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 6구간 : 하오고개에서 구룡산까지

 

 

언제 : 병신년(16년) 견우직녀달 7월 서른날 흙날

 

누구랑 : 혼자서

 

어딜 :  하오고개 ~ 청계산 ~ 옛골 ~ 인릉산 ~ 대모산 ~ 구룡산 (약 25km)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292 에 있습니다

 

 

 

일년중 가장 덥다는 대서를 지나 장마같지 않은 장마까지 더해 푹푹찌는 더위속에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일상

여름 불기운에 가을의 쇠 기운이 3번 복종한다는 뜻에서 복(伏)’날이라 했다는 초복을 지나 중복까지 넘기고

말복쯤 되면 이제 더위에 적응의 단계를 넘어서고 성급한 사람은 가을을 얘기할 정도로 희망을 가지겠지만

가장 덥다는 대서를 지나 중복까지... 칠월 마지막 주가 이렇게 더위의 한 복판에서 8월을 준비하고 있다

8월이 된다고 뭐 특별이 달라질 것도 없지만 서울 근교의 청계산과 인능산은 어떤 모습으로 준비하고 있을까?

 

 

 

 

들어가기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전체지도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강남 구간

 

 

서울 외곽 수도권 55산 종주 6구간 : 하오고개에서 구룡산까지 참고용

 

 

다음지도 : 옛골에서 구룡산까지

 

 

바라산재에서 시작된 성남시와 의왕시의 경계는 이수봉을 넘어 절고개 갈림길 봉에서 의왕시와 이별을 하고

과천시와 성남이 손을 잡고 청계산 매봉을 지나 옥녀봉 갈림 봉인 헬기장에서 서초구와 성남시의 경계를 따라가다

인릉산을 지나 오야동능선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성남과 헤어져 서초구와 강남구와 경계로 서울시내로 들어오게 된다

서울에서 그대도 좀 조용했던 이곳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갈 때마다 길이 바뀌고...길을 찾고...

일 년도 안 되어 다시 걷는 길엔 또 어떤 변화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서울근교 산으로 들어가 본다

 

 

 

 

인덕원역 2번출구로 나오면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운중동먹거리촌으로 갈려면 303번을 타야 하는데... 아직도... 303번은 출발지에서 다시 출발지로 돌아 온다

 

08:03  그렇게 성남 운중동 먹거리촌에 도착...10분 정도 걸려 도착..

 

차가 왔던 방향으로 출발 다리를 건너 도로로...

 

편도에만 있는 운중농원 정류장도 지나고... 성남쪽에서 오는 분들은 여기서 내리면 훨씬 수월하다

 

하오고개가 보이는 들머리 도착 출발준비를 하고

 

구 도로를 만나 하오고개로 올라 우측으로 해서 국사봉으로...

학현(鶴峴, 학고개, 하오고개, 하오개, 화의고개)  운중동의 서쪽에서 의왕시 청계동과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의왕시에서는 학고개, 학현이라 부르는데 운중동에서는 하오개, 하오고개, 화의고개 등으로 불러워지고 있다.

의왕시 청계동 점말에 있었던 김해 김씨(金海金氏) 종산이 풍수지리상 학이 거동하는 형국이며,

인근의 안동 김씨(安東金氏) 묘도 학의 혈에 해당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고개의 좌·우쪽은 모두 조선 말기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서 숨어 살았던 곳이다

  자료 : http://cafe.daum.net/nakseang44/1U67/12?q=%BF%EE%C1%DF%B5%BF%20%C7%CF%BF%C0%B0%ED%B0%B3%20%C0%AF%B7%A1

 

 

되돌아 본 하오고개와 그 뒤로 영심봉

구전에 따르면 조선시대 광주목의 영역이 현 안산시 반월동 사리에 까지 이르렀는데, 어느 때인지는 확실히 알수는 없지만,

하루는 사리에 사는 염부들이 소금밭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시비가 벌어지자 이를 가리기 위해 당시 관아가 있던

경안으로 가는 길에 이 고개에 이르러 서로 하우(和解)했다고 한다. 그후부터 이 고개를 '하우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http://www.uw21.net/culture_tour/c2_7_body.asp

 

 

무덤지대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바라 본 외곽고속도로 청계 톨게이트

 

철탑 하나를 지났는데 바로 또 8,9번 두개가 붙어 있는 철탑이 나온다

 

원터골로 내려갈 수 있는 지도상 392봉

원터(院址)
하우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성남시 운중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광주·인덕원·과천을 잇는 동양원(東陽院)이란 역이 청계동 188번지에 있었다 하여

처음에는 '역원터(驛院址)'라 했다가 일제 초부터 '원터(院址)'라 부르고 있다.

이 마을은 1880년대에 하우현 성당이 생기면서 민가가 늘기 시작하였는데, 현재의 주민 대다수가 천주교인이다.

경주김씨와 밀양박씨등이 오래전부터 세거해 왔다.

 

 

바로 녹향원 청계사길 갈림안부

 

운중동 먹거리촌이나 금토동에서 올라 올 수 있는 새롭게 뜨고 있는 국사봉

국사봉(國思峯)(540m)

고려 말 이색(어떤 곳에서는 조윤)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던 봉우리라 해서 

전국에 많은 국사봉이 선비 사(士)를 쓰지만, 이곳 국사봉은 생각 사(思)를 써서 '국사봉(國思峯)' 또는 '국은봉(國恩峯)'이라 한다

방아허리에 가로 맞추어서 방아가 걸려 있도록 마련한 나무막대기인 쌀개처럼 생겼기 때문이에 '쌀개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http://www.uw21.net/culture_tour/c2_7_body.asp

 

 

그런데 청계산엔 옥녀봉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국사당과의 인연은?  자료 : http://ublog.sbs.co.kr/lecianne?targetBlog=69799  

 

청계사로 내려갈 수 있는 안부도 지나고

 

이수봉 - 새벽에 내린 비때문인지 아직 구름속을 걷고 있다

이수봉(545m)

일두 정여창이 그의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 등이 연루된 무오사화를 예견하고 이 산에 은거하여

두 번에 걸쳐 목숨을 건졌다 해서 목숨 수(壽) 자를 쓴 ‘이수봉(貳壽峰)’이라 불린다.  

 

 

헬기장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으로 해야 청계산으로 갈 수 있다. 직진은 절고개 능선으로 한남관악지맥길이다. 담에 가야 할 길...

 

헬기장 갈림봉은 의왕대간의 마지막 지점이다. 의왕시와의 인연을 과천시가 이어 받게 된다.

 

좌측으로 해서 성남과 과천의 경계를 따르면 바로 동자샘 갈림길이 있는 헬기장

 

석기봉이라는 이정표를 지나 시설을 지나고... 전에는 헬기장과 화장실등이 있는 넓은 공터로 기억되는데...

 

시설 끝 부분 삼거리에서 석기봉으로 갈려면 좌측으로

 

그런데 등산로 폐쇄라고 되어 있어  지금은 많은 산우님들이 다니지 않는 듯...

 

석기봉 앞부분 - 조망이 아직이다. 기이하게 생긴 돌이라서 석기봉?

 

구름속에서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 온다

 

밧줄을 타고 올라도 되고 우회해도 되고...

 

우회해서 보니 바위샘물이라는 이정목이 좌측으로 보인다

 

혹시 이게 바위샘물? ㅋㅋ  바로 아래 있는 마왕굴샘이 있어 붙여 놓은 이름인 듯

 

석기봉에 잠시 올라 본다. 전망이 좋은 곳인데 아직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다시 되돌아 와 바위샘물 이정목을 지나면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야 마왕굴을 만날 수 있다

 

내려오는 길이 만만치 않다. 새벽에 내린 비로 미끄럽기도 하고... 물론 밧줄이 있어 안전하기는 하지만

 

지도상 마왕굴인 금정수

금정수(金井)

정여창이 머물렀다는 금정수는 청계산 최고봉 망경대 바로 남쪽 석기봉 절벽 1백m 아래, 행정구역상 과천시 막계동에 속한다
금정(金井)이란 금빛 우물이란 뜻으로, 바위틈에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질 때 그 물빛이 마치 금빛 같아서 금정수라 이름 지었다.

 

 

정여창이 참형을 당한 뒤 금정수의 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가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 복권된 후 다시 황금빛으로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이렇게 정여창에 대한 상세한 글을 달아 놓았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금정수는 하늘 아래 있다 하여 하늘샘이라고도 한다. 마왕굴샘, 오막난이굴샘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고려가 망하기 직전에 맥(貘: 짐승이름, 표범의 딴 이름, 북방민족)이라는 이상하게 생긴 짐승이

떼를 지어 이 굴로 들어갔다고 해 오막난이굴 불린 것에 유래한다.

마왕굴은 마왕과 관련된 것으로 전해지나 내력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그곳을 다녀온 과천시 답사팀은 하늘샘에 1급수에만 산다는 도롱뇽 알이 그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료 : 뉴스천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349

 

 

고인물을 자세히 보니 지금은 먹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먹을 수 있도록 바가지도 놓았다고 하는데...

 

 

다시 오름길을 하면 비박이 가능한 공터를 지나 우틀 바로 삼거리에서 망경대로 무조건 올라간다... 이정표에는 화살표시가 없다

 

한 두번 로프를 이용하면 오를 수 있는 청계산 정상 망경대

망경대(望景臺)  (618m)   청계산의 최고봉
눈아래 만가지 경치가 전개된다는데서 '만경(萬景)'이라 불렸다고 하고 이곳에 석대가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고려말엽을 지나 이씨 왕조가 들어서자 고려말엽의 충신 조견(본명은 趙胤)이 만경대에 오른 후로

만경(萬景)이 '망경(望景)'으로 바뀌었다는데 사연은 이렇다

조견은 조선의 개국공신 조준(趙浚)의 아우로 이색·길재·원천석등과 함께 고려를 빛낸 명유(名儒)이자, 충신이었다.

 

 

이수봉 지나 보였던 안내판

 

조선 태조가 내린 교서를 거절하고  증조부가 중창한 청계사에 영당이 있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였는데 구차하게 목숨만 살아 있으니 개와 같다 하여 이름을 견으로 고치고

또한 개도 주인을 연모하고 의리를 쫓는다는 뜻에서 자를 종견(從犬)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 청계산 산정에 올라 송경(松京)을 보고 통곡하므로 그 후부터 사람들이 만경대를 '망경대(望景臺)'라 불렀던 것이다.

자료 :  http://www.uw21.net/culture_tour/c2_7_body.asp

 

 

좌측으로는 55산 강남구간이 끝나고 가야할 관악지맥상에 있는 청계산의 또다른 매봉 방향 - 아까 절고개 능선에서 갈라진다

 

‘하늘이 감추어 놓은 영산’이라는 청계사에 기록된 글처럼 유난히 물 맑고 나무가 많아 짐승과 새가 많았던 청계산.

역모를 꾀하던 송유진이라는 도적도 나라를 걱정하던 충신도 청계산에 들어와 사연을 남겼다.

고려 충신 조윤이나 정여창 선생의 일화에서 보듯 충신과 대학자가 머물던 ‘은둔과 지조의 땅’이기도 했는데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명인 목은 이색이 이 산에서 숨어 살았고,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풀린 뒤 옥녀봉 아래에서 말년을 지냈다고 한다자료 : 뉴스천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349

 

 

청계산이 하늘이 감추어 놓은 영산’이라는 알려 주려는 듯 과천 서울대공원과 경마장은 계속 구름속에 가려져 있고

막계동 (과천시 막계동)   청계산 자락을 대표하는 마을은 막계동

과천 소재 막계동은 맑은 개울이 있다 해서 ‘맑은 개울’ ‘맑은 계곡’이라 한 것이 ‘막개’가 되고 한자로 ‘청계’가 되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또는 시내가 있는 산’이라는 뜻인 청계산의 이름이 ‘막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서울대공원 내 동물원과 식물원이 자리한 곳이 막계1리, 서울랜드가 있는 곳이 막계2리였는데 현재는 이름만 남아 있다

자료 : 뉴스천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349

 

 

 

혈읍재 - 옛골에서 올라와 마왕굴을 갈려면 여기서 마왕굴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여기도 역시 등산로 폐쇄라고 되어 있다

혈읍재에서 정상인 망경봉에 올라 우측으로 내려가면 마왕굴을 만날 수 있다

혈읍재     청계산 정상 망경대와 매봉 사이에는 피울음을 뜻하는 ‘혈읍재’라는 고개가 있다.  
조선 전기 정몽주, 김굉필과 함께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一蠹) 정여창 선생은 성리학적 이상 국가 실현이 좌절되자

망경대 아래 하늘샘(금정수터)에 은거했다. 그가 은거지인 금정수에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다 통분해 울었는데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 하여 후학인 정구(鄭逑)가 혈읍재라 명명했다.  

 

 

실제적인 정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매봉

청계산

풍수지리에서 일컫는 좌청룡 우백호의 예에 따라 과천에서는 오른편에 있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 부르고,

왼편에 있는 청계산을 청룡산이라 불렀다. 또 청제산(靑帝山), 청청산(靑靑山), 청한산(靑漢山)으로 쓰인 기록도 있다

신라 시대에 세워진 청계사 안내문에 ‘청계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산 곳곳에 상서로움과 정기가 배어있는 하늘이 숨겨 놓은

영부(靈府, 신령한 상서로움)’라 기록돼 있으며, 많은 이들이 청계산을 득도의 장소로 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341

 

 

매봉보다 전망이 좋은 매바위인데... 막걸리를 파는 것까지는 좋은데... 매봉까지 점령할 태세다... 몰상식하게 보인다

 

돌문바위인데 오늘은 스님이 안계신다. 스님도 휴가 가셨나?  내 눈에는 그냥 바위인데...

 

헬기장이 있는 옥녀봉 갈림길 - 옛골로 갈려면 청계골 방향으로 우틀

 

청계골 방향으로 우틀하여 되돌아 본 옥녀봉 방향 - 과천시와 서초구의 경계이다

 

청계골 하산길 이정표를 지나고 계속 직진

 

상적동 갈림길에서 성남시계는 좌측으로 해서 이어가야 한다. 성남누비길 방향따라 간다

上笛洞   상남시 수정구

이 지역은 호걸들이 피리를 불며 유람하던 곳이라 하여 적촌(笛村), 저푸리, 적취리라 하였다.

저푸리를 중심으로 노상동(路上洞)[옛골, 禮谷]과 노하동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노상동의 ‘상(上)’자와 적취리(笛吹里)에서 ‘적(笛)’자를여 상적동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일설에는 인근에 살던 덕수이씨네의 잦은 과거급제[등과(登科)]로 피리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붙여진 명칭이라고도 한다.

 

 

화장실이 있는 도로가 나오면 좌틀 바로 우틀해야 한다.

 

앞에서 우틀

 

옛골이 보이고

 

옛골 도로따라 내려오면 고속도로가 나오면 굴다리를 지나 인능산으로 갈 수 있다

 

영남길 방향 - 고속도로로 지금은 없어진 달래내고개가 있는 청계산의 또 다른 능선 이수봉으로 갈 수 있는 정토사 방향

 

 

 

영남길은 언제 걸어 보나?    갈 길은 많고... 그런데 달래내 고개길 유래가 재밌다. 한번 찾아 읽어 보시길...

 

다시 굴다리를 지나 길을 따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옛날에는 좌측에 보이는 방일해장국 옆으로 가면 편했는데... 사유지라고 막는 바람에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청계가든 우측으로 해서 인능산을 가게 된다. 또 몇 년 후엔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지...

 

청계가든 우측 골목 성남누비길 이정표 화살표따라 계속 진행하면 된다

 

청계가든 우측으로 해서 진입하며 다시 좌틀

 

이제 산속으로 진입

 

무덤을 지나면 좌측으로 안내판이 나오면서 인능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옛날에는 반대편으로 올라 왔는데...

 

안내판

 

산불감시탑을 지나 신구대학 식물원 안내판을 통과 좌측 문으로 진입

 

인능산에서 원터골로 갈 수 있는 삼거리에서 인능산은 우틀 - 분당 내곡터널 위 이정표

내곡동

동 이름은 옛 언주면(彦州面)의 일부로서 본촌(本村)의 안쪽에 있으므로 안골·안말이라고 불리던 것이 한자로 내곡동이 되었다.

조선시대 말에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안골이었고, 1914년 안골·능안말·구석말·양지말을 합하여 언주면 내곡리로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헌릉·인릉이 있어 주택이 들어설 수 없었으며, 수목이 울창하여 많은 짐승들이 나타나던 지역이었다.

 

 

고등동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면 301봉 헬기장에 잠시 올라 본다 - 목동산인데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계속 철망을 따라 올라오는데 이상하다? 정상은 우측인데 철망은 좌측으로 계속 이어지고... 개구멍 통과

 

헬기장이 있는 인능산 정상

인능산 仁陵山 -헌인능이 있기 때문에 인능산이라고도 한다. 현인릉은 이미 소개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과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광주부읍지(廣州府邑誌)》에는 천림산(天臨山)이라는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능산은 아직까지도 때 묻지 않은 서울에 있는 소중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고도차가 높지도 않아 둘래길 못지 않은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의 산이다

 

 

인능산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 넘 더워서... 사진도 겨우 찍고 조금 내려오면 심곡동 갈림길 지나 약수터 갈림길

 

신촌동 방향으로 계속 따르다 범바위산

 

전망대에서 본 가야 할 대모산과 구룡산,,, 생각보다 덥고... 무릎까지...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신촌동 방향으로 계속 내려오다 운동시설이 있는 이 곳에서 성남시와 작별 좌틀

오야동 梧野洞  성남시 수정구

옛지명은 와실(瓦室), 왜실, 오야소라고 하였다. 예전에 이 지역에서 기와를 구웠으므로 와실 또는 왜실이라 칭하던 것이

오야실로 변해서 된 것이라는 설이 있고,  이 지역이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야소(梧野所)라 하고,

오동나무 열매가 잘 열렸으므로 오야실(梧野實)이라 칭하던 것이 오야리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모두 내려와 보니 좀 이상하다?  몇 번 와봤는데 전혀 모르는 길이 나타난다

 

앞에 있는 세곡리엔아파트 후문으로 나와 큰 길에서 좌측으로... 더운데 알바까지... 도로위를 걷는 다는 것???

 

더욱 멀어진 듯한 느낌... 우측으로 보이는 대모산이 높게만 보인다

 

 

세곡 푸르지오 아파트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 횡단보도가 나온다. 나는 확실한 산행기를 쓰기 위해 직진

인능산 하산 길이 좋아 아마 이곳으로 내려오는 산객들이 많을 것으로 판단되어 후답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원래 내려오고자  했던 현인가구단지가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횡단보도를 건너 이 길을 따라 가면 들머리로 갈 수 있다

 

인능산 방향을 바라보니 길 하나 차이로 이렇게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171번 고속도로가 있는 서초구와 강남구 경계 표시가 있는 마루금에 접속....

이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농업기술센터로 올라 갔던 길이 없어져 이렇게 새롭게 길을 만들어야 했다

 

아파트 입구와 만나면 좌틀 본격적으로 대모산 산행 시작

 

 

좌측으로 철망, 우측으로 아파트를 끼고 올라오다 되돌아 본 인능산...사실 냇가를 건너야 하므로 인능산 산맥은 여기서 끝난다

그래서 어디로 내려와도 상관없다. 옛날에는 농업연구센터로 올라가야 하기에 현릉가구단지로 내려 왔지만...

 

 

옜날에는 너덜길 비슷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가꾸어 놓았다. 역시 사람이 모여야 뭔가 해도 할 수 있다

없던 길도 만들어지고... 있던 길도 넓히고 가꾸고... 편하게 올라온다... 좀 더워서 고생했지만...

 

대모산 헬기장 갈림길... 좌측으로. 오늘은 우측에 있는 헬기장은 패스

 

삼각점이 있는 대모산

대모산 大母山

높이 293m의 산으로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하여 할미산으로 불리우다가 태종의 헌릉을 모신 후 어명으로 대모산으로 고쳤다고 한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 하는 설과 여자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는 설이 있다 (서초구)

 

명당으로 알려져 있어 왕족의 묘터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여주로 이장했지만 조선 4번째 왕인 세종대왕의 능도 이곳에 있었고,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세종대왕의 5번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묘역이 대모산 북쪽에 있다.

또 우리가 걷게 될 인능산의 유래가 된 인릉(仁陵)이 헌릉의 서쪽에 조성되었고 능참봉의 한옥이 남아있다.

 

 

이런 더위에 25km는 좀 무리인가?  쉬는 시간이 계속 늘어난다. 우수조망점이 있는 철탑도 지나고

 

대모산부터 구룡산까지 계속 철망을 따라만 가면 된다. 대모산에 남은 유일한 옛절 불국사 갈림길

 

불국사(佛國寺)

대모산에 남은 유일한 옛절 불국사(佛國寺)에 들리고 싶지만 다음을 약속한다.

봉은본말사지에 의하면 이곳 불국사는 고려 공민왕 2년(134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박씨 성을 가진 농부가 밭에서 약사석불(藥師石佛)을 발굴하여서 이 절에 봉안했다 한다.

지금도 법당에 모셔져 있는데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왜 이렇게 약수터가 많지?  대모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많은 약수터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현지인에게 물어 보니 모두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인데..대모산에 뭔가 특별한게 있다?

 

구룡산 오름길... 이렇게 힘들 줄이야...

구룡산 九龍山(306m)

국수봉이라고도 불렸던 구룡산(九龍山)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1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이라 불리게 되었고,

하늘에 오르지 못한 1마리는 좋은 재목, 좋은 재산인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보다 낮은 이 산의 주봉(主峰)은 국수봉(國守峰)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전부터 정상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이 곳에는 바위굴이 있어 봉수군(烽燧軍)이 기거했다고 한다. (서초구)

 

 

구룡산에서 부터 하산길은 능인선원 이정표를 따라 계속 직진 - 전망대가 있는 산불감시탑

 

오늘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강을 당겨본다

 

능인선원과 헤이지고 계속 직진

 

기상청에서 설치한 시설을 지나 이정표가 다시 나타나고... 한국연구제단으로 계속 직진

 

내곡동 갈림길을 만나지만 계속 연구제단으로 직진

 

안부 네거리에서 우틀

 

해외봉사단 훈련센터 출입문 통과 - 문은 상시개방하나?  좀 늦어지는 바람에 걱정했는데...

 

해외봉사단 훈련센터를 나와 우틀

 

굳이 이쪽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앞에 보이는 우면산으로 연계산행을 많이들 하기 때문이다. 물론 걸어서 간다.

 

초보산꾼은 예전에 한번 걸어 봤기에 여기서 정리하고 신분당선인 양재시민의숲 지하철로 집으로 돌아 온다

 

 

참으로 덥기는 덥다.

여름의 중심을 잡고 가장 덥다는 대서와  

여름 불기운에 가을의 쇠 기운이 3번 복종한다는 복날의 중심에 따났던 산행길

숲속 형제들이 비춰주는 그늘이 얼마나 고맙던지...

가끔...아주 가끔이었지만 잠시 쉬어가라고 불어주던 숲속 바람까지...

몇 번의 산행임에도 비웃듯 변해버린 마루금에 길을 잃고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내려 왔지만

거기에 기대어 살아 가는 우리 이웃들이 만든 길이기에

새로운 길에 새롭게 동참했다는 맘으로 정리해 본다

또한 그처 스쳐가듯 보아왔던 청계산을 혼자 걸으면서

나도 몰랐던 청계산의 속살을 더욱 깊게 알게 되었음에

무더위에 무릎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중에서도

웃으면서 하루를 정리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한 때 고려의 충신들로 인해 은둔과 지조의 땅으로 불리기도 했고

조선조 때는 도적들의 소굴이 되면서 나무도 모두 잘라내는 수난의 역사도 갔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시민들의 힐링의 장소로 새롭게 변해 있고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청계의 맑은 소리는 소리없이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들만 다를 뿐...

 

 

내가 걸을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찾을 수 있는 산

인간이 항상 삶의 무게를 어께에 메고 살아 가듯이

산도 항상 머리에 푸른하늘을 이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며 살아간다

때론 구름이 찾아 와 어깨를 주물러 주어 삶의 무게를 잠시 잊기도 하고

묵은 때를 가끔 내려주는 빗물이 씻어 주기도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 오는 밤의 공포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사와 똑 같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가진 습성을

산은 어둠과 밝음의 공존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 주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그냥 지나칠 뿐이다

밤이 되니 산속에 어둠이 찾아 오는 것이고 아침이면 날이 밖는 것이고...

당연시 됐던 일상이 때론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줄 떄가 있다...

안다고 쉽게 생각했던 오늘 하루가 나를 힘들게 했던 것 처럼...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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