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19 :  금정산 구간 -   지경고개에서 개금고개까지 

 

 

언제 : 갑오년(14년) 타오름달 서른 흙날 ~  서른하나 해날(무박)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낙동정맥 식구들

 

어딜 : 지경고개 ~ 계명봉 ~ 금정산 ~ 산성고개 ~ 만덕고개 ~ 백양산 ~ 개금고개 

             

      산행거리 23.5km  낙동정맥 23.5km   한돌대장님 공지내용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1842에 있습니다

 

 

좁디 좁은 한반도라지만 요즘 보이는 날씨를 보면 어디는 홍수에 가까운 물난리를 주고 어디는 햇볕만 쩅하고

될 것도 안될 것도 없다는 서울 하늘에 먹구름이 한차레 흘러가면 나타나는 하늘을 보았는가?

가을 쪽빛 하늘의 색을 서서히 닮아가는 과정에 보이는 상큼함은

정형적인 가을엔 볼 수 없는 지금에 맞는 색깔임을 느끼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가을을 담고자 하는 아침공기를 뚫고 나오는 햇살의 무게가 다름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늦가을 시작한 낙동정맥길, 다시 가을을 향해 마지막 1구간만을 남기려 떠나는 여정을 위해 사당으로 달려간다

 

주자료 : http://san.80port.net/nakdong/nak23.htm

             양산시, 부산시 홈피

 

 

 

낙동정맥19구간 등로

 

 

 

오랜만에 적은 인원으로 큰 차로 호사하며 편하게 일찍 지경고개에 도착하고

지경(地境)고개

낙동정맥을 잘라 경부고속도로를 낸 부산 지경고개. 양산과 부산의 경계를 이루며 시작된다

양산과 부산의 경계점에 있는 고개로 지경(地境)은 '지역의 경계'라는 뜻으로 지난구간 양산시와 언양의 경계에서 지경고개를 통과한 바 있다.

 

 

자두농원 방향으로 시작된다

 

엊그제 내린 비의 흔적을 보며 걷는 경운기길도 아직 물기가 있어 걷는데 어려움을 준다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바로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면 계속 경운기길로 이어진다

 

첫이정표에서 우틀

 

계명봉에 오르다

계명봉(601.7m)

신라는 막 삼국을 통일했지만, 곳곳에 남아있던 백제와 고구려 부흥군의 반란과 당과의 전쟁으로 왜구에 대항할 틈이 없었다.

그 틈을 왜구들은 집요하게 공격했고 신라 군사가 출동하면 바다로 도망갔다. 문무왕은 골머리를 앓았고 부처의 힘으로 왜구를 퇴치하고자 했다

원효는 백성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먼저 금정산에 올라가 지세를 살피기 시작했다.
"옴…! 바다 건너 대마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낙동정맥의 세를 받은 산마루가 첩첩이 파도를 타듯 출렁이는구나!

산마루 불꽃 같은 바위는 화성, 산 전체는 토기가 윤택한 토성, 화생토(火生土)의 상생(相生)이다.

분명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룬 진산(鎭山)이야! 그렇지, 바다 건너 왜구의 본거지 대마도는 지네의 형국이다.

지네를 잡기 위해선 닭이 필요해…. 닭!"
원효는 대마도가 바로 보이는 봉우리에 자웅석계(雌雄石鷄)*란 대마도를 쪼는 듯한 암탉과 수탉 모양의 바위를 만들고,

닭이 운다고 하여 계명봉이란 이름을 붙였다. 남쪽 정상에 있는 큰 바위를 쌍계봉이라 명명했다.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20809000027 

 

 

 

처음으로 상큼님과 인증사진 한장을 남긴다

계명(鷄鳴)이란 이름은 불교적 용어로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의상대사가 이 부근에 절터를 물색하던 중 한밤중에 느닷없이 닭울음 소리를 들었기에

이곳에 암자를 세웠다고 하며 암자에서 정진하던 납자(衲子)들의 새벽예불 때마다 하늘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린 것에 연유하여 계명봉이라 했다고 한다.

금정산 8경중 하나인 "계명추월"이라 했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래도 구름은 많지 않아 금정산에서의 낙동강과의 만남이 기대를 같게 한다

 

 

전망바위에서 이제는 볼 수 없는 양산시내를 담아본다

 

현대인에게 있어 자연이 주는 무한한 혜택에 과연 얼마나 즐기며 살고 있을까?

인간의 편리와 이익에 맞춰 제단하고 이용되고 그리고 버려지고

무한한 혜택을 자연의 입장이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철저히 계산된 접근이기에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자연의 복수를 전혀 알 수가 없다

 

 

푸르나 총무님 고생했습니다

 

벌써 올해만도 초봄부터 시작된 계절이 계절을 밀어내는 이상한 기후 속에

꽃들이 먼저 반응하고 덩달아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인간들도 속수무책으로 아차하고

장마는 어디로 갔는지 기상청에서는 장마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 마른장마도 장마이니...

지금 가을로 가는 여름 마지막 생명의 결실한 맺음을 위해 필요한 햇볕을 야속한 비가 계속되고 있다

 

 

나도?

 

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마지막 불씨조절이다

뜸들이기 불씨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맛있는 밥을 먹느냐 설익거나 탄밥을 먹느냐가 결정된다

지금 벼이삭이 기쁨을 안고 고개를 숙이기 위해서는 마지막 가을로 가는 햇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껏 길게 받아야 할 햇볕의 자양분을 날씨가 걷어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나를 따라 왔다 이제는 산길이어가는데 푹 빠지신 함박웃음님

 

자연은 우리에게 재앙에 가까운 시련도 주지만

재앙을 인간이 하기에 따라서는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준다

그만큼 자연은 너무도 광범위하고 넉넉한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의 어리석음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기에 자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의 1%도 쓰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보고 있나니...  위에서...

 

 

김유신이 올라 이곳에서 호연지기를 길렀다는 일명 김유신솔바위 - 양산시내를 바라보며 담은 사진

독야청청 이 억새초원을 지키며 서 있는 키작은 소나무, 일명 "김유신솔바위"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천여 년 유구한 세월 동안 그 푸르름을 자랑해 오고 있는 키가 작은 소나무를 '김유신 솔바위' 불러 왔다

김유신 장군이 이곳 솔바위에 올라 기도를 올리며 삼국통일의 초석을 쌓았다하여 "장군봉"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조금 오르면 김유신의 전설이 담긴 장군봉 갈림봉인 갑오봉

 

샘터도 지나고

 

양산 가산리 마애여래불 갈림길/전망대  범어사 갈림길

架山里 磨崖如來立像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은 화강암 절벽에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으로서, 12m에 달하는 거구의 신체 세부 묘사는 도식적이고 단순하며 추상적이라

사실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거석불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李澄圭이징규가 무예를 닦았다는대 가산리 마애여래불좌상이  일명 이징규의 자화상이라는 말도 있다

이징규는 맏형인 이징석의 충절과 이징옥 모해의 틈바구니 속에서 장군으로서 생애를 마치지 못한 한은 아닐련지...

 

 

 

갈래길에서 숲속으로 진행하면 만나는 이정표

 

 

금정산 8경중 하나인 "계명추월鷄明秋月"이라 했건만 달은 커녕? 헉... 안개가 낙동강과의 첫 대면을 다음으로 미루게 하고 있다

 

이제 가을이니 다라실님을 가울여심에 담아본다

 

고당봉(금정산)정상

금정산 고당봉 姑堂峰 (801.5m)(금정산 주봉) 

예전 태백산맥의 개념이라면 첫 출발점이자 귀착지가 되었던 곳으로 굵직굵직한 화강암 덩어리가 멧부리를 차지한 곳이다

금정산(金井山)은 범어사(梵魚寺)의 배산으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 마리 금빛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범천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하여 금빛 우물이라는 산이름과 범천의 고기라는 절이름이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고당봉에서 금정산성 일대와 부산시가지를 둘러보는 조망은 어느 빼어난 명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조망을 주는 곳이지만

겹겹으로 둘러쳐진 운해의 장막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정상에 있는 이정표

금정(金井)은 금빛의 샘 즉, 암상금정(巖上金井)에서 비롯되어 금정산이란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명봉이 고유어로 쇠울이 즉, 금정으로 해석되므로 금정산의 어원이 계명봉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신라시대 최치원의 『당법장화성전』에 의하면,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한 신라 화엄 10대 사찰 중의 하나로

 ‘ 양주 금정산 범어사 ’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금정산은 신라시대부터 불렀던 것으로 확인된다.

원래는 양주[양산]에 속해 있다가 후대에 동래현에 속하게 되었다

 

 

 

조금 내려오면 금정산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있다

"고당봉 장군봉 계명봉 미륵봉 원효봉 용호봉 장골봉 파리봉 상계봉 대륙봉 금정봉 총 11봉이 있다

옛날에 한 할머니가 금정산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고당봉의 산신이 할미신이라서 할미신의 집이 있는 봉우리라고해서 할미 고, 집 당, 봉우리 봉 해서 고당봉이라 했다고 한다

경남양산동면과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이제 완전히 부산땅으로 들어선다

 

 

 

금샘갈림길이 있는 고당샘

 

400m 거리에 있는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금샘에 잠시 들러 본다 - 안내판이 있고 바로 앞에 있는 이 바위를 올라야 한다

금샘

금정산의 상징이기도한 금샘(金井)은 최근까지 스님들이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우뚝 솟은 바위 정수리에 금빛 물이 괴어있는 샘이다.

금정이란 이름은 이 산 정상부에 있는 작은 바위우물에서 비롯된다.

현지인들이 ‘금샘’이라 부르는, 이 우물에 대하여 《세종실록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일본의 침략 막으려 황금빛 샘 에 물을 채우는 아버지의 부재목이 있는 금샘에 얽힌 설화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11018000225

 

 

 

바위위에 금샘이 유구한 역사를 안고 지금도 이렇게 신비감을 더해주며 물을 품고 있다

 

“동래현(東萊縣) 북방 20여 리에 금정산이 있고 그 정상에 우물이 패어 있다. 둘레가 십여 척이며 깊이가 일곱 치나 된다.

항상 마르지 않는 이 우물은 물빛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금빛 물고기 한 마리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우물에서 놀았다 하여 산이름을 금정(金井)이라 하고,

또 이로 인해 절을 짓고 그 이름을 범어사(梵魚寺)라 하였다.”
작은 물웅덩이에 불과한 금샘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것이 간직한 고유어 이름에 있다.

범어사 동쪽 산록에 계명봉(鷄鳴峰)이라 불리는 가파른 산봉우리가 있다.

계명봉 밑에 있는 마을을 현지인들은 ‘새울이’ 혹은 ‘새얼이’라고 부르는데 이 고유 이름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고유어 ‘새울’은 동쪽에 있는 ‘새우물’이란 뜻이다. ‘새’라는 말은 샛바람에서 보듯 동쪽을 뜻하고,

아울러 새롭다, 새벽, 날이 새다에서 보듯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금샘에서 본 금정산

 

그러고 보면 계명(鷄鳴)이나 금정(金井), 나아가 동래(東萊)란 지명까지도 모두 이 ‘새울’의 차자표기(借字表記)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鳥)나 계(鷄), 또는 금(金), 동(東), 효(曉)의 훈(訓)이 모두 ‘새’이기 때문이다.
우물이란 말은 본래 ‘울〔‘井’혹은 ‘泉’〕’에 ‘물’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따라서 새울은 새로 발견된 샘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의하면 새울이를 한자말로 옮겨 동신서(東新曙)라고 적고, 이 산에 효의사(曉義寺)란 절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기록 역시 이곳 지명 어원을 푸는 데 참고가 된다.

샘은 생명의 근원지로서 이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 주지만 때로 지명 어원을 푸는 단서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샘’에서 찾는 동래의 지명 — 금정산 금샘 (물의 전설, 2000.10.30, 도서출판 창해)

 

 

 

세심정이 있는 탐방지원센터가 있는 곳에서 식후경

 

드디어 산성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여 북문

금정산성 북문(北門)은 범어사에서 서쪽으로 1.6km,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의 남쪽 0.9km 지점에 있다.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 오르려는 잘록한 안부에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4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 이 성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규모도 다른 성문보다 작다.

 

 

계명추월의 멋진 풍경을 이제야 보여주려는 듯 낙동강의 모습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삼수령님



대간길이나 정맥길이나 무박으로 진행하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달이다

새벽에 여명을 뚫고 나온 해는 하루를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속 우리와 함께 하지만

달은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하는 보름달의 얼굴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존재의 유무도 모르고 지나치거나 겨우 찾아낸 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이미 생을 다해가는 모습이나 앳된 모습을 볼 때는 측은하기까지 하다

 

 

반갑다 낙동강아 한번 당겨봅니다. 참 잘생겼네...   낙동강의 모습을 담아본다

 

달이 차면 기울고 다시 기울면 다시 차오르고 하는 것이 달의 생리라고 생각하지만

인생도 결국 돌고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에 맞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달에서 배우게 된다

지나고 나면 결국 모든 것이 다 숙명적으로 오고 간다는 사실을...

 

 

원효봉에서 본 금정구 방향의 회동저수지 방향도 보이고

 

바람이 문풍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만큼이나 빠르게 오고 간다는 말이 있다

가고 오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 사람의 생애가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데

한돌대장님과 함께 도원의 결의를 다지 듯 피를 나누는 형제처럼 낙동을 시작하고

사계절을 돌아 이제 마지막 한 구간을 남기고 남겨지고 있는 우리 발걸음의 추억들이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을 알면서도 걸어 왔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날 뿐이다

 

 

제4망루에서 본 낙동강

 

산줄기도 마찬가지이다

낙동정맥 산길을 따라 오면서 차고 기울어 가는 수많은 봉들의 흐름속에서

또 다른 줄기들이 정맥을 의지해 동해로 향하고 때로는 西로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렇게 서로 하나의 생명을 유지한 채 남해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당겨보면

 

산줄기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강이다

강이 숙명적으로 산줄기에 의지할 수 밖에 없지만 강이 아니면 아무리 높은 산이 있으면 뭐하리

담을 그릇이 없거나 작은데

거기에 올망졸망 모여있는 마을들을 모아놓으면 세상사는 얘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의상봉을 우회하다 만난 낙동강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울진을 비롯한 영남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남류를 계속 이어가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

가락국(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에서 유래를 찾는 낙동강

경상북도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상남도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이 모두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기에

낙동강 서편에 모두 위치하여 있었던 것이다

 

 

불웅령 직전 돌탑봉에 올라가다 다시 만나게 된 낙동강

 

금정산에 와서야 겨우 모습을 보여주는 낙동강의 모습이 이렇게 반가운 것은 무슨 연유일까?

바로 낙동정맥길을 함께 해준 낙동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

함께 묵묵히 때론 멀리서 때론 가까이서 우리와 함께 흐름을 이어왔구나 하는 반가움

우리가 걸어오면서 남긴 추억의 발자욱들에 남긴 사연들까지 오롯이 안고 흐르고 있었음에

마지막 남은 몰운대에서의 마지막 바다로 나가는 아쉬움을 함께 한다는 사실이 나를 이렇게 즐겁게 하고 있다

 

 

다라실님의 멋진 포즈를 낙동강의 흐름에 맡겨 본다

 

사계절을 지나 다시 찾아오는 계절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야 겨우 코빼기를 보여주는 낙동강

집나간 자식 갖은 맘고생 부모에게 안겨주고 떠난 자식을 다시 만나는 것 같은 기쁨

낯설은 곳에서 만났을 많은 친구(지류)들과 갖은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밀리고 밀리고 왔을 터인데

우리가 이렇게 힘든 산길을 이어온 여정에 보상을 받는 것 같은 기쁨을 어이할꼬? 자식과 부모의 상봉

오늘 이 금정산에 서서 바라본 낙동강에 대한 이 초보산꾼의 단상이다

 

 

다시 산행기로 되돌아 와 원효봉에 도착하고

원효봉(687m)/     삼각점(양산 25)

예로부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동녘, 서녘, 밝음, 광명 즉 신선한 아침 풍경의 산봉우리의 명칭을 '으뜸의 새벽' 원효봉이라 불렀다.

원효는 불교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금정산에서 높은 교화력과 깊은 감화력인 신술로 5만의 왜구를 호리병으로 물리친 호국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다

 

 

원효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금정산성 성곽길 능선과 멀리 장산을 업고 있는 해운대가 보인다

금정산성은 임진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 부민들이 난리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란겸 항전성이다.

임진란에 있어서 동래가 차지하는 위치는 다른 고을에 비할 수 없이 중요했다. 나라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난리의 발생과 함께

적의 첫 상륙지점으로 제일 먼저 전화(戰禍)를 나누고 굳센 항전을 전개한 곳이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또 난리의 장기화에 따라 적의 교두보로서 오랜 수난이 계속된 곳이기도 하다.'(금정산성 전돈대지 발굴조사개보)

 

 

 

돌탑 직전 바라본 의상봉(용호봉)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김유신 솔바위봉이라고도 한다. 옆에 있는 바위가 무명바위이다 - 의상봉은 우회했다

의상봉(용호봉)

산꾼들이 임의로 지어 '뿌리없는' 이름들이 많은데 의상봉을 예로 들어 1970년대 이후부터 의상봉으로 불렸는데,원래 지명은 용호봉이라고 했다

용호덤 칭디미의 용봉에서 용이 승천할 때 금정산 산신령(호랑이)이 나타나 싸움을 걸었다.

이들이 한참 싸우고 있는 동안 건너편 수리덤(부채바위)에선 독수리가 웅크린 채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설은 여기서 멈춰 바위가 됐다

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6/0720/0B0020060720.1025114039.html 

 

 

제4망루를 통과하고

 

뒤돌아본 의상봉과 무명바위

 

부채바위도 당겨보고

 

내려오다 바라본 가야할 마루금은 좌측능선이고 우측으로는 상계봉의 바위들이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상계봉

이 봉우리는 638m의 금정산 남부를 대표하는 봉우리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자 부산의 산악운동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깎아지른 듯한 수십 길의 직벽과 기기묘묘한 거대한 암석들로 이루어져 부산 산악인들이 최초의 기술적인 암반 등반을 시도하는 곳으로

전체가 바위산처럼 보이며 이곳에는 병풍바위, 콩동바위, 영감바위, 할멈바위 등으로 불리는 기암들이 서로 자태를 다투기라도 하듯이 서 있다.

이들 바위가 빚어놓고 있는 그 형상이 자연의 신비로움이자 금정산의 또 다른 매력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잘 가꾸어진 솔밭길 오솔길을 걷노라면 동문이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편편바위인 대륙봉 - 부산 대륙산악회원들이 암벽훈련을 한 것을 기려 대륙봉이라 붙였다 한다.

김유신에 이어 대륙산악회까지?????   소중한 우리의 산에 막 갖다 붙여도 되는겨?   내가 소인배라 그런가?

 

제2망루

 

남문마을 갈림길 - 임도를 따르던 숲속으로 직진하든 다시 만나게 된다

 

휴정암갈림길이 나오고 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케이블카 능선과 작별하고 정면에 보이는 길을 따른다

 

상계봉 갈림길 - 백양산 방향 이정표(0.6km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를 따른다

 

만덕고개

만덕(萬德) 고개는  (290m) 터널  유래이정목

동래장과 구포장을 왕래하던 보부상은 반드시 만덕고개를 통과해야 했다. 동래 사람은 이 고개를 '구포고개'로, 구포 사람은 '동래고개'로 불렀다.

만덕고개는 유달리 험하고 가파른 '깔딱고개'였지만, 동래장과 구포장을 최단거리로 연결했다.

특히 동래 사람이 구포장을 보러갈 때 넘는 만덕(萬德) 고개는 옛날부터 동래부 관하에서는 최대의 도적 소굴로 소문난 험한 산길로

지금 양정동의 마비현(馬飛峴 모너머 고개) 화적 떼도 이 고개의 무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이 만덕고개를 만등(萬等) 고개라고도 불렀는데, 만 사람이 무리 지어 올라가야 도적을 피할 수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

 

 

산불감시초소와 쇠미산 산어귀전망대가 있는 전망대에서 본 황령산과 금련산 그리고 바로 앞에 종합운동장

 

쇠미산 구민의 숲도 통과하고

 

이정표에서 어린이 대공원 방향으로 우회길을 버리고 지도상 금정봉 금융산 방향으로 마루금을 따른다

 

금정산 갈림길 : 삼거리봉에서 직진하면 금정산 금융산으로 이어지고 좌틀하면 백양산으로 이어가는 마루금이다(금융산 방향에서 찍은 사진)

 

 

다시 내려와 우회길과 만나는 지점

 

암석원학습장 이정표를 만나면서 어린이 대공원과 작별한다 - 성지곡고개

 

만남의 숲 - 백양산 이정표를 따른다 : 이곳이 불웅령이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돌탑봉에 오르면 앞에 불웅령이 보인다

 

불웅령(불태령)

불웅령(佛熊嶺·616m)(불태령)

만남의 광장에 가면 북구청과 북구 낙동문화원이 세운 안내판에서 이름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불태령(佛態嶺) 또는 부태고개로, 위치도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가 아니라

만덕과 초읍을 연결하는 만남의 광장이 바로 그곳이다.

 성지곡에서 올라오면 만덕사의 부처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전해진다고 적었다.

이처럼 뚜렷한 유래가 있는데도 엉뚱한 곳에 엉뚱한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다. 2만5000분의 1 지형도를 봐도 봉우리에 불웅령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방화선을 따라 내려 오면 돌탑봉을 지나 백양산에서의 후미 단체사진

백양산(641.7m)/삼각점(부산 301)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지리적인 위치로는 부산진구와 북구, 사상구의 경계를 이룬다

버드나무의 일종인 흰 사시나무(白楊)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산의 유래는 <동래부지>(1740년)에 백양사라는 절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백양산은 금용산에 있다'고 전한다. 금용산(149.6m0은 부산진구 초읍에서 연제구 거제동에 걸쳐있는 산이다

기록으로 볼 때 백양산은 1740년 이후 금용산에서 분리된 듯하다.

 

 

 

부산진구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愛鎭峰을 지나고

 

 

정상석에 유두를 연상시키는 색칠을 한 유두봉(乳頭峰)(589.1m)

 

철탑이 있는 삼각봉

 

삼각봉에서 본 마지막 구간에서 만나게 될 을숙도와 동해시 방향

 

 

갓봉(405.6)에서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나오는 헬기장

 

개금동 체육시설(개림초등학교 갈림길)지나고 12번 철탑을 지나면 사향봉인 286.3봉

 

13,14번 그리고 예비군 시설을 지나 15번,16번까지 철탑시리즈를 지나 우틀하면 변전소 시설을 만나게 된다

주의 : 선답자들의 마루금 역활을 해오던 변전소로 오르는 길인데 지금은 개화초등학교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문을 잠그고 개구멍까지 철저히 봉쇄를 해 놓아 진행이 불가하다.

변전소 직전에서 좌틀하던지 아니면 열린 문을 그대로 통과해야 한다

 

 

다시 올라와 문을 통과하여 빙돌아 간다

 

개금역을 바라보며 오늘의 날머리 인증사진을 남긴다

 

오늘의 뒷풀이 장소

 

이렇게 하루의 피로를 푼다

 

 

이제 낙동정맥도 한구간만 남았습니다

언제 끝나나하고 시작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는 생각인데 벌써 여기까지 왔네요

한돌대장님의 뚝심이 만들어 낸 결실을 이제 한구간만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이

금정산에서 만난 낙동강의 물줄기 만큼이나 반갑고 기쁘다는 생각입니다

 

산줄기야 늘상 하던데로 하면 되는 맘먹기 이지만

낙동으로 가는 과정이 절반이니 그 또한 우리가 넘어야 할 산과 같다는 생각을 해보면

지금까지 달려온 수많은 시간속에 남겨진 거리에 우리의 힘든 여정이

이제야 행복으로 보상 받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가슴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를 행복으로 환산하면 달려온 거리가 있으니... 이렇게 스스로 행복찾기를 해봅니다

 

삼수령에서 시작된 낙동정맥과 낙동강과의 밀월같은 관계를 금정산에서 잠시 청산하고

이제 마지막 몰운대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위한 오늘

낙동정맥의 큰흐름을 이어오면서 만났던 모든 인연들이 다시금 새롭게 떠오름을 느낍니다

 

사계절이 변화없는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알아서 찾아오고 지나가고

철따라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다양한 모습들의 인연들이 다가오고 사라지고

거기에 맞춰 변했던 산우님들의 모습까지도 우리의 소중한 인연임을 느끼게 됩니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다시 또 다른 봉우리가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좀 힘들게 내려간다 싶으면 또 다른 인연인 고개가 우리에게 잠시의 휴식을 주고

서로 가진 것 없는 것 중에서도 한조각이라도 나눠먹으려 하는 마음들이 모아져

날머리에 들어서서 하루라는 세월을 다시 쓴 얘기속에 다 녹아드는 인연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던가?

산속에서 바람에 실려 우리 품속에 들어왔던 자연이 전해주는 따뜻한 산속친구들의 얘기

우리가 볼 수도 갈 수도 없는 산속친구들의 향기를 바람을 통해 받아들인 인연까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책한권으로도 모자랄 수많은 인연들을 우리가 걸었던 낙동정맥길에

만남과 헤어짐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그저 걷는데만 급급했다면 이런 소중한 인연들을 아마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늘상 밥고 다니는 낙엽 하나하나에도 다 생명이 있고 생명의 끈을 위한 인연들이 있고

 

생명을 다하면서도 마지막 인연인 새로운 작은 생명인 새싹이 돋아날 수 있도록 인연을 소중히 합니다

톱니바뀌처럼 빈틈없이 돌아가는 신만이 만들어 내는 우주의 순환도

결국 이런 작은 생명들의 인연이 모아졌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내가 있는 공간에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산속의 모든 생명체가 그렇게 살아가는데

두발로 걷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자유와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지

세삼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주는 고마운 가르침입니다

빨리 걷고 빨리 끝내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도 소중한 하나의 인연이겠지만

주어진 시간안에서 좀 더 느끼고 좀 더 많은 자연과의 호흡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들에게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정도는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

이 초보산꾼이 인연의 또 다른 모습을 얘기 했던 이유입니다

 

생명을 다해 가고 있는 낙동의 흐름만큼이나 이제

우리 낙동 식구들의 흐름도 멈출 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때마침 추석이 끼어 있어 3주라는 긴 여백이 남아 있습니다

여백에 과연 우리가 걸었던 낙동정맥길에서의 소중한 인연들을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여백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르 듯이

또 다른 인연의 끈은 언제나 가까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낙엽이 생명을 다하면서 까지 새로운 생명의 인연에게 모든 것을 주었 듯

마지막 구간 한돌대장님 이하 우리 낙동식구들의 인연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소중한 인연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구간에 반갑게 뵙겠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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