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02 - 성거산 구간 :     배티고개에서 각원사까지

 

 

언제 : 임진년 누리달 초하루 쇠날 ~ 초이틀 흙날

 

누구랑 : 바다사랑 대장님과 금북정맥 식구들

             바다사랑님, 탱이하트님, 상황봉님, 도덕산,나마스테님,

             겨울애님, 인연님, 공작산님, 완산님, 탱이하트님1 총 10명

 

어딜 :   배티고개에서 각원사까지 (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차 넘치는 달 6월 누리달,  첫날 우리는 두번째 금북 정맥 여정을 위해 떠난다

사당에서 이제 숫적으로 불어난 산우님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차량 두대로 1차 날머리인 이치를 향해 출발....

 

 

 

이치(배티고개) 바로 아래 공간에서 잠시 휴식 후 짐을 정리한다

 

배티고개에서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되고

 

 

무명순교자6인묘 갈림길을 만나고

 

곧이어 무명순교자6인묘와 배티성지 갈림길을 만난다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 위치한 배티성지는 한국천주교 중요성지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 터가 위치하고 있다

무명순교자 6인묘는 배티성지 뒤산으로 능선따라 30분 정도 북동쪽으로 걸어가야 하는 '성재'라는 공자기에 있으며

14인묘역은 안성으로 넘어가는 배티마을 끝의 배티고개 오른쪾 비탈에 있다.

 

 

배티성지

 

약20분정도를 힘들게 올랐으니 잠시 휴식 겸 배냥정리도 하고

 

연이어 3번에 걸쳐 석남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첫번째 갈림길 이정표

 

 

서운산 석남사 위쪽에는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는 마애여래입상(높이 4.5m, 너비 2.8m/ 경기 유형문화재 109호)이 있다.

이러한 석불의 남쪽에 놓인 사찰이라 하여 '석남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http://yinolbu.blog.me/150039616536

 

비교적 잘 정비된 숲길이 이어지고

 

이제 세벽공기가 차갑다는 느낌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석남사 방향에서 목탁소리가 잠시 바람따라 와서, 머뭇거리다 바람따라 사라지고...

그만큼 정맥길이 낮다는 것일 게고, 그만큼 우리는 사람사는 냄새를 맡으며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편에서는 알수 없는 징소리 같은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 천주교 성지에서 들려오는 새벽종소리 같기도 하고?

 

 

그렇게 첫번째 산인 서운산에 오른다

 

서운산성 안내판

 

전망대에 있는 서은산 경관 안내판도 읽어보고

 

서운산 瑞雲山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

   상서로운 구름을 휘감은 멧부리에 하늘에서 내려온 청룡이 머문 자리에 절을 짓게 된 것이라는 전설에 따라 그 산은 서운산(瑞雲山, 547m)이라 부르고 그 절 이름은 '청룡사'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청룡사 중창 사적기>에 기록되어 있다

 

청룡사와 서운산 

청룡사 대웅전 건축이 또한 허례허식의 축조가 아니다. 삐뚤빼뚤한 배불뚝이 목재들을 전혀 다듬지 않고 그대로 앉혀 놓고 있어서 조선 건축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주는데 서산 개심사와 비교된다

<서운-청룡>이라 했다. 상서로운 구름을 휘감은 멧부리에 하늘에서 내려온 청룡이 머문 자리에 절을 짓게 된 것이라는 전설에 따라 그 산은 서운산(瑞雲山, 547m)이라 부르고 그 절 이름은 '청룡사'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청룡사 중창 사적기>에 기록되어 있다.

칠현산의 칠장사 못지않게 서운산의 청룡사 또한 '민중메시아니즘'의 사적(事蹟)들을 간직하고 있다. 토속신앙과 외래종교의 접합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98100706143042

 

 

 

좌성사 청룡사 이정표

 

칠현산의 칠장사 못지않게 서운산의 청룡사 또한 '민중메시아니즘'의 사적(事蹟)들을 간직하고 있다. 토속신앙과 외래종교의 접합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글 참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청룡사 갈림길이 나타나고

 

다시 두번째 청룡사 갈림길도 나오고

 

나무의자가 있는 봉도 지나고

 

 

또 다른 봉에서 다시 휴식을 갖고

 

약간 애매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대간길의 보석같은 존재인 띠지를 발견하고 안심하고

 

갑자기 밝은 곳이 나타나더니

 

백곡임도 갈림길이다 - 충북 진천군 백곡면으로 이어지는 임도인 듯...

 

이제 여명이 트이기 시작하는 숲길

산새들도 아침을 맞이하려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앞다투어 내는데...

 

 

청룡저수지가 조망되는 440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앞쪾으로만 전망이 좋다

 

안성 청룡저수지가있는 서운면 청룡리에 남사당패 바우덕이 유적 남아 있다

바우덕이는 본명이 김암덕(金巖德; 1848-1870)이라하는 실존했던 여인이었는데 비록 22세의 짧은 생애였으나 안성 남사패의 전성시대를 장식하는 꽃구름같은 절설과 풍설 속에 휩쌰여 있다.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우두머리)가 사내가 아니라 꽃나이의 여인이었다는 것 자체가 전무후무한 진기록이었다 하기도 한다. 일세를 풍미했던 인기스타 바우덕이와 관련된 민요가 전해온다

 

 

당겨보고

.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은 조선 후기 유랑가무단인 걸립패 출신자들의 의적활동을 그려 보이는데, 청룡사가 주요 무대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연에서 유로2012년 8월에 열리는 <세계민속축제> 개최지로 안성시가 선정됐는데 청룡사 일대에서 '축제'가 펼쳐지게 된다. 60개국에서 2,000여명 이상의 공연단이 참가할 것이라 한다

 

 

오랫만에 보는 멋진 풍경 구경해 봐야지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조금 진행하니 벌목지가 나오고

 

 

잠시 후 만나게 될 옆둔재를 지나는 34번 국도가,  벌목됨에 따라 시원하게 보이고 - 소나무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그래도 벌목임에도 불구하고 소나무만은 남겨 놓아 너무 고맙게 생각된다

우리 민족과 함께했던 소나무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모습만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34번 국도인 옆둔재이다

 

엽돈재은 충청북도 진천군의 백곡면 갈월리와 천안시 입장면 도림리, 안성시 서운면 도림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임진왜란 당시 안성에 사는 홍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 명을 모아 왜군과 접전하여 승전한 곳이다. '엽둔재' 인근에는 홍계남이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남아 있다.

 

 

옆돈재에 있는 이정표

 

고개가 높고 험해서 옛날에는 도둑이 많았으며, 엽전을 가지고 이 고개를 넘는 사람은 모두 도둑에게 털리었으므로 엽돈재라 부르게 되었고, 변하여 엽둔재, 율둔티, 엽전티 등으로도 불렀다.

고개 아래 보덕원(普德院)이라는 원(院) 마을이 있어서 이 고개를 넘는 행인들의 편의를 보아주었다고 한다.

 

 

옆돈재에 있는 수준점과 해설

 

 

다시 봉을 향한 산행은 시작되고

 

만뢰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좌측이 만뢰지맥으로 진행하는 능선이고

 

우측이 정맥 마루금이다.

 

만뢰지맥은 엽돈재 ~ 만뢰산(612m) ~ 질고개 ~ 환희산(402m) ~ 목령산 ~ 국사봉 ~ 응봉산 ~강내 석화리로 이어지는 지맥으로

서로 용두천과 동으로 미호천를 이루며, 또한 충북과충남의 도계를 이루기도 한다  - 아래 글 참조

 

 

은골 금강 발원지샘이라는 알림판도 만나고

 

깊은골 샘터에서 발원한 샘물은 천안 북면을 가르며 북면천을 만들어 남으로 흘러 연춘리에서 신방천과 합류하고 병천사거리 탑원교에서 병천천과 합류한 후 강내면사무소부근에서 미호천과 합류 연기군 동면 합강리에서 에서 금강에 합수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무산의 금강 발원샘인 뜬봉샘이 있고, 깊은골의 발원샘은 금강에 합수하는 북면천의 발원지라고 보면 무방할 듯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글 참조

 

 

백제초도지를 강조한 푯말이 있는 곳을 지나니

 

부소산이다

 

 

부소산(459.1봉) 과 부소문이고개扶蘇門

 위례성 동남쪽인 천안 북면 일대에 온조왕이 위례성에 도읍할 때 세웠다는 문이 있어 생긴 이름이며,충청남도 천안시의 동남구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소나무의 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팔도군현지도』(목천)와 『조선지도』(목천)에서 직산, 안성과의 경계부에 부소치(扶蘇峙)가 나타난다. 『조선지형도』에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부소령(扶蘇岺)이 있다.

 

 백제 온조왕이 처음 도읍한 위례성에 대하여는 광주위례성설과 직산위례성설이 있다. 이곳은 직산 위례성설(천안직산지역)의 그 위례성과 가까운 곳으로서 온조왕이 처음 도읍하였을 때 이곳에 문을 세웠으므로 부소문이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네이버지식

 

 

넓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시간이 시간인 지라 아침식사 자리를 잡고

 

食後景대신 食後眠을 하고

 

부소문이 고개에 도착하고

 

부소령이란 이정표도 만나보고

 

나무계단길을 따라 다시 산행은 시작되고

 

큰길이 계속 이어지더니

 

가족묘지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길은 끝이 나고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입장면 양대리갈림길을 지나고

 

천안시 입장면 일대에는 고려말까지 존재했던 구실향(현재의 시장리)의 터에 백제 온조왕을 보필한 백제 개국공신 9명의 신하와 그의 후손들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져왔으며

 

 

바로 이런 휴식시설이 있고

 

갈림길이 나타나며 앞길이 환해 지는데

 

 

양탑이 있는 위례산이다

 

위례산정상(544봉)

백제 초도지는 천안 직산 위례성이라는 주장과, 서울 풍납토성이라는 역사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천안시에서 4억을 들여 최종 학술조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사산성 등 천안 4개 지역을 중심으로 초도 위례성 일대를 발굴한 결과 출토유물은 6세기 전후한 시기의 유물이 후대의 유물과 공반 출토됐으나 백제 시대 유물과 부합하는 유구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례산 삼각점

 

 

또 위례성 주변 지역에 전래되는 설화와 민간 신앙, 민담 등 무형문화유산에서는 위례성 일대에는 다수의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으나 시대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다만 백제와 관련한 설화과 구전 등에는 백제 온조왕에 대한 흔적이 전해지고 있다.
천안시 입장면 일대에는 고려말까지 존재했던 구실향(현재의 시장리)의 터에 백제 온조왕을 보필한 백제 개국공신 9명의 신하와 그의 후손들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져왔으며, 용정리의 큰 우물에는 백제시대 때 나라에서 사용하기 위한 샘으로 전해지는 지명이 나온다.
온조왕이 도읍할 당시 쌓아두었던 곡간(곡간리), 위례산선 우물인 용샘과 위례성 대궐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궐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성거읍 일대는 백제시대 타날문토기편 등 백제 유물이 확인됐으며 모전리 일대가 위례성의 관문이라는 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목천읍에는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하고 봄여름이면 농사를 지었다는 유왕골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등 백제 관련 설화가 풍부한 것으로 이번 조사 결과 나타났다 

 

 

위례산의 위례산성비

 

위례성(慰禮城)이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울타리를 뜻한다는 해석이다. '위례'는 사방을 널리 둘러싼다는 뜻의 위리(圍籬)와 음이 비슷하므로 목책을 세우고 흙을 쌓아 만든 담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둘째, 한강 옆에 쌓은 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위례는 욱리하(郁里河), 아리수(阿利水)와 함께 한강을 가리키는 이두(吏讀)식 이름이라는 것이다.

셋째, 왕이 사는 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 중국의 역사서인 《주서(周書)》에는 "백제왕을 어라하(於羅瑕)라고 부르는데 중국말로 왕(王)"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위례'는 '어라'와 함께 '왕' 내지 '크다'라는 뜻이며, 위례성은 왕성 혹은 큰성[大城]이라는 것이다.

위의 세가지 견해 중 가장 널리 인정되는 것은 위례가 담이나 울타리를 뜻한다는 첫 번째 해석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백제의 시조 온조가 졸본부여를 떠나 직산(현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면 일대)에 와서 처음 도읍을 정하고 개국하였는데, 직산의 옛 이름이 위례성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직산위례성’이라 불려지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백제의 첫 도읍지인 것이다.

위례성은 상 정상부를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주변의 성거산성, 사산성과 함께 방어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둘레는 950m이고, 성 안의 면적은 5700㎡이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보면 1,690척의 성이 있고 우물이 하나 있다고 전해지며, 온조왕 13년(BC 5세기)에 이곳으로부터 경기도 광주지방으로 천도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기로리 갈림길이기도 하다

耆老里 : 기로촌(耆老村)은 산수가 좋고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오래 산다고 해서 기로 또는 기로촌이라 불렸다 한다  

 

 

군단이 갈림길을 지나니 - 천안 북면 운용리

 백제 때 군대가 주둔하였던 곳이라고 해서 군단이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음력 정월 초에 택일을 해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농장입구 이정표를 지나니

 

오솔길은 계속 이어지고

 

성황댕이 고개를 지나고

 

지금도 잘 관리를 하는 듯 빗자루도 보인다

 

철탑을 지나고

 

또 연이어 철탑은 지나니

 

이번 구간 내내 거의 전망이 없었는데 전망이 트이면서 가야할 성거산이 보이고

 

일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우물목고개이다

 

충청남도 천안시의 동남구 북면 납안리와 입장면 호당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이곳에 조선조때 정항원이 있었으며 승천에서 응원리로 넘어가는마루터이다. 

 

 

 

고개마루에 좋은물이 나는 샘이 있어 오고가는 사람이 쉬어 갔으며 과거보러 가는 나그네도 많이 쉬어 갔는데 그위에 김자점네 묘가 있고 묘의 아래 쪽으로 샘이 있었으므로 

김자점이 몰린 뒤 과거 보러가던 행인이 역적의 묘밑의 물을 먹으면 재수가 없고 그 물을 먹고 가면 과거에 합격되더라도 역적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어서 우물과 주점이 모두 폐쇄되었다고 전한다.  이 우물 마저 고속도로 공사로 없어졌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인조반정으로 나는 새도 떨어 뜨릴 것 같았던 김자점의 새력도 쇠하니, 멀쩡하던 우물마져 하루아침에 같은 운명이 되다니...

세상사 뭐라 탓할소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을 서쪽 14리에 정항원(井項院)이 나오는데, 우물목고개 인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도로 따라 계속 이어지는데... 이번 구간 가장 힘든 코스이다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피해 잠시 쉬어보고

 

 

사리목고개(지도상) - 이번 산행에서 확인 못한 고개

  군부대진입로 만나는 지점. 충청남도 천안시의 동남구 북면 납안리 도촌에서 성거읍 천흥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길의 모양이 새끼를 사리어 놓은 것처럼 구불구불하므로 사리목고개라고 전한다.

성거산의 줄기가 되며, 여기서 사리란 굴곡, 굽이, 휘도는 커브를 말한다. 사리목의 '목'은 항(項)의 뜻으로서 산 능선이 굽어진 목, 구불구불 휘도는 목을 말한다.

이 지방 속설에는 사리목이 '사지(死地)목'과 통한다 하여 결혼식의 혼행(婚行)은 이 길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사전)

 

 


운동시설이 있는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도 만나고

 

성거읍 시내와 천호 저수지가 보이고

 

당겨보니

 

성거산 순교성지 제2 줄무덤도 지나고

 

오늘의 특종을 만나다 - 바로 앞에서 이름모를 새를 만나다

 

이왕에 모델이 된 참에 당겨보는데 - 두마리의 먹이감을 물고 있다

 

눈을 마주쳤는데도 도망을 가지 않아 다시 한번 더 당겨보고

 

숲속의 작은 청소꾼이면서, 우리에게 많은 희망의 노래를 선사하는 산새들

그들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소리가 우리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비록 그들만의 세상에서 부르는 생존을 위한 소리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름다움은 말로 어찌 표현 할 수가 있을까? 

 

 

군부대 바로 밑에 성거산성 안내판이 있고

 

바로 군부대가 보이며 바로 철망따라 우회가 시작되고

 

멀리 보이는 광덕산을 당겨보고

 

가야할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오고

 

철책 울타리 끝 부분에서 성거산을 바라보며

 

군부대에게 정상을 넘겨주고 초라하게 자리잡은 성거산 임시 정상봉에서

 

聖居山(579) 은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과 입장면·북면으로 이어지는 성거산(해발 579m)은 광덕산에 이어 천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천안 시가지를 중심으로 남쪽에 광덕산(699.3m)이 있다면 동북쪽에는 성거산(579.1m)이라는 명산이 자리잡고 있다.

 

 

마루금은 만일사 방향이지만


성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할 때 직산면 산헐원을 지나다 동쪽의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 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고 "성거산"이라 부르게 하였다는 산이다.

 

 

삼각점이 있는 방향으로 아무 생각없이 진행되고

 

또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거산성(충남문화재자료 263호)이 있었지만 지금은 성곽이 많이 파괴돼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백제는 산성이나 읍성을 만들 때 반드시 익성을 지었는데, 익성은 양 날개가 달린 듯 좌우로 성을 만든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거산성은 위례산성의 익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렇게 볼 때 성을 쌓은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천안 목천 송전리 방향으로 알바를 하신 산우님들......... 물론 한명 더있다... 누굴까?

 

천안 성거읍과 목천면 사이에 있는 성거산은 고려 태조가 잠시 머물렸던 곳이라고 한다.

 

 

다시 원위치 인연님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있고

 

만일 고개에 도착한다.

 

충청남도 천안시의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와 북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해동지도』(직산)의 이남면 남쪽에 만일치(萬逸峙)가 나온다.  성거산 중턱에 만일사(晩日寺)라는 절이 있으므로 만일고개라 하고, 또 이 절을 매일절이라고도 하므로 고개이름도 매일고개가 되었다.  (만일사 유래는 아래글 참조)

 

 

 

 

다시 올라야 하니 잠시 휴식을 하고

 

다시 진행하니 남창 저수지로 이어지는 능선을 만나고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영인지맥 분기봉이다 - 은행연수원 방향 

 

 

사람이 많이 다닌 듯 길이 깊은 오솔길이다

 

알바했던 봉우리도 보이고 - 송정리 방향 능선

 

걸마고개에 도착한다

 

걸마고개는 만일사와 삼뱅이(메일골)로 갈 수 있다. 갈마,갈뫼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칡이 많은 고개를 뜻하는 칡갈(葛)자를 쓴 갈뫼에서 변한 듯하다.
걸마고개엔 계성군과 숙의 하씨 묘지의 표시판이 있는데, 숙의하씨는 영의정 하연의 딸로 성종의 후궁의 하나이며, 계성군은 숙의 하씨 소생이다.

 

 

넓다란 숲길은 계속 이어지고

 

낙엽송지대를 지나고

 

상명대햑교 갈림길을 만나고

 

오늘의 종착지 각원사 갈림길인 사랑의 쉼터가 있는 유왕골고개이다

 

유왕골고개와 유왕골(留王洞: 목천면 송전리)은 태조봉 북쪽 2Km 지점에 있으며, 백제시조 온조왕과 고려 태조 왕건이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유왕골유래 안내판

 

현재 마을 입구 500여 년이 넘은 느티나무 아래에는 주민들이 세운 ‘유왕골 유래비’ 가 있는데 느티나무가 마을의 깊이를 말해준다.
‘유왕골유래비의 뒷면에 보면 백제시조 온조가 기원전 18년 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때 이곳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도 하였다 한다.
고려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이곳에 와 있으면서 오룡쟁주지세라고하는 당시 도솔땅을 살핀 후 930년에 천안도독부를 두었다 하여 마을명이 유왕골로 불려오고 있어 이 유래비를 세웠다고 한다.

 

 

사랑의 쉼터

 

유왕골 고개에 있는 사랑의 쉼터를 보면 유왕골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유왕골고개는 목천 삼벵이의 화전민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목과 숯을 구워 천안으로 입성하는 지름길이었고 세월이 지나 지금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등산로다

 

 

탑들도 자주 만나고

 

이제 소나무가 자주 나타나고

 

거의 다 내려왔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끝으로

 

좌불상에서 본 각원사 전경

 

각원사 [覺願寺] 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태조산 기슭에 있는 사찰.

재일교포 각열거사(覺列居士) 김영조(金永祚)의 시주로 1977년 5월에 세워졌으며,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사찰을 세우려 한 것이 발원의 본뜻이다.  1996년 10월15일에 낙성된 대웅전은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경주 불국사() 이래 최대의 사찰이다.

 

청동아미타불 좌불상

 

높이 12m, 둘레 30m, 무게 60t에 이르는 거대한 동양 최대의 청동아미타불상과, 엄청난 규모의 태양의 성종이 특히 유명하다.

 

좌불상에서 내려다 봐도 성종이 웅장하게 보인다

 

화단에 놓여진 동자승과 동자승석불(?) -

 

203계단길 시작 부분

 

이 절의 언덕에는 203개의 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백팔번뇌와 관세음보살의 32화신, 아미타불의 48소원 및 12인연과 3보(寶) 등 불법과 관계있는 숫자를 합해서 정한 것이라 한다. 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석가탄신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연못에는 연꽃을 현상화한 각종 설치물이 떠있고

 

 

 

그렇게 금북정맥 2차 구간도 끝을 맺는다.

전체적으로 전망이 거의 없어 어느정도 더위를 느끼지 못했지만, 성거산을 오를 때 도로따라 걷는 길 말고는 대체로 아름다운 숲길을 걸었던 행복한 2차 금북정맥 산행도 끝을 맺는다.

벌써 3차 금북정맥 산행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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