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자락길 07  :   십승지 의풍 옛길   -   영춘면사무소에서 의풍리까지..

 

 

 

언제 : 임인壬寅년(22년)  매듭달 12월 열이래 흙날

 

누구랑 :  다음 수도권 산악회 소백산 자락길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영춘면사무소 - 동대리 - 의풍옛길입구 - 베틀재 - 의풍리 (18.2km, 4시간 20분)

 

 

              사진 답사기는  소백산 자락길 07(사진) : 영춘면사무소에서 의풍리까지 사진 답사기 :: 초보산꾼의 발길 닿는 곳 (tistory.com)   

 

 

 

소백산 자락길 중 단양 구간은 죽령의 시작점이자 끝점인 대강면 당동리에서 시작해 고드너머재, 온달산성, 베틀재를 넘어

영월군의 김삿갓 묘까지 4개 코스로 나뉘어 전체 소백산 자락길의 절반을 차지하는 60여㎞를 달려가야 하는 길이다.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의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했다는 단양丹陽은

산줄기를 기준으로 보면 남한강을 중심에 두고 아래로는 소백산을 중심으로 백두대간 준령을 울타리 삼고

위로는 한강기맥 삼계봉에서 시작된 영월지맥 끝자락과 영월지맥 가창산 지나 분기된 갑산.금수지맥의 품속에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단양 4번째 구간은 단양군과 영춘면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시선 김삿갓을 품은 마대산 베틀재를 넘어가게 된다.

 

 

 

 

 

 

들어가기

 

소백산 자락길

 

소백산자락길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문화생태탐방로’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고, 2011년 ‘한국관광의 별’로 등극되었다.  

영남의 진산이라 불리는 소백산자락을 한 바퀴 감아 도는 은 전체 길이가 143km(360리)에 이른다. 모두 열 두 자락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자락은 평균 거리가 12km(30리) 내외여서 약 3~4시간이 소요되므로 하루에 한 자락씩 쉬엄쉬엄 걸을 수 있어 리듬이 느껴진다.  

더구나 열 두 자락 모두 미세한 문화적인 경계로 구분되어 있어 자락마다의 특징이 발견되어 색다름 느낌의  체험장이 될 수 있다.     

       자료  :      한국관광의별"소백산자락길" (sanjarak.or.kr)          소백산 자락길 홈피

 

 

 

 

 

소백산 자락길 걷기..    7자락길..    자락길 홈피 지도의 형제봉 위치가 거시기 하죠?

 

7자락은 남한강가에 깎아지른 석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는 길이며, 정감록 십승지의 하나로 소개된 색다른 산골마을이다. 고려 때부터 소금을 운반하던 염로였고, 의풍리에는 정감록 십승지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인근에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을 만날 수 있다.  

    자료 :  소백산 자락길 홈피

 

 

 

 

 

 

10:35분   영춘면 사무소앞 네거리에 도착하고..    하리(영춘면)

 

영춘면 사무소 네거리에서 앞에 보이는 태화산 줄기 방향으로 영춘향교를 갈 수 있다..

 

영춘면 사무소와 하리 마을 안내 표지석..

 

하리 유래와 하리 경로당회장의 선덕비가 자리하고 있고..  수많은 선덕비중 경로당 회장은 처음 보는 듯..

 

오늘 자락길인 십승지 의풍 옛길을 담아보고.. 베틀재에서 김삿갓묘까지 차량으로 이동..

 

이번 코스는 남천을 바라보며 걷다가 동대천에 합류하여 베틀재를 넘는다..  현위치 옆에 영춘향교도 보인다..

 

10:39분   산우님들은 하1리 노인회관 앞으로 소백산 자락길을 시작하고..  

 

10:40분   나는 홀로 영춘면사무소 앞 네거리에서 강변로를 따라 우측 한강 방향으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사의루가 보이고..

 

 

10:42분   영춘사거리에서 오늘 소백산 자락길에서 친구하며 걷게될 '영부로' 시작점인 도로따라 우측으로..

 

바로 사의루 앞..   영춘현감 선정비가 있고..

 

사의루로 오르고..

 

사의루四宜樓(선정비)    영춘향교 도로 반대편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상리에서 동대리로 넘어가는 고개 언덕에 있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인 1708년(숙종 34) 8월 27일 신축되었고, 1787년(정조 12) 현감 류시경(柳詩慶)이 중건하였다. 현판은 1754년(영조 30) 무렵에 남유용(南有容)이 썼다. 원래 영춘현 관아의 일부였으나 전란으로 소실된 뒤 지금의 영춘초등학교 자리로 옮겨져 전대청(殿大廳)과 동서대청은 초등학교로, 동헌은 면사무소로, 사의루는 면회의실로 사용되었으며, 6·25전쟁으로 인하여 다른 건물은 완전히 소실되고 사의루만 남았다. 이후 1972년 수해로 인하여 이듬해 11월 11일 지금의 위치로 다시 이전되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며, 화강암 주석(柱石)을 둥글게 깎아 받치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바닥마루를 깔아 2층을 이루었다. 사의루의 '사의(四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목, 곧 효제충신(孝悌忠信)을 강조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예로부터 길지(吉地)로 묘사된 영춘의 산(山)과 물, 바람, 인심의 네 가지를 뜻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누각에 오르면 마을과 남한강이 바라다보이고, 왼쪽에 온달산성, 오른쪽에 태화산이 있다. 누각으로 오르는 입구 부분에 조선시대의 영춘현감 선정비 3개가 세워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의루 [四宜樓]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바로 도로 반대편에 있는 영춘향교..

영춘향교(永春鄕校),      영춘면 상리 461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조선전기 에 창건된 향교. 교육시설. 시도유형문화재.

1399년(정종 1)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향교는 1981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영춘향교(永春鄕校))]

 

 

 

문이 닫혀 있어 담장 넘어로..

 

13용사 성역은 앞에 보이는 북벽능선 우측에 있다.

 

10:51분   영춘향교를 떠나며 뒤로 태화산은 아직도 구름속에 있고..

 

13인 묘역 답사 후 소백산 자락길 접속은 사진상 우측에 보이는 통신탑을 포스트 삼아 내려간다..

 

10:51분   영부로와 헤어져 앞으로 치고 오른다..

 

10:55분    다시 영부로..

 

영부로 좌측이 그 유명한 북벽 상단 능선인데 답사하고픈 맘만 꿀떡 같고..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10:56분   13용사 성역..

 

13용사 묘역 十三勇士聖域의 유래     단양군 영춘면 상리에서 동대리로 넘어가는 '동대재' 고개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의 약탈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전을 벌였던 지역 경찰, 청년들 중 희생되었던 13인의 용사의 영령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1985년 단양경찰서에서 흩어져 있던 13인의 무덤을 한 곳으로 모아 유해를 안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13용사 성역 [十三勇士聖域]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영춘향교와 사의루 그리고 13인 묘역은 따로 정리..   초보산꾼

초보산꾼 사진 답사기 : 영춘향교 外 - 단양군 영춘면 상리 461 :: 초보산꾼의 발길 닿는 곳 (tistory.com)

 

 

10:58분    13인 묘역까지 답사를 마치고 앞에 보이는 통신탑을 보면서 진행하면.. 

 

11:03분   답사 결과 잠시 후 만나게 될 느릅실 고개에서 북벽으로 이어진 능선중 하나로 추정되는 고개를 넘는다.

 

11:04분    통신탑을 우측에 끼고 진행하다 보면 좌측으로 거무실계곡 분수령인 형제봉에서 북벽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조망되고..

 

되돌아 본 태화산은 서서히 모습을 들어내고 있고..  나홀로 영춘지맥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탈진할 뻔 했던 기억이 새롭고..

 

통신탑 고개를 넘으니 앞 선 구간에 걸었던 온달산성이 계명산 향로봉을 등지고 분화구처럼 하햫게 눈을 품고 겨울을 열고 있고..

 

11:10분    자락길에 접속하니

 

이제 온달산성과 함께  남한강 영춘교 다리 뒤로 태화산 세이봉 끝자락을 품은 구인사목장적멸궁도 보이고..

 

온달산성과 계명산 향로봉 그리고 살짝 걸친 벗꽂길로도 유명한 구인사목장적멸궁도 살짝 한번에 담아 보고..

 

이제 우측으로 남천을 끼고 임도길을 걷다가..

 

 

11:19분   이제 남천과 이별하고 동대천에 접속하기 위해 좌측 숲길로 들어서고..

 

오던길로 직진하면 남천으로 내려간다..   느릅실(늪실) 고개도 고개인지라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겨울에 좀 땀을 흘리면서 걸었다..

 

11:36분    산악기상장비가 있는 형제봉에서 동대리 경계를 따라 북벽으로 이어지는 느릅실(홈피지도.. 늪실) 고개..  

 

참고지도..  하도 오지라 자료가 별로 없어 궁금해서 찾아본 지도로 사실과 다를 수 있슴..

 

 

 

고개를 넘으면 이렇게 남천을 넘어 동대천을 품은 동대리가 기다리고 있고..  저 끝 고개가 베틀재이지만 구름속에..

 

이제 지형이 바뀌니 임도 좌측으로 베틀재의 큰산인 마대산이 기다리고 있고..

 

앞에 보이는 봉 직전 잘룩이를 넘으면 좋겠지만 임도는 산줄기를 만날 때 마다 돌고 돌기를 반복하라 하고..

 

11:49분    능선끝에서 되돌아 본 느릅실 고개..

 

동대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점 넘어로 태화산 산줄기가 고씨동굴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고..

 

11:53분  능선 끝을 돌아서니 다시 지형이 바뀌면서 산넘이로 형제봉 능선과 마대산이 서로 마주하고 있고..

 

다시 형제봉 능선을 바라보면서 깊숙히 임도는 이어지고..

 

11:55분   어차피 빙돌아 앞 임도를 걸어야 하는데 저 다리를 건너고 싶지만..

 

12:06분   다시 산줄기를 갈아타고 임도를 내려오는데 국립공원 표시.. 우리가 걷고 있는 임도가 소백산 국립공원 하한선인 듯..

 

12:10분   이제 임도와 헤어지고 남대천으로 내려가고..  다시 한번 태화산..

 

되돌아 본 빙 돌아 걸어온 임도길..

 

끝에 보이는 마대산을 향해 동대리 마을길을 걷는다..  마대산에서 남대천을 따라 내려오는 능선 줄기도 군무를 이루고 있고..

 

멀리 오늘 마지막 종착지 베틀재..

 

12:13분    영춘향교와 13인 묘역에서 헤어졌던 영부로 도로와 다시 접속하여 도로를 따라 의풍옛길 입구까지 걷는다..

 

도로를 계속 걷는다..  우측 거무실 뒤로 형제봉 능선을 보면서..

 

12:27분  소백산 자락길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지명인 용소龍沼동 마을회관을 지나 마을 표지석에서 자락길은 직진이고..

 

바로 거무실에서 흘러내려온 동대천 지류에 놓인 동대교를 지나..

 

동대천 합류지점에 정자 쉼터도 있고..

 

형제봉 베틀재 능선과 북벽 능선이 분수령인 동대천 지류인 거무실 방향..

 

동대교 지나 바로 있는 용소마을 정류장을 지나면서 이제 동대천을 따라 계속 이어간다..

 

12:38분 ~ 13:21분   동대2리 직전 공터에서 식후경..

 

 

13:21분   도로를 걷기 불편하신 분들이 많으신 듯..  다시 차로 이동하신다고 하여 나홀로 다시 걷기 시작하고.. 

본의아니게 나로 인해 민폐가 계속 되고 있어 계속 자락길을 해야 할 지 고민 중..  그렇다고 내 스타일을 꺽을 수도 없고..

 

13:24분   배틀말 정류장이 있는 동대2리 마을 자랑비..  

 

13:27분   이쪽에 광업소가 있었던 듯..

 

13:31분    마침 차가 오고 있어 차를 타고 도착한 의풍옛길 입구..  동대천 상류를 좌측에 끼고 임도를 계속 따라간다..

 

언제 또 보나..  마지막으로 담아본 동대천과 동대리 마을..

 

13:40분  개인 사유지 건물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동대천 상류를 따라 임도길이 시작된다..

 

13:42분   임도 입구..

 

마대산에서 서쪽 남한강으로 흐르는 산줄기들..

 

14:08분    지금 걷고 있는 임도가 아니라 좌측에 보이는 동대천 옆 길이 보부상들이 걸었던 의풍옛길 이였을 것이다..

 

14:17분   관리되고 있는 임도도 지나고..

 

14:56분   서서히 고도를 올리면서 눈까지 발목을 잡아 조금은 힘들었던 임도길이 끝나고..

 

14:59분   베틀재 고개를 넘으면 바로 소공원이 나오고..

 

베틀재와 삼풍정..  정감록에 물 땅 산이 좋아 삼풍三豊의 고장이라 했고 보부상들이 쉬어가며 제사를 지내던 성황당 터 였다고..

 

 

베틀재는  참고 지도..       형제분맥(1) 고치령 - 형제분맥 분기봉 -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그런데..

 

차로 이동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의풍1리에 내려줄 것으로 알았는데 내려보니 김삿갓 유적지.. 

의풍1리에 내려 사진이라도 담았으면 소백산 자락길 7코스가 마무리 되는 것인데 하는 아쉬움..

 

마대산 입구 우측으로 가면 김삿갓 묘소이고 좌측으로 가면 생가가 나온다..

 

자료 :  초보산꾼    김삿갓 생가..

 

 

칼바람만이 기억되는 소백산과는 또 다른 소백산 자락길에서 올 해 첫 눈길 산행..

생각보다 힘들었다는 산우님들의 말을 들으면서 마치게 된다..

 

 

 

한번 역적으로 몰리면 삼족을 멸하는 시대라 같은 가족이라고 해도 숨기고 또 숨기고 했을 터이고 보면

그런 가족의 내력을 알려줄 리 없었을 것이고 아무것도 몰랐던 처지에서 20세 때 황씨와 결혼하여

그해 영월 동헌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그는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백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마고의 비겁자라고 경멸하는 詩를 써서 장원급제하게 되니

조부를 욕하였다는 죄책감에 처자식마저 내팽개치고 22세부터 방랑을 시작하여

가슴에 맺혀 삿갓을 쓰고 평생을 하늘을 보지 않으며 40여 년을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아무리 태생이 그래도 사람인데 어찌 방랑의 길이 힘들지 않았겠는가?

유일하게 고독한 방랑자에게 손을 내민 것은 술과 여자 이였을 것이지만

술이나 여자로도 채워줄 수 없었던 맘속 한구석을 채워주는 반려자가 바로 그의 천재적 시심詩心이었다

천재적 시심이 없었다면 과연 스물두살에 가출하여 쉰일곱에 죽기까지 평생을 방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비록 삿갓으로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시로써 자신과 세상을 건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영화 서편재의 소리를 얻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해야만 했던 한의 소리가 살아 있는 자에게 심금을 울려 주었듯

노숙자와 다름없는 황량한 방랑속에서 나왔던 그의 시혼詩魂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김삿갓이 남긴 시 몇 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천재적 詩仙이 전국을 방랑하며

그가 하늘을 가리면서까지 남기려 했던 그간 묻혀있던 얘기들이 영월 땅에서 다시 살아났기에

비록 그의 육신은 이미 한 줌 거름으로 돌아갔지만 우리가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대산 고개를 지나며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그가 남긴 시심을 잠시 되돌아 생각해 볼 시간이였다는 생각.

 

19세기에 조정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안동 김씨의 피를 이어받고 태어났음에도

천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현실이 아마도 더욱 그를 힘들게 하였을 것이고

조부를 욕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처지와 같은 사회적 모순을 시로써 승화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

요즘 정치적 분위기에서 과연 김삿갓 같은 천재가 다시 나타났다면?

과연 이 사회는 맘껏 자신의 뜻을 펼 수 있도록 도와줄까?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