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 7구간 : 우면산에서 관악산 석수역까지

 

 

언제 : 병신년(16년) 타오름달 8월 엿새 흙날

 

누구랑 : 혼자서

 

어딜 :  한국교총 ~ 우면산 ~ 남태령 ~ 연주대 ~ 삼성산 ~ 장군봉 ~ 석수역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295 에 있습니다

 

 

이제 아쉽지만 보내야만 하는 여름을 마지막으로 즐기기 위해 만나게 되는 8월

입추入秋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말복도 보내야 하고 더위가 한풀 꺽인다는 처서處暑까지...

거기에 칠월칠석의 의미에 광복절까지 덥지만 절기에 맞춰 살아가야만 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

새롭게 시작한 서울외곽55산 벌써 강남구간도 마지막...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관악산속으로 들어가 본다

 

 

 

들어가기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전체지도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강남 구간

 

 

서울 외곽 수도권 55산 종주 7구간 : 우면산에서 관악산 남태령 들머리

 

 

관악산

 

 

하남 검단산에 출발한 서울외곽 수도권 55산 종주가 이제 강남구간 마지막 구간으로 서울 시내의 또 다른 산 우면산을 출발하여

우면산 정상을 우회해서 과천과 만나 서울과 도 경계를 이루며 관악산 연주대를 지나 학바위 능선에서 안양과 만나게 된다

地氣가 꽉찬 명당으로 옛부터 부자들만 살았던 우면산이 난개발로 인한 꽉찬 地氣마저 지키지 못한 아쉬운 상처를 만나보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경복궁을 지으면서 관악산과의 얽힌 사연들을 알아 보면서 도경계인 관악산 종주를 떠나 본다

 

 

 

 

우면산 들머리로 잡고 있는 한국교총으로 가기 위해 양재역 11번 출구로 나와

 

바로 앞에 18번 마을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한국교총(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  안내방송에 따라 내리면...

 

버스가 왔던 길로 이동하면 주유소가 나오면 좌틀하면서 산행 시작...  우측 도로 넘어에는 한국교총이 보인다

 

주유소 옆에 들머리가 보인다

 

삼각점도 지나고

 

성촌마을에서 올라 오는 길인 듯... 네거리에서 우틀 계속 오른다

성촌마을

말죽거리부터 과천까지 우면산 남쪽기슭에 늘어서 있던 열두 우마니 중에서 가장 큰 동네여서 큰말이라고도 불렸다

우면산 남쪽 기슭은 밖에서는 바람이 부는 등 일기가 사나워도 이곳에만 들어서면 움 속처럼 따뜻하다고 해서 ‘움 안(우마니)’이라고 불렀다

우면산 자료 : 월간중앙 2011.08.21.     http://kcstudio.tistory.com/4837

 

 

계속 오름길을 하면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고

 

정자와 운동시설이 있는 삼각점 봉

 

소망탑 이정표를 따르면 돌탑이 있고 전망대가 있는 소망탑

우면산(牛眠山)293m

우면산은 그 형상이 소가 조는 형국이어서 붙었다고 하는데 조는 소라면 명당의 으뜸 조건과 같은 평온한 땅이라고 풍수에서는 해석한다.

우면산은 규모는 작지만 형태로 보면 地氣가 꽉 찬 산으로 우면산 기슭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터 잡고 삶을 일군 곳이다.

지금도 우면동 한국교육개발원 남쪽 갓배(대한교원복지회관 앞 언덕)에는 전형적인 북방식 탁자형 고인돌이 남아 있다.

자료 : 월간중앙 2011.08.21.     http://kcstudio.tistory.com/4837

 

 

범바위 이정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부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 우측으로 해서 우회를 시작한다.

 

계단을 내려오다 보면 이정표가 없는 좌측으로 해야 남태령으로 갈 수 있다

 

자연이 준 명당자리를 인간의 욕심 난개발로 몇 년전 물바다로 큰 피해를 봤던 지역이 자주 나타난다.

 

유점약수에서 범바위 방향으로

 

유점약수 부터는 계속 부대철망을 따라 올라 간다

 

독도 주의 지점 - 모든 산우님들이 남태령에서 관악산을 오르는 길을 몰라 거의 전원마을로 내려가 관음사로 다시 올라 간다

 

 

자료가 거의 없어 걱정했는데 마울 주민을 만나 조언을 듣고 정학한 마루금을 이어가 본다. 후답자에게 좋은 자료가 되길...

부대 정문 도로를 만나면서 마루금에 접속

 

부대 도로를 따르다 산속으로 진입

 

나무의자가 있고 넓은 공터와 전망이 좋은 무명봉...  다음지도를 보면 여기서 부터 과천시와 서울시의 경계인 듯...

 

무명봉에서 본 남태령과 관악산

 

약수터 갈림길도 지나고

 

군시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좌측은 선바위역 방향 - 남태령까지 가다보면 좌측으로 빠지면 선바위역으로 갈 수 있다

 

군시설 바로 위 봉 - 돌탑이 있고 이정표가 있다. 선바우역 방향으로

 

잠시 후 전망이 열리면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무명봉

 

가끔 과천시 경계 답사를 보니 지금까지 제대로 오고 있다는 얘기

 

내려오다 좌측으로 헬기장에서 남태령과 관악산을 담아 보고

 

주의 : 삼거리에서 남태령 방향으로 우틀

 

계속 직진

 

부대 사격장 주의 철망을 지나

 

우틀하면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 간다

 

산적마을 이정표를 지나 계속 도로를 따라간다

 

옛날에는 이렇게 놓아 먹이며 키웠는데...

 

도로가 나타나며 먼저 과천루가 반기고 각종 안내문이 있다

 

 

 

아시죠? 남태령이 삼남대로의 마지막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사실...

 

과천은 얫부터 고구려,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는 동안 서울의 관문 도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촌놈 한양 갈 때 과천에서부터 긴다.’는 옛말이 나왔을 것이다

남태령 고개만 넘으면 서울인데... 과천의 텃세가 장난이 아니었나보다....

원래 남태령은 수목이 울창하고 후미진 곳이 많아 여우가 많이 출몰하였다 하여 여우고개[狐峴]라 불렸다고 한다.

 

 

도로 옆으로 해서 선바위역 방향으로 내려가는 남태령 옛길

 

하루는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하다 남태령 고개에서 어가(御駕)를 멈추고 잠시 쉬어가게 되었는데

촌로에게 고개 이름을 묻자 서울서 남쪽으로 오면서 맨 처음 만나는 큰 고개였기에 남태령이었다고 아뢰었다고 한다

정조는 촌로가 차마 임금에게 여우고개라는 요망스런 말을 할 수 없어 남태령이라고 아뢰었음을 알고

이때부터 남태령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촌로에게는 벌 대신 벼슬까지 내렸다고 한다

 

 

남태령으로 올라 횡단보도를 건넌다

 

서울로 들어오기 위한 삼남대로의 마지막 관문이며 삼남대로로 통하는 서울에서의 첫 출발지

한 사람의 촌로의 예지에 의해 탄생한 남태령이 추사의 글씨체와 어울려 오늘 더욱 크게 다가 온다

또한 이 길은 서울에 필요한 나무 땔감을 데어주던 과천의 나무꾼들이 동대문 등으로 지게를 지고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아주 옛날 얘기가 아니고 불과 백년도 안 된 몇 십 년 전의 얘기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어릴 젓 들었던 나무꾼 얘기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과천방향으로 내려간다

남태령南泰嶺

남태령은 과천을 거쳐 수원으로 가던 옛길이며 또한 삼남(三南)으로 통하던 출발지 였다 

특히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용릉으로 가기위해 자주 이용했던 길이었다

남태령 글자는 추사의 글씨를 각자한 것이라고 한다

 

 

관악산 도경계 능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속위험 표지판 직전 월담을 해야 한다

 

도로옆을 따르다 계곡 넘어 참호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희미하지만 길이 보이므로 천천히 진행하다 이 부분에서 좌측으로 해서 올라간다.

우측으로 가면 철망이 있어 길은 좋으나 나중에 길이 없어 진다

 

 

부대 내의 시설을 오고가는 도로를 만나면 계속 직진. 도로 따라 올라 철조망을 만나 우틀해도 된다

철망을 우측으로 끼고 조금 오르다 좌측으로 길이 보이면 산속으로 진입

 

다시 철조망을 만난다. 여기까지 길찾기 성공하면 이제 능선길이니 고생 끝

 

안내판도 지나고

 

넓은 참호 시설이 있는 첫봉과 좌측으로 해서 계속 이어가게 된다.

 

관악산의 숨은 명물 남근석 마애불이 보이고

 

여기서 김밥으로 식후경... 그런데 계속 목이 말라 김밥이 도저히 넘어가질 않는다. 김밥을 물하고 함께 먹기는 처음....

 

다시 부대에서 설치한 철망이 길을 가로 막는다. 물론 어떻게든지 넘어야 갈 수 있음이니...

 

넘 더워 사진찍기도 힘들고... 이제야 우면산에서 넘어 온 길을 뒤돌아 본다

 

용마북능선과 만나면서 이제야 부대의 범위에서 벗어 난다.

 

관악산은 나보다 산우님들이 더 많이 알고 있어 간단히...  연주대 갈림길에서 연주대 포기하고 연주암으로...

 

관악산 정상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초보산꾼 자료 사진으로...

 

관악산  冠岳山 629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했던 산이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산의 정상부가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라는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

 

 

연주대를 우회하면서 담아 본 연주대

연주대戀主臺·629m   영주대(靈珠臺), 염주대(念主臺)

번암 채제공선생이 67세에 관악산 등정을 마치고 남기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에 연주대(戀主臺)라 하였고 실록에서는 염주대라 부르고 있다.

또한 성호 이익 선생의 유관악산기에는 영주대(靈珠臺)라 부르고 있어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선 후기 홍직필(洪直弼)선생은 고려의 옛신하인 남지진 등이 고려를 그리워하며 송악을 바라 보았기에 생긴 이름이라고 하는데

연주戀主가 주인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니 그럴법한 해석으로 보이며  세조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또한 태종이 셋째인 충녕대군, 즉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두 형인 양녕, 효령이 궁궐을 나와 대궐쪽을 바라보고 슬픈 마음을 달랬던 곳으로

그래서 그 이름도 임금을 그린다는 뜻의 '연주(戀主)'라 했다는 해석도 있다

 

 

관악사지를 지나 연주암 식당에서 물을 보충하고

 

관악산(冠岳山629m)은 이제 서울 시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관악산이 조선 역사 이래로 핍박 아닌 핍박받은 사연을 알면 새롭게 보일 것이다

易姓革命에 성공한 이성계가 새롭게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땅만 차지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수도를 해야지?  漢陽遷都를 단행하여 수도는 옮겨 놓았고...

다음은 뭘 해야지? 그렇지... 천도를 했으니 궁궐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

그래서 나온 작품이 경복궁景福宮인데...

 

 

불교에 많은 힘을 실어준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효령각으로 해서 올라 간다

 

지금 눈으로 보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건물과 대기오염 때문에 경복궁에서 관악산이 잘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야 아무리 한양이 크고 넓다 한들 경복궁 앞에서 정남쪽으로 관악산이 얼마나 잘 보였을까

날마다 보아야 하는 관악산을 자세히 보면 불꽃같이 생겨 풍수에서도 화산火山에 해당한다고 하고...

눈만 뜨면 나라를 건설하는데 일조하신 무학(無學)대사께서 화기설을 주장하시니 참으로 대략난감

 

 

깔딱고개에 올라와 가야할 소머리 봉

 

아무리 미신이라고 하지만 현대에도 살아가면서 맘 한편엔 미신에 기대고 살거나 기대고 싶어 한다

사람이 모르고 지나면 그대로 살지만 아무리 미신이라도 알고 나면 그 때부터 찝찝함을 달고 산다

바깥으로 표현을 안 할 뿐이다...  나만 그런가?

하물며 새로운 나라를 세워 백성을 긍휼이 여겨 백성을 위한 백성에 의한 정책을  펴고 싶은데

사나이 크게 세운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이놈의 관악산이 눈에 가시라...

 

 

소머리봉에서 담아 본 연주대

 

그래서 관악산에 연주암도 원각사도 지어주고 경복궁 정문에서 이 산이 덜 보이도록 일직선상에 남대문도 세우고...

지금 같은 육삼빌딩을 남대문 대신 세웠으면 좋으련만...역시 우린 좋은 세대에 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밤새 낮 쉼 없이 관악산에서 불어오는 불길을 서서 막으라는 깊은 뜻으로 숭례문의 글자를 세로로 세워놓고

다른 사대문에 달린 현액이 다 누워있는 가로인데 남대문만 서있는 세로로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연주암

 

그 것도 모자라 남대문 앞에 인공 연못인 남지(南池)를 파서 관악산에서 오는 화기를 막고

관악산 현지에도 연주대 뒤 높은 바위에 작은 구멍을 파서 물을 가두어 화기를 누르고,,,

물론 정사가 아니고 야사에 전해지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자료: 연주대에 있는 우물 - 혹시 이 우물도 그 때 팠나??  화기를 누르는데는 물이 최고이니...

 

어매 바쁘다 바빠, 그놈의 관악산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구나??  나라님도 힘드네...

임금도 못해 먹겠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닌가벼... ㅋㅋㅋ

 

 

소머리봉에서 앞에 보이는 암봉을 우회하여 내려가야 할 학바위 능선과 삼성산 장군봉

 

이때 임금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 버린 천금 같은 한마디를 듣게 되는데....

바로 조선의 또 다른 개국 공신 정도전鄭道傳의 한마디가 임금을 춤추게 하였으니...

"도성과 관악산 사이에 다행히 한강이 있어 관악산의 불기운이 물을 건너올 수 없아옵니다"

이왕이면 좋은 것이 좋은 것,,, 기왕이면 다홍치마...

역시 리영희 교수님의 말씀처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하는 법.

그래서 경복궁이 인왕산을 제치고 지금의 청와대 뒤 백악(白岳)의 남쪽 기슭에 터를 잡게 되었다

 

 

바위봉을 우회해서 학바위능선은 시작되고 - 이제 서울과 안양의 경계를 걷게 된다. 석수역까지...

 

오랜만에 이제 두 다리 쭉~~ 펴고 잠 한번 실컷 자야지.....

나라님도 자야 일을 하지......

짝짝 박수

 

 

삿갓승군 이정표를 지나며 삿갓승군 바위와 삼성산 호암산을 담아 본다

 

그런데 세상사 참 내 맘대로 안 되더이다...

나라 일도 마찬가지 인가 보다

한강만 믿고 덜컥 경북궁을 지었는데 1,2차 왕자의 난에, 사육신의 세조 반정, 임진왜란에 병자호란까지...

애고 무학 대사의 화기설을 믿을 걸 그랬나???

인왕산 무악재 밑에 경복궁을 지었다면 난리도 이런 난리도 없었을까?

 

 

학바위? 능선상의 독존...

 

그렇게 역사는 흘러가고...무시해버렸던 무학 대사의 말은 계속 살아 움직이고...

에고 늦었지만 후손이라도 무학 대사의 말쌈을 따라 봐야지...

해서 다시 시작한 분이 바로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제건 사업 이였다

조선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니 이왕이면 돌다리로 두들겨 건너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돌로 해태를 만들어 광화문 앞 양쪽에 배치하였고

관악산에 우물을 파서 안에 구리로 만든 龍을 넣음으로서 火氣를 방지 하였다나 어쨌다나..

물론 이 얘기도 정사는 아니지만 꼭 정사만이 역사가 아니니....

 

 

삼거리 약수터도 지나고

 

무너미고개 - 옛날에는 물넘어 마을로 마실 많이 다녔였는데...

 

힘들지만 바람불면 쉬고 다시 올라오고...  헬기장이 나오는 걸 보니 삼성산도 가까운가 보다

 

드디어 삼성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만나다

 

삼성산 정상

삼성산 481m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 의상(義湘), 윤필(潤筆) 세 스님이 이곳에 세 개의 초막을 짓고 수행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고려 말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이며 양주 회암사(檜巖寺)에 주석(駐錫)하였던 지공(智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서산(西山)과 사명(四溟)대사도 이곳에서 수행하였습니다.
산 중턱에는 세 개의 초막 중 하나인 삼막(三幕)만이 삼막사(三幕寺)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았고 나머지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http://weekly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5530

 

 

삼성산에서 장군능선을 갈려면 우측으로  

 

거북바위 이정표가 있는 도로를 만나 계속 직진

 

직진하면 국기봉, 11시 방향으로 우회를 시작하고

 

가야 할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장군능선을 담아 보고 그리고 호암산

 

호수공원 갈림길, 서울대정문 이정표를 지나 운동장 바위위 이정표에서 1시 방향으로

 

장군봉 412m

 

잠시 후 좌측으로 제1야영장이 있는 네거리에서 좌틀

 

헬기장을 지나 기상청 시설물도 지나고

 

직진 민주동산 이정표를 지나면 호암산

호암산(虎巖山)

관악산 서쪽에 자리한 호암산(虎巖山)은 호랑이 모양을 한 범바위(虎岩)가 있어 그렇게 불렀으며 산세가 마치 호랑이가 가는 듯한 모습이다.

이 바위 호랑이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시흥에 있던 호암사라는 절을 산 위로 옮겨 호압사(虎壓寺)라 이름 짓고 이것도 모자라 상도동 국사봉(國師峰)에 호랑이와 쌍벽을 이루는 사자를 상징하는 사자암(獅子庵)을 지었다고 한다.
결국 이 호랑이의 목표가 경복궁이므로 이를 억누르고 한양 도성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 호압사(虎壓寺)와 사자암(獅子庵)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호암산에서 좌틀하여 호압사 전망봉

 

호압사

 

앞에 통신탑을 포스트 삼아 우측 불영사가 있는 340봉 방향으로 하산 시작

 

불영사가 있는 340봉 - 초보산꾼 서울근교 산행기에서 자세히 다뤘으므로 오늘은 생략

 

삼각점 284봉도 지나고...

 

나무의자 뒤에 숨어 있는 삼각점

 

석수역 갈림길에서 우틀... 산줄기는 관악역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안양과의 경계는 석수역으로 이어진다

 

많이 늦어진 산행... 날머리인 석수역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광명에 도착 - 이렇게 해서 55산 강남구간을 모두 마친다

 

저번 주에 이어 계속되는 폭염속에 진행된 서울근교 55산 강남구간을 이렇게 마치게 되었다

김밥을 물하고 함께 먹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만큼 더위에 입이 마를 정도 였고

바람이 없으면 걷는게 고통으로 다가 오고

어쩌다 바람이 불면 한올이라도 놓칠세라 한없이 쉬어가면서 진행된 관악산 산행

거기에 무릅까지 보호해야 하니...

오후 3시면 끝날 줄 알았는데 저녘 8시까지 걸었던 이유이다

산행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정상이 아무리 높아도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하늘아래 뫼이다

그 하늘아래 뫼가 높으면 높을 수록 한정된 사람에게만 출입을 허락한다

그 정상으로의 오름길을 위해서 필연히 건너야 하는 

인생길 같은  산줄기가 많아지고 또 넘어야 할 고개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크고 작은 산줄기속에 만들어지는 정상과 정상이 모이다 보면 큰산이 된다

 

오름길을 위해서는 반드시 내림길이 있고

또 오르다 보면 다시 시작되는 내림길의 반복

그 산줄기속에서 만나게 되는 오름과 내림길의 반복을 경험하고서야

끓어질 듯 이어가면서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정상

그런데 그 정상과 정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고개이다

산줄기 산줄기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서야 고개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고개는 우리에게 소통의 장이었으며 때론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

인간도 서로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고개는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고개의 역할이 점차 사라지고 이젠 구름마져 쉼 없이 흘러가고 차량만이 넘고 나지만

고개속에 숨겨진 역사적 향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쉼없이 넘었던 고개에 내가 남긴...

고개에 남아 있을 나의 자취와 함께...

서울근교 55산 강남구간을 마치면서 그간 만났던 수많은 고개들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생각해 본 단상이다

 

서울근교55산 강북구간을 계속 이어갈려 했는데

아무래도 무릎이 완전할 때까지 산행을 잠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광명 로얄산악회와 함께 하는 정기산행을 제외하고

산행을 잠시 멈추지만 그렇다고 산행을 안할 수는 없고

산행보다 좀 무릎에 무리가 덜 갈 것 같은 둘레길을 걸어봐야 겠다

 

다시 산행을 시작할 때 부터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산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