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11 :  태화산 구간 -  가사령에서 블랫재                         

                                            

                                     

언제 갑오년  잎새달 열아흐래 흙날 ~ 스무날 해날 (무박)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낙동정맥 식구들

 

어딜 : 가사령 - 성법령삼거리 - 배실재 - 침곡산 - 태화산 ~한티재 - 블랫재

 

               산행거리  : 낙동정맥 21.7 km   접속거리 2.5 km     총거리 24.2 km (한돌 대장님 공지내용 )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1594에 있습니다

 

     주자료 : http://san.80port.net/nakdong/nak12.htm

                청송군, 포항시 홈피

 

 

물오른 나무마다 앞다투어 잎이 나온다는 잎새달 4월

이제 이는 옛말로 묻어 두어야 하나? 이미 5월 푸른달의 흉내를 내고 있으니

또 어찌 된 일인지 한국의 정형적인 파란 하늘을 요 며칠 사이 오전에는 볼 수가 없다

날마다 파란하늘로 우리 아침을 열었을 때는 감사함을 몰랐는데

이렇게 찌뿌듯하게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펄벅이 좋아 했던 한국의 파란하늘이 더욱 그리워지기만 하다

우리가 낙동을 가지 못한 사이 더욱 낙동이 그리워지듯이

역시 우리는 만나야 그리움이 행복으로 바뀌게 되니 어서 사당으로 달려가 보자

 

 

 

낙동정맥 11구간 등로

 

 

청송군의 속살을 따르던 10구간에서 해월봉 경계점으로 만난 포항시와 청송군의 경계를 따르다 

가사령 직전 완전히 청송땅과 이별을 하고 포항시로 들어선다

이번구간도 계속 포항시내를 따르다 545봉에서 영천시와 만나 영천시와 포항시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서 낙동 1기팀이 대형 알바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니 더욱 긴장을 더한다

 

 

 

가사령에 도착하여 단체사진을 남기고  강철님 작품

 

가사령佳士領

가사령(佳士嶺)은 죽장면 소재지가 있는 입암에서 상옥을 잇는 69번 도로가 관통하는 고개마루

가사천  하류인 입암서원 주변에는 노계 박인로선생의 시비와 노계선생이 명명한 입암28경이 산재해 있다

 

 

첫 삼각점봉인 599.6봉

 

거의 한시간만에 도착한 성법령 갈림봉인 삼각점이 있는 709.1봉

 

성법령(省法嶺)

921번 지방도로가 기북에서 상옥을 넘어서는 성법령(省法嶺)이다.

성법령은 북으로 상,하옥계곡을 거쳐 내려서는 오십천과 남으로 기계천을 일구어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수계를 가르는 주요 분기점이다.

 

 

 

성법리(省法里)

법을 반성하라는 뜻으로 이 지역 일원을 예부터 성법(省法)이라 통칭하였다

고개 아래의 마을 이름인 생알 또는 생알재에 대한 한자 표기인 성법리라 불리고 있다고도 한다

나라에 역모죄를 지은 사람들을 천민으로 강등시킨 후 이곳에 집단 수용해 무기류와 농기구 토기 등을 생산케했던 일명 '성법 부곡(部曲)'이 있던 곳.

'부곡'이란 신라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존재했던 일종의 집단 생산구역으로 당시 신분제도 상 천민이나 역모죄를 지은 사람들을

깊은 산골짜기 등에 수용했던 것을 일컫는다.  그만큼 이 마을이 옛날에는 오지 중의 오지였을 것이다 

 

 

 

오십천과 형상강의 물줄기를 공급해 주고 서쪽으로는 금호강이 열심히 낙동강으로 물을 나르고 있다

 

 

폐핼기장이 있는 마루금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788.2봉 직전의 사관령갈림봉

 

사관령(士官嶺,782.3m)

옛날 관리들이나 겨우 넘나들 수 있었다고 전해져 오는 곳이다. 봉우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서쪽 아래의 가사리(佳士里)며 가사령(佳士嶺), 사관령(士官嶺), 사감산(士甘山=침곡산)...왠 선비가 이렇게 많은지?

 

 

벌목지를 지나면서 바라본 성법령에서 갈라지는 덕동마을을 품고 있는 비학분맥의 비학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학산(飛鶴山)
비학산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과 기계면, 기북면의 경계에 소재한 산이다.

산의 형상이 학이 알을 품고 있다 하늘로 날아 오르는 형상이라 비학산이라 불리운다

 

 

독골마을 안부를 지나기 전에 바라본 독골마을

 

독골 . 독곡(陶谷)
큰마을에서 남동으로 벼슬재를 넘는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옛날 도요지(陶窯址)가 있던 곳이다

마을의 모습 또한 항아리 형국이라 하여 예부터 샘을 파지 못하는 마을이라 한다.

 

 

독골십자로를 지나(06:43) 침곡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오늘의 중산제 장소인 배실재

 

배실재(벼슬재(官嶺)(09:48)-

왼쪽 덕동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있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다. 덕동마을에는 철이 많이 났고 가사리에는 솥 생산을 많이 했다고 한다.

오덕리 덕동(德洞)마을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에 비해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유서 깊은 민속마을이다.

덕있는 인물들이 많다는 의미로 불려진 지명이다.

 

 

덕동문화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덕동문화마을'로 지정된 이 마을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43호로 지정된 용계정(龍溪亭),

경북 민속자료 제81호인 사우당(四友堂)고택, 민속자료 80호인 애은당(愛隱堂)고택 등 옛 정자와 고택이 즐비하다.

게다가 2006년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한 송계숲이 마을 앞 개울을 따라 펼쳐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경주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대표하는 조선시대 거유(巨儒)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의 4대 손인 이강이 양동마을에서 이곳으로 이주,

거처를 정하면서 대대로 여강 이씨의 집성촌이자 내력 있는 선비마을로 전해오고 있다.
마을 입구의 덕동민속전시관에는 수많은 종류의 고문서와 기록물, 용품 등이 전시돼 있기도 하다.

이 기록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기록사랑마을(제4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중산재를 위한 정성을 들인 음식도 준비하고

 

낙동정맥을 시작하고 산줄기따라 걷다 보니 가는 세월만큼에 비례하여 반을 넘기고

우리는 새로운 반쪽을 찾아 이렇게 중산제와 함께 부산 물온대까지 탈없는 일정을 빌어본다 

 

 

무사완주를 바라면서 중산제를 지켜보고 있다

 

낙동정맥을 시작하며 바람결에 들려왔던 선답자들의 무용담같은 애기들이 살아있고

우리나라 최대의 오지라는 낙동졍맥길을 지도 하나 들고 낫 들고 비박하면서

산경표에 나있는 마루금 하나라도 놓칠까 하면서 개척했을 초기 선답자들에 대한 경이로움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상 동쪽 변방의 산줄기가 만들어내는 오지의 질곡이 주는 신비감 

지금까지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용치 않았던 낙동정맥길에 대한 호기심

 

 

비록 오늘 함께 못했지만 마음으로 전해준 상큼님의 나물들 - 정말 고맙습니다

 

또 한뻠의 땅이라도 내땅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에 발디디고 살았을 우리 민초들에 대한 그리움

거기에 겨울이라는 악조건에서의 출발과 적은 인원이라는 한계를 가진

그야말로 모험에 가까운 출발에 이런 낙동정맥길이 주는 무언의 압박에 대한 두려움

그래도 가야할 길이 있기에 무작정 한돌대장님을 따라 나섰던 낙동정맥 식구들이 가졌던 신선함

 

 

중산제를 시작하고

 

 

그렇게 시작한 첫 발이 엊그제 같더니만 벌써 이자리에 서게됨을

우리 서로 축하해야 함을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련지?

아직 가슴 벅찬 환희를 느끼기에는 갈길이 멀지만 멀수록 희망의 끈은 더욱 가까이 있음을...

그래도 물온대에 가까워질 수록 남겨질 아쉬움 보다는 지금의 가장 왕성한 중간쯤 해서 맛보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더욱 더 가까이 있는 지금

아직도 갈 길이 많이 있음에 거는 기대에 부응하여 다가오고 있는 남은 반쪽이

우리에게 더 많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음에 행복하다 생각해 본다

 

 

뜻하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노루형님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중산제에 대한 푸르나 총무님의 배려가

첫 출발할 때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가슴뛰는 낙동정맥길이 아닌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다가 왔던 풋풋한 이름의 낙동정맥길이 아닌

날마다 새로움이 아닌 일상 반복되는 낙동정맥길이 되어 갈 수 있는 시기에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아 고맙기만 하다

 

 

푸짐한 아침식사

 

덧 없는 반복이 일상을 더욱 의미없는 하루를 만들어 주는데

낙동정맥길 마저 일상속의 한 부분이 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아타까움이 있었는데

중산제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삼수령에서 외쳤던 외침을 기억하며

남은 반쪽 끝나는 날 우리는 외칠 것이다

" 열심히 달려와서 나는 행복하다.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언제나 함께여서

 

 

삼각점이 있는 492.4봉

 

이제 비교적 동해에 가깝게 진행되던 낙동정맥이 내륙 깊숙히 서서히 들어가

낙동강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갈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강원도에서 출발하여 경상북도를 넘어 경상남도와의 경계를 따라 남은 반쪽을 시작하게 된다

옛날 부터 우리나라의 중심축 역활을 해왔고 또 현재까지 모든 방면에서 계속 되어 오고 있는

경상남도 땅으로 영남 알프스와 함께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침곡재

 

거기에 얽힌 사연들도 보따리 한아름 우리에게 풀어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해오던 낙동강도 이제 더욱 깊이를 더하며 더욱 넓어진 가슴으로 

풍성한 영남의 젖줄의 역활을 다하면서

우리가 걸었던 사연들까지 모아서 유유히 흘러 새로운 역사르 써내려가게 될 것이다

수많은 지류와 지류를 품고서 남해에서 본연의 임무를 다할 때까지 흘러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말없이 물온대를 향해 흘러 가듯이

 

 

침곡산에 오른다

 

침곡산(針谷山725.4m) 사감산(士甘山)

대동여지도에 사감산(士甘山)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폐헬기장과 무명무덤이 있을 뿐 사방이 수목으로 인해 조망이 막혀있는 편이다.

하지만 낙동정맥에선 그래도 번듯한 제 명패를 내 걸고 있는 산이다.

서쪽 아래 죽장쪽 입암에서 이 산을 향해 뚫린 좁고 긴 바늘같은 골짝일대를 침곡리(針谷里)라 이르고 이에 연유하여 붙여진 산명으로 유추해 본다.

 

 

철탑도 지나고

 

기북 용전저수지  막실(幕室)
약동산(藥東山)을 배경으로 하천 양쪽에 막실(幕室)과 신기(新基)라는 자연부락을 1914년 합하여 용기(龍基)라 하였다. 본면의 중심마을이다.

300여 년 전 단씨(段氏)가 지금의 막실못 부근에 정착을 할 때 초막을 짓고 살았다 하여 막실이라 불리었다한다.

100여 호의 큰 마을을 이루고 있다가 막실못이 막아지면서 현 위치로 옮겨 앉게 되었는데, 들 이름이 용전(龍田)이라 마을 이름도 이에 따라 막실과 용전을 혼용하여 불러왔다.

막실 북쪽에는 용치소(龍湫沼)가 있어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옛날 이 마을을 포용하던 막실 숲의 흔적이 200여 평에 남아 있다.

 

 

철탑 전에 본 용전저수지

 

돌무더기가 있는 601봉

 

감곡리(甘谷里)

좌측은 용기리 우측은 감곡리로 내려서는 옛 고개지만 인적이 끊긴지 오래인 듯하다.

한티재를 넘어 정자리에 들면서 북쪽으로 틔어진 골짜기에 못안, 중리(中里), 큰마을, 서리골과 같은 자연부락이 있으며,

감나무가 잘되는 마을이라 하여 감실, 감골이라고도 불러왔는데, 1914년 감곡리라 통칭하였다.

용전지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인 서당골재를 지나친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태화산 676.8봉

 

676.8봉 (산불감시초소) )768(지도: 태화산(太華山))

676.8봉은 죽장면, 기북면, 기계면이 맞닿는 삼면계 지점으로 오늘 구간에서는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감곡리 방향으로 멀리 10구간에서 만났던 구암지맥과 보현지맥의 큰산인 보현산이 조망된다

 

당겨보면

 

반대편 동해바다가 보이는 방향 - 기북면의 넓은 들판이 오랫만에 활기넘치는 인상을 준다

 

 

낙동정맥길을 걷다보면 보이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요

어쩌다 마주치는 산줄기에 기대어 오롯이 앉아 있는 마을들을 보면 왜 이리 반가운지

정말 사람냄새가 아닌 집 한채라고 그리워지는게 낙동정맥길이다

그래서 이곳 태화산에서 바라본 기북면의 농토가 왜이렇게 크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오지중의 오지라는 한계를 만들어낸 낙동정맥 산줄기도 떄로는 이렇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게 고맙기만 하다

여기에 다음 백두대간 5기팀의 정이 총무님까지 풍요로운 들녘에 한장의 그림을 남겨주시니 더욱 영광스럽고

만선의 기쁨이 항상 넘치는 대간길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연이 아무리 아름답고 고맙다고 해도 그래도 살아가는 것은 인간들이기에

이렇게 산줄기를 이어가다 보면 서로 어께를 마주치며 지하철에서 부대끼며 살아감이

그래서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낙동정맥길에서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산줄기 속에 이런 넓은 들판을 대한다는 것은

산줄기를 이어가는 우리와 같은 산꾼들만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조금 힘들더라도 현재의 나의 위치가 가장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당겨보면

 

 

이제 우리가 가야할 한티재가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있고 멀리 다음 구간에서 만나게 될 운주산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한티재 너머 낙동정맥1기팀이 대형알바를 했다는 601.1봉이 우측에 마루금처럼 자리하고 있다

 

벌목지를 지나면서 좌틀하여 내려오면 감압곡류가 만들어내는 지형을 닮은 멋진 풍경이 이어지고 - 먹골마을

 

먹재 (먹골. 벗골. 모래골. 내동(奈洞)
한티제를 오르는 국도변 골짜기에 위치하며, 뒷산에 절이 있을 때 벚나무가 많아 마을 이름도 이에 연유하는데,

원래는 길 건너 산록에 있는 300여 년생 느티나무 당산목 부근에서 시작된 마을이다. 동제는 단오절(음력 5월 5일)에 지낸다.

마을 뒷산 절골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이여송이 혈(穴)을 질렀다는 자리가 있다.

이 마을과 죽장면(竹長面) 정자리(亭子里)를 잇는 터널이 1992년 7월 31일에 준공되었다.

 


먹골재 넘어에 있는 감곡리 방향도 담아보고

 

꽃밭의 망중한

 

먹재

 

한티터널 위를 지나고

 

 

한참 벌목 작업중인 옛 한티

 

한티(大峴)

한티(큰고개 大峴)를 넘는 옛 길이 이 마을을 지났으며, 재 아래 마을이라 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마을어귀엔 고인돌들이 있다

 

 

계속 벌목지를 지나 올라본 545봉

 

포항시 죽장면, 기계면, 영천시 자양면이 만나는 산봉으로 낙동정맥이 포항시 경계종주구간과 합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북서방향으로 밋밋하게 이어가는 능선은 601.1봉을 거쳐 도일교로 이어지는 능선이므로 주의 해야 한다

마루금은 우틀하게 된다

 

 

끝이라 생각했는데.. 산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도일리 마을

 

오늘의 날머리 블랫재 - 오늘의 자랑스런 선두팀, 새로오신 분들이 모두들 건각들이시라...     강산애님 작품

 

불랫재(08:26)-불랫골.하래(下來),불래(佛來)
불랫재를 오르는 길목에 있었던 작은 마을인데 절터골에 나대(羅代)에 절이 있어 부처님이 오신다는 뜻[佛來]과,

재를 넘어가면 도적이나 범과 같은 야수의 피해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不來]과,

영천 쪽에서 불을 내면 강한 서풍을 타고 잘룩한 불랫재를 넘어 이 마을로 번져온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의 화령현(火嶺峴) 아래 있는 마을이다.

20여 년 전 이 재를 뚫어 종합제철로 보내는 송수관을 설치하니 마을 샘물이 말라 모두 떠나 버리고 지금은 인가가 없다.

 

 

오늘의 마지막 종착점 도일리 마을 - 강철님 작품

 

오늘의 뒷풀이 식당

 

순박한 주인장님의 배려로 맛있게 먹고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게 낙동정맥길, 중간을 넘어선 하루의 일정도 끝을 알린다

 

중간을 넘어섰다는 즐거움보다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더 앞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여정이 다 끝나고 나면 다시 올 수 없는 길이기에 하나라도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 앞섬 일 것이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완주하시겠다는 한돌 대장님의 뜻이 통했는지

이제 낙동 식구들도 많이(?) 늘어 인원 걱정 없이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행복하다

행복이 있으면 또 다른 그늘도 항상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새로 오신 산우님들의 산행실력이 출중하시다 보니 선두그룹과 후미와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처음 시작하면서 우리끼리 만족하며 걷다보니 새로 오신 분들과의 격차를 줄이는 게 쉽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잠시 한발 뒤로 물러서 생각해 보면 답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먼저 도착하신 선두그룹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도 박수로 맞이 해주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고

마음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는 후미그룹은 미안함에 기다려 주심에 고마움을 표하고

 

그렇게 힘들게 걸어 왔던 오늘 하루의 여정도 지도를 펼쳐 들고 보면 한 장에 다 녹아 있다

이처럼 하나로 줄이면 우리가 계속 이어가야할 반쪽이 즐거울 것이지만

여정을 계속 확대하다 보면 또 다른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이 숨겨져 있음을 생각하며

서로에 대한 배려로 남은 반쪽을 걷는다면 물온대에서 맞이하는 즐거움은 더욱 깊어 질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지도 한장에 추억을 모두 남겨 둘 수 있는 마음으로 걸었으면...

 

중산제에 찬조해주신 겨울애님, 칠갑산님, 주윤발님 감사합니다

물온대까지 무사 완주하시라는 격려로 알고 열심히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큼님의 오시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나물을 정성껏 준비해주신 마음 넘 고맙습니다

그리고 새로 함께 해주신 새로나님, 김영운님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계속 함께 해 주시고 계시는 마그마님, 강산애님, 청광님, 이태백님

계속 선두그룹을 형성하시면서 낙동팀의 기둥으로 앞서가심에 감사드립니다.

3450온누리 산악회에서 가장 바쁘신 정이총무님이 함께 해주신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백두대간에서도 뵙고 낙동길에서도 한번쯤?

 

한돌대장님과 푸르나 총무님

그리고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신 낙동정맥 식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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