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06 : 검마산 구간 -  덕재에서 삼승령까지                           

             

                                                                    

언제 갑오년  해오름달 열여드레 흙날 ~ 열아흐레 해날 (무박)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낙동정맥 식구들

 

어딜 : 덕재 ~ 갈미산 ~ 검마산 ~ 백암산 갈림봉 ~ 삼승령

 

         산행거리  : 낙동정맥 17.2km  접속 1.9km   총거리 19.1km (한돌 대장님 공지내용 )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1403 애 있습니다

 

 

새해야 밝았느냐 우리 함께 놀아보자 하고 올해는 어떻게라도 가는 세월과 동무하며 가려 했지만 

나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세월은 잘도 간다. 벌써 엊그제 같았던 새해맞이가 1월의 반을 넘어가고 있으니...

다시 낙동길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만 바쁜 나를 뒤돌아 볼 시간조차 허락치 않고 있지만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은 이미 나의 것은 아닐진데  다시 한번 함박웃음님의 특별치료를 받고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낙동정맥길을 떠나 본다.

 

 

 

낙동정맥 6구간 걸었던 등로

 

남하하던 낙동정맥이 숨고르기 하 듯 오기저수지를 빙돌아 가며 생명의 물을 모아주고

다시 떠나보낸 님 다시보자 북으로 인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백암산이란 명산을 빚어 동해 바라보기로 만들면서 다시 남진을 하는 구간이다.

5구간에서 울련산을 그리고 6구간에서 오십봉을 그리면 마음은 안들지만 태극문양이 나온다.

안동간고등어의 삶의 무게가 느꺼지는 구슬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울진군과의 짧은 만남이 시작되고

삼승바위가 있는 굴바위봉에서 울진군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영덕군이 드디어 영양군과 함께 어께를 나란히 하는 구간이다,

 

 

 

덕재에 도착하고 - 죽파재, 장파령이라고도 불린다

 

덕재는 영양 오기리 오리곡마을과 죽파리 장파마을을 연결하는 산간임도

장파는 조선조 때 김충업(金忠業)이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장군과 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죽파리  조선시대 짐꾼 장사들인 보부상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 을 개척하였는데 언덕에 대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의 본래 이름은 대두들이라고 한다.

 

 

 

단체사진 - 한돌님 작품

 

입산금지 푯말이 있는 곳으로 진행한다

 

임도를 지나면 바로 또 임도를 만나게 된다 - 우측으로 임도가 보인다

 

 

918.2봉(갈미산)에 헬기장이 있다

 

엊그제가 보름이었나?

 

수비면과 멀리 일월산 정상의 송신소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 사진에는 점으로 보인다 

 

임도 삼거리

 

 

검마산 이정표를 따른다

 

전망대가 있는 검마산

 

『검마산(劍磨山), 해발 1017.2미터,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          - 철제 안내판(1014봉) 내용 –

이 산은 백두대간의 13정맥중 낙동정맥에 속하며 산용(山容)이 하늘높이 솟아 거산(巨山)을 이루어 웅장하다

이 산은 산정이 높아 맑은 날에도 상봉은 흐리게 보이며 겨울철에는 백설이 산정을 덮어 백악(白岳)이 우뚝하게 솟은 모양이 거령(巨嶺)이다.

산의 중정(中頂) 이상은 흙갈색의 암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산정의 석골(石骨)이 하늘로 솟은 것이 흡사 검병(劍柄)을 빼어든 것 같다하여

검마산이라 한다(전설에는 삼국시대 장수들이 칼을 갈았다 하여 검마산이라고도 함).

 

 

동해에서 시작되는 여명

 

백암산 못지 않은 전망을 선사 하지만 무박산행의 비애? 아직 해가 뜨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게 없네

하지만 이렇게 새벽공기를 가르며 올라와 정상에서 맞이하는 여명의 익지않은 풋풋함은

어떻게 돈으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의 일상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려 하는가 보다

역동적인 일출의 과정속에 감춰진 이런 은은함이 이렇게 살아 있으니

그 누군들 이 자연속에 살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안타깝게도 현실만이 있을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도 사실 순간 포착이 도와 주지 않으면 쉽지 않다

이 짧은 만남은 언제나 밝음이 당연시 되는 자연의 순리에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니까..

 

 

검마산 휴양림 갈림봉

 

생태숲 갈림봉을 지나고 나타나는 검마산 주봉 - 전망이 없어 주봉이면서 대접을 못받나?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을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형태가 뾰족하고 칼을 닮았고, 산꼭대기가 뽀족하여 마치 칼을 빼어 든 것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검마산 전당대에서 본 여명의 여운이 남아 있는데 이제는 박명薄明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찾아온 검마산 주봉에서 본

백암산이 동해를 배경으로 어서 오라 우리를 동해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918봉이 앞에 보이고, 구슬령으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이다.

 

구슬령(네이버 지도에는 구주령九珠嶺) 600m 삼거리     

88번 국도가 지나가는 구슬령은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에 위치한 금장산의 7부능선 고개이다. 울진군 온정면에 잠시 접하게 된다.

구슬령 고갯길은 아흔아홉구비를 돌고돌아 울진에서 만나게 되는 첫 마을이란다.

대관령 고갯길은 실제로 아흔아홉구비가 못된다고 한다. 울진의 고갯길은 아흔아홉구비가 넘는다고 한다.

 

 

918봉에서 구슬령으로 이어지는 금장지맥 능선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하는 한국의 차마고도로 불린다는 구슬령 고갯길

보부상이나 지게꾼들이 발이 부르트도록 동해에서 잡은 무거운 해산물을 지고 이 고갯길을 걸어 넘어 갔을 것이다.

생선은 최대한 빨리 이동해야 생명인데 농촌 들녘에서 쓰는 지게는 너무 크다

그래서 산에서 날렵하게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짧게 한 지게가 바로 바지게 이다.

지금도 탑차에 냉동시설까지 가동하면서 생물을 나르는데 옛날에야 어떻게 방법이 있을 수 있었을까?

지금은 고등어가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동해에서 많이 줄었지만

옛날에 울진바다에서 잡은 고등어를 안동으로 운송하는 통로가 바로 구슬령 고갯길인데

장사꾼들이 고등어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구슬령에서 창자를 제거하고 뱃속에 소금을 한줌 넣어 팔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안동 간고등어이다.

바지게꾼의 땀방울과 바지게가 만들어낸 작품이며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길이었다.

 

 

 

금장지맥 분기봉인 918봉

 

울진 포구 소금 장시에서 내륙으로 왕래하는 길목은 통틀어 세 곳 이었다

남쪽으로는 온정에서 구슬령을 넘어 영양과 안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중로에는 원남 갈면에서 고초령(高草嶺)을 넘어서 영양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북으로는 낙동정맥 3구간에서 만났던던 흥부장에서 십이령을 넘어 내성과 영주로 넘어가는 길이 있었다

   구슬령 자료 : 국민일보 쿠키뉴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726504&cp=nv

 

 

금장지맥 (金藏枝脈)

남진하던 낙동정맥이 영양군 수비면 한티재, 추령을 지나 검마산휴양림을 감싸며 동진하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916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구주령으로 잠시 내려선 후 금장산을 지나 북진하다가 왕피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울진군 근남면 망양해수욕장에서

맥을 다하는 38.4km의 산줄기다. 금장지맥의 이름을 가져온 금장산(金藏山)은 금이 매장되어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왕피천의 근원인 금장지맥 분기봉인 918봉 이정표

 

왕피천(王避川)

유량이 풍부하여 연중 건천이 되지 않고 흐르는 울진군에서 유일한 하천이다.

북쪽으로는 천축산과 통고산에, 남쪽으로는 울련산과 금장산에, 동쪽으로는 대령산과 남수산에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자연보고이다.

왕피천이라 부르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935년경 신라 경순왕의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모후 송씨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왔다가 모후가 이곳에서 별세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이 있다.

둘째로 1361년 원나라 말기 홍건적이 남침했을 때 고려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신했다는 설이 있다.

 

 

산림의 보고인 소나무의 능름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한때 MTB코스로 각광을 받던 차단기가 있는 임도에서 식후경

 

삼각점이 있는 봉 - 779.8봉이란다

 

백암산 갈림길

 

백암산으로 향하고

 

백암산(白岩山,1003.7m)

 

백암산성터

신라시대에 축조된 석성이 있는데 신라시대 때 왕이 왜란을 피해 이산성에 피난하였다고 하며 또한 고려 공민왕도 적란을 피해 백암산의 백암산성에 피난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 북쪽계곡 선시골에는(일명 신선골) 용이 살았다는 늪을 비롯해 수십개의 늪과 담이 있고 아래능선에는 신라 때 싾은 고모산성, 할매산성, 조선 선조 때의 백암산성이 있다. 즉 천혜의 보고로 많은 전설이 전해지는 명산이다.      

가운데 저멀리 섬처럼 떠있는 일월산도 보이고

 

 

 

당겨보면

 

오르고 또 오르고 오른만큼 몸은 지쳐만 가는데.. 하지만

오른만큼 정상은 더 가까이 왔음을 희망을 가지고 싶다   

이만큼 왔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 멈출 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고 산오름길이다. 

그래서 나는 산을 찾는다. 산에서 길을 찾는 것이다

발목이 나의 길을 막지만 오늘 하루라는 삶속에서 마지막 희망은 언제고 존재하기에...

그러나 오름길이 긴만큼 내림길도 녹록치 않다. 가난이 되물림 되는 사회처럼

어쩌면 산길에서 얻는 고행같은 길이 어쩌면 똑 같은지...     그래도 세월은 흘러가지만

 

 

좌측에 오십봉 그 뒤로 세번째 희미하게 보이는  송정봉에서 왕릉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된다

 

                                                                                 

흰바위 하산길 방향 - 낙동정맥길 앞에 매봉산이 보이고, 좌측 멀리 풍차가 돌고 있는 맹동산 능선도 보인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거기에 걷기만 하고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목표를 두면 더욱 그러하다

1대간 9정맥 완주가 하나의 목표는 될지언정 내가 걸어야만 하는 이유는 아니다

내가 발목이 아프면서도 걷는 것은 아프다고 삶의 여정에서 용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암산의 어원이 된 흰바위를 뒤돌아 보고

 

살기위해 이 길을 걷고 이 고개를 넘었을 옛 사람들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역사이래 길은 걷기 이전에  우리들의 삶터이자 생활이었다.

인간이기에 걷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 만은 아니다. 누구나 힘들게 걷는다

그래서 바지게꾼들의 거친 숨소리가 옆에 있는 것 같은 생각으로 걷는다면 나름대로 위안을 얻는다

우리가 이 길을 걷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영양군 명소 안내판이 있는 임도

 

953봉 표지판이 있는 봉도 지나고

 

942봉에서 좌틀          좌측으로 매봉산이 보이지만...   빙 돌아가야 만날 수 있다.   

 

빙 돌아 도착한 매봉산(921봉) : 헬기장이 있고 수비면에서 영양읍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제는 굴바위봉이 멀리 보인다. 하지만 결코 가깝지 않다.

 

임도인 윗삼승령

 

경상북도 영양군의 영양읍 기산리에 있는 고개이다. 주변의 산 정상부를 연결하는 안부에 해당하나, 사람들이 왕래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해동지도』(영해)에 '삼승령(三升嶺)'으로, 『광여도』(영해)에 '삼승산(三僧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영양)에 기아리(其兒里, 지금의 기산동에 있는 자연마을) 우측에 '희리령(喜里嶺)'이 표시되어 있는데, 삼승령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1872년지방지도』(영해)에는 영해 창수면에서 영양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오현(烏峴, 지금의 옷재)을 거쳐 가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고, 삼승령은 생략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승령 [三僧嶺, Samseungnyeong]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2011.12, 국토지리정보원) 

 

 

굴바위봉에 가까워 질 수록 정상 좌측으로 보이는 바위가 특이하다.  삼승바위??  - 낙동 산우님 작품

 

三僧嶺은 스님들이 영양과 서울을 왕래할 때 항상 3명의 승려가 동행하여 넘었다 하여 붙여졌다고도 하고

윗삼승령과 아랫삼승령 사이 굴아우봉 좌측으로 큰 바위가 3개 있는데 마치 승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삼승바위라 했다.

747봉은 큰바위얼굴(옆면)을 한 형태로 영덕군 창수면 수리에서 바라보면 커다란 바위봉우리로 보인다.    

이곳에서 바다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이 진두목 원수목이를 거쳐 울진군과 영덕군을 경계지점으로 삼는 곳이다

 

 

굴바위봉

 

바위 아래에 굴이 있어서 옛날 신돌석장군이 항일운동 하던 시절에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영양군과 울진군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영덕군으로 접어들게 된다

주민들에  의하면 삼승바위는 삼 정승이 놀던 곶이기도 하고 바위에 바둑판과 장기판도 그려져 있으며

굴바위 속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굴바위는 사람이 15면 ~20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넓은 동굴이며 굴바위 속 샘은 사람 열명이 오면 열 명이 먹을 물이 나오고

이십명이 오면 이십명이 먹을 물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게 확인된 사실이라고도 한다.

 

 

칠보지맥 분기봉이기도 하다

 

칠보지맥은 신산경표에서는 이름을 붙이지 않은 지맥으로 낙동정맥 상의 삼승령 북쪽전방 약 0.6km 지점의 748.5봉에서

동쪽으로 잔두목이, 원수목이, 칠보산(810.2m), 응봉산(389.3m), 다름고개, 등대산(53m), 거처 동해로 떨어지는 28.2km의 거리계산을,

평해읍 남대천이 동해로 합수되는 지점으로 33.2km로 지적 변경하여 승격된 지맥이라고 한다 

 

 

오늘의 마지막 낙동정맥길인 아랫삼승령  임도 - 지무터재

 

지무터재

 

유래는 알 수 없고 영양읍 지무실 마을 유래에서 유추는 가능하다.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한 산림과 풀이 온 산을 덮고 있었고,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림들이 만든 곳이라고 한다

지무라 함은 한자이지만 본래는 우리말로 적은 게 아닌가 한다

풀숲을 지역에 따라서는 김 혹은 짐이라 하는 것을 보면 김-집의 걸림을 따라서 풍부한 임산자원이 있는 마을이란 속내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무의 한자대로 풀이하더라도 아름다운 풀이 무성하다는 멋들어진 이름임을 엿봇 수 있음은 이러한 풀이의 가능성을 더해 주고 있다.

영양군 영양읍 지무실마을 유래 - 영양군

 

 

이제 임도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며 하산이 시작된다

 

송하갈림길에서 송하방향으로 좌틀

 

오늘의 마지막 지점인 저시마을

 

기산리 저시마을은 KBS에서 강호동의 1박 2일팀이 쵤영했다고 한다..                                                                                                                   

이 곳은 골짜기가 깊으며 땅으로서 거름지지 않으므로 곡식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 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고기환(49) 제보)          

글자로 보면 지대가 낮고 골이 깊어서 붙인 이름이 아닌가 한다 (영양읍)

기산(리)마을 주위에 산이 기이하고 산세가 험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는데 이곳은 약초와 산열매가 흔하다고 한다.   

 

 

현지주민의 트럭으로 이동 기다리던 버스로 하루의 일정도 끝을 알린다

 

마음만 앞서가지 말자고 하면서도 오직 산을 찾아 떠나고 또 떠나는 것이 목표인양

그렇게 산은 나의 편에서 언제나 있어주고 당연히 떠나면 반겨줄 것이라 생각하며 떠났던 산행길

지난 시절들을 돌이켜보면 이제는 조금은 세월 저편의 남의 얘기처럼 낯설게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저번 산행보다 오히려 더 상태가 나빠지는 발목을 보면서...

그렇다고 내가 떠남을 멈추거나 떠남을 포기할 수도 없는 가야할 길이 있고

오랫동안 걸으면서 느낀 행복감이 지금도 눈에 보이는 듯 먼저 앞서가고

떠나기전 설렘을 맛보지 못한다는 것이 그저 두러울뿐...

마침 주어진 4주의 여유를 과연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련지

시간의 넓이가 주는 길만큼 마음의 여유까지 넓어지기를 바라면서

 

조금 늦어진 산행기

함께한 추억의 길, 다시 한번 함께 걸었다 생각하면 또 다른 즐거움은 아닐련지요

우리에게 갈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 한번 생각하고 생각해 본 몇일 이었습니다.

 

함께한 낙동정맥길

낙동정맥 식구님들 고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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