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09 - 부소산 구간 :   진고개에서 구드래나루터까지..

 

 

언제  :  계묘년癸卯年(23년) 견우직녀달 07월 여드레 흙날

 

누구랑  :   폭풍전야, 카프리, 로즈, 초보산꾼 (다음 수도권 산악회)

 

어딜  :  진고개 ~ 됨봉 ~ 청마산 분기점 ~ 청마고개 ~ 금성산 ~ 부소산 ~ 구드래나루터

 

                 더 많은 사진자료는  금남정맥09(사진) - 진고개에서 구드래나루터까지 사진 답사기.. :: 초보산꾼의 발길 닿는 곳 (tistory.com)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면은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오늘 금남정맥의 마지막 구간..

이렇게 노래 소리로만 흥얼거렸던 백마강을 드디어 만나게 된다..

 

 

 

금강 분수령인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 그리고 금남정맥 (산경표)

 금강은 백두대간으로 벽을 치고 북으로 한남금북정맥과 금북정맥을

남으로는 금남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울타리를 치고 서해로 흘러간다.(산경표 기준)

 

 

금남기맥과 금강정맥(신산경표)..  산경표 금남정맥(신산경표의 금남기맥)

금남정맥 錦南正脈 은..

주화산(珠華山, 600m)에서 시작하여 왕사봉·대둔산을 지나 계룡산으로 이어지고 부여의 부소산에서 끝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으로 13개의 정맥(正脈) 중 하나로 이 산줄기는 금강의 남서쪽을 지나므로 금남정맥이라 한 것이다.

금강 상류유역과 만경강유역을 구분짓는 산줄기로 동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 상류를 이루며,

서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루고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든다.   

이 산줄기가 시작된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호남정맥과 함께 전라북도의 동쪽 산간지방과 서쪽 해안의 호남평야를 경계짓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남정맥 [錦南正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금남정맥 09    진고개 ~ 부소산 ~ 구드래나루터 19.5km

 

망덕봉을 지나 공주시 탄천면의 속살로 들어온 진고개를 들머리로 삼아 부여군이 시작되는 됨봉에서 공주시 탄천면이

부여군 초촌면을 만나 경계를 이루다 190봉에서 부여읍을 만나 공주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탄천면과 이별하며 부여군 속살로 들어와

청미산(개념도) 분기봉에서 초촌면과도 헤어지며 금남정맥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부여읍의 속살로 들어와

청마산성을 지나

금성산과 부소산을 지나 꿈꾸는 백마강의 주인공인 금강변 낙화암을 지나 구드레 나루터에서 긴여정을 마치게 된다.

 

 

 

 

09:08분    진고개에 내려 준비를 하고..

 

 

09:14분    출발..   현위치 진고개에서 시작하는 신앙고개까지 공주지방 금남지맥 안내도..

 

09:25분   우변봉을 지나니 좌측으로 공장이 보이고..

 

바로 잠시 쉬어가며 보라고 계룡산 천황봉 안내문..

 

 

09:37분   깃대봉(旗臺峰기대봉)..   개념도상 161.4봉인 삼각점이 있는 측량차 깃발이 꽃았있었다는 깃대봉.. 

 

 

09:39분   바로 마루금을 따라 벌목지가 나오면서 조망이 열리고..

 

09:42분    벌목지라 잡목을 걱정했는데 이 곳은 정리가 잘돼 있어 진행이 수월하여  안부도 지나고..

 

09:51분   벌목지가 끝나고 개념도상 173봉(안경구덩이산)..   안경골 북서쪽으로 구덩이가 많다고 해서..

 

09:56분   다시 벌목지 임도가 좌측 가까이 오지만 마루금은 계속 숲길로 이어지고..

 

09:59분    안부에 안내문..

 

 

10:06분   벌목지 끝 부분에서 마루금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절개지가 있어 위험하여 우측으로 우회해야..

 

우측으로 내려오면 이정표가 보이고..  오늘 처음 잡목을 만났다..

 

 

10:12분   좌변봉인 개념도상 215봉 직전 좌측으로 우회하고..

 

10:17분   개념도상 시멘트 도로..  멍덕재로도 불리는 감나무골 안부를 넘고..

 

탄천면 정치리 감나무골 방향..

 

10:35분 ~ 10:47분    열심히 오르면 오늘의 최고봉인 개념도상 무명봉인 감투처럼 생겼다는 감토봉..

 

10:55분   감토봉에서 휴식 후..   철망을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다 좌변봉이 개념도상 181봉인데 담지 못하고..

 

11:09분   우측이 마루금이지만 도로 절개지라 좌측으로 해서 내려오면 고맙게도 철망 일부를 제거해 놓았다..

 

가자티고개 들머리는 우회한 마루금이 보이는 금남정맥 안내판이 있는 곳이다..

 

** 가자티골    탄천면 남산리, 가척리 양쪽 골짜기 이름

가척 마을은 가재가 많은 골짜기에 위치한다 해서 가재울 또는 가자울이라 불리다 후에 가척 마을이라 개칭되었으며..

 

 

 

11:19분   됨봉 정상..   가자티 고개 처음부터 시작된 잡목은 160봉인 됨봉 직전까지 이어지고..  

 

11:26분   개인 사유지인 전기철책을 만나는데 마루금을 잡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넘어 철책을 따라가다..

 

11:32분   우측으로 띠지가 보이는 곳으로 다시 전기철책을 넘고..

 

 

11:37분   바로 삼거리..  여기서 우측으로 가야 하는데  직진하는 바람에 잠시 알바 다시 되돌아 오고..

   직진은 공주시 탄천면과 부여군 초촌면 경계 능선이 이어지므로 이제 부여땅이 시작된다는 얘기..  

 

11:53분 ~ 12:27분   신앙고개 지나 식후경.. 출발에서 보았던 공주 금남정맥 지도의 마지막 지점이다..

 

 

12:42분   좌변봉인 개념도상 190봉..  이제 공주 탄천면과도 헤어지며 부여 속살로 들어가게 된다..

 

12:52분   직진으로 길이 좋은 우변봉..

 

12:54분   바로 벌목지가 나오면서 오늘 가장 진행이 힘들었던 구간으로 기억될 듯..

 

벌목지를 걷다보면 개념도상 165봉과 일적선으로 있는 채석장봉이 좌측으로 보이는데..

 

벌목지 끝 부분에서 좌틀하여 가운데 안부를 지나면 앞봉이 개념도상 165봉으로 우측으로 진행한다..

 

세분은 마루금을 포기하고 마을로 내려가 우회하고(적색) 나는 어떻게든 잡목을 뚫고 마루금(청색)따라 진행..

 

 

잡목이 가로막고 거기에 나무들을 쌓아놓아 발목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벌목지에서 좌틀하여 내려가는 중..

 

13:16분   안부로 내려와 로프가 걸려 있는 마루금 포기하고 우회해서 오른다..

 

물을 먹었는지 계속 미끄러지며 서너번 실패 끝에 겨우 오르고..

 

165봉 직전 맞은편 채석장 봉이 보이고 바로 아래 마을에서 세분이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게 보인다..

 

13:23분 ~ 13:34분  우틀봉인 개념도상 165봉에서 다시 상봉하고 휴식 후..

 

13:41분   좌변봉을 지나는데 계속 되는 잡목으로 개념도상 182봉 파악이 어렵고..

 

송전탑 직전까지 계속되는 잡목길..

 

14:08분   지워진 이정표 안부를 지나는데 개념도상 송전탑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14:11분   개념도상 송전탑을 세운 임도인듯 만나 임도를 따르면..

 

 

14:23분   숲속에 들어 좌측으로 가라하고..

 

14:28분   성곽의 흔적이 시작되는 것을 보니 청마산은 가까워 지고 있고..

 

 

14:31분  ~  15:01분     개념도상 187.9봉에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쉼을 가지고.. 

  용정리와 송곡리 경계에 있는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   청마산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로 마루금은 부여군 방향..

 

다음이나 네이버와 달리 개념도에 표시된 청마산 줄기가 보이고..

 

 

15:06분   안부를 넘고..

15:14분   계단을 오르면 개념도상 청마산 갈림길..  좌측 청마산에 들렸다 다시 되돌아 와 LPG 방향으로 진행한다..

 

 

개념도상 청마산으로 아래 성곽 갈림길 이정표에는 월명산으로 되어 있다..

 

** 금남청마단맥종주

금남정맥이 부여읍내로 들어가 청마산성 가기전 등고선상210지점에서 남남동으로 분기하여 靑馬산을 시작으로 석성천이 금강을 만나는 곳에서 끝나는 약13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자료 : 신경수님 금남청마단맥종주(완) - 금남정맥의 막내자식 : 네이버 카페 (naver.com)

 

15:25분   이제 길은 좋다..  아래에 성곽이 있다는 것을 보니 방금 보았던 성곽흔적과 연결되는 듯..

 

 

15:29분   성곽수구지 갈림길..

15:35분   무인 산불감시탑이 있는 개념도상 183봉..

 

앞에 개념도상 154.8봉인 오석산이 보이는데 ..  얘기하며 걷다 담지 못했다는..

 

154.8봉 오석산烏石山221m, 오산(吳山) 부여읍 능산리(陵山里) · 염창리(鹽倉里) 경계

  오석산(烏石山), 오적산(烏積山)이라고도 부르는데 까만 돌이 나오는 산이라 한다. 백제 때부터 삼령산(三靈山)의 하나로 여겨졌는데, 산 부근에서 백제 때의 토기와 불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산은 현 남쪽 7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오산(烏山)은 관아의 남쪽 7리에 있다. 줄기가 공주 땅 계룡산에서 뻗어 온다."라고 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고을의 남동쪽 대방면 주기에 오산의 지명이 등장하며 대방면의 남동쪽에 오산의 형세와 지명이 나타난다. "오산은 관의 동남쪽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탄현으로 이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산 [烏山]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15:52분   정상 아래 목책으로 만든 우회길이 있는 오석산 정상을 지나 청마산성 안내판..

 

안부 직전 백제시대의 최대 산성이라는 청마산성 안내문..

 

청마산성 扶餘 靑馬山城 안내판 부여읍 능산리 산1-1

"부여 능산리 월명산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 당시 수도였던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 백제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석성산성·성흥산성·증산성과 함께 부여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로서 의미가 크다. "

   [네이버 지식백과] 부여청마산성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16:00분   개념도상 청마고개..  다음 지도에는 제마소 고개..

 

토성과 같은 길도 보이고..

 

16:32분   성곽 중에 돌출된 치雉를 복원중에 있는 청마산성의 흔적을 만나고..  마루금은 성곽넘어 이어진다..

 

보통 좌측으로 해서 성곽을 넘어가는데 우린 우측으로 해서 성곽을 넘어갔다..

 

성곽의 흔적을 넘어 이제 사비길을 따라간다..

 

16:48분   이정표 LPG 방향 개념도상 주유소 도로에 내려서고..  도로 건너 통신탑 방향으로 금성산 줄기가 시작된다..

 

16:50분    수동 신호기 작동이 되지 않는 도로 건너 금성산 산행이 시작되고..

 

 

더 자세한 금성산 답사 기록은  따로 정리

초보산꾼 답사기 : ​ 금성산(부여읍) - 사..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7:18분   쌍북리와 가탑리 갈림길 안부를 지나 통수대(統帥臺)가 있었다는 금성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갖고..

 

부여삼산 扶餘三山

금성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부산이, 동쪽에 오산이 2㎞씩 떨어져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여기 오산은 부여 나성이 있는 염창리 뒷산을 얘기 하는 듯..)

《삼국유사》제2권의 남부여조에 이곳에 관하여 “군중(郡中)에는 삼산(三山)이 있는데 그 이름이 일산(日山)과 오산(吳山) 부산(浮山)이요, 백제국이 전성할 시기에는 이들 삼산위에 신선이 살며 서로 날아 왕래함이 아침 저녁으로 끊임이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일산은 금성산, 오산은 오석산, 부산(浮山)은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津邊里) 백강마을의 뒷산이다.

      부여삼산 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부여 삼산 [扶餘三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부여삼산 扶餘三山 중 일산인 금성산..

 

금성산金城山 (일산日山)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백제시대에 임금이 거주하던 금성(金城)이 있던 곳으로 도성 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삼산의 정상부에는 봉화대(烽火台, 烽燧台)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성지를 만들었던 흔적과 건물지가 남아 있다. 특히 일산 정상에는 백제 전역의 각 산성에 송수신을 담당하는 통수대(統帥臺)를 세워 외적의 침입이나 내란이 발생하였을 때 군사 행동의 지시와 통제 및 총괄하였다. 이처럼 일산을 중앙에 놓고 부산과 오산이 좌우에서 보좌하는 형태로 도성 내부의 상황을 잘 전망할 수 있고 멀리 가림산성과 익산 미륵산성까지 조망할 수 있어 위치상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17:29분    조왕사 갈림길도 지나고..

 

17:31분   직진하면 만날 수 있는 금성산 봉화대 갈림길..

 

봉화대..

 

 

봉화대가 있던 곳인 만큼 조망이 좋다..   사진상 좌측에 세계유산인 오층석탑과 박물관이 있는 정림사지도 보이고..

 

오늘 마지막 구간이라 드디어 부여앞 백마강이라 불리웠다는 금강을 볼 수 있고..

 

방금 이정표에서 본 조왕사도 봉화대 옆으로 보이고..

 

17:38분   다시 되돌아 와 계백문 방향으로..

 

17:42분   개념도상 동물이동통로인 계백문을 넘고..

 

17:44분   계백문 도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잠시 내려가 보면..

 

순국지사 유기섭 기적비..

 

 

충의사가 있는 동남리 남령 공원에서 잠시 좌측 의열사 답사..

 

애국지사들을 모신 사당인 충의사를 지나면..

 

 

문이 잠겨 있는 의열사..

 

의열사義烈祠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1575년(선조 8)에 부여 현감 홍가신(洪可臣:1541∼1615)이 건립하였다. 백제 때 충신 성충(成忠)· 흥수(興首)·계백(階伯), 고려 말기의 충신 이존오(李存吾:1341∼1371)의 충의가 후세에 전하여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지었다고 한다. 1577년에 사액되었고, 1641년(인조 19)과 1675년(숙종 1)에 각각 중수되었다. 그뒤 조선 선조 때의 지사인 정택뢰(鄭澤雷), 인조 때의 문신 황일호(黃一皓:1588∼1641)도 함께 배향되었다. 1866년(고종 3)에 철폐되었다가 그뒤 복원되었다. 원래는 용정리 망월산(望月山)에 있었는데, 1971년 지금의 남령공원으로 이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열사 [義烈祠]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다시 되돌아 와 반공순국애국지사 추모비를 지나 국궁장 직전 우측 부소산으로 간다..

 

 

17:59분   개념도상 교회인 새로남교회를 지나고..

 

18:01분 개념도상 도서관 좌측 옆길로 진행하면..

 

18:03분   개념도상 부여여고 정문으로 들어가..

 

운동장 가로질러 계단으로 해서 뒤 부소산으로 오른다..

 

충남 문화재 자료인 백제 왕궁 우물로 추정된다는 팔각우물과 안내문..

 

 

교정 뒤로 부소산을 오르고..

 

18:10분   산책로를 만나 산책로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치고 오른다..  덕분에 부소산 영일루는 담지 못했다..

 

영일루 迎日樓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백제 때 축조된 부여 부소산성(사적)의 동대(東臺)에 유존하던 건물지에 홍산문루(鴻山門樓)를 옮겨와 세웠다. 누각을 옮겨 세우기 위해 땅을 고르게 다듬는 공사를 할 때 백제의 와편이 많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 누각은 백마강 기슭에 있는 부소산(106m)의 동쪽 산봉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래 이곳에는 영일대(迎日臺)가 있었는데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지금의 건물은 1964년 5월 홍산에 있던 1871년에 지어진 조선시대의 관아문(官衙門)을 옮겨와 세운 것으로 이름을 영일루라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일루 [迎日樓]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8:17분    바로 군창지가 있었다는 부소산 정상이 나온다..

 

부소산扶蘇山

  백제 때 성왕이 도읍을 웅진(熊津)에서 이곳 사비(泗沘)로 천도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부여의 진산(鎭山)이며 동쪽 작은 봉에 비스듬히 올라간 곳을 영월대라 부르고, 서쪽을 송월대라 이른다.”고 한다. 언제부터 부소산으로 불렸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소나무를 뜻하는 ‘풋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부소’라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솔뫼’가 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소산 [扶蘇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소산의 더 자세한 산행기는  따로 정리

초보산꾼 답사기 : ​ 부소산(부여읍) - 사..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이제 마루금은 토성을 따라 이어진다..

 

18:27분   부소산의 옛이름 반월성에서 따왔다는 반월루가 보이고..

 

 

구드래 나루터 방향 금강도 살짝 보이고..

 

18:32분   네거리 쉼터에서 고란사 방향으로..

 

 

태자들의 산책로로 추정된다는 태자골 숲길도 있다..

 

지금 걷고 있는 것이 부소산성이다..

 

 

산책로는 마루금을 좌. 우로 넘나들고..

 

 

18:40분   사자루 갈림길..

 

백마강을 볼 수 있는 사자루..

 

사자루泗泚樓 부여읍 쌍북리 678-2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뒷면 확인

   원래 1824년(순조24)에 세워진 누정으로 임천면(林川面)의 관아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건축물이다. 1919년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送月臺)에 옮겨짓고 누정의 현판을 개산루(皆山樓)에서 사자루로 변경하였다. 2층 문루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2층에는 누각을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건물 정면에 한말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쓴 〈泗泚樓(사자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백마강쪽으로는 해강 김규진(金圭鎭)이 쓴 〈白馬長江(백마장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땅을 고를 때 정지원(鄭智遠)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백제시대의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보물)이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자루 [泗泚樓]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8:46분   낙화암과 고란사 갈림길..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었다는 고란사..

 

고란사 皐蘭寺: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

   백제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현재의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란사 [皐蘭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충남부여 고란사 석조약사불좌상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고란사 석조약사불좌상. 유제면 좌우변에 “三六四”라고 붉은색 글씨로 기록됨. 충남부여 고란사 석조약사불좌상 (naver.com)

 

 

 

뒤로 가면 고란초와 고란정 약수를 만난다..

 

다시 이번에는 영업이 종료된 고란사 선착장에 내려온 이유는..

 

선착장 우측에 중국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과 관련된 유래가 전하는 조룡대가 보인다..

 

조룡대(釣龍臺) : 당나라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고 하여 이 바위를 조룡대라 한다고 전한다.

  사람 하나가 겨우 앉을 만한 크기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중국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의 도성을 함락시킨 뒤, 어느날 대왕포(大王浦) 하류에 갑자기 태풍이 불어 바위나루[窺巖津]를 지나 낙화암(落花巖)까지 잇대어 있던 수백 척의 당나라 병선이 순식간에 뒤엎어지고 말았다. 소정방은 이 돌연한 괴변이 왜 일어났는지를 일관(日官)에게 물었다.

일관이 말하기를, 이것은 백제를 지켜온 강룡(江龍)이 화를 낸 것이라고 하였다. 강룡을 퇴치할 방법을 소정방이 다시 물으니 일관은 용이 좋아하는 백마를 미끼로 하여 낚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소정방은 쇠를 두들겨 낚시를 만들고 굵은 철사를 낚싯줄로 하여 백마를 미끼로 강 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용을 낚기로 하였다. 그러자 용은 미끼인 백마를 삼켜서 잡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일로 하여 뒷날 사람들이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고 하는 이 바위를 조룡대라 하고,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은 강이라 하여 금강(錦江)의 줄기인 부여 부근 일대의 강을 백마강이라 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룡대 [釣龍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번에는 백화정 정자가 있는 낙화암..

 

 

낙화암 절벽 위..

 

 

안내그림을 보면 절벽에 송시열의 글씨로 알려진 낙화암 각자가 보인다..

 

백마강교 방향..   

 

구드래나루터 안내문에서..

 

 

19:12분   이제 답사를 마치고 되돌아 와 이정표가 없는 우측으로 가면서 다시 마루금 산행이 시작되고..

 

19:13분   숲속으로 띠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19:17분   구드래나루터 금강으로 내려서고..

 

19:20분   구드래 나루터에서 종료..

 

구드레나루

구드래는 부소산 서쪽 기슭의 백마강가에 있는 동리 이름으로서, 이 일대는 강과 어울려 빼어난 경승을 이루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임금이 왕흥사에 예불을 드리러 갈 적에 먼저 사자수 언덕의 바위에 올라 부처님을 향하여 절을 하면 그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지므로 자온대自溫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구드래라는 동명은 이 자온대의 전설과 문헌 기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왕흥사는 법왕 2년(600)에 창건된 국찰로서 당시의 절터는 이 구드래나루를 건너 울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여 구드래 일원 (답사여행의 길잡이 4 - 충남)

 

 

부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금강의 또 다른 이름 백마강이 세도면 반조원리 방향으로 계속 흐르고 있고..

 

** 부산(浮山)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津邊里) 백강마을의 뒷산이다.

   백강 이경여 선생이 중국 명나라 사신 때 가져와서 심었다는 매화나무는 그 옛날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500여년의 향기를 품고 있다. 충북 청주골에서 떠내려 왔다는 신기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출처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http://www.jbnews.com)

 

 

장소를 옮겨 뒤풀이 중..  산가연 총무님의 찬조로 맛있는 뒤풀이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폭풍전야 형님..  수고하셨습니다..     

매번 산행 전 휴게소에서 먹었던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신 군고구마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겠죠?  

 

 

카프리 대장님과 로즈님..  환상적인 호흡으로 완주 축하드립니다..

힘드신 여정에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란 증명을 위해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하시어 여기까지 오신 로즈님..

준비에서 종료까지 리딩하시고 아침마다 커피로 열고 안전 운전으로 마무리 하신 카프리 대장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금남정맥은 끝나고..

 

 

각자 다른 위치에서 또 다른 산행을 준비하며 여기서 멈추게 된다..

 

 

백마강白馬江은 '백제의 제일 큰강'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에 달하는데 역사적으로 馬는 '크다'는 뜻으로 쓰여왔고 백마강의 또 다른 이름인 白江, 白村江의 白도 크다는 뜻이다. 백제의 제일 큰 강인만큼 백제의 도읍이 되면서 금강은 일본이나 당나라와의 문물 교역의 큰 길목이 되었다.

   참고 자료 : 금강 - 나무위키 (namu.wiki)

백제가 주인이 되면서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금강의 또 다른 이름 백마강..

여기에 낙화암에 꽃처럼 떨어진 삼천궁녀의 사연이 전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1940년에 발표된 '꿈꾸는 백마강' 노래가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국민 애창곡으로 불리워진 만큼의 무게로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백제의 멸망이란 가사로 조선 총독부로 부터 발매금지되던 때도 있었고

광복이후에는 작사가가 월북하는 바람에 금지곡이 되어 한동안 부를 수 없었던 사연까지..

우리 세대라면 부여 이름만 들어도 한번쯤 흥얼거리며 불렀던 노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산경표를 만들 때 이렇게 스토리를 생각하며 그렸던 것은 아닐 것인데

낙화암의 꽃잎과 함께 금남정맥도 함께 끝나는 오묘한 우연..

마지막 구간내내 걸으면서 흥얼거려야만 했던 '꿈꾸는 백마강' 달밤 노래 가락에 취하고

낙화암 그늘을 벗삼아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고즈넉한 고란사 종소리를 들으니

산경표의 금과옥조를 어기면서까지 백바강 앞으로 그려놓은 옛선조들의 깊은 뜻을

이제야 조금을 이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 금남정맥을 마치며 가지는 단상이다.

금강을 둘러싼 정맥과 기맥을 이제야 모두 마칠 수 있어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초보산꾼의 금강 답사기도 이렇게 막을 내린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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