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 백운(白雲山 883m 정선,평창)

 

 

 

 

일시 : 을미년(15년) 하늘연달 10월 나흘 해날         

 

인원 : 3450온누리 산악회100대 명산 산우님들

 

어딜 : 문희마을~갈림길~바람재~백운산정상~살개목재~칠족령~성터(돌탑)~문희마을

                                       (산행거리 : 6.1km (4.5시간) 조교대장님 공지)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663에 있습니다

 

 

푸른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먼저 찾아와 가을의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하늘 연달 10월 초순

그래서 단군께서 열어주신 개천절이 함꼐 하고 독서의 계절에 맞게 한글날까지...

축복받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 가는 100대 명산 강원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백운산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맘까지 송두리째 빼았길 수 밖에 없는 가을초입에 떠나는 산행길

소매자락 휘감 듯 사쁜이 내려놓아 구절양장의 모습으로 다가와 손에 잡힐 듯 발아래 펼쳐지고 있는 동강의 힘을 느껴보자

 

 

참고용 지도

 

 

동강의 마지막을 책임지고 있는 영월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동강東江의 시작점은 정선군 가수리이다

조양강과 동남천이 함께 정선땅을 내려오다 평창을 거쳐 영월땅으로 이어지다 남한강과 함께 민족의 젓줄인 한강이 되는데

우리에게 자주 회자되는 동강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 중의 최고로 꼽고 있는 곳이 바로 백운산 칠족령 일대이다

정선군과 평창군의 경계에다 바로 동강을 건너면 바라다 보이는 영월땅이 함께 호흡하는 구절양장 동강속으로 들어가 본다

 

 

 

 

문희마을 주차장에 도착 김희석님의 체조로 하루의 여정을 준비하고

 

문희마을 앞 동강을 담아 본다. 강 너머가 영월땅

 

단체사진을 남기고 백운산의 산행을 시작한다

 

칠족령 반대방향인 좌측으로 산행을 시작하여 문희마을을 담아보고

문희마을과 절매마을   육지 속의 섬  강원도 평창, 영월

줄배가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했던 '육지속의 섬'이라 불리며 오지 중의 오지였던 평창의 문희마을과 영월의 절매마을

동강이 래프팅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 다리가 놓였지만  아직도 절매마을은 오지중의 오지 마을이다

折梅마을은 마을의 모습이 꺾어다 놓은 매화송이처럼 생겼다해 붙여진 지명이고 문희라는 개이름이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급경사길과 완경사 이정표가 나오면 우리는 완경사 방향인 직진

 

돌무더기(산성흔적?)이 나오면서 좌.우로 갈리는데 우리는 계속 직진 - 결론적으로 우측으로 가야 구름재로 갈 수 있다

 

가을이 오고 있는 터널길

 

완경사길이라고 했는데 급경사보다 더한 급경사 길이 계속되고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동강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알았네... 길을 잘 못들어 푯대봉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푯대봉 직전 우회를 시작하고

푯대봉( 724m)   운치리 돈니치와 고성리 고방과 내창의 경계

1912~1918년까지 일제가 우리의 농토를 수탈하기 위해 실시한 토지조사사업 때 땅을 측량하기 위하여 산봉우리에 삼각 기점을 잡고 푯대를 박은 곳이다.

 

 

더욱 멀어진 백운산이 우측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푯대봉과 백운산이 만들어낸 계곡이 깊기도 하다

 

우회길도 만만치 않아 힘들게 도착한 푯대봉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도착. 30분이나 걸린 우회길...

 

적당한 자리에서 식후경

 

잠시 후 만나게 될 땟목의 재료가 된 소나무가 숲을 이루며 가을을 먼저 호흡하고 있다

 

원래 우리가 목표로 했던 이정표가 있는 구름재 - 계곡이 깊은 만큼 역시 구름도 많았을 것이다

구름재

수동 위쪽에서 백운산 능선을 향해 오르는 고개로 고개 앞으로는 동강물이 휘돌아 흐르고 있어

흐리거나 비가 온 후에는 항상 안개가 자욱한 고개로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이 구름을 뚫고 산을 넘어 다녔다고 하여 ‘구름재'라고 했다.

옛날에는 구름재를 넘어 평창군 미탄면 수청리와 미탄면 마하리 문희 마을로 넘어 다니곤 했다.

 

 

열매달 9월이 갓지난 10월초 아직은 열매가 마지막 결실을 가져다 준다 - 자연산 머루의 맛에 삼매경

 

심봤다!!  허무하게 끝난 10월초순 가을맞이 한마당

 

어렵게 되돌아 온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백운산 정상에서의 한주님 - 앞으로 6기 백두대간의 큰 기둥이 되어주시겠죠?

백운산( 883m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과 평창군 미탄면의 경계에 있는 산.
흰구름이 늘 끼여 있다고 하여 백운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소골(정선 덕천리) 앞으로 뻗은 칠족령의 본 산인 백운산(白雲山)을 사투리로 발음해 부른 것이 '베비랑산', '배구랑산'으로 되었다.

강원도 최후의 비경이라는 정선에서 흘러나온 조양강(朝陽江)과 동남천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동강의 중심을 이루는 산으로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부근에 천연기념물 제260호인 백룡동굴(白龍洞窟)이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본 정선군 덕천리 제장마을로 이어지는 동강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백운산은 가끔 황공사진으로 보는 동강의 구절양장의 형태를 가장 가깝게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산이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보이는 동강의 모습하고 정상에서 보는 동강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는데

뱀처럼 이리저리 돌아가며 숨박꼭질 하듯 벼강에 잠시 몸을 의탁하고 다시 돌아 나와 유유히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동강을 '국토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했던 모습 그대로 우릴 반긴다

 

 

가끔 보이는 동강을 보면서 내림길을 하면 첫 이정표를 지나고

 

미끄러운 너덜지대가 이어지는 내림길에 그래도 동강의 바람을 먹고 살아온 가을냄새가 풍기고 있어 그나마 위안

 

지도상 갈림길을 지나 첫 전망데에서 본 제장마을로 이어지는 칠족령봉을 배경으로

 

 

구절양장의 구비구비를 돌고 도는 동강 강물의 물길은 뗏꾼들에게 길을 내주며 오지중의 오지의 삶의 근원이 되었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여 댐과 보가 생기면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래프팅의 코스가 됐다

줄배가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던 동강변 마을들도 이제는 하나 둘 다리가 생기면서 줄배도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그렇게 많았던 줄배도 몇군데 남지 않아 찾는 것도 이제는 쉽지 않게 되었다

 

 

 

구절양장의 동강의 모습을 담아 본다

 

동강의 물길이 휘돌아 가다 보니 거센 물살은 필연적으로 따라 다녔고 큰배라면 모를까 떗목을 이용했던

이곳에 기대어 살아가던 뱃사람들에겐 여울이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땟목은 엎어지고 사람도 성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손해도 보면서 사람목숨까지 앗아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옛시절에는 물길을 이용한 수송을 하다 보니 뗏꾼들은 목숨걸고 이 곳 동강을 통했다

 

 

 

제장마을 반대편에 있는 고성리 아래의 지도상 나리소와 T자모양으로 물이 갇혀 있는 바리소가 보인다

나리소

소골(정선 덕천리) 동쪽 벼랑으로 굽이도는 큰 소를 말한다 '나리'는 '날'에서 온 옛말로 '흐르는 물', 즉 '내'(川)나 '강'(江)을 뜻하는 말이었다

'나리소'는 물이 깊고 조용한 까닭에 소를 둘러싼 절벽 아래에 굵기가 한아름되는 이무기가 살면서 물 속을 오간다는 얘기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바리소

나리소 아래에 있으며 하류로 흐르던 물이 빠져나가 형성된 소(沼)의 형태가 놋쇠로 만든 밥그릇인 바리와 닮았다고 해서 ‘바리소'라고 한다.

‘바리'는 오목 주발과 같으나 입이 좁고 중배가 나온 주발이다.

주변에 둘러 쌓인 암반 때문에 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인 ‘바리소'는 소가 깊고 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우측 제장마을로 이어지는 동강 - 마지막 봉 직전이 칠족령 - 그 뒤로 보이는 뼝대능선

 

조양강을 거쳐 동강에 들면 황새여울, 된꼬까리 여울 등의 이름만 들어도 떗꾼에게는 공포의 장벽을 통과 해야만 했는데

그래도 뗏목에 의지해 운송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운송 후 받게 되는 노임떄문이었다

목숨을 건만큼 그 당시에는 받기 힘든 거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바로 '떼돈'을 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로 '뗏꾼들이 받는 노임'이었던 것이다

 

 

 

좌측의 동강을 계속 보고 내려오는데 잠깐 우측으로 영월 방향 동강이 보인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많은 목재가 필요했고 양질의 목재는 한강의 상류인 강원도에 있었고

목재를 싫어나를 수단으로 물위에 띄울 뗏목을 만들어 사용하다 보니 뗏목을 움직일 뗏꾼이 필요했고

단기간에 많은 양의 목재를 운반해야 하고 조선건국후 최대 국책사업으로 알려진 대 공사이다 보니

뗏꾼들에게는 목숨을 걸만큼 최대호황을 누렸던 시기와 맞물린 시대적 산물이기도 하다

 

 

 

당겨보면 - 정선아리랑 대사에 나오는 황새여울이 이어진다 - 11월 초보산꾼과 함께 할 정기산행 영월 잣봉의 어라연계곡에서 다시 만납니다

 

정선에서 조양강과 합수하여 내려온 물이 이 곳  백운산을 휘돌아 가면서 만들어 내는 구절양장의 동강을

백운산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동강에 숨은 민초의 삶의 얘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흐르고만 있다

땟군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며 흘려 보냈을 사연들을 받아 준 곳이 바로 영월땅을 계속 흐르다 만나게 되는 전산옥여인 주막집이었다

다음 11월 정기산행으로 초보산꾼과 함께 가게 될 어라연을 품은 잣봉에 지금도 유일하게 전산옥 집터가 남아 있다

전산옥 주막집에서 흘려나온 땀방울 맺힌 소리와 한의 소리를 품은 강이 바로 남한강이고 민족의 젖줄이 되어 준 것이다

 

 

 

계단길 내림길도 이제 가을이 오고 있슴을...

 

내려오다 뒤돌아 본 백운산의 위용 - 구름도 흐르다 벽에 부딛혀 넘지 못할 듯

 

완만한 능선길을 찾다가 제대로 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했던 문희마을을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멧부리인 푯대봉을 담아 본다

 

좀 더 내릴길을 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정성군 덕천리 일대 동강의 가마소와 강너머에 고성산성으로 이어지는 도로도 구절양장이다

 

칠족령의 전설을 안고 있는 제장마을이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다

제장 마을 정선 덕천리 

일설에는 큰 장이 서던 곳이라고 하지만, 물굽이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 마당처럼 평탄하게 생겼다고 해서 '제장'이라고 한다.

마을 앞으로 물이 휘도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으로 고인돌과 같은 청동기 시대 유적과 적석총 등

초기 철기시대 유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 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문희마을 갈림길 직전 발아래로 바라본 소통여울 - 여울이 좁고 긴 것이 마치 소 여물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소통여울'이라고 한다.

 

약 60㎞에 달하는 동강 물길 중에서 가장 동강다운 풍경을 보여 주는 곳은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일대를 담아 본다

 

계단이 다시 나오고

 

추모의 마음 탑을 지나고

 

문희마을 갈림길

 

모두 하산을 시작하고 한주님과 둘이서 칠족령으로

 

 

칠족령 전망대 이정표를 지나 바로 하늘벽 구금다리 이정표가 나온다 - 전망대를 들렸다가 다시 되돌아 와 문희마을로 하산하게 된다

 

칠족령 전망대 직전 칠족령 안내판과 성황당이 있는 제장마을 갈림길을 만나면

 

칠족령 漆足

백운산 자락의 칠족령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문희 마을과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뱀이 기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물줄기가 굽이치며 흐르는 사행천의 모습과 뼝대와 여울, 모래톱이 어우러진 동강의 절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동강 가의 비경인 5억년 저편의 시간이 숨쉬는 동굴인 백룡동굴을 만날 수 있어서 동강 12경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명승지다.

칠족령의 들머리는 주로 오르는 정선군 덕천리 제장마을에서 오르는 길과 평창군 미탄면 문희 마을에서 올라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바로 앞에 칠족령 전망대가 보인다 - 이제 지형은 바뀌어 하늘벽 구름(유리)다리가 있는 연포리로 하산하는 일명 뼝대능선

 

뼝대능선길

연포마을로 향하는 산길인 칠족령 정상부터 시작되는 뼝대능선은 양쪽으로 동강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환상적인 코스이다

칼날같은 능선이 위험하기도 하지만 황홀한 풍경과 함께 하는 길이고 하늘벽 구름다리도 만날 수 있다

동강과 산에 막힌 연포마을로 내려가면 선생 김봉두의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 그림같은 마을이다

언제 한번 시간내어 걷고 싶다... 

 

 

제장마을 능선과 뼝대능선 사이의 덕천리 소사마을로 이어지는 능선에도 뼝대(절벽) 이 이어지고 있다

 

물은 흐르다 흐름의 방해를 주는 산을 만나면 자꾸 파고 들어가 거대한 절벽을 만들어 내고 그 절벽을 강원도 사투리로 '뼝대'라 하고

절벽이 만들어지는 억겁의 세월동안 떨어진 돌과 흙이 강물에 실려와 자연스럽게 쌓인 곳이 몰돌이 땅이다

물돌이 급할 수록 더욱 뼝대도 높이곰 솟아날 것이고 지금 이 전망대에서 보고 있는 뼝대능선에 녹아 있다

문희마을을 지나 떗목의 한이 서러있고 정선아리랑에도 나오는 황새여울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동강의 얼굴이다

 

 

제장마을에서 소사마을 그리고 연포마을까지 이어주는 사행천(蛇行川) 동강의 물길을 마지막으로 담아 본다

 

조금전 팀과 헤어지고 난 지점에 도착하고

 

산성의 흔적을 만나고

 

 

문희마을 주차장으로 하산 종료하면서 담아 본 백운산

 

오늘 함께 했던 백운산도 여러 인연으로 함께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 백운산 족보

 

백두대간 오대산에서 분기한 한강기맥을 따라 내려오다 한강기맥 계방산 동쪽 1462봉에서 남쪽으로 또 하나의 줄기를 내려 놓으니 

주왕지맥이며 주왕지맥을 따르다 청옥산에서 양쪾으로 분기한 산줄기중 동쪽 정선 방향으로 동강에 잠기기 전 솟아 있는 백운산이다 

 

 

 

백운산 산행을 마치고 다시 뒤풀이 장소로 이동 중에 42번 국도 평창과 정선 사이 '동강 가는 길' 기화리 석굴에서 사진을 남기고


무주 라제통문을 쏙 빼닮은 이 석문은 동강의 관문이라고도 하는데 2차선이 새로 뚫리면서 1차선 도로 석문은 폐쇄되어 있다

 

 

뒤풀이 장소로 이동

 

하루를 정리한다

 

 

동강의 관문인 기화리 석문을 지나 기화천을 따라 가다보면

천연기념물 제238호로 지정되어 있는 어름치마을을 지나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다가 왔던 동강과의 만남

바로 옆동네를 갈려 해도 줄배가 아니고 차로 갈려면 적어도 한시간을 돌아야 갈 수 있는 오지중의 오지

문회마을에서 시작하여 다시 문회마을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렇게 백운산에서 본 동강과 차창밖으로 보이는 동강의 흐름속에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동강을 '국토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했는데

그 동강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곳이 바로 우리가 걸었던 백운산 자락의 칠족령이었고

실제 칠족령 전망대에서 본 사행천인 동강의 유연하고 의연한 흐름의 미학을 보면서 감동 또 감동

유흥준이 표현했던 국토의 오장육부가 그렇게 튼튼하니 한강의 기적이 괜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님을

동강이 품은 뗏군들의 우렁찬 소리까지 담아 내어 남한강이 받아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자연은 역시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自然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던 하루였다

2000년에 동강댐 건설이 논란이 되었을 때 왜 사람들이 그토록 반대를 했었는지

오늘에야 실감하고 또 실감하고... 말없는 동강의 흐름이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말이 땟목이지 통나무나 대나무를 가지런히 엮어서 만든 것으로

안전시설이라고는 손잡이 하나에 의지해 그 거센 물살과 싸웠으니...

지금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자주하는 떼돈을 벌고 싶다는 얘기도 가려서 해야 할 것 같다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대목중에 ' 우리집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다녀 가셨나'

남편을 떗목꾼으로 떠나 보낸 아낙네들이 불렀을 내용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황새여울(평창 미탄면 미하리)을 백운산에서 칠족령으로 내려 오면서 바라보았고

다음 초보산꾼과 함꼐 11월에 정기산행에 가게 될 아라연을 품고 있는 잣봉에서 '된꼬까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단지 정선과 평창에 있는 구름이 자주 끼어 있는 백운산에 다녀 온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산과 강물이 어우려저 산촌을 만들고

그 산촌에 기대어 살아갔던 우리 이웃들의 얘기까지...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는 동강의 여울만큼이나 넘치고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계속 산에 가고 강을 답사해야 하는 이유중의 하나 일 것이다

이왕이면 그 곳에 기대어 살아가는 민초들의 애화과 함께....

초보산꾼의 노력은 계속 됩니다.

 

의도치 않았던 푯대봉으로의 끝없는 오름길

입밖으로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산우님들의 표정속에서도

참으며 오히려 위기를 기회를 삼으려는 산우님들의 용기가 있어

오히려 더욱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더구나 힘든 여정을 마지막에 동강의 깊이만큼이나 깊은 즐거움을 선사받고

하루의 피로를 송어회로 즐겼던 멋진 100대명산 산우님들

하루의 즐거움의 깊이는 우리 맘속에 있나 봅니다

 

명절분위기에 묻히기 쉬운 100대 명산길

그래도 멈출 수 있는 길이기에 끝까지 안전하게 이끌어 주신 조교대장님과

가야산 총무님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100대명산을 함께 하신 산우님들 고생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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