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을 시작하며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정맥길인 낙동정맥길로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동서로 뻗은 금북정맥이나 한남금북정맥길을 가면서 한반도 허리의 중요한 버팀목을 봤다면

우리 나라의 척추의 가장 중요한 아랫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낙동정맥의 거침없는 산줄기를 보고 있으니

동해의 세찬 비바람을 대간과 함께 손잡고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벅찹니다.

모든 정맥들이 대간이라는 큰 집에서 분가하여 엄마 품같은 모습으로 두루두루 안아주었다면

낙동정맥은 큰집살림을 그대로 물러받았나 봅니다. 그만큼 크고 길게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선답자들의 무용담같은 얘기속에 살아있고 현지인 들 조차 높은 벽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렇고

정맥중에서 아직도 가장 정리가 안돼있는 오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장남은 장남인가 봅니다. 

 

洛東江의 어원이 낙양(지금의 상주의 한 지명)의 동쪾이란 뜻이고 상주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에서 붙여졌다면

洛東正脈은 낙동강의 동쪽에 있는 산줄기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고 싶습니다.

영남지방의 가장 큰 물줄기인 낙동강에 수많은 핏줄같은 실개천을 쉼없이 실어 날라주었던 낙동정맥

대간길 천의봉에서 부터 낙동강 동쪽에 울타리를 치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은 굳건히 지키면서

촘촘히 충실히 그렇게 부산 앞 바다까지 최선을 다해 산줄기를 이어 주었나 봅니다.

낙동정맥은 그 위치 상 국내에서 가장 오지로 손꼽히는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맥길은 산꾼들에 의해 열려지고 있고, 더 많은 곳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 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사나 연구가 이뤄지지 못한 채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낙동정맥의 도상거리가 410km가 넘는 장대한 산줄기에다

산의 너울까지 생각하면 실제 거리는 거의 700km가 넘는 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우리 속담중에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먼길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된 듯 합니다.

낙동정맥길이 그러고 보니 천리길이 훨씬 넘는 길입니다.

이렇게 숫자로 풀어보니 왜 우리가 낙동정맥을 힘들게 생각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너무 길다고 걱정 말고 한걸음부터 시작해야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낙동정맥은 낙동강보다는 동해와 눈을 마주하며 계속 이어 내려 갑니다.

그만큼 동해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숢은 얘기가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옛날에는 먹고 살기위해 바다로 간 것이 아니고 살기위해 바다로 나갔을 것이고

그렇게 생사를 걸고 잡아온 해산물을 내다 팔아야 하는데  

아마도 낙동정맥은 분명 큰 벽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도 넘어야 살아갈 수 있었기에 처한 상황에 순응하며 열심히 넘어 갔을 것이고...

넘기는 넘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전설같은 얘기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초보산꾼이 설화같은 얘기를 지금의 눈으로 보지 말고 옛날 그 시대의 모습으로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하라 낙동정맥길에도 수많은 얘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동해와 더욱 가까이 접하게 되는 낙동정맥길이다 보니 과연 동해를 건너온 문화는 어떠했을까?

금북정맥에서 보았던 서해로 들어온 문화들이 대륙으로 들어온 문화와 차별된 내포문화를 이루었 듯

동해로 들어온 문화는 어떠했을까요?

서해와 달리 망망대해이니 들어올 문화가 있을까? 코 큰 서양문화가 동해를 건너 왔을까?

낙동정맥을 한다고 하니 역사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해 보고...

산길은 정해진 길대로 가야하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해로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과 동해의 끝없는 애증의 관계는 아마 역사이래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면

소위 왜놈이라고 했던 일본과 동해를 맞대고 많은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특히 부산에 가까이가면

또 러시아를 통한 문화도 부산까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낙동정맥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보고 걷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아래로 내려 올 수록 낙동강과는 멀어지는데 조물주의 깊은 뜻을 해아려 봅니다.

호남정맥과 낙동정맥과 사이에 있는 그 많은 옥토를 고루고루 적셔 줄려고 하면 낙동강 혼자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지방2급하천이라는 칙숙한 단어를 만들어 낸 지류를 미리 보내

먹고 살만큼 고루 나누어주고 남는 물을 모아 모아 큰 물줄기를 만들어 전체를 안아주는 역활을 한 것이 바로 낙동강입니다.

물을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인간들이기에 그렇게 큰 배려를 했나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길은 되도록 일자로 만들어야 빨리 갈 수 있지만

산길은 되도록이면 굽이굽이로 만들어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을 담아 둘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도로처럼 만들면 그대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 버리겠죠?

그래서 우리가 걷는 정맥길이 목표점이 코앞인데도 빙 돌아 몇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런 조물주의 큰 배려를 생각하면서 걷는다면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동해를 끼고 가야하는 낙동정맥길, 우리가 말하는 바다에서 느끼는 낭만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해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 김해평야와 같은 옥토를 만들어낸 낙동정맥

그 칼바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낭만을 얘기하기에는 낙동정맥이 담아낸 얘기들이 너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한돌대장님 같은 열정을 가진 분이 이 어려운 낙동정맥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지도는 대장님이 올리신 낙동정맥 전체 지도입니다.

한눈팔지 않고 남으로만 내려가고 있는 정맥길이 길게만 느꺼집니다.

하지만 한반도지도를 꺼내 들고 보면 한쪽 구석의 외롭게 뻗어가고 있는 산줄기로 보입니다.

그 길을 이제 한돌대장님과 함께 쉽지 않은 길을 떠나려 합니다.

 

쉽지않고 먼 길이기에 한돌대장님 같은 대장님의 열정에 또 다른 우리의 열정을 함께 해주어야 합니다.

수많은 정맥길이 있기에 대간길이 소중하고 대간의 소임을 다 할 수 있었듯이

대장님의 열정 못지 않은 우리의 열정도 함께 해주어야 대장님도 큰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초보산꾼이 두서없이 이러 글을 올리는 것은

3450온누리 산우님들이 용기를 가지시고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우리가 대간길을 걸으면서 대간의 고마움을 알았듯이

한돌대장님과 함께 낙동정맥을 걸으면서 3450온누리 산악회와 우리가 함께 했음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길은 고독입니다.

길을 걷다보면 외로운 섬처럼 결국 혼자 걷게 됩니다. 여럿이 걸으면서도...

분명 눈앞을 여러 풍경들이 스쳐갔지만 아무 생각없이 걷는 순간이 더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사익님의 '섬'이라는 노랫말 다시금 떠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떠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뛰는 일입니까

아직도 미지의 길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고독한 길이지만, 걷지 않은 미지의 길이 있기에, 또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 중심에 내가 존경하는 한돌대장님이 계십니다.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또 같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 행복충전소에 많은 사우님들이 충전할 기회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용기를 내시여 낙동정맥길로 어서 나오시죠?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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