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13 : 마지막 구간  -  신대삼거리에서 안흥진까지                                          

                                                                                

                                          

언제 : 임진년 맺음달 열닷새 흙날

 

누구랑 : 바다사랑 대장님과 금북정맥 식구들 그리고 축하사절단

 

어딜 : 신대삼거리 - 장승고개 - 죽림고개 - 지령산 - 안흥진

                  산행거리 및 예상시간 : 12km,  6시간 예상  (바다사랑 대장님 공지내용)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금북정맥을 끝맺음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 금북 식구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대형버스가 사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있던 눈까지 미리 정리해주고...

어찌됐든 끝까지 날씨마져 마지막 가는 길을 도와준다.

 

 

 

 

 

그간 몸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우리 금북식구들의 여정에 많은 응원을 해 주던 3450온누리산악회 산우님들

축하사절단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마지막을 함께하시는 모습으로 반갑게 인사들을 나눈다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님들이지만,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 한층 더 기쁘다

여기에 나의 옆지기까지 대간에 이어 함께하니....

 

 

 

마지막 구간

 

 

근흥중학교 앞 603번 지방도에서 출발하고

 

근흥면 용신삼거리(지도상 신대삼거리)

 

近興面

남서방향으로 뻗은 반도와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 태안읍·소원면(所遠面)에 접하고, 동쪽에 방두포, 남쪽에 각동만, 북서쪽에 낭금만, 서쪽에 고도만을 형성하며,

서쪽 해역을 중심으로 유인도 7개, 무인도 16개가 산재한다.

 

 

 

반도 북부에 태안읍에서 이어지는 구릉성의 단천산맥이 있고, 반도 말단부에 지령산(智靈山:218m) 등 구릉성 산지가 있다.

해안에는 습지와 개펄이 넓게 펼쳐지며, 간척사업으로 많은 논이 조성되고 곳곳에 염전도 있다.

문화재로는 안흥성(安興城:충남기념물 11), 수룡리 성지(水龍里城址), 안파사지(安波寺址), 두야리(斗也里) 성지, 신진도리 조개무지[新津島里貝塚]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

 


2차선 도로따라 가다 채석포와 연포갈림길 도로표지판 못 미처 성원식당 앞에서 우측 석포교회방향으로 진입

 

용신2리  다목적회관앞을 지나

 

도로를 계속 따르면 동쪽방향으로 바다가 보이고

 

채석포와 연포의 갈림길 이정표 두번째 못미쳐 용산2리(방앗간)에서 우측으로

 

소나무 터널 숲길이 축하사절단과 함께하는 정맥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고

 

건지미산(115봉)

 

소나무숲 사이로 옥녀봉이 보이고

 

115봉 정상에서 조금더 진행하면 옥녀봉인 124봉에 다다르고

 

 

풍수에서 옥녀는 國師峰의 어원인 선인과 함께 지형에 가장 많이 비유되는 형상이라고 한다

산 모양이 옥녀가 북을 치는 형상이면 옥녀격고형.. 등 등

서울근교의 청계산에 국사봉(남신)과 옥녀봉(여신)이 함께 하는 이유이다.

 


안면도 방향 바다

 

태안반도와 안면도 - 안면도가 섬일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 태안 안흥정 앞 굴포공사가 실패하고 -

 "그 뒤 조선 인조 때인 1638년에 삼남지역의 세곡을 실어 나르는 것이 불편하자 충청감사 김유金庾가 지금의 남면과 안면도 사이의 바닷길을 파서 안면도는 섬이 되었다.

섬이 되면서 안면도를 싸고도는 뱃길보다 약 200여리가 단축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 운하의 효시 되었으며 이름을 백사수도白沙水道라고 불렀다.

원래는 육지였는데 세곡을 나르는 수로를, 눈물나는 공사로 섬이 된 역사가 살아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럼 지금 정권이 돈으로 파 놓은 경인운하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렇게 절실함이 묻어있는 역사에 부끄럽다. 

 

 

 

분지형태로 보이는 오토캠핑장이 있는 도장동마을

 

칼을 갈다 만 바위가 있는 110봉에서 칠갑산님의 과메기와 배낭털이도 좀 하고

 

 

연포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당겨보면

 

 

이어 등로는 서남방향으로 틀어 연포차도인 장승고개에 도착

연포해수욕장이 있는 성황동 마을이 있어 성황동고개라고 현지인들은 부른다고 한다

 

도로따라 진행하다 장승이 서 있는 곳에서 상황봉님과 합류하고

 

바로 숲속으로 진행

 

 

 

 

 

잡목구간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도를 만나고

 

도로를 따르다

 

다시 숲길로

 

오르다 잠시 뒤 돌아보니 연포 해수욕장이 있는 성황동 마을이 이제야 본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시멘트도로를 따르다 숲길로 우틀

 

 

외야골마을과 바닷가 - 그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느껴진다

지금이야 어르신들만이 이 마을을 지키고 계시겠지만, 나 어릴 적 생각하면

소를 몰고 나와 이곳에 소를 매고, 바다를 보며 어떤 꿈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삼각점이 있는 88봉에서 전망이 좋은 염전 방향  - 사진 상황봉님 -

 

 

도로가 보이고

 

근흥중학교앞 603번 지방도로와 이어지는 고개에,  현대오일뱅크주유소가 있는 竹林고개

 

마루금은 오일뱅크주유소 사이를 약 10미터 가다보면 좌측으로 정맥띠지가 보이고 그곳으로 진행하며

식후경

 

포장도로따라 진행하다 잠시 산속으로 진행하고

 

보조삼각점

 

다시 도로따라 진행하면 국방연구소(군사시설)이 나타나고

 

 

정문에서 좌측으로 철책선따라 진행하면  너덜지대 나타나는 끝 부분이 지령산, 군사시설이 차지하고 있다.

지령산 정상 아래에서 본 서해

 

지령산 智靈山

충청남도 태안군의 근흥면 정죽리에 있는 산이다(고도:197m). 면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안흥 8경 중 하나인 지령낙하(智靈落霞)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동지도』, 『여지도서』, 『청구도』, 『동여도』에 표기되어 있다.
지명은 이 산에 지란(芝蘭)이 야생하고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지란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를 말한다.

『1872년지방지도』에 한자가 지령산(芝靈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지란의 야생설'은 근거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령산에서 내려오다 뒤돌아 본 지령산  - 사진 상황봉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지령산에는 안파사(安波寺)가 있었다. "고려 때에 수로가 험하여 조운선이 여러 차례 실패를 보아 이 절을 세운 것인데,

중간에 왜적의 침입을 당하여 거의 다 파괴되었고, 본조 세조 때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에는 "군 서쪽에 있으며, 산맥이 백화산에서 와서 갑묘방향에서 떨어지고 간축 방향으로 간다."고 기록되어 있다.네이버 지식

 

 

군사시설을 만나게 되고

 

갈음리 고개와 143봉으로 이어지는 가야할 마루금

 

철책선따라 계속 안갈음리 방향으로 내려서다 우측으로 마루금으로 이어가야 하며 계속 직진하면 안갈음이 도로로 내려선다.

 

순창 설씨淳昌薛氏 서산 종친회의 숭조전

 

 

갈음리 고개

 

갈음이 고개

옛날에는 주위에 지천으로 갈대가 흩날리어, 갈대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지금은 갈대를 볼 수가 없다.

 

 

물탱크가 있는 143봉

 

시설이 있는 봉을 지나면서 내리막이 시작되고

 

오늘의 뒷풀이 장소인 신진도가 보이고

 

남쪽방향으로 계속 마루금을 이어가면 갈음이 해수욕장이 보이고

 

갈음이 해수욕장

 

갈음이 해수욕장은 90년대에 군사지역 지정에서 해제 되어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름이 아름다운 갈음리가 들려주는 갈대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주위에 소나무가 가득 자리하고....

잔잔한 波濤 따라 끝없는 水平線을 바라보며, 속절없이 울어 제키는 파도에 잠에서 깨어 난 듯,

엄금엄금 햇살을 등에 업은 서해바다와 인사를 한다.

앙증스럽게도 저 먼 섬 위에 힌 구름 彫刻 하나 걸쳐 있었다면 금상첨화련만....

 

 

 

色色이 變하는 모습, 그림과도 같은 독단 배의 한가한 걸음, 바다를 압도하는 듯한 貨物船의 느긋한 걸음,

하늘을 날아가는 갈매기의 외침이 바다의 숨소리를 대변해 준다.

어릴 때 초등하교 시절부터 부르던 ‘초록빛 바닷물에 손을 잠그면’ 초록빛 바다를 대할 때마다.

어릴 때 동심의 세계로 환원되면서 감상에 젖어 봄 짓도 하다

 

 

금북정맥종주라고 누군가 먼저 그려 놓았다.

 

다시 산속으로 진행

 

금북최종봉우리 표시가 있는 124봉

 

도담삼봉을 닮은 바위를 배경으로

 

정자가 나타나며 금북정맥의 마루금은 안흥진 앞 바다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마루금은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다.

단지 육지에 솟아 난 죄로 산이 되었지만, 마루금은 바닷속을 계속 이어가 중국 어느 땅에선가 다시 솟아나 계속 대륙을 이어 갈 것이다.

우리가 계속 마루금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골프장 제방 따라 신진대교까지 걸어간다

 

안흥진 방파제

 

안흥진 [ 安興鎭 ]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설치한 진(鎭).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程竹里)의 안흥성 내에 설치한 진영(鎭營)이다. 안흥진의 원류는(源流) 고려시대에 지금의 신진도(新津島)에 세워진 요아진(要兒鎭)으로,

이후 1467년(세종 12)에 소근진첨사(所斤鎭僉使)에서 파견한 안흥량수(安興梁戌)가 1655년(효종 6) 안흥성 축조와 더불어 성내로 옮겨와 진영으로 독립함으로써 안흥진이 설치되었다 - 네이버 지식 -

 

 

정자에서 본 안흥진 방파제

 

특히  백제불교(百濟佛敎) 문화의 선진 지역이 바로 「태안」이며, 또한 안흥항(安興港)은 일찍 여송 무역선(麗宋貿易船)의 기항지(寄港地)로 널리 알려져 잇는 곳이고,

북쪽의 원북 청산리는 일찍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인천항(仁川港)을 내왕하는 정기 여객선이 60년대까지 대성업(大盛業)을 이루어,

앞서 가는 도시문화 경인문화(京仁文化) 수입에 한 몫을 다했으나, 육상 교통의 발달로 인해 이미 해상교통이 두절되고 말았다

 

 

정자에서 본 안흥진 앞 바다

 

충남 태안의 안흥량.

고려ㆍ조선시대에 충청ㆍ전라ㆍ경상의 세곡미를 실은 조운선은 태안반도의 안흥량을 받드시 통과해야 서울에 도착했는데,

이곳 안흥량은 빠른 조류에다 수중 암초가 많아 파손이 잦았다. 안흥량의 본래 이름도 통행하기 어렵다는 ‘難行梁’이었다

 

 

신진도를 어어주는 연륙교 신진교

 

고려·조선시대에 충청·전라·경상의 세곡미를 실은 조운선은 태안반도의 안흥량을 반드시 통과해야 서울에 도착했다.

그런데 안흥량에서는 해난사고가 줄을 이었다. 빠른 조류에다 특히 관장각 인근에는 수중 암초가 많아 전복되거나 파손이 잦았던 것이다

고려 때에 안흥량 인근의 지령산에다 安波寺를 건립해 무사 항해를 기원했다.

최근 안흥량 바다에서는 곡식은 물론 최고급 고려청자, 발신지와 수신자가 적힌 목간, 생활상을 알려주는 젓갈이나 석탄 등이 속속 인양되고 있다

 

 

저 멀리 안흥城곽에 있는 태국사가 보인다

 

골프장에서 신진교로 어렵게 철조망을 통과하면

 

백년갈증을 푼 유래비를 만난다

 

지금이야 신진도와 다리가 있어 포구가 필요없지만 옛날에는 포구가 섬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1970년 초까지만 해도 앞서 본 것처럼 이 곳이 해상교통의 중요통로이다 보니 수 많은 배와 사람이 오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곳 육모정 아랫목과 아랫섬의 우물이 유일한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항시 물은 부족했을 것이고...

우리가 정맥길에서 만났던 죽림과 섬에서 수레와 배로 물을 날랐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갈증에 목말라 했을까?

그래서 이웃마을인 가리미에서 생명의 지하 용수원을 찾아 마침내 백년갈증을 풀개 되었다는 것이다. 때는 1979년이라고 한다

 

 

금북정맥 완주 기념 종산제를 지내고

 

막걸리 한잔으로 정맥종주 모든 행사가 끝이 난다

 

신진도로 옮겨서

 

신진도 어촌계 수산시장 앞바다

 

오늘의 뒷풀이 장소 인천수산

 

금북정맥 종주자와 축하사절단 산우님들이 함께 어우러져 - 산우님 작품 -

 

이렇게 신진도 앞바다의 낙조와 함께 금북정맥 종주 식구들의 산행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이제 금북정맥의 마루금은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칠장사에서 임꺽정의 함성소리를 대신한 견공의 함성소리에 세벽을 연 뒤

쉼 없이 이어진 정맥길이 왠지 아쉬워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길은 소통을 위한 마음을 여는 세상의 통로이기에

함께한 금북식구들과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움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 합니다

 

산줄기를 이어가다 보면 산과 산사이에 고개를 만나

마을과 마을의 소통의 통로가 되고

 

다시 솟구쳐 올라 큰 산줄기를 이루면

그 산줄기에 우리 이웃들의 삶의 보금자리를 그 큰 산에 기대어 살게 된다.

 

줄기와 줄기가 이어져 그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린 물들을 모아 저수지를 만들어

우리 삶의 근원을 만들어 준 것도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산줄기에 해답이 있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많은 얘기를 해 주었고

또 그것을 오롯이 담을려 노력했던 이 금북정맥길이

이 초보산꾼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과 나누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산은 산으로 바라 볼 때만 산입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산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산을 잃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에 쫒겨 길도 보이지 않는 야간산행이나

올해를 넘기지 않으려 시간에 쫒겨 산을 찾는 순간 등...

그것이 이 초보산꾼이 갖는 아쉬움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인간이 살아 가는 것이기에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을 함께한 바다사랑 대장님과 탱이하트 총무님과 금북식구들에게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축하사절단으로 오신 산우님들에게도 너무 감사의 표현을 드리고 싶습니다

 

끝까지 금북정맥 산행기를 함께해 주신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과

댓글과 격려의 말씀을 남겨주신 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간 읽어 주시고 격려에 감사드리며 나름대로 더 나은 산행기로

산우님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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