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03 : 삿갓봉 구간 -  석개재에서 답운치까지                            

                                                                                 

 

언제 : 계사년  미틈달 서른하루 흑날 ~ 매듭달 하루 해날 (무박)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낙동정맥 식구들

 

어딜 : 석개재 ~ 삿갓봉 ~ 진조산 ~ 굴전고개 ~ 답운치

         산행거리  : 낙동정맥 24km  접속 0km   총거리 24km (한돌 대장님 공지내용 )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1372 에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려는지 서울 바닥에는 마지막 가을비를 내려주더니

겨울은 산으로부터 내려온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인지 북한산엔 하얀 선물을 안겨준다.

또한 저 멀리 철 모르는 강원도에서는 겨울의 눈폭탄 소식을 전해준다.

싫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드는 첫 눈길산행

지난 겨울 또 더 지난 겨울에도...  겨울산행은 언제나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여름지나 가을지나 겨울이 오면 또 우리는 과거에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길을 나선다.

12월에 들어선 첫날,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겨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12월이므로

완연한 겨울이라 여기며 경상북도 땅이지만 강원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낙동 3차의 길을 떠나 본다.

 

 

 

낙동정맥 3구간 등로

 

 

봉화와 삼척을 사이에 두고 줄타기 하던 낙동정맥은 이제 삼척과 이별이자 강원도와의 이별을 고하고

영동선 철도가 만들어 질 때 자유당 국회의원의 억지로 춘양면에서 불쑥 튀어나오게 만들어 버린

억지춘양의 고장 봉화도 낙동강과 영동선 철도와 함께 멀리 흘려보내고

자연과 산림의 대명사인 강원도와 오지와 은둔의 고장인 경북 북부를 합쳐 놓은 곳인 울진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석개재

 

석개재

석개(石開)재(강원 삼척,경북 봉화 경계) : “돌문이 열린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석개는 석포의 옛 이름으로써 고갯마루 주변에 돌이 많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많은 돌들로 이루어진 산들로 막혀있는 고갯마루에 돌문이 열리면 이곳에 1만 가구 이상이 살게 될 것이다.“ 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봉화군 석포땅은 석포의 옛 이름인 석개(石開). 온통 암석과 계천(溪川)으로 형성된 까닭으로 석포(石浦), 석계(石溪)라 불리어지고 석개(石開)는 사방이 돌로 쌓인 명당이 있어 그 돌문이 열리면 1만 가구이상 살게 될거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절개지로 돌출된 바위들이 석포란 지명을 대변해 주고 있다

 

 

길고도 긴 3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단체사진도 남기고 - 한돌대장님 작품

 

산죽구간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같은 산죽구간이라도 3구간의 산죽은 크기가 눈아래 만큼만 자라 있어 걷는데는 그리 지장이 없었다.

한강기맥에서 밟아 봤던 산죽은 발등만큼만 자라있어 오희려 산길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발의 감각으로 걸어야만 했었고

호남정맥에서 선각산과 덕태산 구간에서 봤던 산죽은 눈높이 만큼 자라 있어 거의 40분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걸었던 생각들

같은 산죽이라도 이렇게 크기와 계절에 따라 다른 환경을 준다.

 

 

1121봉인 북도봉

 

우리가 정맥이나 지맥을 하면서 지도에나 고문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산이름들을 자주 본다.

역시 이 북도봉도 도대채 어떻게 이름이 붙여졌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무명봉으로 남겨두던지 아니면 승부산처럼 동네이름을 붙이든지...

산길을 걷는 우리 산꾼들의 산이 아니고 이 산에 기대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산이기 때문이다.

낙동정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름들은 산에 관계되는 모잡지사에서 붙였다고 한다.

봉의 이름이 없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묘봉 직전 안부인 넓은들의 뜻을 가진 너뱅이(마을)안부-넓은 들(廣坪)

 

묘봉 갈림길

 

덕풍계곡 반대 방향인 묘봉 삼각점이 있는 묘봉

 

묘봉1167.8(민둥산)

풍곡리 쪽의 문지골에 고양이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문지골 막장에 고양이 형상의 바위가 있어 묘(猫)봉으로 불리 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덕풍계곡으로 이어진다 - 용인등봉(1124) - 삼림경계구역 : 우측 적송군락   좌측 참나무 군락

 

용인등봉1124

강원도와 경북도계로 삼척 덕풍계곡에서 올라오는 개족발봉, 용인등(770)이 부근에 있으며 착한(어진)용 같다는 봉우리 기인.

옛날에  이곳에 용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사를 할 때 목안(木雁(기러기안))을 만들어 뭍어두고 갔는데

그 뒤 나무 기러기는 소리개가 되어 날아 갔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龍仁登)이라고 불리게 되어다는 전설...

용인등봉의 시발점인 산봉우리는 515m봉으로 흔히 개족발봉으로 통하는데  이는 산세가 마치 수캐의 생식기처럼 보인다 하여 개족발봉이라 부르며,  한자로 구신암(拘腎岩) 이라고도 한다.

 

 

997m인 경원봉 - 삼각점

 

문지골 6폭포 갈림길이란 표지 바닥에 놓여 있다

 

문지골제6폭포 갈림골

낙동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줄미등봉 능선과 용인등봉 능선사이의 골짜기가 문지골로 그 길이가 약 6km 정도에 달하여 '음지골' 또는 '개족골'로도 부른다.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 경계의 응봉산과 줄미등봉 능선 사이의 골짜기가 바로  '용소골'이며, 용인등봉 능선 서쪽의 골짜기는 '굉이골'이다.   '용소골'과  '문지골' 그리고 '굉이골'이 합류하여 덕풍계곡을 이루며 하류의 풍곡리에서 동활계곡과 합쳐지며 가곡천이 되어 강원도 최남단 원덕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간다.

 

 

어느새 일출은 시작되고

 

즐거운 식사가 기다리고 있는 삿갓재 임도

 

임도에서 조금만 오르면 삿갓봉

 

삿갓봉

네이버 지도에서 삿갓봉을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 전체 23개가 보인다.

강원도 삼척시, 경상북도 울진군, 경북 봉화군 경계 지점으로 220도 방향으로 1136봉이 잘 보인다. 강원도와의 이별이다

먼 옛날에 큰 홍수로 침수되어 삿갓 모양만큼 남겨두고 인근 모두가 물에 잠겼다 하여 삿갓봉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산의 모양이 삿갓을 닮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안일지맥(아구지맥) 분기점이기도 하다 - 아구산 직전에 있는 안일왕산에서 따온 지맥 이름인 듯

 

삿갓봉는 아구지맥이 갈라지는 갈림봉으로 의미있는 봉우리이다. 아구지맥은 낙동정맥 삿갓봉에서 분기하여 물고기 입을 닮은 아구산(652.9m)을 일으키고 울진 앞바다 비래봉산(20.0m)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1km의 산줄기다  가곡천과 불영천을 만든다

 

불영천

통고산~진조산~백병산에 이르는 낙동정맥 명산에서 발원, 동해로 흐르는 길이 약 40㎞의 소하천인 불영천이 만들어낸 계곡이다.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까지 15㎞에 이르는 구간은 1979년에 이미 명승 제6호로 지정됐다.

대동여지도에도 나온다. 대동여지도는 이곳에 비단 금(錦)자를 달아 금계천(錦溪川)이라 했다

 

 

寶富川 보부천

보부천은 낙동정맥 삿갓봉[1,119.1m]에서 발원하여 아구산[652.9m]을 지나고 서면 하원리 서하교에서 광천과 만나는 하천이다. 도상거리 약 31㎞ 산줄기인 아구지맥과 그 주변으로 문지골, 용소골, 구수골, 십이령골 등 비경의 오지 계곡들과 연계하면서 흐르는 하천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소광리 삿갓봉에서 발원하여 남류하여 하원리에서 광천에 합류하는 하천 보부리마을을 지나는 하천이어서 보부천이라 하였다.

 

보부리마을은 솔평지에서 동방 약 2㎞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열국시대 안일왕이 울진군 파조국을 병합하여 안일왕산성을 쌓고 거진하였다는 곳이다. 

왕의 보위가 있었다는 전래와 금은보화가 난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산성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처음으로 보이는 금강소나무 한그루

 

이제 본격적으로 임도와 마루금과의 밀월관계가 시작된다 - 골라 먹는 재미를 산에서도?

 

임도를 따르다 본 백병산이 길게 누워 있다.

 

소광리, 전곡리,석포 이정표가 있는 임도 삼거리이다 - 제일의 금강소나무지대로 입산금지 구역이라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이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단연 소나무다.

몇 해 전 한 여론조사 기관이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나무에 대해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43.8%가 소나무를 꼽았다.

조선시대 땐 전국 곳곳에 이 금강송의 벌목을 금하는 봉산(封山) 표석을 설치했는데, 부산의 장산에도 이 표석이 남아 있다.

경남도가 원형 복원한 3층 구조의 거북선에는 금강송이 아닌 미국산 수입 소나무가 사용됐던 것이 밝혀져

'짝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불영계곡과 통고산이 있는 울진군 서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금강송군락지로 지금도 소광리에는 함부로 나무벌채를 금지하기 위해 봉산으로 정한 "황장봉계표석"이 경북 지정문화재 자료로 남아있고 한때 학계의 정밀조사가 있었던 곳이다

골포천이 관통해 흐르는 울진 전곡리 일대는 소광리에 버금가는 금강송 밀집지역이다. 낙동정맥을 사이에 두고 있는 가까운 산지라 식생 분포가 비슷하다. 숲에 들어서면 하늘을 향해 곧게 솟구친 붉은빛 소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백병산 갈림길 직전 좌측으로 우리가 가야할 능선이 암릉을 자랑하며 솟아 있으나 마루금은 옆으로 나 있다

 

백병산 오미산 갈림봉

 

봉화군 석포리, 울진서면소광리, 울진 서면 전곡리 3개리 갈림봉으로 울진땅으로 들어간다

 

 

암릉이 꽃봉우리를 이고 있는 1136봉을 지나면 아주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지나 폐핼기장이 있는 봉을 우회한다

 

934.5봉인 승부산에 도착한다

 

승부리마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는 갇힌 마을이다. 마을 뒤는 태백산 준령이 길을 가리고 마을 앞은 반야계곡과 백천계곡, 태백산 황지에서 내려오는

황지천과 천암천이 어우러진 낙동강 상류가 길을 막는다. 오직 열린 길이라곤 마을 앞을 지나는 철도뿐이다. 

승부리의 초입은 학바위라는 커다란 바위절벽의 절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학바위를 지나 왼편으로 꺾어들어가 만나는 곳이 결둔이다.

옛날 모든 전쟁이 이곳에서 승부가 갈렸다 해서 승부라는 마을 이름이 붙었다. 현재 여섯 가구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승부리의 첫 번째 마을인 결둔은 과거 군이 주둔하여 집결한 장소였다고 한다.

 

 

 

2개의 폐핼기장을 지나며 좌측으로 소광리 마을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진조산이기를 바라면서 올랐던 840봉이 보이지만... 우회로도 있다

 

헬기장이 있는 한나무재 직전 840봉

 

 

이곳이 진조산이기를 바라면서 올랐던 840봉이 보이지만... 우회로도 있다

 

헬기장이 있는 한나무재 직전 840봉

 

임도가 나오면서 십이령고개의 하나인 한나무재이다

한나무재839m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리, 작은 늪과 재가 있다하여 ‘적은넓재’라고도 하고 ‘전나무진’이라고도 부른다

서쪽으로는 십이령 중의 하나인 넓재가 있고 동쪽으로는 넓은 밭이 있는 평전마을이 있다.

쌍전리는 천연기념물 408호인 "쌍전리 산돌배나무"와 고랭지 배추, 약초 재배지로 이름난 산촌이다.
특히 낙동강 상류인 전내(前川)를 끼고 "넙재와 한나무재"로 이어지는 산길은 동해 연안 울진 두천마을과

영남 내륙인 봉화 소천마을을 잇는 "소금과 미역의 길"인 "십이령바지게길"의 중간 지점이다

 

 

 

십이령

울진 죽변항에서 내륙 봉화까지 해산물을 곡물과 잡화 등으로 물물교환 하던 보부상들이 십이령을 넘나들며 부르던 노래와 놀이인 십이령 바지개놀이기 생겨날 정도로 많은 애환을 가진 열두고개이다.

울진 흥부-쇠치재-세고개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저진터재-새넓재[적은넓재·한나무재]-큰넓재-고채비재-맷재-배나들재-노릇재-소천까지의 12고개의 마루를 지칭한다

십이령길은 김주영 작가의 <객주>로 더 유명해진 고갯길이기도 하다.

 

 

조금씩 무릎에 이상을 호소하던 삼수령의 고전분투는 시작되고... 알바까지... 능선을 치고 올라온 850봉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 삼수령님, 그래도 이때까지는 그래도 행복했다 - 폐헬기장

 

봉분2기가 자리하고 있는 진조산眞鳥山

 

무심하게 해는 기다릴 줄 모르고 자꾸만 넘어가고 - 그래도 낭만은 낭만이다

 

이제는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니야 ^^

 

산을 걷다 보면 누구나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한번쯤은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둘이서, 또 여럿이서 함께하면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동행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사회에서도 동행은 필요하고 또 서로 의지하며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산길에서 함께하는 동행은 무게가 다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버팀목이 되지 않으면 자연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다고 생각하고 우리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줄 것만 같았던 자연이

한 순간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고야 만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도 사람 몫이고 버림 받는 것도 사람의 몫이다.  

여기에 우리가 서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한없이 걸어왔는데도 나타나지 않던 임도를 보니 넘 반갑기도 하고 - 굴전고개

 

굴전고개는 봉화군의 소천면 광회리와 울진군의 서면 쌍전리를 어우르는 고개이다.

삼수령님이 해드랜턴이 없어서 걱정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굴전고개 직전 길에 반짝이고 있는 불빛을 보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드래곤형님의 따뜻한 마음에 없던 힘까지 솟아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반짝이고 있던 그 소중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산길을 삼수령과 묵언의 발걸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  철탑도 지나고

 

대자연을 벗삼아 걷고 있는 산꾼들에게 동행의 제일 덕목은 바로 배려심 이다.

자연에게서 우리가 배려심을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힘든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동행이다.

우산을 찾으려 노력하지 말고 그냥 함께 말동무하며 같이 걸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산길을 걸으며 배웠으면 하는  것이다.

이미 드래곤님이 밝혀 놓으신 작은 등불하나가 긴 수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는 우리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으니

 

 

산죽구간을 지나 헬기장만 나오면 희망이 보일꺼라 삼수령에게 희망을 주고  -  헬기장이 있는 710봉

 

마지막이라는 것은 희망을 주기 때문에 막판까지 편한길을 주지 않는다. 힘들게 내려오니 답운치685.7m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광회리에 있는 고개

고개에 늘 안개가 끼어서 고개를 넘을 때 마치 구름을 밟고 넘는 듯한 고개라 하여 답운(踏雲)재 부른다

서쪽은 옥방천을 두고 봉화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광회2리와 북쪽은 진조산 일대로 광회1리와 접해 있다.

국도 36호선의 개설로 현재 울진과 봉화 간의 동서교통로 중 울진군의 마지막 고개이다.

 

 

삼수령님 축하합니다. 힘든만큼 더 자신이 생겼으리라 믿습니다. 홧팅  고생했슈 ^^

 

우리가 산길을 가다보면 결코 산은 한번에 넘어가게 우릴 놓아 주지 않는다.

분명 몇 구비를 넘어야 산을 넘을 수 있듯이 과정 없는 결과는 누구에게도 주워지지 않는 것이다.

정맥길도 하루 아침에 걸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삼수령님이 오늘 경험했던 과정이 있기에

다음이 기다려지고 또 내일이 희망으로 보이게 되는 수중한 경험으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아마 마음이 좀 나태해지려고 해도 앞으로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낙동정맥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늦은 만큼 뒷풀이도 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오다... 진조산을 넘어 오다 본 해넘이

 

 

인류가 생기고 난 역사 이래 사람이 걷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걸어간 곳은 곧 길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냥을 위한 길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냥에 성공하면 고기만 먹고 살 수 없으니 약초나 나물을 캐러가는 길이 필요했고

나라가 생기고 힘겨루기가 시작되면서 그만큼 사유화는 시작되고...

사람이나 나라나 사유화는 더욱 큰 힘을 필요로 했고 더욱 넓은 땅이 필요했기에

그래서 산을 넘지 않으면 안되었고, 강을 건너야만 했을 것이다.

이런 인류의 얽히고 설킨 역사가 바로 우리가 걷는 길에 어리어 있는 것이다.

이 초보산꾼이 역사이래 길에 숨어 있는 유래를 찾아 가는 노력을 하는 것도

그 길에 수많은 사회의 역사가 살아 있고

그 길을 거쳐간 수 많은 인물들의 흔적이 올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그런 삶의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살아 가는 이웃의 근원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낙동정맥 3구간

험하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길고 긴 구간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시작했던 산행길이

드래곤 형님 같은 분이 있어 어둠만이 산을 감싸고 있는 길을

형님의 밝은 마음이 함께 빛을 발하는 바람에 더욱 쉽게 내려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할 따름 입니다.

 

이제 큰 산과 같은 구간을 무사히 넘었으니

앞으로 가야할 구간들은 동네 뒷산에 오르는 기분으로...  희망사항을 전하면서

 

낙동정맥 식구님들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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