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10 -  가야산 구간 :  나본들고개에서 가루고개까지                                                 

                                             

 

언제 : 임진년 12년  미틈달 사흘 흙날

 

누구랑 : 바다사랑 대장님과 금북정맥 식구들

 

어딜 :  나본들고개-한티고개-가야봉-석문봉-일락산-웅천리임도-상왕봉-가루고개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산행거리 및 예상시간 : 18km,   소요시간(8시간) (바다사랑 대장님 공지사항)

 

 

 

금북10차 구간정보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달인 미틈달, 11월 

무르익고 있는 가을 끝자락과 함께 내포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예산군과 서산시를 향한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금북정맥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당일 산행이라는 경험으로 새벽부터 마음을 바쁘게만 하는데....


 

 

 

첫차인 06시30분 예산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남부버스터미널에서 금북식구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광명사거리에서 첫 전철을 이용했는데도 도착하니 별로 시간이 남지 않는다

어찌됐든 한 분도 늦지 않게 정시에 서울을 출발하고...

 

 

한서대학교 정문에서 내리니 08:00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약간의 시간동안 마트에서 간단히 요기를 채우고

한서대 정문에 보이는 암봉

 

 

582번 운산행 버스를 타고 나본들고개까지 이동한다.

 

 

9차에 날머리 였던 나본들 고개

 

나븐들(납은들)고개

나븐들마을은 광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넓은 들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충청남도 예산군의 동부 대술면 화산리 능미 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1872년지방지도』(신창) 위쪽 예산 경계에 '납운현(納雲峴)'이 확인된다. 『조선지형도』(예산)에는 대술면에서  아산 도고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가야할 가야산과 원효봉이 조망된다

 

나본들고개의 들머리

 

잠시 진행 후 리본이 보이는 앞 봉 능선을 버리고 GPS의 등로를 따라 옆 계곡쪽으로 방향을 틀고

 

 

GPS능선을 따라 올라오다 바라본 마루금, 역시 올라와 보니 확연히 보인다

소국님의 열정으로 조금 돌와오기는 했지만 마루금에 충실한 산행이 되었다

 

449봉 전망이 좋은 암봉

 

거의 모든 정맥꾼들이 올랐던 뒷산이 앞에 보이고

 

예산 덕산면과 서산 해미면의 경계에 있는 뒷산에서

 

정맥 반대로 능선길이 갈산지맥이란다

 

정맥꾼들이 올라오는 길을 만나고

 

계속진행하면 한티고개를 만난다

 

이 고개는 당시 죽음의 길로 악명 높던 순교자들의 압송로로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그 기록이 나온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군 해미면을 가르는 가야산의 끝자락에 자라잡은 한티고개는 교우들이 무리지어 살던 면천의 황무실 마을과 덕산의 용머리 마을, 배나드리 마을 등지에서 집단으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 군졸들이 압송하여 넘던 고개이다.

 

 

 

해미는 일찍이 천주교가 전파된 내포 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서 유일하게 진영이 있던 군사 요충지였다.

1418년에 병영이 설치되었고, 1491년에 석성이 완공된 해미 진영(사적 116호)은 1790년대로부터 백 년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무려 3천 명이나 국사범으로 처결한 곳이다.

 

 

 

이곳 한티고개는 1790년부터 1880까지 내포지방에서 주님을 배교하기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한 수 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매질과 압박속에서도 해미로 끌려가면서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넘던 고개이다.

 

 

 

 

유난히 금북구간에 천주교 성지가 많은 이유를 알게 된 고개이다

 

한티고개를 이루는 봉은 석산개발로 산 절반이 잘려나간 채 기형적인 모습으로 우리의 앞길을 안내하고 있다.

산이 아니라 거대한 비석의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만 하는데....

가야산 일대에서 이같은 석산개발이 4-5곳이나 된다. 가야산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양질의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어 개발업자들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한서대학 1시간이라는 푯말의 봉을 지나고

 

한서대학교와 산수저수지를 조망하고

 

아직 갈길은 멀고 앞에 보이는 억세봉마져 멀리만 느껴진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한서대정문에서 보았던 암봉이 보인다

 

전망좋은 봉에 올라

 

한서대 옆 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동쪽으로 가야할 억세가 있는 봉이 보이고

 

알려드립니다라는 표식이 붙여 있느 봉을 지나

 

지도상 억세가 표시되어 있는 643봉에 올라 사방이 확 트인 조망을 마음껏 즐긴다

 

우리가 달려온 정맥길

 

억세와 한서대학 방향

 

이제 가야산이 지척이다

 

가야산의 흉물로 마루금을 뺴앗긴 채 그져 우리는 너덜길로

 

원효봉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절을 세워 산명을 원효봉이라 한다고 전하며, 연엽봉은 산 모양이 연잎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가야봉 동남쪽에는 원효봉이라는 봉우리, 산 중턱에는 원효대라는 전망대, 그 주변에 원효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이름 때문인지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 가던 길에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토굴이 가야산 자락에 있다고 말한다.
원효대사가 중국으로 가기 전 토굴에서 해골물을 마신 후 一切唯心造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는데 그 장소가 가야산 자락의 토굴이라 하여 '원효순례길'까지 생겼다

 

 

관리가 안돼 무너진 철망과 암벽과 사이를 -  포복절도할 일이다

 

가야산 정상

 

예산군, 서산시, 당진군에 걸쳐 있는 가야산(678m)은 합천의 가야산과 동명이산(同名異山)

가야산 (伽倻山)

가야산은 백제시대 때 상왕산(象王山)이라고 불렸다는데, 통일신라시대 이 산 밑에 '가야사'라는 절을 지으면서 산 이름이 가야산으로 바뀌었다는 유래를 갖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이 절에서 나라가 주관하는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도 덕산현감이 봄·가을, 일년에 두 번씩 역시 이 절에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석문봉과 옥양봉이 보이고

 

'가야'는 부처가 6년간 고행 끝에 도를 깨쳤다는 불교 최대 성지 중 하나인 인도 동북부에 있는 도시 '붓다가야'에서 비롯됐다.

백제시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서해를 건너온 불교문화를 가장 먼저 품은 곳이 바로 충남 가야산으로, 그 흔적은 현재에도 충남 가야산 일대 곳곳에 남아 있다

 

 

요즘 대세인 말춤을 추고 있는 교회에서 온 사람들인 듯

 

충남 예산군과 서산시 등에 걸쳐 있는 가야산(677.6m)은 ‘내포(內浦)문화권’ 중심이다.

내포문화권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의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예산 서산 보령 홍성 당진 태안 등 충남 서북부 지역을 이르는 말.

덕숭산에서 뻗어나가다 솟구쳐 일어난 가야산은 아산과 예산을 가르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포 평야로 불어 닥치는 외풍을 막아준다

임진 병자년 두차레의 난리도 이 곳에 미치니 않았고, 토지는 비옥하고 평평하며 넓고,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대대로 사대부가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가야할 석문봉과 일락산 방향

 

 

쉼없이 달려온 가야산 오름길 잠시 쉬어가야지

있는 그대로 식탁으로 사용할 줄 아는 금북정맥 식구들, 자랑스럽다

 

남연군묘로 가는 쉼터 갈림길

가야산 산자락에는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으로 얼려진 남연군묘가 있다

 

 

석문봉으로 암봉이 이어지고

 

가야산 석문봉  - 사진 바다사랑님

 

석문봉은 가야산 봉우리중에서 가장 바위가 많은 봉우리로, 이곳에서는 옥양봉으로 가는 능선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석문지맥인 옥양봉  방향

 

옥양봉과 석문봉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옥양봉은 석문봉에서 약2km떨어진 곳에 있는 해발 621m의 봉우리로, 석문봉과 산행시점이 같기 때문에 옥양봉과 석문봉을 연결하여 산행하기가 쉽다.

 

 

 

석문봉이나 옥양봉 모두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분명히 다른 느낌을 주는데 , 석문봉의 경우는 오르고 내리는 등산로가 계곡코스이며, 옥양봉의 경우는 모두 능선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석문봉은 정상부만 암릉을 느낄 수 있지만, 옥양봉의 경우는 바위 전망대가 곳곳에 있고 석문봉에 비해 훨씬 아기자기하다. 하지만 계곡 코스가 없기 때문에 물이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석문지맥

 

 

 

가야할 일락산 방향과 돌탑

 

이정표가 지워져 버린 갈림길을 지나

 

보원사지 방향으로

 

일락사가 있는 계곡 방향

 

거송 소국님

 

 

용현계곡 갈림길

용현龍賢 마을 중간에 위치한 논에 용이 살고 있는 못이라는 유래에 어울리게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솟대가 있는 사잇고개이다

 

 

일락사로 내려가는 임도가 있다

 

정자가 있는 일락산이다

 

(日洛山, 521.4m) 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 해미면 황락리와 운산면 용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일락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 듯

 

 

 

 

철탑을 지나고

 

일락산부터 소나무가 울창함을 자랑한다

 

길도 넓고

 

황락리 갈림길에서 보원사지터 방향으로

 

가을 오솔길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밟는 소리를...

우리도 언젠가는 소멸해가는 존재일진데.... 자연만물이 모두 소멸해 가 듯이

이제 몇 구간 남지 않은 정맥길에 붙여 보는아쉬움을 달래는 듯도 하다

 

 

임도 삼거리에서 전망대 방향으로

 

개심사와 마애여래삼존상 갈림길이기도 하다

 

서산마애삼존불상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은 용현계곡의 인암(印岩)이라 불리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흔히 마애불은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이 마애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계곡 안쪽에 자리잡은 탓에 1,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조용히 숨어 있다가 1959년에야 발견되었다

 

 

상왕산 오르다 본 수정봉

 

이 부처는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마애불이라는 평가도 받지만 뭐니뭐니 해도 빼어난 조각솜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불인 여래입상의 미소는 부드럽고 푸근하다.

어찌 보면 장난스레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오른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이요, 왼손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여원인(與願印)이다

이 불상을 제작할 당시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에 밀리면서 국가적 위기에 빠져있었다. 허나 여래입상의 넉넉한 미소에서 백제의 재부흥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가던 옛 백제인들의 희망이 엿볼 수 있다    

 

 

소나무 터널

 

하늘을 이불 삼아 나무가지를 가지런히 하고 누워, 만추의 아쉬움을 달래려 하고

가지사이로 가볍게 내려 놓은 햇볕을 그림자로 드리우고 마지막 가을의 끝자락을 수 놓는다

살랑대는 가을 바람 한올이라도 더 느끼려 더욱 크게 기지개를 펴고 있는 솔잎들이

이 가을 길을 걷는 나를 저절로 하늘 공원으로 인도한다

 

 

전망대 앞이다

 

보원사지 방향으로

 

계속되는 가을 오솔길

 

걸어도 걸어도 싫지 않은 이 길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소나무 향기에 취해 걷는 이 길,

여기에 동행하는 정맥식구들이 있어 마냥 행복했던 이 길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그림으로 마음 한켠에 그려보련다.

 

 

개심사 입구

 

개심사(開心寺)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자락에 자라잡고 있는 사찰이다.

개심사는 작은 절이지만 가야산을 대표하는 사찰 가운데 하나로 충남 4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개심사 길 끝에 경지(鏡池)란 연못이 있는데 풍수상 뒷산인 금북정맥의 상왕산(象王山․307.2m) 코끼리가 목이 말라하니 물이 떨어지지 말라고 일부러 파놓은 비보(裨補) 연못이다

 

 

내포문화 숲길 표지판도 만난다

 

보원사지 마지막 방향에서 작별을 구하는 쉼터에서

 

보원사(普願寺)터

폐사된 절터만큼이나 잡초에 우거진 터에 석탑과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최대 전성기인 고려 초기에 1000명이 넘는 승려들이 사용했다는 석조는 깨어진채 방치되고 있다하니....

5층 석탑은 고려때 작품이면서도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의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이곳이 옛 백제의 땅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서산의 금북정맥 산줄기에는 보원사지가 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절은 6점의 석조 유물이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성을 자랑한다. 보원사지 내에 100여개의 작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하니 절의 움장함을 상상하게 한다. 현재는 마을과 목장, 도로들이 절터를 장악해 유물들만 덩그라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표지판에 금북정맥이라 표시된 방향으로

 

 

사람의 통행을 막기 위한 울타리가 아닌 목장의 울타리를 만나 건너고

 

초지와 마루금사이를 따라

 

서해로 확트인 모습이 대간에서 봤던 삼양목장과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대간길에서 만난 삼양목장은 준령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모진 동해의 찬바람을 막아주어 천해의 요새를 자랑했지만

이 곳 목장은 서해의 바닷바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면서 자연에 순응하 듯 살아가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물론 초지를 만들면서 발생된 환경오염은 다른 문제이지만....

 

 

잠시 임도를 따르다

 

다시 목장길을 반복한다

 

상왕산 갈림길을 만나 상왕산으로

 

오랫만에 잡목구간도 지나고

 

상왕산

 

 象王山(309) 갈림봉

합천 가야산등 우리나라에 7개 정도의 가야산이 있는데,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기달산(怾怛山)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예산 가야산도 상왕산, 서우산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야산의 주봉이 상왕봉(象王峰)이고 또다른 이름이 상왕산, 설산인 것을 보면 불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범어에서 ‘가야’는 코끼리(象)를 뜻하는 말이고 ‘상왕’은 <열반경>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가야’는 인도 남부의 가야(GAYA)를 음역한 것으로 그 남쪽 30리에 부처님이 성도한 땅, 즉 불교의 성지 부다가야(BUDDAGAYA)의 주요 설법터로 신성시되던 가야산에서 그 이름이 전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야산을 상왕산, 상왕봉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처님이 계신 산이라고 믿고, 또 부처님께서 오시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불국토 사상에서 유래한 이름인 것이다

 

 

마지막 날머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철탑을 지나고

 

소나무와 울타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숲길로 진행하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밧줄로 연결된 길로 들어서지 않아야 한다. 왼쪽으로 마루금이다

 

후미를 기다리다 삼화목장을 배경삼아 휴식에 들어가고

 

삼화목장                               

지금도 연세드신 분들은 삼화목장이라 말하면 못알아 들으시고 김종필 목장이라고 해야만 그제서야 아~ 거기! 하신다고 한다.

5·16혁명의 주역인 김종필씨는 서산 운산면 일대 드넓은 야산을 목초지로 바꿔 삼화목장을 만들었다.

무려 6백38만평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의 이 목장은 80년 신군부가 부정축재 재산으로 환수해 축협에 넘겼다.

 

 

 

지금은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로 씨소 등 2300여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이 목초지 역시 산림을 훼손하고 농민의 삶터를 잃게 만든 현장으로 꼽힌다. 

 

 

목장길따라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 님 함께 집에 오는데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 님 함께 집에 오는데 투랄랄라 투랄랄라

이 노래를 들을 때만 해도 이런 목가적인 풍경을 많이도 그리워 했었는데...

보고 배운 것 없이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었기에, 더욱 서구적인 모습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이 풍경을 보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까지 든다

 

 

문도 넘어가고

 

다시 숲길로

 

철탑도 만나고

 

숲길을 나와 도로를 따라

 

축사도 보이고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

 

가루고개이다

 

다음 들머리에 있는 가루고개 표시

가루고개                               

소중1리 표지석이 있는 운산면 갈산리에서 태봉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주변에 칡이 무성했다고 한다

 

 

소중1리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로 해미읍성으로 이동하고   -  사진 봉서산님

 

버스안 풍경 - 사진 봉서산님

 

해미읍 우체국이 있는 사거리

 

해미읍성이 보이고

 

해미읍성은 고창읍성, 낙안읍성 함께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구한말 수많은 순교자들이 끌려와 처형된 순교지이기도 하다.

 

 

진남문과 내부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 성문은 동ㆍ서ㆍ남 세 곳에만 있고 북에는 암문(暗門)이 있으며,

해미읍성의 주 출입문인 진남문(鎭南門)은 다듬어진 돌로 된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이다..

 

 

해미읍성 바로 옆에 있는 오늘의 뒷풀이 장소

 

오늘도 역시 내포막걸리로 내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기회가 되었다.

물론 이 가게에서 팔지 않는 막걸리라 슈퍼에서 보물상자님이 사온 막걸리로.....

 

 

뒷풀이 후 직행버스를 타기 위해 - 직행버스를 타고 서울 남부 터미널로 직행한다.

 

 

내포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가야산

그 곳에 중심을 잡고 살아 가야만 했던 서산과 예산군민들의 삶의 예기를 느낄 수 있었던 금북정맥길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백제의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는 서산 마애불이 다시 그립고

'터'의 작가 손석우씨가 묻히고자 했다던 가야산자락의 모습에서

우리는 못다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음에 감사할 뿐이다

 

이제 몇구간 남지 않았네요

끝나는 구간까지 멋진 산행길이 되길 기원하면서....

 

금북정맥 식구들 수고하셨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신 산우님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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