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 수도지맥 3 - 두리봉 구간 : 목통령에서 큰재까지 (개금 접속, 마장동 하산)

 

 

언제 : 기해년(19년) 하늘연달 10월 스무이흐레 해날

 

누구랑 : 자유인 산악회 수도지맥 산우님들과 함께.. 

 

어딜 :  목통령(개금마을 접속) ~ 석항령 갈림봉 ~ 두리봉 ~ 남산 ~ 장구재 ~ 큰재(마장동 마을 하산)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5041 에 있습니다

 

 

아직은 조금은 남아있는 따뜻한 온기의 선물인 이슬이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한다는 한로를 지나면서

한여름 더위를 벗 삼아 즐긴만큼 나뭇잎의 자태가 결정되어 나름의 색깔로 갈아입고 산하를 물들이며 남하 하고

본격적으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이 지나면서 늦가을의 또 다른 반가운 손님 국화도 한자리 차지하고

거기에 더욱 높아진 가을 하늘까지 가세하며 석화상 가야산을 보면서 걷게 될 수도지맥이 펼칠 가을이 기대된다.

 

 

 

 

대간과 수도지맥 그리고 낙동강

 

백두수도지맥 전도

 

(백두)수도지맥이란..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남하하다 삼도봉(초점산)을 지나 1180봉에서 줄기하나가 분기되어 동남진을 시작하는데

수도산, 단지봉, 우두산, 오도봉 등 천고지가 넘는 산들이 중심을 잡고 105.8 km를 이어가며

경북 김천시, 성주군, 고령군, 경남 거창군, 합천군 등에 삶의 터전을 만들면서

남으로는 황강, 북으로는 감천과 회천의 분수령이 되어 황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에서 생을 다하는 산줄기이다

 

 

 

 

수도지맥 3구간  :  목통령(개금마을 접속) ~ 큰재(마장동 마을 탈출)

 

 

개금마을을 접속지로 하여 신선봉으로 알려진 수도산 서봉인 금오지맥 분기봉에서 시작된 김천 증산면과 거창 가북면 경계인

목통령을 시작으로 가야산 옛길 중 하나인 석항령 갈림봉인 1012봉에서 초점산에서부터 계속 함께 했던 김천과의 이별을 한 뒤

성주군과 거창군의 짧은 만남을 이어가다 가야산 갈림봉인 두리봉에서 가야산 방면으로 성주군과 이별 후 합천 가야면과 만나

길게 이어진 동진을 마치고 남진을 시작하여 거창 가북면과 합천 가야면의 경계인 큰재에서 마치고 마장동 마을로 하산 한다

 

 

 

 

앞 구간 단지봉에서 부터 오늘 걷게될 구간 대부분을 책임지게 될 가북저수지를 담아보고.. 산위에서 보는 느낌과 다른 느낌

 

용두암봉에서 본 가북저수지.. 오늘은 이런 전망이 전혀 없어 너무 아쉬웠다..

 

개금(상개금)마을 정류장에 도착하여 준비하고..

 

 

 

10:45분   출발.. 좌측 목통령으로.. 일부는 분계령으로.. 여기 거창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분계령을 통해 천창장으로 갔다.

 

용두암봉을 보면서..  여기서 보니 용이 하늘로 승천하려는 기운?  용두암봉에서 즐겼던 기억밖에 없는데..

 

10:48분   아로니아 농원 방향인 좌측으로..

 

10:57분   앞  구간 탈출시 내려갔던 하개금 마을 뒤로 계속 걷다가 만나게 될 남산이 어서오라 하고..

 

11:00분   마지막 민가를 지나고..  목통령 가는 길... 알바..

 

알바 중 담아 본 두리봉과 1085봉 사이로 가야산..  오늘 전망이 없어 이 사진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11:44분    목통령에 접속하여 본격적인 수도지맥이 시작되고..

목통령木桶嶺   대가천은 지도 위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황점리와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를 연결하는 고개

북으로는 회천의 상류인 대가천중에서도 최상류인 목통천과 남으로는 황강의 지류인 가천천의 최상류인 석가천의 분수령인

목통령은 천고지로 김천시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 알려져 있으며 한자로는 木通으로 으름덩굴의 한자 표기일 가능성도 있고

우리말 길목으로 통한다는 뜻을 가진 한자만 빌려쓴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11:46분   지도상 목통령 사이 999.8봉...한끝차이로 천고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11:49분   좌.우로 흔적이 남아 있는 또 다른 목통령

 

11:51분   지도상 헬기장인데... 잡초만 무성하고.. 아쉬운데로 조망..  가운데 남산과 남산 좌측 남산제일봉이 고개를 내밀고..

 

 

 

뒤돌아 본 용두암봉

 

11:55분   철망은 시작되고..

 

11:57분   지도상 1030봉

 

지형이 우측으로 바뀌면서 1180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12:02분   지도상 헬기장인데 사유지가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12:16분    1130봉은 우측으로 우회한다

 

바로 지도상 무명봉도 우회하고.. 그럼 가야산이 정면에 나타나고.. 오늘은 아쉽다 조망이 없어서..

 

이제 좌측으로 가야산 아래 성주군 가천면 창천리 방향... 옛날에 영남5대 시장중  하나인 천창장이 섰던 곳이다

 

 

12:28분   석항령 분기봉.. 석항령으로 이어지는 독용단맥은 형제봉과 독용산으로 이어가며 김천과 성주의 경계를 이룬다

   바로 앞에 보이는 석항령은 가야산 옛길로 김천 사람들이 성주땅 찬청장을 가기 위해 넘었던 고개이다. 잠시 후 자세히..

 

12:42분   분계령 전위봉인 1150봉.. 이제 우측으로 해서 한없이 내려가야 한다

 

 

 

경북도계도 성주를 끝으로 곧 끝나게 된다

 

가야할 마루금 두리봉과  좌측으로 가야단맥인 헬기장이 있는 원 두리봉과 가야산이 줄지어 서 있다

 

 

12:53분   현위치 분계령 안내도가 있는 고개를 지나고.. 역시 여기도 거창 사람들이 찬청장으로 넘었던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하루만에 되돌아 올 수 없다하여 불기재라고도 했다는데..

 

 

 

가야산 옛길..    석항령, 불기재, 부박령

 

**   가야산 옛길..

성주군에 있는 천창泉倉장에 가기 위해 합천, 거창, 김천 사람들이 해발 800m에 이르는 가야산의 높은 고개를 넘었던 고개

* 석항령(돌목재)  김천에서 넘던 고개   길이 가파르고 급해서 돌아가야한다는 뜻의 돌목재... 한자 石項는 오기인 듯..

* 부박령(코베이재) 합천에서 넘던 고개   고개를 오르려면 코를 땅에다 박을 정도로 가파르다고 코배이재(鼻迫嶺)라고 부른다.

* 불기재   거창에서 넘던 고개   새점마을이 있을 정도로 철기시대부터 있었다는 풀뭇간에서 유래를 찾는다 

 

 

천창泉倉은...    경북 성주군 가천면 창천리

조선 5대 시장중의 하나였던 김천장을 지척에 두고 있었던 천창장은 가야산과 형제봉의 옥수를 담은 대가천의 명지에 자리잡아

성주 서부지역의 중심지로 역할을 수행하며 경상도를 대표하는 5대 시장으로 크게 번성하였다고 한다.

가천면 창천리는 원래 샘이 있는 너른 들판으로 천평泉坪이라 했는데 천야창이라는 양곡 창고가 생기면서 천창泉倉으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안타깝게도 지금은 일제에 의해 입맛데로 다시 이름이 바뀐 창천을 그데로 지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13:07분   가야단맥의 분기봉인 두리봉 정상에서 식후경.. 시간이 있으면 두리봉에 들러 삼각점을 확인하면 좋은데...

 

 

13:23분    식후경 후..  헬기장이 있는 가야산 가는 길에 있는 원두리봉을 담아보고 길을 제촉한다

     두리봉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고개가  합천 사람들이 천창장을 넘나들었던 부박령이다.. 높죠? 코가 닿을 정도로..

 

독용단맥과 가야지맥

 

 

13:29분   이제 수도지맥은 성주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합천과 만나 경남의 속살로 들어가게 된다. 전망이 없으니 이것도 반갑고..

 

13:35분  이제 가야산과 멀어지면서 모습도 조금씩 변해간다

 

13:50분   지도상 1095봉.. 대구의산님이 곳곳에 표시를 해 두어 도움이 된다.. 감사합니다.

 

14:00분   이제 마루금이 우측으로 꺽이는 998봉 갈림봉... 좌측으로 가면 지도상 998봉이므로 주의..

 

남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하지만 우측으로 해서 빙 돌아가야 한다

 

14:15분    지도상 출입금지 안부... 네이버 지도에 살푸지재로 되어 있다. 개금마을과 해인사로 탈출이 가능하다고..

 

14:38분   남산

 

 

남산에서 휴식 후 조금 내려와 마루금은 우측으로 꺽이는데..  되돌아 보니 동쪽으로 띠지 하나.. 혹시 비봉산 가는 길?

그런데 선답자들의 후기에 나오는 난석산(깃대봉)은 어디에 있었을까?   지도상으로는 여기 어디인데..

 

15:12분   무덤 2기를 지나니 장자동 고개

 

우측으로 단지봉에서 좌일곡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좌.우로 고불암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보인다

 

지나온 마루금도 담아 보고.. 전망이 거의 없어서..

 

오늘 들머리 개금마을과 그 뒤로 걸었던 1180봉에서 두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분계령까지..

 

15:16분   지도상 헬기장이 있는 918봉

 

 

15:23분   마루금에 있는 고불암의 종루

 

 

오늘 산행이 긴 관계로 고불암 답사는 생략하고 계속 종루에서 마루금을 이어간다

 

15:30분   오르며 되돌아 보면..

 

15:40분   지도상 고불암 납골당 봉도 지나고

 

15:44분   안부도 지나고

 

지금은 거창군과 합천시의 경계를 걷고 있는 중..  띠지도 가려서 붙여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여기가 김천 경계 같잖아?

 

15:50분   우측으로 꺽어지는 1010봉    좌측 1026.5봉으로도 길이 좋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 능선은 마장동 우측으로 내려간다

 

15:55분   지도에는 없는 942봉 갈림봉에서 좌측으로 이어가면

 

잠시 휴식 후..

 

16:17분   벌목지가 나오면 장구재가 바로 앞에 보이고..  가야할 가운데 944봉과 가운데 우측으로 1017봉이 보인다

 

오늘은 어쩌다 전망이 열려도 제한적이다..  수도지맥의 최고봉 단지봉

 

산림지대를 걸어보고

 

16:22분   944봉이 나타나고... 우회하면..

 

16:25분    다시 벌목지... 단지봉에서 지맥에서 벗어나 덕동마을로 내려오는 능선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백두대간..  당겨본 대간에서 벗어나 있는 향적봉(덕유산)

 

 

 

16:25분   벌목지를 지나 또 다른 무명봉을 우회하기 위해 다시 숲길로 들어서고..

 

16:34분   지도상 1017봉을 지나면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가는데..

 

바로 안내문이 나오면서 마루금은 사유지와 경계하며 계속 이어간다

 

 

 

16:38분    그럼 바로 지도에 나와있는 임도를 건너고

 

16:41분   임도에서 첫봉인 지도상 백학동 위 봉에서 우측으로 가면

 

16:47분    점으로 표시된 안부를 지나고

 

16:57분  지도상 1020봉 지나 우측으로 조금 가면 바로 

 

17:01분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가고..  여기서 휴식하려다 선두는 내려가고 있다 하여 바로 진행

 

17:12분   표시 바위를 지나면

 

17:13분    큰재의 전위봉인 마령이라 표시된 1006.5봉이다. 마령?  날머리 접속지인 합천 가야면 마장동과 관계가 있나?

 

 

17:23분    마령에서 마루금은 바로 우측으로 꺽인다는데.. 능선은 보이지 않고 급경사라 긴가민가 하는데..

    무조건 내려오니 띠지가 보인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성황당이 있는 해인사와 가조면을 이어주는 큰 고개인 큰재

 

 

 

17:49분    여기서 선두와 시간이 달라 후미만 뒤풀이 하고.. 하산을 시작하고..

 

18:07분   계곡은 1005봉에서 분기된 능선따라 계속 좌측으로 이어진다..  내려오면 포장도로가 나오고..

 

18:14분  큰길인 삼거리로 나오면 마장동은 우측 도로따라 간다

 

18:22분    해인사 창건과 관련이 있는 마장동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결코 짧지 않은 코스..

수고하셨습니다.

잠시 쉬어 가라는 듯 2구간에서 보여주었던 조망도 전망도 없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수도지맥이 가야산 전망대로는 최고라 생각했는데 하는 아쉬움...

 

 

 

택리지에서 높고 수려하면서도 삼재가 들지 않는 영험함까지 갖춘 명산이라 극찬하고 있는 가야산은

신라에 의해 멸망한 지금의 합천과 고령에 존재했었다는 대가야에서 나왔다는 얘기도 전하고

불교가 전래된 후 전에 불렀던 우두산에서 소를 뜻하는 범어의 '가야'를 붙여 불교 성지로 만들었다는 설 등..

그런데 이 가야산도 해인사를 품지 않았다면 지금도 석화성(石火星)으로 표현됐던 산세로만 남았을 것이다

민족의 고귀한 문화유산인 부처님의 지혜 설법인 고려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해인사의 장경각만은

石火星인 가야산의 火氣에 더해 수많은 국난과 화마에도 화를 면하고 안전하게 보전될 수 있었다는 것은

수도지맥과 남산제일봉이 펼쳐놓은 홍류동 계곡과의 만남이 주는 궁합 外에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바다에 모든 별들이 빠짐없이 도장(印)을 찍듯이 우주의 모든 이치인 부처님의 설법을 펼치고자

해인海印사라 했을 것인데 아무리 뜻이 깊고 심오하다고 해도 설법을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럼 해인사가 잦은 화마에도 오늘날까지 이렇게 천년고찰의 위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절을 지었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화재 등 여러 요인으로 돈이 계속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찰들이 기록으로만 남고 사라지는 이유였을 것이다.

즉 예나 지금이나 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고 개인보다는 거의 모든 쳔년 고찰들이 그렇듯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왕실과 같은 든든한 지원 없이는 불가능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해인사의 창건도 애장왕의 보은報恩에 힘입어 창건되었지만 화재 등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고려 태조의 귀의歸依와 조선 시대에는 태조의 발원發願 그리고 세종 등 계속되는 왕실에서의 든든한 지원은

법보종찰法寶宗刹로서의 명성과 호국불교의 중심으로 지금까지 이어오는 큰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

 

가야산은 해인사로 대표되는 불교의 성지로의 역할뿐 아니라 민초들의 힘겨웠던 삶의 무게도 받아 준 곳이다

가야산 남으로 해인사가 홍류동 계곡을 품었다면 가야산 북으로는 금오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독용단맥, 가야단맥의 물줄기가 모두 합하는 곳에 바로 천창장이 있었고

가야산 옛길인 합천은 부박령, 거창은 불기재, 김천은 돌목재(석항령)을 넘어 성주땅 천창장으로 넘었다

가야산 옛길인 합천은 부박령, 거창은 불기재, 김천은 돌목재(석항령)을 넘어 성주땅 천창장으로 넘었다

그래서 천창장은 조선 5대 시장인 김천시장을 옆에 두고 영남 5대 시장의 하나로 태어날 수 있었다

또한 가야산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이름을 딴 치원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을 정도로 흔적이 남아 있고

신라 애장왕이 왕후의 보은으로 해인사 창건을 위해 삼정승들이 함께 머문 곳이라 삼정마을까지..

 

바다에 모든 별들이 빠짐없이 도장(印)을 찍듯이 가야산이 품은 역사들도

역시 이 일대의 총사령관다운 가야산만이 가진 넉넉함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걷고 있는 수도지맥이 모산이라 수도지맥을 걷고 있는 산우님들이 더 대단하시고...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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