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100대 명산 - 축령 (祝靈山 879m 남양주. 가평) : 시산제

 

 

 

일시 : 병신년(16년) 물오름달 3월 열이틀 흙날         

 

인원 : 광명 로얄 산악회 산우님들

 

어딜 : 축령산 휴양림 매표소 ~ 수리바위 ~ 남이바위 ~ 축령산 ~ 절고개 ~ 축령산 휴양림

                  (시간은 사진안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020 에 있습니다

 

 

 

잎샘추위와 꽃샘추위 거기에 겨울에는 제몫을 다하지 않던 동장군의 늦바람 시샘까지 합심해서

3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추위는 기본이고 강원도에 폭설까지 내려 봄의 향연에 찬물을 끼얹고 있지만

이미 맘속에 활짝핀 봄의 꽃까지 꺽을 수 없는 법 내린 눈마져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올 만큼 그래도 봄이다

새 해 새롭게 시작하는 산행에 산신령에게 올 한해 무사 산행을 비는 뜻깊은 시산제가 있는 정기산행

올 한해도 안전한 산행을 위해 필요한 산신령님의 도움을 얻고자 신령한 산으로 유명한 축령산으로 떠나 본다

 

 

 

함께한 등로 - 청색 원점회귀

 

가평에서  ‘축령백림(祝靈柏林)’이라 해서 가평 8경의 하나로 꼽고 있는 잣나무 숲길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빽빽하게 서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잣나무 숲이다

황량한 벌판같았던 산에 해방전후에 심은 묘목들이 이렇게 자라서 후손들에 산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난 곳

가평군 상면에는 아침고요수목원이 있고 남양주방면에는 경기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축령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신령한 산으로 태어난 태생에 후손들이 만들어낸 힐링숲이 함께 하는 100대 명산 축령산속으로 들어가 본다

 

 

 

시산제로 축제인 만큼 차량2대로 이동 - 매표소를 지나 대형버스 정류장에 도착

 

월궁항아님의 체조로 산행을 위한 준비하고... 단체사진을 담고...

 

버스가 들어왔던 방향으로 내려가면 매표소 삼거리에서 축령산 방향으로 산행은 시작되고

 

매표소 방향

 

서리산 방향

 

좌측으로 화채봉을 담아 보면서 산행 시작

 

폐쇄된 약수터를 지나 제1주차장

 

야영장 삼거리가 나타나면 축령산은 우측, 서리산은 좌측으로

 

축령산 휴양림의 잣나무 숲길로 들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고.. 봄이라 그런지 푸르름을 더하며 맘꺽 기지개를 펴게 만든다

 

짧은 숲을 지나자 침엽수만 있냐? 나도 있다.  활엽수 군락지가 나오면서 우측으로 모두 올라가고 나 홀로 직진

 

침엽수와 활엽수의 조화속에 너덜길같은 길은 이어지고

 

이 암반약수를 보기 위해 홀로 올라 온 것인데... 겨울에는 폐쇄? 안내판이 지워져 있다

 

자료 : 초보산꾼 - 여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수리바위 능선에 접속하기 위한 오름길도 잣나무숲 향기로 가득하고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면서 축령산과 함께 주금산을 모산으로 하고 있는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천마지맥 산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리바위 직전 작은 수리바위와 큰 수리바위를 함께 담아 본다

 

작은 수리바위에 올라 수리바위를 배경으로

 

 

수리바위위에 있어 많은 산객들에게 사진 먹이감을 제공하는 앉은뱅이 소나무를 담아 볼려 했으나 넘 사람들이 많아서...

이 아래 멀리서 보면 이 소나무가 한마리 수리가 날개를  펵고 있는 모습으로보일까?

 

 

이제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망대 역활을 하는 암벽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이어진다.

 

 

조선시대 홍씨성을 가진 판서가 늦도록 후사를 잊지 못해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곳에 제단을 쌓고 지성으로 발원기도를 한 결과

후세를 잇고 자손 대대로 가문이 번창하였다는 전설이 담겨져 있는 홍구세굴 갈림길... 역시 신이 내린 산인가 보다

 

이제 남이바위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시 숨고르기 하듯 평범한 길이 이어진다

 

우측에 남이바위와 좌측에 축령산 정상이 보인다

 

왜 남이 장군이 여기서 호연지기를 길렸는지 알 수 있는 암벽이 압권으로 다가 온다

 

남이 바위 정상

 

남이바위에서 본 한북축령지맥상의 오독산에서 은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담아보고

오독산과 은두산

남양주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 외서면 경계에 솟은 산으로 옛날에는  “은두산“ ”은두먹“ ”오똑산" 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오똑솟은 산이라는 뜻으로 축령산의 또 다른 이름인 태조 이성계가 멧돼지 5마리를 잡았다고 하여 붙여진 구전도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은두정산(銀頭頂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서북쪽에 은두목현(銀頭目縣)에서 유래하였다

은두목현에는 실제로 예전에 은이 많이 묻혀 있어서 은을 캐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고

은두정산 꼭데기에 구름이 맞닿아 있다고 해서 雲頭山이라고도 불리어 왔다고 한다

 

 

 

여기에 앉아 호연지기를 길렸을 것인데

 

조선 세조때의 명장이었던 남이 장군은 경기도 포천, 영평 일대의 도적떼를 토벌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한성의 동북방의 요충지였던 이 곳에 자주 올라 지형지물도 익히고 심신을 연마했던 곳으로

바위가 실제로 의자모양으로 패어 있고 조망도 좋아 호연지기를 기르기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호연지기의 모습을 보여달라 했더니... 귀요미로 답하는 신통님

 

대신 블랙대장님이 남이장군의 포스를 취해 본다. 후미에서 고생했습니다

 

수목원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고 - 초보산꾼이 궁예의 흔적을 찾아서 태마가 끝나면 가야할 축령지맥 갈림길이다

 

이제 남양주와 가평의 경계가 이어지는 한북축령지맥길이 절고개까지 함께 하게 된다. 헬기장도 지나고

 

축령산 (祝靈山 879m)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 가평군 상면의 경계

 

축령산을 비랑산(非郞山), 비령산(飛靈山), 비룡산(飛龍山), 오득산(五得山) 등으로도 불렀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이곳에 사냥을 왔다가 한마리도 잡지 못하면서 유래한 이름 들이다

비록 잡지는 못했어도 재빠른 동작으로 사냥하니 그  모습이 마치 용이 나는 듯하여 비룡산이 되었고

신령스런 산이므로 산신께 제를 올리자는 말에 따라 산신제를 지냈다고 해서  ‘빌령산’ 또는 ‘축령산’이라 불렀고

노력이 헛되지 않아 고사를 지내고 난 후에 멧돼지 5마리를 잡은 산이라 하여 ‘오득산(五得山)’이라고도 부르게 됐다고 한다

현재 산악인들이 산신제인 시산제(始山祭)를 지내는 명소 중의 하나로 꼽는 것도 여기서 유래를 찾는 듯하다

 

 

 

행현리 갈림길이기도 하다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중의 한사람으로 기록될 만큼 출세가도를 걷다가 젊은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남이장군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조선조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공신이 되어 병조판서까지 되었으나 예종이 임금이 되면서 유자광의 모함으로 꽃다운 28세에 요절하자

이 지역사람들이 그 영혼을 위로하고자 축령산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남이 장군이 어릴 적 무예를 닦았다는 남이바위가 있고 여기서 가까운 남이장군의 묘소가 있다는 남이섬이 있는 것을 보면 설득력이 있다 

남이장군는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라는 명언(시)을 남겼다

 

 

 

 

한국전쟁으로 희생당한 수동면 반공 희생자 24명의 넋을 기리기 위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데...

다시 역사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여 희생자 분들의 뜻이 더욱 무게를 더한다

 

축령산 족보

 

한북정맥 수원산 직전의 서파에서 남쪽으로 개주산 주금산으로 이어지다 한줄기는 예봉산을 거쳐 팔당댐 부근의 한강으로 들어가고

또 한줄기가 주금산에서 축령산으로 이어져 깃대봉을 지나 조종천 합수점에 생을 다하는 줄기에 있는 산이다(축령지맥)

 

 

 

날씨 예보대로 서서히 시작되는 진눈깨비로 시계가 없어 아쉽지만...  서리산 방향을 보면서 하산 시작

 

이제 짧은 축령지맥과 만남을 철쭉의 명산으로 이름난 서리산으로 넘기고 절고개에서 좌측 남양주 방향으로

가평 잣나무

축령산의 잣나무는 1933~34년 일제강점기에 18헥타아르(축구장 25개 면적)에 걸쳐 5만 그루가 심어진 것이라 한다.

국내 잣의 45~60%를 가평에서 생산하는데, 그 중 20%를 축령산에서 생산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잣나무 군락의 대부분은 가평군 상면 부근에 위치해 오늘 산행에서는 일부만 구경이 가능하다

 

 

자료 : 초보산꾼 - 5월에 한번 서리산 철쭉동산에 놀려 갑시다. 만개하면 한반도 모습으로 바뀌는데...

 

 ‘축령백림(祝靈柏林)’은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하산하는 동안 조금은 보여준다

 

 

잔디광장을 지나 전망대바위 갈림길도 지나면 잔디광장 입구 이정표가 나오는 임도이다.

 

임도 삼거리를 지나고

 

고로쇠나무 채취 현장

 

 

물놀이장이 나오면 임도와 헤어져 계곡으로 내려가 산책로를 따라 계곡과 함께 한다. 앞에 보이는 이정표는 홍구세굴 입구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곡길 따라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해주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1주차장 가는 길과 만나고

 

우측으로 보이는 제1목교를 건너면 시산제가 준비되고 있었다. 노을 총무님 산에 오르지도 못하고 준비 수고했습니다.

 

산에서 지내는 시산제는 산우님들의 안녕과 건강 그리고 보살핌을 기원하며 산신령께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지만

산을 무대로 즐기는 만큼 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며 산 앞에 스스로 나를 낮추어 한 해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기에 한 해 동안 개인적인 산행도 많이 할 것이므로 개인적 소망도 함께 빌어봤다

그런데 제사에도 일정한 순서와 예의가 있듯이 시산제에서도 지켜야 할  도리가 적지 않게 있다

 

 

 

그 중에서도 알 듯 모를 듯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산제에서는 왜 삼배를 해야 할까?

우리가 설날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할 때 보통 두 번 절하지 않는다. 산사람(양)이기 때문에 한번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를 지낼 때는 두 번 절한다. 죽은 사람은 음이기 때문에 두 번 절하는 것이다

그러면 산신은 어디에 속할까? 산신은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양을 합한 삼배를 하는 것이다

더 정확한 예의를 지키려면 삼배 후 일어날 때 반배를 포함에서 삼배반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산신령만이 아닌 천지인과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는 천지신명 모두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각국마다 절의 회수는 다르다고 하는데 왜 한국인은 홀수를 양으로 보고 있었을까?

한국인은 숫자에서 짝수를 우수(偶數)보고 홀수를 기수(奇數)로 보아 1,3,5,7,9를 성스러운 숫자로 대접했다

거기에 겹친 날인 1월1일은 설, 3월3일은 삼짇날, 5월5일은 단오, 7월7일은 칠석, 9월9일은 중구절이라 해서

지금까지 명절취급을 하며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왜 유달리 그중에서도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할까?

삼(三)은 일(양)과 이(음)가 합해져 만들어낸 숫자로 음양(陰陽)이 합한 숫자이므로 완전한 숫자로 생각했다고 한다

즉 3이라는 숫자는 음양의 조화를 이룬 최초의 숫자이고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를 나타낸 숫자가 되는 것이다

삼신(三神)할머니의 도움으로 아기를 낳고 금줄을 치면서 몸조리를 하게 되는 삼칠일(21일간) 에도 칠일이 세 번 반복된 의미가 담겨 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도 3이고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도 3이며 달도 차면 기우는 초승달,반달,보름달도 3이다

거기에 정초에 삼재(三災 :水, 火 風)까지도 자연의 섭리로 여기며 나름대로 피해갔다

 

 

 

음복으로 시산제가 끝나고 근처 식당에서 뒤풀이 후 시산제를 겸한 3월 정기산행도 끝을 알린다

 

이 많은 음식과 시산제 진행을 준비해주신 운영자님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수고했습니다.

 

 

시산제는 한해의 무사 산행과 안전, 그리고 산악회의 발전을 산신께 비는 자리이다

산이 있어 산을 찾는 산악인들에게 어쩌면 산에 대한 고마움을

한잔의 술을 바치면서 정성을 다하는 의식은 당연한 것이다

시산제는 전통적으로 보면 정월을 넘기지 않으려 2월안에 해야 하지만

산악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생적으로 치르는 시산제이다 보니

새 생명의 탄생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따뜻한 3월에 많이 하는 추세에 따라

광명로얄산악회도 정기산행겸해서 시산제를 누구하나 흐트러짐없이 엄숙하게 진행되고

시산제를 마치고 나서는 음복겸해서 서로 음식을 나눠먹으며 덕담까지 나누고  

거기에 반짝 아주 잠깐 사이에 내려준 3월에 보기 힘든 함박눈 축하사절까지...

역시 신령스런 산의 기운을 받은 축령산의 무게에

로얄산악회 산우님들과 임원진들의 정성이 만들어낸 결과라 생각됩니다

시산제 장소가 산을 등지고 차려져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과

휴양림에서 설치한 장소에서 지내다 보니

근처의 잡귀들에게 너희들도 함께먹고 물러가라는 잡귀 추방의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고수레를 할 수 없었지만 제단처럼 가꾸어져 있어 좋았던 시산제 

 

시산제는 산악회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의식이기도 합니다

산신령에게 의식을 치렀따고 해서 안전이 보장받는 것이 아닌만큼

시산제에서 나를 낮추었듯 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는 의미가 더 커 보입니다

항상 안전을 생각하는 자세로 산행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홍길 산악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대자연에 순응하면서 정상을 잠시 빌릴 기회를 산에게서 허락받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군사시절 분위기와 맞물려 즐겨쓰던 정복이라는 말대신 등정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메스컴의 발달이 좋지 못했던 시절 전해 온 에베레스트 정복이라는 쾌거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곧 이어 날라 온 비보는 결코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상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엄홍길님같은 대산악인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혹독한 환경과 사소한 실수 하나에 목숨을 건 원정산행에서 얻은 산에대한 존경에서 경허함이 묻어난다

과연 나는 산에 오르면서 정상에 오르려고만 애쓰지 않았는지

바로 앞에 보이는 돌부리 하나에도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떻게 정상에 올라 세상을 봤다고 말 할 수 있는지

엄홍길 대산악인 같은 경험에서 나오는 맘가짐으로 산을 대할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인 겸허와 순수한 마음으로 산을 대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나를 낮춘 만큼 산은 나에게 작지만 많은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내가 산이라는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 호흡할 수 있는 날까지...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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