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03 - 태조산 구간  :  각원사에서 덕고개까지..

 

 

언제 : 임진년 누리달 열닷새 쇠날 ~ 열엿새 흙날

 

누구랑 : 바다사랑 대장님과 금북정맥 식구들

 

어딜 :   각원사에서 덕고개까지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차 넘치는 달 6월 누리달,  

지금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하다고 하고, 특히 충청지방이 더욱 심하다는 뉴스를 접하니, 빠른 시일내에 많은 비가 내려주기를 기원하며 처음 접해보는 단체 지하철 산행을 떠나본다.

 

 

 

천안행 막차를 이용 천안에 도착하니 00시31분이다

 

도착은 했으되, 비몽사몽 중에도 내리기는 내려야 하는데....

여기서 실컷 잠이나 잤으면 원이 없겠건만.... ㅉㅉㅉㅉ

그래도 산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날아갈 진정한 정맥꾼들이십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천안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시간표도 살펴보고

 

천안역 역사 앞

 

간단한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2차산행 날머리이자 3차 산행 들머리인 각원사에 도착하고

 

각원사 입구에 있는 태조산 안내판

 

솔바람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2차 정맥길에 내려올 때는 계곡으로 내려 왔지만 오늘은 잘 정비된 솔바람길을 따라 오르개 된다

 

좌불상 갈림길

 

쉬지도 않고 올라오니 사랑의 쉼터가 있는 유왕골 고개이다.

역시 산에 와야 힘이 솟는 모양들이다. 

 

 

 

유왕골 유래비

 

목천면 송전리 유왕골 留王洞계곡은 백제시조 온조왕과 고려 태조 왕건이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목천 삼벵이의 화전민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목과 숯을 구워 천안으로 오르내리던 삶의 고개이다

 

 

이제 본격적인 정맥산행은 시작되고

 

솔바람길을 따라 계속 이어가고

 

안서 e편한세상 갈림길을 만나고

 

제2솔바람길에 솔바람길과 작별은 고하고

 

구름다리로 가면 제2 솔바람길이다

 

태조산 수련장 이정표를 만나고

 

정상0.8km지점에서 조금 가면 도라지 고개가 나온다

 

도라지고개(조라지고개)

유량동에서 천안군 목천면 덕전리 유왕골로 넘어가는 고개. 꼬불꼬불 굽어진 고개길이 길고 험하여 넘어가는 도중에 졸음이 온다고 하여 조라지 고개다. 지금은 도라지고개로 불리우고 있다.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목천지방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 천안에 이르렀던 대로였으나 지금은 한적한 오솔길이 되었다.
왕건태조가 군사를 양성할 때 졸라 즉 졸병들이 이곳에서 훈련하였다고 전하고, 또 국태민안을 빌고 이 곳에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하여 '돌아오지'가 '도라지'로 되고 다시 '조라지'로 변했다고도 한단다.

 

 

이제 태조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철문을 통과하면

 

태조산이다

 

태조산(太祖山)

고려 태조왕이 후삼국시대 말 백제 견훤왕과 회심의 일전을 벌이기 위해 대규모 군사를 거느리고 전력을 가다듬으며 훈련을 하였다고 하여 태조산이라고 불려진다는 이 산은 경사가 완만하여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산이다.

 

 

천안시 야경

 

산이름 중에는 임금과 관련이 있어 그 군호(君號)가 들어간 것이 더러 보인다.

충남 천안의 태조산(太祖山)은 고려 태조 왕건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천안시 안서동과 유량동 사이에있는 이 산을 풍수지리상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 5마리의 용이 여의주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의 명당길지라고 전해져 왔다.

 

 

태조산 유래비

 

왕건은 "이곳에 3천호의 읍을 이루고, 보루를 쌓아 군사를 조련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윤계방(尹繼芳)의 말에 따라 친히 이 산에 올라 산세를 살펴보고 군대 10만명을 주둔시켜 훈련을 쌓은 뒤 후백제를 쳐서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산을 왕자산(王子山)이라고도 하는 것은 산 모양이 마치 임금 왕(王)자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조산 전망 안내판

 

같은 천안시와 천원군 목천면 사이에도 태조봉(太祖峰: 406m)이 있다. 유려왕산(留麗王山)이라고 하는데, 역시 고려 태조가 머물렀던 산이라고 전해진다.

 

 

다시 철책을 따라 내림길은 시작되고

 

이런 안내판도 지나고

 

제3포스트 갈림길을 만나는데

 

삼각점도 보인다 (365봉)

 

전망 좋은 곳 도 만나고(365봉)

 

이런 알 수 없는 갈림길도 만나고

 

흑성산 갈림봉도 만나고( 아홉싸기 고개 바로 전에 있는 봉)

 

흑성산 정상에는 천안지역의 고대 산성중 유일하게 기록으로 전해 오는 흑성산 성터가 남아 있지만 군사시설과 방송국 중계소 등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풍수지리상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여겨지면서 독립기념관과 함께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성거산 이정표가 있는 아홉싸리 고개이다

 

아홉사리고개(九曲峙)
유량동에서 목천면 삼방리(三方里)로 넘어가는 고개. 크게 아홉번 구비져 온다고 아홉사리고개다.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매우 큰길로 목천지방 사람들이 천안에 오려면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국수나 새끼를 사리듯 꼬부라진 고개) -천안문화원 유량동 지명유래-

 

흑성산 갈림길이기도 하다

 

쓰려진 나무를 토막내 길가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상황봉님의 증언에 따르면 길이 너무 좋다보니 산악자전거의 활동이 활발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맥길따라 계속되는 마루금의 훼손상태를 보면 아예 통재를 해야 할 것 같다

사진으로 만나게 될 훼손상태는 매우 심각하여, 잘못 하면 다리를 다칠 정도로 파여져 있어 뭔가 대책이 필요할 듯하다

 

 

 

유량리 고개

 

유량리고개(유량동)

금북정맥의 성거산과 취암산을 잇는 고개이지만 목천면과 천안시내를 잇는 도로가 개설돼 정맥이 단절된 상태다.

특히 유량리고개 바로 아래에는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 있어 과연 이 곳이 정맥의 산줄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개발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유량리고개는 일제시대때 일인들이 정맥 단절을 노려 쇠말뚝을 박아 놓았던 곳이기도 한다.

지나는 차소리에 바로 옆에 공장이 있는 듯 새벽인데도 매우 시끄럽다. 바로 아래로는 도로가 달리고 있다.

 

 

쉼터 의자가 있는 315봉도 지나니

 

바로 철탑이 보이고

 

가스안전교육원 이정표도 지나고

 

운동 시설이 있는 삼거리봉이 나온다 (321.3봉 구성산)

 

소나무 쉼터가 있는 삼거리로 천안 목천읍 九星洞마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마점산이라고도 한다.

 

 

다시 내림은 시작되고

 

 

 

 

돌탑이 보이기 시작하니

 

돌탑봉이다

 

계속 우리와 함께 밤을 지새며 우리의 산행을 방송중계소의 불빛으로 응원해주던 흑성산의 모습도 서서이 드러내고

 

그믐달도 한번 바라보고

 

 

취암산 정상이다

 

警巖山(취암산(鷲巖山)) (320.5m)

천안시 목천읍 삼룡동에 있으며,  금강의 지류인 병천천이 시작되며 곡교천과 분수계를 이룬다.

두 개의 바위봉우리가 마치 수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취암산이라고도 하며, 두 봉우리가 이 빠진 것처럼 생겼다 하여 이빠진 산이라고도 부른다., 취암산은 수리의 의미의 계열이다.

 

 

 

산이름과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여서 사기를 가득 실은 배가 넘어가다가 산꼭대기 바위에 부딪쳐 배에 실었던 사기 그릇이 깨지는 바람에 지금도 사기 조각이 뒹굴고 있다하여 배너머산이라고도 부른다.

바위 중턱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샘이 있어서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이 샘에서 기우재를 지냈으며, 산기슭에 있는 천연동굴 용혈앞에는 조선시대까지 가뭄이 들면 기우재를 지내던 재단 터가 남아 있다.

지금 충청지방이 특히 심하다고 하니, 혹여 이곳을 지날 때 한번쯤 소원을 빌어 보는 것은 어떨지... 모으면 힘이 되니까???? 

 

 

 

취암산일까? 경암산일까?

천안지역의 읍지는 천안지역의 영성지, 목천지역의 대록지가 있으며, 직산지역의 직산현지가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자료에서는 오직 취암사 뿐이지 경암산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조선의 역사를 잘 기록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 중종 22년(1527년) 5월29일과 중종 26년(1531년) 5월17일에 전국적으로 가뭄이 있어 효험이 있는 유명한 산중에 13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도록 하였는데 그곳의 하나가 취암산이라고 한다.

지금의 지명 이름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군의 통합, 면의 통합, 리의 통합이 이루어져 그 때에 새로이 지어진 명칭과 원래대로 내려온 명칭을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지도가 토대되는 지도는 일대 오만의 지도를 일제 강점기 1915년에 제작된 것으로 이 지도에서도 취암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취암산이 경암산으로 된 원인은 1960년애 한문으로 된 것을 모두 한글로 표기하도록 하였는데, 이때에 취암산은 독수리 취(鷲)자를 놀랄 경(驚)으로 잘못읽어 한글로 경암산이 되었다고 한다.(충청 인터넷 뉴스)

 

 

 

이어가야 할 능선

 

경암산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론적 근거는, 경암산 경(驚)자는 말(馬) 놀랄 경인데, 북두칠성의 6번째 별 개양(開陽)자리로 임금의 밝은 도(道)가 펼쳐지니 바위도 놀랐다는 뜻이다고 하는데.....
즉 馬(말)이 경배 드리느라 바위처럼 엎드렸다는 의미이다는 것이다.

천안시시보다 3301년 전에 고흥반도 야막리 팔봉산에서 환국을 세웠는데, 그곳의 북두칠성산 6번째 개양별자리 지명도 마복산(馬伏山 말도 엎드리다)이다. (충청인터넷뉴스)

 

 

 

일출의 순간을 잡기 위한 무한경쟁은 시작되고

 

취암산에서 바라본 흑성산 너머로 일출은 시작되고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렇게 쉴 수 있는 의자도 보이고

 

갈림길을 만나고

 

표지기가 많이 붙여있는 것을 보면 국도에 가깝게 왔다는 얘기일 테고

 

철책을 따라 걷다보니

 

이렇게 철재다리를 건너면

 

21번 국도이다

 

내리자 마자 우측으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준점도 만나고

 

서거리에서 국도를 지나면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고

 

이렇게 고속도로 옆길을 따라 가다 보면

 

동원 물류창고를 만나고

 

 

다시 산길로 진입하면

 

오르다 우리가 걸어 왔던 동우아파트와 정맥능선을 바라보고

 

넓은 길을 만나 다시 정맥마루금 산행은 시작되고

 

삼각점이 있는 왕자봉이라 쓰여 있는 216봉이다

 

지도상으로는 옥자사가 옆에 있으니 옥자봉인가?

 

약간은 늦었지만 빨리 아침을 먹어야 힘을 내지

 

 

아침 후 그냥 걷다보니 도로가 있는 돌고개이다

 

돌고개는 목천읍의 용원리와 도장리를 잇는 도로다

용원리 돌고개 마을은  석현이라고도 하며, 돌고개 밑의 마을고개도 돌 고개라 하는데, 살티 서 쪽에 있으며 고개 부근에 돌이 많이 있다

 

 

동성에프시라는 공장이 마루금에 버티고 서있는 바람에 도로 우측으로 올라 물류창고 같은 건물 옆으로

 

공사중인 길을 따라

 

이렇게 치고 올라가니

 

끊어진 마루금을 다시 만나니 반갑고

 

훤한 공터도 지나고

 

철탑도 지나니

 

한치고개이다

 

대정저수지가 있는 성남면 대정리에 세종대왕이 말을 묶어두었다는 마산이라는 자연마을이 있고, 한티고개가 있어 한티라는 자연마을이 생겼다고 한다.

풍세면 소식골에서 성남면 한티로 넘아가는 고개로, 치와 티는 고개를 뜻하는 말이니 한치고개라 한 듯하고 대정저수지의 물은 승천천에 합류한다.

 

 

한티마을쪽 도로

 

 

자귀나무도 만나고

 

 

잎이 밤이 되면 하나로 접혀진다는데.... 이 자귀나무는 밤이면 잎이 서로 접혀 서로를 포옹한다고 합환수(合歡樹)로도 불리며 정원에 심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바다사랑님의 증언이 있었고...

 

 

망개나무도 만나보고

 

 

 

 

굴머리로 가는 길도 만나고

 

굴머리 : 원당리라고도 하며 소식골 동쪽 진골짜기. 들머리에 있는 마을. - 천안시 목천읍 소사리의 지명 유래

 

 

봉을 넘고 이렇게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자꾸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바다사랑 대장님의 판단에 따라 다시 되돌아 오는데

동림단맥이라고 쓴 표지기를 만나게 된다

 

지도를 보니 304봉을 지나 동림산과 병마산으로 이어지는 동림단맥이라 하는 기맥길이면서, 천안과 연기군의 시계가 이어지는 능선이었던 것이다.

같은 알바도 이렇게 생생한 지리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여 알바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아름다운 동림단맥길을 바다사랑대장님과 맛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 지식이 한가지 더 늘어났으니.....

 

 

바다사랑대장님과 알바하게 된 능선길

 

다시 본 마루금에 들어서고

 

갑자기 밝아진 능선과 가야할 앞 봉들...

 

정말 마음이 풍요롭게 보이는 아야목 마을이 보이고

 

 

애미기 옛고개를 만나고

 

포장된 애미기 고개를 다시 만나고 - 소사리에서 연기군 전의면 애미기로 넘어가는 고개.

 

돌탑이 있는 고려산이다

 

고려산高麗山 307 연기군 소정면

이 곳에는 흙과 돌로 만든 고려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말기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도성이 무너진 후 백제 중흥군이 3년여간 항쟁했던 본거지였다.

 

 

 

고구려가 남쪽까지 내려왔을 때 이곳에까지 내려와 성을 쌓았으므로, '고구려산성'이라 부르다가 줄여서 '고려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네이버지식)

 

 

 

산성 아래로는 ‘아야목’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곡교천과 조천천의 분수계이다.

 

 

아야목마을 조망하고

 

아야목 마을

이 지역이 고구려가 강성하였을 때 최남방의 국경 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 때 홍건적이 침입해 오자 백성들이 이곳에 성을 쌓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홍건적의 포위가 풀리지 않았는데 성 가운데 물이 떨어져 주민들이 갈증으로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이"아야 목이야"하고 울부짖었다고 하며, 산 남쪽 고등리에는 그로 인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아야목 마을이 있다.[지명유래➣➣연기군 고려산 참조]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고

 

황골도로 만나고


황골도로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에 황골이란 마을이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고등리 사람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보이는 지역이란다. 신석기 시대의 돌칼과 돌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도로지나 마루금은 시작되고

 

 

산악자전거로 인해 파해쳐진 마루금 - 그래서 나뭇가지들을 마루금에 그대로 방치했구나...

이번 구간 반은 이 상태인 것 같다. 초반에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던 그 사진이다

 

고등고개도 만나고

 

고등고개는 대곡리와 고등리를 잇는 도로가 개설돼 있다. 고등리에서 고개를 넘어서자 산이 파헤쳐진 채 쇄골재 채취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대규모 축사들이 산마루를 비집고 들어서 있다고 하는데... 확인 할 수도 없고....

 

 

축사시설인가?

 

이상하게 생긴 이정표를 만나고

 

 

너무 파해쳐진 마루금은 계속 되는데....

산악자전거도 좋지만 이정도면 알아서 자재를 했어야 하는데.... 배려가 아쉽다...

 

두개가 놓여져 있는 고등터널이 지나는 봉이다

 

시원하게 뻗어가고 있는 경부고속철도를 어렵게 만나보고

 

다시 이정표를 만나고

 

전의산 연수원에 의해 없어진 마루금

 

비룡산(우회)

금북정맥은 비룡산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가로 막히고 마는데......

골프장과 1번 국도로 인해 단절됐기 때문인데, 27홀인 골프장인 부지면적이 44만8840평이나 된다고 한다.

비룡산을 감싸듯 둘러싸고 있어 산줄기가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 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이렇게 내려가면

 

전의산 연수원 정문 앞이다

 

바로 앞쪽으로 마루금은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이런 숲길을 내려오니

 

골프장 주차장이다

 

좌측으로 진행하여

 

골프장 정문앞을 통과하여

 

 

입구도로를 7분쯤 내려오면 우측으로 굽기 시작하는 도로에서 좌측으로 진입하여 다시 끊어진 마루금 산행은 시작되고...

별 특징없는 정맥길을 이으면 전의면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하니..... 이제 끝인가 보다.....    사진 : 공작산님

 

과수원을 가로 질러 묘지옆을 지나 내려서면 1번국도가 지나는 덕고개이다                   사진: 공작산님

 

덕고개

 

시내버스를 타고 천안버스터미널로 향하며 오늘의 산행도 끝이 난다.

 

이런 저런 사연들로 끊긴 구간들이 우리들의 앞길을 막아섰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가야할 길이고, 또 이어야만 되는 우리의 길이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꾹꾹 참으며 힘들지만 잊혀져 가는 우리의 자랑스런 길을 이었다는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금북정맥 3차 산행에 참여하신 산우님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4차 정맥길을 기다려 본다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