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 5구간 : 동천역에서 하오고개까지

 

 

언제 : 병신년(16년) 견우직녀달 7월 스물사흘 흙날

 

누구랑 : 두리서

 

어딜 :  동천역 ~ 광교산 ~ 백운산 ~ 고분재 ~ 바라산 ~ 우담산(발화산) ~ 하오고개 (약16km)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286 에 있습니다

 

 

보양식으로 든든이 하면서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린 초복을 지나 중복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대서大暑

일년 중 가장 덥다는 절기인 만큼 논의 잡초도 성장이 왕성해 논은 물론 논둑마다 넘쳐나는 생명때문에

이른 세벽부터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논의 김을 메어주던 시절이 엊그제 였다는 사실마져 우린 잊고 살고 있지만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 바뀌었을 뿐 자연은 언제나 그데로 이다

선풍기나 에어콘이 아니면 여름나기 힘든 지금의 세대에게 과연 자연을 즐겼던 옛 선조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들어가기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전체지도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강남 구간

 

 

서울 외곽 수도권 55산 종주 5구간 : 동천역에서 하오고개까지 참고용

 

 

검단지맥상에 있는 불곡산에서 오리역으로 하산해야 하는  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지만 물푸레 고개까지 진행했고

5구간은 오리역에서 출발하여 용인 동천동 만남의 교회를 들머리 삼아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에서 수원과 경계를 이루며

백운산에서 수원과 헤어지고 용인과 의왕시의 경계를 따르다 바라산재에서 용인과 이별하고 의왕시와 성남시의 경계를 따른다

서울 근교에 있어 수원시민 뿐만 아니라 서울 시민들에게도 사랑받고 있어 잘 알 것 같은 광교산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직은 도시의 냄새가 덜 나는 동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예년에는 오리역에서 출발 했는데 지금은 동천역에서 출발한다. 동천역2번 출구에서 만남의 교회까지

 

동천동 만남의 교회 직전 롯데리아 옆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김밥을 팔고 있다. 우린 가재미 식해로 안주를 사고...

 

55산팀의 광교산 들머리 동천동 만남의 교회 앞에 도착 산행 준비를 하고

동천동 :  동막리(東幕里)와 원천동(遠川洞)이 통합하여 東川里(용인시 수지구)

원천(遠川)이란 동막천과 윗손골서 내려온 물이 머내 위에서(지금의 선경) 만나게 되는데 이 물줄기는 그 발원지가 다 광교산이다.

그러니까 한 곳에서 헤어진 물이 수십 리 거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의미로 원천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머내는 멀원의 멀자가 먼내로 됐다가 머내로 변한 것이다. 여기서 원천과 머내는 음과 뜻의 표현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

다음 백과사전

 

 

동천역에서 들머리인 만남의 교회를 출발하여 광교산 정상 시루봉까지 - 다음지도

 

수지고등학교 갈림길

 

토월약수터에서 올라오는 갈림길도 지나고

 

이조판서까지 지내신 이우성(李羽成) 묘소도 지나고

 

옛날에는 쉼터이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그래서 남은 거리 숫자로 확인 해야 한다. 중손고개 쉼터

중손고개 쉼터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상손곡은 손곡 손골이라고도 하는데 손(蓀)은 창포나 란과 같은 식물을 말하므로 손초(蓀草)가 자생한 골이라는 데서 연유된 지명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랫손골 위쪽에 마을이 이루어졌다하여 위손골, 상손골 등으로 불린다.

중손곡은 상손곡과 하손곡 중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중손골, 중손곡이라 칭하게 되었다.

자료 : 다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enc.tfode.com/%EB%8F%99%EC%B2%9C%EB%8F%99_(%EC%9A%A9%EC%9D%B8%EC%8B%9C)  

 

 

손골성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 듯...   성지바위 쉼터가 있는 이정표

손골성지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로437번길 67

손골은 예로부터 향기로운 풀이 많고 난초가 무성하여 ‘향기로운 골짜기’라는 뜻의 손곡(蓀谷)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손골은 주민들 사이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 즉 ‘성교촌(聖敎村)’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손골성지에 천주교 신자들의 집단 거주지가 형성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었으며,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손골에는 그 수가 12가구의 교우들만 살았다고 한다.

손골성지가 천주교 성지로 유명하게 된 것은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전교 유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 : 디지털용인문화대전  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local=yongin&dataType=01&contents_id=GC00902025

 

 

맷돌바위가 있는 맷돌바위 쉼터 

 

이정표도 지나고

 

동천터널과 신봉터널이 뚫려 있는 만남의 고개인 소말구리 쉼터

소말구리 쉼터   고기동에서 출발하는 말구리고개에서 따온 이름인 듯

말구리는 순수한 우리말인데 이를 말+구리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때의 말은 말(馬)의 뜻이 아니라 ‘크다'는 의미를 가진 순 우리말이다.

즉 말 무덤 말잠자리, 말벌, 말매미 등 에서처럼 ‘말'이 말(馬)을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큰 무덤, 큰 잠자리, 큰 벌 등의 뜻을 가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구리'는 ‘굴'의 연철형으로 ‘골(谷)'의 변음이다. 골이 굴로 변하는 것은 ‘나모'가 ‘나무'가 되고

 ‘가온데'가 ‘가운데'로 바뀐 것처럼 우리말에서 ‘오'의 음이 ‘우'로 바뀐 것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말구리는 ‘말+골'이되는 것이니 ‘큰 골짜기' 정도의 뜻을 가지는 이름으로 풀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람의 언덕도 지나고

또 동천동 상손곡에서 고기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구리고개라고 하는데 비탈이 심해서 말이 넘어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한자로는 마전현(馬轉峴)이라고 쓰는데 말이 굴렀다는 뜻으로 붙인 표기다.

이 역시 고개이름인 것만 다를 뿐 ‘말구리'라고 하는 것은 같은 뜻에서 붙인 경우다.

또 전국적으로 많은 말구리나 말구리고개가 있는데 말이 굴렀다고 하는 유래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것을 보면 하나의 참고가 된다고 하겠다.
자료 : 용인 시민신문  http://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58

 

 

철탑도 지나고

 

돌탑

 

동천동 롯데리아 옆 반찬가에서 산 가제미식해로 식후경을 하고

 

헬기장에서 본 수리 한마리가 앉아 있을 듯한 모습의 수리봉이 우측으로 보인다

 

 

수리봉에 올라보니 동천동과 고기리가 조망된다. 우측으로 우리가 올라온 성지바위봉 코스가 보인다.

좌측은 동천동 우체국에서 올라오는 능선. 그리고 그 좌측으로 고기리의 낙생저수지도 조망된다

 

가야 할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

 

오랜만에 지인과 함께이니 사진도 남겨 보고... 수리봉에서

 

수리봉은 말구리고개 아래 있는 미륵사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광교산 정상

광교산 光敎山 582m  시루봉(정상)    용인시와 수원시 경계 용인의 속살을 벗어나 수원과 경계 

『택리지』에는 "광교산으로부터 북쪽으로 관악산(冠岳山)이 되고 똑바로 서쪽으로 수리산(修理山)이 되어서 서해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현(縣) 북쪽 20리에 있는데 서봉사(瑞峯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용인군 『지도읍지』에는 "서봉산(瑞峯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 광악산(光嶽山)이었는데 928년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평정하고 광악산 행궁에 머물면서 군사들을 위로하고 있을 때

산 정상에서 광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이 산은 부처가 가르침을 내리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광교(光敎)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광교산의 북동쪽에서는 동막천이 발원하고, 남동쪽에서는 신봉천이 발원하여 둘 다 탄천으로 흘러 들어가며,

서남쪽에서는 하광교소류지를 거쳐 광교저수지로 유수가 흘러 들어갔다가 수원천·원천천을 거쳐 황구지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자료 : 디지털용인문화대전  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local=yongin&dataType=01&contents_id=GC00900017

 

 

가야할 백운산

원래 광교산의 주봉은 푯대봉인데 수지쪽으로 오르는 첫봉 바위가 산아래서 보면 꼭 떡시루 같다 하여 시루봉 이었는데

산 능선 일대를 입으로 입으로 시루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에는 정상에 수원시에서 화성을 상징하는 구조물을 만들고 시루봉이라 적고 뒤에는 광교산유래를 적어 두었었다.

지금은 광교 저수지로 옮기고 용인시에서 만든 광교산 정상석이 있다.

자료 : 용인신문  http://www.yonginilbo.com/news/article.html?no=31697

 

 

그리고 계속 이어가게 될 바라산 우담산 그리고 멀리 청계산까지 조망된다. 근데 언제쯤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시루봉.노루목 갈림길을 지나고 - 비로봉으로 하산길로 용인시와 수원시가 만나는 지점이며 한남정맥길이다

 

노루목 대피소가 있는 노루목

노루목

오래전에 는 이 산에 산돼지, 사슴, 노루, 여우, 산토끼, 너구리 등 여러 종류의 야생 동물이 서식했었다.

http://cafe.daum.net/kgessay/NHtv/49?q=%B3%EB%B7%E7%B8%F1%20%C5%E4%B3%A2%C0%E7%20%C0%AF%B7%A1

 

 

송신소를 우회하면 억새밭이 나타나고

 

통신대 갈림길에서 우측 백운산으로...한남정맥도 좌측 지지대 고개가 아니라 백운산으로 해서 지지대로 내려가야 한다

 

정자와 삼각점 정상석이 있는 백운산. 한남정맥은 지지대 고개로,,, 한남관악지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한남관악지맥

 

관악지맥(冠岳枝脈)은

한남정맥 백운산(566 m)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바래산(427 m). 청계산(615 m) 관악산(632 m)을 넘어 남부 순환도로에 내려서 부터는 

도심지로 까치산근린공원, 국립묘지 뒷산인 서달산(176 m), 문래역을 지나 안양천의 동쪽끝에 이르는 도상거리 34.8 km의 산줄기다.

안양천과 탄천의 분수령이다

 

 

백운산 정상석이 있는 백운산 전망대를 배경으로...

백운산 562.6   용인시 의왕시 와 만남 수원시와 헤어짐.  한남정맥과 이별, 관악지맥 시작. 의왕시 오전동 백운동

예로부터 산이 높고 험해 흰 눈 또는 구름에 둘러 쌓여 있다고 하여 白雲山이라 불려진다고 하나

큰 산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마을 주민들에 의한 다소 과장된 표현인 것 같고 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며

광교산과 능선으로 이웃해 있고 바라산과도 고분재 고개를 경계로 능선으로 이어지며 서북쪽으로는 모락산과도 연결된다.

자료 : http://www.ceraon.kr/yc44/265144

 

 

모락산도 갈 수 있다.  

 

지지대고개 방향의 한남정맥길

 

백운산 갈림길에서 한남관악지맥길은 바라산 방향으로

 

오름내림을 하다 보면 고분재

고분재

마을 앞에 고개가 있는데 곧바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굽이를 쳐서 내려와서 고분재라 불렀다

자료 : 용인문화원  http://www.ycc50.org/c_data/folktales_view.asp?idx=42

 

 

바라산 전망대에서 본 백운호수 그리고 좌측이 모락산.. 모락산에서 백운호수로 해서 내려와도 좋은데...

 

무더위에 함께 하던 지인의 발걸음은 무디어만 가고... 힘들게 바라산 정상

바라산   용인시와 의왕시의 경계

바라산은 의왕시 학의동,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용인시 수지구 고기리에 걸쳐있는 해발 428m의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자그마한 산이다 

바라산은 발아산(鉢兒山) 또는 망산(望山)이라고도 하며 이는 바라본다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고려의 충신이었던 조윤(趙胤)은 자신의 형과 달리 이씨왕조를 섬기지 않고 스스로 亡國의 신하됨을 부끄러이 여겨

개는 죽어도 주인을 잊지않는다는 뜻으로 이름을 犬으로 고치고 청계산에 숨어들어 옛 도성을 바라보고 통곡하였다고 한다.

이 곳 터주대감격인 마을 사람들은 바라산을 함박꽃이 많다고 하여 함박꽂이산이라 부르고 있다 

자료 : http://www.ceraon.kr/yc44/265144

 

 

바라산 정상에서 직진하면 고기리로 내려가는 능선, 한남관악지맥은 좌측 하오고개 방향으로

 

계단도 지나고

 

복골재, 바라산재 - 용인시와 이별, 의왕시와 성남시의 경계 점. 다음지도 참조

 

이제 지인의 쉬는 시간은 늘어만 가고...  힘든 오름길을 하면 백운호수 갈림길 - 하오고개는 우측으로

 

다시 한번 벡운호수 환산행 능선길과 접속하고...백운호수를 끼고 한바뀌 도는 것도...  하오고개 방향으로 우틀

 

오름내림의 힘든 코스가 끝나고 이제 편안한 숲길이 열린다. 그래도 아직 바람은 인색하기만 한데...

 

고기리로 하산 할 수 있는 우담산 정상에서 컵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우담산(발화산)

우담산은 산이 넓게 벌어져 있다고 해서 너른 번데기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얼핏 바라산, 우담산을 함께 연결시켜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우담바라가 연상되어 깊은 뜻이 있을듯 생각히기 쉬우나 특별히 알려진 것은 없다.

이 두 산(우담,바라)은 1953.9에 조성된 인공호수인 백운호수를 마치 병풍을 쳐서 보호하듯 껴안고 있는 형상으로 의왕시가 선정한 자연경관 8경 가운데

백운산 계곡, 백운호수, 하우현 성당등 3곳이 포함될 정도로 산과 호수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자료 : http://www.ceraon.kr/yc44/265144

 

 

외곽순환도로가 보이기 시작하는 안양 하우현 성당으로 내려가는 하산길 갈림길

 

외곽순환도로와 국사봉 그리고 청계산이 조망된다 - 다음에 계속 이어가게 된다

 

삼각점봉도 지나고

 

통신탑에서 우측으로 가도 운중동으로 내려 갈 수 있으나 너무 길다. 좌측으로 해서 하오고개로...

 

몇 번 목숨걸고 넘었던 기억.... 이젠 안전하게 넘울 수 있다니... 고개 넘어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던 옛 추억에 잠시 젖어 본다

학현(鶴峴, 학고개, 하오고개, 하오개, 화의고개)  운중동의 서쪽에서 의왕시 청계동과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의왕시에서는 학고개, 학현이라 부르는데 운중동에서는 하오개, 하오고개, 화의고개 등으로 불러워지고 있다.

의왕시 청계동 점말에 있었던 김해 김씨(金海金氏) 종산이 풍수지리상 학이 거동하는 형국이며,

인근의 안동 김씨(安東金氏) 묘도 학의 혈에 해당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고개의 좌·우쪽은 모두 조선 말기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서 숨어 살았던 곳이다

  자료 : http://cafe.daum.net/nakseang44/1U67/12?q=%BF%EE%C1%DF%B5%BF%20%C7%CF%BF%C0%B0%ED%B0%B3%20%C0%AF%B7%A1

 

 

8차선 도로인 하오고개를 안전하게 넘어가는 기념으로...

 

하오고개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치고 운중동으로 하산하는 길. 구도로로 내려가야 한다

 

관리가 안돼 잡목이 심하다. 도로로 내려서면서 도로따라 간다.

 

전에 없던 정류장이 하나 생겼다. 안양으로 갈려면 여기서 차를 타면 편할 듯

 

운중저수지와 국사봉을 담아 보고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해서 정류장에서 분당으로... 앞에 보이는 콩밭에서... 뒤풀이

 

 

 

두부낙지볶음(18,000원)으로 막걸리 한잔

 

먹거리촌 정류장에서 220번 버스로 정자역에서 하차 집으로...

 

 

 

우리처럼 맥잇기를 하는 산객들은 자주 산에서 길을 잃는다

소위 산객들이 쓰는 용어 중에 알바라는 것인데

안가도 되는 길을 갔다는 얘기이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지만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갈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살다보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자주 가게 된다

 

그런데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와서가 문제이다

산길에서 겪는 알바야 내몸뚱아리로 때우면 된다지만

인생살이는 어디 그렇던가?

그래서 우린 알바를 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사전에 공부하고

선답자의 길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인생 선배들의 경험담이나 책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린 길을 잃고...

또 길을 찾고... 

또 길을 찾아 떠나고...

어차피 살아온 인생도 가시밭길 또 살아가야 할 인생길도 가시밭길...

우리 앞에 펼쳐진 산길도 여러갈래이고

또 길을 찾아 가는 것도 다 다르고

저마다 자기 길을 가면서 수수께끼같은 인생길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서 걷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은

잃었던 그 길을 다시 찾는 순간의 희열과 짜릿함

거기에 가끔은 잃었던 그 길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무언가를 얻을 때도 있다

길은 잃었어도 얻은 것 또한 많이 있나니... 

이 세상 무엇과 바꿀 수가 없는 삶의 일부분이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맘이 중요한데

길을 잃고 또 잃으면서도 내가 다시 길을 떠나는 이유이다

 

다시 돌아 오지 못할 강을 건너지 않는다면

알바 인생도 때론 살아가는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쓴 하루로 기억된다...

 

현실이니까...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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