒤돌아 본 제단의 흔적을 보니 무릉계곡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막아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암릉은 계속 이어지고... 두타산에서 쉰음산까지... 내림길에 지친 몸을 한순간에 힐링으로 보답받고 있는 기분...

 

하늘 높이 치솟은 기암과 노송의 기개가 함께 하니 쉰음산으로 가는 길이 그래서 옛부터 기도터로 유명했구나...

 

내 몸의 일부를 나무에 맡기고도 위엄을 잃지 않은 암벽들...

 

이제 널부러져 있는 바위들의 조각들을 이용해서 납작한 돌을 아래에 놓고 뽀족한 돌을 올려놓은 내맘의 제단이 다수 보인다

 

이렇게 작은 제단을 만들어 무슨 소원을 빌고 싶었던 것일까?

 

오십정 정상과 좌측으로 무릉계곡 - 음양의 조화를 위해 음인 웅덩이에 남성성을 담은 이정석을 세운 것이 이채롭다.

오십정은 ‘오십정산(五十井山)’의 준말이며, 50여 개의 우물이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쉰움산이라고도 한다.

두타산(頭陀山) 산마루에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반석에 크고 작은 구멍이 수백 개가 뚫려 있는데, 그 중 구멍이 큰 것이 50여개가 된다.

그 구멍에서는 샘이 솟아나지는 않으나 비가 온 뒤에는 빗물이 고여 마치 우물과 같아 보인다.

이 부근에 뾰족한 돌을 세워놓고, 납작한 돌로 만든 제단이 수천 개가 있어 이곳에서 옛날부터 산신제가 성황을 이루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가뭄이 들면 마을사람들이 이곳에 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자료 : 다음 백과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8392

 

 

우물 음과 끝에 보이는 양 그리고 너머에 실제적인 쉰음산 정상봉

 

천은사와 동해 그리고 하늘에 높아지는 구름이 어딘가에 열심히 비를 내리고 지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약수터를 지나 천은사로 내림길도 만만치 않다. 거목은 죽어서도 죽지 않음이니...

 

잠시 우측에 보이는 거대한 암벽에 눈이 간다. 거대한 암벽을 지탱하고 있다. 작은 돌 하나가...

 

그 뒤편으로 들어가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상수원보호구역인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이승휴선생이 외가인 이곳에 살면서 제왕운기를 지었다는 천은사를 지나고...

이승휴李承休는 76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日生의 대 부분을 두타산 아래 구동마을의 外家에서 보냈는데 제왕운기도 여기서 태어났다

제왕운기(帝王韻紀)의 위대한 점은 우리나라를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보았으며, 

 “발해사”를 "우리민족사"에 포함시켜 중국의 문화와 다른 독창적인 문화를 강조했는데,

"단군"을 우리민족의 시조로 내세워 단일민족임을 강조하였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최초로 사용하였다는데 있을 것이다

자료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091  정리

 

 

 

사대주의를 표방하던 당시의 분위기속에서 중국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를 동등한 위치에서 보았던 것에 대해 

이승휴를 투철한 민족정신을 가진 선각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 지금 대한민국의 시계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사대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바로 이승휴선생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 동안사(動安祠)가  보인다. 생전에 이승휴 선생을 동안거사라 불렀다고 한다

 

 

월정사 말사로 알려진 천은사 주차장으로 내려와 긴 하루를 마감한다

 

동남횟집에서 뒤풀이

 

수고했습니다.

 

금강산에 버금가는 관동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옛 선인들의 칭송이 결코 과하지 않은 무릉계곡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찾고 있고 또 감탄하며 걸었을 것이고 또 후세들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영동이남 지역 사람들에게 한양을 오갈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지름길 이였다고 한다

정선 임계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려면 청옥산과 두타산 사이에 있는 박달재(朴達嶺)를 넘어야 했던 것이다

금, 은, 수정, 마노, 호박 등과 함께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7가지 보석 중 하나인 청옥산이 빚은 무릉계곡 보다

광명을 비추는 높고 큰 산을 의미하는 박달재의 의미 보다는

삶의 무게를 지고 힘들게 넘어야 했을 민초들의 현장이었던 길이 더 무겁게 다가 온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중국의 무릉도원에서 따와 붙여준 무릉계곡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동해의 푸른 물결도 아니고 강원도 국민관광지 1호로 지정된 무릉계곡 

지금 못지않게 옛 사람들에게도 풍류를 즐기기에 안성맞춤 이였던 듯 명필가와 묵객들이 남긴

정확한 뜻까지는 모르겠으나 너른 바위위에 음각 글들이 품어내는 그들이 남기고자 했을 이상향

세월을 거슬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선조들의 남기고자 했던 맘만은 느낄 수 있는 곳

종이가 부족했던 옛날에 이렇게 자연이 만들어 준 너른 바위를 보면

누군들 자기 뜻을 남기고 싶지 않았겠는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암각으로 남겨진 소중한 옛 선조들의 발자취가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왔는데 오늘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다

 

자연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작품에 눈을 빼앗겨 걷다 보면

왜 선조들이 무릉계곡이라 했는지 느끼게 해 줄 것 같았던 무릉의 세계

또한 청옥산과 두타산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물줄기의 흐름을 보면서

속세를 등지고 청정하게 불도에 전념한다는 두타행(頭陀行)을

말없이 흐름을 멈추지 않고 있는 무릉계곡 물길이 실천하고 있음을 배울 기회라 생각했건만...

무릉계곡이 바로 바로 옆인데...

시간이 야속하구나...

 

하지만 오늘 무릉계곡을 품어준 또 하나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쉰 개의 크고 작은 우물이 있어 붙여진 오십정산(쉰음산)에 올라 신령한 기운을 받고

쉰움산 밑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천은사에 들러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신 제왕운기를 저술한 이승휴 선생도 꼭 만나고 싶었는데

비록 짧은 시간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겨우 사진만 남기고 떠나왔지만

민족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선생의 절개가 살아있는 유적지를

코앞에서 볼 수 있었음에 이것 또한 행복이니...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