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곽 수도권55산 종주 2구간 : 은고개에서 남한산성 남문까지

 

 

언제 : 계사년(13년) 잎새달 스물이래  흙날

 

누구랑 : 오준근님과 두리서

 

어딜 :   은고개 - 벌봉 - 남문 

 

         더 많은 사진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976 에 있습니다

 

 

 

한돌대장님과 함께 하지 못한 검단지맥 1-2구간 및 서울외곽 수도권 55산 종주 2구간을 위햐여

이번에 한남금북정맥을 함께 하기로 한 오준근님과 동행하여 남한산성으로 길을 떠나 본다.

 

 

 

들어가기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전체지도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강남 구간

 

 

 

서울외곽 수도권55산종주 2구간 : 은고개에서 남한산성 남문까지

 

 

남한산성 자료는 http://weekly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1721를 참조했습니다

 

 

 

천호역 3번출구로 나와 13번 (또는 13-1번) 버스를 타고 은고개에 도착

은고개는 경기도 하남과 광주시 경계에 있는고개다. 행정지명으로 남쪽은 광주시 중부면 엄미리, 북쪽은 하남시 상산곡동이다. 

검단지맥에 걸친 고개로 43번 국도와 중부고속도로가 지나며, 동쪽은 용마산, 서쪽은 남한산성 벌봉으로 이어진다. 

은고개 이름은 엄미리(奄尾里)라는 지명에서 유래되는데, 엄미리의 '엄'자를 따서 엄고개(奄峴: 엄현)로 불리다가 발음이 은고개로 변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남한지(南漢志)에는 '엄현'(奄峴)으로 표기되었다. 

 

 

은고개까지 거의 한시간이 걸려 도착한다

엄미리(奄尾里)는 일제 초 행정개편 때 엄현(奄峴)이란 고개이름을 딴 엄현리와 미라동(尾羅洞)이 합쳐지면서 생긴 마을 이름이다

버스정류장 바로 뒤로 보이는 교차로 신문사 우측으로 들머리가 된다 

 

 

전에 없던 이정표도 새롭게 단장되어 있다

 

300봉 직전 봉 삼거리를 만나면

 

우측으로 가면 검단지맥인 300봉에 오르고

 

좌측으로 가면 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좀 전에 보았던 봉에 오르면 삼각점이 있고 학교림 표시가 있는 300봉

 

엄미리 계곡으로 하산하는 이정표를 계속 만나게 된다

 

산책로 처럼 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엄미리(奄尾里) 마을로 내려가는 이정표

 

남한산성이 보이기 시작하고

 

지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벌봉으로 향하면

 

남한산 (522) 에서 본 우리가 걸어가야 할 또 다른 검단산

 

외동장대터를 지나고

 

벌봉의 유래를 안고 있는 틈이 있는 바위

지금의 벌봉이 마치 쪼개진 것처럼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은,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벌봉에 어린 정기를 날려 버리려고 깨트렸던 자국이라고 한다

 

 

봉암신성 신축비가 있는 벌봉

 

 

생각없이 성곽을 따르다 만난 13암문인 벌봉 암문

 

 

 

성곽길에서 다시 뒤 돌아 벌봉으로 원위치한다

 

다시 벌봉 앞으로 되돌아와 동문 방향으로

 

한봉갈림길에서 북문 방향으로

 

봉암성과 제3암문(봉암성암문)이 보인다. 문루만 없을 뿐 성문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성곽만 따르다 알바를 한 것이다.

 

 

제3암문에 있는 이정표

 

동장대터를 만나면서 본성 성곽길이 시작된다

 

동장대터에서 본 은고개에서 올라 온 능선이 보인다.

 

남한산성 여장(女墻)

 

 

 

처음으로 한남금북정맥에서 만나게 될 오준근님의 사진도 남겨 보고

 

하남시 상사창동을 감싸고 북으로 두개의 능선이 뻗어가고 있다

좌로 보이는 능선이 북으로 뻗어 가는 연주봉 옹성에서 시작되는 금암산, 이성산성길이다.

 

 

초소역활을 한 군포터를 지나고

 

아름다운 산성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남한산성은 광주(廣州)의 읍치(邑治)로서 철저히 나무를 심고 가꾸었기에 아름다운 산림자원을 지킬 수 있었다.

철종 연간에는 첨사를 지낸 석태경(石泰慶)이 사재를 출연해 1만 그루 소나무를 심은 일이 있고

고종 연간에는 김영준(金永駿) 또한 사재를 털어 1만 5000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일이 있다고 한다.

북악산성길에서 만난 소나무와 같이 파괴 되지 않으면 이렇게 우리에게 대자연의 힘을 주는 것을...

 

 

전승문인 북문을 만나고

 

 

전승문(戰勝門) - 본래는 서문인데 정조3년(1779년) 성곽보수공사를 끝내고 전승문이라 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인조반정 일등공신이며 영의정인 김류는 청군이 파논 계략에 빠져 8명의 지휘관과 300 여명의 장졸을 순식간에 잃는 참패를 당했다.
청군은 가파른 북문(北門) 아래 법화골 평지에다 가축과 조선인 포로를 미끼로 놓아두었는데 김류가 구출 명령을 내렸다.

장졸들이 함정일지 모른다고 살피자 했건만 비장 유호(柳瑚)에게 칼을 주어 휘둘러 장졸들을 언덕 아래로 내려가게 했다.

이 때 매복한 청군이 급습하니 본인은 성 위에서 초관(哨官)에게 퇴각명령을 전달케 했다.

그러나 때는 늦어 300 여명이 몰살당하는 치욕의 법화골전투로 남게 됐다.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실록의 기록처럼 김류는 위유(慰諭)를 받고, 엉뚱하게 초관에게 명령전달의 책임을 물어 참수했으며

북성장(北城將) 원두표가 처형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것이 그 당시의 조선이었으니 너무 부끄러운 역사이다.

 

 

더욱 넓어진 산성길

 

제5암문의 문을 통과하면 옹성이 나온다

 

양쪽으로 이어지는 옹성

 

연주봉 옹성

장경사신지옹성(長慶寺信地甕城)이다.

한봉성과 봉암성 방어를 위해 설치한 옹성이다. 그 끝에는 2개의 포(砲)가 있었는데 한봉과 벌봉을 지키려는 의도가 잘 나타난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 한강도 볼 수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이 벌봉에서 알바할 뻔 했던 능선으로 벌봉에서 시작해 법화사지 위 능선길을 거쳐 토성(土城), 객산, 선법사,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2008년에 걸었을 때는 성 바깎으로 걷는 바람에 성곽 안쪽의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 지 몰랐었다

 

두번째 문인 서문이 보이고

 

1637년 1월 30일 47일간의 항쟁을 끝내고 인조는 이 문을 통하여 마천동~오금동~가락본동(故廣州)~송파동을 거쳐

석촌호수 남쪽 어딘가에 설치된 수항단(受降檀) 앞에 무릎 꿇고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렸던 것이다.

그 후에 세운 삼전도비(淸太宗功德碑)는 지금도 롯데호텔 남쪽 석촌호수가에 서 있다

1637년 1월3일이었다고 하니 그 추운 날 치욕의 항복길에 오른 인조의 착잡했을 마음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삼전도비는 부끄러움도 역사이기에 교훈으로 삼고자 다시 옮겨 세운 것이인데....

256년간 서 있던 비를 청일전쟁이 끝나고 청나라 힘이 약해지자 고종 32년(1895년) 강물 속으로 수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귀신같은 일본놈들은 또 어떻게 알고 다시 인양해 세워졌다.
해방이 되자 이 비석은 주민들에 의해 다시 땅 속에 묻혀 잊혀 졌는데 1963년 큰 홍수가 나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끈질기게도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서울시가 역사교육을 위해 다시 세웠다. 

 

서문이 우익문(右翼門), 동문이 좌익문이 되는 까닭은 임금이 계시는 남한산성 행궁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행궁에서 남면(남쪽을 바라 봄)하면 동문이 좌(左), 서문이 우(右)가 되어 우익문, 좌익문이라는 문의 명칭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남한산성의 실제적인 역활을 하고 있는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수어장대에 있는 남한산성 안내문

 

본성 최고봉인 청량산(淸凉山,483m)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守禦將臺, 西將臺)

 

4개의 將臺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어장대

 

남한산성 4개의 장대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총지휘부의 역할을 했기에 수어장대(守禦將臺)라 한다.

 

수어장대 옆에 있는 잊지 말자는 뜻의 無忘樓 누각

 

봉림대군(효종)의 심양 생활과 북벌의 정신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후세 영조(英祖)가 이름지은 것이다

 

한켠에 매바위가 전설을 가득 품고 지금도 말없는 역사를 예기 하고 있다

설화같은 얘기의 자료 : http://weekly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1114 참조

 

 

‘守禦將臺’라고 쓰여 있는 각자

 

특별 관리 되고 있는 수어장대 앞에 있는 소나무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남문으로 이어지는 계단길과 성곽

 

성남시와 멀리 중간쯤에 대모산과 구룡산이 두귀를 쫑긋해 보인다

 

봄을 맞이한다는 영춘정(정자)도 보이고 - 천주봉

이곳이 천주사(天柱寺)터인데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는 누(樓) 앞에 연못이 있다 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天柱寺在西將臺下樓前有池).

 

 

다음 구간의 목적지인 검단산, 망덕산, 이배재고개를 넘어 분당 불곡산으로 이어지는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남으로도 능선길이 길게 뻗어 나가는데

 

 

남문

 

 

 

남문에 지화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 광주(廣州) 지방을 다스리던 유수(留守) 겸 수어사(守禦使), 부윤(府尹), 군수(郡守) 등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들이 즐비하고

 

남문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주차장까지 내려와

 

두부김치로 검단지맥 1-2구간을 마친다

 

 

남한산성 주변에 백제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일찍이 온조대왕의 산성으로도 불리웠다는 남한산성길

그러나 초보산꾼이 만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성으로 더 가까이 다가 왔다.

홍제천을 걸으면서도 인조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고

청계천 발원지를 찾아 나선 인왕산에서도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산성이 한때 번성했던 백제의 산성으로

당나라를 막아낸 신라의 자랑스러운 성으로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동국대 이한성 교수님의 바람을 전하면서

남문에서 동문, 다시 벌봉까지 나머지 구간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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