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1차 14구간 :  늘재에서 갈령까지 (남진)

 

 

언제 : 갑오년(14년) 하늘연달  열흘 쇠날 밤  ~  열하루 흙날 (무박2일) 


누구랑 : 대간5기 산우님들         

 

어딜 :  늘재 ~ 밤티재 ~ 문장대 ~ 신선대 ~ (경업대) ~ 천왕봉 ~ 형재봉 ~ 갈령삼거리 ~ 갈령(접속구간)

                           20.6 km (상황봉 대장님 공지내용, 접속구간포함)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엊그제가 보름이었으니 우리가 떠나는 대간길에도 어김없이 어둠속에 빛나는 별들까지 안아주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속세가 산을 떠날 정도로 사람의 맘까지 품어 주었던 속리산에서 맛보는 가을 초입의 밤하늘

적은 인원이 출발하는 만큼 새벽녘에 들려올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까지 담아 볼 수 있을까?

이제 완연히 숨을 죽인 뙤약볕 열기를 넘어선 가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선 속리산의 가을 풍경은 어디까지 일까?

중화지구는 잠시 남겨두고 떠나는 대간길의 또 다른 큰 산 속리산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이제 대간길은 산행이 아니라 여행하는 기분으로 떠나 봄이 어떨련지....

 

 

대간11차 13구간 속리산 구간 등로..  (남진)

 

 

光明山, 彌知山, 小金剛山으로 불리기도 한 속리산(俗離山)  

崔致遠 선생은 `산이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났다(山不離俗, 俗離山)고 하여 자기의 심회를 속리산의 이름에 투영시키고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선유동 계곡을 일러 `어떤 사람은 금강산 만폭동(萬瀑洞)과 비교하여 웅장한 점은 조금 모자라지만

기이하고 묘한 것은 오히겨 낫다하여 대개 금강산 다음으로 이만한 水石이 없을 것이나 당연히 삼남 제일이 될 것이다`고 극찬했다.

퇴계도 이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아홉 달 동안이나 머물면서 9곡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부터 이 초보산꾼과 함께 맘을 담아 둘 수 있는 속리산으로 떠나본다

 

 

 

속리산 지도

 

비법정 탐방구간이지만 꼭 가야할 대간 마루금이기에 도착한 늘재

늘재 상주와 충북 괴산군 송면을 잇는 49번 국도

고갯길이 제법 너르다 하여 붙여진 지명.   고갯마루가 눌러 앉은 것 같은 형국이라 눌재라고도 한다.

고개마루에는 320년이나 묵었다는 아름드리 음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다.

바로 옆에 서낭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음나무는 당목임이 틀림없다.

 

늘재 북쪽으로 남한강 지류인 화양천을 따라 전개되는 화양구곡과 다시 그 상류지역인 삼송천을 따라 전개되는 선유동 구곡으로해서 한강으로 흘러간다.

화양구곡은 우암송시열이 은거하던 곳으로 그의 필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9곡은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청운대, 와룡대, 학소대, 파곳을 말한다.

선유동구곡은 청천면과 송면리와 삼송리에 걸치는 삼송천 계곡에 펼쳐진다.

9곡은 선유동문,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귀암, 은선암을 말한다.

늘재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문장대 오송폭포와 천왕봉 정각폭포의 물과 화북면에서 만나 농암천을 이루고,

갓바위재에서 만날 궁터마을에서 시작되는 궁기천과 농암면에서 만나 영강을 이루며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생태통로가 있는 밤티재 지킴터 - 일부는 도로로 내려와 만나는 지킴터

밤티제

이마을에 밤이 많았고 근처에는 높은 고개가 있어서 栗峙라 하고 우리말로 밤티제라 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남쪽으로 율치를 넘으면 문경군의 병천이다.

율치 이북은 지세가 가장 높아서 여러마을이 모두 산을 등지고 냇물을 인하여 있다(背水臨水).

이 곳 양쪽이 참으로 隱者가 살 곳이다라 했다

 

 

무덤이 있는 견훤산성 갈림길인 594봉 - 좌측이 견훤산성, 우측이 마루금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본래 성이 이씨였으나 뒤에 황간 견씨의 시조가 된 사람이다.

견훤산성은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견훤이 신라와 고려를 방어하고 공격하기 위해 이 곳을 거점으로 삼은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견훤은 이 산성을 거점으로 남으로는 신라를 압박하고 북으로는 왕건의 세력을 견제하였다.

 

 

첫 바위봉 사이를 어렵게 오르는데 보름을 맛 넘긴 아쉬움의 표현으로 달이 걸쳐 있다

 

서서히 여명은 밝아 오고

 

나무를 타고 올라야 하는 기술도 필요하고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맛본 칠형재봉 바위군들과 만남이 그래서  더욱 상쾌하다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있는 속리산 이 왜 8대 명승지로 통하는지 말해주고

 

역시 동고서저의 한반도 특성 답게 속리산도 동쪽방향은 가파른 지형을 이루고 있다 - 힘내시죠 대간 산우님들

 

문장대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조망되고

 

문장대 막바지에 만나게 되는 바위

 

출입금지를 넘으면 헬기장과 문장대

 

문장대는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운장대라고도 한다.

문장대 안내판에는 문장대를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고 있다. 나도 이번에 세번째인데...

천왕봉보다 25m낮아 정상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하늘로 오르는 듯한 착각이 주는 뿌듯함에

비롯 세찬 가을바람이 심술을 부리기는 했어도 하늘과 손잡고 함께 세상사는 얘기를 맘껏 외처볼 수 있음에

이른세벽에 올랐던 문장대에서의 추억 우리 대간식구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문장대 이정석과 문장대 바위 오르는 길 - 문장대 이정석에서의 단체사진  - 대간 산우님 작품

문장대  文藏臺

세조가 신하들과 더불어 시를 지었다 하여 文藏臺라 하고

요양을 위해 속리산을 찾아 왔을 때 어느날 밤 꿈속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 일러 주었고.

다음날 이 곳에 올라 오륜삼강을 명시한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

큰 암석이 하늘 높이 치 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雲藏臺라고도 한다. 북쪽 절벽사이에 있는 甘露泉이 유명하다.

 

 

문장대에 올라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속사지맥 방향 조망

화양구곡의 비경을 낳은 문장대에서  관음봉, 묘봉, 상학봉, 활목재, 덕가산, 금단산으로 이어지는 속사지맥이 분기한다

 

 

문장대에서 식후경을 하고

 

불교용어가 많은 속리산의 봉우리이름으로 미루어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문수봉文殊峰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오면 좌측으로 산죽사이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데 들어가보면 청법대를 가장 잘 볼 수 있다

청법대(聽法臺)

청법대는 문수봉과 신선대 사이에 위치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없어 등산이 불가능하여

신선대 쪽으로 가다 문수봉을 지나 뒤를 돌아 보면 볼 수 있는 기암이다.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넋을 잃고 방황하다가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

청법대는 부처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 일곱개의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청법대 아래 부분

 

윗부분

 

신선대 이정석이 있는 휴게소에 본 신선대

신선대(神仙臺)

아득한 옛날 속리산 절경에 혼을 빼앗긴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 능선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오르며 춤을 추고 있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어 그 모습이 고승이 평생 원하는 선유세계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지나 그곳으로 달려 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고승은 크게 실망하고 아쉬워 하면서 그 자리르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이곳을 보니 여전히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 담소를 하는 지라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그곳으로 달려갈 엄두도 못 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선들이 놀았던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경업대로 내려오면 경업대 안내판이 있는 경업대(慶業臺) 바위 - 1596년 임경업장군이 독보대사에게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한다

경업대(慶業臺)

1596년 임경업 장군이 독보대사에게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한다.

신선대[1026m]에 도착했다. 휴게소가 있었으나 문이 잠겨 있다. 휴게소 마당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힌다.

여기서 법주사쪽으로 0.6km정도 내려가면 경업대가 나온다. 경업대는 1596년 임경업장군이 독보대사에게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한다

 

 

경업대에서 본 입석대와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칠갑산 대장님 - 입석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임경업장군이 나의 이런 모습 보시면 웃으실까?  - 칠갑산 대장님 작품

 

경업대에서 바라본 신선대는 신선대 휴게소에서 본 모습과 다른 모습이다. 왜 신선들이 여기서 놀았는지 알 수가 있다

 

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절이라 하여 이름 붙여 주었다는 법주사 (法住寺) 방향

 

마루금에 벗어나 잠시 들렸던 경업대에서 다시 올라와 입석대 모습이 조금 보이는 입석대에 있는 이정표

입석대(立石臺)

전설에 따르면 임경업 장군이 7년간 도를 닦은 끝에 입석대를 세웠다고 한다.  청법대와 마찬가지로 매우 험준하여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단다.

조선왕조 16대 인조때 임경업장군이 이 곳에 이르러 6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할 때 그가 어느 정도의 단련이 그의 체력한계가 되는 지를 알 길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시험하여 했으나 기준조차 알길이 없어 매우 당혹하게 여겨오고 있었는데

 

 

바로 옆 바위로 올라 산죽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그 사진은 칠갑산 대장님 사진 참조

하루는 석굴에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 뇌리에 홀연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 마주 바라다 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 놓으면 그 힘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 하는 말이었다.

임경업은 곧 경업대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세우려 했으나 세우지 못했다.

이에 임경업은 그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다시 열심이 체력을 단련하여  마침내 수도 7년째 되던 해에 盤石위에 돌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 후부터 `돌을 세웠다`고해서 입석대라 불리게 되었다.

 

 

코주부바위와 원숭이바위도 지나고

 

비로봉

비로봉(毘盧峯)

진표율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온 이튿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다. 

대사가 깜짝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사방팔방으로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황급이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

대사는 비로자나불을 직접 배알할 수 있었던 산봉우리를 비로자나불(인도어로 `모든 것을 두루 비친다`는 뜻)의 이름으로 붙여 비로봉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로 화재를 모으기도 했다.

 

 

상고석문(문바위)

 

법주사 갈림길을 지나 만나게 되는 장각폭포로 유명한 장각동 갈림길

 

천왕봉 직전 헬기장에서 본 비로봉과  그 뒤로 입석대 암릉 - 이제 하늘이 높아진 만큼 더욱 파래진 가을 하늘이 구름 몇점 거느리고 있다

 

속리산의 주봉이면서 삼파수의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천왕봉이 보인다

천왕봉 1058m

천왕봉의 장각폭포에서 갈령과 피앗재에서 흐르는 물과 합류하여 옥녀봉으로 흐르고,

문장대의 오송폭포에서 서출동류(西出東流 -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 특성상 특이한 경우이다) 승무산의 늘티물과 만나고,  

강선대에서 천왕봉 물과 다시 만나 도장산과 청화산 사이로 용유계곡과 병천계곡의 절경을 이루며 썅룡 30리 곡구를 거쳐 낙동강으로 흐른다.

백악산 옥량폭포에서 늘티 서북쪽과 갓티재가 만나 선유동 물을 흡수하여

화양구곡의 절경을 이루면서 문장대 관음봉과 용화온천 물이 합류하여 한강 상류를 형성한다.

천왕봉과 형제봉의 서북쪽 삼가저수지의 물이 옥천군으로 흘러 금강으로 흘러간다.

 

 

천왕봉 이정석과 선두팀 단체사진 - 바시님 작품

애초 천왕봉이었던 것이 녹색연합의 청원서에서  "당초 王이던 지명이 일본 천황을 뜻하는 皇으로 바뀌었다면서

일제에 의해 왜곡되어진 봉우리 이름을 바로잡아달라 요구한 것을 군 지명위원회는 "대동여지도와 팔도궁현도 등 옛 지도와

동국여지승람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느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개명을 결정(2007년12월26일 고시)하여

지금은 천왕봉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여기서 잠깐 대간팀이 즐겼던 속리산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고 가보자

 

 

밤티재를 넘어 문장대로 오르다 처음 맞이한 여명

 

가난함이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고통을 가져 온다.” 라고 했던 철학자의 말이 떠 오른다

자기가 태어날 떄 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거야 근원적인 얘기이고 켜켜이 싾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길에서 욕심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욕심을 버리고 살 수 있을지

 

 

아침여명을 받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 칠형제봉 방향

 

비가 개이고 나면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고

쉬그칠 것 같지 않았던 파문도 세월의 묘약앞에서는 언제나 힘을 잃는다

아침 햇살에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던 이슬방울도 곧 생명을 다하지 않던가

어둠의 터널을 달릴 때의 끝 없을 것 같았던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문장대 오르다 본 산수유릿지 능선

 

밝음만을 지향했던 나의 욕심이 곧 다가오는 어둠을 망각하고 살았음을 이제야 꺠닫는다

가고 옴의 진리를 알면서도 쉽게 망각하는 사람의 맘속에 숨어있는 욕심에

스스로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아가려 하는 게 인생임을 다시 한번 되세기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문장대에서 본 칠형재봉 능선 - 아침 햇살을 구름이 가리워주어 조명역활을 하고 있어 칠형제봉의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행복한 것은 그나마 산속에 들어 자연앞에서 나를 잠시 잊어 버리고

자유의 시간에 도달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다시 걷고 있는 내가 그저 고맙고 반가울 뿐

어디서 더 보상을 받으며 어디서 더 위로를 받겠는가? 여기가 나의 자리인 것을...

 

 

문장대에서 본 관음봉에서 운흥두부마을로 이어지는 기암들

 

여기서 생각나는 시 한편이 나를 잡아둔다

 

가을이 오면 - 김용석

나는 꽃이예요 /  잎은 나비에게 주고 /  꿀은 솔방 벌에 주고 /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 가을이 오면 /

 

과연 나는 그런 꽃이 될 수 있을까? 

다주고도 행복하다는 꽃이여 당신은 그래서 아름다운가 보다

 

 

문수봉에서 본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능선

 

이제 곧 수확하게 될 들녘을 가꾸어 놓은 황금물결치는 벼들의 가을얘기를 들으면서

가을 걷이가 끝나고 풍요로운 겨울을 인간에게 남겨주고도

논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지푸라기에게도 꽃 보다 못지않은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한번 주고 나면 꼭 언제나 대가를 바라는 인간들에게 말없는 실천을 강요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청법대의 기암괴석들

 

지푸라기는 선택받지 못했다고 푸념하지 않고 썩어 다시 봄에 다가올 씨앗의 자양분을 만들어 주고

새에게 선택받은 놈은 새들의 포근한 둥지를 만드는데 유용하게 쓰이고

농부에게 선택받은 놈은 각종 농기구에도 쓰이고 멍석에도 쓰이고 맘을 이어주는 밧줄에도 쓰이고...

참으로 받은 것 없이도 뭐하나 남김없이 생을 다하는 말없는 실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경업대로 내려오다 바라본 좌측에 보이는 입석대 - 입석대의 모습을가장 확실히 알려주는 곳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인간세계에서 해 줄 수 있는게 별로 없음이 안타깝다는 생각

같은 산길을 걸어도 생각이 다 다르고 또 바라보는 시선도 같지 않은 현실에서

선뜻 나름대로 친절을 배푼다고 해도 그것이 꼭 받는 사람입장에서 반가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신선대로 이어지는 암릉이 무게를 더하고

 

돌부리에 다친 상처는 아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사라지지만 

사람에게 다친 맘의 상처는 아마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지도 모른다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현실이 중효함을 뻐저리게 느끼고 또 느껴본다

그래서 나는 산속에 있을 떄 가장 행복한 만큼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진리를 믿고 다시 한번 산속에서 길을 찾아 봐야 하겠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걸어온 능선과 멀리 문장대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까지

 

다시 산행기로 들어와 한남금북정맥갈림봉 - 출입금지판으로 들어가면 이정표가 보인다

 

한남금북정맥 접속구간으로 많이 이용하는 도화리 갈림길 - 한남금북정맥하면서 걸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헬기장도 지나고

 

667봉

 

만수리 갈림길도 지나고

 

형제봉의 유래를 안고 있는 바위 형제가 보이고

 

정상에 큰 바위봉우리 두 개가 낙타 등처럼 솟아 있어 형제봉이란 이름이 붙은 형제봉 - 작약지맥 분기봉

중화지구가 끝나는 봉이자  산세가 반쯤 핀 작약꽃을 닮았다 하여 작약봉을 지나가는 작약지맥이 분기하는 봉이다.

芍藥지맥은 형제봉과 갈령,대궐터산을 지나 상주시와 문경시를 넘나들며 작약산과 태봉산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만들어진 이안천은 영강과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드는 도상거리 약 50km의 산줄기이다.

국수봉에서 헤어진 충북과 경북의 도계는 여기 형제봉에서 다시 만나 문장대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천황봉과 구병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뉜다.

 

 

작약지맥갈림길이면서 접속구간이 있는 갈령삼거리 - 마루금은 비재 빙향이지만 우린 갈령으로

 

갈령이 지나는 도로가 보이고 앞에 873봉이 견훤이 이산에 성을 쌇고 대궐을 지었다고 해서 붙여진 대궐터산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면 갈령

갈령

칡이 많아 갈령이라 했는데, 한국전쟁때 한국군 제7연대가 인민군을 맞아 첫 승리한 화령장 전투 중 동관리 기습작전 격전지로 유명해진 고개이다.

갈령은 형제봉과 두리산의 목이다. 이 곳에서 시작된 계곡물은 장각골과 합쳐지고

용류리에서 오송골 화양천과 합수되어 영강을 만들고 퇴강리 부근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상주로 나와 뒷풀이

 

김치찌개로 하루의 피로를 툴어 준다

 

이렇게 속리산의 여행도 끝을 알리고

 

대간팀이 요즘 걷고 있는 동선만큼이나 절묘한 조화가 이채롭다

덕유산구간에서 오리무중속에 한차레의 풍랑을 안개속에 겨우 묻었는데

그리고 삼도봉에서 화합의 맘을 담아 많은 산우님들의 대간에 대한 애착을 느끼기도 해 봤지만

공교롭게고 추풍에 맥없이 떨어지는 대간팀의 낙엽같았던 추풍령구간

거기에 산이 속세를 떠나든 속세가 산을 떠나든 떠남은 꼭 철학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차레 맘속의 풍랑의 파고를 넘고서 떠난 속리산

뜻이 너무 심오해 알 듯 모를 듯 한 속리산의 유래만큼이나 곳곳애 숨어있는 속리산의 절경들

거기에 가을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속리산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움을 기암괴석 사이에 그려놓아

우리가 물감을 칠할 수고를 덜고도 속리산에서의 가을풍경을 맘꺽 즐긴 하루 

대간 식구들의 땀방울 만큼이나 즐거움도 컸으리라 생각해 보면

연신 불어주던 속리산의 가을바람에 나를 맡기니 세상 뭐 부러울 것이 있으랴만

그저 산속에 있어 행복했으면 됐지 라고 생각해 본다

 

문장대 정상에서 맞이한 가을바람소리 한번 들어 보시지요

 

 

 

언제나 옆에 있을 것 같았던 추억속 그림자에 가려 있는 허상들을 하나 둘 꺼내어

문장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다 날려 보냈다고 생각하니 한결 맘은 편해졌지만

속세를 떠난다는 뜻을 품고  있는 속리산에서의 하루의 여정이 남긴 여운은 언제나 남아 있다

나는 속세를 떠났어도 또 다른 속세가 이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아마 또다시 우리는 그 속세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며

다시 살아 갈 것이기 떄문입니다

 

기암괴석과 어울리며 만상홍엽을 이루어 낸 가을 풍경을

그저 아무 생각없이 즐겼어야 했을 속리산 이지만

지난주 3일간의 연휴를 맞이하고도 땅끝지맥에도 못가고 칩거했던 후유증에

좀 산행기가 무거워졌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우리 대간 산우님들은 맘껏 속리산의 가을을 즐겼으리라 생각됩니다

생각보다 빨리 지나갈 가을

맘꺽 즐기시길 바랍니다

 

대간팀은 어렵지만 가는 길에는 이렇게 자연까지 도와 주었으니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 대간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모두 수고했습니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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