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백운지맥 03 - 미륵산 구간 : 작은양안치고개에서 비두넘이재까지

 

 

언제 : 무술년(18년) 열매달 9월 스무아흐레 흙날

 

누구랑 : 초보산꾼

 

어딜 : 작은양아치 ~ 서낭당고개 ~ 미륵산(황산사터 답사) ~ 서지재 ~ 비두넘이고개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4562 에 있습니다

 

 

한가위가 지나고나니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높아진 만큼 떠도는 공기마저 이제는 가을임을 피부로 느끼는데..

나무도 한여름 더웠던 만큼 맘껏 품었을 신록을 이제는 미련 없이 버리고 저마다 고운색깔로 다시 태어나려 

자연이 준 선물 가을바람에 몸을 맡기고 추운 겨울나기를 위해 서서히 나를 버리는 과정의 산물 단풍의 자화상

철없는 인간들에게도 그저 좋아라 산으로 들로 단풍구경에 잠시 세상의 짐을 덜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들어가기

 

한강영월백운지맥은?

 

 

(한강영월) 백운지맥  전도

(한강영월)백운지맥이란..

한강기맥에서 분기된 영월지맥상의 치악산 남대봉에서 다시 줄기 하나가 남서방향으로 분기되는데

섬강의 분수령으로 남진하던 줄기가 크게 일으킨 백운산을 지나면서 다시 서진으로 진행하다가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에서 생명을 다하는 46.9km의 줄기이다

시명봉, 백운산, 미륵산, 긴경산 등 주요 산을 지나는 동안 원주 제천과 만나게 된다

 

 

 

 

백운지맥 03구간  -  작은 양아치에서 비두넘이고개까지

 

 

앞선 구간 십자봉 갈림봉에서 시작된 귀한 손님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붙여진 귀래면의 속살로 들어온 지맥길

우리와 같은 범인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왕으로써 힘든 결정을 했던 그 귀한 손님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고독한 군주가 백성을 품에 안으려 항복했음을 알기에 백성도 왕을 품어 주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미륵산을 지나

봉림산 갈림봉에서 부론면을 만나 함께 진행하다 서지재에서 귀래와 헤어지고 문막읍과 부론면 경계를 이어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백운지맥을 이어가기 위해 원주행 일반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오늘 목적지 작은 양안치고개를 가는 31번 버스가 곧 도착이라.. 오늘은 처음부터 뭐가 잘 풀린다는 느낌... 08시16분 승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서 타야 한다. 그런데 저번 구간 치악재를 갈 때 택시로 원일로 중앙시장까지 갔는데

이 차도 08시20분 쯤 중앙시장을 통과한다. 미리 알았다면 이 차를 타면 좋았을 것을...

 

연세대를 캠버스를 통과하는데 백운산에서 오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된다. 그림 일부만 봐도 길긴 길구나..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같은 31번 버스라 해도 작은 양안치 고개를 가는 버스는 따로 있다고.. 무조건 다 가는 것으로 알고 왔는데..

어쩔 수 없이 귀래면사무소 종점에서 내려 택시를 타려 하는데 기본요금 거리를 8천원을 요구한다. 같은 귀래면 구역인데..

기사분하고 얘기하다 보니 귀래면에는 택시가 한 대뿐이라고.. 나름데로 주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이해하며 작은 양안치 도착

작은양아치. 양아치(兩峨峙) [고개]    원주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백운산(白雲山)과 미륵산(彌勒山) 사이의 고개 이름이다.

운계리에서 흥업면으로 넘어가는데 흥업쪽의 큰 고개를 큰양아치, 귀래쪽의 작은 고개를 작은 양아치라고 부른다.

[유래1] 고개가 마치 말안장 모양이라고 해서 양안치라고 부른다.

[유래2] 고구려왕의 어거가 매지리에 머물고 신라왕의 어거가 운계리에 머물러서 그 경계인 이곳의 지명이 양어치였다고 한다.

[풀이] 양아치는 양(兩)+아+치인데 '치'는 고개를 뜻하고 '아'는 매개모음으로 삽입된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높은 고개란 뜻이다.

자료 : 원주시 홈피

 

 

저번 구간 날머리.. 그 날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트럭을 잡아탄 것이 행운이였구나.. 어떤 버스가 이 곳을 통과하는지 모르는데..

 

건물뒤 공터에서 들머리를 시작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좌측으로 가야할 헬기장봉이 기다리고 있다. 헬기장봉까지 계속 올라가면 된다

 

전망이 열리면서 전 구간을 되돌아 보니.. 앞 마루금 뒤로 가운데 십자봉이 고개를 내민다. 능선이 너무 많아 하산시 주의해야 한다

 

헬기장 도착.. 1시 방향으로 띠지가 많이 붙어 있다

 

그럼 이제 미륵산이 앞을 인도한다

 

운골산이라 붙여진 412.6봉..  서.북쪽 아래 귀래리에 웅골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그래서 ‘웅골산’이 맞는거 아닌가?

초보산꾼 나름데로 해석해보면.. 남쪽 운계리雲溪里의 운과 溪(골)을 풀어서 붙인 것인가?

 

7분쯤 내려오다 우측으로..

 

이번에는 좌측으로 우회.. 

 

3분 후 여기서도 좌측으로..  띠지는 계속 붙어 있지만 여럿이 가다보면 양쪽으로 다 길이 좋아 알바하기 쉬운 곳 들이다.

 

5분 후 우측으로

 

안부를 만나면 직진이 마루금이지만 좌측으로 해서 내려오면

 

그럼 바로 서낭당 고개가 나온다. 나는 경순왕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 직진해서 황산사터 방향으로 간다.

 

구사 버스 정류장이 있는 서낭당 고개를 담아 본다. 저 고개를 넘어가면 좌측으로 들머리가 있다.

아까 31번 버스가 여기를 통과했다. 만약 미륵산이 목적이라면 여기서 내리면 편리할 듯하다.

 

2km를 도로따가 가야 한다.

 

그런데 서낭당 고개에 모신 백운산 신령 신위는 어디에 있지?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까 날머리 방향으로 보인다.

 

이렇게 내려오기 바쁘다 보니 우측에 모셔져 있는 신위를 보지 못했다.

 

미륵산 개념도와 초보산꾼이 걸었던 길(적색). 이 지도에는 지맥상의 미륵산이 더 높은 것으로 나온다.

 

이제 도로를 따라 간다.  멀리 새터고개가 보이고..

 

도로 우측으로 아홉사리골과 오늘 미답지로 남게된 마루금을 담아 본다.

서낭당 고개에 있던 버스 정류장 구사 九沙는 아홉사리를 풀어 쓴 것이다. '사리'는 논이나 밭의 이랑이나 골(사래)의 뜻도 있다고..

 

새터고개를 지나고.. 헬기장 미륵봉에서 내려온다고 지도에 되어 있다

 

이제 경순왕의 흔적이 남아 있는 황선사터가 있는 입구에 도착..  계속 도로따라 이어가면 주포리에 학수사 절터의 흔적이 있다

 

 

소박한 절 뒤로 경천묘가 보인다. 뒤로 경순왕의 맘믈 닮은 미륵불의 미소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먼저 중건비가 반기고..

 

먼저 안내도와 안내문을 봐야 겠조?

 

경순왕이 정상에 올라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는데.. 오늘은 고자암터를 만나게 된다

 

먼저 외삼문인 경천문을 통과하면... 토.일요일에는 개방한다고.. 필요하면 친절히 안내도 해 준다고 한다.

 

경천문을 통과하면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신문이 나온다. 내삼문이라고 한다. 우측으로 재실이 보이고..

 

神門을 통과하면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경천묘가 나온다.

 

영정은 잠겨져 있다. 아시나요? 혹시 왕의 영정을 배알할 때는 네번 절을 해야 한다는 것.. 나도 이번 자료를 찾다가 알았던 사실..

 

미륵산 등산 안내도에서 되돌아 본 경천묘

 

등산로 입구 이정표따라 계곡으로 들어간다

 

그럼 두 분의 부도탑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부도의 형태도 많이 다르다.  좌측이 학서대사,  우측이 서응대사 부도탑

 

부도탑에 글자가 선명하다

 

6분쯤 더 오르면 사찰의 시작을 알리는 해탈교가 눈에 띈다. 하지만 실제 이름은 아니다... 바로 고장암터 앞에 있으니 그럴 듯하다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다리.. 속세와 불계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異)의 의미까지 포함한 다리.. 

 

바로 주포리 삼층석탑이 있다.

 

 

바로 위에 고장암터가 있다.  학수사(鶴樹寺)와 고자암(高自庵).. 높은 곳에 있는 암자라면 여기가 고장암터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제 경순왕의 미륵불을 만나려 가야한다. 첫번째 철계단도 만나고.

 

오름길... 미륵불 전에 너무 배가 고파 식후경 후....

 

경순왕의 미소를 닮은 미룩불을 만나게 된다. 정식명칭은 주포리 미륵불..

 

 

 

귀래면 방향을 보고 계신다. 貴來.. 역사가 붙인 지명이 아니라 민심이 붙인 이름이니.. 그래서 이 미소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

 

월악산 아래 덕주사에 남겨진 마애불이 오버랩되면서 뭔가 모를 애잔함을 준다. 망국의 한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료 : 초보산꾼

 

자료 : 초보산군  堤川德周寺磨崖如來立像

 

경순왕의 얼굴을 보며 미륵을 세겼다는 구전을 믿으면서... 다시 오름길... 경천묘를 되돌아 본다

 

 

서낭당 고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섬처럼 가운데 떠 있는 운골산. 그 뒤로는 큰 양안치 고개와 고개 좌로 가덕산

 

생각보다 계속 되는 암릉

 

좌측으로 치마바위봉도 보이고

 

밧줄에 의지하여 올라오니 다시 해산굴...

 

그럼 바로 이정표가 있는 안부가 나온다.

 

가야할 미륵산 정상

 

여기도 만만치 않다. 중간지점 통과

 

미륵산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 유일하게 있는 이정표따라 운계리 방향으로 내려가다 다시 되돌아 와..

 

다시 핼기장으로 올라와 다시 보니 마루금은 헬기장에서 11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맥상의 미륵산으로 가는 길도 바위지대가 계속 나온다. 백운지맥상의 미륵산에 도착하고..

 

정상에 오르면..  지도에는 695.6봉,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은 689봉으로 되어 있다

 

한참을 계속해서 다시 바위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이제 바위지대가 끝나고 좌틀해야 하는 지점

 

이번에는 우틀

 

그럼 좌측으로 봉림산(좌)와 봉림산 갈림봉(좌)가 보인다

 

안부를 지나고

 

봉림산 갈림봉에서 답사로 늦어진 만큼 바로 우틀하여 마루금을 이어간다.   이제 귀래면 속살을 벗어나 부론면과 손을 잡는다.

 

안부를 지나 봉 하나를 우측으로 우회하면..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는 것을 보면 여기가 서지재 같은데.. 부론면, 문막읍, 귀래면 삼면이 만나는 지점인데.. 확신이 없다.

 

어찌됐든 서지재에서 귀래면과 헤어지게 된다. 잡목이 발을 잡고.. 잠시 되돌아 보면.. 좌 미륵산과 우 봉림산이 보인다

 

큰양안치고개에서 이어지는 가덕분맥의 가덕산

 

잡목지대를 통과하여 봉 하나를 우회하니 벌목지봉이 나타난다. 지도에는 481.1봉으로 되어 있다

 

벌목지 경계를 따르면 481.1봉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계속 이어가게 된다

우측으로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된다.

 

되돌아 보면... 봉림산에서 현계산으로 이어지는 단맥과 가운데 정자도 보인다. 손곡리 방어실이라고 지도에 나온다

 

 

참고지도.. 현계산지도..  좌.우로 방어실과 방아실... 이름 헷갈린다. 초보산꾼은 비두넘이 고개에서 구만이 마을로 하산 했다.

봉림산에서 현계산을 지나 황학산으로 이어가는 능선이 미륵봉림단맥이다

 

삼각점이 있는 쌀개봉 직전 좌측으로도 길이 있으니 주의..

 

 

쌀개봉에서는 삼각점 방향따라 북진하게 된다.

 

좌측으로 손곡저수지도 조망

 

비두넘이고개 전위봉인 467.2봉에서 이제 마루금은 약간 좌측으로 이어진다. 반대쪽도 길이 넒고 좋으므로 주의

 

4~5분 지나면 이번에는 우측으로.. 좌측길도 좋다

 

다시 5분쯤 내려오면 바로 앞에 비두넘이고개 도로가 보인다. 여기서 좌측으로해서 내려오면..

 

내려와서보니 수로가 너무 깊어 위험하다.

 

다음에 진행해야 할 비두넘이 고개를 담아 본다. 거두사라는 절로 이 고개를 이용해 碑頭를 옮겨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혹시 계속 진행하면서 보이던 여기저기 산들이 파헤쳐지고 있던데... 그만큼 비석재료로 쓰이는 화강암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인가?

 

계획은 만디고개까지 인데 접속 차시간을 보니 여기서 멈추는게 현명할 듯.. 좌측으로 해서 도로를 따라 내려온다

 

미리 파악한 탈출 시 네이버 지도. 55번 버스 16시30분 출발 버스가 두대이므로 한대는 오겠지 희망을 안고..

 

생각보다 가깝다. 구만이 마을 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서 회차해서 다시 내려간다.

 

너무도 고맙게도 16시40분에 버스가 도착한다.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송정 경유 버스만 여기로 들어온다고..

 

그렇게 시내버스를 타고서 문막읍을 통과하여 문막 건등리에서 하차해서 건등 사거리를 건너야 한다.

 

그런데 문막에서는 서울 가는 고속버스는 표파는 곳이 없어 현찰이나 교통카드로 결제해야 한다고..

문막에서 17시20분(원주터미널은 17시05분) 일반 고속버스를 이용 서울로 귀가 했다. 경유 정류장은 차 시간을 잘 알아야 한다. 

 

 

 

경순왕은 실패한 군주일까?

내가 그 물음에 답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귀한 손님을 맞이했다는

'貴來'라는 지명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민심은 천심...

더 이상 무슨 구구절절 역사적 평가가 필요할까..

오늘 미륵산을 오르면서 만났던 경순왕이 남긴 흔적들 속에 만났던 마애불의 미소

전쟁의 참상만은 막고자 했던 결단을 내리고 항복을 택했던 경순왕의 어진 미소로 보였다

나 하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백성 한사람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맘을 민심은 알기에

경순왕의 미소 아래에 영정을 모시고 지금까지도 그를 추모하는 것은 아닐련지..

가깝게는 춘천지맥, 또 한강기맥 그리고 백두대간에서 만났던

마지막까지 신라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마의태자가 남긴 흔적들도 어쩜

생각은 달랐어도 백성을 위한 맘만은 똑같지 않았을까?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남긴 흔적들과 그리고 여기 경순왕이 남긴 흔적 미륵불이

모든 것을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

비록 실제 여기에 남겨진 미륵불들이 이름 모를 석공의 손에 의해 아무런 연고 없이 새겨졌다고 해도

여기 백성들이 이미 새겨진 미륵불을 경순왕의 얼굴이요 마의태자의 얼굴이요 덕주공주의 얼굴이라 여기니

승자에 의해 쓰여진 수많은 역사서 속에 담겨진 역사의 사실보다

더 살아 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음을

민심이 남긴 귀래貴來라는 지명이 남긴 큰 울림이다

정치를 하고 있는 모든 현재의 정치인들도 한번쯤 되새겨 봤으면 하는 맘이 왜 들까?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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