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02 :  백병산 구간 -   통리재에서 석개재까지                            

              

                                                                   

언제 : 계사년 13년  미틈달 열엿새 흑날 ~ 열이레 해날 (무박)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낙동정맥 식구들

 

어딜 : 통리재 ~ 백병산~토산령~구랄산~면산~석개재

 

         산행거리  : 낙동정맥 17km  접속 0km   총거리 17km (한돌 대장님 공지내용 )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1298 에 있습니다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는 가을

전국을 단풍축제의 한마당으로 한 마음을 이루게 하더니

너무 화려함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께우쳐 주 듯 소리없이 이제 끝자락의 여운만 남기고 있다.

만추의 즐거움을 느긋하게 즐기라는 자연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찾아 낙동정맥 2번째 구간을 떠나 본다.

 

 

 

낙동정맥 2구간 등로..   통리재에서 석개재까지

 

 

 

동해를 벗삼아 걷게 되는 낙동정맥

그만큼 다른 정맥길과 달리 마루금이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루러지는 구간이 많다.

이 또한 다른 정맥길에서 느낄 수 없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아닐련지?

삼척과 태백, 그리고 봉화땅이 함께 어우러지는 낙동정맥 2구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통리재에 도착하고

 

백병산과 우보산 연화산 등 해발 1,000m대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마을 형상이 구유통처럼 생겨 통리(桶里)라고 부른다는 등의 지명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통리 오일장으로 유명한 통리는 태백시 동쪽 끝자락으로 삼척 경계지역이다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동해안을 오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고, 석탄산업의 발달은 철도라는 산업의 발달로 이어지며

한때의 환경과는 상관없는 개발의 최첨단지역으로 영광을 누렸지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 주는 고개이다.

 

 

바로 우측에 보이는 산으로 진입 2구간은 시작되고

 

 

삼각점은 아닌것 같고  지적측량을 위한 기준점으로, 이미 설치된 삼각점만으로는 세부측량시행시

그 수량이 불충분하여 새로히 측설하는 보조기준점으로 쓰기 위해 설치한 圖根點(도근점)을 만나고

 

거의 두시간 걸려 도착한 면안등재 - 아무리 봐도 고개는 아닌것 같은데? 유래도 알 수 없다.

 

비가 내린 끝이라지만, 보름달도 보지 못했는데 어느새 새벽은 다가와 일출의 기회도 주지않는다

 

바로 헬기장이 있는 고비고사리가 많았다던 고비덕재 - 강철님

 

내륙과 해안의 경계라면 당연 소금이나 해산물 등이 오갔을 터, 대개는 내륙사람들이 해안으로 미역과 소금을 구하러 가거나

해산물이 고개를 넘어 내륙으로 들어 왔을 것이지만 고비덕재는 좀 다르다

해안에 가까운 동활리 사람들이 미역 소금등을 구하기 위하여 역으로 통리로 넘어 다니던 고개라는 점이다.

동활리는 행정구역상 바다에 가까울 뿐이지 산골중의 산골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눈으로 바뀐 강원도의 힘을 느끼게 하는 첫눈의 산죽구간을 지나면

 

정자가 있는 백병산 갈림길이다 - 니고나오님 작품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태백땅에 낙동정맥 상 3개의 백병산중 최고봉인1259.3m의 백병산白屛山

 

백산역의 동북쪽에 있는 백병산(白屛山)을 옛날에는 백산(白山)이라 하였으니《척주지》와 《여지도서》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 백산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라 백산골(白山洞)이라 하였다.

자연 촌락인 원터[院址], 옻다물[漆墻], 절골[寺谷]의 3개 마을을 합쳐 백산(白山 또는 柏山)이라 하였으며

태백 시의 17개 법정동 가운데 하나인데 현재는 행정동인 철암동에 속해 있다.

 

 

조화? 부조화? 촛대봉을 배경으로...  주유천하님을 배경으로?

 

한 때 사람들이 외자를 쓰면 외로워진다는 속설이 있어 그 외자 옆에 다른 글자를 붙여 쓰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백(白)'은 '백(柏)'으로, '동(東)'은 '동(棟)'으로, '주(主)'는 '주(柱)'로, '우(右)'는 '우(佑)' 또는 '우(祐)' 등으로 썼다.

백산의 '백(白)'자도 그런 이유에서 '백(柏)'(잣백)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뒤 옻다물 안쪽에 절이 있어 절골로 부르게 되었고 그말이 와전되어 적골에서 젖골로 젖골이 혹시 잣골이 아닌가 하여 '백산(白山)' 대신 '백산(柏山)'으로 표기 한 것 같다.

지금도 백산에 사는 사람들은 백병산을 흰백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백병산이 백산이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 백산 아래에 있다고 백산골 즉 백산리가 된 것이다.

 

 

언제나 겨울은 한발 앞서 다가오고 한발 뒤로 물러나 물러나는 강원도의 겨울 사랑

 

아직도 남녘은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오는 겨울보다 가는 가을을 만끽하는 사이

이 곳 강원도의 힘은 겨울 재촉하는 비를 눈으로 바꾸어 버렸다.

모든 것을 일거에 잠재워 버리는 한파 한 발 앞선 가을을 죽이는 통과의례

겨울은 이미 시작됐다는 최후 통첩인 것을...

자연의 순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순응하며 산다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해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가을의 미련을 품고 떠난 오늘 이 여정에서 만난 첫눈에서 길을 얻다

 

 

큰재

 

 

육백지맥 갈림봉

 

육백지맥 갈림봉

육백지맥(六百枝脈)은 낙동정맥 백병산에서 동쪽으로 약 1km쯤 되는 1074봉에서 낙동정맥을 분기하여 좌측으로 오십천을 끼고

신리고개, 육백산, 핏대봉, 삿갓봉, 안개산, 들입재.선구산, 근산, 석탄산을 일으키고 오십천이 동해 바다와 만나기 직전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53km의 산줄기로 삼척시 최대의 오지지역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첫구간부터 낙동정맥의 동쪽사면으로 흘러 들어 갔던 오십천은 끝나고 가곡천이 낙동정맥을 만난다.

 

五十川

강원도 삼척시와 태백시 경계인 백병산(白屛山, 1,259m)에서 발원하여 동해안으로 흐르는 하천.

오십천의 길이는 48.8㎞이고 유역면적은 294㎢이다.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도계읍 심포리에서 북북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며 삼척시 마평동에서 동쪽으로 꺾여 동해에 이른다.

오십천의 주요 지류하천은 무릉천을 포함하여 15개 하천이다.

하천의 곡류가 매우 심한데, 오십천이라는 명칭도 이 하천의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을 오십번 정도 건너야 한다는 데서 붙여진 것이다.

 

 

오랫만에 무박산행이라 아침이 낯설기만 하다

 

망해루 전망대 정자가 있는 봉이 보이고

 

처음으로 왜 백병산인지 백병산 병풍바위가 햇살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팔각정이 있는 망해루 직전 덕거리봉

 

덕거리봉 1,040봉 

남쪽으로 면산, 동쪽으로 토산령, 북쪽으로는 백병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휴양림 주변에 솟아 있는 제일 높은 무명봉이다.

백병산 ~ 토산령 사이에 솟아 있는 무명봉을 휴양림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걸맞는 이름을 찾다보니 무명봉에서 휴양림을 잇는 능선의 옛 이름이 덕거리장이었다.

 

 

망해루 정자도 보이고

 

정자 바로 밑에 이정표가 있는 한 개고디

 

한개고디 

백산에서 삼척시 동활리로 넘어가는 험한 고개이다.

옛날 백산에 살던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고개가 어찌나 높고 가파르고 험한지 시댁에 줄 떡함지를 이고가던 사람이 고개에서 구르자

온통 떡이 고개 아래로 굴러가 고 딱 한 개가 남았다고 해서 한개고디라 한다. 고디는 높고 가파른 고개를 이르는 말이다.

 

 

정자 뒤로 나있는 잘 다듬어진 태백고원 자연휴양림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늦어진 진행, 원인제공을 한 띠지

 

참으로 말씀은 고상하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게 하는 정감이 가고 꼭 가고싶은 내용인데

낙동정맥길이 아니면 일반띠지를 붙이던지, 낙동정맥 글자를 없에든지 할 것이지

철암사는 사람들이야 철암두멧길을 알겠지만 타지 먼데서 온 우리들이야 낙도정맥길로 착각하기 좋은 내용이다.

낙동정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한 양반이 착각하여 휴양림으로 가는 길도 낙동정맥으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야지...

혹여 우리 산우님들이라도 정맥이나 기맥길이 아니면 정맥띠지는 붙이지 마시길...

 

 

동점,석포 가는 이정표도 만나고

 

우리가 뒷풀이 후 서울로 돌아갈때 봤던 31번 국도 옆에 있는 동점역이다

 

낙동강과 동점역, 그리고 뒷푸리 후 내려오다 동점역 직전에 보았던 구문소

황지못에서 흘러 여기까지 내려오는 낙동강과 함께 지금은 거의 서지 않는 간이역인 동점역

그리고 동점역 직전 만났던 구문소, 예상보다 큰 바위 속으로 흘러나오는 물길을 보면서 우리는 비록 차안에서 봤지만...환호하지 않았던가

태백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영동선은 철암천을 거쳐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가며 이어져, 낙동강 기행을 겸한 기차여행코스로 으뜸이다.
낙동강과 철길이야기는 담 3구간 승부산(승부역)에서...

  http://blog.daum.net/kmhcshh/40  초보산꾼 이야기 참조

 

 

 

이제 구랄산과 면산이 차례로 보이기 시작한다

 

                                                                                 

토산령

 

토산령(兎山嶺)

삼척시 가곡면 땜골과 태백시 철암면 매상골로 연결되는 해발1,000m 옛 고개로

현재는 잡목으로 우거져 땜골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큰 길이었다. 2구간 중 유일한 탈출로이다.

「兎」는「卯」와 같은 뜻으로 12지(十二支)에서 동쪽을 의미한다. 「兎山」은 「卯山」이니 「東山」이요 「兎山嶺」은 동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철암이나 태백(上長面)에서 동쪽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어떤 지도에 「土山」으로 표기된 것이 있으나 잘 못 기재된 것이다

 

 

이런 유래도 있었다고  - 푸르나 총무님도 토끼?

 

구랄산

 

 

이제 더욱 가까워진 면산이지만 모두 가장 힘들었다고...

 

우리 낙동정맥 식구들은 왜 망해루에서 저 휴양림으로 갈려고 했을까요? 참으로 그것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불던 바람은 그칠줄 모르고 이렇게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어느새 다른 곳보다 빨리 찾아온 강원도의 찬바람이 밤에 내리던 습기까지 더해져

나뭇가지에 먼저 찬바람의 힘을 자랑하듯 이 나무 저 나무 가리지 않고 한차례 휩쓸며 찬공기를 휙 뿌리고 지나가면

온몸으로 바람에 저항하던 나뭇가지들에게서 전해지는 몸부림의 소리는 그대로 낙엽에 전해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 "바삭" "바삭" 마냥 웃고 떠들며 즐기던 낙엽들이 하나 둘 날아다니고
덩달아 산죽까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오는 겨울을 실감하는 듯 하다.

걷는 것 자체가 이미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강원도 겨울의 시작을 이런 것이다 일깨워주는 듯 하다.

마지막 남은 잎새마저 떨어지는 아픔보다 추위에 한 올씩 벗겨져 가는 숲의 황량함이 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온 대지의 이 슬픔이 설원의 세계로 덮여 사라질 때 까지는…

 

 

구랄산을 배경으로 바람속을 뚫고 저질체력을 오늘도 외치시면서 한발 두발... 대장님 홧팅

 

 

망해루를 지났으니 동해가 보일만도 한데... 혹시 여기가 - 동해를 당겨본 결과. 혹 이 건물 아시는 분

 

이구동성으로 넘 힘들게 올랐다는 면산 - 언제나 그렇게 속았으면서, 오늘만 속았나? 힘네시죠! 낙동정맥 식구님들

 

면산은 낙동정맥 2구간 종주코스로 경북 봉화와 경계를 이루는 태백의끝자락이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면산(綿山)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마을주민들은 화전을 일궈  난을 면했다 하여 면산(免山)이라고 부른다.

정상 부분이 마루처럼 평평해 두리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2010.4.24)

2006년 표범이 발견됐다고 보도된 사연을 안고 있는 면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표범이 산다면 비무장지대외에는 면산일 것이다라고 한다.

 

 

태백, 삼척, 봉화군의 삼시봉이기도 하다 - 이제 경북의 억지춘양의 봉화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백병산 이후 석개재가 가까워 오면서 오랫만에 마을이 보이는데 - 지도상 너뱅이 마을인 듯

 

2구간을 걸으면서 아무리 눈길을 돌려봐도 첩첩산중에 깊은 골짜기 뿐이었다.

그래서 난도 피해갔다는 면산이 이해되고, 어렵게 나 있는 철도가 유일한 육로 수단일 수 밖에 없는 태백땅에 있는 낙동정맥길이 정겹다

그러나 도로를 만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도로는 고개와 같이 소통의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석개재가 가까워 지면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석개재 직전봉인 삼각점봉 1004.3봉

 

도로가 보이고 - 石開고개라고 하더니 정말이구나

 

석개재

석개(石開)재(강원 삼척,경북 봉화 경계) : “돌문이 열린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석개는 석포의 옛 이름으로써 고갯마루 주변에 돌이 많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많은 돌들로 이루어진 산들로 막혀있는 고갯마루에 돌문이 열리면 이곳에 1만 가구 이상이 살게 될 것이다.“ 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열렸는데 지금 몇이나 살고 있을까?  역시 인공으로 백번을 열어도 상관없는겨?

 

 

석개재 휴식공간

 

조금 진행이 늦어진 시간, 태백시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고

 

힘든 산행, 즐거운 마음으로 들른 뒷풀이, 맛이없으면 안되지

 

이렇게 오늘의 산행은 끝이나고, 맛있는 생선조림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 하루도 굽이굽이 돌다 보니 항상 정맥길에서 하는 말 또 속았구나...  세상살이에 속고 산에까지 와서 속고

세상살이야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산에서 까지 속임을 당하며 사는 인생

앞에 보이는 봉 하나만을 보고 달려가 목적을 이루면 좋겠지만 빠른만큼 추억의 무게는 줄어드는 것이다.

면산에 오를 때 모두들 속으면서 몇 고개를 더 넘어야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넘은 만큼 이 곳 가을 바람만큼이나 풍성한 추억의 여운를 남겨 놓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몇 봉우리를 더 넘어가다 보면 좀 더디고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에 더욱 소중함을 느끼게 했던 하루였음을 생각해 본다.

물론 다음 구간에서도 또 속으면서 걸어가고, 또 속았다고 투덜댈 것이지만...

인생에 정답이 없듯 산길에도 정답은 없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는 것은 이쪽 저쪽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굽은 길에 있음을 남기고 싶다.

 

갈수록 쉽지 많은 않은 일정에 거리에 인원수에...

이리 저리 치이며 굴러가는 낙동정맥 2기 식구들의 여정도

오늘 면산에서 느낀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임에 틀림 없지만

오늘처럼 슬기롭게 넘기다 보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완주의 기쁨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오늘 고생하신 낙동정맥 식구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수소하셨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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