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12 -  백화산 구간 :   윗갈치고개에서 모래기재까지

                                                                        

                                          

언제 : 임진년 끄트머리 달 하루 흙날

 

누구랑 : 바다사랑 대장님과 금북정맥 식구들

 

어딜 : 윗갈치 - 금상산 - 붉은재 - 백화산 - 모래기재

            산행거리 및 예상시간 : 21km,  8시간 예상 (바다사랑 대장님 공지내용)

 

 

마음을 가다듬는 한해의 끄트머리 달 12월 한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여 우리는 태안반도를 향해 달려 간다.

1박2일이라는 처음 경험해 보는 정맥길

조금은 여유있는 시간으로 느껴지는 시간에 사당에서 바다사랑 대장님의 애마로 출발하고

 

 

 

12,13구간 금북정맥 구간정보

 

 

 

 

 

윗갈치고개(자료사진) -    11차 날머리에서 만난 29번 국도

 

가루고개, 갈현리, 윗 갈치, 갈산리 등등, 칡과 관련된 이름들이다

갈치, 즉 칡이 많은 마을의 윗마을이라는 뜻 일 게다

 

 

대장님의 차로 이동한 관계로 바로 윗갈치의 서령정에서 준비를 시작하고

윗갈치 고개에서 서령정까지는 마루금을 이어갈 수 없는 우회길이기 때문에 대장님의 차로 이동했다.

 

서령정 - 궁도장이 함께 있다

 

서령정의 앞 마당을 통과하면 숲속으로 마루금은 이어지고

 

잘 다듬어진 숲길이 이어지는데

 

 

솔개재 이전에 걸어온 봉들

 

가야할 능선을 조망한 가운데

 

솔개재이다

 

솔개는 매목 수리과의 조류. 소리개라고도 한다

183봉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하며, 솔개가 닭을 채가려는 형국이라 하여 유래되거나, 솔개가 많이 살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망일지맥 분기점을 통과하고

 

 

우리가 걸어온 윗갈치 고개의 파란 골프연습장이 보이고

 

금강산에 어올리는 바위들이 나름대로 어슬프게 나타나고

 

드디어 처음으로 팔봉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겨보면

 

지도상 묘1기가 있는 비룡산을 넘으면

 

비룡산飛龍山

충청남도 서산시의 인지면 성리에 있는 산이다(고도:280m).

『서산군지』(1926)에 "부흥산 여맥이 갈산리에 이르러 우뚝 솟기 시작하여 성리에 이르러 비룡산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의 모양이 날아가는 용처럼 생긴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산에는 죽사(竹寺)와 50장 높이의 바위가 있다.

죽사는 백제 의자왕때 도감승려에 의해서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위는 절 뒤에 있는데 매우 커서 쉰질바위라고도 하고, 영구암(靈龜岩)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

 

 

차리 방향도 조망하고

 

비룡산 남사면에 위치한 '주사'라는 절에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비룡산에 대나무와 돌이 많았는데 돌과 대나무간에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아 어느 날 대나무와 돌이 내기를 걸어 누가 먼저 사람의 키

50배를 크나 시합을 하였다.

대나무는 가늘게 크고 돌은 몸이커지면 부피가 늘어났다.

그러자 이 산에 살고 있는 용이 자기의 안식처가 좁아지자 화가 나서 하늘로 올라가며 바위헤 벼락을 쳤다하여 '비룡산'아라 하였다는 전설

 

 

벌목지와 함께 조망이 트이면서 금강산과 팔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된다

 

벌목지라 그런지 나무는 없지만 바위들은 나름대로 전설을 예기하고 있는 듯 하다

 

 

멀리 서해바다도 조망되고

 

서산시 금학리와 성리(마전과 용암)을 잇는 시멘트도로인 집뿌리재이다

 

장군산 등산로 표지기를 따라 오르면 느티나무도 보이고

 

서서히 금강산에 어울리는 암벽들이 나타나고

 

이런 바위도 나타나고

 

바위 기대어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

 

아무리 강풍이 불어도 그대가 날 붙잡아 주리라 믿으며

고통으로 영근 사랑은 날이 갈수록 푸르러만 갑니다
아! 암벽에 박힌 소나무의 사랑을 구름도 부러워 하네

암벽과 소나무의 사랑 / 차영섭 시인의 마지막 구절이 절절하다

 

 

나름대로 서로 거북이냐? 자라냐? 주장하고

 

장군바위봉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만나고

 

금강산이다

 

금강산 (삼각점 표준치 316)

팔봉면과 인지면의 경계에 있으며, 비룡산 바로 서쪽에 있다. 본래는 ‘서각산(犀角山)’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코뿔소산’이라는 뜻이다.

1927년에 간행된 『서산군지(瑞山郡誌)』에는 ‘서각산(鼠角山)’이라고도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쥐뿔산’이라는 뜻이다.

현재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금강산(金剛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 모습이 북한의 금강산과 닮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자료 : 한국향토문화 대사전

 

 

 

 

팔봉산으로 이어지는 팔봉지맥 갈림길

 

팔봉산

팔봉산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양길리, 금학리의 3개 마을에 접해 있으며,

이 산맥은 인지면 서각산에서 출발, 서남쪽으로 빠져 금학리에서 기봉하여 금강산 6봉이 되고 이후부터 두 갈래로 되어서 한 갈래가 어송리로 뻗어 있다.

 

 

 

팔봉산의 명칭은 호산록에 따르면 원래 산봉우리가 9개인데 제일 작은 봉우리를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했고, 매년 12월 말이면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수에 넣지 아니하였다고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100대명산

지난 2004년 8월, 한배달민족정기선양위위원회 쇠말뚝뽑기운동본부가 팔봉산 기슭에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박아놓은 콘크리트 말뚝(일명 혈침)을 제거하기도 했다

 

 

쓰러진 나무들이 허들 경기를 연상 시키는 구간은 이어지고

 

장군바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군산

 

장군산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와 인지면 차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

산 정상에 장군바위가 있어 장군산(將軍山) 혹은 장군봉(將軍峰)이라고 부른다. 금강산(金剛山)의 줄기로 금강산, 서각산, 장군산 등의 명칭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장군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은 계곡의 남북 방향으로 흘러 팔봉면 솔감저수지에서 만나 가로림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네이버 지식

 

 

부대가 보이는 수랑제로 내려 가는 하산길이 가파르다

 

서산과 태안을 이어가는 수랑재

 

수랑제? 수량제라 하면 양수리나 수분치와 같은 뜻일 건데.... 수랑제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둔당천은 서산시의 인지면 둔당리를 흐르는 하천이다. 수원은 차리고개와 갈산동 솔개재 · 지장고개에서 발원하며, 그것이 둔당리에서 합하여 남쪽으로 간월호에 합수하여 천수만으로 흘러든다

물래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과 금강산에서 갈라지는 팔봉지맥의 물을 모아 솔강저수지로해서 태안반도 앞바다로 흘러든다

두개의 하천이 분리된다

 

 

도로따라 진행하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면

 

서산 6쪽마늘 - 서산에서 태안까지 거의 모든 밭들이 마늘로 넘실댄다

 

32번 국도(차리) 지하통로는 통과하면

 

차리

조선시대에 차리지역이 우산리라는 이름은 서각산에서 유래되었다 서각산의 서(犀)자가 무소또는 코뿔소라고 하는 소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코뿔소산이라 의미이다

내포지방 중심이 되는 가야산이힘차게 서북으로 휘돌아와 성왕산을 이루고 다시 서쪽으로 넘어와 비룡산을 이루었다.
그곳에서 용트림으로 힘내어 만들어진 것이 서각산(금강산)이고, 또 남은 여력으로 장군산을 만들었다

이 사이에 있는 차리고개는 서산과 태안을 잇는 고개이다.

 

 

32번 국도 옆길을 따르다 산속으로 진입하고

 

건넛말 마을을 통과하여 용도를 알 수 없는 창고에서 식후경을 하고

 

물래산이 멀리 있고 앞쪽으로 역마산이 보이는 등로를 따르면

 

시설을 통과하여 임도를 오르면 물래산이다

 

임도 정상 부분에 물래산

 

물래산 (충남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

물래산에서 좌측(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은 부석지맥이다. <길 주의>물래산 정상에서 금북정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물래산에서 상황봉님을 기다리고

 

늦게 출발한 상황봉님은 결국 계속 임도로 직진하는 바람에 대형 알바를 구하고... 

남이 안한 부석지맥도 하시고...  추카 추카

 

 

금강산 방향으로 전망이 좋다

 

차동마을을 감싸고 금강산과 장군산이 좌청룡이료 장군바위봉이 우청룡이라....

그 앞을 77번 국도가 가로질러 소통을 얘기하고....

 

 

한참을 내려와 안부를 지나면 지도상 106봉

 

이제 팔봉산도 다른 모습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팔봉중학교로 이어지는 77번 국도가 보이고

 

77번 국도 지하도를 건너면

 

 

 

 

진장1리 정류장이 있는 팔봉중학교

 

 

중학교 정문을 통과하고

 

팔봉면(八峰面)은 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팔봉산(八峰山)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1619년(광해군 11)에 간행된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팔봉산은 군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데 여덟 봉우리가 기이하게 산 위에 나열되어 있으므로 팔봉산이라 부른다”라고 하여 그 유래를 설명해 주고 있다.

 

 

후문으로 나와

 

팔봉면은 면의 동남쪽에 위치한 금강산으로부터 북쪽 연화산으로 흐르는 산줄기 자락에 금학리·양길리·대황리·흑석리가,

북서쪽 팔봉산을 경유하여 가로림만으로 머리를 담그는 산줄기를 따라 어송리·덕송리·호리가,

그리고 남쪽으로 장군산·물래산·역마산으로 이어지는 산 흐름 서쪽 자락에 진장리가, 마지막으로 북쪽에 열려 있는 가로림만 가운데에 고파도리가 있다.

이렇듯 팔봉면은 내륙의 적지 않은 산지와 가로림만이라는 천혜의 바다가 결합된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멀리 보이는 통신탑을 보며 마을길을 따른다

 

통신탑을 지나 바로 우회전

 

반대편 마을길까지 따르면

 

우틀하면

 

굴포천 안내판이 하얗게 보인다

 

 

바빠도 굴포 운하지는 봐야지

 

 

굴포운하지(堀浦運河址)는 고려 인종 12년(1134년)부터 조선 중기 임진왜란 직전까지 400여년간 가로림만 상류인 팔봉면 이송리와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흥인천 사이의 좁은 목 3km를 굴착해 수로로 연결하기 위해 공사를 벌였다.

하지만 암반이 많은데다 조수에 밀리는 토사 등으로 인해 결국 실패한 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굴포"를 경계로 "서산시"와 "태안군"이 나뉜다.

 

 

인평3리 정류장을 시작으로 한없이 도로를 따라 걷는다

 

 

양파? 마늘? 금북식구들의 엉터리 농산물 실력에 웃음은 한 없이 이어지는데...

이번 구간은 계속 이렇게 마늘밭으로 이어진다. 다음 날 구간까지도....

 

 

 

사거리수퍼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알바비를 가지고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상황봉님을 기다리고

 

이 곳 마을 분들은 오늘 김장하기로 작정하신 듯 여기저기서 김장하기 바쁘다

이 수펴에서도 김장하고 있는 배춧잎이 겉들여 지니 막걸리 맛을 한층 더해준다.

두부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여기서 직접 만든 두부라니 더욱 맛있게 느꺼진다.

 

 

앞에 보이는 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붉은재이다

 

태안읍 어은리 흙이 븕은 색을 띄웠기 때문일 것이다

 

 

초장부터 너머진 나무가지들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삼각점(169)이 있는 오석산이다

 

오석산 烏石山

충청남도 태안군의 태안읍 도내리에 있는 산이다(고도:169m). 오석산은 예전에 오솔산, 오소산 혹은 두솔산이라고도 하였다

『여지도서』에 "물금산은 군 동쪽에 있고, 산맥이 오솔산(五率山)으로부터 서남방향으로 이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오솔산과 오소산은 오석산과 같은 산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오석산(烏石山)'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는 것은 『조선지형도』이다.

『서산의 지명』에 "오소산(烏巢山)은 옛날 이곳에 까마귀 떼가 서식한 데서 이름이 생겼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까마귀라는 글자가 쓰이기 시작하는 것은 문헌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서부터이다.        네이버 지식

 

 

이제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130봉을 지나고

 

원산후 마을과 고일 마을을 잇는 시멘트도로

 

백화산인 줄 알고 열심히 올랐는데 241.7봉

 

흥주사 갈림길이기도 하다

 

상옥리 홍주사의 은행나무
태안읍 백화산 천을봉 기슭 흥주사 뜰 앞에 충남도 지정 기념물 제 156호로 지정된 둘레 8.4m, 높이 22m의 수령 900년된 은행나무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사랑이 남다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은행나무가 건강해야 마을이 편하고 후손들이 잘되는 것으로 믿고 매년 은행나무에 막걸리 주는 일이 마을의 큰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흥주사 서명권 주지는 "은행나무가 막걸리를 먹으면 청록색으로 변하는 등 건강한 모습으로 생기를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오룡동과 냉정골을 잇는 도로 - 산후리 이정표도 있다

 

다시 힘들게 오르니 군부대 갈림능선에 오르고

 

짬을 내 태안시내 야경

 

군부대가 막아 놓은 마루금을 버리고 좌틀하여 오르면 백화산이다

 

백화산白華山

태안팔경 중 제1경으로 온갖 수석을 모아놓은 듯 기기묘묘한 바위가 서해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지만 갈수록 훼손과 오염으로 시달리고 있다.
백화산은 태안의 진산인데, 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한 때는 산림이 무성하여 특히 거목이 밀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8.15 광복 이후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도벌(盜伐)과 남벌 등으로 인하여 오늘의 암석만이 남아 있는 글자 그대로의 백화산(白華山)이 되었다.

 

 

 

이 백화산은 서산시 팔봉면의 금광산(金光山)의 줄기가 태안의 도내리와 어은리로 벋어 내려 오소산(烏巢山 :一名五率山)을 이룩하고, 여기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동쪽의 상옥리와 인평리 사이로 벋어내려 서우산(犀牛山:一名勿金山)을 이루고

또 한 갈래는 남쪽의 상옥리로 벋어내려 옥녀봉(玉女峰)이 되고,

여기서 곧게 서쪽으로 벋어내려 흥주산(興注山)을 이룩하였는데, 이 홍주산이 태안읍사무소 뒤에서 백화산을 이루어 놓았다

 

 

"봉화대지" 이정석도 있다

동쪽으로 서산의 북주산과 남쪽으로 부석의 도비산과 연락을 취했던 곳이라고 한다

 

 

태안읍내 야경

 

태을암 방향으로 내려오면 쌍괴대 바위도 만나고

 

옛날에 회나무 두그루가 자라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태을암 지붕이 보이고

 

태을암 太乙庵-

태을암에는 고려 때 작품으로 추정되는 태안마애삼존불(보물 제432호)이 있어 우리나라 마애삼존불의 초기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마애삼존불상 앞에서 바라보는 태안반도 조망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있다.

「태을암」이란 명칭은 국조(國祖)인 단군영정(檀君 影幀)을 안치(安置)시켰던 태일전(太一殿)에서 연유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이를 실증(實證)할 수 있는 문헌이 없으니 신빙성이 희박하다

 

태안마애삼존불을 확인하려 했으나 시간상 ㅉㅉ

 

외국 문물의 유입 통로인 태안반도에는 안전한 운송을 비는 마애불들이 많다.

태안 백화산의 마애삼존불, 서산의 마애삼존불 등이 금북정맥의 마루금 인근에서 풍요와 태평을 기원하 듯 천 년 세월을 지켜왔다. 

 

 

백조암도 만나고

 

매일아침 태양이 솟아 오를 때와 석양이 질 무렵이면 제비,꾀꼬리,물총새등많은조 류들이 동굴 안에 모인다고 해 백조암이라 이름 붙여졌나?

 

 

도로 따라 오다 다시 산속으로

 

 

낙조봉도 만나고

 

동경대

 

옛날 선인들이 이곳에 올라 각 암벽에 기념으로 刻字한 글귀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태을동천, 일소계, 감모대, 어풍대등....  이 동경대도 그 중에 하나이다

매모양의 낙조봉 소성팔경의 하나로 낙지봉 또는 동경대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돌탑에서 우틀해야 하는데 좌틀하는 바람에 태안초등학교 방향으로 하산하고

 

교장바위를 만나다

 

1894년 홍주성에서의대패와 해미와 서산전투에서 연이은 패배로 이곳 백화산 중턱 교장바위에서

동학농민 혁명군은 구차한 목숨을 일제에 맞길 수 없다며 맞서 싸우다  처참하게 수많은 혁명군이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기도 하다

목을 졸라 죽인다는 絞殺과 몽둥이로 때려 죽인다는 杖殺을 줄여서 絞杖바위라고 이름지어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고 한다.

 

 

저녁이라 확인할 수 없어 자료사진 - 태안읍에서 본 교장바위

 

 

태안초등학교를 통과하고

 

다시 읍내 도로를 따라 태안여고 정문에 도착 오늘의 정맥산행을 마감한다

 

처음으로 1박2일이라는 경험을 위해 보물상자님이 기다리고 있는 태안 터미널로 향하는데...

충청도의 어감따라 말을 믿고 걸어가는데...

도대체 금방이라고 했던 터미널이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다....

2.5km는 걸은 것 같다. 가깝다는 충청도의 말이 이렇게 우리에게는 길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배고픈 배를 쥐어 잡고 그래도 보물상자님을 만났으니 기운내야지

 

1박2일이라 시간이 많은 줄 알았는데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결국

잠자리 복불복도, 회 한 접시의 추억도, 그져 한낮 희망사항이 되었고...

삼겹살로 늦은 저녁을 마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야식

 

다음 13차 얘기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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