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100대 명산 : 선운산(禪雲山 336m 고창)

 

 

 

일시 : 을미년(15년) 열매달 9월 엿새 해날 

        

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100대 명산 산우님들

 

어딜 : 주차장 ~ 마이재 ~ 선운산(수리봉) ~ 소리재 ~  천마봉 ~ 낙조대 ~ 선운사 매표소

                                       (산행거리 : 6.1km 조교대장님 공지)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2635에 있습니다

 

 

 

열매를 맺어 오곡백과 수확의 기쁨이 넘치는 한가위가 있어 붙여진 열매달 9월에 떠나는 100대명산

온 가을달이라고도 하고 올게심니와 같은 풍습이 있고 한가위, 굼실덩실달로도 불리고 있다

그만큼 황금들녘을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수확의 계절이 더욱 가까워지는 9월 초순

하지만 더 영글어야만 하는 열매들이 있어 아직은 여름의 기운이 끝자락을 붙잡고 있지만

기암과 소나무 그리고 가을로 접어드는 하늘이 서해의 바다와 함께 펼치는 선운산의 향연속으로 들어가 본다

 

선운산 등로 :

          -   지도생략

 

높고 넓은 들을 뜻하는 고창(高敞)의 이름답게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시인인 미당 서정주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호국의 상징인 고창읍성과 선사시대 문화유산인 고인돌이 함께 어울려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창군이며

이밖에도 갯벌과 운곡습지 동림저수지 야생동물보호구역 등이 어우러져 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선운산으로 대표되는 풍부한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거기에 선운사에 동백꽃이 아름다워 군의 상징 꽃도 동백꽃이다

동백꽃의 향연은 잠시 뒤로 미루고 산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상사화가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지 선운사계곡으로 떠나 보자

 

           자료 : 이곳에 쓰인 설명은 고창군 홈피에서 가져 왔습니다

 

 

 

3450온누리 산악회 100대명산팀이 선운산 주차장에 도착 조교대장님의 체조로 하루의 여정을 시작한다

 

선운사로 들리지 않고 곧 바로 경수산 방향으로 진행

 

경수봉 갈림길에서 마이재로

 

경수봉(444m)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와 심원면 월산리에 걸쳐 있는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경수산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줄포만]의 바닷물과 주진천[인천강]의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선운산 도립공원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주진천[인천강] 하구를 가운데 두고 높이가 같은 소요산[444.2m]과 나란히 솟아 있다.

선운산의 경수산은 소요산과 높이가 같아서 형제봉으로도 불리고 있다

 

 

경수산에서 마이재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서고

 

심원면과 석상암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인 마이재 - 멀리서 보면 말의 귀를 닮았나??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선운산 정상인 수리봉

선운산 禪雲산 336m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과 심원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우며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솔산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선운이란 구름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사 일주문 현판에 '도솔산 선운사'라고 되어 있는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다.

지방문화재중에  추사가 짓고 쓰고 한 글씨 중에서도 대표작인 백파율사비가 남아 있다

 

 

미륵불의 불심이 있는 도솔봉에서 후미팀

 

심원 곰소만을 배경으로 의리의 사나이 주유천하님 - 곰소만 너머가 변산반도 이겠지? 물이 적당이 들어와 있어 바다의 냄새가 난다

 

창담암 하산길 갈림길에서 식후경

 

견치산으로 가기 위해 진행하다 이정표도 지나고

 

견치산 갈림길 직전 삼각점이 있는 345.1봉

 

가지 못한 견치봉과 너머에 위도를 담아 본다

 

눈팅으로 만족하기 위해 당겨본다 - 오히려 눈팅으로 보아야 제대로 개이빨 바위가 보인다 ㅋㅋ

 

견치산(355m) 갈림길에서 선두팀과 조우

 

소리재 이정표를 지나 대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며 100대 명산팀의 증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세석님

 

소리재에서 낙조대 방향으로

 

드디어 선운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조망이 열리면서 바라 본 천마봉과 멀리 사자바위 그리고 내려갈 기출암터 계곡

 

갈려다 못간 청룡산(313m)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배멘바위도 담아 본다. 너머가 희여재

 

당겨보면 왜 배멘바위인지 알 수가 있다 - 좀 더 가까이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후미로 가는 바람에 다음 기회로..

배맨바위는 배를 정박하여 밧줄로 묶은 바위에 대한 암석 유래담이다.

해리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밋밋한 산정에 우뚝 솟아 있는 신비롭고도 괴이하게 생긴 개선암이라는 배맨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높이 20m, 둘레 100m 정도의 퇴적암 무더기로 민둥한 산등성이에 위치하여 멀리서도 쉽게 시야에 들어온다.

주변에는 희귀한 산새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수풀이 없어 우람하고 거대한 모습이 신비하고 거의 외경을 느끼게까지 한다.

멀리서 보기에는 아기를 업고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낙조대 갈림길에서 용문골로 - 여기까지는 배멘바위로 해서 사자바위로 능선을 타고 진행할려 욕심을 내봤다

 

요즘 자주 얼굴을 보여 주시는 라이온킹님과 산본뚜꺼비님을 용문굴에서

용문굴

기출암터 계곡을 지나 산등성이에 위치한 용문굴은 의운국사가 우전국에서 보내온 나한상을 모실 절을 지으려는데 그곳에 이무기가 살면서 방해하므로

사자를 시켜 매질하여 내쫓으니 쏜살같이 달아나면서 이곳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검단리에서 소금을 들여오면 이무기가 장난을 쳐서 비를 내려 소금을 녹게 하므로 검단선사가 내쫓은 것으로도 전한다.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검단선사가 연못을 메울 때 쫓겨난 이무기가 급하게 서해로 도망가기 위해 뚫어놓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어찌 됐든지 이무기 정도 되니까 이렇게 크게 굴을 뚫었겠지?

 

 

 

대장금도 촬영했단다...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상도'도 여기서 촬영했었는데...

 

소리재에서 바로 내려 오는 갈림길

 

기출암터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이 왜 선운산을 100대 명산이라 하는지 보여준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하여 들어오면 만나게 되는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이다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전체 높이 17m, 너비 3m인 고려 초기 지방 호족들이 세웠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이다

그런데 이 불상의 배꼽에는 사각형의 홈이 메워져 있는데 사리나 경전과 같은 불구를 넣었던 감실로 보이는 이 곳에는

검단선사가 신기한 비결(秘訣)을 숨겨놓았다는 전설이 전해 왔는데 이 비결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한양이 망하고

누구든지 이 비결을 꺼내는 순간 벼락에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라감사로 내려왔던 이서구가 그것을 꺼냈을 때 벼락이 쳤던 것을 계기로 벼락이 무서워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비기를 넣어 둔 곳으로 알려진 배꼽이 사각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 힐링님 마애불의 불심을 잡고자 시주도 하시고...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결을 1892년(임진) 8월 무장 접주 손화중과 동학의 지도자들이

우여곡절 끝에 한 밤 중에 마애불의 배꼽에서 그 비결을 꺼내게 된다.
이 사건으로 동학의 지도자들이 여러 형태로 피해를 받았지만 손화중이 왕이 될 것이라니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줄을 이어

무장 접주 손화중의 집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결국 동학농민혁명의 주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조금 옆으로 가면 내원궁을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내원궁(內院宮) 안에는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선운사 지장보살 좌상이 있다고 한다 - 그래서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구나...

 

담을 기약하고 천마봉으로 올라가야지...마애불좌상이 있는 곳으로 나와 옆길로 진행

 

낙조대 이정표를 따르면 힘든 계단길이 천마봉까지 이어진다

 

이런 전망대도 열리게 된다 - 서산대사님과 상록수님 오랜만의 합산 감사합니다

 

천마봉에 올라 바라 본 도솔암과 선운사계곡(도솔천)이 길게 이어진다

 

천마봉에서 단체사진 - 한돌님 작품

 

결국 낙조대까지만 진행하고 돌아선다

 

낙조대에서 바라본 서해바다 -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분위기만...

낙조대  落照臺

높이는 335m밖에 안 되지만 아래로 이어지는 서해 칠산바다, 위로는 변산반도를 끼고 있는 곰소만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변산 월명암의 낙조대나 불갑산 해불암의 낙조와 더불어 서해 낙조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선운산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저 철계단을 지나가면 바로 배멘바위 그리고 희여재로 이어지는데... 봄에 동백꽃이 피면 아산면 구암리에서 출발해서 선운사로 넘어 옵시다

희여치(希汝峙)

우리나라 여러 지방에 산재해 있는 희여재는 희여치(希汝峙)의 다른 말로 ‘너와 재회를 바라는 고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과 오운동, 평동, 지정동 사이의 고갯길인 희여재가 최초의 문헌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태조 왕건이 6년간의 백제정벌을 마치고 개성으로 돌아갈 때(914년) 나주 오씨(장화왕후)와 이별하면서 ‘너와 내가 재회하기를 바란다.’며

재회를 다짐하고 헤어진 장소로 전해지고 있는 고개이다

 

 

천마봉에서 바라본 희여치 - 가운데 들어간 안부

그런데 이곳 아산면 월성마을에는 특별한 유래가 담긴 설화가 전해진다고 하는데

옛날 청담암을 지을 때 꼭 필요한 새끼를 월성마을에 사는 노인에게 맡겼는데 당일이 되어도 전혀 꼬지 않고 짚을 추리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인 왈, 새끼머리를 꼬아 주면서 새끼머리를 끌고 가는 동안에 충분히 새끼를 꼴 수 있다고 하여 할 수 없이 끌고 가게 되었단다

월성마을에서 창담암까지 계속 끌고 갔으니 고개가 닳고 닳았을 것이고 그래서 희어져버린 고개를 희어재라 불렀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마을 안녕과 안위를 위해 도인의 힘을 빌리고자 했던 월성마을 사람들의 소원이 아니었을까?

 

 

내려오다 바라본 천마봉이 하늘을 향한 용트림을 하고 있다  -

                더블유님과 힐링님 항상 함께 해 주시어 감솨. 무장산 억세 축제에도 함께 하실거죠?

천마봉은 말이 하늘을 뛰어 오르는 형상을 지녔다고 해서 나온 말로 이 곳에서 먼 선운사 안쪽 풍경이 한눈에 들오며,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솔천의 비경이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인접한 낙조대와 함께 가장 많이 다녀가는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이 곳은 진흥굴을 지나 도솔암 입구에 도착하면 하늘을 찌를 듯한 절벽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천마봉이다..

 

 

마애불좌상의 불심을 받고 앉아 있는 내원암을 담아 본다 - 가운데 보이나요?

 

선운산의 지킴이로 사랑받고 있는  천마봉과 사자바위을 동시에 담아 본다

 

내려오면서 감탄했던 기출암터 계곡을 담아 본다

 

도솔암에서 약수 한사발 들고

 

내려오면서 바라 본 사자바위가 왜 사자바위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다. 사자가 고개를 처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당겨보면 마귀도 무서워 도망갈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 다가 온다. 그래서 선운사계곡을 도솔천이라 하는구나...

진흥굴 앞에 있는 사자암은 사자가 돌아앉아 내려다보는 형국으로 도솔천에 침입하는 마귀를 방어하는 느낌을 준다.

그 위 산등성이에 돌아 앉은 바위가 역시 도솔천에 들어오는 마귀를 방어하는 사자암이고

도솔암과 도솔천 내원궁, 마애불, 용문굴이 정면으로 펼쳐져 있어 높이와는 상관없이 천상계에 들어온 기분을 준다

 

 

오늘 후미에서 함께 하신 힐링님... 덕분에 산행기에 사진이 많이 올라가네요. 장사송 앞에서

 

 

바로 옆에 진흥굴

진흥굴 

국사 의운의 청으로 대참사(지금의 참당암)를 지어 우전국에서 보내온 불상을 모시게 하고는 언제나 이곳에 향의를 가지고 있었다.
만년에는 기어이 왕위를 버리고 도솔왕비, 중애공주와 함께 의운국사가 있는 이곳으로 들어와 스스로 법운자라 칭하고 수도를 하는데

꿈에 미륵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타났다 하여 열석굴이라고도 하며, 현몽에 따라 절을 지어 이름을 중애사라 하니,

도솔암과 중애사는 모두 왕후와 왕녀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진흥굴 앞에서는 사자암이 있는데 사자가 돌아앉아 내려다보는 형국으로 도솔천에 침입하는 마귀를 몰아 낸다고 전한다.

 

 

잔뜻 기대했던 상사화의 꽃잔치는 허무하게도 아직은...  군락지를 지나며...

 

마이재로 오르면서 담아 봤던 상사화

 

한국 남부에 주로 분포하며 전남 영광 불갑사가 최대의 상사화 군락지로 알려져 있는 상사화

잎이 지고 나서 꽃이 개화하므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과 잎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는 잎이 없고

그래서 사람을 사모하다 죽으면 상사화 꽃이 된다고 했는가?

 

 

죽어서라도 꼭 만나야만 하기에 그래서 꽃말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선운사 상사화는 8~9월이면 마애불이 있는 도솔암까지 3km에 이르는 골짜기 주변에서 피어 장관을 이루는데

선운사 도솔암 가는길에 가득하게 피어 있는 잎은 없고 꽃만 무성하기에 더욱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

 

 

기다려라, 기다리면 열리리라

 

선운산의 또 하나의 명물로 태어난 신비한 상사화 꽃과 함께 걸었던 길

그런데 아시나요? 겨울에도 잎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가 잎이 사라지고 난 뒤 9월경에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른다’고 표현했던

누가 알까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꽃이 다시 태어났기에 이해인의 시 상사화가 더욱 가슴을 치는 것이리라

 

 

화단에 가꾸어져 있는 별개미취로 대신

 

선운사 앞에 있는 보왕삼매론

 

선운사 경내로 들어 봄에 필 동백꽃을 담아 본다

 

유흥준의 나의 문하유산 답사기 1권에 보면 고창 선운사의 동백꽃에 대해 비교적 상세이 나와 있다

4월말이나 5월초에 답사지로 서슴없이 고창 선운사를 추천한다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선운사 뒤뜰에 있는 동백나무이다

동백꽃은 그 윤기나는 진초록 잎에 복스럽기 그지없는 진홍빛 꽃송이로 우리를 충분히 매료시킨다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선운사의 동백이 아름다운 것은 수령이 500년에다 5천평이 넘는 땅의 연륜과 인간의 채취가 함께 하기 떄문이라는 설명이다

 

 

동백꽃은 송이째 부러지며 쓰러지기에 마치 비정한 칼끝에 목이 베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유신독재 비호속에 영화를 누린자들의 최후의 초상을 보는 듯 했고 광주의 아픔까지 시대가 겹치면서

선운사의 뒷산에 버려진 듯 뒹구는 동백꽃 송이들은 마치도 덧없이 쓰러저간 민중의 넋이 거기 누워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 옴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부자의 뜻말을 가지고 있는 배롱나무가 지금 한창 동백과 상사화의 아쉬움을 달래며 선운사 경내를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가을을 기다리는 女心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을 품다

 

일주문을 지나 송악을 담아 본다

송악

도솔천 쪽으로는 천연기념물 367호 고창 삼인리 송악도 진귀한 볼거리다. 송악은 두릅나뭇과에 속하는 덩굴식물로, 뿌리가 바위에 붙어 자란다.

정확한 수령은 알 수 없으나 족히 수백 년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을 기어오르는 푸른 덩어리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창의 송악은 북방 한계선에 해당해 가치가 특별하다

 

 

주차장에서 정리 후 한돌대장님의 단체사진 봉사로 하루의 여정을 마감한다

 

고창하면 떠 오르는 것 중의 하나인 풍천장어의 산실 풍천을 차안에서 담아 본다

 

선배님들의 찬조로 더욱 풍성해진 뒤풀이 감사하고 수고했습니다.

 

활발한 정복활동으로 삼국간의 항쟁을 주도했던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면서 까지 찾아와서

스스로 진흥굴에 들어 선운산에게 인연을 청하며 잠을 청하니

어디까지나 설이지만 거기에 걸맞게 첫날밤에 꿈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며 가르침을 주니

거기에 감동하여 증애사를 창건하면서 선운사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선운사를 창건하고 선운사의 생활을 하면서 마셨다는 술이 바로 복분자술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천년고찰과 함께 해온 전통주이니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련지

특히 정주영회장의 소떼방북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을 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한다

서두에 소개한 고창의 자랑거리에 더해 여기에 선운산에 오는 길에 보았던  풍천장어까지 더하면

굳이 선운산의 속살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왜 선운산이 100대 명산인지 알 수가 있다

여기에 가는 길마다 눈을 땔 수 없게 서로 빨리 오라고 손짓했던 기암괴석과 소나무

지금도 눈에 선하게 흐르고 있으니 그래서 선운산인가 하노라

 

선운산의 최고봉인 수리봉의 또 다른 이름 도솔세계에 오르기 위한 첫발

우리가 말하는 절경을 보기 위해서는 언제나 값만큼의 노동을 지불해햐 하기에

힘들게 도솔봉(수리봉)에 올라 내려오면서 서서이 우리에게 보여준 선운산의 품속은

왜 신선이 구름위에서 참선을 할 정도의 산세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수리봉에서 수리가 망을 보고 하늘을 향한 기상으로 용틀임 했던 천마봉이 하늘을 지키고

배멘바위를 안고 있는 청룡산과 비학산을 남으로 가지를 치며

사자가 고개를 들어 두루두루 살펴 우리가 확인하지 못한 투구바위를 전방에 세웠으니

선운사 계곡을 왜 도솔천이라 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있었다

 

비록 원했던 상사화와의 데이트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무릇이 끝없는 기다림을 주었지만

선운사 경내에 피어있던 배롱나무의 꽃들이 대신 화려함으로 조금은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선운사 담을 타고 비춰주는 햇살이 이제 가을을 얘기할려 했던 마지막 여름

이렇게 가는 계절의 아쉬움과 오는 계절의 반가움을 함께 담을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산행요일을 바꾸면서까지 100대명산을 살리려 용기를 냈던 조교대장님과

또 여기에 화답하며 많은 산우님들이 함께 호응해 주시고

또 고창의 맛을 찾아 십시일반 함께 찬조해 주신 선배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100대명산팀이 가졌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3450온누리 산우님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리면서

구름대신 우리가 신선이 되어 놀았던 선운산에서의 하루를 마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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