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 3구간 : 남한산성 남문에서 태재까지

 

 

언제 : 병신년(16년) 견우직녀달 7월 이틀 흙날

 

누구랑 : 지인분과 두리서

 

어딜 :  남한산성 남문 ~ 검단산 ~ 왕기봉 ~ 갈마치고개 ~ 영장산 ~ 새마을 고개 ~ 태재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158 에 있습니다

 

 

 

삼복더위가 줄지어 서서 기다리고 있는 7월로 들어가기 위해서 하지夏至로 먼저 더위와 대면한 6월의 끝자락

무슨 심사인지 잘 올라오던 장마마져 남녘으로 흘러보내고 푹푹찌는 더위를 미세먼지 속에 밀어넣고 있어

그렇잖아도 오는 여름에 맘까지 싱숭생숭한데 숨까지 막혀 옴에 한줄기 소나기를 그려보았는데

마침 전날 기다리던 장마가 북상을 시작해 밤샘을 하면서 내려준 비 덕분에 맘은 한결 가벼워지고

게다가 남쪽으로 잠시 내려가 준다고 하니 새롭게 시작하는 맥잇기 산행의 첫발을 가볍게 출발해 본다

 

 

 

 

들어가기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전체지도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강남 구간

 

 

서울 외곽 수도권 55산 종주 3구간 : 남한산성 남문에서 태재까지

 

 

하남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따르던 남한산성이 수어장대를 지나 남문에서 하남과 헤어지고 성남과  만나

남문지나 성남시와 광주시 경계 시작  불곡산 지나 숯돌봉 갈림봉 직전 송전탑봉에서 헤어진다

남한산성의 외성중에 하나였던  신남성新南城(검단산)을 지나 지금은 망덕봉으로 바뀐 왕이 머물렀던 왕기봉

보통(普通)이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보통골,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의 묘가 있어 고불봉

이름만 들어도 신령스런 영장산靈長山을 지나 구황식품으로 심었던 밤나무로 유명했던 율동공원을 지나 마무리 한다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 9번이나 52번 남한산성이 종점인 버스를 이용 ( 주말에만 운행하는 9-1번은 산성역에서 남한산성까지 가는 직통 )

우리는 남문이 목적이므로 '남문터널' 정류장에서 내린다. 종점까지 가면 한참을 내려와야 한다

 

남문터널 정류장에 내려 버스가 들어 온 터널 방향으로 이동하다 삼거리에서 주차장 매표소 방향으로 좌틀

 

주차장 매표소를 지나 우측으로 남한산성 비석군(南漢山城 碑石群)도 만나고

 

남한산성의 남문인 지화문 (至和門 370m)을 빠져나가 좌측으로...  -  남한산성은 두번에 걸쳐 산행기에 올렸기에 여기서는 생략

 

남문을 통과하는데 반가운 얼굴....광명로얄산악회 활기찬 부회장님...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넘 반가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사진 한 장 남겼여야 했는데...

 

 

2009년 문루를 복원할 때 남문 지화문 편액은 정조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달았다 한다.

 

계단길을 오르면서 성곽 외부길을 따라 산행은 시작되고 - 성남 누비길 검단산길 2구간이라고 한다

 

어제 장맛비의 여운이 남아있어 아침 안개와 신록의 상큼함이 만나 최상의 걷기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성곽외부를 보면서 걷다보면 영도사 갈림길도 지나고

 

시멘트도로를 만나면 계속 포장도로를 따라도 되고... 파란색따라 잠시 숲속으로...

 

다시 포장도로와 만나면 여기서는 포장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몇년전에 마루금에 충실했다가 부대때문에 크게 우회했던 기억...

 

숲속길로 안내하는 이정표를 따르면 부대가 자리잡고 있어 반대방향으로 크게 우회하게 된다. 무시하고 포장도로로...

 

좌측으로 우리의 목적인 아베재고개 가는 이정표가 보이지만 1분정도 더 진행해야 한다

 

부대때문에 마루금은 황송공원 방향으로 좌틀해야 한다. 그러나 초보산꾼은 신남성을 보기 위해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

 

검단산 정상에 있는 신남성...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신남성 안내문 -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kt 통신시설이 있는 곳이니 동돈대인 듯. 홍이포 기록도 보인다

홍이포(紅夷砲)는 청나라 사람들이 쓰는 서양식 화포였다. 천자총통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화력의 차이였던 것이다.

청나라도 명나라와 싸울 때 화력의 차이로 고전하였는데 어렵게 홍이포를 구해 무장했던 것이다.

그러면 청나라 군대가 사용했던 홍이포(紅夷砲)란 어떤 대포였을까?
이름 그대로 홍이(紅夷)가 사용하던 포였다. 홍이란 서양 사람을 중국식으로 부르던 말이다. 글자대로 말하면 붉은 오랑캐인데

그 시절 해양강국 네덜란드 뱃사람은 흰 얼굴이 햇볕에 그을어 붉게 보였다. 홍이포는 이 사람들이 쓰는 서양식 화포였다.

조선이 청에 항복한 이후도 청나라는 조선이 홍이포로 무장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였다.

 

이하 남한산성 자료는 http://weekly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7724 에 있습니다.

 

 

 

자료 : 초보산꾼 - 남한산성 제2남옹성에서 본 검단산. 오늘 날씨만 좋으면 자세하게 사진으로 소개할 수 있었는데...

저 검단산 신남성 돈대에서 홍이포로 밤낮 가리지 않고 쏘아댔다고 하는데... 인조 삼전도의 굴욕이 있을 수 밖에...

남한산성은 산성의 특성상 고립될 수밖에 없는데 신남성新南城(검단산) 산줄기는 삼남으로 이어지는 급소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이곳을 청군(淸軍)에게 점령당하고 조정을 구하러 왔던 팔도의 근왕병(勤王兵)들이 패함으로써 인조는 고립무원의 위기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지리적 중요성은 변함이 없어 돈대가 있는 두 봉(峰)에는 오늘날에도 통신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쇠창살 사이로 본 신남성... 계속 안개속에 가려 있어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신남성 자세한 내용  http://blog.naver.com/gjcityi/220303780725 참조

 

 

당겨보면 - 이 곳에서도 남한산성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치 앞을 볼 수가 없으니...옹성은 멀리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데...

남한산성에는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미 봉암성과 한봉성은 자세하게 산행기에 올렸고 마지막으로 신남성을 오늘 소개할려 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아까 소개한 네거리로 내려와 황송공원, 성천약수 이정표를 따른다

 

바로 황송공원과 성천약수와 헤어지고 계속 임도따라 검단산 방향으로

 

헬기장이 검단산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직진하여 계단으로 내려간다

검단산(黔丹山534.7),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검복리, 불당리, 그리고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은행동, 신흥동, 수정구 양지동에 걸쳐 있는 산들이다.

하남시의 검단산(683.2m)과 이름은 같지만 성남시, 광주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하남시의 검단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산이다.

검단산은 광주시 복리와 성남시 수정구 대동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검단산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며

산에 절이 많아 불당산 또한 신성한 제단이 있는 산 또는 숲이 우거져 검푸른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검단산의 또 다른 이름 불당산의 불당리 갈림길이 계속 나온다. 이베제고개 방향으로

불당리는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을 공격하기 위해 청淸이  진을 치고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y자 길에서 우측으로 가야 506봉. 좌측은 불당리 방향.. 다시 만나게 된다

 

돌탑이 있는 506봉 - 우측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

 

여기서 부터는 길이 복잡하나 망덕산(왕기봉)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약수터도 지나고

 

11:52 사기막골 갈림길(0.5km)를 지나 왕기봉 오름길.... 두리봉 갈림길이다

 

망덕산(왕기봉) 정상 - 옛날에는 왕기봉이라고 했었는데...

왕기(王基)봉, 망덕산 (望(亡)德山)    두리봉 갈림길

삼국시대 때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은 백제가 한강 유역에 자리한 하남 위례성이 함락되자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이 위례성을 버리고 웅진으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이 곳 남한산성을 거쳐 갈 당시 이 봉우리에 올라

두고 온 위례성을 바라보며 백제가 덕을 잃어 위례성을 보존하지 못하였다 한탄하여 望德(亡德)이란 뜻으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하며

왕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왕기(王基)峰 이라는 산 이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자료 : http://www.ceraon.kr/yc44/615344

 

 

 

망덕산의 동쪽으로 두리봉(457.3m), 군두레봉(380m)이 위치하고 있다. 오랜만에 초보산꾼도...

 

475봉 직전 보통골갈림길

보통골(普谷洞) :

온양방씨 남원양씨 등이 세거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온양방씨는 아호가 보통(普通)이요 힘이 장사인 방유량(方有良)이 정착한 이래

그 후손이 세거하였는데 보통골(普谷洞)은 「보통普通이 사는 골」에서 유래한다.
사기막골 : 성남 옛날 백제시대에 사기를 굽던 곳이라 불리워진 이름인데,  사기그릇 조각, 그릇 받침 등이 출토되고 있다.

중간말 : 사기막골과 보통골 사이에 있는 마을로 사기막골의 김해김씨가 분가하였다

http://blog.daum.net/s2rpol/16045738

 

 

 

475봉

 

연이어서 나오는 465봉(이배재고개 정상이라고 현위치 표시되어 있다)도 지나면서 이배재고개 넘어 철탑씨리즈도 조망하고

 

육교가 설치된 이배재 고개

이배재고개  광주 목현동과 성남 갈현동으로 오고 가는 고개인데 지명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 온다.

①利保峙 :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保障地(종묘와 사직 보호)인 이보 치가 이배치로 변화했다는 설

   이보치라는 것은 남한산성(南漢山城)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아주 이로운 보장지(保障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②二拜峴 : 퇴계 이황이 고향으로 갈 때 이 고개 위에서 마지막으로 한향 도성의 임 금을 향해 절을 2번 했기 때문이라는 설.

- 옛날 영남지방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 고개 위에서 한 양의 도성과 고향의 부모님께 2번 절하였기 때문이라는 설.

③梨峴 : 큰 고개라는 뜻의 배고개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배재라 하였으며 이를 2 번 중첩, 이배재라 하였다.

http://blog.daum.net/s2rpol/16045738

해마다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경기도 일대의 병사들을 모아 수어청(守禦廳)에서 군사훈련을 하였는데,

제일 방어선으로 삼았던 곳으로 알려진 이배재(利保峙)고개를 되돌아 보고

 

 

이배재 고개에서 올라오니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여기서 식후경 후.... 출발하면서...

앞으로 계속 이어가게 될 멀리 좌측으로 광교산 우측으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조망된다

 

철탑 몇 개를 지나 갈마터널위인데 누군가 요골산이라고 써놓았다 - 광주시 목현동 요골

 

철탑을 지나 연리지도 담아보고

 

임도가 지나는 네거리 직진

 

갈마치 생태통로

갈마치(渴馬峙) 고개    성남시 갈현동에서 광주시 목현동 요골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가 가파르고 험해 말을 타고 넘어가는 도중 목이 말라 허덕이는 말에게 물을 먹이며 쉬어 갔다고 하는 데서 유래하고

이 밖에 옛날부터 칡이 많이 나는 고개라 ‘갈현’이라 하였다는 설과   성남시

구미동이라는 이름은 ‘갈마치고개’에서 유래하였는데, 고개 아래에 있는 지역이라 ‘갈마치’ 또는 ‘갈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돌탑이 먼저 보이고 앞에 철탑 직전 우틀하는 고불산 - 부근에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의 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 듯

 

영생관리사업소 뒤능선 이정표도 지나고(02:39)..   지도상 332.7봉인 갈현 도촌동 경계능선 이정표

 

영장산 2.5km 이정표에서 좌틀

 

03:09 섬말쉼터도 지나고 내거리 안부 

 

야탑동(도촌사거리) 이정표도 지나고(03:27) 좌측으로 보이는 광주 광남동(직동)을 담아 본다

직동(直洞)의 맹산(孟山)과 목동(木洞)의 문형산(文衡山), 그리고 중대동의 영장산(靈長山)이 병풍같이 광남동 지역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곳에는 말만 들으면 알만한 많은 선현들의 묘소가 있는데 조선 초기 명재상(名宰相)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사간공(思簡公) 안성(安省)의 묘, 익혜공(益惠公) 안윤덕(安潤德)의 묘와 조선후기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의 묘 등등...

자료 : 네이버 지식 http://www.gjcc.or.kr/cc_up6/content.asp?t_name=cc_up6&num=7

 

 

몇 번의 야탑.도촌동 경계능선을 지나 넓은 공터에 삼각점이 있는 영장산 정상

이정표의 좌틀 태재방향은 우회길이므로 마루금은 우측 솔밭쉼터 방향으로...

영장산靈長山   413.5m

천지가 개벽할 때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는데 이 산봉우리에 매 한 마리가 앉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남았다는 전설과

옛날 잘 훈련된 매를 이용하여 이 산 정상에서 매사냥을 한 것에서 매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맹산(孟山)이라고도 불리웠는데 조선시대 세종이 명재상인 맹사성에게 이 산을 하사해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자료 : 다음 워키백과

 

 

정상에서...

최근에 붙여진 영장산은 신령한 기운이 서린 뛰어난 의미로 임금의 착한 善政이 영원하게 하여 달라는 뜻이라는 해석도 있다

일제시대 때 이름을 망아지 구자 구봉(駒峰)으로 바꾸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매이지봉으로 부르도록 강요(强要)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매지봉으로 불려온 수난(受難)의 역사(歷史)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료 : 아리랑 저널  http://ajl.co.kr/?c=5&uid=6452

 

 

솔밭쉼터 방향으로 조금 이동하면 돌탑이 나오면서 거북터 방향으로 좌틀 -  직진하면 이매역 2번 출구가 나온다고 한다

 

거북터에서 마루금은 직진 계단으로 올라 타이어봉에서 좌틀한다...  이정표의 태재방향대로 좌측으로가면 우회길

 

이제 부터는 대로를 걷게 되니 편안한 숲길이 태재까지 계속된다. 약간 지루하지만...

 

곧은골고개 이정표

 

이제 어느쪽으로 가든 철조망과 가까이 이어지게 된다

 

정자도 지나고

 

잠시 후 일곱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알바를 자주 하는 곳이다

일곱 삼거리고개   성남시 분당구 율동 율동자연공원과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새말을 이어주는 고개

성남시 분당구 율동과 광주시 묵동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현재는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어 흔적을 찾기 힘들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영장산이  '신령한 기운이 서린 뛰어난 산'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사십팔대장상지지(48代將相之地)요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전해오는 천하명산(天下名山)중에 최고(最高)의 명산(名山)이다고 한다

영장산 아래  일곱삼거리는 여섯 갈래의 지옥(地獄)으로 가는길과  한 갈래의 하늘나라로 가는길 중에서

지성(至誠)으로 기도(祈禱)하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얻게 된다 하였다고 전해진다 

자료 : 아리랑 저널  http://ajl.co.kr/?c=5&uid=6452

 

 

좌측으로 계속 철조망을 타고 가면 골프장 정문을 지나 문형산으로 갈 수 있다 - 철조망으로 본 골프장

 

지맥길은 골프장 철조망과 헤어져 우측으로 진행하다 보면 이젠 다시 전원주택 철조망과 계속 함께 한다.

 

좌측으로 조망도 트이고

 

넓은 길은 계속되고... 이정표

 

오토바이 츨입금지 시설이란다

 

율동공원 갈림길 이정표 - 계속 태재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율동 栗洞公園

절에서 구황식품으로 밤나무를 심기시작하여 모두 밤나무 숲으로 뒤 덥히자

밤나무 그늘마을이라는 뜻으로 율목음촌(栗木陰村)이라 했다고 한다

 

 

철탑을 지나면 바로 새마을고개 - 계속 공사중이다

새마을 고개   설고개  

성남시 분당구 율동 율동자연공원과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새말을 이어주는 고개

광주 문화원에서는 이 지역에서 서울을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서울고개라 했는데

'서울고개'가 변하여 '설고개'가 되었고 설고개가 새마을 고개로 변했다고 하는데

성남시 율동에 있는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초보산꾼 생각

 

 

5번 철탑을 지나면 봉적골 고개

 

넘어골고개

 

개인 사유지라고 마루금을 막아 놓았다. 우측으로 해서 우회해도 되지만 그대로 직진한다

 

 

****  후기  ******************

후에 자료를 찾아 보면 지금은 태재에 다리가 놓이면서 이 곳에서 태재방향으로 우틀하여 진행하는 것이 정답일 듯

왜냐하면 초보산꾼이 걸었던 길은 예전에 다리가 없어 절개지로 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돌아서 내려간 길로 생각됨

하지만 초보산꾼도 걸어 보지 못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다리는 확인 했슴.  참조만 하세요

 

 

사유지로 들어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다 보니 오늘 처음으로 지맥다운 길을 걸어 본다

 

묘지가 나오면서 바로 태재가 보인다

 

 

계단을 내려오면 태재이다. 다음 구간 들머리

태재台峴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이 고개가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고개를 의미하며

조선시대엔 군사요새지(軍事要塞地)로서 남한산성을 방어하는데 큰 몫을 하게 되었다고 기록도 보인다

고려 말의 충신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가 조선 태종(太宗)의 강제 부름을 받아 경상도 안동(安東)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이 고개에 다다라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주창하며 자결(自決)한 곳이어서 더욱 유명하다

 

 

태재고개에서 족발로 뒤풀이 후 여기서 버스를 타고 분당 방향 서현역에서 하루를 정리한다

 

 

그간 계속 이어왔던 한강 이북에 있는 한북정맥과 한북8지맥을 마치고

이제 처음으로 한강 이남으로 내려와 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라는 태마로

다시 새롭게 시작한 첫날...

첫구간인 하남 검단산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검단산부터 남한산성 남문까지는 벌써 3번이나 걸었기에 그간 남긴 자료로 대신하고

3번째인 남한산성 남문부터 시작해서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오늘 걸었던 길은 크게 보면 서울외곽 수도권55산중의 작은 부분이지만

한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한남검단지맥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한북정맥하면서 비축된 체력으로 이번 구간을 법화산까지 이어가(약29km) 검단지맥을 끝마치려 했는데

어렵게 이어왔던 계획의 하나를 마친 탓일까?

갑자기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가서 사진도 찍어 보고...

다행이 별다른 의심 증상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

이상도 없는데 더 좋아 지려고 오신거죠?

의사 선생님의 웃음띤 말씀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래도 잠시 열기도 식힐 겸 무리를 하지 않는 범위에서 두 구간으로 나누니

천천이 걷는 만큼 무릎에 무리도 가지 않고

그동안 지맥산행으로 함께 하지 못한 지인분과 함께 산행도 하고

여러가지 좋은 추억을 안고 하루를 정리한다

 

당분간 짧게 구간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맘만 바쁘구나...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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