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13 :  어림산 구간  -   시티재에서 아화고개까지                     

                                          

                            

           

언제 갑오년(14년)  누리달 스물하루 흙날 ~ 스물이틀 해날 (무박)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낙동정맥 식구들

 

어딜 : 시티재 - 어림산 - 남사봉 - 한무당재 - 관산 - 만불산 - 아화재

 

               산행거리  : 낙동정맥 22.8 km   접속거리 0 km     총거리 22.8 km (한돌 대장님 공지내용 )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1745에 있습니다

 

 

 

낙동정맥 13구간 등로

 

12구간 봉좌산 삼거리에서 포항과 이별한 뒤 계속 이어온 영천땅과 경주땅의 경계를 이루며 이번구간을 마치게 된다

영천(永川郡)은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 경부고속도로,국도, 지방도 등이 통과하고 있는 4통 5달의 교통요지이다.

고려 후기에 활동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고향이기도 하다

 

 

 

 

안강휴게소가 있는 시티재에 도착하고

 

시티재(안강휴게소)(10:00~ 10:05)-    경주시 안강면 ~ 영천시로 통하는 4차선 국도로

시티재는 식량과 상품을 운반하는 마소의 등에 실린 시티다발(검블나무묶음)에 유래한 이름이며, 

동해에서 부는 바람이 많아 큰 나무가 적고, 검불나무가 많이 있어 이름을 시령현(柴嶺峴)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여현(礪峴, 숫돌고개)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동해안 선비들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배알하러 갈 때의 첫 고개라 하여 ‘시치재’라 불리다가 시티재로 불린다  디지털 영천 문화대전

 

 

 

길을 무단횡단하면 나오는 들머리

 

송신탑 시설을 지나 바로 숲속으로

 

동해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

 

호국봉

 

호국봉(340m)

6.25 당시 치열한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격전지였던 안강전투가 있었던 곳이 이지대이고

산자락 아래로 영천호국원이 있어 호국용사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호국용사묘지가 조성되어 있어 호국봉이라 붙인 듯하다

 

 

조금 진행하면 나오는 고경저수지가 지척인  돌탑봉 - 382.9봉 : 돌탑안에 삼각점이 있다

 

파계리(巴溪里)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에 침입하여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쉬다가 이 지방 주민들에게 두 차례나 크게 섬멸당하였다 하여 "敗愚"라 부르다가

한일합방 이후 행정구역 개편시 "파계"라 칭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경저수지는 낚시꾼 사이에는 파계지(巴溪池)로 불리는 저수지이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은 없고 나타난 철조망

 

철조망 끝부분에서 우틀 - 이정표가 아니면 직진하기 쉬운 곳이다

 

어림산이 어림되고

 

야수골안부 - 지도상 성황당고개

 

논실리(論瑟里)

임진왜란 때 영천 의병장, 권정 장군과 김귀희(金貴希)장군이 이곳에서 거문고와 비파소리로 암호를 정하고

제반 작전을 의논하여 왜군을 크게 무찔렀던 바, 이 마을을 논실(論瑟)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강제로 답곡(沓谷)이라 하였는데, 광복 이후 이곳 주민들이 동명을 다시 논실동(論瑟洞)으로 개칭하였다

 

 

전망이 트이면서 우틀

 

철탑

 

어림산

 

어림산(御臨山)510.2m

신라 때 경순왕이 둘러본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삼각점이 있는 어림산의 초보산꾼

 

효자비가 있는 무덤 506봉에서 식후경

 

조선효절김씨묘" 가 있는 이 봉우리는 영천, 경주, 안강을 가르는 경계봉으로 정맥은 무덤 정면으로 내려서야 하고

왼쪽(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내태리 고갯길을 넘어 금곡산(金谷山, 55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므로 잘못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곳이다.

 

 

영천시를 배경으로 - 나무 좌측이 인내산,  우측에 관산이 멀리 보인다

 

경주를 배경으로

 

가야할 남사봉(좌)과 마루금은 아니지만 계속 함께 할 인내산(우)이 앞을 안내하고

 

마치재

 

마치재

남사고개라고도 불리우는 마치재는 경주 남사리와 황수탕으로 유명한 영천 정리 청석(靑石)마을를 잇는 927번 지방도로.

경주 현곡면과 영천 고경면을 알리는 표지판

도로 오른쪽 아래 1km 남짓한 거리에 황수탕이 있다.

이곳의 지형이 말의 이빨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금 올라 무덤을 만나면 바로 좌틀해야 하는 주의구간이다

 

임도 직전 봉에서 좌틀 - 우틀은 황수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황수약수터는 보통의 경우 약수탕이라 하는데 황수탕(黃水湯)이라 부르는 것은

약수탕이 있는 산에 황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서 황이 녹아 나오는 물이라 하여 황물 또는 황수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의 성분은 유황질과 철분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물맛이 풋감처럼 떫고 칼칼하여 마시기가 어려운 것이 특색이다.

경험자들에 의하면 약수는 위장병과 고혈압에 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 빈혈·변비 등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황수 약수가 언제부터 발견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시대부터라고 한다.

당시 깊은 산골짜기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물맛이 특이하여 약수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학이 크게 발달되지 못했을 때 우리 조상들은 민간요법으로 이 황수탕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때 경주에 사는 불치병을 가진 병자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심산에서 수양 중,

이 물을 먹고 나서부터 자신의 병에 차도가 있어 계속 먹고 완치되었으며 이것이 후세에 전해져서 오늘날까지 효험 있는 약수로 알려졌다.
디지털 영천 문화대전

 

 

 

묵정밭이 나오면서 남사봉이 보이는 임도가 나온다

 

남사리 南莎里 종동마을

전설에 의하면 孫順이란 사람이 신라 흥덕왕때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있었는데 그의 어린 자식이 노모의 반찬을 먹어 그 부부는 자식을 생매장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마을 남쪽산에 가 땅을 파니 종이 나왔다. 그종을 치니 소리가 궁성까지 들렸다.

왕이 손순을 효자라 표상하고 종을 얻은 산을 북골이라 하고 마을을 鍾洞이라 명명했다 한다

노모의 반찬을 먹는다고 자식을 생매장한다?  흘러간 시절의 이야기이라지만 지금 시대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남사봉의 낙동식구님들

 

남사봉南莎  470m

이곳 남사봉과 인내산 사이로 움푹 패여 들어간 골짜기는 울주군 두서면에 있는 백운산, 치술령과 함께 형산강의 발원지가 되는 곳이다.

가야할 몰운대는 남쪽 이건만 정맥은 남사봉을 기점으로 오히려 북으로 향하여 뒷걸음을 치고 있다. 

南莎里는 마을 앞 가마들에 잔디가 많았고 마을이 남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사봉에서 좌틀하면 구미산 선도산으로 이어지는 경주지맥 분기봉이기도 하다

 

경주지맥

470봉(남사봉)에서 분기하여 구미산과 옥녀봉을 지나면서 선도산으로 내달린 후 태종무열왕릉(김춘추의 묘)에서 맥을 마감한다.

또 한 지맥은 옥녀봉 아래 가야식으로 묘를 쓴 김유신 장군의 묘지까지 맥이 도달한 후 마감한다.

남사봉에서 분기한 힘찬 지맥이 경주의 왕궁과 남산을 바라보며 경주의 북쪽에서 마감되는 것이다.

 

 

구미산(龜尾山) 해발 594M

구미산은 천도교의 발상지 용이 사는 연못  용담정(龍膽亭)을 안고 있는 명산이다

용담정은 수운 최제우에 의해 시작된 동학의 산실이며 수운이 순도한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시피 하다 1974년 구미산이 국립공원에 편입되면서 성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龜尾山은 거북 龜와 꼬리 尾를 합해서 '오랜 뒤끝'이라 하여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장소라고 한다.

1860년 동서양의 충돌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던 해에 서학에 맞서고자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천도교는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인내천 사

상으로 백성을 보호한다는 기치를 내세우며 활동을 시작했다.

한남금북정맥을 시작하며 보은땅 탁주봉에서 막걸리는 없고 동학의 소리없는 함성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시 임도

 

농장?

 

임도를 지나 산허리로 힐링길이 계속 이어진다

 

어림산이 헐벗은 모습으로 이미 떠나버린 우릴 배웅하고 있다

 

청석골 안부

 

한무당재

 

한무당재  경주시 서면과 영천시 덕정리를 연결하는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마을 주민들은 청석골재로 부른다 하며, 할미당재란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고개로

자료에 따르면 옛날 한신을 모시던 무당이 살고 있었다 하여 한무당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번 구간은 계속 좌측으로 인내산이 장소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다가 오고 있다

 

인내산 忍耐山 534m

남사봉(470m)에서 곁가지를 친 짧은 지맥이 구미산, 옥녀봉을 지나 선도산쪽으로 내달리는 머리부분에서 북쪽으로 솟아있는 산으로 인내산만을 목적으로 찾는 이는 드문 편이고, 천도교 성지인 용담정이 있는 구미산~인내산을 잇는 능선연계산행을 시도해 볼 만하다.
특히, 인내산 동쪽에서 시작되는 계류는 경주, 포항시민의 젖줄 65.5km에 이르는 형산강의 최장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서면 도리의 마채마을과 고경면 칠전리의 못안마을을 연결하는 4거리 갈래길이다.

 

전망이 트이면서 관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 정상은 좌측이다

 

된비알 치고 올라오면 무덤에 삼각점이 있는 관산

 

관산(393.5m)

이 관산은 사모관을 쓴 형태로 되어있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실제로 단석산의 정상에서 이곳을 보면 실감날 정도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오늘은 고도가 낮은 만큼 수레길이 계속 이어진다

 

                                                                                 

양계장을 지나고

 

하우스를 통과한다

 

삼거리에서 어디로 가든 다시 만나게 된다

 

사룡산을 안고 있는 오늘의 날머리가 철탑을 이어가며 보인다

 

애기재 : 계속 직진하기 쉬운 도로 - 전봇대 부분에서 산속으로 진입

서면의 시모골과 영천의 신촌을 연결하는 애기재. 이 고개를 넘어 올라서면 만불산이다.

 

 

진시사리탑이 있는 만불산

 

만불산(275m)(10:52)-

경북 영천 만불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부처님이 모셔진 사찰이다.

만불보전에는 원불로, 인등대탑에는 인등으로, 황동범종에는 만불로, 대불 앞에는 부처님동산으로 나투신 부처님들은 우리들을 부처님 나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고도가 낮아진 만큼 잡목이 이어지다 공장건물이 보이고

 

조금 진행하면 좌틀하기 쉬운 주의구간이다. 직진하면

 

공장건물이 나타나야 마루금을 이어갈 수 있다 - 만불사의 대불도 보이고

 

2번 철탑을 지나 나타나는 도로인 아화재 - 앞에 보이는 마을의 철탑으로 이어지는 다음 구간 마루금

 

아화고개(4번국도)   경주시 서면 아화리와 영천시 북안면 고지리로 이어지는 고개

水利施設이 좋지 않아 農事를 짓지 못 하였으면 夏節期에 草木이 枯死될 정도로 旱害가 甚하여 언덕에 불을 지르면 불이 꺼지지 않고 繼續탔다하여 阿火라 稱하였다 함  - 서면 홈피 -

아화阿火里마을는 예전에 마을 앞에 언덕이 있어 답답하다고 하여 아울(阿鬱)이라 하였고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하절기에 초목이 고사될 정도로 가뭄이 심하여 언덕에(阿) 불(火)을 지르면 계속 탓다고 하여 아화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대편 휴게소로 갈려면 굴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오늘의 날머리 애기지 휴게소 - 아화고개는 지경재로 불린다


지경재 (약100여m)

합천을 통해 신라 땅을 넘봤던 백제나 후백제가 대구를 거쳐 접근하기 가장 좋던 길목이다

팔공산 기슭 대구 해안동 일대서 벌어졌을 ‘동수대전’(桐藪大戰·927년)을 통해 고려군을 합천을 통해 신라 땅을 넘봤던 백제나 후백제가 대구를 거쳐 접근하기 가장 좋던 길목이다.

팔공산 기슭 대구 해안동 일대서 벌어졌을 ‘동수대전’(桐藪大戰·927년)을 통해 고려군을 초토화시켰던 후백제 견훤 군대가 서라벌을 유린하러 왕래했던 통로 또한 이것일 터이다.

한국전쟁 초기이던 1950년 9월에는 북한군도 지경재를 주요 통로로 주목했다

아군의 팔공기맥 최후 저지선을 뚫고 영천으로 침공해 다음 진격 목표를 경주로 택한 뒤의 일이다.

국운을 건 사투가 지경재 인접 임포리 일대서 펼쳐지고 재 남쪽 사룡산 지구가 치열한 전장이 된 연유가 이것이었다

 

 

 

오늘의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고

 

이렇게 하루를 마감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한번쯤 일상을 벗어나고픈 때가 있다

산길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살이와 왜 이렇게 닮은꼴이 많은지

이번 구간에서도 비록 조금은 편한 구간이라지만 역시 산길은 우리에게 

끝까지 편함을 주지 않음을 느낀 구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앞에 봉우리가 보일뿐인데 막상 뜬 구름잡는 심정으로 쉽게 다가오지 않는

어림없다 어림없어...  되뇌이게 했던 어림산을 넘으니

이젠 남사봉을 넘자 다시 어림산이 정맥길을 북서방향으로 안내하고...

이런 산줄기 덕분에 황수탕 약수라는 명물을 만들지 않았던가 생각도 해보지만

비록 몸은 힘들지만 산줄기가 주는 무언의 그림에 숨은 속뜻을 어림잡으며 걸었기에

마음만은 즐거웠던 낙동정맥길

역시 산은 낮으면 낮은대로 우리에게 큰 선물을 안겨 준 것이다

비록 만불사에 들리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뵈었던 아미타 대불의 뒷모습의 후광을 섬기며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모셔둔 만불사의 진시사리탑을 보면서

탑에 층마다 담긴 부처님의 큰 뜻을 되세겨 보며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본다

부처님이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듯이...

낙동정맥 13구간 함께 하신 산우님들 고생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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