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05 : 왕릉봉 구간  -   신암분교에서 덕재까지                           

                                                                  

               

언제 갑오년 14년  해오름달 나흘 흙날 ~ 닷새 해날 (무박)

 

누구랑 : 한돌대장님과 낙동정맥 식구들

 

어딜 : 신암분교 ~ 깃재 ~ 길등재 ~ 한티재 ~ 왕릉봉 ~ 덕재

 

         산행거리  : 낙동정맥 20.9km  접속 2.5km   총거리 23.4km (한돌 대장님 공지내용 )

                                                    (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정말 좋아하는 짓을 못한다는 것은 더욱 참기 힘든 유혹 중의 하나이다.

유혹의 달콤함은 악마의 손길 같은 것이라서 끝간데 없는 돌아 올 수 없는 길이 될지라도

악마의 유혹을 참는다는 것 자체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라는 말이 있다.

삶은 결국 내스스로를 판단하고 나의 입장에서 결정하는 일정한 행위인 것이라 생각해 보면

그 악마의 유혹마져 이기고 참고 기다린 낙동길인데 아직도 발목의 붓기가 있어

이제는 나와의 싸움만이 남아 있음에 나를 더욱 다잡고 길을 떠나 본다.

 

 

 

낙동정맥 5구간 등로

 

이번 구간은 신암분교에서 정맥 마루금인 깃재에 접속하여 한티재를 넘어서서 덕재까지 어어지는 길로

접속구간까지 포함한다면 도상거리 24km에 육박하는 거리다.

그러나 다행이  전 구간의 고도차가 그리 크지 않고 거의 평지성 능선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나름대로 위안은 된다.

봉화와 울진을 완전히 벗어나 영양땅을 들어서서 한참을 내려오다 막판에 우리가 날머리로 잡고 있는 

오기리에 있는 오기저수지를 빙돌아오는 환코스로 이어가는 능선이 이채롭다

거의 산간을 이루어진 탓에 고추외에는 별로 우리가 알만한게 없는 영양군이지만  그만큼 고개에 얽힌 삶의 얘기는 더욱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오랫만에 낙동정맥 식구들과 함께 도착한 신암분교

 

출발전 단체사진 (산우님작품)

 

두번째 개울 직전 비닐하우스 지나 좌측으로 진입 개울 건너 산행시작 (산우님 작품)

 

억! 이거 겨울 맞아? 예상보다 더운 날씨 잠시 휴식하며 옷정리

 

오늘의 정맥 마루금에 있는 깃재

 

깃재는 842봉 직전으로 영양군 수비면 계리와 신암리 사이의 구 소로길 길목

옛날에는 숲이 너무 욱어져 있어 길이 험해서 부쳐진 이름이다고 하는데...

 

 

막판 비탈길에 싾인 눈을 힘들게 오른 깃재에서 오늘 하루의 고단한 일정을 말해준다

 

그래도 겨울인데 나름대로 생긴 상고대와 삼각점이 있는 884.7봉 - 삼각점 확인 안됨

 

적당한 눈길은 걷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초반 눈길이 아니었으면 누가 1월 겨울로 볼지...

 

별특징없는 마루금을 이어가다 850봉 우회하고 만나는 절터로 내려가는 능선 분기점봉 - 정맥은 좌측으로

 

언제 아침이 밝았지? 화랑들의 훈련지였다는 헬기장이 있는 화랑곡 상단봉에서 아침식사  

 

간벌로 넓어진 산길에(방화선도아니고)  소나무가 어깨동무하며 함께하는 능선은 이어지고

 

삼각점이 있는 612.1봉

 

옛날 길등재

 

길등재           계리桂里와 발리發里 사이에 있는 고개

발리發里里 : 발리리의 발(發)은 시작을 뜻하며, 영양군 수비면의 첫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 할 수 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 화랑골, 용수곡을 합하여 발리리라 하였다.

오른쪽은 계리의 계골마을로 내려서고 왼쪽은 발리로 향하는 쥐골로 내려서는 길이다

 

 

산악임도를 포장했다는 길등재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길등재에 대한 추론은 가능하다.

향토사학가 이상준 씨는 경상도식 발음으로 예전 사람들이 ()등재로 불렀는데 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길을 ''로 발음하는 습관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동국여지승람에도 길등재로 나와 있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 씨는 "경상도 특유의 발음에서 문제가 된 것"이라며 "일부 나이 드신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데 길등재의 정확한 표기를 널리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0777&yy=2011

 

 

마루금을 벗어나 우회하며 만난 이름이 재밌는 야구랑곡 안부를 지나고 - 야구하면서 낭낭하게 노래하나?

 

감사합니다..

 

절개지 나오면서 전망이 좋아 울련산이 먼저 보이고, 빙돌아 다음에 가야할 갈미산과 검마산이 눈이 덮여 있다.

 

옆에 보이는 인삼밭도 보이고, 멀리 31번 국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한티재

 

한티재(430m) 발리재

두 가지 설이 있다. 찬물이 나는 고개라는 설이 하나 있고,
다른 설은 조선 중기 학자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가 명당을 찾다가 이곳에 아홉번째로 부친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안개가 걷힌 뒤 터를 잘못 잡았음을 알고, 그래서 한(恨)이 맺힌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늦게 도착한 한티재, 벌써 단체사진을 언제 찍었지? (산우님 작품)

 

영양군의 전설에 따르면 한티재는 수비면 계리에 있는 큰 재로 임란시 의병과 왜군이 이 골짜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바 있어,

지금도 비만 오면 핏물이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며, 통로의 반석 위에는 많은 말발굽 자국을 선명히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일대에서 바위와 반석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수비면에 4대문이 있는데 피(皮)씨의 도읍터가 있었다고 한다.

서당두들을 중심으로 북쪽에 북언덕재(문) 동쪽에 구실재(문) 남쪽에 가랫재(문) 서쪽에 한티재(문) 가 4대 문이 된다

 

 

일월산도 조망하고

 

우리가 돌아온 정맥길도 돌아보고 - 가운데 보이는 파란색이 조금전 사진에서 봤던 인삼밭인데 그 옆이 마루금이다

 

이번 등로에서 보기 힘든 추령4.3km 이정표도 지나고

 

우천재

 

우천마을

 

우천(愚川)(496m)재 마을    경북 영양군 수비면 오기리

해발 6백여미터의 높은 분지로 된 곳인데, 물 이 짧아 골짜기 중심으로 흐르는 냇가의 수면이 보이지 않는다. 늪 으로 된 내를 중심으로 발달한 마을이다.

춘천박씨가 여덟집이 이 마을의 삼어출파(三魚出波)란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고 어리어 흐르 는 물을 우천(愚川)이라고 불렀다.

 

 

추령 직전에 636.3봉 - 추령봉이라 되어 있다

 

폐핼기장이 있는 641.7봉에서 본 오기저수지

 

                                                                                 

추령

 

추령(497m) 

영양군 일월면 칠성리 가래골에서 나온 이름인 듯하고 가천동에서 수비면 오기동으로 통하는 고개이다.

가래나무(楸)가 많아 생긴이름이라고 한다.

 

 

그간 참아주던 발목이 서서히 아파오고 ... 송정봉으로 올라가다 울련산과 검마산 방향으로 전망이 확 트인다

 

울련(연)산(蔚蓮山, 939m)·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 위치해 있는 신원약수터는 오랜 옛날부터 피부병은 물론, 한센병 치료에도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일명 연화수라고도 하는데, 약수터가 발원한 울련산이 풍수형국으로 연꽃이 물 위에 뜬 연화부수형국(蓮花浮水形局)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틈에서 솟는 약수는 옛날 한센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있어 전국의 한센병 환자가 이곳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635.5봉 - 송정리마을 뒷산

 

결코 짧지 않은 세월, 산이 좋아 그저 산을 그리며 산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오늘처럼 동행의 의미를 되세김하며 걸었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도반(道伴)이란 단어가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왜일까?

산길은 걷는 것 자체가 인생살이 삶과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저

한구비 한구비 넘고 넘는 인생의 질곡 같은 모습으로만 보았던 길

지금까지 걸었던 산길들이 나혼자만의 공간에서 대자연의 앞에서 

작은 한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아프고서야 깨닫고 있다함이 참으로 어리석다

 

 

니고나오님까지 무릎이 아파옴에 따라 나때문에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처져 겄던 함박웃음님의 침봉사가 시작되고

 

한사람의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그것은 혼자 걷는 자화상일 뿐일 것을...

오늘 초반 삼수령님이 어둠에 혼자 걸어가고 있는 나를 생각해서 계속 동행을 해주고

더불어 고장난 해드랜턴에 드레곤형님의 예비품으로 고비를 넘기고

후반 발목이 아파옴에 따라 더욱 더디어만 가는 발걸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함께해준 함박웃음님

혼자 걷는 자화상이 아닌 함께여서 즐겁고 힘이 되는

이런 산길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소중한 경험을 살 수 있을까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이름도 소나무인 송정리 마을 - 반대편은 지금 한창 벌목중이다

 

소정이ㆍ솔갱이ㆍ송정(松亭)ㆍ송정동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송하리 소정이 (송정:松亭 )마을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자연 경치가 아름다워 길 가던 이들이 여기에 와서 쉬어가곤 했다.

소나무정자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벌목을 하고 있어 마루금 주의해야 한다.

 

 

송정봉에서 본 왕릉봉 - 왕릉같은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마지막 높은 봉이 거대한 왕릉봉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이 오늘 내가 대자연앞에 한점 부끄럼 없기를 나름대로 다짐하며

지금까지 걸어 왔다고 나름대로 생각해 왔었던 자만이

결국 함께하지 않으면 공든탑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새삼 느끼며 걷는 길이 되었다.

오직 산에 오르고 또 오르고, 그렇게 떠나는 것이 목표인양 올랐던 나만의 자유

이제 뒤를 뒤돌아 보고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는 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음에 감사할 뿐

 

 

개활지에 있는 집터

 

가재도구로 쓰였음짓한 물건들이 널부러져 있고, 지붕을 덮었을 듯한 파란색 천막도 길위에 보이고...

이렇게 높은 곳에 화전을 일구며 살았을 옛 주인을 생각하니 참으로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주는 산이 이렇게 고맙기도 하고

먹고 살 것 없으면 산으로 들어온다는 옛사람들의 얘기가 세삼 생각이 난다

 

 

왕릉봉(631m) - 오늘 침봉사에 거기에 끝까지 함께 동행한 함박웃음님을 담아보고

 

마루금은 왼쪽으로 이어지는데 멀리 빙돌아 마지막 봉이 높게만 보이는데

 

동쪽으로 보이는 오십봉

 

 

그래도 가야지, 잠시 숨고르기하다 봉에 오르며 우틀하며 나타나는 울타리가 계속 이어지고

 

힘들게 오르고 있을 후미를 위해 막걸리와 맥주를 남겨주신 마음이 더욱 용기를 내게 하고

 

시간은 나의 것인양 걷다 삼수령의 배낭봉사로 가벼워진 몸으로 그렇게 도착한 덕재 - 쉴시간도 없이 바로 뒷풀이 장소로 이동한다

 

덕재(죽파재, 장파령)

오기리 오리곡마을과 죽파리 장파마을을 연결하는 산간임도로 일명 죽파재라고도 불리우며 장파령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영양군에서 설치한 안내판에는덕재로 표시되어 있지만 남쪽아래로 죽파리, 장파마을이 있어 그렇게 불려지는 것같다.

장파는 조선조 때 김충업(金忠業)이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장군과 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 한다.

 

 

1대간 9정맥을 완주하신 인연카페지기님의 축하 행사를 겸한 뒷풀이

 

인연대장님 고생했습니다

 

 

축하사절로 오신 서산대사님, 봉서산님, 꽝수님 고맙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한량처럼 붓기만 탓하며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출발당일인 토요일 함박웃음님을 찾아가 특별 치료를 받고서야 찾아나선 낙동정맥길

발목부상을 입고서 여러 산우님들에게 걱정을 끼치고서야

부상은 항상 가장 가까이에 있음을,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현실이 되고 보니

어딘가를 떠나지 못함이 두렵고 걷지못함이 계속 나의 머릿속을 어지렵게 했다

나의 판단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며

내가 갈 곳이 있고 또 돌아올 곳이 있다는 안도감을 핑게삼아

힘겹게 걷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닿는 감사함은

내가 떠남과 돌아옴을 숙명처럼 여기며 산을 그리워했음이 그래도 이렇게

여러 산우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내려 올 수 있었다는 생각에

동행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 느낌이다

 

많은 시간이 늦었는데도 박수로 위로해 주신 낙동정맥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발목아프다고 많은 댓글로 염려해주신 3450온누리 산우님들에게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붓기가 언제까지 계속 될 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쾌차하여 오늘 받은 사랑 

더 큰사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치료를 하면서도 

의사로써 나에게 산에 가지말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웃음으로 함께해준

함박웃음님, 3450온누리 산악회에 큰 허준선생님이 되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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