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04 :  국사봉  -  덕고개에서 곡두고개까지

         

                                     

 

언제 :  임진년(12년) 견우직녀달 엿새 쇠날 ~ 이래 흙날

 

누구랑 : 바다사랑 대장님과 금북정맥 식구들

 

어딜 :   덕고개에서 곡두고개까지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아름다운 달 견우직녀달 7월,  3주라는 다소 긴 시간의 아쉬음을 달래려 덕고개로 달려간다

3주전 취암산 구간,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혈동굴에서 옛부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해서

취암산을 지나면서 가뭄이 가장 심한 충청지방에 많은 비를 기원했는데

마침 출발직전까지 비가 전국의 대지를 적셔주어 우리의 마음도 가볍게 그 천안땅으로 출발한다

 

 

 

금북4차부터 함께할 정맥의 새로운 식구

 

우리가 덕고개에 도착하니 01시 20분이다

 

빨리 도착한 시간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의논하고 

 

02시30분에 덕고개를 출발한다

 

덕고개 바로 아래로는 1번 국도와 627번 지방도에서 갈라져 나온 도로가 정맥을 막아서고 있다.

신1번국도를 가르는 고개가 빛고개이다

 

 

이번 구간의 특징은 잃어버린 정맥구간이 너무 길어 차량으로 이동하는 구간이라 배낭없이 출발하고

 

구1번국도상  덕고개 표시석에서 천안방면으로 약 100미터 가다가 유천리가는 무인건널목으로 경부선 철길을 건넌다.

    

 

건널목을 지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오류건널목이다 - 서울의 오류역이 생각나네.....

 

누구나 건널목과 기찻길애 대한 추억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거나 들어 알고 있다

옛날이야 보고 듣는 것이 별로 없으니 기찻길이 최고의 놀이터였고, 꿈을 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으리라

기차의 굉음과 바퀴의 역동적인 소리는 많은 영화에서 심리적인 갈등의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기찻소리를 철길에 귀를대고 듣던 위험천만한 어릴 때 추억들....

건널목의 신호를 무시하고 걷다가 많은 희생을 감수해햐 했던 건널목.....

 

 

건널목을 건너자마자 유천리 반대편인 좌측으로 간다

 

1번국도옆 포장된 농노길을 직진하면 지하차도가 나온다.

 

지하차도를 통과하면서 다시 좌측 주유소 방면으로 그리고 주유소를 뒤로 하고 직진

 

전의 조경수 단지를 지나면

 

올해 7회째를 맞았던 전의 조경수 묘목 축제는 연기군 전의면 일원에서 생산되는 각종 조경수, 특용수, 약용수, 유실수 등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판매키 위한 생산 농민들의 묘목 직거래 축제이다고 한다.

 

 

 

주유소 뒷길을 지나 국도1번도로 갓길로 약 50미터 정도 가면  전의조경수마을 입간판이 나오고  입간판에서 2번째 전봇대옆 숲길로 접근하여 정맥길 접속한다

 

숲길로 접어 들면서 본격적인 정맥산행은 시작되고

 

짧은 구간이 끝나고 페타이어계단길을 내려오면 성요샙요양원이 있는 도로로 내려온다 

 

전의 요샙의 집을 지나

 

끊겨진 구간의 접속을 위해 다시 차에 오르고

 

 

요셉마을을 내려와 691번도로에서 양곡2리 마을회관까지 차량으로 이동 

 

 

 

부대에 의해 끊긴 구간

 

성요샙치매센터에서 356봉 안부까지 도상거리 9.25km는,  정맥능선상의 군부대인 제111탄약창이 주둔해 있어 출입통재구간이다.

굳이 정맥길에 군시설이 있어 유감이지만, 국가 안보가 우리를 대신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따를 수 밖에....

빠른 시일안에 우리의 정맥길이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양곡2리 마을 회관에 도착한다

 

양곡리는 국수봉 기슭에 자리한 산촌마을이며 마을 남쪽으로 조천천이 흐른다. 압곡리, 상세곡리, 하세곡리, 양지리를 병합하여 양지와 압곡의 이름을 따서 양곡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느실, 봉두미, 아래가느실, 주막뜸마을 등이 있다. 가느실마을은 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세곡이라고도 불린다. 봉두미마을은 봉의 머리와 같이 생긴 산인 봉두산 앞에 자리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래가느실마을은 가느실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막뜸마을은 마을에 주막이 있다 하여 칭하게 된 이름이다.   

      [출처] 양곡리 [陽谷里, Yanggok-ri ] | 네이버 백과사전

 

 

양곡2리 마을회관에서 실개천을 따라 시멘트포장도로 타고 오른다

 

계곡을 끼고 진행하다 논 가운데 있는 명산사 갈림 논길을 지나고

 

정맥길 접속을 위해 숲길을 접어 들어 어렵게 올라 능선을 잡는데 성공

 

정확한 정맥능선을 잡기 위해 올라, 다시 정맥능선을 발견하고

 

드디어 정맥능선잡기에 성공하고

 

정맥이나 지맥을 하다보면 끊긴 구간을 이어가는게 쉽지않다. 더구나 야간에는 더욱 그렇다

도로처럼 짧은 구간 끊긴 구간은 최대한 마루금에 충실한 정맥산행이 되어야 하지만 이렇게 통째로 끊긴 구간에서는 굳이 마루금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지 어차피 우리가 가는 정맥길은 정확한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이 기본이지만, 정맥길에 살아 있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마루금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각개전투로 흩어진 산우님들 하나로 모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정맥에 충실했느냐 하는 것만 남을 뿐이다

 

 

송전탑이 있는 곳에서 달님도 바라보고

 

바로 앞의 송전텁을 조망하고

 

다시 나타나는 송전탑

 

철탑 바로 앞으로 도로는 이어지지만

 

철탑 바로 앞에서 숲으로 능선은 시작되고

 

국사봉 갈림길에서 휴식겸 휴게소에서 간식을 하지 않은 탓으로 약간 이른 아침도 하고

 

 

3개 시군 경계봉(연기군 전의면. 천안시 광덕면. 공주시 정암면)으로 연기군과 작별하는 국사봉이다

 

국사봉(國師峰, 國士峰)의 어원은'신하가 머리를 조아려 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울 상도동, 문경, 거제에 있는 국사봉의 유래에는 모두 이런 유교적 해석이 붙어 있다고 한다.

공주군의 지도를 자세히 보면 국사봉이 유난이 많다. 국사봉의 유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국사봉에서 본 가야할 능선 - 우리는 저 철탑들을 기준으로 계속 이어갈 것이다

 

철원의 국사봉에는 '나랏님이 제사를 지낸 곳'이란 조금 다른 유래가 있다.그런데 임금님은 무슨 제사를 지냈을까?

경남 의령의 국사봉의 유래에서 힌트를 찾는다.'임금이 내시나 지방관속을 시켜 서낭신에게 치재를 드렸던 국사당(國師堂)과 연관이 있다'
그럼 국사당은? 바로 서낭당(무속신당)이다. 마을 사람들이 돌무더기 쌓아놓고 금줄 걸고 치성 드리는 바로 그 서낭당,
전국의 국사봉에는 예외 없이 이 국사당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국사봉 삼각점

 

일제와 해방 이후 남북의 정치권력이 제각기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의 서낭당을 불도저로 싹 밀고 도로를 내기 전만 하더라도, 조금만 으슥한 산 모퉁이나 마을 초입에는 모두 국사당이 있었다.
그래서 '국사당이 있는 산'이란 뜻에서 '국사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국사봉의 상황봉님

 

하지만 유교적 가르침이 사회를 강하게 지배했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전국의 수많은 '국사봉(國師峰)'은 '국사봉(國士峰)'이나 청계산에 있는 '국사봉(國思峰)'처럼 '나라를 생각하는' 이름으로 하나 둘 개명되기에 이른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낭산, 선황산, 국사봉으로 불렀을 겁니다. 결국 전국의 저 수많은 국사봉들은 유교관념보다는 무속신앙과
오히려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자료 http://ublog.sbs.co.kr/lecianne?targetBlog=69799  

 

 

국사봉은 전월지맥 갈림봉이기도 하다

 

전월지맥갈림봉 - 

금북정맥이 충남 연기군 전의면 덕고개에서 차령고개로 가면서 가장 남쪽에 솟은 國士봉(△402.7)에서 정맥은 북쪽으로 가고 한줄기를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공주시 정안면과 연기군 전의면의 경계를 따라 사기소고개(210)를 지나 등고선상 290봉(1.8)에서 남쪽으로 天台산(△392.1, 단맥)을 떨구고 동진한다

   

 

국사봉갈림길에서 정맥방향을 따라 내려서고

 

이제 새월의 덧없음을 느끼에 해주는 되재 갈림길도 지나고

되재가 있어 마을이름이 붙여진 되재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세월의 흔적만 겨우 간직하고 있다.

되재마을에 아파트만 있었어도 이 길은 신작로가 되어있었을 텐데..... 

 

 

 

되재 마을은 급한 비탈길이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되재는 되돌아간 고개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중엽에 한양에서 널리 알려진 地官 한사람이 묘자리를 찾기 위해 차령산맥 줄기를 따라 오다가 지금의 사현리에 이르러 광정리쪽(현 정안 농공단지)을 바라보다가 지형이 정안천으로 인해 뚝 끊어진 것을 보고 묘자리가 없어서 한양으로 되돌아 갔다하여 되재 했다고 한다

 

 

421봉으로 가기 위한 봉도 지나고

 

계속이어지는 능선길

 

아직 희뿌연 안개인지, 구름인지? 없는 조망마져 더욱 힘들게 한다

 

헬기장이다

 

국수봉직전 걸어온 아름다운 숲길의 모습도 담아보고 - 만화의 한 장면?

 

국수봉國秀이다(382.8m)

 

나라를 지킨다는 거창한 한자의 국수봉의 어원은 알 수가 없으나, 우리가 곧 만나게 될 봉수산과 관련이 있지 않나 살피려 했으나 조망도 없고, 날씨까지 도와 주지 않는다.

 

 

국수봉 삼각점

 

이제 공주의 자랑 밤나무 단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더욱 커진 밤나무 단지

 

118번 철탑을 지나고

 

임도를 따라가면

 

가야할 342봉도 담아 보고

 

342봉을 너머

 

희미한 갈림길도 지나고

 

철탑을 지나니

 

 

차령고개이다

 

190의 차령고개는 23번국도의 고개로, 천안논산고속도가 쌍령고개이고, 23번국도 위가 차령이다

 차령고개는 원터고개라고도 불린다.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큰 고개로 옛날에 한양을 드나드는 삼남대로의 고개로 남도 사람들이 아끼는 귀중한 고개라고 한다.

지금의 천안-논산 고속도로 상의 차령터널은 차령이 아닌 쌍령(雙嶺)고개이며, 원래의 차령은 쌍령산(봉수산) 동쪽 국도 23호 선상에 있다. 『1872년지방지도』(천안)에 공주와의 경계 지역에 '차령(車嶺)'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도 광덕면 봉수산(烽燧山) 동남쪽 원덕리와 공주 정안면 인풍리 경계에 기재되어 있다.

 

 

차령고개에 있는 연못

 

삼남길은 한반도 동맥과 같은 길이다. 조선시대엔 군사는 물론 진상품이 이동한 경로였고, 과거를 보거나 장사를 위해 선조들이 한양으로 간 길 역시 다름 아닌 이 길이다

전남 해남에서 시작되는 이 삼남길은 강진, 나주, 광주, 전북 완주, 익산, 충남 논산, 공주, 천안, 경기 평택, 수원, 서울 남태령, 남대문까지 1000리가 이어진다

 

 

차령고개에 있는 안내판 - 쌍령고개의 또 다른 어원

 

 차현(車峴-차령) 이남 공주강(금강) 밖의 산형지세가 배역(背逆)하여 인심도 그와 같으므로 조정에 등용치 말라는 내용도 있다. 이 「훈요십조」 상의 차현이 바로 차령고개이다.

 차령산맥은 이 고개 지명을 이용하여 유래된 것이다

 금강의 지류인 정안천(正安川)과 곡교천(曲橋川)이 여기서 발원하며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출처] 차령 [車嶺 ] | 네이버 백과사전

대간의 육십령이 영남과 호남의 경꼐였다면, 이 고개를 경계로 하여 호서(湖西)와 호남(湖南) 지방을 구획해 왔다,

 

 

 

역사적으로 ‘차령’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찻길 고개’가 되는데, 왕조시대에 자동차가 있었을 턱은 없고 수레나 가마가 넘던 ‘관도’였다. 이 고개 옆으로 ‘쌍령 고개’가 있는데 부보상이거나 농투성이들이 발품을 팔던 ‘보조 도로’였다.
차령고개는 북방 요새의 역할을 하면서 금북정맥의 산줄기를 이루어 금강의 물줄기를 감싸고 있으니 새로운 왕도 건설지로서 웅진(공주)의 지정학이 돋보였을 것이다.

 

 

 

차령고개를 둘러가는 코스보다 20리가 짧다는 지름길이 쌍령이다.  차령터널. 바로 앞에서 35번 구도로로 접어들면 다시 쌍령고개로 이어지는 옛길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흙길로 폭 2m 남짓한 길을 따라 양옆으로 빼곡히 들어선 소나무가 흙길과 함께 절경을 만들어낸다도 하고.
차령이 수레나 우마차가 다닌 큰길이라면 쌍령은 그야말로 서민들 길이었을 것이다. 차령터널이 뚫리면서 쌍령은 더 소외를 받았는데, 그 덕에 옛길의 정취를 고스란히 갖고 있으니.....

 

 

중단상태의 리조트

 

23번 국도에 차령터널이 생기면서, 차령도 없고, 사람도 없고,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한때 누렸을 영광의 장면들을 생각하면 씁씁하기만 하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차령 입구의 대나무

 

다시 임도를 만나고

 

해맞이 표지석이 있는 망배단이다

 

망배단이 있는 337봉 삼각점

 

 

쌍령산 봉수대가 있는 봉수산

 

366m의 봉수산의 쌍령산(해발345m) 봉수(雙嶺山 烽燧)는 조선시대 초기에 설치된 봉수대로 둘레가 60m, 면적은 264㎡이고 남쪽 공주의 고등(정안면 북계리와 의당면 두만리 경계에 위치한 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천안의 대학산 봉수로 전달하던 곳이다. 일명 팔풍정으로 일컬어지는 이 봉수대에 오르면 공주와 천안시까지 60리 길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2001, 7, 25, 공주시장

 

설광봉도’(雪廣鳳道)란 아산과 천안, 공주, 예산지역을 경계하는 설화산과 광덕산, 봉수산, 도고산 4개산을 잇는 40km의 종주코스로 V자를 이루고 있어 ‘V루트’라고도 한다.

 

 

봉수대 터인듯한 봉수산 정상

 

지명 유래는 산에 가파른 쌍고개가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 공주 이남에 있는 여러 고을의 조세와 진상물품이 모두 이 고개를 통해서 아산의 공세포(貢稅浦)와 한양으로 운반되었는데, 문종 때 의적 안수가 이 고개를 지나는 조세와 진상물품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며 백성들의 호응을 크게 받았으나, 끝내 유의신에게 잡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경천(敬天)의 상여가 지날 때 양반의 교자도 멈추고 상여에 예를 올려야 했으며, 이곳엔 중만 해치는 호랑이가 있어서 중들이 이곳에서만 호랑이를 두려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한다.

조선지형도』에는 '상쌍령(上雙嶺)'과 '하쌍령(下雙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산의 아래쪽에는 봉수산이 있다.

 

 

철탑전에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도 담아보고

 

철탑을 지나

 

사이로 보이는 가야할 능선 아래에 있는 골프장도 담아보고

 

골프장과 나란이 어깨를 하고 있는 고속도로

 

안내문도 지나고- 지도상의 인재원고개인 듯

 

다시 숲길로

 

다시 차령터널 위에 나타나는 안내판 - 안내문 반대편으로 쌍령고개 있을 것이다

 

갑자기 상황봉님이 다리를 접질려 진행은 더욱 더디어만 가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우회길을 선택한 것이 오히려....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 속이라지만, 산속도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길하나에 산의 모든 것인양 착각하고 진행을 했으니, 할 말 없다

 

 

무조건 철탑이 있는 봉을 지나 철탑을 관리하기 위한 능선을 힘겹게 오르니

 

골프장 내의 도로에 접어 들고서야 모든 것이 잘 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상황봉님의 의지도 꼭 가야 한다고 해'

다시 오늘이 산행의 도우미인 철탑을 향해 무조건 오른다.

 

 

어딘지 모를 정맥 능선에 접어 들고 - 시간을 보니 1시간이 지났구나

 

철탑을 만들기 위해 만든 임도도 세월이 흘러 숲처럼 변해가는 임도에서 능선은 이어지고

 

개치고개가 있어 개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개치고개285이다 

 

개치마을 쪽오로 이어지는 길위에 산신각처럼 보이는 절(?)도 보이고

 

신록이 우거진 숲길을 이어가니

 

삼각점이 있는 420.9m봉이다

 

 

 

안부사거리도 지나고

 

앞에 보이는 저 봉이 480봉이겠지 했는데 또 나타나고... 480봉 직전 두번째 봉 정상

 

3단으로 되어 있는 봉우리 세개를 넘으니 480봉이다

 

지도상에 없는 안부 사거리도 지나고

 

 

 

 

헬기장이 있는 440봉이다

 

지도상의 490봉을 향한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니 잠시 쉬어보고

 

앞에 보이는 봉이 생각보다 낮은데... 390봉의 오기란다   아휴 ~~~  안도의 한숨

 

곡두고개이다 - 우리는 좌측으로 공주 쪽 호계터널 입구로 하산한다.

 

곡두고개 이정표

 

310의 곡두고개는 도로가 닦이기 이전에는 공주시 정안면 주막거리와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를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였으며 고개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꼭두재라 불렀다고 한다

호계터널 천안 쪽에는 공주 정안면 산성리에서 천안 광덕면 광덕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곡두재가 있다.

호계터널 공주에서 곡두고개로 오르기 전에는 ‘주막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곡두재를 넘기 전에 쉬어가던 과거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듯하다

 

 

공주쪽 호계터널이 지나는 곡두고개

 

주막거리의 자연마을인 먹방이는 산들이 모여 있어 늘 침침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산방이는 높은 산이 마을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을이 꼭 산방같이 생겨서 생긴데서 유래하였고,

주막거리는 주막이 자리잡았던 곳이다

물천뱅이들은 물이좋아  옛부터 약수물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뒷풀이는 시작되고

 

이렇게 금북4차 정맥길도 끝이 난다

휴게소에 잠시 들렸는데 햇볕이 장난이 아니다.

그만큼 오늘 산행은 무더위 속에서 진행됐다는 예기이고 보면, 모두 힘든 산행이었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날씨이다

 

 

더위에 시위라도 하듯 사당지맥에서 다시 합류하고

 

 

전망도, 그렇다고 볼 것도 별로 없는 금북정맥길...

이제는 더위와도 싸워야 하는 힘든 길이 계속 기다리겠지만....

없는 중에서도 우리가 뭔가 하나는 얻고자 하는 심정으로 오늘의 산행기도 끝맺음을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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